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사람들

할아버지 이문환(1903-1973)

청담(靑潭) 2010. 6. 28. 09:47

할아버지 芝山 이문환(1903-1973)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언제나 자랑스런 손자가 되지 못했던 나 자신이 부끄럽고 오직 죄송할 따름입니다. 하나뿐인 손자에게 거는 기대가 크셨음에도 나는 공부는 열심히 하지 아니하고 중학교와 고교시절을 그저 시골동네 형들과 놀기에 바빴고, 집안일을 돕는것은 매우 싫어해서 할아버지의 마음을 슬프게 해 드렸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닙니다. 

  겨울저녁이면 큰방 등잔불아래서 돋보기를 쓰신 할아버지는 앉으신 채 소리내어 책을 읽으시고 나는 엎드리어 책을 읽었습니다. 한학을 하시고 한약방을 경영하신 할아버지는 내게 중국고전을 인용하시며 많은 교훈을 주셨지만 나는 깨달음이 없이 그저 대중가요부르기와 연예인들에 대한 관심만 지나치게 컸습니다. 할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이 글을 적자니 자꾸만 눈물이 납니다.

  내가 중학교때 아버지께서 생리에 전혀 맞지않는 금융업을 하시다가 실패를 하시고는 우리가족 모두 곤경에 빠져 할아버니의 고생도 매우 크셨습니다. 다행이 아버지께서 초등학교 교사로 새 출발을 하시게 되어 큰 고생을 면하게 되셨습니다.

  제가 교사가 되는 것을 미처 보시지 못하시고  막내인 세희를 업고 뒷밭에 있는 축사에 가셨다가 오시자 마자 쓰러지셨고(뇌졸증) 나는 다행히 임종은 해드릴 수 있었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늦게나마 삶의 의미를 깨닫고 아름답고 바르게 살기위해 노력하는 손자의 모습을 저 세상에서 인자한 모습으로 미소를 띠우시며 지켜보고 계실 겁니다. 그리고 5년 전에 할아버지 곁으로 가신 할머니를 통해 열심히 살아가는 손자에 대해 많은 말씀도 들으셨으리라 여겨집니다. 할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이 글을 쓰자니 자꾸만 눈물이 나오고 여간 참으려해도 그치지 않으므로 우선 이것으로쓰기를 중단해야 하겠습니다. 

                                                                                                           2010.6.21

 

※내년 2월이면 내가 정년퇴임을 하게 됩니다. 아버지께서는 지금도 봄부터 가을까지는 거의 매일 시내 버스로 시골집에 다니시면서 텃밭을 가꾸시고 나는 매 주말이면 시골집을 찾아 채소를 뜯어오고 과일밭과소나무밭을 돌아봅니다. 내년에는 80년 된 시골집을 헐고 작고 예쁜 목조주택을 지을 계획입니다. 10평자리 작은 집과 넓은 데크, 옆에는 작은 창고, 토종닭과 거위등 조류를 기르는 예쁜 축사를 지으렵니다. 나의 별장이 될 것입니다. 별장의 이름은 芝山莊입니다. 할아버지를 존경하는 마음의 표현입니다. 어쩌면 할아버지께 진 빛을 갚기 위한 마음의 표현인지도 모릅니다. 나의 동생들이 가족과 함께 태어난 고향집을 마음 편하게 찾아 하룻밤씩 자고가는 집이 되도록 예쁘게 가꾸어야 할 것 같습니다. 나는 오전 아홉시면 이 지산장으로 출근하여 나를 죽어라고 잘 따르는 개와 토종 닭들과 함께 놀고, 잔디밭과 꽃들을 가꾸고, 과일나무를 손질하고, 소나무를 전지하고 채소밭을 가꿀 것입니다. 열두시면 반드시 집에 돌아오는 것을 원칙으로 정했습니다. 오후는 취미생활, 특기신장, 사회봉사활동을 하는 시간으로 정했기 때문입니다.   2014. 8. 25

 

※계획대로 1015년 여름 12평짜리(데크포함 18평)조립식 목조주택을 지었습니다. 시골집 별서 이름은 할아버지 호를 따서 <지산 쁠라스>인데 영어로<JISAN PLACE>라고 우리 가원선생이 아주 멋지게 벽면에 대문짝만하게 썼습니다. 방금 잠든지 두 시간만에(새벽 2시) 할아버지 꿈을 꾸고서 일어나 이 글을 씁니다.

할아버지께서 외출하시다 들어오시지 않고 안시암 근처에서 그냥 주무시겠다 하신다고 마을 분이 찾아와 알려줍니다. 여름이긴하지만 그래도 놀라서 아버지와 내가 우리 승원이와 함께 달려가보니 곧 죽음을 생각하시고 집 밖에서 운명하시겠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가까운 곳에는 이미 돌아가신 할머니께서 조용히 누워 계시기에 할머니 볼에 얼굴을 대드렸더니 눈물을 흘리십니다. 손자가 보고 싶었다고요. 할머니 보고 싶네요. 그리고 할아버지도요. 할머니의 뜨거운 손자사랑과 할아버지의 깊은 손자의 장래에 대한 기대에 부응하여 이 손자는 일흔이 된 지금까지 건강하고 너무나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작년에 아흔에 세상을 뜨셨지만 89세 아버지는 지금도 자식들(다섯 딸들)의 효도속에 잘 살아가고 계십니다. 우리 부부도 천성이 착하신 아버지께 살아계시는 동안 더 잘해드리겠습니다.       20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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