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hool-그리움

고창 대성고등학교

청담(靑潭) 2015. 1. 22. 14:30

 

 

고창대성고등학교

 

 

 

해리중에 근무한지 겨우 3년인데, 고등학교로 옮기는 일은 그리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중학교는 국사를 제외하고 세계사․지리․일반사회를 묶어 사회과로 통합되어 있으므로 발령도 사회과교사로 나고, 전문성이 있든 없든 모두 가르치게 된다. 이제 고등학교로 옮겨 전공인 역사교사로 발령을 받아 국사와 세계사를 깊이 있게 가르치고 싶고, 또 한편으로 젊은 교사로서 중학교에만 머물기 싫은 이유도 있어 결정을 내려 옮기게 된다.  고창고로 나지 않고 대산면에 있는 대성고로 발령을 받게 되니 일년동안 무장에서 대산으로 버스통근을 하게 되었다. 온통 밭으로 이어진 시골길 30리를 하루에 서너 번 왕복하는 군내버스로 다녔다. 고창에 사시며 고창고에서 오신 이의방 선생님과 함께 부임하였다.

대성고는 학년 당 4학급 모두 12학급으로 시골 고등학교지만 총학생수는 600여명이 넘는다. 같은 울안에 대성중학교와 나란히 함께 있으나 두 학교는 전혀 별개의 독립된 학교이다. 교장은 60세 정도의 권혁성 교장선생님이신데 고창 토박이로 외모는 귀품이 있으시고, 밝고 맑은 성품을 지니고 계신다. 교감은 은용기 선생님이시며 연세는 교장과 거의 비슷하신데 100kg의 거구로 외모답게 걸걸하시고 텁텁한 분으로, 큰아들이 나와 같은 또래로 원광대 약학과를 나와 마침 무장에서 약국을 경영하므로 은약사와도 잘 알고 지내게 된다.

 

 

1983

  첫 해는 1학년 3반 담임과 윤리부장을 맡았다. 내 옆자리는 새로 부임한 김종헌 선생님이다. 음악교사로 방과후가 되면 매일 빈 교실에서 클라리넷을 연습하셨고, 일찍 퇴직한 후 한국소리문화의 전당 상임지휘자를 거쳐 요즈음은 노스트로 오케스트라 단장으로 계신다. 2010년경 우리 무주고에서 오케스트라를 초청하여 무주예술체육문화관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을 때 김종헌 선생이 지휘자로 와서 반갑게 만났다. 4반 담임이었던 문경민 선생은 다음 해 교직을 떠나 지방 신문사 기자로 직업을 바꾸었고, 새전북신문사 편집국장을 역임하고 여전히 언론계에서 활동하고 계신다.

 우리 반 반장은 이범석으로 어려운 환경에서도 공부도 잘하고 행동도 바른 모범생이다. 주선재, 정재근, 정진호 등은 기억에 많이 남는 친구들이다.

1학년 국사, 3학년 국사, 3학년 세계사를 담당하게 되어 수능을 대비하는 수업을 하게 되니, 국사는 별 문제가 없었으나 세계사는 첫 해이기에 수능문제 풀이에 상당히 힘들었다. 이후 4년동안 국사와 세계사만 가르쳤기에 곧 해결되었다.

 

1984

  3학년 1반 담임이다. 2반은 이균재 선생님으로 현재 수석교사로 근무하신다. 3반은 김광석 선생님으로 교감으로 근무하시고 있다. 정읍으로 전근 가셨던 이치수 선생(현 교장)이 우리 학교로 부임하여 다시 만나 함께 근무하게 된다.

  우리 반은 53명으로 고3인지라 제법 어른스러웠다. 반장인 김영삼을 비롯하여 김성묵, 성호규, 이금영, 노종남 등은 열심히 공부하는 모범생들이고, 오상훈, 정익수, 박용철 같은 사나이 다운 청년들도 많았다. 모두들 그리운 사람들이다.

아이들과 더 많이 소통하지 못한 아쉬움과 미안함이 크다. 이 때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사연이 둘이 생겨났다.

  먼저 이금영이 사연이다. 대학입학 원서 제출 시 금영이와 전북대를 지원하며 학과선택을 신중하게 상담했다. 사대 물리교육학과, 공대 건축공학과, 수의대 수의학과를 차례로 지망했는데 정작 1지망인 사대에 합격하지 못했다. 금영이는 교사가 되기를 원했으나 어쩔 수 없이 수의학과에 진학하였다. 보편적으로 사대 이과계열에서는 항상 수학교육과가 가장 커트라인이 높으므로 상대적으로 낮은 물리학과를 선택한 것인데 하필이면 그 해에는 물리교육학과가 가장 높고 수학과는 낮은 결과가 나왔으니 이를 함께 결정한 담임으로서 두고두고 금영이에게 미안한 일이 되었다. 그 뒤 언제부터인가 사대보다는 수의학과가 더 인기학과가 되었으니 오늘 그가 아주 성공적인 삶을 잘 살고 있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음은 정익수 사연이다. 평소 믿음직스럽고 남자다운 정익수를 본의 아니게 크게 때린 일이다. 오늘날 관점에서 교사의 학교폭력을 행사한 것이다. 다른 교사에게 함부로 무례한 말을 했다는 이유였지만, 내 반의 학생을 내손으로 손찌검을 한 행위에 대해서는 교사로서 도저히 내 스스로에게 용서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평생을 두고 후회스럽고 부끄러운 모습이기에 이 지면을 통해 정익수에게 다시 한 번 용서를 빈다. 10년 전 2005년 봄, 전주에서 이 아이들이 졸업 20주년 행사를 했을 때 참석하여 이 일화를 말하고 정익수를 만나 사과하고 싶다는 말을 피력했을 때 옆에서 누군가 이렇데 대답해 주었다.

정작 익수는 그걸 기억이나 하는지 모르겠네요. 당시에는 학생이 선생님에게 호되게 맞는 일이 비일비재했는데 너무 자책하지마세요. 익수가 선생님께서 그런 마음을 아직도 가지고 계신 것을 알면 당연히 용서하겠지요.”

너무나 고마운 말이었다.

오상훈이는 영화배우가 되어 『황산벌』에 백제의 장군으로 출연하였다. 그 후 TV에서 연속극에 출연하더니 이후로는 보지 못했다. 그의 발전을 빈다.

  2반의 미남아 오경백이는 나와 씨름반 동아리를 했는데 무주고에 근무하면서 만났다. 그는 무주리조트에 근무하고 있고 큰 딸이 무주고를 다녔다.

2반의 박종호와 3반의 황선미, 김임순이는 여러 면에서 두각을 나타낸 똑똑한 아이들이다.

 

1985

  3학년이 4개 반이 되었다. 내가 1, 권명철 선생님이 2, 김광석 선생님이 3, 이성연 선생님이 4반을 맡았다. 존경하는 이성연 교장 선생님은 재작년 정년퇴임 후 사모님 근무지인 익산의 시골에서 살고 계시고, 권명철 선생님은 작년에 정년을 하셨고 자녀들 학업문제로 역시 익산에 계속하여 사신다. 이때 함께 근무하던 선생님들이 승진을 많이 하셨으니 이병태 선생님(교장 퇴임), 김광석 선생님(현 교감) 이성연 선생님(교장 퇴임), 소병혁 선생님(현 장학사), 이치수 선생님(현 교장), 이균재 선생님(현 수석교사), 이준호 선생님(현 교감), 배주열 선생님(현 교장), 한석우 선생님(현 교장) 등이다.

  남녀 혼성반 편성이 되어 남학생 25, 여학생 26명이다. 반장은 주선섭으로 아주 영리한 친구다. 공부에는 큰 흥미를 보이지 않으나, 상식이 매우 풍부하고 사고의 순발력이나 리더십도 좋았다. IQ테스트가 있는 전날, 실험적으로 우리 반 학생들에게 지능검사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인식시키고, 검사에 임하는 자세와 검사받는 태도에 따라 큰 차이가 발생하므로 아침에 기분 좋은 상태에서 정성을 다해 테스트에 임해 줄 것을 신신 당부하고 아침에도 다시 강조하였다. 엄정하게 검사를 실시하였지만 결과는 반평균이 다른 반들과 무려 10~15점의 차이가 나는 결과가 도출되었다. 역시 주선섭이가 가장 우수하게 나왔고 130점대로 기억하고 있다. 그는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에서 농산물을 취급하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으며, 나는 그가 반드시 더욱 크게 성공하리라고 확신한다. 아이들이 매우 순수하여 정이 많았다. 김범진, 황선권 등은 익산에 모여 우리 집을 두세 번 방문한 일이 있다.

  2반의 매력 있던 최영애, 공부 잘하고 역사를 전공한 문두래는 기억에 남는 학생들이다.

 

1986

  1반은 오석주 선생님, 2반은 내가 담임이고, 3반은 송윤칠 선생님, 4반은 배주열 선생님이다. 우리 반은 남학생 27, 여학생 24명이다. 반장은 정근수인데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별로 아름답지 못한 추억이 남아 있다. 여러차례 소식을 전해주던 정명숙과 3반의 김혜숙은 우리 반의 정복희,양미, 정태, 4반의 박혜숙, 김미숙이의 소식도 전해주었다. 참, 우리 교사들은 대부분 박해숙이네 집에서 점심식사를 했는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붕어매운탕을 실컷 먹었다. 공부 잘하는 미남자 이정태, 믿음직한 조재영, 언젠가 명절선물을 보내온 양미, 멋쟁이 정춘덕, 익산 우리 집에 찾아왔던 착한 김현숙, 공부 잘하고 간호대학에 진학한 김선숙 모두 그립다. 내가 유난히 예뻐했던 1반의 조수정, 4반의 김순남이 기억에 많이 남았다.  이 해에 어쩌면 1학년이었던 배경숙이는 종종 소식을 전해오고 다른 선생님들의 소식을 전해 주었다. 여러 선생님들을 생각하는 아름다운 마음이 예나 제나 한결 같았다. 아이들을 키우며 행복하게 살고 있는 모습도 보여 주었다.  

 

   처음 1년간은 무장에서 다녔지만 양드리가 인천초등학교로 이동하게 되고 우리는 1984년에는 읍내로 이사하게 된다. 고창고 뒤편 주택에 방을 얻었고, 할머니께서 오셔서 승수를 돌보아 주시게 되었다. 그 해에 승원이도 태어났다. 마침 같은 골목의 앞집에 초등학교 선배인 우체국에 근무하는 강실현 형이 살고 있어 큰 위안이 되었다.1986년에는 신축한지 얼마되지 않은 20평형 모양연립에 살게 되어 처음으로 편리한 아파트 생활을 하게 되었으나 연탄보일러여서 연탄 가는일과 가스냄새 맡는 일은 보통 고역이 아니었다.

 

 우리 대성고에는 역시 젊은 교사들이 많았다. 수업시수가 많았지만 보충수업이 없는 교사들은 퇴근 후면 함께 모여 삼겹살에 소주를 기울이며 행복했고, 토요일이 되어 집에 가는 날이면 은교감 선생님과는 당신이 좋아하는 소주대포를 한 잔씩 나누었다. 돌이켜 보면 은근히 정이 있으신 분이셨다. 한 울타리 안에 있는 대성중 선생님들과는 자주 배구시합이나 축구시합을 했다. 테니스코트가 있어 처음으로 테니스도 배워 쳤다.

 

  2년간 고창읍에서 통근하면서 교무부장인 이의방 형님과는 함께 붙어살다시피 했다. 터미널에 도착하여 둘이 소주한잔을 하는 일이 참 많았고, 타향에 와서 사는 우리 가족을 살뜰히도 보살펴 주셨다. 그 고마움을 내내 잊지 못한다. 훌륭한 선배다. 지금은 가끔 전화만 드리지만 퇴직 후엔 자주 뵙고 싶다.

 

  대성고에서 3년간 진학담당을 하면서 나름대로는 학생들의 성적향상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돌이켜 생각하면 오히려 부끄러움이 더 크다. 교사가 아이들을 가르침에 있어 성적향상과 대학진학만이 중요한 것이 아님에도 인문계고교의 진학담당이라는 책임에만 지나치게 의식하여 충실하다보니 정작 진학하지 못하는 60~70%의 학생들과는 졸업이후의 진로에 대한 의미 있는 상담한번 제대로 해주지 못하였던 것이니 나의 대성고 시절중 가장 크게 자책감을 가지는 부분이다. 당시의 대성고 학생들, 특히 우리 반 학생들에게는 이제라도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전한다.

 

  고창에서 7년간을 근무 하여서인지 이제 그만 시내로 옮기고 싶어졌다. 나는 전주로 옮길 수 있었으나, 양드리는 5년 반 근무경력으로는 불가능하여 일단 익산으로 함께 내신을 하게 되었다. 인문계고등학교는 이리여고 야간에만 역사자리가 있어 야간근무는 전혀 근무하고 싶은 생각이 없으므로 어쩔 수 없이 중학교로 내신하였는데 불행이도 나만 발령이 나게 되어 양드리는 1년 동안 고창에서 자취를 하는 고생을 시켰으니 두고두고 미안한 일이 되었다.

 

 

  1976년에 개교한 고창대성고는 시대변화를 거스르지 못하고 학생을 모집하지 못하면서 2004년 2월 폐교되었다. 내가 근무한 9개 학교중 유일하다. 비록 학교는 사라졌지만 내 마음속에 자리한 4년간의 아름다운 추억들과 보고 싶은 제자들에 대한 기억은 언제까지나 푸르르리라.

 

 

                          2016.10.15  번개팅 초대 감사!

 

■내가 근무한 학교들을 다시 찾아보기로 한다. 해리중학교를 거쳐 이제는 폐교된 대성고등학교를 찾았다. 내가 4년을 근무한 세월의 흔적이다. 운동장은 잡초로 덮혀있고 교사는 오랫동안 손보지 않아 보기에 안쓰럽다. 그러나 뒷뜰은 그런대로 깨끗하게 보존되어 있구나! 모교를 찾는 졸업생들에게는 아직까지 교사가 남아 있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위안이 될까?

                                                                                                                                                                                   202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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