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사람들

이석영(1951-2012)

청담(靑潭) 2012. 8. 20. 21:36

 

석영형의 죽음을 도저히 실감하지 못한다

 

    6촌형 석영형이 지난 10일 이 세상을 떴다. 키 크고 잘 생기고 마음씨 좋은 형이 저 세상으로 영원히 갔다. 어제 정읍 입암시립묘지공원을 찾아 붉은 황토흙에 말라버린 잔디로 덮힌 봉분을 바라 보면서도 형의 죽음은 도대체 실감이 나질 않았다. 언제까지나 나와 함께 아주 늙어서까지 어쩌면 영원히 함께 살아갈 형으로만 여겨왔기 때문인지 형의 죽음은 전혀 내게 슬픔으로도 아픔으로도 다가오지 못하고 내 눈엔 눈물조차 보여지지 못했다. 이제 이 글을 쓰면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한다.

   그렇게 평생을 사랑하던 형을, 이제 예순 둘의 창창한 나이의 형을 졸지에 떠나보내는 형수님의 창자가 에이실 고통과 슬픔을 생각하니 나 역시 가슴이 에이고 목이 메이며 눈물이 앞을 가린다. 두 분은 중고교 시절 일찍 만나 서로 사랑하며 40여년을 함께 살아왔으나 아직 형의 죽음으로 서로 헤어지기엔 너무나 젊다. 형이 비록 먼저 다른 세상으로 가고 두 분이 몸은 비록 헤어지지만 사랑하는 마음만은 언제까지나 영원히 변함없을 것임을 나는 확실히 안다. 

 

 1969년 가을

   형은 우리의 고향인 김제군 백산면 상정리 784번지에서 나보다 16개월 먼저 태어났다. 나이차는 두 살이나 학교는 일년 차이가 된다. 원래 작은집과 우리집은 같은 지번이다. 같은 784번지인 까닭은 원래가 한 집이었던 때문이며 우리가 태어났을 때에는 대문이 마주보는 큰집과 작은집 사이였다. 나의 할아버지가 삼형제중 맏이시며 형은 가운데 할아버지의 손자이니 나와는 6촌간이로되 아버지가 무녀독남이요, 당숙역시 무녀독남이니 형과 나는 모두 사촌이 없는고로 사촌이라 생각하고 살아왔으며 어린시절 누군가가 둘이 무슨 관계냐?”고 물을라치면 우리 둘은 이심전심으로 이구동성으로 “사촌간!”이라고 즉시 대답하곤 했다. 구차스럽게 6촌지간임을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최근 형은 친동생 둘이 먼저 세상을 떠나는 아픔을 안고 살아왔다.

 

   형은 나보다 일년 먼저 같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니고 원광대학교를 졸업하였으니 20대까지는 늘 나와 함께 살아온 세월이었다. 나이 삼십을 전후로 나는 교직으로, 형은 정읍에서 터를 잡아 의료보험공단에서 근무하면서부터는 그저 한 해에 너댓번 정도 만나는 사이가 되었으나 형과 나 사이에 맺어진 정은 여전하였다. 어린 시절부터 나를 보호하고 아껴주며 내가 마음놓고 기댈 수 있었던 형은 천성이 착하여 남에게 싫은 소리, 모진소리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는 분이었다. 너무 착하기만 한 때문인지 삶이 순탄하거나 크게 성공적이라고 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건실한 직장인(지역의보 차장)으로, 지역 고교동창회 간부(총무)로 형수님의 절대적 사랑을 받으며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오셨다. 그리고 은퇴한 이후에도 계약직으로 근무하시다가 췌장암 진단을 받은 것이다.

   나 역시 은퇴가 얼마 남지 않았기에 은퇴후에는 자주 만나고 어린 시절처럼 정을 나누며 오래 오래 함께 할 것으로만 생각하다가 큰 병을 얻어 치료하시는 모습을 자주 찾아 뵙지 못했고 마지막 병문안시 형은 내게 아무 말씀도 없었는데 서운함이 매우 크셨던 것으로 여겨지니 실로 형에게 큰 죄를 지었다.

 

   살아있다는 것이 이렇게도 허망한 것인가? 삶과 죽음이 백지 한 장 차이, 아니 하나라더니 인물좋고 사람좋은 우리 형이 갑자기 이 세상에서 사라지니 허망하기 그지 없다. 친 형제 없는 내가 우리 친척중 가장 정신적으로 의지하고 자랑스럽고 믿고 따르던 형은 이제 가고 없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내가 의지하는 형으로 내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 계시라.  

 

 

◈내일이면 형이 세상을 뜬지 1년이 되는 날이다. 오늘 추도식이 있다는데 나는 일정상 오전에 입암 공원묘지에 다녀왔다. 앞으로는 넓은 입암저수지가 펼쳐져 있고, 외편으로는 호남고속도로가 이어지고, 오른편으로는 우뚝 입암산이, 그리고 뒤로는 장엄한 방장산이 버티고 있는 이 공원은 누가 보아도 명당이다. 형! 아름답게 잘 정비된 명당묘지공원에서 언제까지나 아픈마음 잊고 평안히 잘 계시오. 형을 우리 집안묘역에 모시지 아니했으나 나는 이왕 형수와 조카들이 정읍에 자리 잡아 살고 있으므로 오히려 잘된 선택이라고 본다. 적어도 돌아가신날에는 찾아 뵈어야 하고  오다 가다 기회가 닿으면 또 찾아 뵈련다. 보고 싶은 사람이기에....      2013. 8.9

 

 

◈마침 정읍에 문상가는 일이 생겨 형 묘소에 참배할 계획을 세웠다. 오늘은 마치 봄날처럼 아주 따뜻하다. 형이 말없이 잠들어 있다.  누구나 가는 길이라지만 형은 너무 빨리 갔다. 더구나 동생인 석상이와 정옥이를 먼저 보내는 아픔을 견디며 살아가다 본인마저 쉽게 가버린 것이다. 운명이다.                                                                                               2016.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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