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로마인의
성과 사랑
알베르토 안젤라 지음
까치
1. 내 사랑, 나에게 폭풍 키스를 해주오
●오늘날과는 정 반대로 고대 로마의 거리에서는 키스하는 연인을 결코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도덕적으로 위배되었다.
※젊은 연인들이 만날 때 가볍게 뽀뽀하는 모습은 부럽기도 하고 아름답지만, 오늘날에도 길거리나 지하철에서 진한 키스를 한다거나, 꼭 껴안고 있는 행위는 결코 예쁘지 않다. 풍속법 위반이나 외설행위로 간주하여 벌금을 물리는 처벌을 하는 것은 당연하고 옳은 일이다. 개인적인 사랑의 표현행위도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한계선 내에서 허용되어야 한다.
●로마인들에게는 흥미로운 관습이 있었다. 남편에게 법적으로 키스를 할 권리가 있었던 것이다. .....바로 여자가 술을 마셨는지 검사하기 위해서였다. .....포도주를 마시는 것은 간통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기원후 1세기와 2세기 사이에 살았던 역사가타키투스는 기원후 69년 황제 즉위식에서 대중에게 키스를 날렸던 오토황제를 크게 비판했다. 그가 보기에 그것은 황제에게 어울리지 않는 비굴한 행동이었다.
●어떤 남자도 공공연하게 귀부인의 손을 잡을 수 없었다.
●여자를 의도적으로 만지는 사람뿐 아니라 욕설을 퍼붓거나 외설적인 제안을 하는 사람도 처벌했다.
※오늘날 우리도 성추행이나 성희롱 행위를 처벌하고 있다. 점잖치 못한 방법으로 이성에게 접근하면(흔히 쓰는 말로 - 건들면) 자칫 처벌받을 수 있다. 남성들은 지극히 조심해야 한다.
●얌전한 여자들은 절대 혼자 외출하지 않았으며, 코메스, 즉 믿을 만한 가족이나 노예의 호위를 항상 받았다.
※후배교사인 주선생은 두 딸을 아주 엄격하게 키웠다. 대학에 다니던 시절에도 밤 10시 이전에 귀가시켰다. 고지식하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아버지의 엄한 교육을 잘 따라주는 두 딸과 주선생이 매우 부러웠다. 과연 두 딸은 열심히 공부하고 예쁘게 성장하여 은행원이 되고 교사가 되었다.
●로마의 여성들이 가장 좋아하는 보석중의하나가 뱀 모양의 팔찌였다....오늘날의 여성들처럼 많은 옷을 가지고 있었지만 스타일은 모두 똑 같았다.
●로마사회는 노인들은 적고 청년들이 많은 제3세계적인 사회이다. 로마인의 평균 수명이 남자는 41세, 여자는 29세인 인구에서 보면 이는 정상적인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경제가성장하여 먹을 것이 충족되고 의학이 발달하고 현대이전의 사회의 평균수명은 40세 남짓하였다. 여자는 출산의 위험으로 인하여 평균수명이 남자보다 훨씬 적었다. 전체 인구에서 노인인구의 비율이 7%를 넘으면 ‘고령화사회, 14%를 넘으면 고령사회, 그리고 20%를 넘으면 ‘초고령사회’ 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2000년에 7.2%를 넘어서서 고령화사회에 진입하였고, 2018년에 전체인구의 14.4%를 넘어 고령사회가 되고, 2026년에는 20.0%로 초고령사회가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노인인구의 급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달인 2014년 7월부터 시행하는 기초연금은 만65세 이상, 소득재산 조사결과 소득인정액이 노인단독가구 기준 87만원, 노인부부가구 139만2천원 이하인 노인으로서 하위70%에 속하면 조사결과에 따라 최소 2만원에서 최고 20만원까지 차등 지급한다. 대부분 20만원을 지급받게된다. 우리나라가 얼마나 놀랍도록 노인들이 행복한 노인복지 사회가 되고 있는 것인가? 2013년 기준 한국인의 평균기대수명은 남자 78세(세계 15위), 여자 85세(세계 3위)로 정말 오래들 살게 되었다. 머지않아 100세시대가 된다는데 정말 그래도 되나? 노인이 40%가 되어 먹여 살리기 힘들게 된다하니 젊은이들까지도 장래의 노후에 대비하여 부지런히 저축하고 절약해야 한다. 국가에 무리하게 요구하거나 자식들에게 부끄럽게 손 벌리지 않고도 먹고는 살 수 있도록 우리는 현명하게 미리 잘 준비해야 한다.
●로마인들의 성적인 터부는 본질적으로 네 가지였다.
1. 혼외정사를 원하는 남성은 자신보다 신분이 낮은 사람과 관계를 해야 했다. 원하지 않는 임신으로 생긴 아기가 훗날 재산의 일부를 요구하러 올 수 있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 라이 따이한이 1만여명이고 코피노는 현재 약 3만여 명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대부분의 '코피노'가 극심한 가난과 사회적 냉대 속에서 자라고 있다니 가슴 아픈 일이다. 이들의 아비는는 유학ㆍ사업 등을 위해 필리핀에 장기 체류했던 한국인들이다. 현지에서 그곳 여성들과 정식으로 교제를 하더라도 한국에 돌아오면서 책임을 지지 않고 '나 몰라라'한다고 한다. '코피노'의 경우 필리핀의 어려운 경제 여건과 함께 낙태를 죄악시하는 가톨릭 문화가 더해져 점점 늘어났다고 한다. 라이따이한과 코피노는 한국 남성들의 무분별한 성관념의 산물이다. 그러나 문제의 이면에는 우리보다 가난한 나라인 필리핀의 여성들을 인격적으로 무시하는 천민사상은 아닌 것인지? 필리핀 여성들을 노리개로 생각하는 사기꾼적 국민성에서 나오는 것은 아닌 것인지? 한국 남성들이 저지른 것이라 하여 무조건 감싸기는 절대 안 된다. 국가적 차원에서 대책을 세워나가야 한다. 한국의 남성을 상대하는 필리핀 여성들을 계몽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다. 결코 한국 남성들은 그리 흠모할 필요가 없는 부류들이니 절대로 아이를 낳는 일일랑 하지 않도록 홍보해야 한다. 한국이 그저 경제적으로 조금 잘사는 나라일 뿐, 한국남성들의 인격까지 선진국형임이 결코 아님을 설파해야 한다.
2. 동성애적 관계에서 로마시대의 남자는 항상 능동적인 역할을 했으며, 결코 수동적인 자세는 취하지 않았다.
3. 반대로 오럴 형식의 동성애 관계에서는 수동적이어야 햇다. 즉, 쾌락을 얻어야 했다.
4. 남성은 여성에게는 절대 오럴 섹스를 하지 않았다. 즉 쾌락을 주지 않았다.
●남성의 오른쪽 고환은 왼쪽 고환에 비해서 항상 위에 있고, 왼쪽 고환은 조금 처져 있기 때문에 로마인들은 남성은 오른쪽 고환에서 태어나고 여성은 더 낮은 왼쪽 고환에서 태어난다고 생각했다.
※정말 그런가? 나도 정상인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네.
2. 첫 경험
●소년이 아버지와 함께 사창가에 가고 있다. 소년의 나이는 열세 살 정도이다. ...소년은 생애 첫 성관계를 가질 것이다.
●소년들은 동정을 지켜서는 안 되지만, 소년들은 지켜야 한다는 점이다. 젊은 남자가 매춘부와 연습을 하거나 그보다 자주 집 안의 여자 노예들과 관계를 하는 것은 풍습이었다. ...소년이 결혼할 때가지 성적이 경허밍 업슨ㄴ 것을 사회적으로 얼마나 나쁘게 보았는지 알 수 있다. ...부유한 가문의 소녀들은 결혼 전에 섹스를 하는 것을 상상도 할 수 없었다....결혼 전에 애인과 성관계를 했던 여성들은 간통으로 간주될 수 있었으며, 공식적인 남편으로부터 받은 선물을 돌려주어야 했고, 결혼도 무효화되었다. ...성관계뿐 아니라 키스도하지 말아야 했다. 키스의 처녀성도 있었던 것이다.
●귀족가문에 속한 아가씨들은 아주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는 외출하지 못했다. ...하층민 가문의10대 소녀들은 상황이 조금 나았다.
●공중목욕탕에 남탕과 여탕이 따로 있던 시기도 있었으나 혼탕이던 시기도 있었다.
●기원전 215년에 여성에게 매우 엄격한 법령이 발표되었다. ...그것은 사치금지법으로 여성들은 너무 화려한 옷감으로 만든 옷을 입을 수 없었고, 반 온스이 상의 금을 소유할 수 없었으며, 종교이식을 제외하면 시내에서 마차를 타고 산책할 수 없었다.
법령을 폐지하기 위한 제안을 논의하는 동안 여성들이 광장으로 내려왔으며, 남편들에게 제안에 찬성하라고 요구했다. 다음날 더 많이 늘어난 여성들이 무리를 지어 포로 로마노에 도착했다. 그것은 진정 여성의 반란이었다. 그녀들은 법에 관한 토론에 압력을 가했으며...결국 그 법은 폐지되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가정을 구하고 출생률을 높이겠다면서 간통법을 선포했다. 결혼한 여자가 남편을 배신하면 섬으로 유배시킨다는 이 법령은 큰 소동을 일으켰다. 누구든 죄인을 고발하여 소송을 걸 수 있었다. 그러나 황제는 여성들과 그들의 자율성에 대한 욕망을 과소평가했다. 이 법은 창녀들을 기소할 수 없었기 때문에 수많은 로마의 여성들이 집을 나와서 창녀명부에 이름을 등록했고, 어떤 의미에서는 남성의 권력을 조롱했다.
3. 푸텐틸라의 결혼식
●그들 사이에는 친밀감도, 욕망도, 열정도, 에로틱한 충동도 없었다. 두 사람은 결혼 당시 서로에 대해서 아는 바가 거의 없었으며, 때로는 나이 차이가 매우 컸다.
※오늘날 많은 중매결혼이 이루어지고 있다. 중매결혼이 연애결혼보다 반드시 덜 합리적이라고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 남녀가 처음 만나 서로 잘 모르다가 차츰 알아가면서 사랑하게 되듯이 부부가 서로 사랑을 성공적으로 만들어 가기 때문이다. 상대를 바꾸어 가면서 많은 교제를 한 사람이 오히려 한 상대에게 오랜 세월을 충성을 바쳐가며 사랑하기 힘들 수 있는 것이다. 폐일헌 하고 결혼중개업체를 통해 결혼하는 것은 지극히 합리적인지는 몰라도 너무나 매력은 없는 일이다. 오늘 신문에도 업체를 통해 결혼한 어느 여교사가 결혼생활에 너무나 불충실하고 외도를 일삼는 의사 남편과 이혼하고 재산문제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일이 보도되고 있다.
●6촌까지의 직계혈통간의 결혼이 금지되었다. 나중에는 사촌간의 결혼이 허용되었다. 기원후 1세기에는 조카를 아내로 삼는 것이 용인되었다. 그러나 오직 형제의 딸만 가능했다. 정치적 필요 때문이었다.
※우리나라의 민법 809조 근친혼 금지조항에 따르면 나의 8촌 이내와 각 배우자들의 혈족 6촌 이내, 양자로서의 태어난 부모계통의 6촌 이내와 4촌 이내에 드는 인척과는 결혼해서는 안된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2005년 3월 1일 이전에는 동성동본이면 부조건 결혼할 수 없는 악법이 존재하였다. 신라와 고려초기의 황실에서는 이복남매나 조카와 결혼이 이루어졌다, 로마와 마찬가지로 왕권을 강화시키기 위한 방편이었다.
●소녀들은 대개 12세에서 14세 사이에 결혼을 했다.
●제정시대에 부유한 가정과 귀족가정에서는 부부가 각방을 쓰는 것이 널리 퍼진 관습이었다....성관계를 하는 방은 따로 있었다. 그러나 부부가 사용하는 방은 아니었다. 그 방은 남편이 다른 여인의 몸을 안기 위해서 사용하는 작은 방이었다. 남편은 이 방에서 애인이나 하녀와 성관계를 했다.
●옥타비아누스 사기타는 평민출신의호민관으로 중요한 정치가였다. 폰티아 포스투미나는 로마의 유명한 가문에 속하는 유부녀였다. 옥타비아ᅟᅮᆫ스는 그녀에게 미친 듯이 빠졌고, 그녀를 쫓아다니면서 선물공세를 폈다. 그렇게 그녀를 침대로 유인할 수 있었으며, 결국 그녀가 남편과 이혼하도록 설득했다. 그러나 이혼한 폰티아는 한발 뒤로 물러났으며, 옥타비아누스를 원하지 않았다. 몇몇 낌새를 보니, 그녀는 건방지고 품행이 단정하지 못했으며, 옥타비아누스가 이혼시키기 위해서 썼던 돈을 좋아했던 것이었다. 극도로 흥분한 옥타비아누스는 그녀를 칼로 찔러 죽였다. 그의 예전 노예가 죄를 뒤집어쓰려고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옥타비아누스의 죄는 발각되었고, 짐작할 수 있듯이 법에 따라서 그는 종신유배형에 처해졌다.
●이혼은 아주 쉬웠다....오늘날과 달리, 2천 년 전에는 모든 것이 즉석에서 이루어졌으며 정식절차도 없었다. 배우자 가운데 한 사람이 결혼을 끝내고 싶은 마음만 있으면 충분했다. 그는 증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상대에게 이혼을 알렸으며, 그것으로 그들의 결혼은 끝이 났다.
●고대 로마시대에는 다음의 네 가지 사유일 때만 이혼이 가능했다. 아내가 남편을 배신했을 때, 아내가 술에 취했을 때, 아내가 남편의 동의없이 이상한 약을 먹고 유산했을 때, 아내가 마술이나 주술에 몰두했을 때이다.
●공화정 말기에는 여성들도 복잡한 소송 없이도 자유롭고 편리하게 이혼할 수 있었다. 가령 키케로는 확실한 이유가 없는 이혼에 대해 언급한다. 파울라 발레리아는 주요 법무관의 딸인데 남편이 속국에서 돌아온 그날 이혼했다. 그녀의 단 한 가지 소원이 애인인 데키무스 브루투스와의 결혼이었기 때문이다.
●기원전 1세기부터 이혼 횟수가 점차 확산되자 도덕가들은 놀랐는데, 특히 유베날리스는 아내의 몸에 나이의 흔적이 보이자 마자 아내를 바꿔치우는 수많은 부유층 남자들을 비판했다.
...세네카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 그런 퇴락의 길을 연 귀족계급을 비난했다. 특히 어떤 망설임도 없이 결혼을 깨는 로마 상류층 여성들을 비판했다.
“귀족계급에 속하는 유명한 귀부인들은 집정관의 수를 통해서 자신들의 나이를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남편들의 수를 통해서 계산한다. 그들은 결혼하기 위해서 이혼하고, 이혼하기 위해서 결혼한다. ”
『결혼에 관하여』에서는
“ 결혼한 지 이틀 만에 이혼한 어떤 부인들은 바로 재혼을 한다. 남편들도 욕을 먹어야 한다. 아내가 그렇게 빨리 싫증을 낸 남편이나, 그녀를 그렇게 빨리 만족시켜준 남편이나 둘 다.”
※요즘의 이탈리아에서는 이혼이 극히 어렵다고 한다. 이혼신청을 하면 보통 2년이 걸려서야 법원의 허락을 받을 수 있으며 어떤 경우는 허락되지 않아 몇 년이 걸리는 수도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합의 이혼이 너무 쉽기 때문인지 이혼율이 세계 최고수준이며, 이혼 후 아내에게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아도 법적 제재를 크게 받지 않아 이혼여성들이 자녀를 맡아 양육하느라 심한 고생을 하는 상황이다.
이혼을 전제로 하는 결혼은 아니지만 지금은 남녀가 모두 직업을 가지고 결혼 전부터 재산을 형성하기 시작하고, 부모에게서 받는 재산이 있으므로 이혼하게 될 경우에 대비하여 변호사를 통해 혼전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다. 결혼 전에 모은 각각의 재산과 결혼생활 중에 부모에게서 받는 유산은 이혼 시 재산분할에서 제외시키는 계약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고 본다. 미국 등 서양과 달리 우리나라는 아직 시행되지 않는 제도인데 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법률적 근거를 마련하고 제도화시켜야 한다.
4. 그, 그녀, 타인들
●나이가 지긋한 많은 원로원 의원들은 홀아비든 애 딸린 이혼남이든 새로 아내를 맞기보다는 첩을 두는 것을 선호했다. 가문의 재산을 지킬 수 있고 아들을 낳았다고 해도 상속의 문제를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5. 연인에게는 모든 것을 허락한다.
●사실 어머니들이 포주 노릇을 하면서 딸들에게 매춘을 시키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상상하기 어려운 일인데 현재에도 다른 나라에서는 저러한 일이 있음이 종종 보도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들어본 기억이 없다.
6. 공중목욕탕의 자욱한 수증기 속에서
●콜로세움에서 가까운 오피오 언덕에 위치한 트라야누스 공중목욕탕에 들어가 보자. 사실 이 당시에 공중목욕탕은 일반적으로 입장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고 들쑥날쑥 했다. 탕은 남녀 혼탕이었다. 유일하게 신중한 부분은 탈의실이 분리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공중목욕탕의 분위기는 유혹을 위해서, 또한 노출과 과시를 위해서, 그리고 애인을 헌팅하기 위해서 구릿빛 피부와 성형한 가슴과 빵빵한 근육을 과시하러 가는 오늘날의 클럽이나 체육과과 같다.
●로마시대에 여자가 가장 좋아했던 남자의 몸은 햇볕에 그을린 운동선수의 몸이다. ....마지막으로 청결한 남자를 좋아했다.
●로마시대에는 넓은 허리와 풍만한 엉덩이, 작은 가슴을 가진 여성을 더 선호했다. ....이상적인 여성은 세 가지 특성이 있어야 한다. 즉, 몸이 풍만해야 하고 매력적이어야 한다. 젊어야하고, 욕망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여자를 유혹하는 방법
1. 남자가 먼저 접근하라
2.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3. 여성들은 칭찬할 때 약해진다.
4. 나이를 묻는 것은 절대 안 된다.
5. 밤에 있었던 일을 말하면 안 되고, 여자를 정복했다고 떠벌리지 않아야 한다.
6. 여자를 정복하기 위한 속임수는 정당하다.
7. 약속을 많이 하라. 약속은 여자의 관시을 끈다. 그리고 신들에 대한 맹세도 빼먹지 말아야 한다.
8. 필요하다면 눈물을 사용하는 훌륭한 배우가 되어야 한다. ....그 여자에게 반해서 며칠 동안 잠 못 이룬 사람처럼 초췌한 얼굴을 하라.
9. 자신의 접근이 아무런 효과도 없고 심지어는 경멸을 받는 다는 생각이 들면, 유혹자는 숭배와 아첨을 중지하고 빠른 퇴각 전술을 쓰는 편이 낫다.
●로마 시대에 여성의 평균키는 155센티미터였다.
●로마 시대의 남성이 원했던 여성은 친절하고, 매력적이고, 사교적이고, 순종적인 사람이다.
●둘 사이에 사랑이 시작될 때 적어도 초반에는 여자는 허락하지 말아야 한다. 남자는 기다려야 한다. 여자는 남자의 욕망이 되어야 하지만, 쉽게 남자에게 무어져서는 안 된다. 그러면 남자의 욕망이 더욱 커지게 되고, 여자는 조만간 무너질 수 있다는 환상을 그에게 심어주어야 한다.
●여성이 남성의 충동을 부추겨서 그를 바로 옆에 둘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매우 효율적인 무기가 있다. 그의 마음속에 질투심을 심어 주는 것이다.
7. 아름다운 공연
●폼페이우스 극장은 로마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극장이었으며, 발부스 극장과 마르켈루스 극장보다 더 컸다. 대리석과 장식과 조각상 때문에 로마인들이 좋아했던 극장이다.
●여성의 역할은 옷을 거의 입지 않은 여배우들이 맡는다.
8. 검투사와 귀부인
●유명한 황제이자 철학자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아내 소 파우스티나가 검투사를 아주 좋아했다고 한다. 그래서 남편이 멀리 갔을대 그녀는 자주 가에타에 갔으며, 그 곳에서 선원들과 그 지역 검투사 학교의 검투사들과 사랑을 나누었다고 한다. 디오 카시우스가 수집한 당시의 소문에 따르면, 이런 관계중의 하나에서 콤모두스를 임신했다고 한다. 폭력적이고 광적인 그녀의아들 콤모두스는 검투사들의 세계를 몹시 좋아했으며, 그들과 경기까지 할 정도였다.
●오늘날 조각 같은 몸매의 남성이나 수영선수가 광고에서 상반신을 벗고 모델로 나와서 제공하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검투사는 로마 여성들에게 제공한 것이다.
※월드컵 경기 때문에 제대로 잠을 잘 자는 날이 없다. 새벽 1시, 4시 또는 5시에 중계되기 때문이다. 축구광인 양드리와 11시에 자고 1시에 일어나 보고, 3시에 다시 자고 5시에 일어나 본다. 물론 보는 동안 졸리면 자기일쑤이긴 하다. 축구 선수들 몸매 정말 장난 아니다. 야성미 넘치는 준마들이 운동장을 휘 젖는다. 남자인 나도 그 멋진 남성미에 반할 진대 그들의 뛰는 모습을 보는 여성들이야 오죽이나 기분이 좋을까? 포르투갈의 호날두는 예선 탈락으로 그의 멋진 몸과 종횡무진하는 움직임과 폭발적인 드리볼과 슛팅하는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다. 별수 없이 브라질의 젊은 영웅 네이마르와 몸매는 영 아니지만 축구천재인 아르헨티나의 메시의 득점 경쟁이나 바라 볼 수밖에 없게 되었네.
●어느 원로원 의원의 아내인 에피아는 검투사 세르기올루스에게 치명적으로 빠졌다. 그는 추남이었다. 얼굴은 곰보였고, 투구의 마찰 때문에 코에는 혹이 있었다. 부러진 팔 때문에 은퇴르르 희망하는 희끗한 수염이 나기 시작한 중년의 사내였다. 검투사들이 보통 수염을 자르는 나이인 마흔 살을 넘었을 것이다. 그리고 잘 알 수 없는 상처 때문에 그는 계속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에피아는 그를 위해서 안락한 삶과 원로원 의원인 남편과 자식들을 버렸다. 그가 이끄는 군대를 따라서 이집트까지 갔다.
●전차 경주자들도 로마시대의 또 다른 섹스 심벌이었다. 그들의 매력은 검투사들과 달랐다. 검투사들이 권투 선수나 보디빌더를 연상시켰다면 전차경주자들은 축구 선수나 스키 혹은 자동차 경주선수와 비슷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몸보다는 운동이 더 큰 역할을 했던 것이다. 특히 그들은 어마어마한 액수의 돈을 벌었는데 현재의 자동차 경주선수나 골프 선수들처럼 돈을 받는 프로 스포츠 선수들보다 더 많이 받았다. 그것이 여자들을 매료시켰다.
●남자는 훤한 대낮에도 모든 것을 할 수 있었지만, 여자는 공식적으로는 할 수 없었다. 여자는 들키지 말아야 했다. 그러나 당시는 고대 사회였고, 강력하게 남성중심 사회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고대의 다른 어떤 사회도 여자에게 자유를 주지 않았다. 여기에서 지나치게 여성의 간통에 대한 엄격한 법이 나왔다.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연회중에 자리에서일어나 모두가 보는 앞에서 그 자리에 참석한 한 집정관의 아내의 손을 잡았고, 그녀를 다른 방으로 데려갔다. 그들이 연회 자리에 돌아왔을 때 여자의 머리는 온통 헝클어져 있었고, 귀가 벌겠는데 강제적인 흔적(아마도 오럴섹스)이 있었다.
※ 2천년 뒤에 미국에서 비숫한 일이 벌어졌다. 1998년 백악관의 젊은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섹스 스캔들로 당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궁지에 몰렸다. 결국 대배심 증언에서 해명했다. “오럴 섹스는 했지만 성관계는 갖지 않았다.”
9. 사랑의 큰 유희
●상류사회의 많은 부인들이 염격한 도덕성의 원칙에 복종하지 않았고, 다양한 애인들과의 무절제한 성행위에 몸을 맡겼다. 아우구스투스의 딸 율리아가 유명하다. 아버지가 딸을 벤토테네 섬으로 유배를 보내고 그녀가 영원히 로마에 돌아오지 못하게 하고, 가족의 영묘에도 들이지 않았을 정도로 율리아는 아버지 아우구스투스를 나처하게 만들었다.
●벽화에서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여성들이 은밀한 부위까지 완벽하게 제모했다는 것이다.
●오럴 섹스로 남성에게 만족을 주는 여성의 모습은 프레스코 벽화와 램프에 등장하는 또 하나의 체위가 된다. 그 반대, 즉 오럴 섹스로 여성에게 만족을 주는 남성은 매우 드물다.
●로마인에게 남성의 성기는 힘과 권력을 나타냈으며, 그 밖에 운과도 관련되었다.
●로마인들은 피임의 기술과 피임약을 발전시켰다. ...우선 성관계 후에 질 세척을 권했다. ...여성은 성관계를 하기 몇 시간 전에 생식기 내부에 정액이 싫어하는 환경을 만들어줄 물질을 바르도록 했다.불쾌한 냄새가 나는 올리브 오일이나 꿀, 삼나무 수지, 도금양 오일, 백연, 포도주를 섞은 아위 등이었다. 이것들 중, 로마인들은 몰랐겠지만, 정자를 죽이는 특성이 있다. ...피임은 항상 여자의 몫이었다.
10. 쾌락의 장소에서
●로마인들은 매춘부들을 금세 알아 볼 수 있다. 소위 말하는 <제복>을 입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원래는 남자들의 복장인 토가를 걸치는 ㅂ것이 법적인 의무이다.
●거리의매춘부들은 사냥꾼이 다량의 먹이로 사냥을 하듯이 거리의 군중속에서 고객을 유혹한다. ...다른 유형의 창녀들도 존재했다. 고객의 집으로 직접 출장을 가는 창녀들이다....마지막으로 최고급 부류인 에스코트가 있다. 사교모임에 동반하는 고급 창녀의 부류이다.
●음식을 먹는 어느 곳에서나 로마인은 음식과 포도주뿐만 아니라 노예와의 섹스도 제공받았다. 혹은 그곳을 운영하는 여자가 동의한다면, 그녀와 혹은 그녀의 딸과 섹스를 했다.
●구족이 창녀와 섹스를 하기 위해 사창가로 가지는 않지만, 공중목욕탕에서는 매우 흔한 일이다. 주로 해방노예나 노예들이 고용된다.
●심지어는 정해진 거처가 없는 떠돌이 매춘부들도 있다. 이들은 보호자와 더불어 시골장이나 시장 혹은 대중 공연장으로 옮겨 다닌다.
●몇 살이 되어야 매춘부영업을 할 수 있을까? 보통 열네 살에 시작하지만 그보다 어린 경우도 많다.
※우리나라에서도 기생들이 열다섯 살이면 손님을 받았다. 얼마 전 해외뉴스에는 82세인 할머니가 매춘부로 등록하여 영업을 한다는데 자신을 찾는 남자들이 있기에 매춘부생활이 행복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때로는 상류사회의 귀부인이 꾸준한 수입을 얻기 위해서 노예나 해방노예에게 매춘을 강요하기도 했다.
※한국의 중퇴여학생들이 자신들과 친하지만 약한 여학생을 골라 인터넷을 이용하여 성매매를 강요하고 돈을 착취하는 보도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 어느 때는 중퇴남학생들이 한 패거리가 되어 모텔에 찾아온 남성을 협박하여 큰돈을 뜯어내기도 한다. 무서운 세상이 되었고 남성들은 자칫 한 번 실수로 패가망신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매춘부에게 회당 화대를 지불하는 대신에 마치 자동차처럼 매춘부를 1개월 혹은 1년간 임대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도 우리가 가난하던 시절인 약 20여 년 전, 연예인을 꿈꾸는 바람난 여성들이 좋은 옷과 용돈을 조달할 목적으로, 젊고 예쁜 애인을 갖고 싶은 돈 좀 있는 사업가 중년 남성들과 계약 애인관계를 맺고 매 주 1회씩 만ᄂᆞ는 조건으로 매월 도는 만날 때마다 상당한 돈을 받는 형태의 매춘이 있다는 말을 들은 바 있다.
●고환을 제거한 스파도네스(고자)는 자녀를 생산할 수는 없지만, 성관계는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고위층의 부름을 자주 받았으며 그곳에서 고급 남창이 되었는데 마치 살아있는 성 장난감 같았다.
11. 성과 권력
●아우구스투스는 리비아 드루실라와 오랜 결혼생활을 유지했다. 그러나 50년간 지속된 이 완벽한 결혼 뒤에는 어두운 측면이 있었다. 사실 그녀는 다른 남자와 결혼한 유부녀였는데, 아우구스투스가 그녀를 유혹했고 그녀가 임신 6개월이 되었을 때 공식적인 남편에게서 뻬앗았다. 카이사르와 동성애 관계라는 비난 외에 아우구스투스가 가진 약점은 또 있었다. 그는 어린 소녀나사춘기 소녀와의 잠자리를 즐겼던 것이다.
●티베리우스는 여자들과 동성애자들을 무더기로 불러들여 카프리별장에서 진정한 섹스파티를 열었다.
●칼리굴라는 누이들과 근친상간을 했고, 궁전에 초대한 손님들의 부인들과도 관계를 가졌다.
●그 유명한 메살리나는 어떠한가? 그녀는 밤에 남편인 클라우디우스황제가 잠이 들면, 검은 머리카락을 감추기 위해서 은발의가면을 쓰고 망토를 걸치고, 황궁을 나와서 리키스카라는 이름으로 수부라의 사창가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그녀는 모두에게 몸을 팔았으며, 영업시간이 끝난 뒤에도 여전히 만족하지 못한 채 마지막으로 그곳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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