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암사(花巖寺)와 안심사(安心寺)를 다녀와서
차 례
Ⅰ.화암사
Ⅱ.안심사
제 57차 월례발표는 이택회 회원께서 인도 문화와 불교라는 주제로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인도의 문화 및 사회상을 자못 실감 있고 흥미 있게 해 주셨다. 화원 세계여행 김광천 사장
님의 특별배려로 출고한 지 보름밖에 되지 않았다는 최신형 관광버스에 오르니 창 밖의 폭
염이 무색하다.
출발하자마자 회장님께서 미처 타시지 않았음을 발견했으나 그 무겁고 느리신 몸을 이끌고
뛰실 것을 걱정해서인지 저 멀리서 손을 흔드시는 것을 보고서도 기사는 제자리로 가기 위
해 시내를 돌기 시작하고 이를 모르시는 회장님은 택시로 뒤를 쫓는 대추격전이 있은 뒤 웃
음꽃을 피우며 목적지로 향하였다.
Ⅰ. 花巖寺
우리 한국의 산하가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으나 나는 우리 고장의 산을 특히 사랑한다. 저
가난에 찌든 듯한 충청도 서해안의 산들이나 색깔 없는 여자처럼 매력을 찾을 수 없는 경상
도의 산들에 비해 우리 고장의 산들은 어쩌면 저리도 넉넉하고 포근한지! 이런 내 주장에
동조해주는 이 드물어 가끔 실망하곤 하나 일전에 중앙의 어느 TV에서 전주-남원간 도로
주변의 아름다움을 극찬하는 것을 보고 크게 흐뭇해한 일이 있다. 지리산의 장엄함이나 설
악산의 명쾌함은 아니지만 엄마의 품처럼 아늑하고 푸근함을 주는 곳이 바로 대아리이다.
나는 시시 때때 마음 내키는 대로 대아리를 찾거니와 우리 아이들이 “엄마 아빠는 산은
대아리밖에 모르세요?”하고 놀려대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봄이 되어 잡목들의 새싹이 돋아
나면 이어 산 벚꽃이 온 산을 뒤덮는 듯 하며 이름 모를 아름다운 모양의 꽃들이 피기 시작
한다. 더군다나 금년처럼 호수에 물이 가득하면 짙푸른 녹음과 어우러진 아름다움은 그 어
느 호수에서도 찾을 수 없다. 특히 망망대해에 외로이 떠 있는 작은 섬처럼 넓은 평야 속에
놓여 있어 숲과 물이 그리운 우리 익산 시민들에게 대아리는 참으로 천혜의 선물이다 화암
사는 대아리를 빛내주는 큰 자랑거리이다. 이제는 조금 달라졌다 해도 우리 양선생과 소근
대며 오를라치면 우리의 마음이 너무도 순수해지고 평화로움을 느낀다. 많은 이들에게 화엄
사 아닌 화암사를 많이 자랑하였다. 화암사 중창비에 의하면 이 절은 통일신라 문무왕때 창
건된 것으로 추측되고 원효와 의상이 머물기도 했다고 한다. 비록 작은 절이지만 불명산 시
루봉 중턱에 포근히 자리잡은 화암사는 아직은 속세의 때가 덜 탔기에 우리 모두가 좋아하
는 것이리라.
15분쯤 가벼운 등산으로 절에 들어서면 보물 662호인 우화루(雨花樓)가 맞이한다. 광해군 3
년(1611년) 에 지어진 것으로 정면은 누문 형식이나 후문은 단층건물로 된 반 누각식 건물
로써 지형을 잘 이용하여 지어진 마치 시골 고향의 모정처럼 정감 있는 건물이다.
극락전은 보물 663호로서 선조 38년(1605년)에 지어졌으며 금산사의 미륵전(국보 26호) 개
암사의 대웅전(보물 292호) 내소사의 대웅보전(보물 291호) 선운사의 대웅전(보물 290호) 위
봉사의 보광명전(보물 608호)과 더불어 한국 사원건축사에 대단히 소중한 가치를 지닌 자랑
거리이다. 이 작은 법당은 이제는 거의 단절된 중국 남조 및 백제계의 공포양식인 하앙식
(下仰式)건물로써 우리 나라에서 유일하다. 즉 공포 뒤에 하앙이 경사로 얹혀져 외부에서는
처마의 하중을 받고 내부에서는 지붕하중을 눌러주게 되어 있어 처마 하중이 공포에 주는
영향을 격감시켰다. 또 보통 다포집 출목과는 달라 三出目째는 멀찍이 떨어져 있으며 순간
판으로 가리고 판에 비천상을 그려 장엄하다. 이 화암사는 산도 작고 길도 작고 폭포도 작
고 절도 작아 그 조촐함이 우리가 그를 사랑하게 함이니 새로이 단청을 하고 새 건물도 짓
고 단체 관광객이 떼로 몰려오고 입장료를 받는 일들일랑은 생각하기조차 섬뜩하다.
Ⅱ. 安心寺
운주면의 안심사는 처음이다. 병풍처럼 드리워진 대둔산자락의 뒤편에 서쪽을 향해 들어앉
아 있다. 안심사비에 의하면 자장율사가 638년에 세웠다 하며 그 뒤 네 번에 걸쳐 재 창건
되었다 하니 이제 수년 전부터 일주문이 세워지고 寂光殿이 지어졌으며 축대를 쌓아 사찰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음을 보니 여섯 번째 創建이라 할까?
한데 아무래도 정돈된 모습이 보이지 않고 매우 산란한 모습이 안타깝다. 대웅전이 있던
자리는 주춧돌이 원형대로 잘 보존되어 있는데 전면 5칸 측면 3칸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그 옆에 세워진 적광전보다는 약간 크지 않았나 생각된다. 충북 청원군에 있는 같은 이름의
안심사 대웅전이 보물 664호로 지정되어 있고 조금 전에 보고 온 화암사 극락전이 보물 688
호이니 이 글을 적으며 조금은 혼란스럽다. 이 대웅전은 6 25 사변 때 30여 채의 건물과
함께 불타버린 것을… 대웅전 좌측상단에 부도전이 원형 그대로의 모습으로 잘 남아있다.
부도전 중앙에 상당히 큰 종 모양의 부도를 중심으로 4면의 귀퉁이에는 부도를 향해 4개의
將軍 護身石이 있어 특이하다.
이 부도전은 1759년에 세워졌으며 그동안 안심사에 전해 내려오던 부처님의 치아 1개와 10
여개의 진신사리를 모셨다는데 어느 귀신이 감히 부처님의 치아와 육신의 결정체인 사리를
감히 범접하여 훼손할까 두려워 장군 호신석을 세운 것도 재미있거니와 네 개의 호신석중
뒷면 우측의 호신석은 장군복에 칼을 짚고 있으나 얼굴은 마치 시골 농부처럼 순박한 형상
이요 좌측은 졸렬한 병졸모습 그대로여서 가련하다. 후일 주역과 풍수를 공부하는 친구와
안심사에 대해 얘기하면서 대웅전과 적광전의 위치가 상호 불균형이며 잡다한 부속 건물로
옛 큰 사찰의 모습을 재현하기에 적합치 않은 방향으로 중창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데에 의
견의 일치를 보았다. 그는 또 절의 방향과 산세가 잘 어우러지지 못하고 있으며 적광전 아
래에 무려 시간당 10-15톤의 물이 흐르는 수맥이 있다며 다시 허물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안심사에서 내려와 마을 노인회관 앞에서 맥주를 권하며 더위와 피로를 식히고 귀로에 이
르니 또 회식이 기다린다. 회장님이 권하시는 양주 몇 잔에 기분이 좋다. 오늘의 유익하고
즐거운 답사를 위해 애써주신 회장님 이하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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