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여행

서천·보령·부여 여행(2005)

청담(靑潭) 2009. 9. 1. 17:35


서천․보령․부여 여행

(2학년 담임교사 여행안내)


◉일시 : 2005. 2. 4~5

           

◉여행 경로

 

▣4일(P․M)

 1 : 30 전주 출발

 3 : 00 금강 하구둑  ▶ 마량포 동백정 도착

 4 : 00 춘장대 해수욕장  ▶ 부사 방조제 도착(조개구이)

 5 : 30 대천 해수욕장 도착

 

▣5일(A․M)

 9 : 00 대천 출발

 9 : 30 성주사지 도착

10 : 00 석탄박물관 도착

11 : 00 무량사 도착

12 : 00 무량사 출발


▣서천 마량포구 동백정

 충남 서천군 서면 마량리 동백정. 수평선에 구름이 살짝 내려앉아 있다. 푸른 하늘이 서서히 붉은 색으로 물들어 간다. 오후 5시10분. 태양은 힘을 잃어 가지만 맨눈으로 보기에는 아직도 눈부시다. 된바람이 불어 바다가 출렁거린다.

파도가 동백정 앞에 떠있는 오력도를 할퀸다. 작은 배로 5분이면 닿는 저 작은 무인도는 사진작가들의 누드 촬영 장소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섬 자체가 비경을 간직한 곳은 아니지만 뭍에서 가까우면서도 사람들의 시선이 가려지는 곳이기 때문이리라.  20분쯤 지났을까. 하늘을 온통 붉게 물들인 해가 수평선으로 잠겼다. 해무를 동반한 구름이 힘 빠진 해를 빠르게 집어삼켰다. 바다는 검붉은 색으로 변하고, 뭍은 하나둘씩 켜지는 수은등과 함께 어둠을 맞았다.


♣겨울 견디는 붉은 정열

 천연기념물 지정 마량리 동백꽃  이곳의 동백꽃은 다른 곳과 달리 키가 크지 않다. 강한 바람 탓이다. 군락을 이루는 동백꽃은 저마다 옆으로 퍼져 둥그렇게 숲을 이루고 있다. 또 다른 특징은 동백꽃 숲 속에 조그만 공간이 있다는 점. 3~4명이 앉을 수 있는 이곳에 들어가면 파도소리도 들리지 않고 조용하다. 이곳에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전설도 내려온다. 이 때문인지 청춘 남녀들이 이 숲 속에 많이 들어간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마량리 동백꽃은 성장이 더디다. 서천군청이 10여년 전에 꽃씨를 받아 산책로 주변에 심었지만 겨우 어른 무릎 정도밖에 자라지 않아 일반인들은 이 나무가 동백꽃인 줄도 모를 정도다.

동백꽃이 만개하는 시기는 3월부터 4월까지. 이곳 동백은 빨간 꽃 속에 노란 수술이 바로 보이는 홑동백이어서 만개할 때 다른 지역 동백보다 아름답다고 한다.

이 시기 서천군은 주꾸미 축제도 벌여 관광객들을 유혹한다. 서천군청 이선구 문화관광계장은 ꡒ이곳 동백은 수술이 안 보이고 꽃잎만 보이는 다른 지역의 곁동백과 달리 홑꽃인 토종ꡓ이라며 ꡒ만개할 때 선홍빛이 더욱 아름답다ꡓ고 말했다.


▣부사 방조제

 

▣대천해수욕장

 끝없이 이어진 하얀 백사장, 파아란 바다, 수평선너머 점점이 떠 있는 작고 큰 섬들, 원색의 수영복 물결, 햇살을 가릴 만한 넉넉한 솔숲, 수평선 너머 아득히 떨어지는 낙조....

대천해수욕장은 젊음과 낭만, 안락함과 자연미가 함께 어우러져 있는 곳이다. 젊은 연인들에게는 추억 만들기의 장소로서, 또 가족 단위의 휴식처로서, 해양스포츠의 메카로서 제반 요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이런 이유로 대천 해수욕장에는 한해 1천만명에 육박하는 외지인의 발길이 끊이지 않으며, 서해안 최고의 휴양지이자 국제적 관광명소로 자리 매김을 하고 있다.

 먼저 규모면에서 백사장의 길이가 3.5km 폭100m에 달하는 대형이다. 백사장 남쪽에 기암괴석이 잘 발달되어 있어 비경을 연출하고 있으며, 수온 역시 적당하여 기분좋은 해수욕을 즐길 수 있다. 대천해수욕장의 모래질은 동양에서 유일한 패각분으로 조개껍질이 오랜 세월을 지나는 동안 잘게 부서져 모래로 변모한 것이다. 규사로 된 백사장이 몸에 달라붙는 점에 비해 패각분은 부드러우면서 물에 잘 씻기는 장점을 갖고 있다.


▣보령 성주사지

 신라 말기 구산선문 중 하나로 이름 높았던 곳으로 아주 번성했던 사찰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성주사는 백제 법왕에 의해 오합사(烏合寺)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다.  법왕이 왕자일때  삼국전쟁으로 희생된 이들의 영혼을 위령하는 뜻으로 세웠다고 한다.  성주사로 개명된 것은 통일신라 말이다. 성인이 거하는 절이라는 뜻인데,  성인은 신라 말기의 명무염국사를 일컫는다.  무염국사가 성주사의 주지로 있을 당시 성주사는 불전 80칸, 수각 7칸, 고사 50여 칸 등 천여 칸에 이르는 큰 규모였다. 이때 성주사에서 정진하는 수도승만 2,000여명에 달했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백제 시대에서부터 조선 초기에 이르는 역사 유물이 발굴되고 있다. 사적 307호로 지정된 성주사지에는 현재 국보 8호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  보물19호 오층석탑, 보물20호 중앙삼층석탑, 보물47호 서삼층석탑, 지방문화재인 동삼층석탑과 석계단과 석등이 있다. 그 간 발굴 조사에 의해 금당지, 삼천불전지, 회랑지, 중문지 등의 건물터가 드러났다. 절터 서북쪽에는 제법 멋을 부려 세운 전각이 있는데, 그 안에 부도비가 있다. 무염국사 입적 두해 뒤에 세운 부도비로 신라의 대문장가 고운 최치원 선생이 글을 짓고  그의 조카 최인연이 글씨를 썼다. 낭혜는 무염국사의 시호이며, 신라 태종 무열왕의 8대손으로 어린 나이에 출가했다. 열세살의 나이에 입문한 낭혜는 21세에 당나라로 유학길을 떠나 그곳에서 선종을 익혔다.  귀국하여 성주사의 주지가 되어 신라의 선종을 크게 융성시킨 낭혜는 88세의 나이로 입적하였으며, 진성여왕이 낭혜를 기리기 위해 시호와 함께 부도비를 세우게 되었다. 이 부도비는 전해오는 신라의 부도비 중에서 가장 큰 규모이다. 높이 4.5미터, 폭1.5미터, 두께42센티미터로 거의 원형모습을 잃지 않고 있다. 또한 비신을 받치고 있는 귀부 역시 조각이 화려하고 뚜렷하여 신라 부도비 중 최고의 걸작으로 꼽힌다. 비신의 재질은 성주산이 주산지인 남포오석이다. 재질이 강하고 아름다워 세월이 지날 수록 더욱 빛을 발한다는 남포 오석의 비신에는 5천여자의 비문이 기록되어 있다. 심연동 계곡을 등지고 성주사지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5층석탑이다. 오층석탑 뒤편에 세기의 석탑이 어깨를 나란히 서있다. 모두 삼층석탑으로 신라 하대의 것으로 짐작된다. 성주사지는 자녀들과 둘러보기에 더욱 좋은 곳이다. 성주산 휴양림과 석탄박물관, 심원동계곡 등의 관광 명소가 성주사지 가까운 곳이 있어 함께 둘러볼 수 있다.

 

주요문화재 : 성주사지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국보8호)

             성주사지 5층석탑(보물 19호), 성주사지 중앙삼층석탑(보물20호)

             성주사지 서 삼층석탑(보물 47호), 성주사지 동 삼층석탑(도지정

             유형문화재 26호), 성주사지 석등(도지정 유형문화재 33호),

             성주사지 석계단(문화재 자료 140호)



▣부여 무량사

 신라시대에 창건하였고, 여러 차례 중수(重修)하였으나 자세한 연대는 알 수 없다. 주위의 산림(山林)이 울창하여 거찰(巨刹)의 면목을 유지하고 있는데, 보물 제356호로 지정된 극락전은 드물게 보는 2층 불전(佛殿)으로 내부는 상 ․하층의 구분이 없는 조선 중기의 건물로서, 당시의 목조 건축술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극락전 내에는 거대한 좌불(坐佛)이 안치되었는데 중앙의 아미타불(阿彌陀佛)은 좌고(坐高)가 16자, 가슴둘레 24자이며 좌우의 관세음(觀世音)과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은 각 좌고가 16자에 가슴둘레가 18자이다. 또한 여기에는 석가불화(釋迦佛畵)가 있는데 길이 45자 8치, 폭이 25자 2치나 되는 조선 인조 때의 불화로 기구(機構)가 장대(壯大)하며 묘법(描法)도 뛰어나고 채색도 선명하다.

 이 밖에도 경내에는 보물 제185호로 지정된 5층석탑, 보물 제233호인 석등, 지방문화재인 당간지주(幢竿支柱), 김시습 부도(金時習浮屠) 등이 있다. 이 절은 또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인 매월당(梅月堂) 김시습이 세상을 피해 있다가 죽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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