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주지 않는 삶
조선후기 傳과 記事 모음집
진재교 편역
역사에 묻힌 참된 삶의 보고서(역자)
傳과 記事(紀事)는 인물이나 사건을 사실대로 기술하는 장르다. 傳은 史官이 기록한 공적인 역사서이며 史傳이라고 부른다. 記事는 史官이 역사서에서 놓친 것을 文人과 學士들이 기록한 것이다.
조선후기 사대부와 閭巷의 일부작가들은 세상에 칭송받을 만한 업적과 행동을 남겼지만, 공식적인 역사서와 서책에 실리지 못하고 인멸되어 버린 사건을 적극 포착하였다. 이 책은 개인문집에 수록된 전과 기사 중 특히 시대상을 잘 포착한 인물과 사건들을 가려 뽑았다. 그래서 이 책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의 행적과 사건의 전말은 그야말로 조선조 후기 사회의 내면 풍경이며 자화상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자신의 주체를 굳게 세워 세속적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꿋꿋하게 인생의 길을 걸었던 인물이 대부분이다.
1. 알아주지 않는 삶 : 안용복
●저자 : 원중거(1719-1790) 중인, 1763년 계미통신사에 참여, 『화국지』에 수록
2. 천주교의 서민 지도자 : 최필공
●저자 : 홍양호(1724-1802) 『이계집』 관찰사, 이조판서
3. 인정받은 기술자의 행복 : 최천약
●저자 : 이규상(1727-1799) 『병세재언록』
4. 과학자로 살아가기란 : 김영
●저자 :서유본(1762-1822) 서호수의 아들
5. 지식을 유통시킨 책장수 : 조생
●저자 : 조수삼(1762-1849) 『추재집』
●영조 신묘년(1771)때의 일이다. 청나라 사람 朱璘이 지은 『명기집략』에 우리나라 태조와 인조를 모독하는 문구가 있었다. 중국에 전하는 그 책을 거둬들여 불태우고 책을 팔았던 자들을 모두 잡아 죽였다. 당시에 나라 안 책장수들은 모두 죽었으나 조생만은 미리 알고 멀리 달아나 죽음을 면했다.▶실제로는 1명이 처형당하고 8명은 흑산도로 유배당하였다.
6. 조선에서의 새로운 인생 : 김충선(1671-1642)
●저자 : 김진항, 여항문인
●加藤淸正의 우선봉장으로 나이는 22세
7. 조선 최고의 국수 : 덕원령(군), 유찬홍,
●저자 :김도수(1699-1742) 『춘주유고』, 서얼
●조선의 국수 : 덕원군, 이서구, 이옥, 홍세태, 김려 등
8. 바둑 인생 : 정운창(정생)
●저자 : 이서구(1754-1825) 『自問是何人言』
9. 뒤집기의 고수 : 김종기
●저자 : 조희룡 『호산외기』
10. 글을 팔아 세상을 속이다 : 유광억
●저자 : 이옥(1760-1812)
11. 유랑 지식인의 존재방식 : 賈秀才
●저자 : 김려(1766-1821) 『담정유고』
12. 산수에 미친 사람 : 정 란
●저자 : 강이천(1769-1801) 『중암고』
●낙동강, 덕유산, 방장산, 대동강, 태백산, 소백산, 단발령, 금강산, 제주도
13. 기이한 천민 지식인 : 박돌몽
●저자 : 김낙서, 여항문인
●박돌몽은 포수로 초시에 합격했지만 회시에 떨어지고 말았다. 얼마후 감옥을 담당하는 아전이 되었는데 나이 사십에 죽었다.
14. 유랑시인 김삿갓 : 김대립(김병연)(1807-1863)
●저자 : 신석우(1805-1865) 『해장집』
●정조 말년에 치러진 慶科를 보면 문과 응시자가 15만, 무과응시자가 3만 5천에 이르렀다. 당시 서울 인구가 20만 내외이니 과거 응시자의 폭주현상을 짐작할 수 있다.
15. 참된 의원의 길 : 조광일
●저자 : 홍양호, 『이계집』
16. 몸 안에 약이 있다 : 이동
●저자 : 조희룡, 『호산외기』
●당시 종기로 목숨을 잃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효종과 정조는 종기로 목숨을 잃었다. 사실 종기는 치사율이 매우 높은 중병이었다.
●1977년 11월 말(방학이 시작되던 즈음) 어느 날 시내에서 집에 오는데 몸살기운이 있더니만 높은 열이 오르며 몸을 가누기가 힘들었다. 다음 날 김제 약국에서 감기몸살 약을 지어다 먹었는데 전혀 차도가 없고 몸을 가누기가 힘들어 화장실을 벽을 잡고 몸을 기대며 갈 정도가 되었다. 다음날 상정 잿빼기까지 간신히 걸어서(걷기가 힘들어 평소 7분 거리를 20여분 걸어서) 버스를 타고 이리시내에 나가 강외과에 갔다. 원장님이 먼 인척간으로 우리 집의 가정의 처럼 의지하는 분이다. 몇 마디 물으시더니
“어디 옷을 벗고 침대에 누워 봐!”하시고는 몸을 살피시더니 오른발 허벅지의 종기를 찾아 내셨다. 원장님이 속에 들어있는 종기라는데 겉으로는 그저 벌레가 문 정도로 약간 그 부위가 붉으스레 한 정도였다. 원장님이 칼로 십자형으로 째고 고름을 빼는데 정말 많은 양의 고름이 나왔다. 난생 처음 링겔을 맞고 씻은 듯이 몸살기운이 가시고 다음날은 말끔하게 나았다. 그 흉터는 지금도 크게 남아있다.
아! 만일 조선시대에 태어나 종기를 잘 아는 한의사가 없는 곳에서 살았다면 영락없이 나는 스물 다섯에 죽었다. 아니 일제 강점기만 해도 우리 마을에서 병원에 가려면 김제읍으로 갔는데 버스가 다니지 않으니 소구루마를 타고 나가야만 했고, 대부분의 가난한 집에서는 그저 마을 한의원에 의지하였는데 韓醫로는 저런 큰 종기는 치료가 불가능하여 사람들은 죽기까지 한 것이다. 좋은 세상에 태어나지는 않았으나 나는 정말 좋은 세상에서 살고 있다. 더 이상의 행복을 바라는 것은 사치다.
17. 명의의 처방전
●저자 : 유재건 『이향견문록』
●藿香正氣散(곽향정기산)으로 모든 병을 고치는 어느 늙은 훈장의 이야기이다. 이 글에 이런 내용이 있다.
구리개(소공동 부근)에 있는 어느 약방에 어떤 상민이 와서 말했다.
“아내가 이제 막 아이를 낳으려고 정신을 잃었으니 원컨대 좋은 약으로 지어 주십시오.”
주인이 말했다.
“의원에게 물어 본 뒤 처방을 가져오면 내 마땅히 약을 지어 주리다.”
그러나 상민은 굳이 약 한첩을 구하려 하였다.
이 글을 통하여 조선시대에고 의약분업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한의원은 처방하고 약방에서는 약을 지어주고 있다.
18. 더불어 사는 세상 : 김만덕
●저자 : 체제공(1720-1799)
●제주도에 흉년이 든 것은 정조 19년(1795)이다.
19. 여성 경학가 : 임윤지당(1721- 1793)
●저자 : 이규상(1727-1799) 『병세재언록』
20. 여협의 미덕 : 김조이
●저자 : 송지양(1782-?)
●召史 : 양인의 아내나 과부를 부르는데 이두로 <조이>로 읽는다.
●조선사회는 거의 3년 꼴로 흉년이 들었다.
●맹자 : “恒産이 있어야 恒心도 생긴다.”
21. 여항인의 후원자 : 임준원(내수사 아전 출신)
●저자 : 정내교(1681-1757) 『완암집』
●임준원은 번번이 좋은 철에 아름다운 자연 경치를 만나면 여러 벗을 불러 아무개 장소에서 모이도록 약속했다. 임준원이 주관하여 술과 안주를 마련해 와서 시를 읊으며 취하도록 마시고 실컷 놀다가 흩어지곤 했다. 이런 모임이 정해진 것처럼 되었지만 오래도록 귀찮게 여기지 않았다. 서울에서 제법 재주와 명성이 있는 사람들은 이 모임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을 수치로 여겼다.
22. 참다운 관리란 : 김수팽(호조 서리)
●저자 : 조희룡 『호산외기』
●청렴결백하고 강직한 성품에다 행정력까지 겸비한 호조의 서리 김수팽의 생애를 조명
23. 불세출의 조선 무사 : 서얼 백동수(1743-1816)
●저자 : 성해응(1769-1839)
●젊은 나이에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이 됨. 장용영 초관(1791), 무예도보통지 편집 참여, 비인현 현감, 박천군수
24. 거침없는 삶 : 장오복(협객, 吏曹의 衙前)
●저자 : 조희룡 『호산외기』
25. 참다운 인생이란 : 임자강(兵曹의 書吏)
●저자 : 심재 『송천필담』
●임자강은 吏文(관청에서 행정사무와 관련하여 쓰이던 문체. 우리나라의 이문에는 이두가 들어감.)으로 세상에 유명하였으며, 또한 문식이 있는 것으로 일컬음을 받았다 한다.
26. 시골의 무명 악사 : 민득량(가야금 연주)
●저자 : 이덕주(1695-1751)
●당시 관에 소속된 악사가 아닌, 무명의 악사들은 처지가 매우 어려웠다....악사들의 예술적 재능을 인정하거나 악사의 삶을 이해할 사람이 지방 어디에도
없었다.
27. 악사의 내면 엿보기 : 김성기(1649-1724) 거문고
●저자 : 이영유(1743-1804) 『운소만고』
●김천택의 노래와 김성기의 거문고는 환상의 앙상블을 이루어 당시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28. 다시 못 볼 신필 : 김홍도(1745-1806)
●저자 : 강세황
●김군사능은 근래에 우리나라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전공하여 잘하지 않은 바가 없었다. 인물, 산수, 신선과 부처, 꽃과 과일, 동물과 벌레, 물고기에 이르기까지 모두 妙品에 들어, 옛 사람과 비교해도 거의 대적할 만한 이가 없을 것이다.
●대체로 화가는 모두 기존의 작품을 따라 학습하고 힘을 쌓아야 곧 비슷함이 있는데, 뜻을 독창적으로 하여 홀로 자득하여 공교함이 天造를 빼앗는 경지에 이른 경우라면 어찌 하늘이 부여해준 특별한 재주로 세속을 뛰어넘은 것이 아니랴?
●지금 사능의 사람됨은 용모가 아름답고 마음속에 품은 것이 깨끗하여, 보는 자들은 모두 高雅하며 속세를 초월한 인물이지, 여항의 용렬한 무리가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29. 단원기 우일본 : 김홍도(1745-1806)
●저자 : 강세황(1713-1791) 『표암유고』
●그 눈썹이 맑고 뼈대가 빼어나 음식을 지어 먹는 세속 사람의 분위기가 없었다.
●그는 풍속의 모습을 옮겨 그리는 것을 더욱 잘하였다. 이를테면 사람이 살아가면서 수천가지로 나타나는 것과, 길거리, 나루터, 가게, 시장, 시험장과 놀이마당 등 한 번 그리면 사람들이 모두 손뼉 치며 기이하다고 외치니 이것이 바로 세상에서 말하는 김사능 풍속화다.
30. 그림에 미친 화가 : 최북(1712- ?)
●저자 : 남공철(1760-1840)
●그는 그림을 잘 그렸지만 스스로 눈을 찔러 한 쪽 눈을 잃었다. 그는 또 술을 즐기며 떠돌아다니기를 좋아하였다.
●최칠칠은 하루에 대여섯 되씩 술을 마셨는데....집안의 재산이 날로 줄어들고 가난해지자, 드디어 평양에서 동래로 나그네처럼 떠돌며 그림을 팔았다. 그러자 두 지역의 사람들이 비단을 들고 끊임없이 문을 드나들었다.
●최칠칠의 그림은 날로 세상에 알려져, 세상에서는 그를 ‘최산수’라 칭하였다. 그러나 꽃과 풀, 동물, 기이한 돌, 말라죽은 나무를 더욱 잘 그렸고, 미친 듯한 솜씨로 장난삼아 그린 것도 보통 화가들의 솜씨를 훨씬 뛰어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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