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경, 담배의 모든 것
이옥 지음 안대회 옮김
머리말
담배! 60년 내 인생에 참으로 愛憎과 많은 哀歡이 서린 물건이다. 내 일찍이 중학교 3학년 때, 황등에서 버스통학하는 우리 반 친구가 이리역 대합실화장실에서 몰래 담배피우는 행사(?)에 몇 차례 따라가 본 일이 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는 독서실에서 고3 형들이 피우는 담배를 한 개피씩 얻어 피어 보았다. 그러다가 한두 번 담배(희망)를 사서 피어보더니 3학년 때는 밤늦게까지 공부하면서 잠을 쫓으려 하룻 밤에 두 개피 씩 피웠다. 결단코 밖에서 피운 일은 단 한 번도 없다.
재수(1971)하면서 제대로 피우기 시작했다. 학원비도 없어 그저 집에서 공부하다가 독서실에 나가는 재수생인데도 엄마는 싼 담배는 건강에 해롭다며 좋은 담배(최고급 거북선)를 피우라 하셨다. 아! 어머니의 은혜는 끝이 없어라. 동네 친구들은 내가 담배를 저들에게 배우게 했다면서 나를 놀려대곤 했다.
그렇게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고 혼자서 기나긴 겨울밤을 라디오의 음악을 들으면서 지새우며 피우고, 벗들과 소주와 막걸리를 마시면서 피우고, 다방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피우고, 친구들과 하릴없는 시간을 죽이면서 피워대며 청춘을 보냈다. 담배는 젊은 청춘에게는 결코 없어서는 안 될 絶對不可缺의 필수소지품이었다. 담배를 떠나서는 젊음을, 청춘을, 낭만을 말할 수조차 없는 것으로 알았다.
술을 꽤나 마시고 살던 1990년경, 이리북중에서 근무하던 시절이다. 술을 마신 날 밤은 괜찮은데 다음날부터는 어김없이 잠이 막 들기 전에 기침이 나기 시작하고 목에서 가래가 올라와 며칠 동안을 거의 한 시간정도는 잠을 쉬이 들지 못했다. 몇 달이 지나도 여전해서 어쩔 수없이 담배를 끊기로 했다. 이후 일체 담배를 사서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지 않았다. 그러나 술을 마시는 장소에서는 한 갑씩 사기도 하고(남은 담배는 무조건 놓고 왔다), 술을 마시는 동안은 내내 피워대기도 하는 절반의 금연이었다. 그렇게 20년 세월을 보냈다.
2008년, 무주고에서 근무하면서부터는 술은 아주 적당히만 마셨다. 작은 읍내이므로 술집은 거의 다니지 않았으며, 담배는 술을 마시는 경우에는 여전히 한 두 대씩 얻어 피웠는데 어느 날 최진만 교무부장과 함께 술을 마시던중 내가 갑자기 완전금연을 선언했다. 술 마시는 경우에도 담배를 피우지 않겠다는 금연을 선언한 것이다. 선언은 선언일뿐...그러나 그 이후로는 가벼운 술자리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게 되었다.
지금도 나의 금연은 완전히 성공하지는 못한 상태이다. 지난 일요일(5일전)에도 초등학교 동창들과 격포횟집에서 기분 좋은 술을 마시면서 세 개피나 얻어 피웠다. 그러나 그리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다. 이제 술을 약간 취하게 마시면 기분 좋게 한두 대 얻어 피우는 정도인데, 그 기분이 너무 좋아서 그 정도만큼은 나 스스로에게 용서를 구하며 아직도 담배 맛을 조금은 은근히 즐기고 있다.
이제 24년째 담배를 소지하지 않고 사실상 비흡연가가 되면서부터 이제 누군가 담배를 피우며 곁을 지나치면 그 지독한 냄새가 역겹다. 담배 피우는 사람이 옆에서 애길 해도 고역스럽다. 담배로 인한 오랫동안 받았던 육체적 고통과 금연을 실천하지 못해 부끄러웠던 정신적 고민, 그리고 담배로 인한 많은 실수들이 있었으나 이제 다 지나간 아름다운 추억이다. 함께 담배 피우며 술을 마시며 많은 세월을 같이 했으나 이젠 멀리 떠나고 없는 사람들이 그립다. 아마 내가 자신 있게 사실상 금연하였노라 말할 수 있기에 지금은 나의 건강에도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고(90까지 건강하게?), 이런 글도 당당히 쓰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연경(烟經)이란 곧 <담배의 경전>이란 뜻이다. 1810년 이옥(李鈺 : 1760-1815)이 쓴 글이다. 조선시대에 지어진 거의 유일한 담배관련 단독 저술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 담배가 전해진 것은 지금부터 400년 전 광해군 시기이다. 크게 보면 17세기는 담배가 유입되어 확산되던 시기였고, 18세기는 빈부귀천, 남녀노소 할 것없이 예절도 없이, 마구 피우던 시기였다. 아마도 19세기에 이르러서야 우리나라의 담배예절이 서서히 생겨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1부 연경, 담배의 모든 것(이옥)
●나는 담배에 심한 고질병을 가지고 있다. 담배를 몹시도 사랑할 뿐만 아니라 즐기는 사람이다.
●본래 이름이 담박귀인데 우리나라에 이르러 남령초로 바뀌었다.
※1960년대 우리 집에서도 담배를 재배한 일이 있다. 담배 재배는 일손이 많이 가지만 수입이 다른 작물보다 두 배에서 4배까지 이르므로 농민들의 중요한 수입원이 되었다. 나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함께 담뱃잎을 따서 정성스럽게 엮은 뒤 햇볕과 그늘에서 번갈아 가며 정성스레 말리고 할아버지의 손길로 예쁘게 담뱃잎을 마무리하여 수매에 응하곤 했다. 재배하는 농가들이 대부분 좋은 등급을 받았다. 아! 그리운 할아버지! 내가 남은 삶의 절반(하루중 오전)을 보내려 하는 고향집을 아주 아름답게 가꿀(돈 많이 들이지 않고 직접 내손으로) 꿈에 부풀어 있는데 그 집의 이름은 할아버지의 호를 딴 芝山莊이라 지었다.
●우리나라는 왜국으로부터 담배를 얻었는데 유구(국)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사신으로 왔을 때에도 담배가 朝貢 물품가운데 들어 있었다. 대체로 이 물건은 오랑캐 지역에서 나온 것이기에 세상에서는 南草라고 부른다.
●부시(火刀) : 부싯돌을 쳐서 불을 일으키는 쇳조각. 화철은 불 + 쇠로 부 시를 가리킨다.
대체로 부시를 쳐서 불을 내는 법은 생긴 모양보다는 성질이 좋아야 하고, 성질보다는 부싯돌이 좋아야하며 부싯돌 보다는 어떻게 치느냐에 달려 있다.
●담배 피우기 적절한 때
1. 달빛 아래서 피우기 좋고, 눈이 내릴 때 피우기 좋다.
2. 비가 내릴 때 피우기 좋고, 꽃 아래서 피우기 좋다.
3. 물 위에서 피우기 좋고, 다락 위에서 피우기 좋다.
4. 길을 가는 중에 피우기 좋고, 배 안에서 피우기 좋다.
5. 베갯머리에서 피우기 좋고, 측간에서 피우기 좋다.
6. 홀로 앉아 있을 때가 좋고, 친구를 마주 대하고 있을 때가 좋다.
7. 책을 볼 때가 좋고, 바둑을 두고 있을 때가 좋다.
8. 붓을 잡고 있을 때가 좋고, 차를 달이고 있을 때가 좋다.
●담배 피우는 것이 미울 때
1. 어린아이가 한 길이나 되는 긴 담뱃대를 입에 문채 서서 피운다. 또 가끔씩 이 사이로 침을 뱉는다. 가증스러운 놈!
2. 규방의 다홍치마를 입은 부인이 낭군을 마주한 채 유유자적 담배를 피운다. 부끄럽다.
3. 젊은 계집종이 부뚜막에 걸터앉아 안개를 토해내듯 담배를 피워댄다. 호되게 야단맞아야 한다.
4. 시골 사람이 다섯 자 길이의 휜 대나무 담배통에 담뱃잎을 가루로 내어 침을 뱉어 섞는다. 그 다음 불을 댕겨 몇 모금 빨자 벌써 끝이다. 화로에 침을 퉤 뱉고는 앉은 자리에 재를 덮어 버린다. 민망하기 짝이 없다.
5. 망가진 패랭이를 쓴 거지가 지팡이와 길이가 같은 담뱃대를 들었다. 길가는 사람을 가로막고 한양의 종성연 한 대를 달랜다. 겁나는 놈이다.
6. 대갓집 종놈이 짧지 않은 담뱃대를 가로 물고 그 비싼 서초를 마음껏 태운다. 그 앞을 손님이 지나가도 잠시도 피우기를 멈추지 않는다. 몽둥이로 내리칠 놈!
●담배가 처음 들어왔을 때에는 피우는 사람이 백 명에 한 둘이었고, 그리 멀지 않은 옛 날에는 담배를 치우지 않는 사람이 오히려 열에 한둘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남자들은 모두 피우고, 부녀자들 역시 모주 피우며, 천한 사람들까지도 모두 피운다. 온 세상에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이 없다.
●산골짜기에 사는 사람은 땅이 한 뙈기만 있어도 곡식을 심지 않고 담배를 심는다. ...한양은 큰 도회지다. 동북쪽 지방에서 소와 나귀에 실어 운송하고, 서남쪽 지반에서 배를 띄워 개천이 구불구불 모이고, 구름이 뭉게뭉게 몰려들듯 수송하는 것이 모두 담배다.
●한양성 안팎에 문을 연 점포에는 궤짝에 기대앉아 칼을 가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아이들이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담장처럼 길게 늘어서<서초연 사오! 홍연 사오!> 외치는 소리가 귀를 소란스럽게 한다. 가슴 앞에 둘러메고 다니면서 팔아달라 소리치는 사람들이 설 발을 밟을 지경이다. 그러나 붉은 대문이 높다란, 화려한 저택에는 선물로 바치는 담배가 날마다 들어오기에 저잣거리에 나가 담배를 찾는 일이 한번 도 없다. 담배를 사는데 드는 비용이 너무도 많지 않은가? 날마다 그 날 썬 담배를 피우고, 해마다 그 해 심은 담배를 피운다. 담배가 많아서 그런 것이 아니고 피우는 사람이 많아서이다. 피우는 사람이 많아서가 아니라 담배에 고질병이 든 사람이 많아서이다. 담배를 살펴보면 사람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아주 많다.
2부 담배, 그 애증의 기록
1. 담배연기(이옥 : 1760-1815)
●煙經이란 <煙氣의 經典>이란 뜻으로 담배연기와 향 연기의 차별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을 전개한 글이다. 성균관 유생인 이옥이 소품체 문제로 정조의 미움을 받아 경상도 삼가현에 충군을 당하여 내려가다가 완주군 송광사에 머물 때 법당 안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제지를 당한 자그마한 사건이 소재이다.
2. 남령의 한평생(이옥)
●이옥이 32세에 지은 작품으로 보인다.
3. 담파고의 일생(임상덕 : 1683-1719)
●작자가 과거에 급제한 23세에 쓴 글이다.
4. 금연론을 반박한다(이빈국 : 1586-1653)
●1646년에 지은 글이다.
5. 남령초를 주제로 질문에 답하라(정조 : 1752-1800)
●왕은 말하노라. 온갖 식물가운데 이롭게 쓰여 사람에게 유익한 물건으로 남령초보다 나은 것이 없다.
●목화는 고대로부터 멀리 떨어진 시기에 서역에서 늦게야 나온 물건임에도 불구하고 크고 작은 사람 가릴 것 없이 모두 그것으로 몸을 감싼다. 수박은 근년에 위구르에서 들어왔으나 사람도 귀신도 모두 그 즙액을 즐긴다. 물건은 이롭게 사용하고 생활에 윤택한가를 따지면 그뿐이다. 굳이 옛날과 지금, 중화와 오랑캐를 논할 필요가 있겠느냐?
●불기운으로 한담을 공격하자 가슴에 막힌 것이 저절로 사라졌고, 연기의 진기가 폐를 적셔서 밤잠을 편히 이룰 수 있었다.
●천지의 마음은 지극히 인자하고, 만물의 영장은 사람이다. 따라서 천지는 사람에게 이익을 가져다주고, 해로움을 제거하고자 하여 안달이 날 지경이다. 이 풀이 이런 시대에 출현한 것을 보면, 도리어 천지의 마음을 엿보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임금은 하늘을 도와서 정치를 이루어내는 자이다. 어찌 몸소 솔선하여 가깝고 먼 곳까지 교화하여 천박하고 고루한 속된 생각을 바꾸려는 노력을 그만 두겠는가? 그리하여 남령초를 月令에 싣고 醫方에 기록하도록 명한다. 우리 강토의 백성들에게 베풀어줌으로써 그 혜택을 함께하고 그 효과를 확산시켜, 천지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고자 한다.
※당시의 의학지식 및 정조 자신의 의학지식의 한계를 엿 볼 수 있는 글이다. 그 맛있는 담배연기속에 폐암, 구강암, 췌장암, 고혈압,동맥경화 등 온갖 질병을 유발하는 인체에 해로운 독성물질이 들어 있는지는 당시 사람들이 어찌 알 수 있었겠는가?
6. 금연책을 제안한다(이덕리 : 1728 - ?)
●다른 나라의 경우에는 담배를 피운지가 오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술을 마실 때나 잠깐 피운다. 혹은 담뱃대 옆에 작은 구멍을 뚫어 구멍 속으로 불이 나타나면 그만 피운다. 반면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천천히 오래 끌면서 피야 맛있다고 하여 담뱃잎이 재로 바뀐 뒤에야 그만 피운다. 그래서 사람의 기운을 소모하고 할 일을 방해하는 정도가 심하다.
●담배의 해로움
眞氣를 소모시키는데 이것이 첫 번째 해로움이다.
눈이 침침해지는 것을 재촉하는 것이 두 번째 해로움이다.
담배연기가 옷가지를 더럽게 물들이는 것이 세 번째 해로움이다.
연기와 담뱃진이 의복과 서책을 더럽게 얼룩지게 만드는 것이 네 번째 해로움이다.
작게는 옷에 불구멍을 내고 방석을 태우며, 크게는 집을 태우고 들만을 태운다. 이것이 다섯 번째 해로움이다.
입안에 늘 긴 막대기를 물고 있기에 치아가 일찍 상한다. 이것이 여섯 번째 해로움이다.
간혹 담배를 구하려다 망신을 당하기도 하고, 간통을 매개하기까지 한다. 이것이 일곱 번째 해로움이다.
집에서는 끊임없이 북\f을 가져오라 야단이고, 길을 떠나는 자는 부시와 담뱃갑을 챙기는 것이 언제나 번거로운 한 가지 일이다. 이것이 여덟 번째 해로움이다.
젊은이가 자리를 피해 숨는 습속을 만들어 놓고,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무시하는 행태를 조장한다. 이것이 아홉 번째 해로움이다.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도 앞뒤의 말이 자꾸 끊긴다. 공경스런 자세를 지녀야 하는 예법에도 어긋나고, 또 용모를 단정히 하라는 가르침에도 소홀해진다. 이것이 열 번째 해로움이다.
●등짐으로 져 나르고 머리에 이고 와서 파는 물건치고 이 담배보다 큰 이익은 없다.
●천안과 삼등에서 나는 담배는 품질이 서쪽과 남쪽에서 으뜸인데 썰어놓은 연초 궤짝 하나의 값이 서울의 절반이다.
●사자는 코끼리를 잡을 때도 온 힘을 쏟고, 공을 굴릴 때도 온 힘을 쏟는다. 온 힘을 쏟지 않고 제 소유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없다.
●담배를 피우는 값을 1문(文)이라 계산하면, 360일로 누계하여 1,260만 냥이 된다. 이 1,260만 냥은 온 나라에 흉년이 들었을 때 구휼하는 재물로 삼더라도 넉넉할 것이다.
7. 담바고 사연(이현목 : 18세기)
●옛날 담파(談婆)라고 부르는 여인이 있었는데 아주 음란했다. 천하의 남자를 모두 제 남편으로 삼지 못한 한을 품고 죽었다. 그 여인의 넋이 이 풀로 변해 그 무덤에서 자라났다. 모두들 그 풀을 좋아했기에 그 이름을 담파라고 했다.
●그 풀이 우리 동방에 전해진 시기를 따져보면, 겨우 일백년을 넘지 않는다. 그렇건만 현재는 즐기지 않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윗사람 아랫사람, 늙은이 젊은이, 남자 여자를 따질 것 없이, 모두들 담뱃값을 차고 대통을 휴대하고서 담배를 피워댄다. 피우지 않으면 도리어 괴상하게 생각한다.
●버들가지로 양치하여 이를 깨끗하게 하는 것은 몸을 청결하게 하는 방법의 하나이다. 지금 담배를 피우는 까닭에 대부분의 치아가 검게 물드는 결과를 면치 못한다. 깨끗하고 하얀 치아를 더럽히니 어찌 안타깝지 않은가?
●아! 연초를 심은 밭이 곡식을 심은 밭보다 이익이 크고, 연초를 판매하는 상점이 다른 물건을 파는 상점보다 많다. 은죽 동죽을 제작하기 위해 장인들은 갖가지 기술을 최대한 발휘하고, 중국 담뱃대와 일본 담뱃대를 무역하고자 하여 만 리나 떨어진 곳까지 교통한다. 높은 벼슬아치는 한 길이나 되는 얼룩무늬가 있는 장죽을 끼고 대로에서 (길을 비키라고) 외치고, 짙게 화장한 여자는 은으로 개긴 오묘한 제품의 담뱃대를 가로 물고 비스듬히 珠簾안의 창가에 기대 있다.
●이런 소문을 들은 적이 있다. 동쪽 교외에 있는 절에서 죽은 승려 한 사람을 茶毘했는데, 검은 기름이 응결되어 머리뼈 중간에 달려 있었다. 그 크기는 달걀만 했다. 절의 승려는?그는 평생토록 담배를 즐겼다?고 말했다. 분명코 독한 기운이 안에서 뭉쳐 이렇게 된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이 다리가 아픈 병을 앓았는데 담배를 피워서 병이 생겼다는 말을 듣고는 바로 흡연을 중단했다. 그로부터 걷기가 수월해졌다고 한다.
8. 남초 이야기(황인기 : 1747-1831)
●옛날 동국 사람들은 남초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최근 40-50년 사이에 크게 성행하였다. 나는 8-9세 때 벌써 흡연을 흉내 내어 늙어 머리가 허옇도록 몹시 좋아한다. 하지만 걱정스럽고 개탄스러운 점도 적지 않다.....나라 안의 옥토와 양질의 전답은 모두 연초를 심는 밭으로 이용된다. 곡식이 더 많이 생산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아니할 수 없다.
9. 어른과 아이의 윤리와 높은 자와 낮은 자의 질서가 담배로 인하여 파괴된
다(윤기 : 1741-1826)
●오늘날 세상에서 어린이의 윤리와, 높은 자와 낮은 자의 질서가 모조리 사라진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담배에 있다.
●오늘날 사람들은 태어난 지 열 살 남짓 되면 남녀와 귀천을 따질 것 없이 모두 담배를 배워 피운다. 아들과 아우가 아버지와 형 옆에서 담배를 가로물고 있고, 노비가 그 주인 앞에서 담배 연기를 품어대고 있다. 그러니 젊은이가 어른을 대하고 천한 자가 귀한 자를 대하는 태도야 다시 말해 무엇하랴?
●지금은 奴婢나 사환(使喚)같이 천한 일에 종사하는 자라도 반드시 한 길이 넘는 긴 담뱃대를 바로물고 조금도 어른을 피하려들지 않는다.
●이 물건은 사탕수수나 설탕처럼 단맛이 있는 것도 아니요, 난초나 사향과는 냄새가 다르다. 굶주린 배를 채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목숨을 연장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건만, 천하 사람들이 함께 즐기고 있다. 아침저녁 밥을 먹지 않을지언정 남초는 그만 피울 수 없고, 위아래의 예절을 지키지 못할지언정 남초는 버릴 수 없다.
10. 담배를 예찬하는 노래(임수간 : 1665-1721)
차(茶)라 풀이 있어 당나라 말엽에 세상에 나타났지.
국가에서 전매하여 거두는 세금은 소금이나 황금에 맞서고
손님과 주인이 마주앉아 마시는 예절은 음주의 예법보다 더 했네.
○ ○ ○
이윽고 연다(煙茶)라는 것이 차의 뒤를 이어 출연하였네.
신농씨가 맛본 약초의 경전에도 보이지 않는 풀이요,
농부가 재배하는 각종 채소의 명단에도 이름이 빠져 있네.
영지나 창출(蒼朮)처럼 잎을 뜯어서 먹지도 않고
싹이나 찻잎처럼 끓여서 마시지도 않네.
반드시 잎을 썰어 불에 태우고
먹는 것은 다름 아닌 연기라네.
그래서 이름하여 연다(煙茶)라 하지
○ ○ ○
사통팔달 고을과 큰 도회지에는
열을 지어 상점이 연달아 있고
집안에 쌓아두고 사람마다 보관해두니
노을처럼 현란하고 구름처럼 쌓여 있네.
○ ○ ○
원근에서 몰려드는 자들이
과일전 포목보다 많고
장사치들이 쌓아둔 물건은
금붙이나 비단보다 윗길이네.
어떤 자는 매점매석으로 값을 좌지우지하여
홀로 담배의 이익을 독차지하니
거부와 겨룰 만한 재력가도 가다가는 나타나네.
산동땅 대추나무 천 그루와
진중 땅 치나무 천 이랑만이
부자가 될 자산은 아니라네.
○ ○ ○
또 한양성 남쪽에 한 여인이 있어
남자는 북쪽 변방으로 수자리 살러 갔네.
1년 1년 번갈아 지나가는 세월이 서럽고
고운 얼굴이 너무 쉽게 시들까 아쉽네.
닫혀 있는 고운 규방에서 낮은 저물지 않고
텅 빈 비단 휘장 안에서 밤은 왜 이리도 긴지.
파란 등잔에는 썰렁한 불꽃이 가물거리고
황금 화로에는 재를 남기며 재가 오르네.
이별의 시름은 쓸개 씹기보다 더 괴롭건만
답답한 심경을 그 어디에 쏟으란 말인가?
붉은 불빛 나오는 담뱃대를 들어
파란 연기 하늘하늘 피워 보내노니
초나라 산에 피어오르는 구름이 아니라면
복사꽃밭에 가라앉은 안개가 분명하네.
○ ○ ○
연기를 먹고 향기를 품어
내 자신을 고결하게 하려네.
달구나! 향기와 맛이여!
내 입에 맞는구나!
11. 남초가(박사형 : 1635-1706) 1666년 작
평생에 병이 있어 온갖 풀을 다 맛봐서
인삼 창출 원지 창포 향약방에 많았다네.
3년을 장복하나 7년 병을 고치겠나.
남방에서 나온 풀이 영험하다 유명하여
화단을 깨끗이 쓸고 약란(藥欄)을 높이 기대놓아
매화우 갓 갠 후에 화초와 섞어 심어
훈풍에 자라게 하여 단 이슬을 맞추었네.
취봉(翠鳳)의 꼬리같이 푸르고 푸른 잎을
황학의 날개같이 누렇게 키워내어
먹던 차 물리치고 시험 삼아 맛을 보니
훈훈한 연기 한 줄기 목구멍을 갓 넘으며
따사로운 기운이 장부(腸腑) 가득하다.
종전에 쌓인 담이 한때에 다 내려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