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가환의 <기원기;綺園記>와 유득공의 <서른 두
폭의 꽃 그림에 부친다>를 읽고
이가환과 유득공은 자연과 함께 하며 자연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하여 사는 삶을 가장 최고의 삶으로 보았다. 오늘날은 200여년 전과는 외양으로 엄청 다른 세상이 되어버렸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무려 강산이 스무 번도 더 변한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인간의 마음마저도 스무 배도 넘게 엄청 모두 달라졌다고 속단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태어나서 가족과 함께 살아가고 학교에서 공부하고 시험보아 취직하고 봉급받아 살아가고 은퇴하면 편안한 교외의 전원주택을 꿈꾼다. 특히 남자들은 대부분 노년의 시골전원생활에 대한 꿈을 꾸며 집착 또한 크나니, 나도 예외는 아니다. 다행이 나는 은퇴후 시골 전원생활을 할 수 있는 좋은 조건들을 가지고 있어 항상 꿈을 꾸며 살아가고 있고, 그 꿈을 생각하면 언제나 즐겁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이 세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내 고향 돌제(乭堤)에 아직 내 소유의 집이 남아 있고 도저히 내 힘으로 농사짓기에 부치는 논과 밭이 다소간 남아 있으니 그 누가 인정하든 말든 나는 내 여생에 대한 걱정 근심이 별로 크지 않다.
퇴직 후 내가 살고 있는 익산의 아파트에서 불과 14km 거리에 있는 220여평 대지에 3칸 15평짜리 고향집은 비록 우리 부모님과 형제들의 숨결과 추억이 깃들어 있지만 부모님이 시내로 옮겨 사신지 10년이 넘어 이제는 너무 누추하고 동향이라서, 또 너무 어두워서 리모델링하기에는 적당치 않다. 그래서 2년 뒤 은퇴하게 되면 비록 크게 서운하기는 하지마는 지은 지 80년 된 옛집을 과감하게 헐고, 아주 작은 예쁜 남향 목조집을 짓고 넓은 데크를 두르고 답답하게 집을 감싸고 있는 담장을 헐어버린 다음 마당엔 돌을 깔고 사이사이 푸른 금잔디를 가꾸려 한다. 마당에는 봄이면 난초와 채송화와 분꽃과 봉숭아꽃과 나팔꽃이 피어나고, 여름이면 접시꽃, 과꽃과 해바라기가 고개 숙여 졸고, 가을이면 코스모스와 온갖 국화가 만발하여 향기를 풍긴다. 그리고 소리와 진소리(지금 기르고 있는 똥개와 진돗개의 이름)와 새로 식구가 된 세퍼드 한 마리가 나를 기다리다 매일 아침이면 찾아오는 나를 보고는 기를 쓰고 반기며 온갖 애교를 떤다. 그 뿐이랴? 지금도 까치들이 드나들고 박새들은 호랑가시나무에 늘 떼로 숨어살며 열매를 독차지 한다.
60평 집 앞 텃밭에는 나와 우리 양드리가 먹는 채소가 없는 게 없다. 상치에 쑥갓에 아욱과 부추, 마늘과 양파와 대파가 있고, 고구마와 하지감자가 자라고 당근과 무와 배추가 쑥쑥 올라온다. 호박과 오이와 참외와 가지와 고추와 수박까지도 몇 그루씩 심어 따먹는 행복을 맛본다.
집 뒤 과일밭 300평은 나를 매우 힘들게 할 게 분명하다. 이미 10년 전에 심은 나무들이 엄청 커서 하늘로 치솟았다. 정자나무처럼 큰 뽕나무는 지난 해 가지를 처절하게 쳐냈는데 아예 잘라버릴 생각이다. 입구에는 커다란 은행나무가 한그루가 있어 해마다 열매를 너무 많이 제공하고 있다. 너무 커버려서 열매 따기 힘들고 농약치기 괴로운 자두나무는 지난 달에 다 베어버리고 세 나무만 남겨 윗가지는 모두 쳐버렸다. 농약을 치지 않아도 싱싱하게 열매를 맺는 매실 10그루가 자랑이요, 이제 열매를 따먹기 시작한 아직 덜 자란 서 너 그루의 감나무도 있다. 복분자가 밭을 담장처럼 두르고 있고 살구나무, 대추나무 한 그루와 벌레 때문에 따먹지도 못하는 복숭아 나무 한 그루, 열매를 맺지도 못하는 모과나무도 한그루 있다. 아참, 금년에 포도나무 두 그루와 사과나무 두그루, 배나무 한그루를 심었더니만 배나무는 가뭄에 죽어버렸다. 아 그리고 열매를 엄청 많이 맺는 보리밥나무가 한 그루 있다. 학교(종정초등학교) 정문 앞에 있는 400평 밭에는 이미 5년 전에 반송, 적송 대충 섞어 500여주를 무턱대고 확 심어 버렸다. 剪枝(가지치기)기술도 없고 돈에 큰 욕심을 부리지 않고 저지른 일이라서 상당히 커버린 저 많은 나무 처치할 일이 걱정이로되 아예 마음을 편히 먹기로 한다. 물건이 되어 돈 받고 팔기는 이미 틀렸으니 전지기술을 빨리 익혀 예쁜 소나무를 만들어내는 창조의 기쁨을 누리며 전원주택을 지어 소나무가 필요한 친구가 있으면 몇 그루씩 기분좋게 선물하고 나머지는 크게 키워 그 아래에 동물을 키운다. 300평 윗 밭을 팬스로 두르고 동물원을 흉내 내어 예쁜 축사를 짓고 야생동물의 침범에 대비하여 철저하게 보호망을 친다. 내 어린 시절 우리 집은 한 때 마치 동물원이었으니 온갖 가축이 마당에 가득했다. 우선 순종 토종닭을 몇 마리 구해 봄이면 병아리를 낳게 한다. 어미 닭이 수탉의 호위 속에 병아리들을 이끌고 먹이를 찾아 먹이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운 광경이거니와 다른 짐승이 훼방을 놓거나 병아리를 해칠라치면 머리깃을 곤두세우고 무서운 소리를 내어 온 몸으로 저항하며 병아리를 보호하는 모습을 통해 자식에게 온 정성을 다하는 어미의 자식사랑과 희생을 보며 나는 과연 내가 낳은 자식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또 다시 자문해 본다. 흰 오리 몇 마리와 거위 한 쌍도 보인다. 칠면조 한 쌍도 보이고 토끼들이 뛰어 다니고 염소가 새끼에게 젖을 먹이고 있다. 소나무밭의 풀은 모두 토끼와 염소가 다 차지할 것이니 풀약은 필요 없다.
아아! 이것은 정녕 나에겐 그리 어려운 꿈이 아니다. 우리 양드리는 내 꿈을 들으면 항상 깔깔 대며
“혼자 열심히 잘 해보세요. 나는 안 갈거니까...” 하지만 나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는다. 어차피 돈을 구하고자 하는 일이 아니요, 나의 정신건강과 몸 건강을 위해 소일로 하는 노작활동이러니 구차스럽게 그녀에게 도움을 청할 일이 없다. 오히려 집과 가구와 정원을 내 마음대로 꾸미고 가꿀 수 있어 내심 기대가 큼을 그녀가 알면 그녀가 오히려 크게 화 낼 일이다.
친구가 찾아오면 기쁘게 맞이하고 기쁘게 대접할 지니 이미 내 계획을 들은 바 있는 친구들은 내 미래의 시골농장에 대한 기대가 크다 하므로 내심 걱정이 안 되는 바는 아니다. 대접할 술과 채소와 토종닭은 늘 대기하지마는 정작 실력 없는 내 요리솜씨가 걱정이나, 까짓거 하지감자 듬뿍 넣고 이년 묵은 김장김치 한 포기로 무작정 끓여대면 맛있는 <묵은 닭도리탕>이 됨을 이미 경험한 바 있으니 그 또한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로다.
서울 등 대도시에 살고 있는 고향 잃은 또래 은퇴자들이나, 노후준비를 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인 수 백만 베이비부머 세대들에게는 지극히 죄송한 일이나 이는 내가 고향을 떠나지 않고 향토에서 살아 온데다, 내가 사는 익산에서 고향이 아주 가깝고, 2대독자라서 돈으로야 가치를 논할 거리도 못되는 할아버지 유산을 받는 복을 받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또 은퇴 후 결코 명리를 다투지 않고 오전은 전원생활, 오후는 운동과 독서와 사회활동(단체활동및 봉사활동) 및 특기신장(서예)활동으로 내 노후 생활 패턴을 확고히 하고 있기에 용감하게 이 글을 자신있게 쓸 수 있다 할것이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행여라도 이 글을 읽게되는 동년배 노후세대들에게 부러움과 함께 미움까지도 사게 될 것임이 자명하니 한편으로는 나 혼자 괜히 행복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얼굴도 모르는 이들에게 매우 죄송한 마음이 함께 함을 부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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