독서록

익산총쇄록(하)

청담(靑潭) 2024. 4. 5. 20:59

익산총쇄록()

 

 

叢瑣錄

총쇄록이란 <자질구레한 것들을 기록한 것>이라는 뜻이다. 작년 상권출판에 이어 하권이 나왔다며 임홍락 익산향토문화연구소장이 증정한다. 임소장이 회장인 익산고문헌강독회에서 익산시의 도움을 받아 출간된 것이며 익산문헌자료총서 제 4권이다.

 

지은이 오횡묵(吳宖黙 1834~1906)

저자 오횡묵은 1874(41)에 무과에 급제하여 1877(44) 수문장을 시작으로 부사과, 감무감, 공상소 감동낭관, 영남 별향시, 박문국 주사를 거쳐 1887(54) 정선군수에 임명된다. 그 뒤 자인현감, 함안군수, 고성부사를 거쳐 내금위장겸 공상소 인감, 징세서장을 지내다가 다시 지도군수, 여수군수, 진보군수를 지내고 190067세의 나이에 익산군수로 와서 1902년에 평택군수가 되고 1905년에는 품계가 종2품이 되었다가 1906년 면직되었다. 이때가 73세인데 거의 20여 년 동안 무려 9개 지역의 지방관을 역임한 지방행정의 전문가였다 할 수 있다.

익산군수로 재직한 기간은 17개월인데 이때 전라북도의 양무감리(토지측량사무의 총책임자)를 겸하여 힘든 시절을 보낸 모습이 이 기록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비록 무관출신이었지만 문장과 학식이 뛰어난데다 인품도 훌륭한 사람으로 하필 흉년을 고통에 빠진 익산의 백성들을 위하여 세심하고도 정성어린 방안들을 세우고 지시하는 수많은 기록들을 대하게 된다. 오늘날 선거로 선출한 시장 군수들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들을 보여주기는 하나, 선거 때의 부끄러운 일로 당선이 무효되기도 하고 부정한 사건이 드러나 그만두기는 일이 허다한 모습을 본다. 가난한 형편 속에서 서울집을 떠나 지방관으로 전전하면서도 절대 부정하지 않고 올바른 목민관의 자세를 견지하며 오로지 백성의 아픔을 덜어주기 위해 힘들어하는 모습에서 존경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업무파악이 정확하고 계획과 추진함에 있어 치밀하기가 그지없는 행정전문가였다. 그의 치적과 인품을 보여주는 내용이나, 당시의 시대상을 파악할 수 있는 기록할 만한 것들을 찾아 적는다. 당시의 백성들의 삶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자료는 능력 있는 수령들이 기록한 것 만한 게 없다.

 

익산 총쇄록 하권은 당신이 지은 시를 모은 것이다. 무려 600여수가 실려 있는데 숫자상으로 보아 거의 매일 한 수 씩 시를 지은 것이니 시를 매우 사랑하고 좋아한 시인이라 할 수 있다. 오군수의 시들은 주는 메시시가 강하다. 이 많은 시를 통하여 그의 직무에 대한 투철한 직업의식, 직무수행의 어려움, 국왕에 대한 충성심, 특히 백성을 사랑하는 지극한 마음과 뛰어난 인품, 해박한 지식, 그의 인간관과 지방관을 전전하는 삶의 모습들을 모두 엿볼 수 있다. 이 책을 읽어가며 이 분을 알면 알수록 존경심이 일지 않을 수 없었다. 구한말 어지러운 시기에 이러한 청렴하고 가슴 아파하며 백성을 위하는 훌륭한 지방관이 있었다니 우리가 널리 알려 공복의 본보기로 삼고 싶다. 당시에 가렴주구의 대표적인 지방관으로 고부군수였던 조병갑이 있었고 그의 악행은 결국 동학혁명이라는 역사의 큰 획을 이루어 낸 바 있다. 같은 시기에 같은 지방관인데 어찌 저리도 다를 수 있단 말인가? 오늘이라고 그렇지 않을까? 누구나 한번 읊어 볼 만한 시 몇 수를 적어 본다.

 

 

굶주리는 백성의 실태를 파악하고 탄식하다

자비로운 늙은 부처님 중생을 염려하여

앉아서 염주만 돌리다가 날이 밝았다

연말이라 날씨 추워진 골목길 백성들

항아리 비었다고 울며불며 원망한다.

흉년의 진휼구제에 정해진 규례 있는데

군수인 나의 책임 참으로 가볍지 않다

하물며 하늘에서 부여받은 성품 지녀

측은지심 가슴에 가득함에 있어서랴

관내 면적 백리에 가구는 삼천인데

더욱 딱한 백성을 정밀하게 뽑아야 한다

장대 끝 추위 떠는 참새는 어느 집이며

길바닥의 물 마른 붕어는 어느 마을인가

두 번 뽑고 서너 번을 뽑아도 안 되고

양반들 삭제해도 판단이 서지 않는다.

동쪽 훼손하고 서쪽 도와준들 뭐하겠으며

이곳 빼앗아 저곳에 준들 공평하기 어렵다

! 모든 일에 대해서 나를 탓할 텐데

방 맴돌며 탄식하느라 흰머리만 느는구나

황금은 부잣집으로 달려가 집중되는데

기민 진휼에 삼만 냥이 필요하다 말한다

광문선생이 다스리는 마을 유독 가난하니

닷말 녹봉 출연한들 이를 어찌 채우겠는가

찬 칸 넓은 집 지어 무두를 덮어 준 뒤

시상에 대해 그와 함께 비평할 수 있을까

 

흉년에 재해 상황 파악하며 개탄스러워 지은 시

진휼책의 조세 경감은 오래된 관례이고

임금명령 널리 알림은 지방관의 직분이다

시절이 불행하여 여러 해 가뭄이 들었는데

임금님께서 은덕을 전국에 두루 내리셨다

밝은 조정 만나서 알아줌을 입었기에

노둔한 재능 다하고자 밤낮으로 생각했다

영남별향사로 부임하여 진휼한 이후로

군수로서 임금 근심 나눈 지 여덟 번째이다

만분의 일이라고 보답하는 방법이란

어덯게든 일심으로 백성을 돌보는 것뿐

올해는 가물어서 논밭에 수확 없어

만백성 신음하니 어찌하면 좋을까

내가 관내 전야를 한차례 순시했는데

가을이 돌아왔으나 가을 같지 아니했다

항아리에 보관할 수확물도 없는데

세금 걷으러 아전이 찾아올까 근심이다

흉년에는 예로부터 감세가 전통인데

기민을 살리려면 재해 파악이 시초이다

농지의 비옥 정도 개괄하기 어렵고

허위에 관련된 일 끊어내야 마땅하다

노련한 아전 불러들여 상의에 보았지만

옛 방식만 따르며 고수하여 구차했다

내가 나서 백성 위해 철저히 중단시키고

양심 있는 아전에게 조사를 다시 시켰다

명망이 자자한 이들을 가려내어

종이에 적은 내용 신신당부해 보냈다

열흘동안 두루 파악한 결과는 어떠한가

목수들이 도목수 앞에서 잔재주를 부렸구나

견봉 따라 그린 호리병 위치가 뒤바뀌고

진흙을 물에 풀었지만 위아래 바뀌었다

한 번 보자 다시 펴 볼 마음이 사라졌으니

형식만 갖췄을 뿐이니 어디에다 쓰겠는가

쓸데없이 헛수고했다 비웃지는 마시오

그래도 ᅟᅡᆽ신을 속이지 않는 사람임은 알렸다오

아 요즈음 일마다 모두 이와 같으니

탁상공론 일삼던 예전보다 심해졌구나

 

좋은 시 구절 모음

천금을 주고도 사기 어려운 청춘시절

먼 바다까지 항해한 배 되돌리고 싶구나

젊을 때는 질병이 뒤따름을 몰랐는데

늙고 보니 찾아오는 것이 친척 같구나

이 세상을 눈 씻고 한 번 살펴본 뒤

동갑내기 헤아려보니 절반은 죽었구나

평온했던 예전 삶을 어찌하여 버려두고

헛된 명예 부질없이 사랑하고 있는가

 

생신날에 읊어 짓다

오늘은 내 생일인데 시골관사에서 홀로 지내고 있으니 어떠한 심정이겠는가? 게다가 흉년까지 만나 심기가 외롭고 쓸쓸해 차라리 잊고 지나가고 싶었다. 아들 익선과 질손 김연배가 마침 이르러 무릎을 떠나지 않고 있는데, 억지로 웃으며 말하고 있지만 아내가 그리운 마음은 진실로 떨쳐내가 어려웠다. 이에 관내 모든 마을의 가난한 집과 아전 가운데 매우 가난한 이를 뽑아서 각각 돈 15전식을 지급하고, 또 남녀 70세 이상인 사람을 뽑아 고기 1근 반씩을 지급하고, 이어 시장을 순찰해서 추위에 떨며 굶주리고 있는 자들에게 물품을 마련하도록 형편을 살펴 돈 1냥씩을 똑같이 지급하여 생일을 보내는 조처로 삼았다.

 

벼슬하러 떠돈 이래로 생일을 보내면서

서글픔을 느낄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우연히 시절 맞아 봄날 함께 맞았으니

화창해서 온갖 근심 사라질 수 있겠다.

 

병상에서 일어나 방문을 열었는데

나랏일에 슬퍼진 마음 가다듬기 어렵다

외로운 심사지만 군졸 사열 가능한데

아들과 외손 축하하러 차례로 찾아왔다

 

올해는 흉년들어 양식 떨어질까 걱정했는데

겨울에 접어들자 참새들이 배고프다 울어 댄다

이러할 때 하찮은 녹봉 어떻게 아끼겠는가

술값으로 쓰느니 나눠주는 것이 훨씬 낫겠다

 

신음하는 기민들 참으로 가련한데

삼천 식객 먹여주는 그런 자는 누구인가

숨겨진 구리광산 어찌하면 찾아내어

채굴해서 동전 만들어 기민들을 구제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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