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록

총, 균, 쇠

청담(靑潭) 2013. 11. 14.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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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병균·금속은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바꿨는가?

 

제레드 다이아몬드(1937 - ) 지음

김진준 옮김

 

소감기

 

  이 책은 1998년에 출판되어 퓰리처상을 받았고 당시에 우리나라에서도 출간되었는데 이제야 읽게 되어 부끄럽습니다. 우리는 역사를 공부할 때 인간에 의한 역사에만 매달립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연의 지배를 받는 존재이니 인간의 의지와 힘으로만 역사가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잘 압니다.

  6일전인 118일 필리핀에 불어 닥친 태풍 하이엔은 순식간에 도시와 농토를 초토화시키며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수만 명의 사람들을 기아에 허덕이게 하고 있습니다. 만일 오늘날과 같은 교통이나 통신, 재난구조 기능이나 장비, 다른 여러 나라들의 구호와 원조가 없다면 수만 명 내지 수십 만 명이 죽어갈 것이 거의 틀림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지리적 조건이 지난 13천년 동안 전 세계인의 역사에 미친 영향을 밝히고 있으니 그 의미와 가치가 심대합니다. 역사학도로서는 반드시 읽어야할 책임을 절감하며 제레드 다이아몬드 교수의 노력에 감사드립니다.

 

 

저자의 프롤로그

 

민족마다 역사가 다르게 진행된 것은 가 민족의 생물학적 차이 때문이 아니라, 환경적 차이 때문이다. 지리 환경은 분명히 역사에 영향을 미친다. 문제는 그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그리고 과연 역사의 광범위한 경향도 지리적 환경으로 설명할 수 있는지를 밝혀내는 일이다.

아직도 유럽과 동아시아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북아메리카로 이주한 사람들이 현대 세계의 부와 힘을 독점하고 있다.

결국 B.C 11000A.D 1500년에 각 대륙의 발전 속도가 제각기 달랐던 것이 곧 1500년의 기술적 정치적 불평등을 낳았던 것이다.

현대 세계에 남아있는 6000여 언어의 대부분이 곧 사라져버릴 위기에 처했다.

유럽인은 유전적으로 아프리카인보다 지능이 높고 특히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보다는 더욱더 높다고 생각했다.

사실상 현대의 석기시대 사람들은 대체로 산업화된 사람들에 비해 지능이 낮기는커녕 오히려 더 높은 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1부 인간사회의 다양한 운명의 갈림길

1장 문명이 싹트기 직전의 세계상황

2장 환경차이가 다양화를 빚어낸 모델 폴리네시아

3장 유럽이 세계를 정복한 힘의 원천

 

2부 식량생산의 기원과 문명의 교차로

4장 식량생산의 기원

5장 인류 역사가 갈라놓은 유산자와 무산자

6장 식량 생산민과 수렵 채집민의경쟁력 차이

7장 야생 먹거리의 작물화

8장 작물화하는 데 적합한 식물의 식별과 성패의 원인

9장 선택된 가축화와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

10장 대륙의 축으로 돈 역사의 수레바퀴

 

3부 지배하는 문명, 지배받는 문명

11장 가축의 치명적 대가, 세균이 준 사악한 선물

12장 식량 생산 창시와 문자 고안과의 밀접한 연관

13장 발명은 필요의 어머니

14장 평등주의부터 도둑 정치까지

 

4부 인류사의 발전적 연구과제와 방향

15장 대륙간 불균형 이론과 원주민들이 낙후된 원인

16장 동아시아의 운명과 중국 문화의 확산

17장 동아시아와 태평양 민족의 충돌

18장 남북아메리카가 유라시아보다 낙후됐던 원인

19장 아프리카는 왜 흑인의 천지가 됐는가?

 

에필로그 과학으로서의 인류사의 미래

 

추가논문 일본인은 어디에서 왔는가?

 

다른 동아시아 민족, 특히 한국인과는 외모와 유전자 면에서 흡사한 점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일본인에게서 유전적인 특이성을 찾기 어렵다는 결론이 난다.

유럽외 지역의 여러 나라들과 달리, 일본은 개화를 시작하고 19세기 후반 산업화를 일굴 때, 정치적 독립과 문화를 보존했다. 이는 놀라운 성과라 아니할 수 없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전, 일왕 히로히토는 마침내 일본인에게 본인이 신의 후손이 아니라는 사실을 공표했다.

일본에서 가장 중요한 고고학적 유적으로 A.D 300에서 A.D 686년 사이에 세워진 158개의 거대한 고분군이 남아있다. 일본의 고대 왕가와 왕실의 유물이 보존되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이 유적지는 여전회 왕실 유물 관리소의 소유로 남아있다. 고분을 조사하는 것은 신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이유로 금지되어 있고, 이런 까닭에 일본 왕실의 기원을 연구하는 것 또한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그 기원은 한국일지도 모른다.)

일본과 한국에는 A.D 300700년에 사람들이 왕래하고 물자를 교역했다는 고고학적 증거가 매우 풍부한데, 일본에서는 이를 두고 일본이 한국을 점령했다는 증거이며, 한국에서 노예와 장인을 보내온 것이라 해석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한국이 일본을 점령했고, 일본 왕실을 세운 이들은 한국인이라고 맞서는 식이다.

역사서가 쓰이기 이전의 일본을 대표하는 유명한 유물이 있다. A.D 5세기 무렵의 에다후나야마 검이 그것이다. 은으로 장식된 이 철제검에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문장 중의 하나가 새겨져 있다. 글은 위대한 왕과 신하, 그리고 초안이라는 한국인을 언급한다.

오늘날 일본과한국은 모두경제부국이 되었다.

일본인은 유전자와 두개골 형태뿐만 아니라 외모까지 다른 동아시아 지역, , 중국 북부와 시베리아 동부, 특히 한국에 사는 사람들과 흡사하다.

어족 중에서 일본어와 한국어는 어쩌면 다른 알타이족 언어보다도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을지도 모른다.

연대기(일본서기)에는 한국 자체의 문화와 한국을 통한 중국문화가 일본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음이 명확히 드러난다. 불교가 도입되고, 글을 쓰게 되었으며, 여러 기술과 관료제가 일본에 유입된 것이다. 연대기에는 일본에 사는 한국인, 한국에 사는 일본인에 대한 설명도 있다.

일본인들이 토기를 만들어 쓴 유일한 고대인은 아니었다. 토기는 그 옛날, 인류가 다양한 시기와 장소에서 독자적으로 발명한 유산이다.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토기는 일본에서 약 12700만 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일본 토기는 비옥한 초승달 지대나 유럽의 것보다 1000년이나 오래된 것이고, 여전히 세계기록을 세우고 있다. ...최초의 죠몬토기는 일본 남단의 섬, 규슈에서 출토되었다.

죠몬 일본은 외부와 차단되어 1만년이란 시간동안 놀라울 정도로 변한 게 없는 우주의 완고한 축소판이었다. 너무나 쉽고 급격하게 변하던 세계에서, 안정을 지켜낸 하나의 섬이었던 것이다. ....B.C 400년경, 죠몬의 생활양식의 막바지로 치닫던 때로 돌아가 보자, 당시 중국은 부유한 엘리트 계층과 가난한 평민으로 이루어진 여러 왕국(전국시대)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한국 역시 이미 수천년 전부터 농사를 지었고(벼농사는 B.C 2200년경부터 시작), B.C1000년경부터는 금속을 사용했다.

대한 해협과 동중국 너머에서 수천 년을 이어온 이러한 발전상을 고려할 때, 한국과 일부 교역을 하기는 했으나, 아직도 문자를 알지 못하고 석기를 쓰면서 수렵 채집을 하던 일본의 사정은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다.

야요이 철기는 수세기가 지난 후 자체적으로 철 제련과 제조 기술이 발달하기 전까지는 주로 한국에서 어마어마한 양을 수입해 왔다.

우리는 고고학적 발굴과 실망스러우리만치 모호한 후대의 기록을 통해 A.D 300년에서 700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정치적으로 통일된 일본이 출현했다는 사실을 희미하게 짐작할 뿐이다.

고분시대에 한국이 일본에 끼친 엄청난 영향은 불고, 문자, 승마, 새로운 자기, 야금술 등을 아시아 본토에서 일본으로 전파했다는 점이다.

B.C 400년의 한국인 식량 생산자들은 죠몬 수렵인들에서 막대한 이익을 취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인들은 이미 철기와 집약 농업에 관한 고도로 발달한 기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의 이주는 현대 일본인들에게 정말로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하라 수 있다. 비록 아직은 그것이 엄청난 규모의 이주였는지, 아니면 소수의 이주였지만 높은 인구 증가율에 힘입은 팽창이었는지는 말 할 수 없지만 말이다.

현대 한국어는 삼국을 통일한 신라의 언어에서 유래한 것이지만 신라는 일본과 그다지 긴밀한 관계를 맺지 않았다. 한국의 초기 연대기를 보면 삼국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했다. 신라에 복속된 고구려와 백제의 언어는 후세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부 전해지는 고구려의 단어들을 보면 현대 한국어보다 오히려 옛 일본어의 그것과 더욱 유사하다. 삼국이 통일되기 전인 B.C 400년경 한반도의 언어는 보다 다양한 형태를 띠었을 것이다.

 

2003후기 <··> 그 후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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