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록

이규보-봄 술이나 한잔 하세

청담(靑潭) 2013. 10. 21. 10:34

 

 

봄 술이나 한잔 하세

 

 

이규보(1168-1241) 지음

 

서정화 옮김

 

이규보론(옮긴이)

 

 

이 산문집은 이규보의 東國李相國集 중에서 함께 읽을 만한 글을 뽑아서 번역한 것이다.

이규보는 무신집권기에 활동한 문인이며... 기억력이 뛰어나 한 번 보면 모두 기억하였다....22세에 사마시에 일등 합격하였다. 23세에 예부시에 합격했으나 등수가 낮아 사양하려 했다....이후 31세까지 벼슬을 받지 못했다.

최충헌 집권기인 1201(32)全州牧司祿으로 부임하였다가 이듬해 파직되었다....51세까지 주로 문학과 관련되는 벼슬에 종사하였다. 52세 봄에 탄핵을 당하여 좌천되었다가...63세에는 팔관회를 잘못 주관한 일에 연루되어 위도로 귀양을 갔는데...1237(70)致仕하였다.

이규보는 철저하게 문인으로 자처하였고, 그 길을 실천하고자 하였던 인물이다....문학에 대한 애착이 남달라서 남에게 지고는 못 배기는 성격이었다.

이규보는 어릴 때부터 죽을 때까지 자신의 재주는 문학에서 구현할 수 있음을 알고 있었고, 또 이를 실천했던 인물이다. 그는 문학을 통해 생각하고 느끼고 표현하였고, 교제하고 벼슬하고 출세하였다.

이규보는 기존의 관습이나 규범에 얽매이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1. 융통성 없는 바위

사람은 진실로 만물의 영장인데 어찌하여 자신의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며 본성대로 하지 못하고 항상 사물에게 부림을 받거나 사람들에게 떠밀려 다니는가?

 

2. 조물주와의 대화

조물주가 말하였다.

사람과 사람이 태어나는 것은 모두 아득한 태초에 정해져서 저절로 나타난 것이니, 하늘도 스스로 알지 못하고 조물주 역시 알지 못한다네. 백성이 태어나는 것은 본래 스스로 태어날 뿐이지 하늘이 태어나도록 한 것이 아니며 오곡과 뽕, 삼이 생산되는 것은 본래 스스로 생산되는 것이지 하늘이 한 것이 아니라네.”

 

3. 우레소리에 놀라지 않는 법

(내가) 길을 가다가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면 눈길을 주지 않으려고 머리를 숙이고 고개를 돌려 달아났다. 그러나 머리를 숙이고 고개를 돌리는 것은 그런 마음이 없지 않다는 것이니, 이것만은 스스로 미심쩍은 일이다.

일반사람의 마음을 벗어나지 못하는 일이 또 하나 있다. 남이 나를 칭찬해주면 아주 기뻐하고, 비방하면 몹시 언짢아한다...옛사람 중에는 깜깜한 방에서도 자신의 마음을 속이지 않는 자가 있었다고 한다.

이규보는 자신은 일반인과 매우 남다른 능력이나 우월성을 지닌 사람으로 스스로 자처하는 듯하나, 기실 일반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못함을 토로하고 있다. 아름다운 여인을 길에서 만나면 쳐다보고 싶고 쳐다보는 것은 건강한 남성이라면 지극히 정상적인 행위이고, 나를 칭찬하면 부끄러우면서도 기쁘고 비방하면 언짢아지는 것은 人之常情이다. 이규보는 그저 보통사람일 뿐이다. 이 책을 통하여 그는 결코 문장에도 크게 비범하지 않고 성품과 인격적 측면에서도 더도 덜도 없는 평범한 보통사람에 지나지 않음을 여실히 알 수 있게 해준다.

 

4. , 이규보에게

이른바 이규보란 자는 곤궁하고 길이 막혀 낮은 벼슬자리 하나 얻지 못하였습니다. ...공경대부들이 그의 이름을 알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세상 물정에 어두워 일을 적절하게 처리하지 못하는 사람이라 그를 채용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5. 나의 선배들

내가 젊었을 때 광기가 이와 같아 세상 사람들이 나를 광객이라 불렀다.

 

6. 조물주와의 대화

! 세상 사람들은 평소 한가롭게 지낼 때는 용모와 언어가 사람 같고 관대와 복식이 사람 같다. 한 번 관직을 맡아 공무를 수행하게 되면 한결같아야 할 행동은 아래위로 일정함이 없고 한결같아야 할 마음은 앞치락 뒤치락 동일하지 않다. 삐딱하게 보고 거꾸로 들으며 근본이 이리저리 흔들려 줄곧 혼란스러운데도 中道로 돌아올 줄 몰라, 끝내 궤도를 잃고서 넘어지고 거꾸러진 뒤에야 그친다.

 

 

 7.말조심

친하고 가깝다고 하여

나의 비밀을 누설하지 말라.

총애하는 처첩은

한 이불 속에서도 생각은 다른 법.

종이나 마부라고 하여

경솔하게 말하지 말라.

겉으로는 아양을 떨어도

속으로는 엉뚱한 생각을 품고 있는 법.

하물며 나와 친하지도 않고,

내가부리는 사람도 아님에랴!

제가 이번에 구설수에 올랐습니다. 제가 회장으로 있는 어느 모임에서 사단이 났습니다. 친목모임으로 그 어떤 물질적 이익이나 정치적 성향은 배제하는 순수한 친목 동기모임이고 항상 좋은 사람들로만 여겼던 회원들인데 회장인 제가 안내한 메시지 내용이 어느 회원 하나에 의해 정치적으로 악용(?)되어 신문기자에게까지 제보되고 기사화됨에 따라 많은 생각을 하게 되였습니다. 그 회원이 야속하기도, 정치가 무섭기도 하고, 제 자신도 많은 반성을 해 봅니다. 말조심, 꼭 해야 합니다.

 

 

8. 뇌물이 통하는 세상

! 이렇게 조그마한 배가 가는데도 오히려 뇌물을 주느냐 마느냐에 따라 그 나아가는 것이 빠르고 늦으며 앞서고 뒤처지는 차이가 있는데, 하물며 벼슬길에서 경쟁함에 내 수중에 단 한 푼도 없으니 지금까지 낮은 벼슬자리 하나 얻지 못하는 것이 마땅하구나.”

이규보는 32세 때 全州牧 司祿이라는 벼슬을 얻어 부임합니다. 이곳 우리고장의 이곳 저곳을 업무차 순시하면서 남긴 기록들이 있습니다.

 

9. 집을 수리하다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잘못을 알고도 빨리 고치지 않으면 나무가 썩어 다시 사용할 수 없는 것처럼 잘못될 것이요, 잘못을 알고서 고치기를 꺼려하지 않는 다면 집의 재목들을 다시 사용할 수 었는 것처럼 다시 좋은 사람이 될 것이다.

나라의 정치 역시 마찬가지다. 모든 일에는 심하게 백성을 해치는 것이 있는데, 대충대충 개혁하지 않다가 백성이 못살게 되고 나라가 위태로운 이후에 급하게 고치려 한다면 일으켜 세우기가 어렵다.

 

10. 정원을 손질하며

도성 동쪽에 큰 정원과 작은 정원이 있는데...매년 여름 오뉴월에는 풀과 가라지가 무성하게 자라 사람의 허리까지 올라왔지만, 오히려 종들에게 그것을 베라고 시키지 않았다. 집에 있는 작달만한 종 세 명과 야윈 아이종 다섯 명이 그것을 보고는 매우 부끄러워하여 무딘 호미 한 벌을 가지고 풀을 베니겨우 서너 보쯤 가다 그만두곤 했다.....이것은 애가 감독을 느슨하게 하고 종들이 힘쓰는데 게으르기 때문이다. 마침내 용서해 꾸짖지 않고 아래에 있는 작은 정원을 스스로 손질하였다. 1194(27)

 

11. 술잔으로 탐관오리를 대리다.

원외랑 최홍렬은 의지가 굳세고 바른 사람이다. 남경에서 서기로 있을 때였다. 권세가 김의문이 파견한 노비중 에서 주인의 권세를 믿고 제멋대로 남을 해치는 자를 잡아다 죽였는데, 이 때문에 그는 유명해졌다.

 

12. 아비의 슬픔에 부쳐

어린 중 法源은 애 아들이니, 나의 李氏 性을 버리고 부처를 따른 자다. 열한 살에 규공스님에게 가서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는데, 선사를 섬기는 것이 매우 삼갔다. ....절에 있을 때 갑자기 병에 걸려 우리 집에 와서 하룻밤을 묵고는 다음 날 죽었다. 3일뒤에 산에 묻었다. 아아! 어찌 이와 같이 빠르단 말인가?.....중이 된지 16개월 만이었다.

 

13. 누구와 시를 논할까

나의 벗 全坦夫履之(이지). 돈독하고 신의가 있고 현명하고 민첩하며 문학에 뛰어난 사람이다. 벼슬은 中軍綠事에 이르렀다. 나보다 먼저 벼슬을 시작하였지만, 내가 이미 補闕(보궐)에 올랐을 때에도 여전히 승진하지 못하였다. 貞祐(금 연호) 연간 어느 해에 元帥의 막부 보좌관이 되어 국경을 침범한 거란을 정벌함으로써 겨우 8품으로 승진하였다. 그러나 마침내 전장에서 죽고 말았다. 나는 이를 슬퍼하여 다음과 같이 哀詞를 짓는다.

 

14. 낙방한 선배에게

요컨대 고시관에게 채용되기를 구하는 것은 농사짓는 것과 비슷합니다....요컨대 농기구를 반드시 잘 수리한 다음 밭을 갈고 또 이어서 김을 매는 등 때에 맞게 노력했는데도 뒤에 天時地利가 보답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천지의 허물이지 밭가는 사람의 잘못이 아닙니다.

 

15. 조물주와의 대화

이규보의 과거 동기생 중에는 현달한 사람과 문장에 뛰어난 사람이 많았는데, 이규보는 이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였다. 그리고 동료애도 남달라 중간에 벼슬이 끊겨 곤궁하게 살고 있는 동기생 申禮나 예순의 나이에도 여전히 관직을 얻지 못한 최극문을 당시 집권자인 최우에게 추천할 정도였다.

 

16. 봄 술이나 한잔 하세

전날 새벽에 일어나 우연히 상자 속에 갈무리 해 두었던 내 詩藁(시고)를 보게 되었습니다. 시권 속에는 옛날 함께 노닐던 친구들의 이름이 쓰여 있었는데, 반은 이미 귀신이 되었습니다. 나머지는 각각 천리 흩어져 소식조차 들을 수 없는 사람이 많았으니. 이것을 생각하다가 나도 모르게 목이 메고 놀라 소리쳤습니다. ...약하고 약한 사람의 목숨이 어찌 하나같이 이와 같단 말입니까?

! 족하와 나만은 다행히도 별탈이 없고, 날마다 함께 노닐면서 반목하거나 틈이 있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모임과 흩어짐이란 일정함이 없기에 오늘 모였다가도 내일 또 각각 어디로 갈지 알지 못합니다.

......최근에 우리 집에서 술을 빚었는데, 자못 술 익는 냄새가 솔솔 풍겨 먹을 만하니, 차마 그대들과 함께 마시지 않겠습니까? 하물며 지금 살구꽃이 살작 폈고 봄기운이 확 풀려 사람의 마음을 도취시키고 다감하게 만드니, 이와 같은 좋은 계절에 마시지 않고 무얼 하겠습니까?

 

본인은 최씨무신정권에 충성하는 전형적 문인으로며 나름대로 출세하며 70세에 致仕하고 74에 죽는다. 비록 뛰어난 글을 남기거나 휼륭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을망정 국가를 위해 일하고 부귀영영화도 누려보다가 74세까지 사는 長壽를 누린다.

 

17. 물러가라, 시 귀신아

부귀한 사람에게 오만하게 굴고 능멸하는 것, 방종하고 게으른 것, 언성이 높아 공손하지 못한 것, 안색이 뻣뻣하여 부드럽지 못한 것, 여색을 보면 쉽게 유혹 당하는 것, 술을 마시면 더욱 거칠어지는 것은 모두 네가 그렇게 만든 것이지 어찌 나의 본심이겠느냐?

 

18. 시를 지을 때 버려야 할 아홉 지

1. 옛 사람의 이름을 많이 사용하는 것은 수레에 귀신을 가득 채운 체다

2. 옛 시인의 구상을 훔치는 것은 잘 훔치더라도 옳지 않거니와 제대로 훔치지도 못하는 것은 어설픈 도둑이 쉽게 체포되는 체다.

3. 어려운 운자를 달되, 근거가 없는 것은 강한 활을 감당하지 못해 쩔쩔 매는 체다.

4. 자신의 재주를 헤아리지 못하고 함부로 운을 다는 것은 술을 지나치게 많이 먹은 체다.

5. 어려운 글자를 자주 사용하여 남을 쉽게 미혹되게 하는 것은 구덩이를 파서 맹인을 인도하는 체다.

6. 말이 순조롭지 못한데 억지로 인용하는 것은 남을 윽박질러 자신에게 동조하게 만드는 체다.

7. 평범한 말을 많이 사용하는 것은 촌사람들이 모여 이야기하는 체다.

8. 꺼리는 말들을 함부로 사용하는 것은 존귀한 을 능멸하는 체다.

9. 시어가 거친데도 다듬지 않는 것은 온 밭에 잡초가 무성한 체다.

이상의 마땅하지 않는 체를 극복한 뒤라야 시에 대해 이야기할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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