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개혁이야기 둘

청담(靑潭) 2009. 8. 7. 10:31

♣개혁이야기 하나


  어느 마을에 갑돌이와 갑순이가 살았답니다. 갑돌이는 처음부터 갑순이를 좋아했지만 갑순이는 부잣집 아들이며 읍내의 중학교도 졸업했으며 잘생기고 말씨 좋고 부드러운 덕보와 사랑을 속삭였답니다. 마을의 여러 처녀를 울렸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말이지요. 갑순이를 차지하지 못하고 애만 채우던 갑돌이는 갑순이와 덕보의 사랑이 깨어지자 '때는 이때다' 하고 다시 사랑을 고백하였고 갑순이는 외롭기도 하고 덕보도 밉고 갑돌이의 사랑과 성실함에 감복하여 그 구애를 받아들이고 결혼까지 하게 되었답니다. 갑돌이는 갑순이와 덕보의 연애건에 대해서는 조금은 꺼림칙했지만 그렇게 사랑하던 갑순이와 결혼까지 하게된 마당에 그런 것은 크게 문제삼고 싶진 않았답니다. 신혼초에 몇 번이나 캐묻고 싶었지만 그래도 잘 참았다지요.
 어느덧 60년의 세월이 흘러 이제 두 사람의 나이는 80이 다 되었지요. 아들 셋에 딸 셋에 손자 손녀까지 모두 합하면 20명은 될걸요. 다들 사회적으로 웬만큼은 성공하여 행복하게 살고들 있었답니다. 그런데 60년 전에 크게 문제삼지 않았고 열심히 일하며 자식들 키우느라 잊어버렸던 갑순이와 덕보의 연애사건이 80노인이 되어서는 자꾸만 생각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더구나 덕보는 갑돌이보다 잘생겼고 동네에서 제일 부자로 소문이 났으며 자식들은 판사요, 교수요, 사장이요 한다니 자존심이 상하고 언젠가는 갑순이와 길을 가다가 덕보를 만났을 때 멋지게 차려입고 아주 세련된 모습으로 갑순이에게 웃는 낯으로 인사하며 말을 건네는 덕보와 아내의 모습이 왜 그렇게 싫던지 참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아니, 내가 미쳤나? 이 나이에 그리고 벌써 60년 전에 있었던 일을 가지고...더구나 덕보와 나는 친구이고 지금까지 잘 지내왔건만 도대체 내 마음이 왜 이러는 거지?"
하며 스스로 마음을 잡아 보려 하였지만 도저히 참을 수가 없고
 "지금도 갑순이의 마음은 덕보에게 있는 것은 아닐까? 나 몰래 둘이 만난 적은 없었을까? 잠까지 잔 것은 아닐까? "
하는 의심이 들면서 넌지시 아내에게 옛일을 묻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런 일은 차라리 결혼 초에 물어보고 깨끗이 잊었어야 하는데 이제 와서 물어보고 알면 또 어쩔 것인가?"
 하는 자괴심도 일었지만 평생 같이 살아온 아내의 사랑은 거짓일 것만 같아 진실을 알고픈 욕구를 억제할 수 없었습니다.
"덕보를 지금도 사랑하느냐?"
"어디서 몇 번이나   만나 함께 잤느냐?"
" 왜 내 사랑은 받아주지 않고 덕보만 좋아했느냐? 지금도 덕보를 마음속으로는 사랑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
 "결혼한 이후에도 두 사람이 몰래 만나지는 않았느냐?"
하며 아내를 다그치기 시작했습니다. 너무나 황당한 남편의 채근에 갑순이는 차분히 말했습니다.
"그때는 잘생긴 덕보씨가 좋았던 것은 사실이에요. 그러나 알고 보니 그 사람은 난봉쟁이였고 꽃순이와도 몰래 만나는 것을 알고는 싸우고 헤어졌어요. 꼭 한번 그런 일이 있었구요. 어린 마음에 잘생기고 부자인 그 사람을 좋아했었지만 난봉꾼이기에 헤어졌고, 당신이 집은 가난하지만 그 사람보다 성실하고 믿음직하고 저를 너무나 사랑하는 것을 알고는 당신과 결혼한 거랍니다. 당신도 지금까지 대충은 짐작하면서도 크게 문제를 삼지는 않았잖아요? 그런데 왜 이제 와서 갑자기 이러시는 거랍니까? 당신이 알고 있는 거 외에는 더 밝힐 것도 딱이나 없는데 말입니다."
라고요. 그러나 갑돌이는 자신의 물음에 자세히 대답하지 않는 아내를 더욱 의심하게 되면서 더 이상 참아내지 못하고 자식들을 모아 놓고 그 사실에 대해 모두 털어놓았습니다. 큰 아들은
" 아버지, 이제 와서 평생을 같이 사신 어머니의 과거를 낱낱이 들추어내셔서 우리 집안에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저희도 이미 대충은 들어서 오래 전부터 알고 있는 사실인데 마음에 걸리시더라도 참으셔야지 새삼스레 들추시어 어머니와의 관계도 나빠지시면 같이 사시기도 힘이 드는데 아버지에게도 바람직하지 않을 듯 싶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셋째 아들을 제외한 나머지 네 남매는 큰아들 의견에 동조하며 두 분이 앞으로 남은 여생을 서로 위해주며 편안히 지내시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셋째 아들의 의견은 아주 달랐습니다.
"나의 어머니가 아버지와의 결혼 전에 덕보 아재와 좋아했다는 사실도 참기 어려웠었다. 그런데 오늘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보니 어머니가 덕보 아재와 잠도 같이 잤고, 외할아버지께서 동네 창피하다고 못 만나게 하니 둘이서 도망을 가서 사흘만에 돌아온 일도 있다하니 어머니를 용서할 수가 없다. 어쩌면 우리들을 낳고 키우셨지만 어머니의 마음 깊은 곳엔 덕보아재가 자리잡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것은 도저히 묵과할 수가 없다. 우리 가정에 오직 어머니만이 부끄러운 과거를 가졌으니 내 자식들에게도 부끄러워 아비 노릇하기도 어려울 듯 하다. 이 참에 어머니의 부끄러운 과거를 이미 알려진 내용 외에 더욱 샅샅이 밝혀내고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손자손녀들에게도 모두 알려서 다시는 이처럼 부끄러운 일이 이 집안에 발생하지 않도록 집안 정기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아버님께서 어려우시면 저와 제 자식이 위원회를 조직하여 아버지가 알고 계신 내용과 어머니의 자백과 동네사람들의 증언과 덕보 아재를 추궁하여 알아내는 내용을 총정리하여 책자로 펴내겠습니다. 그래야만 우리 아이들이 이처럼 성도덕이 문란한 세상에 결혼전에 함부로 몸을 놀리지 않을 듯 싶으니 우리 가정교육에도 반드시 필요한 일인 듯 싶습니다."라고 하였다.   
 
♣개혁이야기 둘


 어느 한 부부가 외동딸을 낳아 애지중지 예쁘고 총명하게 키웠습니다. 두 부부는 대학을 졸업하고 스스로 엘리트라고 자부하며 최선을 다하여 직장에서 일하고 노력하여 사회적으로도 성공하였습니다.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형편도 중상류층에는 든다고 자신하였습니다. 항상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여 새로운 생각과 문화에 잘 적응하고 있다고 자부하였습니다. 예쁘고 귀여운 딸은 수능성적도 좋아서 원하던 의과대학에 합격하였기에 세상에 부러운 것이 없었습니다. 남의 집 열 아들이 부럽지 않았지요. 대학을 졸업하면 의사가 되고 그리고 아주 훌륭한 사위를 맞아 아주아주 아름답고 자랑스런 가정을 꾸미고 ...그리고 손자 손녀들을 낳으면 얼마나 귀여울까? 정말 환상의 미래를 꿈꾸며 행복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어느 날 사랑하는 딸이 말했습니다.
"아빠, 엄마! 이제 제 나이가 만 20세가 되어 성인이 되었는데 언제까지 엄마 아빠와 함께 살아야만 하나요? 왜 저녁에는 학교에서 바로 집으로만 와야 하나요? 다른 친구들은 나이트에도 다니고 애인과 제주도여행도 다니고 러브호텔에도 다니고 담배도 피우는데 왜 나는 한가지도 안되나요? 고등학교 동창하나는 학교 앞 원룸에서 남자친구와 동거도 하는데 성인인 나는 왜 남자와 사랑하는 권리 마저 지나친 보호로 부모님이 빼앗는 것인가요?"
부모는 너무 황당하여 말문이 막혔으나 곧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말했습니다.
"미안하구나. 우리는 아직도 네가 어리다고만 생각하고 네가 성인이 되어 성적 욕구가 클 줄은 미쳐 생각지 못했구나. 의대생이니 공부를 해야만 하고 하도 무서운 세상이니 소중한 너를 보호하기 위해 자주 전화하여 확인하고 일찍 들어오도록 한 것인데 너무 지나쳤나 보구나. 그럼 너도 남자 친구도 사귀고 여학생들도 소주 한 병씩은 마신다는데 마셔도 보렴. 그리고 친구들과 어울릴 기회가 있으면 미리 전화하고 좀 늦게 오기도 하렴. 우리도 생각을 많이 바꾸마"라고요.
남자 친구를 사귀고 담배도 피우고 술도 마시기 시작한 사랑하는 딸은 어느 날 부모에게 무서운 가정개혁에 대해 주장을 펴기 시작했습니다.
"엄마 아빠가 아무리 대학을 나오시고 건전한 상식을 가지시고 나를 사랑한다고 해도 두 분의 나이는 이제 50대이다. 50대가 개혁과 변화를 추구하는 우리 20대를 완전히 이해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두 분은 나를 의사로 만들어 남들이 부러워하는 가정을 만들어보고자 하시지만 그것은 두 분의 욕심일 뿐이다. 나는 의사가 되기 위해 힘들게 공부하기도 싫다. 공부를 중단하고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애인과 동거하고 싶다. 그 사람은 너무나 멋지게 생겼다. 그 사람은 가난하지만 아빠는 돈이 있으니 커피숍을 하나 차려주시라. 이제 부모가 낳았다 해서 이래라 저래라 하며 결혼할 때까지 간섭하는 시대는 지났다. 선진국인 미국에서는 고교를 졸업하면 독립을 하고 스웨덴에선 마음에 맞으면 언제든지 동거로 들어간다. 그리고 싫어지면 헤어지고 또 다른 사람을 만나 동거한다. 이제 우리 부모들도 사고 방식을 고쳐야 한다. 20세가 된 성인들이 동거하면 인정해주고 방도 얻어주어야 한다. 어차피 주실 유산이면 미리 좀 주면 좋지 않으냐? 우선 동거해 보고 마음에 들면 결혼까지 하고, 싫어지면 기꺼이 헤어지겠다. 한번 결혼하여 잘못되어 이혼이니 뮈니 하기가 귀찮으니 앞으로 5-6명 정도와는 동거해볼 생각이다. 그리고 아이는 절대 낳지 않겠다. 아이 낳아 힘들게 키우느니 귀여운 고양이와 개나 몇 마리 키울 생각이다. 만일 두 분에게 내 말이 황당하게 들린다면 두 분은 틀림없는 수구 반동주의자이다. 그리고 우리 집은 너무 좋은데 내가 나가면 두 분이 이처럼 넓은 60평 아파트에 사시지 말고 대통령이 말씀하신 대로 진보적 의식으로 '고르게 사는 사회를 만드는 일'에 동참하여 32평 이하로 이사해야 한다. 32평 이상에 사는 사람들은 서민아파트가 아니므로 모두 부르조아다. 아마 대통령도 천도하면 제왕이 살던 궁궐보다도 더 어마어마한 청와대 같은 건물이 아닌 총리 공관정도의 집에서 살며 대통령 청사에 출근하여 집무하는 진보적 모습을 보일 것이다. 이 딸에게서 무엇을 찾으려 하지말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둬라. 그게 내가 바라는 것이며 진정으로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하고싶은 대로 내버려두고 어려운 때면 이왕 가진 돈이니 도와만 주라. 이것이 바로 앞으로의 가정생활 개혁이다. 선진국의 앞서나가는 것은 재빨리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진보요 우리들의 생각이며 개혁인 것이며 이를 거부하는 것이야말로 두 분은 부정하고 싶겠지만 수구 반동이요, 변화를 거부하는 구 세대인 것이다. 나는 앞서가는 신세대로 살고 싶다. 그리고 자유롭고 싶다. 우선 남자 친구와 동거하기로 했으니 원룸 얻을 돈을 달라. 등록금 주는 셈치고 주시면 된다."
부부는 하루아침에 앞서가는 신세대 진보개혁주의 사상을 가진 딸에 의해 영락없는 보수 꼴통이 되고, 사랑하는 딸을 위해 이제나저제나 노심초사하며, 빛나는 딸의 미래와 더욱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 애써왔던 모든 노력들은 딸에게는 저주의 굿판이었던 것이다.    2004.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