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돌려다오
지은이 이용휴(1708-1782) 이가환(1742-1801) 옮긴이 안대회
▣혜환 이용휴 산문선
1. 나를 돌려다오.
처음 태어난 그 옛 날에는
天理를 순수하게 따르던 내게,
지각이 생기면서부터는
해치는 것이 분분히 일어났다.
지식과 견문이 나를 해치고
재주와 능력이 나를 해쳤으나,
타성에 젖고 세상사에 닳고 닳아
나를 얽어맨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하 생략)
내 자신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며, 세속적 성공을 위해 사는 삶이 바로 나 자신을 상실시킵니다. 우리 현대인들도 자신의 성공과 안위를 위해서는 하고 싶은 말도 꾹 참고 살아야 합니다. 자신의 철학과 맞지 않아도 그저 따라야만 합니다. 나 같은 교육공무원도 그럴진대 하물며 대부분의 회사원들은 그저 묵묵히 회사 방침에 따라 일을 합니다. 회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떨쳐버리는 용기는 능력 있는 소수의 젊은이들만이 가진 특권입니다. 누구나 벼슬을 탐하지 않고 이용휴처럼 자연인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심지어 수십 년 간 직장에서 일을 하고 은퇴를 한 후 전원생활을 꿈꾸어보지만 그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요, 또 반드시 멋있는 일만도 아닙니다. 가족의 반대가 심할 수도 있고, 혼자서는 외로울 수도 있고, 비생산성에 싫증을 느낄수도 있고, 육체노동이 힘들 수도 있고, 이웃에게 배척당할 수도 있습니다. 바쁘게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끼던 사람이 그저 초야(전원)에 묻혀 조용히 살아가는 것이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닌 듯 싶습니다. 비록 몸은 초야에 묻혀도 사랑하는 가족과 나를 알아주는 벗들이 있어야 하고 무리한 욕심만큼은 제거한다는 전제아래지만 그래도 무엇인가 생산을 통해 느끼는 보람과 가치가 주어져야만 합니다. 그래야 행복한 전원생활이랄 수 있습니다.
2. 홍문백의 환갑을 축하하며
○文伯이 우리 집에 사위로 들어온 때를 회상해보니 당시 미소년이던 그가 지금은 머리가 허옇게 센, 환갑을 맞이한 노인네다.
내가 환갑이 자났습니다. 그런데 저는 노인네란 생각을 해보는 법이 없습니다. ‘10년은 젊게 보인다’는 말에 현혹되고, 제 18번인 조영남의 <모란동백>이나 송창식의 <우리는>을 듣는 40대 선생님이 ‘목소리가 아직 20대처럼 젊다.’는 말을 하면 제가 완전 뿅 갑니다. 하긴 조영남씨가 69세이고 송창식씨가 67세라는데 그분들 아직 젊습니다. 그런 연예인들은 나의 젊음을 지켜주는 기둥들입니다. 어제 TV에 출연한 배우 김민정은 66세라는데 젊음과 미모가 아직도 장난 아닙니다.
지금부터 불과 40여 년 전만 하여도 70세를 넘겨 사는 남자들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1970년 평균수명이 61.9세였습니다. 20세기 서양의술이 그래도 많이 보급된 시대에도 저러했을 진대, 하물며 19세기까지의 과거시대에는 홍역과 천연두와 종기와 가뭄과 흉년으로 제 命대로 살지 못했습니다. 판서를 지낸 이가환도 죄 없이 당쟁의 희생양으로 신유사옥때 천주교인으로 몰려 환갑을 한 해 앞둔 60세에 죽었습니다. 70세가 되면 耆老라 하여 벼슬에서도 물러나고 아주 나이 많은 노인으로 존경받았습니다.
오늘날 남자 평균수명이 78세가 넘고 여자는 84로 평균 81세인 시대가 되었습니다. 부모님 두 분이 80이 넘으셨는데도 갈수록 건강(?)해 지시는 듯, 아마 100세까지 사실 듯 싶습니다. 할머니께서 100까지 장수하셨으니 그냥 그렇게 믿음이 생깁니다. 부모님들이 100세까지 사시는 것은 저의 건강과 젊음을 유지하는 데에 거대한 힘이 될 것입니다. 두 분이 건강하게 살아계시는데 제가 70이 되었다 한들 어찌 늙은이니 노인이니 하는 말을 할 수가 있고 또 행세를 할 수나 있겠습니까?
다들 말하기를 70세까지가 사람답게 사는 목숨이고, 70세가 넘으면 힘도 없고, 친구도 없고, 돈 쓸 일도 없고 그저 재미없이 사는 삶이라고 합니다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우리 아버지께서는 오늘도 시골 농장에 가셔서 방금 제게 전화하셨습니다. 채소뿐 아니라 콩이며 양파며 들깨며 하지감자까지 재배하시러 다니십니다. 90세까지 하실 요량입니다. 그러니 제가 70이 된다한들 세상을 등지는 외로운 늙은이가 될 수 있겠습니까? 80이 넘어서까지 내 차를 몰고 다니며 여행하고 오전이면 우리 아버지처럼 시골농장에 출근하고 오후에는 대학의 사회교육원에서 도자기도 배우는 그런 노후를 당당하게 보내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건강을 지켜야 합니다. 스트레스를 따돌리고 음주를 무서워하며 운동을 열심히 하는 것이 누구나 어렵지 않게 건강을 지키는 세 가지 쉬운 비법입니다. 그리고 사람을 사랑하고 욕심을 많이 버리면 더욱 바람직합니다. 사람 아닌 생명들까지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직은 자신이 없습니다. 채식주의자는 몰라도 비건(Vegan)은 더더욱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3. 외손자에게 써준 箴言
○내 아들, 내 손자는 본래부터 사랑하지만 타인은 내게 이익을 주어야 비로소 사랑하는 법이다.
○본래 너를 사랑하는데다가 내게 이익을 주는 자를 사랑하는 마음까지 겸하였구나.
○만족함을 아는 자는 하늘이 가난하게 만들지 못하고, 부귀를 추구하지 않는 자는 하늘도 천하게 만들지 못한다.
○천하에 선을 행하는 것보다 쉬운 일이 없고, 악을 행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 없다.
4. 네 마음을 물어보라
○마땅히 이치를 따라야 한다.
○마음이 편안하면 이치가 허락한 것이요, 마음이 편안치 않으면 이치가 허락하지 않은 것이다.
5. 하루가 쌓여 열흘이 된다
○길하고 흉하고, 제 때이고 아니고 간에, 하루는 시간을 쓰는 사람 하기에 달렸다.
6. 내 집
○네 벗 李處士는 옛스러운 모습과 옛스러운 마음을 가졌다. 제 주견을 내세우지도 않고 겉치레를 꾸미지도 않는다. 하지만 마음에는 지키는 것이 있다.
한 평생 남에게 청탁해본 일도 없고 좋아하는 물건도 없다. 오로지 부자가 서로를 지기로 삼아 위로하고 격려하며 부지런히 일하여 스스로 농사지어서 먹고 살아간다.
7. 화가가 사는 집
○김군(김홍도 : 1745-1806?)은 스승이 없이도 터득하는 지혜의 소유자로서 참신한 뜻을 창출하여, 그의 붓이 이르는 곳에는 그의 정신도 함께 이르렀다.
○상당히 자긍심을 가지고 자중하여 가볍게 그림을 그리는 법이 없었다. 인품이 대단히 높은 그는 고아하고 운치 있는 선비의 풍모를 지녔기 때문에 자기의 정신적 고민과 예술적 솜씨를 이용하여 남들과 교제하는데 쓸 그림으로 제공하여 화장대나 부엌에서 두고 보는 감상거리로 만들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8. 시집 『비 내리는 뜰』
○오늘날 세상에 유행하는 시는 대부분 5언시 아니면 7언시다.
○5언시와 7언시는 천하 사람들이 함께 추구하고 모두 좋아하는 형식이며, 짓는 방법을 익히거나 성조를 맞추기 쉽다.
9. 『송목관집』서문
○제 스스로 견해를 만들어 견해를 세운 사람이라 할지라도 완고함과 편견이 개입되지 않아야만 참된 견해가 만들어진다.
○아! 품계를 밟아 一品의 높은 벼슬아치가 된다 해도 아침에 爵位를 거둬들이면 저녁에는 평민이 되고, 재물을 불려 萬金을 소유한 부자가 된다 해도 저녁에 잃어버리면 다음날 아침에는 가난뱅이가 된다.
우리가 편견과 고집과 아집에서 벗어나야 참된 견해를 세우는 지성인이랄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정치인들에게서는 거의 찾을 수 없습니다. 교육자들에게서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시대가 되었으니 부끄러운 시대입니다. 이 모두가 정치인들이 만들어낸 이념갈등, 지역갈등의 소산입니다. 최근에는 노사갈등뿐만 아니라 세대갈등, 남녀갈등, 학력갈등까지도 거론되고 있습니다. 사람이 모인 사회에 갈등이 없을 수는 없지만 극심한 갈등을 은근히 조장하는 세력을 국민들은 예의주시해야 합니다. 그들은 갈등을 조장하여 그 갈등을 치유하고 조절하는 지혜로운 사람들처럼 행세하며, 오직 그런 일들을 하면서 먹고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회발전을 위한 어젠다의 제시로 여기는 확신범들입니다. 그들은 끝없이 갈등을 조장하며 살아가는 부나방같은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들의 주장 말마따나 끊임없이 이 사회의 발전을 위한 어젠다를 제시하는 긍정적 측면도 인정할 필요는 있습니다. 갈등은 발전을 기약하는 도구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양비론인가요? 지나침을 경계하고자 하는 말이며 갈등론자들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견해를 죽이며 권력에 붙어 얻어내는 지위는 부끄럽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부끄러운 줄이나 말면 다행이지만요. 요즈음 대한민국사회엔 80까지 사회의 실질적 리더로 존재하는 분들이 거의 없습니다. 대통령이 62세이고 70대 국회의원들이 거의 없습니다. 장관을 지내고 장군으로 예편하고 국회의원을 지내지만 70대가 되면 대부분 뒷전으로 물러나게 됩니다. 70대가 되어서 먹고사는 큰 걱정은 없이,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고 후진들을 격려하고 응원하는 그런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매우 행복한 老朽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러고 보면 70 아니 80이 되어서도 자신의 일을 아주 건강하고 행복하게 열심히 해 나가는 기업인, 자영업자, 의사와 약사, 운전기사들이 자랑스럽습니다. 아니 老朽란 원래 그 뜻이‘오래되고 낡아서 제 구실을 못하는 것’인데 그게 무슨 말이냐고요?
10. 『평와집』서문
○벼슬이 높고 귀한 자는 겨우 시를 읊조리고 글을 짓는 법을 알 정도임에도 대개는 문집이 있어 세상에 돌아다닌다. 그러나 가난하고 지위가 낮은 자는 예술이 아무리 <詩經>이나 <離騷이소 : 굴원의 시>의 수준이 되고 문명을 숭상하는 시대를 만났다 해도 숨겨진 채 세상에 드러나지를 못한다.
11. 꽃을 가꾸며
○성인께서 <시경>을 刪定(산정 : 편집)하실 때 길쌈하는 여자와 농사를 감독하는 마름, 짐꾼, 수자리 군사들이 일하는 고통을 노래하고 사건의 전말을 서술한 시들에 대해서 비루하다고 하여 팽개치지 않으셨다.......제 스스로의 목소리로 우는 가을벌레의 울음소리가 혀가 잘린 앵무새의 노래보다 나은 법이다.
12. 살아있는 허승암(허만 : 이용휴의 맏사위)을 위한 묘지명
○남의 허물을 드러내기를 싫어하여,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을 때에도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을 드러내지 않고 전혀 모르는 듯 행동하였다.
○검소한 성품이라, 헤진 옷을 입고 절룩거리는 노새를 타고서도 좋은 옷 입고 힘센 말 탄 것보다 편안하게 여겼다.
○거처하는 곳에는 연못을 파서 물고기를 기르고, 기이한 나무와 좋은 화초를 쭉 심어두고 날마다 그 사이에서 소요하였다.
13. 김명로군을 제사하는 글
○아! 인생이란 백년을 定限으로 삼아 上壽로 삼는다. 그대는 안락함으로 거처를 삼고, 즐겁게 지내는 것으로 가족을 삼았다. 부인은 음식을 잘 만들었으니 궁궐의 요리가 부러우랴? 아이들이 독서를 잘하니 음악에 대신할 수 있다. 이렇게 살고도 만약 또 백년의 수명을 다 채운다면 다른 사람이 상수를 산 것에 비해 두 배쯤 더 살아 한 이 백년은 산 셈이 된다. 세상에 어찌 그런 일이 가능하랴? 이제 백년 수명에서 반을 덜어 50세를 산 데에는 긴 것은 자르고 짧은 것은 길게 하여 평등하게 만들려는 하느님의 뜻이 담겨 있다. 달관한 사람이라면 그 뜻을 순수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14. 김홍도의 초상화에 부쳐
○김홍도군이 申君(申潤福)을 시켜서 자기 얼굴을 그리도록 하였다......... 그저 화가에 불과한 사람이 아니라 참으로 온아한 군자로구나!
▣금대 이가환 산문선
1. 다섯 가지 가르침
○효도와 우애와 충성과 신의는 가리키는 바가 분명한 개념이고, 당파란 것은 그 내용이 공허한 것을 이름한다. ‘당파를 만들지 말라’는 말은 기자의 가르침이다........미워해야 할 黨은 사적인 당이지 군자의 黨은 아니다.
2. 『풍요속선』서문
○천하에 性情이 없는 사람은 없으므로 詩를 짓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사람이라면 누구나 詩를 지을 수 있지만, 단, 性情이 桎梏(질곡 : 속박됨)된 자는 詩를 지을 수 없다. 성정을 질곡시키는 것으로는 富貴가 가장 심하다......고금에 이름난 시가 곤궁하면서도 지위가 낮은 사람에게서 많이 나온 까닭이다.
3. 서북방의 인재
○국가에서는 子午卯酉가 들어간 해를 式年으로 삼아 그 해에 詩賦와 三經義 ,四書疑問을 시험하여 선비 200명을 선발하는데, 이들을 進仕라고 부른다. 이조에서는 그들 가운데 특출난 자를 가려 뽑아 관리에 임용한다.
진사시험이 끝나 임금님께서 대궐에 임석하셔서 합격자를 발표할 때에는 언제나 200명 모두가 대궐 뜰에 들어가 머리를 수그린 채 차례에ㅐ 따라 호명하는 대로 절하고서 교지를 받는다. 그리고 교지를 가슴에 꼭 껴안고 종종 검음을 쳐서 밖으로 나온다. 모두가 기러기처럼 나란히 걸어서 앞으로 나아갔다가 물고기처럼 줄지어 뒤로 물러나 오는데, 그때까지는 서로 아무런 차별이 없다.
그러나 대궐문을 나서면 사정이 다르다. 서울과 서울 부근 고을에서 사는 사람은 대체로 관리에 임용이 되어 현령이나 목사에 이른다. 그들은 화사한 의복에 건장한 말을 타고 영화와 부를 누리다가 인생을 마친다. 그 반면에 먼 지방에 사는 사람은 바로 행장을 꾸려 고향으로 돌아간다. 난삼 한 벌을 입고 軟巾 한 개를 쓰고서 집안 어른에게 절하고, 조상의 묘에 가서 배알한 다음 친지를 두루 찾아뵙는다. 집안사람들은 즐거워 떠들썩하고, 마을 사람들은 목을 빼고 구경하며 열흘을 보낸다. 그러나 그것뿐이다.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져 출중하다고 하여도 하나같이 벼슬 없이 베옷을 이복서 산골짜기에 처박혀 살다 죽는다. 슬픈 일이다.
성상이 등극하신 지 10년째 되던 해(1786)에 나는 정주의 수령으로 부임하였다. 이 고을에 進仕題名案이란 것이 있어 가져다 검토해보니 경태 경오넌(1450)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름을 올린 자가 약간 명이었고, 그 가운데 관리에 임용된 자가 겨우 약간 명이었다. 아! 하늘이이들을 벼슬자리에 제한하려고 했는가? 그렇다면 무엇 하러 재능을 부여하여 진사의 이름을 얻게 만들었단 말인가? 국가가 이들의 임용을 막으려 했는가? 법령을 뒤져 보았으나 그런 조항이 없다. 게다가 성상께서는 관료를 임용하는 시기가 되면 언제나 서북의 인재를 거두어 쓰라는 당부를 지극히 간절하게 내리곤 하신다. ........ 이 고을에서 관료에 임용된 자가 약간 명인데 그들 모두는 백 년 이전에 임용된 자들이요, 현재에는 전혀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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