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무상의료보험주장에 대한 대학생 포럼 성명

청담(靑潭) 2011. 1. 10. 09:27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동아일보(2011. 1. 7)칼럼인데 너무나 훌륭하고 공감하는 글이기에 게재해 두고자 한다.


 

강규형 (명지대 기록정보과학대학원 교수)


  요즘 인기 TV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을 맺어주는 책으로 언급돼 때 아닌 인기를 누리는 소설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다. 도지슨이란 영국 수학자가 루이스 캐럴이라는 필명으로 1865년 발표했고, 이후 디즈니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지면서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는 동화다. 앨리스라는 소녀가 꿈을 꾸다가 ‘이상한 나라’로 들어가 모험을 한다. 이 나라에는 반대되는 일들이 뒤죽박죽 얽혀 있는 비현실적인 패러독스와 부조리가 난무한다. 정신의학과에서는 형상이 왜곡돼 보이는 증상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증후군’이라고도 한다.


  되돌아보면 2010년 대한민국도 앨리스가 방문한 이상한 나라와 별반 다를 바 없었다. 대표 케이스는 뭐니 뭐니 해도 천안함 폭침을 둘러싼 그로테스크한 상황 전개였다. 온갖 궤변과 음모론이 난무하며 국민을 현혹시켰다. 광우병 파동과 비슷했다. 한 출판사는 상호 배치되고 비상식적인 주장들로 가득 찬 ‘천안함 시리즈’를 연속으로 출간했다. 이런 책이 국내 최대 서점인 교보문고의 ‘추천도서’이니 뭔가 잘못되지 않았는가.


  처음에는 피로 파괴니 좌초니 별 주장이 다 있었지만, 결국 침몰원인은 폭파에 의한 것이다. 그렇다면 어뢰공격 아니면 기뢰가 원인인데, 스모킹 건(smoking gun·결정적 증거)인 어뢰 잔해가 나오면서 결론은 명확해졌다. 한반도 문제에 정통한 러시아 학자인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는 폭침이 있고 난 직후, 그리고 어뢰가 발견되기 전에 예언적인 주장을 했다. 한국의 좌파들은 설사 ‘북한 어뢰의 파편이 나와도’ 안 믿을 것이라고.


비상식 가득 찬 ‘천안함 시리즈’


  정말 그랬다. 이제는 지엽적인 문제로 물고 늘어지며, 한국 정부가 조작했다는 설이 득세했다. 원인 조작을 위해 어뢰 잔해를 ‘심어 놨다’는 얘기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게 한번 묻고 싶다. 이명박 정부가 정말 그렇게 ‘유능’하고 주도면밀하다고 믿고 있는가? 이명박 정부는 ‘담론(談論)’의 가치를 경시하는, 즉 ‘실용’으로 가치와 이념의 부재를 메울 수 있다고 착각하는, 때때로 무기력하고 허술한 정부이지, 그런 ‘악마적 천재성’을 가진 체제가 아니다.


  2009년 6월의 혼란 분위기에 편승한 시국선언 교수들도 정도는 훨씬 약하지만 마찬가지다. 의견 표시야 자유지만 1980년대도 아니고 지금에 와서 ‘민주주의의 역행’을 주장하는 것이 마치 권위주의 시대에 민주화 운동을 한다는 촌스러운 착각과 자족감을 줬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은 통제되지 않은 민주주의의 과잉과 대의민주주의 부정이 문제지, 민주주의의 부재가 문제의 핵심인 세상은 아니다.


  세계적 명성의 좌파학자인 이매뉴얼 월러스틴은 “천안함은 곧 잊혀지고 역사의 미스터리로 남을 것”이란 희망 섞인 예측을 했다. 그럴까? 천안함 사건은 결국 결판날 진실게임, 즉 ‘한국의 드레퓌스 사건’이 될 것이다. 조작이라 주장하는 물리학자와 지질학자는 곧 다가올 폭침 1주기를 맞아 열전도나 알루미늄 화학반응의 세계적 권위자들이 참여하는 국제심포지엄에 참여하길 권한다. 절대로 회피하지 말기 바란다. 거기서 ‘에너지 보존의 법칙’보다 ‘김정일 정권 보존의 법칙’이 더 중요한 것이라고 솔직히 말하기 바란다.


  진실이 더 명백해졌을 때 그들은 또 북한 핵의 경우처럼 넘어갈 것인가? 북한은 ‘핵을 만들 의도도 능력도 없다’고 강변하다가, 핵실험을 하고는 ‘미국에 대응하는 자위용’이라 둘러대다가, 이제는 남한에 대고 노골적인 핵 위협을 한다. 그래도 국내의 친북좌파는 말이 없다. ‘반핵반전’을 외치다가 이제 와 ‘반핵’은 쏙 빼놓는 시민단체들. 핵실험 하고 핵무기 만드는데도 침묵하는 환경단체들. 본질적으로 공산주의와 상극인 기독교 인사, 단체, 언론들이 북한 감싸기에 급급하고 북한 인권에 대해선 완전히 침묵하는 것. 모두 다 불가사의한 일이다.


북한에 침묵하는 ‘반전반핵’ 세력


  처음엔 조작이라고 하다가, 이제 와서 북한 공격에 대한 안보를 허술히 했다고 주장하고. 그러면 “폭침을 인정하는 것이냐?”라고 물으면, 또 그건 아니라고 하는 민주당도 이상한 나라의 제1야당 자격을 가지고 있다. 수권을 꿈꾸는 공당(公黨)이 이렇게 중대한 사안에 그렇게 줏대 없이 입장을 정리 못 하고 시류에 떠밀려 다니는 것이 한심하다.


  물론 대한민국의 ‘이상함’은 ‘부카니스탄’이란 애칭으로 불리는 북쪽 체제에 비하면 귀엽고 재미있는 수준이다. 북쪽 이야기는 엽기적인 막장 호러 영화이다. 북쪽이 괴기스럽다면 남쪽은 기묘할 뿐이다. 원래 ‘앨리스’는 귀여운 캐릭터다. 그러나 이런 그로테스크한 재미도 오래가고 반복되면 식상해진다. 잠에서 깨어나 앨리스가 돌아가는 ‘정상적인’ 세계처럼 올해는 이전보다 덜 이상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무상의료보험 주장에 대한 한국대학생포럼의 성명

 

※데일리 뉴스(2011. 1. 10)에 보도되었는데 학생들이 작성한 글이라면 참으로 기특하여 게재한다.

 

  무상의료를 주장하는 이들이여, 정치인이기를 포기하라.

  정치인은 국민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대신 해주는 사람이 아니다. 정치인은 국민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을 대신 해주는 사람이다. 따라서 정치인은 항상 자신의 신념과 사명감으로 행위하며, 결코 자신에 대한 비판과 질타에 의해 좌절해서는 안 되는 매우 굳세고 강한 사람이기도 하다. 정치인은 때론 자신의 목숨을 내놓아야 할 경우도 있다. 지난 2008년, 국가 질서를 파괴하고, 끔찍한 정치적 구호로 이 국가를 혼란에 빠트렸던 이들로부터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비난과 공격을 감수하고도 자신의 자리에서 단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던 몇몇 관료들의 애국적인 행동이야말로 진정한 정치인의 이상형이다.

  그런데 최근 일부 정치인들은 아예 자신의 정치적 사명감을 뒤로한 채 그야말로 '표를 얻기 위한 정치', '권력을 쟁탈하기 위한 정치'에 몰두하고 있다. 무상급식이라는 허구 맹랑한 정치적 구호로 지난 6월 대한민국을 위기로 몰아넣었던 이들이 이제는 아예 무상의료까지 외치고 있다. 이제 국가가 국민을 위한 봉사 단체 정도로 격하되는 참으로 처절한 시점이자 역사적 비극이다. 듣기 좋은 말이라면 '국방 포기', '시장 폐쇄' 까지 외칠 기세다. 복지가 복지 그 자체로서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이제는 아예 국가 자체의 목적이 복지로 둔갑되는 참으로 기이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복지는 왜 존재하는가. 그들이 그토록 외치는 복지국가들을 살펴보면, 결코 북유럽식의 복지는 대한민국의 몇몇 정치인들이 표방하는 복지와 그 의미가 다르다. 북유럽에서 택했던 복지의 모토는 바로 '시장의 정상화'였다. 즉, 내수를 확대하고 시장을 좀 더 원활하게 운용하기 위해서는 복지가 필수적인 과정이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북유럽식의 복지는 강한 경쟁 시장과 병행하였으며, 강력한 누진세의 이면에는 유연한 노동시장과 고용의 자유가 존재했던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복지와 시장을 동시에 성공시킬 수 있었으며, 나아가 복지의 목적이 어디까지나 시장의 활성화 및 경기 부양에 있다는 점을 다시금 전 세계에 확신시켜주는 좋은 예였다. 또한 북유럽과 우리나라의 경제적 상황도 매우 다르다. 그들은 풍부한 천연자원, 적은 인구, 그리고 주변의 강대국들 간의 세력 균형이라는 천혜의 환경을 지닌 그야말로 '낙원'이라고 불릴만하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자원이라곤 인력과 기술밖에 없으며, 넘치는 인구와 부족한 토지, 그리고 중국의 급성장이라는 절망적인 상황으로 조금씩 발을 들여놓고 있는 위기이다.

  이런 상황에서 무상의료를 외치는 저들의 탐욕스러운 행보는 결코 용납해서는 안 될 반국가적 행위이며, 이에 또 다시 속아 넘어가 저들에게 하나의 표라도 행사한다면 그것은 대한민국의 번영의 포기이자 퇴행이며, 민주주의의 역기능의 폭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의료가 뛰어난 본질적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의료 서비스를 공급하는 계층이 고소득층을 형성하고 있으며, 보다 능력 있는 이들이 의료계에 진출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서 직접 원정 치료를 받으러 올 만큼 그 수준과 기술을 자랑하고 있다. 이러한 우리의 의료 기술의 급성장의 이면에는 의료 서비스의 경쟁과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어느 정도의 건강보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극단적 의료 경쟁의 과열화는 국민의 분열을 일으킬 소지가 있고, 우리는 이에 따라서 국민건강보험이라는 좋은 제도를 마련하였는데, 왜 여기서 무상의료라는 불가능한 정치 선전을 행하는지 참으로 그 의도가 의심스러울 뿐이다.

  당장 무상의료에 대한 주장을 중단하라! 그것은 국민에 대한 기만이며 후손들에 대한 배신이자 선조들에 대한 모욕이다. 그것은 대한민국의 의료 시장에 훼방을 놓는 격이며, 나아가 우리 국민이 우리가 개발한 의료 기술의 혜택을 받기를 포기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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