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詩 속의 새, 그림 속의 새
정 민 · 을유문화사
서언
우리는 늘 새와 가까이 삽니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익산시의 남부 변방에 위치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끔씩 이름 모를 새 한 마리가 창문밖에 앉아 있다 가곤 합니다.
매주 찾아가는 고향집은 평소에 비우는 때문인지 많은 새가 찾아듭니다. 산비둘기가 가장 많이 보이고 까치도 자주 나타납니다. 호랑가시나무 속에는 박새가 숨어 요란스레 지저귑니다. 봄이면 어김없이 가까운 산에서 뻐꾸기 소리도 들려옵니다.
내가 근무하는 우리 자양중학교 하늘에는 봄철이면 아침저녁으로 기러기가 끝없이 줄을 지어 날아다닙니다. 학교 옆에는 호남평야에서도 가장 큰 저수지 중의 하나인 옥구 저수지가 있어 이곳에 찾아왔다가 다시 동쪽으로 다른 곳으로 날아가는 모습입니다. 모악산이나 대아리 수목원에 가면 아름다운 음색으로 지저귀는 새가 있는데 지금도 그 새의 이름은 잘 알지 못합니다. 매월 산행을 함께하는 이용만 선배께서 그새의 울음소리를 ‘홀딱벗고’ 라고 좀 야하고 재미있는 표현을 하시는데 우리는 즐겁게 웃으면서 기꺼이 동의하고 있습니다. 지금 교장실 밖에서 ‘삐삐삐삐’하는 새소리가 들리는데 역시 무슨 새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텃새와 철새들을 시와 그림을 통해 재미있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새에 대해 좀 더 잘 알 수 있도록 안내해 준 이 책이 매우 고맙습니다.
첫째 권
1. 까치(鵲)가 전하는 기쁜 소식
●이제현(1287-1367)의 居士戀
울타리 옆 꽃가지서 까치가 울고
침대맡 갈거미는 거미줄 친다.
우리 님 오실 날 가까운 게지
마음이 먼저 와 알리신 게야.
●이옥봉(16세기 후반)의 閨情
약속을 주시고선 왜 안 오시나
뜨락의 매화도 시드는 이때.
가지 위 까치소리 들려 오길래
거울 보며 부질없이 눈썹 그려요.
2. 광명을 알리는 힘찬 울음-닭(鷄)
●李 詹(1345-1405)의 鷹鷄說
※필자의 가장 자랑스러운 신평이씨 조상입니다.
고려 때 응방에서 매 기르는 관리가 산 닭을 매의 먹이로 주었다. 매가 닭의 한쪽 날개를 다먹어치워 거의 죽게 된 것을 부대 자루 속에 넣어 두었는데, 아침이 되자 닭이 홰를 쳤다. 이 이야기를 들은 충목왕은 측은한 마음이 들어 마침내 응방을 폐지했다. 닭은 죽어가면서도 아침을 알리려고 자루 속에서 울었던 것이다. 닭이 아침에 우는 것이야 천성이긴 해도, 그 신의로움이 왕의 마음을 움직여 응방을 폐지하게 하기에 이르렀다.
3. 마당에서 노는 학(鶴) : 두루미
●학은 십장생의 하나로 장수를 상징한다.
●이 달(1539-1618)의 畵鶴
※역시 필자의 자랑스러운 신평 이씨 조상입니다. 우리 신평이씨 조상 중에 후대에까지 널리 글이 남아 알려진 분은 딱 이 두 분인데 두 분의 글이 모두 이 책에 실렸습니다. 재미있는 일입니다.
한 마리 학 먼 하늘을 바라보면서
밤은 찬데 한 다리를 들고 서 있네.
참대 숲에 서풍이 불어오더니
온몸에 가을 이슬 뚝뚝 듣누나.
4. 옛 둥지를 다시 찾는 신의 : 제비(燕)
●어린 시절 여름의 시골집은 제비소리로 시끌벅적 하였다. 사람이 거처하는 바로 마루 앞 처마나 마루 위 대들보에 집을 짓고는 연신 벌레를 잡아 새끼에게 먹이는 제비와 마치 함께 사는 듯하였으니 요즈음 애완동물이나 다름 아니었다. 이젠 시골엔 제비가 없다. 몇 년 전 제주도에 학생들과 수학여행을 가서 많은 제비들을 보면서 무척 흐뭇했었고, 이년 전 봄 익산의 어양중학교 운동장에 나타난 제비를 보며 가슴이 두근댔다.
●유몽인(1559-1623)의 제비
제비 조잘조잘 무슨 소리를 내나
아는 것 안다 하고 모르는 것 모른다 하네.
깃털도 고기도 가죽도 쓸 데 없으니
인가에 둥지 쳐도 두려울 것 없어라.
마당에 떨어진 한 알 콩 삼키니 비리고 비리도다.
비리고 배리거늘 하루 종일 어이해 조잘대느냐?
5. 농사를 망치는 고약한 녀석 : 참새(雀)
●어린 시절 우리 시골집 안마당과 대밭에는 일 년 四時장철 시도 때도 없이 참새들 소리로 시끄러웠다. 눈이 온 겨울이면 아버지는 마당에 널빤지를 세우고 그 아래 나락(벼)를 놓은 다음 새끼줄을 방안에 까지 연결하여 참새를 잡아 부엌에서 맛있는 참새고기를 구어 먹었고, 나는 친구들과 사다리를 놓고 처마 밑에 참새가 낳은 새끼들을 꺼내어 보는 짓궂은 장난을 많이 하기도 하였다. 이젠 시골에 참새가 없다. 오히려 언젠가 효창공원에선가 노니는 참새 떼를 발견하곤 정말 깜짝 놀랐다.
●이제현(1287-1367)의 沙里花
참새야 어디서 날며 오가니
한 해의 농사는 아랑곳 않네.
홀아비 혼자서 지은 농산데
밭 가운데 벼와 기장 다 먹겠구나.
6. 개대신 집 지키던 새 : 거위(鵝)
●전라도에서는 <떼까우>라고 부릅니다. 친 벗 강거희 교장은 이름이 <거희>여서 어린 시절부터 별명이 <떼까우>였다고 합니다. 우리고 가끔 그렇게 부르곤 합니다.
●어린 시절 우리 마을의 큰 댁에 거위 두 마리가 있었습니다. 우리 마을에서 유일하게 거위를 키우는 집이었고 나는 저렇게 큰 거위는 부잣집에서나 키우는 것으로만 알았습니다. 여섯 살 즈음 어느 날 할머니가 그 집에 계신다기에 찾아갔다가 나를 좇아 달려 나오는 거위 두 마리가 어찌나 무섭던지 얼른 대문 밖으로 내뺐던 기억이 납니다. 키가 나보다도 더 큰 거위가 마치 나의 눈을 쪼려고 달려오는 듯하여 공포스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 후 나는 그 집 거위가 너무나 무서워서 도무지 그 집에 혼자서는 들어갈 엄두도 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시절이 매우 그립습니다.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것은 아니고 그냥 그리울 뿐입니다. 이제 나는 내년 2월이면 퇴직하여 찾을때마다 항상 마음이 지극히 편안한 나의 고향마을 돌제에서 이미 가꾸어 놓은 나의 과일밭에 동물원에서 볼 수 있는 작고 예쁜 축사를 짓고 당당하고 크고 멋있는 토종 수탁 몇 마리와, 암탉과 병아리들, 오리새끼들과 어미 부부오리와 함께 지내고 싶습니다. 특별히 돈이 드는 일이 아니므로 반드시 나의 꿈은 실현될 것입니다. 그날이 매우 기다려집니다. 친구들이 찾아와 토종닭을 기대할까 두렵기도 합니다. 그런 바람에는 그저 모르쇠 하는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어제 저녁 동창회에서 친구인 권모교수가 내년이면 우리 시골집에 고기 사들고 매 주 찾겠다하는 말에 역시 모르쇠 하였습니다. 가끔씩 찾아준다면 더할 나위없이 기쁘지만, 매주는 무척 힘들지 않겠습니까?
●주세붕(1495-1554)의 義鵝記
1530년 4월, 큰 누님이 돌아가셨다. 누님 집에는 한 쌍의 흰 거위가 있었다. 누님이 돌아가시자 안마당까지 들어와 방문을 바라보며 슬피 울었다. 이 같은 것이 여러 달이었다.
....10월 14일 밤에 한 마리가 죽었다. 아침에 일어나 살펴보았다. 남은 한 마리가 죽은 거위를 안고 그 날개를 당기면서 슬피 울고 있었다. 소리가 하늘까지 닿을 듯 했다. 지켜보던 사람들이 탄식하며 슬퍼했다. 마을아이가 죽은 거위를 가지고 갔다. 그러자 다시 배회하면서 사방 아래위를 둘러보며, 부르짖어 원망하면서 평소에 노닐며 모이 쪼던 곳으로 두루 찾아 다녔다. 안타깝게 찾는 것 같아 소리가 더욱 간절하고 괴로웠다. 열흘쯤 지나자 아예 목소리를 낼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옛 시절에도 상류층 양반들은 자신들이 예뻐하며 키우던 거위 같은 영물들은 결코 잡아먹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틀림없이 기르는 개도 잡아먹지 않았을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보통사람들은 별 생각 없이 막 잡아먹었다. 이는 지식인과 비지식인의 차이이기도 하지만 먹을 것이 족한 사람과 먹을 것이 귀한 사람과의 차이이기도 하다. 나는 젊은 시절, 동물에 대한 개념이 정리되지 못한 탓에 부끄러운 짓을 하였었다. 그러나 자연에 대한 이해와 사랑을 배우면서 나르는 산새도 잡지 못하고 기르는 닭도 내 손으로는 결코 잡지 않기로 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육식을 하고 있고 물고기는 여전히 잡기에 거부감이 없고 해충들은 살충제를 뿌려 마구 죽이고 있다. 부처님의 경지에 갈 수 없음을 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역시 거의 모든 인간들은 일부 특별한 채식주의자들을 제외하고는 육식을 한다. 날이면 날마다 많은 사람들은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오리고기에 온갖 해산물을 산채로 포를 뜨고 아직 죽지 않고 입을 벌름거리는 고기를 바라보면서 참이슬을 마신다. 아! 인간의 악함이여! 그런 인간들이 한편으로는 자연보호 한답시고 다리 다친 새를 구하여 치료하면서 야단법석을 떨고, 어떤 웃기는 시장은 시민들이 좋아하는 멀쩡한 돌고래를 정치적 이슈로 삼아 동물보호 한답시고 제주 앞바다에 풀어주는 퍼포먼스 짓거리를 한다. 동물에 대한 깊은 성찰이 있어 그런 해프닝을 벌이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구제역에 걸린 동물들은 무참하게 수만, 수십만 마리씩 산채로 땅에 묻고, 기르던 개와 고양이들을 함부로 버리고 그 들은 대부분 도살된다. 인간성의 二重性과 極惡無道性을 잘 보여주는 일이다.
7. 생각에 잠긴 백로(白鷺) : 해오라기
●순자 법행편의 <三思>
공자 말씀하시기를 “군자는 세 가지를 생각해두지 않으면 안 된다. ”
1. 젊어 배우지 않으면 나이 들어 무능해지고,
2. 늙어 자식을 가르치지 않으면 죽을 때 자식이 아무 생각이 없다.
3. 있으면서 베풀지 않으면 궁해졌을 때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공자가어>에서는
“군자가 젊어서는 나이 들었을 때를 생각해서 배움에 힘쓰고, 늙어서는 죽을 때를 생각해서 가르침에 힘쓰며,
궁할 때를 생각해서 베풂에 힘쓴다.”
●논어 계씨편의 <九思>
“군자는 아홉 가지를 생각해야 한다.”
보는 것은 밝기를 생각하고
듣는 것은 총명하기를 생각하며
낯빛은 온화할 것을 생각하고
모습은 공손하기를 생각하며
말은 충성스럽기를 생각하고
일은 공경하기를 생각하고
의심스러우면 물을 것을 생각하고
분할 때는 어려울 때를 생각하고
이익을 보면 의로울 것을 생각하라.
●이양연(1771-1853) 躱悲(타비 : 슬픔을 비키려)
늘그막에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같은 해에 둘째 아들마저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는 지극한 슬픔을 겪은 후 지은 작품이다.
문을 들어서려다 되려 나와서
고개 들어 바쁘게 두리번대네.
남쪽 언덕배기엔 산살구꽃이
서편 물가엔 대여섯 마리 해오라기가.
8. 물총새(취 : 翠)가 돋운 시정
●비취새 라고도 하고 우리말로는 쇠새라고 부른다.
●서거정(1420-1488)의 翠鳥(취조)
비단으로 옷 해 입은 한 쌍 비취새
못가에서 깃을 털며 맑은 볕을 희롱하네.
어디서 들려오는 두세 곡 쇠피리에
쭈루루 소리내며 놀라 날까 걱정일세.
9. 딱따구리 나무를 쪼네 : 啄木鳥
●이규보(1168-1241)의 啄木鳥(탁목조)
나무의 구멍에서 벌레집 찾아
딱딱 쪼는 소리 문 두드리듯
그 누가 네 부리 빌려가서는
사람 속 벌레를 쪼아 없앨꼬.
10. 생후투티의 멋진 모자 : 戴勝(대승)
●뽕나무에 즐겨 앉으므로 오디새라고도 한다.
●박인로(1561-1642)의 戴勝吟
후투티 울음소리 낮잠을 자주 깨니
어이해 자꾸만 농부 마음 재촉하나?
저 서울 좋은 집 모서리에서 울어
밭 갈라 권하는 새 있음을 알게 하렴.
11. 앵무새의 재롱 : 鸚鵡
●삼국유사에 실린 <흥덕왕과 앵무새>
42대 흥덕왕은 826년에 즉위했다. 얼마 뒤 어떤 사람이 당나라에 사신 갔다가 앵무새 안 쌍을 가지고 왔다. 오래지 않아 암놈이 죽었다. 홀로 된 수놈은 슬픈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왕이 사람을 시켜 그 앞에 거울을 걸어 주었다. 수놈은 거울 속 그림자를 보더니 제 짝을 얻었나 싶어 거울을 쪼았다. 그림자인줄 알고는 슬피 울다 죽었다. 왕이 노래를 지었다 하는데 내용은 알 수 가 없다.
12. 천사의 깃털 공작새 : 孔雀
●공작은 우리나라에 사는 새는 아니다. 박지원은 자신이 거처하는 집을 공작관이라 이름 짓고 <孔雀館記>를 남겼다. 이 글중에 자신이 중국에 갔을 때 직접 본 공작에 대해 적었다. 공작은 동물원에서나 볼 수 있는 왕비 같은 새다.
13. 금계(金鷄), 봉황도 나만은 못해
●鷩雉(별치 : 붉은 꿩)라고도 한다.
●고경명(1533-1592)의 <응제어병육십이영> 중 금치
금계가 짝을 지어 비단 날개 선명하게
이름 난 꽃 벗을 삽아 푸른 바위 꼭대기에
가벼운 바란 따스한 해 기심을 잊은 곳은
좋구나 봄 동산 여린 풀잎 곁이로다.
14. 安分自足하는 메추리 : 鵪鶉(암순)
●홍세태(1653-1725)의 <野田鶉行>
....
들밭의 메추리
네 몸이 작음을 한하지 말아라
발톱에 낚아
채여 매 먹이 됨 면하리니
알겠구나 크고 작음 제각기 쓸모 있어
만물이란 모두 다 하늘이 낸 것임을
15. 百年偕老합시다. 白頭鳥.
●할미새사촌을 말한다. 산초나무에 즐겨 앉는다.
●유몽인의 <제백두조좌형극도>
백두조야 어 어이 울고 있느냐
가시나무 숲을 이뤄 살 수가 없네
어이해 날개 떨쳐 날아가잖니
벽오동 동편 물가 대숲 저편에.
한 가진들 어이해 부족할까요
가시나무 문제없이 살 수 있지요.
높이 날아 그 무얼 기다리나요
매와 새매 그 곁에서 날 노릴 텐데.
16. 방정맞은 할미새 : 鶺鴒(척령)
●유숙(1564-1636)의 <척령> 멀리 함경도 경성에 벼슬 살러 가 있던 동생을 생각하며 지은 시다.
들판 위 할미새 날며 또 우네
어려울 때 다급한 맘 알아주니 어여쁘다.
나는 형제 되어 저 새만도 못하여라
고갯길 소 수레를 누가 전송할거나.
17. 박고지를 훔쳐 먹는 밀화부리 : 高枝鳥
●이능화의 조선여속고의 <姑婦奇譚>
뜨락 밤나무 그늘에는 꾀꼬리가 남아 있고
밭머리의 뽕잎에는 밀화부리 뒤따르네.
18. 눈가에 수놓은 동박새 : 繡眼(수안)
●명 능운한의 <사시화조도>
집안 가득 훈풍에 맑은 대낮 적막한데
석류꽃 피어나서 뻗은 가지 울을 넘네
미인은 창 아래서 바느질 한가하니
꽃 사이의 동박새가 더욱 사랑스럽네.
19. 태평성세를 알리는 황여새 : 太平雀
●참새목 여새과에 속하는 겨울철새다.
●청 서보광의 <만수시>
장구한 천지위에 만 년 된 나뭇가지
상서론 빛 살랑살랑 옥섬돌에 가득해라.
높은 곳에 살고 있는 한 쌍의 태평작은
아침마다 태평시절 알려 주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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