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안들며 꾸는 사치스런 꿈
내가 사는 익산으로부터 불과 삼 십리 떨어진 내 고향 김제 백산 돌제마을에 이미 2002년도부터 나의 은퇴 후에 노작활동을 하면서 소일하기 위한 300여 평의 작은 과수원을 준비하고, 재작년인 2008년에는 400여 평의 밭에 김대수 친구의 자문을 받아 500여 그루의 소나무 묘목을 심었다.
과수원에는 복분자, 감나무, 대추나무, 무화과나무, 호두나무, 보리밥나무, 매실나무, 오얏(자두)나무, 앵두나무 등을 심어 이제 모든 나무들이 하늘로 높이 솟아있다. 처음부터 수입을 위한 과수원이 아니라 봄이 되면 꽃을 보고 열매가 열리면 따먹기 위해 사치스런 마음으로 시작한 과수원이므로 열매를 많이 수확하는 방식으로 키우지 않고 무조건 높이 키워서 과수원 밭을 내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도록 작정한 탓에 벌써부터 숲을 이루게 된 것이다.
소나무는 3년생 적송 400여 그루와 2년생 반송 80여 그루를 사다 심었다. 심을 때는 적송의 키가 겨우 20㎝정도요, 반송은 부피가 주먹만 하였더니만 겨우 2년 만에 적송은 내 키만큼이나 컸고, 반송은 제법 모양새를 갖추어 정원에 심을 만 하다. 팔아서 이익을 보고자 함이 아니요, 아직 키우는 기술은 눈꼽만큼도 없으면서 그저 아름다운 소나무로 가꾸고 싶은 욕심만 크다.
아버지와 나와 나의 동생들이 태어나고 살아온 20평 시골집을 헐고 그 자리에 7평짜리 하얀 목조집을 짓고 옆에는 10평의 지붕 얹은 데크를 만들어 생활공간을 확보한 다음, 돈을 별로 들이지 않고 정원은 내손으로 가꾸고자하는 내 생가 터가 있고, 대문 앞에는 60평 채소밭이 있다.
일년 먹을 쌀 정도는 충분한 논이 남아있고, 300여 평 과수원과 400여 평 소나무 가든이 준비되니 이제 다른 욕심이 나기 시작하였다. 바로 동물(가축)을 기르고 싶은 욕심이다.
1980년대까지 우리 집에는 가축이 많았다. 어떤 때는 똥개, 토종닭, 염소, 오리, 칠면조, 토끼 등을 키워서 마치 동물농장을 방불케 하였다. 그러나 2000년도에 이미 퇴직하신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시내에서 사시고 싶다시며 김제시내 아파트로 거처를 옮기시고 난 이후에는 반 빈집이 되었다. 두 분이서 봄부터 가을까지 거의 매일 시골집에 오셔서 채소와 콩이나 참깨농사 등을 지으시므로 집은 잘 보존되고 있으나 동물이라고는 몰래 살거나 찾아오는 도둑고양이가 고작이었다.
3주전에 익산장날 북부시장에 가서 무조건 똥개 두 마리, 토종닭 여덟 마리, 칠면조 다섯 마리, 토끼 세 마리를 샀다. 파장이라서 장터에는 똥개가 겨우 세 마리 남아있었는데 사람을 잘 따르지 않는 개를 제외하고 무조건 사버렸다. 곧 김호길 선생이 좋은 풍산개나 진도개를 얻어 준다고 하였지만 한시라도 빨리 키우고 싶어 무시하였다. 토종닭은 키운 지가 한달은 된 듯하고 칠면조는 20여일 남짓 큰 모양인데 장사꾼은 값도 제대로 물어보지 않고 무조건 사고보자는 나를 큰 떡으로 여기는 듯 한 마리에 만원씩 때려 친다. 토끼장사도 두 마리만 담으라 하였더니 ꡐ웬 떡이냐?ꡑ는 듯 늙은 토끼 세 마리를 가져가 달라한다. 토끼장사 하는 말이 재미있다.
ꡒ사장님 동물 꽤나 좋아하시나 봐요ꡓ그 사람 값도 잘 따지지 않고 사가는 손님은 어쩌면 토끼장사시작하고 처음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시골집이 비어 있고 아버지께서 이틀거리로 오시니 가축 몇 마리정도는 키울 만 하고 또한 아버지의 소일거리도 될 듯하여 욕심 난 김에 해치워 버린 것이다. 병아리들은 사온 모이를 주고 개들은 두 마리를 가까이 하여 우선 줄로 묶어 두었다. 두 마리 모두 순동이라 처음부터 잘 따르니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토끼들은 정원에 풀어 놓았더니 제멋대로 돌아다니며 사람도 두려워하지 않고 노는 모습이 한가하다. 장차 개 줄도 풀어서 모두들 함께 어울려 사는 모습을 보기 위함이다.
칠면조는 미처 챙기지 못해 물통에 빠지거나 기후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해서 세 마리가 죽었다. 토끼는 두 마리가 앞집으로 들락날락하여 앞집아주머니에게 여러 번 혼이 나더니 어디론가 가버리고 한 마리만 외롭게 남았다. 토끼도 장소에 집착하여 내 집으로 여기고 함께 어울려 살 것으로 여겼더니만 예상이 빗나갔다. 토끼는 우선은 포기다.
일주일에 겨우 두어 번(토요일, 일요일, 출장일) 찾아가는데도 멍멍이들(천둥이와 소리)은 주인을 벌써부터 잘 알고 잘도 따른다. 좋아서 거의 죽어가는 지경이다. 두 번째 주부터 내 손과 발에 입을 대고 냄새를 맡더니만 대문 앞에 다가가면 얼굴이 보이지 않는데도 이미 주인인줄 알고 짓지도 않고 반긴다. 아버지는 매우 흡족하신 듯 좋아하신다. 아버지가 개나 가축을 키우시고 싶어도
ꡒ돈이 안 되는 일을 왜 하려 하느냐?ꡓ는 어머니의 반대는 명약관화한 일이라서 엄두를 내실 수없었을 것이다. 집에 오실 때면 혼자서 심심하신데 아들이 짐승들을 사다 놓았으니 대단한 기쁨이신 듯 하다. 짐승 먹을 것은 내가 사다 놓을 터이니 밥 주시고 함께 놀아주시면 되는 일이요, 아버지 정신건강에 대단히 바람직하게 작용할 것이라 여겨진다.
그저께 일요일에 꽃밭 10여 평을 막아 닭들의 생활공간을 확보하였다. 이제 어린 10여 마리 병아리인데도 토방에 올라와 싸대는 똥이 장난 아니다. 똥치우기 싫어 후다닥 아버지와 함께 만들어 버렸다. 남은 토끼 한마리도 아버지가 대충 만튼 토기장과 함께 닭우리에 넣어버릴 생각이다.
최근까지는 가축은 정년퇴직한 후에 길러볼 생각이었으나 이제 생각을 고쳐 버렸다. 과수원에 메쉬 휀스를 치고 닭과 오리와 칠면조와 거위와 토끼 몇 마리씩 키워보려 한다. 우선 봄부터 가을까지만 키우기로 하며 겨울은 쉰다. 봄부터 기르는 닭과 오리 등은 일정하게 자라면 서서히 줄여서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마무리 한다. 토끼는 땅을 파고 플라스틱 관으로 된 집을 잘 마련해 주고 먹을 것을 쌓아두면 겨울도 가능하다. 우선 삵괭이 등 바깥 침입자들로부터 가축을 보호하기 위해 순찰을 돌아줄 영리한 개 두 마리를 구해야겠다. 강거희 선생과 김호길 선생이 구해 줄 수 있다하니 고맙다. 하지만 똥개 두 마리도 이미 영원한 나의 가족이니 언제까지나 함께 살고자 한다.
오늘 이 시간 매우 사치스럽고 재미있는 꿈을 꾸며 기분이 매우 즐겁다. 내가 꾸는 꿈은 돈이 별로 안드는 꿈일 뿐 만 아니라 꿈꾸는 것 자체는 원래부터 아예 공짜다. 내일은 6․2 지방선거일이다. 임시 공휴일이니 이따 자율학습이 끝나면 집에 간다. 벌써 10시가 다 되었다. 지금 출발하여 집에 가면 12시다. 블로그에 올리면 출발이다. 가자! 나의 집으로, 나의 양드리에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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