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여행

중국 고대문화의 중심지 시안 답사기(2007)

청담(靑潭) 2009. 9. 1. 15:39

중국 고대문화의 중심지 시안 답사기(2007)


▣프롤로그

   금년 겨울방학은 좀 여유가 있다.  1학년이 보충수업을 하기에 교무차석인 양창호선생이 매일 학교에 나오니 인사문제가 있어도 그가 해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여행은 승수, 승원과 함께 온가족이 모두 함께 떠나는 여행으로 컨셉을 잡았다. 그러나 장소는 중국에서는 내가 아직 가 보지 못한 중요한 곳인 시안이다. 원래는 시안 - 정조우 - 은허 - 낙양 등을 묶는 역사문화답사를 원하였으나 이를 추진하는 여행사가 없어 부득이 시안-장가계-계림코스로 결정되었다. 승수는 안타깝게도 KBS 라디오 방송국에서 20일간 인턴근무를 하게 되어 참가하지 못하게 되었다. 

  구이린(계림)은 이미 둘이서는 2001년에 다녀온 바 있으나 우리 승원이에게 보여주기도하고 또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기에 다시 코스에 넣기로하였다. 원래 20일에 《인터파크 투어》로 529,000원에 가기로 예약 하였다가 갑자기 일자를 변경하기를 바라는 요청에 《투어 2000》으로 옮겨 499,000원에 가기로 하고 출발일이 10일로 급히 변경되었다. 내 호텔방 값으로 12만원을 추가로 지불하였다. 비자발급비 25,000원과 필수옵션(발 맛사지, 쑈관람비) 75,000원, 팁6만원등 모두 1,952,000원이 여행비로 결정되었다.


▣첫째날(1월 10일 수요일)

  아침 4시에 일어났다. 그리고 5시에 우리차로 출발하였다. 인터체인지에서 리무진을 타는데 우리차를 그 주유소에 놓기로 한 것이다. 차속에서 수다를 떨다가 하마터면 리무진을 놓칠 번하다. 6시에 출발한 리무진이 9시 10분에 공항에 도착하였다. 10시 30분에 《투어2000》직원과 일행 9명이 모였고 《온누리 여행사》팀 4명과 합쳐쳤다.

   일행은 우리부부외 열분이다..

  11시에 35번 게이트에 대기하였다가 드디어 1시 10분에 탑승하였지만 30분이나 연착하는 바람에 1시 40분에야 비행기가 이륙하였다. 비행기는 구이린에 4시 40분에 도착하였으니 시차를 적용하여 4시간이 걸린 셈이다.

  계림 가이드는 조련숙씨로 6학년 아들을 둔 40세의 여성으로 헤이룽장성 출신이다. 매우 성실하고 진실한 여성으로 보인다.

  계산호텔에 5시 30분에 도착하다. 1312호실에 들다. 부근 한국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몽환이 쑈》를 관람하였다. 6년전의 이 쑈는 소수민족의 문화를 보여주는 노래와 춤, 연극들로 꾸며진 멋진 무대였던데 반하여 오늘의 쑈는 첨단 전자 음향과 빛을 이용한 입체감 넘치는 무대에서 역동적인 발레를 가미한 써커스를 보여주었다.

  호텔이 추워서 승원이가 춥다하므로 그래도 좀 나은 내방과 바꾸어 잤다. 이들은 우리처럼 보일러를 팍팍 끓여서 따뜻하게 살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날(1월 11일 목요일)

  5시 30분에 기상하였다. 6시 30분에 내가 가장 좋아아하는 호텔식으로 아침을 먹는데 깔끔하고 맛깔스럽다. 7시에 이강으로 출발하다. 날이 매우 따뜻한데 오늘 영상 10도~15도 사이라고 한다. 아름다운 산이 즐비하여 뱃놀이를 하는 이강에 8시에 도착하니 전보다는 크게 발전한 모습이 역력하다. 1시간 동안 이강을 유람하고 9시에는 관암동굴에 들어가 답사하였다. 그 안에서 배를 타고 나와 즐거운 모노

레일을 타다. 10시 30분에 이강을 출발하여 11시 30분에 계림에 와서 현지식 식사를 하다. 일행들이 서로 인사를 하고 술을 나누었다,. 즐거운 분위기에서 식사를 마치고 12시40분에 요산으로 출발하였다. 리프트를 타고 요산에 오르니 경관이 정말 아름답다. 양순옥이 가진 복파산등이 코스에서 빠지고 이곳 요산에 왔는데 아름다운 계림의 산들이 장관이다. 이미 도착할 때 다행히 하늘의 비행기에서 계림의 산들을 실감나게 본 바 있지만 다시 보아도 너무나 멋진 신비로운 산 모습이요, 그냥 동양화 그 자체이다.

  오후에는 차 판매점에 들르고는 상비산에서 들려 쉬다가 죽엽주 2병을 곁들인 품격있는 저녁식사 후 6시 30분에 버스로 유주로 출발하다. 9시에 유주에 도착하였는데 고급스런 1등대합실에서 안락의자에 앉아 기다리니 한국인들 정말 대단하다. 중국인은 거의없고 한국인들이 특실에서 우글거리니 현지인들이 이를 보면서 한국인들의 경제를 부러워하겠지만 거침없이 연 9%의 경제성장을 달성하며 떠오르는 중국을 금방 무서워하게 되지 않겠나?

  이곳 광서장족자치주는 원래 광서성으로 유주는 그 성도였으나 한때 구이린이 성도인적이 있는가하면 이젠 남영시가 성도라하나 유주는 정말 역사깊은 곳인데 답사는 전혀하지 못하고 겨우 저녁의 시내모습만 보고 떠나려니 서운하기 그지 없다. 10시 50분에 유주를 출발하였다. 4인 일실의 열차인데 나는 외톨이이므로 함께 움직이는 《하나 투어》의 모녀 및 사위와 함께 한 실에 들어 조금 불편한 잠을 자게 되었다.

  핸드폰을 사용할 수 있도록 신청하였는데 방법은 다음과 같다.

      0082-63-546-6941

      0082-19-406-2062

신홍규 교수가 연수나온 학생들을 데리고가기 위해 산동성에 왔기에 전화하였으나 받지 않았다.

 

 

  

▣셋째날(1월 12일 목요일)


  내가 술을 먹고 잠을 자면 코를 심하게 곤다 하는데 열차안에서 다른 식구들과 잠을 자면서 심하게 코를 골게 되면 그 원망이 얼마타 클까를 생각하니 제대로 잠을 잘수가 없다. 새벽에 모녀가 나누는 소리를 들었다.

ꡒ엄마, 내가 아니라 저 아저씨가 고는 소리라니까...ꡓ

ꡒ아니야, 저 아저씨인줄 알았더니 정작 코고는 것은 너더라니까 그러네...ꡓ

다행이다. 내가 아니어서... 아무튼 코를 골지않기 위해서 입으로 숨을 쉬며 자느라고 꽤나 힘들었다. 우리가 탄 차량은 일찍 석탄불 때는 것을 중단했는지 새벽에는 매우 추웠는데 옆 차량은 8시까지도 석탄불이 타고있으며 차량안이 매우 따뜻하다. 연 이틀이나 춥게 자서인지 몸이 개운치 않다.

  10시 50분께 호남성 장가계에 도착하다. 호남성의 성도는 장사이며 동정호의아래에 있다하여 호남성이다. 우리의 호남도 익산의 황등제와 김제의 벽골제와 정읍의 눌제 아래에 있다 하여 호남이라 명명한 것도 기실 따져보면 명확한 근거도 없이 그저 중국의 호남성 이름을 본 따온 것에 지나지 않는다. 호서지방이 세 호수의서쪽이 아님에서 알 수있다. 정확하게 무려 12시간이나 걸렸다. 장가계 가이드는 홍승규(24세)로 미남이며 매우 똑똑한 청년이다. 열차안에서 먹으라고 준 도시락은 먹지 우리 셋만 먹지 않았는데 거지에게라도 줄까했지만 마땅히 줄데가 없어 버렸다. 11시 30분에 아주 맛있는 현지식 식사를 하고 원가계로 출발하였다. 왕복하는데 무려 버스를 7번이나 갈아 타는 불편을 주는데 관광객들에 대한 편의성은 제쳐

두고 그들만의 지역권을 행사하기 때문이라 한다.

 

 

 

  눈이 많이 와서 는길인며 춥기까지 해서 우리 승원이가 입이 부르트고 춥다하며 고생이 불평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백룡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천하제일교, 미혼대를 만나며 입이 벌어지게 아름다운 절경에 감탄하면서 눈과 안개속에 한시간여를 걸어가면서 관람하였다. 높이가 수백미터나 되는 곳에 어쩌면 길을 이리도 튼튼하게 잘 내어 관광객들을 즐겁게 하는지 저 중국인들이 토목건축실력에 감복하면서도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인지라 승원이와 양선생을 끌어 당기며 안전을 유지하느라 애를 (?) 먹었다. 실로 중국제일의 절경이라하는데 손색이 없다. 북경의 용경협에 비하면 더욱 웅장하고 계림의 부드럽고 아기자기한 산수에 비하면 아찔하고 정신이 어지러운 풍경이다. 이게 바로 원가계라는 곳이다.

  십리화랑에 가서 모노레일을 타고 아래서 보는 원가계를 관람하다.

5시 30분에 원가계 시내에 도착하여 한중식을 겸하나 저녁을 먹었는데 맛이 없도다. 금천관광호텔에 투숙하여 방으로 직접 세수대야를 들고 찾아온 23살의 토가족 여성으로부터 발맛사지와 전신맛사지를 모두 한꺼번에 받았는데 대단히 열심히 땀을 쏟으며 해주어서 5달러를 더하여 10달러를 팁으로 주었더니 5달러 더받은 것이 알려지면 제 목이 달아난다며 발설치 말 것을 신신당부한다. 우리 승원이와 나이가 같은데 명랑하고 열심히 사는 여성이다.

 

▣넷째날(1월 13일 토요일)

  6시 10분에 기상하였다. 모닝콜이 없어 모두들 곤란했던 것으로 한 교수댁은 아침 식사도 제대로 못하시었다. 아주 갈끔하고 따뜻한 호텔에서 자서인지 양선생과 승원이도 유쾌하다. 승원이의 입술이 부르튼 것도 매우 좋아졌다. 계림의 가이드에게 부탁하여 연고를 샀는데 효과가 있는 것이다. 시간이 없어 가이드가 자기 친구까지 동원시켜 사주기에 사양하는데도 10달러를 주었다. 아마 약값은 천원이 안되었겟지만 너무 고마워서 인사를 한 것이다.

  어제의 코스로 이동하여 금편계곡을 관람하였다. 1시간 동안 계곡을 따라 걸으면서 운동하는 코스인데 참으로 절경이다.

          

        

 

  12시에 원가계로 돌아와 한국식당에서 김치맛이 일품인 한식으로 맛있게 식사하고 용왕동굴에 가다. 아주 관광하기에 편안하게 잘 가꾸어진 동굴인데 미혼대길 보다 더 넓고 편안한 길을 동굴안에 잘도 냈다.

  가이도가 시간을 핑계로 천자산을 빼 먹었다. 가이드 진행에 따라 움직이다 보니  일행중 누구도 미처 챙기지 못하고 말았기에 크게 탓하지 못했는데 다른 팀들은 아주 잘 다녀왔다하니 홍가이드의 파렴치함과 돈에 대한 집착이 지나치다.

  멧돼지 고기로 저녁식사를 마치고 7시 30분에 이곳 원가계에 있는 공항에 도착하다. 10시 40분에 로딩하여 11시 5분에 이륙하였다. 섬서성 시안의 외곽에 있는 함양공항에 12시 20분에 도착하였다. 가이드는 김용걸씨인데 아주순박한 인상의청년이다. 함양이라면 진나라의 수도인 곳이다. 이 곳은 생각과는 달리 평야부인데 수많은 무덤이 있다 한다. 73명의 황제중 72개의 무덤이 있는데 하나는 고종과 측천무후가 함께 묻혔기 때문이라 하였다. 연중 강수량이 600mm 밖에 되지 않아 논은 없고 모두 밀농사이며 밀가루가 주식이라하니 진나라 시황이나 한나라 무제도 모두 밀가루 음식만 먹고 살았구나. 서안호텔에 도착하여 2시가 되어 잠이 들었다.

  중국의 역대 수도는 다음과 같다.

수도

이름

현 이름

나라

수도

기간

1

은허

안양

(BC1600-BC11)나라 후기

300

2

장안

시안(서안)

□서주(BC11세기-BC770) : 호경

(BC220-BC206) : 함양(센양)

전한(BC202-AD8) 수(581-618) (618-907) : 장안

1077

3

낙양

뤄양

□동주(BC770-BC221)

후한(26-220)

□북위(386-534)

885

4

개봉

카이펑

북송(960-1127)

366

5

건강

난징(남경)

남조 : 동진-송-제-양-진(317-589)

※오나라는 건업

□명 초기(1368-1402)

중화민국(1927-49)

450

6

임안

항저우(항주)

□남송(1127-1279)

□5대십국중 오월(907-978)

310

7

대도

베이징(북경)

□금(1115-1234) 후반기 연경이라 부르다가 중도라 함

□원(1206-1368)

□명 후반기(1402-1644)

□청(1616-1912)

□중화인민공화국(1949-현재)

903

■기타

: 은허의 주변에 있는데 위진남북조시대 동위 및 북제(6C)

선양 : 청 초기(1625-44) 만주국 수도(봉천 : 1932-45)

상경임황부 : 거란(요)의 수도(916-1125) 요령성 요하 상류지역, 지금의 내몽골자치구 츠펑부근



▣다섯째 날(1월 14일 일요일)


  7시에 일어났다. 8시에 뷔페로 밥을 먹으니 역시 시안이라서인지 식사도 수준급이어서 아주 마음에 든다. 9시에 출발하여 처음 비림에 가다. 장안성은 당나라 성이 아니고 명나라초기에 쌓은 성인데 규모가 웅장하다. 둘레가 12km이며 시내 중심부가 이곳이다. 남쪽문으로 들어가니 문묘가 있고 좀 더가면 비림이 있다. 이지방에 산재해 있던 비문을 모아둔 곳인데 규모가 대단하고 비석의 크기들도 웅장하다. 국보급 비석에서 탁본을 뜨고 있음을 볼 수있는데 아마 팔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시안은 문화재가 거의없다고 한다. 성내의 문화재들은 오랜 전쟁으로 남아있는 것들이 거의 없다는 말이다. 현지식으로 점심을 마치고 이제 가장 관심사이던 화청지 및 진시황릉과 병마용갱으로 향한다.

  화청지는 당 현종과 양귀비의 별궁인데 요산아래 온천이 있는곳을 택하여 지어진 별궁이다. 화려한 온천이 복원되어 있다.

   

 


  진시황릉은 생각했던 것보다 규모가 크진 않다. 여산이 보이는 곳에 있으며 그 줄기인 작은 산이다. 산은 석류과수원으로 되어 있어 이채롭다. 진시황릉입구에는 이곳에서 출토된 당시의 기와며 하수도관등 많은 유물들이 그저 허술히 전시되어 있는데 누구 훔쳐가는 이들이 없을까 괜한 걱정이 들며 그들의 대국적 기질이 아닌가 싶다. 입구광장에서는 진시황에게 제사지내는 모습을 재현하는 행사가 있어 구경하였다.

 

 

  

  병마용갱이다. 입구에서부터 전시관까지 무려 10분은 걷게 만들었는데 아마도 병마용갱의 장엄성과 위대성을 부각시키려는 의도에서 일부러 그리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모두 3개의 전시관으로 이루어졌으며 제3전시관은 너무 많이 파괴되었으나 그 웅장한 갱과 그 수많은 인물들의 조각상이 너무나 위대한데 그 것은 당시 백성들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진 것이어늘 과연 누구를 위한 피와 땀이던고? 이 병마용 갱의 모습은 좌군 중군 우군의 출병식 장명을 재현한 것이라고 한다. 그 수많은 인물들의 얼굴표정이나 말들의 동작의 생생함을 보노라면 그 예술적 기능에 탄복하지 아니할 수없다.

   김호길 선생이 청소년적십자사 학생들과 황산에 오는 날이기에 전화하여 보았으나 역시 통화가 되지 않다. 저녁식사는 한국식으로 삼겹살, 된장찌개, 김치볶음으로 하였는데 먹을 만 하다. 전날 우리팀의 일부 방이 무링 잘 빠지지 않는다 하여 우리도 덩달아 9층으로 옮겼는데 6층보다 좋아서 바꾸길 잘했다.

 

 

 

 

▣여섯째 날(1월 15일 화요일)

  아침을 먹고 9시에 대안탑에 갔다. 이곳은 대안사인데 중앙에 대안탑이 있고 7층의 전탑이다. 시안에는 당나라시대의 유적이 거의 없다 하고 소안탑은 우리 호텔방에서 보이기에 아침에 사진을 미리 찍어 두었다.

  다시 성안으로 들어가면서 명대성을 유심히 살펴보고 사진을 많이 찍었는데 그성벽이 높고 크며 벽돌로 대단히 견고하게 쌓은 성으로 지금도 성안이 시내의 중심부인 듯이 보인다. 성안으로 들어가서 소수민족 회족거리를 지나 명시대의 귀족민가인 고부를 구경하였는데 그 오밀조밀하고 아기자기하며 합리적이고 편리한 구조와 우리 양반가 주택의 밋밋함과 불편성과 쓸쓸함함에 대하여 다시 생각을 하게 해 주었다.  

  점심을 먹고 비행장으로 향했다. 4시 반쯤 출발하여 8시 15분에 도착하고 시계를 맞추니 9시 15분이다. 거의 3시간 40분이 걸린 듯하다. 9시 30분에 공항버스를 타고 집에 도착하니 한시가 되었다.

    

 


▣에필로그

  시안이 주목적인 여행이며 생각보다 값싸게 다녀왔다. 승수와함께 처음이나 어쩌면 마지막으로 우리 넷이서 하는 해외여행을 하고 하고 싶었는데 성공(?)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고 우리 승원이가 감기가 들고 입이 부르터서 고생하고 다녀서 승원이가 즐거운 여행이 되지 못하여 아쉽다. 이제 중국은 잠시 미루고 금년 여름에는 결혼 25주년 기념 유럽여행을 다녀오기로 하였으니 꼭 실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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