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진주혼식

청담(靑潭) 2011. 9. 22. 17:14

 

 

珍珠婚式(진주혼식)

 

  

 

 

 

 1974년 3월 초, 동아리 신입회원 모집 차 그녀를 처음 만났다. 그녀는 동아리 활동을 함께 하게 된다. 우리는 동아리의 선후배사이가 되었다. 그녀는 회장인 나를 형이라 부르는 귀엽고 재치 있는 회원으로 어울려 지내다가 다음 해 내가 졸업하게 되어 자연스레 헤어지게 된다. 그 해 여름방학에 그녀는 단짝인 친구와 함께 우리 집에 놀러 왔다. 1975년 봄 어느 날 동아리 산행이 있어 모임장소인 전주 터미널에 조금 늦게 도착했을 때 일행은 모두 어디론가 떠나고 역시 늦게 도착한 그녀와 나만 남았다. 새로운 인연의 출발이었다. 우리는 일행의 행방을 알 수 없어 예정지인 대둔산으로 향했다. 일행은 없었고 우리는 하루 동안의 데이트를 하면서 예전과 다른 많은 감정을 느꼈다(그녀도 동의한다). 그 해 늦가을, 핸드폰도 없던 시절, 엽서를 통해 그녀 어머니 부음을 받았으나 실업자 신세인데다가 혼자서 장례식에 참석할 용기도 없어 가지 못한 것은 두고두고 후회스런 일이 되었다.

  1976년에 그녀는 특수학교에 근무하고 나는 편입하여 다시 대학에 다니게 된다. 새로운 학교생활이라서 가끔씩 선후배 사이로 만남은 가졌으나 결코 연인사이는 아니었다. 1978년 9월 그녀는 경기도로 발령을 받아 떠났다. 어쩌다 편지는 주고받으며 늦깎이 대학생인 나는 학원강사로, 순위고사 준비로 바쁜 시간을 보내게 된다.

  1980년 내가 고창으로 발령을 받았다. 그리 오래지 않아 내가 그녀를 사랑하고 있음을 고백하였다. 그녀를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될 내 운명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연인이 되었다. 1981년 봄에는 부모님들을 찾아 인사드리고 결혼할 것을 선언하였다. 그런데 웬일인지 그녀는 가끔씩 자기혼자만의 갈등으로 나를 힘들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결코 그녀가 나를 내버려두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가졌다. 결국 그녀는 나와 평생을 함께 하기로 하고 과감하게도 경기도 봉일천에서 고창으로 낙향하여 주었고 우리는 1981년 10월 11일 이리 영빈관 호텔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서로 만난지 7년 하고 7달만이었다.

  -완전 생략-

 결혼 10주년(錫婚式)은 큰 기억이 없다. 그 해 6월 결혼 10년 만에 순전히 우리 힘으로 32평 맨션아파트로 입주한 것이 큰 선물이 아니었을까? 1996년 결혼 15주년(銅婚式)을 기념하여 내가 사파이어 반지를 선물하였고, 그녀는 내게 명품 썬 글라스를 사주었다. 그 해 여름 김호길 선생 내외와 다녀 온 첫 부부동반 해외나들이 동남아 여행(태국 ․ 싱가폴 ․ 홍콩)은 마치 동혼식 기념여행처럼 되었다. 결혼 20주년(淘婚式)인 2001년에는 1월에 우리 둘이서 5박 6일의 중국여행(계림 ․ 상하이 ․쑤저우 ․ 항저우)에 다녀왔다.

  2006년은 25주년(銀婚式)인데 1월에 5박 6일간 베트남과 캄보디아(앙코르 와트)를 꿈처럼 여행하였다. 그러다 보니 결혼식 기념이라 핑계대고 여행만 했지 선물은 변변치 못했다.

  결혼 30주년은 진주혼식(珍珠婚式)이라 한다. 30년 긴 세월이 번개처럼 가 버렸다. 어느 때 보다 의의 깊은 기념을 해보고 싶어 아주 오래전부터 꿈에 그리던 서부유럽여행을 계획했었지만 여러 순탄치 못한 상황으로 인해 잠시 뒤로 미루고 1월에 타이완 3박 4일 여행으로 대체하였다. 미루어진 서부유럽여행 대신  그녀를 위해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보석인 진주목걸이를 선물하겠다(그녀는 절대로 보석을 모으거나 자랑하는 그런  여성이 아니다. 다만 진주를 가장 좋아한다는 것 뿐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깜짝 선물(나와 우리 딸만의 비밀)을 준비하겠다. 또 서울에서 우리 아들딸과 함께 최고의 저녁식사도 곁들이고 싶다.

  미래의 30년을 지금보다도 더 뜨겁게 사랑하고 아주아주 행복하게 살아가겠다. 아름다운 꿈을 꾸며 살아가겠다. 나이 90까지 건강하게! 

 

 

 

 

마침맞게 익산에 있는 보석판매장(주얼 팰리스)축제가 있어  함께 찾았다. 그녀는 값싼 담수 진주목걸이와 귀고리를 고르고 20% 할인에다 더 깎아서 아주 적은 돈으로 선물을 할 수 있었다. 해수 진주목걸이가 확실히 예쁘다면서도 그리 원하는 건 아닌듯 했다. 그리고 지난 주말에는 아들딸과 함께 이태원에서 맛있는 식사를 했다. 이번 주말에는 부모님 결혼 60주년 기념 저녁식사자리를 마련하였다.                                2011.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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