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새로운 재능이 요구되는 시대와 예단

청담(靑潭) 2012. 3. 5. 22:01

 

새로운 재능이 요구되는 시대


데이비드 브룩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현재 우리는 ‘개인주의’가 절정에 이른 시대에 살고 있다. ‘몇 세대 전’만 해도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아이를 낳는 건 수치스러운 일이었으나 최근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듯이 미국에서 30세 이하 산모 가운데 홀로 아이를 낳아 키우는 ‘싱글 맘’이 이미 절반을 넘어섰다.


 1957년 설문조사를 보면 당시 성인의 57%는 독신주의자를 정신병자 취급했다. 그러나 에릭 클리넨버그의 저서 ‘홀로서기(Going Solo)’에 따르면 현재 성인 가운데 과반수가 독신을 선호한다.


  ‘몇 세대 전’ 얘기를 좀 더 해보자. 그땐 대다수 미국인들이 공화 혹은 민주당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부동층이 두 당 지지자를 압도한다. 과거엔 시민들이 대부분 대기업에 다녔고 노조에 가입했다. 요즘은 평생직장이나 노조를 우습게 여긴다. 당시 10대 젊은이들은 연인과 오랜 관계를 유지하길 원했으나 요즘은 얽매이지 않는 ‘찰나의 만남’을 즐긴다.


  시대의 흐름은 분명하다. 50년 전 미국인들은 안정적이고 끈끈한 사회적 관계를 원했다. 관계 자체에서 삶의 이유를 찾았다. 오늘날 사람들은 훨씬 다양하고 유동적인 관계를 통해 자유를 만끽한다. 억지로 관계를 맺거나 지속하려 들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건 개인의 만족이다.


  변화의 요인은 여러 가지다. 일단 삶이 풍족해졌다. 사람들은 이제 혼자 살아도 될 만큼 돈을 잘 번다. 페미니즘도 한몫했다. 여성은 스스로 자신의 삶을 꾸릴 능력이 생겼다. 회의주의도 영향을 끼쳤다. 많은 사람이 결혼을 ‘삶의 필요조건’으로 느끼지 못한다. 노년사회와 정보혁명도 이런 변화를 거들었다.


  이를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현 시대는 ‘재능(talent)의 욕망’이 지배하는 사회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은 개인적 재능을 개발할 여유를 갖길 원한다. 삶을 즐기고 정체성을 찾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쏟길 바란다. 능력 개발에 치중하지 굳이 힘겨운 관계를 유지하는 데 공을 들이려 하지 않는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러한 변화가 세상을 극단적으로 파편화시키고, 인간을 고독하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이는 과장된 억측이다. ‘홀로서기’를 들여다보면 혼자인 사람들이 얼마나 친구가 많고 사회적 모임에 적극적인지 알 수 있다.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방식으로 관계를 만드는 새로운 세대가 등장했다는 뜻이다. 수동적인 관계에 의존하는 시대는 갔다. 자신만의 재능으로 관계를 창조하고 발전시키는 시대가 왔다.


  현대사회의 네트워크는 변화무쌍한 관계의 가능성을 무궁무진하게 열어두고 있다. 사람들은 이를 기반으로 훨씬 부유해질 수도, 더욱 다양한 삶을 즐길 수도 있다. 혼자 사는 집이 더 안락하고 편안할 수도 있다. 기존의 방식에 안주해선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물론 이러한 변화 속에서 새로운 관계 형성에 취약한 이들은 힘겨운 삶을 살 수도 있다는 불편한 진실이 숨어 있다. 21세기는 과거와 전혀 다른 방식의 재능과 노력이 요구된다. 뒤처지는 이들이 느낄 고립감은 엄청날 것이다. 때문에 변화에 익숙하지 못한 중년 이상 세대나 교육의 기회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저소득층 자녀들에 대한 배려가 꼭 필요하다.


  자, 이제 차가운 현실을 인정할 때가 왔다. 더 이상 ‘몇 세대 전’을 거론하는 건 의미가 없다. 세상은 가파르게 변하고 있고, 이에 대처할 재능을 가진 이들은 행복을 맛볼 것이다. 과거에 얽매여선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는다.





   미국이 변한다 싶으면 한국도 금방 변하는 말 그대로 무서운 세계화시대이다. 우리 한국은 경제력으로 세계 10위에 랭크된 놀라운 나라를 넘어서서 문화면에서도 전 세계에 K-pop 열풍을 불어 넣고 영화와 드라마에서도 세계화를 이끌어 내고 있어 그야말로 세계의 문화를 이끄는 리더십을 충분히 발휘하고 있다.

   한국 젊은층의 의식변화는 미국을 비롯한 서구 선진국의 젊은이들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나아가고 있다. <결혼은 필수가 아니다>라는 생각이나 정치에 별 관심이 없고 특정정당을 지지하지 않는 부동층이 대부분인 점도 그렇다. 기업노조 탈퇴자가 늘고 있고 그래서 노총에 가입한 노동자수는 그리 많지 않다. 직장은 자주 옮기며 이성친구 사귐이 300일이 넘으면 아주 긴 만남이라고 한다. 직장회식이 끝나면 2차 3차가 아니라 자신의 생활리듬이나 패턴으로 돌아가 운동을 하거나 강의를 듣거나 한다.


  그렇다면 전통적인 문화적 관습도 무섭게 변하거나 새롭게 재창조되어야 하지 않을까? 매장과 봉분의 장례가 화장과 납골당으로 바뀌어가듯이 혼인풍습도 변해야 하는 게 아닌가? 서로 사랑하여 함께 살기를 원하여서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는 것은 온 인류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구석기 시대부터 취해온 문화이다. 그러나 아직도 바꾸지 못하여 젊은이들을 힘들게 하고 사랑하는 남녀의 혼인을 가로막기도 하는 저 <예단>풍습은 왜 아직도 뿌리 채 뽑아내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돈이 많은 부자들이 호텔에서 초호화 결혼식을 올리는 것은 그들의 자유이자 권리다. 신혼여행을 두어 달 동안이나 세계 일주를 한대도 그것은 그들의 권리이자 자유다. 그러나 신부 집에서 신랑 집에 친척들 선물비용으로 예단비를  대략 1천 만 원을 주고, 신랑 집에서는 그 반 정도인 5백 만 원을 신부 집에 되돌려준다는 저 예단이란 우스꽝스러운 짓거리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소위 가진자들이나 ‘사’자 붙은 직업을 가진 아들을 둔 모친네들은 수 천 만원씩을 요구한다나 어쩐다나?) 오늘날 어느 시대인데 신랑 집 친척들 선물이 웬 말이며 소중한 두 남녀의 결혼을 앞두고 양가에서 <예단비>가 적다느니 많다느니 하면서 다투고 심지어는 혼인이 깨어지기 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하니 의식없는 사람들의 이해 안 되는 처사는 가히 가소롭고 하품이 날 지경이다. 사랑하는 아들딸의 소중한 결혼에 무슨 저런 형식을 지키기 위해, 아니 주변 친지들에게 자랑하기 위해, 아니 낯을 세우기 위해 돈을 주고받는 행위가 부끄럽지도 않은지 어쩌면 뻔뻔하게 구습을 생각없이 답습할 수 있으며 받은돈이 적다느니 많다느니 따지거나 떼를 쓸 수 있다는 것인가? 예단은 이제 시대에 맞지 않는 별 필요성이 약한 바람직하지 않은 전통이니 우리 젊은 남성들은 행여 아직도 당신의 어머니가 구태의연하게 <예단비>를 받으려하거나  심지어 더 받으려 고집하거들랑 충분히 이해시켜드려서 예단으로 인하여 사랑하는 여러분의 신부가 속이 상하고 행복한 결혼식을 망치는 일이 없도록 자신의 결혼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을 확고히 할 일이다. 젊은이들의 <예단>에 대한 개혁의지를 강력히 요청한다.

 

   핀트가 많이 어긋났다.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힘겨운 관계보다는 개인의 재능을 통하여 새로운 패러다임의 삶을 만들라는 주제에서 벗어나 예단이야기로만 크게 빗나갔다. 그러나 언젠가는 한번은 꼭 하고 싶은 이야기였기에 구태여 글의 형식을 따지고 싶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