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임진년 섣달 그믐 날

청담(靑潭) 2012. 12. 31. 10:29

 

 

섣달 그믐날 밤 느낌이 일어

조현명(趙顯命 : 1691~1752)

 

 

내 나이 어느새 오십 하고 또 다섯   我齒居然五五春

세월은 붙잡으려도 어찌할 도리 없네 年光欲挽奈無因

평소에 가는 세월 오늘처럼 아꼈다면 常時惜日如今日

분명코 지금의 이런 모습 아닐 것을  未必徒爲此樣人

 

 

  오늘이 바로 섣달 그믐날입니다. 금년은 壬辰年으로 壬辰倭亂이 일어난 지 420년이 된 해이고 내년은 癸巳年으로 내가 태어난 지 60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제 세달 후(3월 23일)면 환갑이 되고 2년 후면 정년이 되어 퇴임하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더 열심히 일하고 더 보람 있는 삶이 되도록 설계하고 노력하여야 하겠습니다. 어제 건강전도사로 널리 알려진 황수관 선생이 67세의 나이에 급성패혈증으로 세상을 떴습니다. 안타깝습니다. 열정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건강에 대한 상식과 삶에 자신감을 넣어 주시던 훌륭한 분이었습니다. 삼가 애도를 표합니다. 사는 날까지 건강하고 보람 있는 삶을 만들어 나가는 노력을 게을리 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서강조박(西江漕泊)

정도전(鄭道傳 : 1345~1398)

 

 

사방 물건 서강으로 폭주해 오니      四方輻湊西江

거센 파도를 끌어가네                拖以龍驤萬斛

여보게 썩어 가는 창고의 곡식 보소   淸看紅腐千倉

정치란 의식의 풍족에 있다네         爲政在於足食

 

※ ‘진신도팔경시(進新都八景詩)’중 서강조박(西江漕泊:서강에 배를 정박함)이라는 시이다. 서강은 오늘날의 한강중에서 <마포나루에서 양화나루까지>를 부르는 이름이다.

 

  조선왕조 일등 개국공신인 정도전이 말합니다. “정치란 의식을 풍족하게 하는 것”이라고요. 맞습니다. 기나긴 제 18대 대통령선거가 끝이 났습니다. 새누리당의 박근혜씨가 당선되었습니다. 나는 일직이 세습왕조국가를 아주 바람직하지 않게 생각하는 정치철학을 가졌으므로 비록 존경하는 박정희대통령의 딸이지만 그녀가 대통령이 되려는 것을 내심 불쾌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녀를 뛰어넘는 보수안정세력의 지도자의 부재로 어쩔 수 없이 차선책으로나마 그녀가 대통령에 당선됨에 저으기 안심하고 있습니다.

  통합민주당의 문재인 후보는 그 자신은 아주 인품이 훌륭한 존경할 만한 분입니다. 그러나 시대에 맞지도 않는 친일 과거사를 들추어내며 반미 친북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고 젊은이들을 선동하며 국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이념 지향적 개혁으로 5년을 허송세월을 보내던 노무현 세력을 다시는 보고 싶지 않습니다. 해방된 지 60년이 지났는데 친일파 청산한답시고 일제강점하에서 오히려 권력을 누리던 자들의 자식들이 오직 박근혜 한 사람을 겨냥하여 박정희를 한없이 욕보이고 소란을 피우며 선동하던 생각을 하면 치가 떨립니다. 그 인간들이 민주 통합당의 대표니 대통령 후보니 하던 자들입니다. 작년에는 젊은이들을 선동하며 저질 막말을 끝없이 쏟아내던 김어준이니 하는 패거리들이 있었고 교육감 후보 사퇴 댓가로 사후 2억원을 주고도 오직 인정상 준 것이라는 궤변을 늘어 놓으며 끝까지 죄가 없다고 우기던 인간말종도 그들의 편이라 생각하면 그들의 지독한 권력욕에 억장이 무너져 내립니다. 민주화운동에 기여한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공을 시도 끝도 없이 정치적 기득권으로 여기며 민주화운동을 하지 않은 사람들은 마치 정치적으로 성장할 자격조차 없는 양 흑백논리로 몰아붙이는 것도 더 이상 견디기 힘든 일입니다.

  정도전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나라이건 가정이건 개인이건 행복은 기본적으로 경제의 튼튼함에서 비롯됩니다. TV를 통해 가난한 나라의 많은 어린이들이 신발도 신지 못한 채 배를 곯아가며 힘든 일을 하여 하루 겨우 몇 백원의 돈을 벌면서 ‘나도 학교에 다니고 싶다’는 말을 하는 것을 보면 가슴이 에입니다. 나도 저 아이들을 위해 반드시 도움이 되는 그 어떤 일인가를 해야만 한다는 강한 사명의식을 느끼곤 합니다.

  비록 선진국중에서는 보편적 복지비용을 아직은 적게 쓰는 나라이니 당연히 확대하는 것이 옳다고 하겠으나 오직 선거에 이기기 위해 무차별 쏟아내는 복지 쓰나미를 보며 너무나 충격을 받았습니다. 유학이니 해외여행이니 함부로 돈을 쓰기 시작하다가 호되게 당했던 15년 전의 외환위기의 교훈은 실종되고 여야 간에 복지 선점전쟁을 치른 듯합니다. 성장없는 복지는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근대화 산업화 선진국화를 이루어낸 50, 60, 70세대가 자신들의 살아온 역사를 거울삼아 현명한 선택을 해준 것입니다. 10년전 30대로 개혁을 절대적으로 지지하던 오늘날의 40대의 절반이 보수안정을 지지하고, 10년전 40대로 역시 대다수가 개혁을 지지하던 오늘날의 50대가 이번에는 똘똘 뭉쳐 정치적 외교적 안정과 경제성장과 균형복지를 지지한 역사의 흐름을 진보세력과 젊은이들은 냉정하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현실과 이상을, 과거와 미래를 잘 분별하고 진실과 선동을 정확히 구별하는 능력을 어느 세대가 가지고 있는지 이성적으로 잘 판단하여야 합니다.

  선거에서 영호남 지역구도가 너무도 견고하여 아직도 무너지지 않은 것과, 이명박 정부의 오만과 불통으로 인하여 세대간 대립구도가 분명하게 생성된 것이 안타까운 일이나 우리 전북에서나마 박근혜지지표가 13.2%가 나와서 처음으로 16대 대통령 선거 이후 10%대를 넘어서고, 2,30세대에서도 박근혜후보 지지가 30%를 넘고 5,60세대에서도 문재인후보 지지가 거의 40%라고 하니 그리 크게 걱정만 할 일은 아닙니다.

  안정적 경제성장속에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를 적정하게 추진하라는 국민들의 명령입니다. 우리를 둘러싼 미, 중, 일, 러 등 세계 강국들과 불협화음 없이 대북관계를 추진하여 안보를 튼튼히 하라는 국민들의 지상명령입니다.

  안철수 교수의 등장은 비록 신선했으나 어떤 비전도 명확하지 않아 뜬구름 이상의 아무것도 나는 기대하지 못했습니다. 종북주의자인 이정희의 대통령후보 토론에서의 추태는 그냥 어느 머리좋고 말 잘하는 한 이 상한 여자가 벌인 헤프닝(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분탕칠 때’ 라고 표현했습니다)이라기에는 너무나 가슴이 아프고 슬펐습니다. 다시는 선진국 대한민국에서 있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새해 계사년 대한민국과 저 개인의 발전과 건강을 기원하며 길게 썼습니다.

 

 

▣주간경향 (2013. 1. 2일자)

이형용 거버넌스21클럽 상임이사는 82학번이다. 전형적인 386세대다. 1980년대 학생시절, 민주화운동을 거쳐 최근까지 시민사회운동에 참여해 왔다. 특히 이번 대선을 겪으면서 그가 갖고 있는 결론은 이렇다.

"특히 진보는 선악의 관점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 정의가 불의를 제압하거나 물리쳐야 한다든가, 권력을 잡아서 뭔가 정의를 실현한다는 식의 관점에서 벗어나야 한다. 민주나 진보·평화·개혁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우리가 그런 세력이니 그렇지 않은 세력을 물리쳐야 하고, 이것이 옳은 가치이기 때문에 당연히 국민의 선택은 우리여야 한다는 관점이 문제다. 그러니까 국민이 우리를 이해하면, 국민이 깨어 있으면 우리를 선택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관점이다."

이 상임이사가 보기엔 '진짜, 가짜' 논리도 그 연장선에서 나오는 논리다. "중요한 것은 가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비전과 정책을 누가 더 잘 제시하느냐는 것이다. 이번에 국민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면 상대방이 잘되기를 기원해주고 무엇이 부족했는지 잘 검토해 선택을 받는 것이 중요한데, 선악의 프레임을 적용하니 허탈한 마음도 더 큰 것이다."

 

386으로 특징짓는 기존 진보는 새누리당을 보수로 보지 않는다. '참된 보수, 또는 건전보수라면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처럼 이번 대선에서 민주당을 선택했을 것이다. 새누리당은 보수의 탈을 쓴 수구다. 기존 진보가 그리는 미래상에서 새누리당은 없어져야 할 상대다. 친일독재수구의 계승자는 완전히 배제한 뒤, 건전보수와 진보가 번갈아 집권하는 체제다.' 기존 진보가 보수를 바라보는 시각의 밑바탕엔 이런 논리가 깔려 있다.

보수도 다르지 않다. MB정부 시기, 자유주의진보연합이라는 단체가 나타났다. 구성하는 면면을 보면 기존의 진보 인사들이 아니라 뉴라이트전국연합 출신 등 보수파로 분류되는 인사들이다. 이들의 시각에서 기존의 진보는 진보가 아니라 수구다. 종북이 아닌 자신들이 알고 보면 '진짜 진보'라는 것이다.

 

동행21에 참여했던 최승국 전 녹색연합 사무처장은 "진보의 개념 정의부터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는데, 과거와 같은 독재와 반독재, 민주 대 반민주로 보면 (이번 선거 결과는) 보수가 늘어났다고 할 수밖에 없는데, 진보의 고민 축은 누가 더 미래 가치에 가깝고 또 대중의 삶에 가까운가의 시점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보진영 사람들 중에서 냉철한 이성과 역사의식을 갖고 대선에 대한 올바른 평가와 진보진영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분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은 매우 기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