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제일고등학교
부안여상에서 6년간 장기근무 하였으므로 지역을 옮겨야 한다. 교육경력이 24년(승진필수 기본경력은 25년)이 되었고 나이가 50대가 되었으니 어느 학교로 가는 것이 내게 바람직한지 신중하게 탐색하게 되었다. 교장, 교감선생님을 비롯한 동료들이 전주제일고를 추천하여 교무부장인 강병택 선생과 함께 전주제일고로 가게 되었다. 강병택 선생은 전 해에 교감연수를 받은 바 있어 9월에 전문직으로 발령을 받았다. 학교장은 키가 182cm로 훤칠하시고 사나이다운 풍모를 지닌 멋쟁이 박명일 교장이신데 전에 도교육청 체육보건과장과 학생수련원장을 지내신 쾌남아시다. 교감은 익산에 사시는 조점수 교감이신데 아주 예의가 바르시고 인정이 많으신 분이다.
전주제일고는 1937년에 개교한 오랜 역사가 있는 학교로써 1951년에 전주상업고등학교로 개칭하였다가 2002년에 교명을 전주상고에서 제일고로 바꾸었는데 이는 동창회에서 인문계전환을 위한 시도의 일환책이었다. 아직은 상업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학년 당 9학급으로 모두 27학급이며, 학생수는 800여명, 교직원은 급식실 조리사님들까지 무려 80여 명이나 되었다.
2004년
남녀공학인 해리중, 대성고, 이리북중을 거치고 이어서는 여학교인 월명여중과 부안여상을 거쳐 처음으로 남학생만 있는 학교에 근무하게 되었다. 나는 첫 해 2학년 5반 담임을 맡았고 2학년 국사를 담당했다. 1층 중앙에 2학년부실이 있는데 그 방에는 학년부장인 이인근 선생, 이용만 선생님. 정위연 선생과 내가 근무했다. 이인근 선생과는 무주고에서 다시 만나 2년을 함께 하였고, 정위연 선생도 내가 무주고를 떠나는 해에 부임해 와서 6개월을 함께 근무했다. 우리 반 학생수는 29명이고 실장은 야무진 이철연이고 부실장은 윤용석이다. 남자고교생들임에도 대부분 착해서 아무 어려움 없이 학급담임을 할 수 있었다. 1층 동편에는 원로들이 근무하시는데 김재식 선생님, 이재천 선생님, 이현봉 선생님 등 50대 후반의 선배들이셨고 친절하게 대해주셔서 자주 놀러갔다. 조점수 교감선생님도 선배 교사들에게 자주 문안인사를 오시는 것을 보면서 배운 점이 컸다.
박교장 선생님께서는 교감, 행정실장, 열두 명의 부장들과 공식 회식을 할 때에도 반드시 나를 불러 참여시켰고 2차까지도 어울렸다. 내게 대한 학교장의 관심과 배려가 그만 큼 크셨고 부장들도 내게 모두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2005년~2008년
사실상 승진을 눈앞에 두고 노력하고 있는 사람은 나 이외에 선배 한 분이 계셨으나 건강이 악화되어 거의 정상근무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라 박명일 교장 선생님은 정년퇴임을 하시면서도 강력하게 나를 교무부장으로 임명하여 주셨다. 곧 일반계로 전환을 추진하는 당신 모교의 학교발전 관련 업무를 상과교사가 아닌 내가 교무부장을 맡아 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기시는 것으로 생각되었고, 학교장의 신뢰를 얻어 교무부장이 됨으로써 큰 어려움 없이 교감연수지명을 받을 수 있었으니 아무런 연고도 없는 나를 믿어주시고 맏겨주신 박명일 교장께 크게 감사할 따름이다.
일반계 전환
2005학년도에 새로 부임하신 교장은 은정표 교장이시다. 내가 부안여상에서 모신 분이시므로 잘 보필해 드리게 된다. 내가 교무부장을 맡고 성실하며 인성이 바른 이재정 선생이 연구부장을 맡았다. 교무부에는 부안여상에서 함께 근무한 바 있고, 교무부장 경력이 많은 이광종 선생이 있어 정말 열심히 도와주었으니 그 고마움을 언제까지나 잊을 수 없다. 동창회에서는 그 해에 아주 강력하게 일반계 전환을 추진하여 2005년 8월 25일에 도교육청의 승인을 받았으므로 나는 곧바로 2006학년도 일반계 신입생 모집과 교육과정을 준비하게 되었다. 교육과정은 전주고, 전라고, 이리고 등 전북도내 일반계 고등학교의 교육과정을 참작하되 우리학교에 맞게 교사들의 의견을 들어가며 완성하였는데 무척 힘든 나홀로 작업이었다. 신입생 모집은 큰 어려움은 없었으나 상고와는 또 다른 측면이 있기에 2년 동안은 전주시내 각 중학교를 팀을 짜서 순방하였다. 동창회에서 일반계 전환을 추진한지 수 년 만에 비로소 승인을 받았고, 상업계고교로 출발한 때로부터는 55년 만인 2006학년도에 처음으로 일반계 학생을 모집한 것이다. 동시에 자율학교로 지정되었는데 먼저 일반계로 전환한 전북제일고(구 이리상고)에 자문을 구하여 처리하였다. 이 해 나는 2학년 국사를 담당하였다.
2006학년도에 내가 교무부장, 이혜경 선생이 연구부장을 맡았다. 30대 중반의 이혜경 선생은 박사학위를 가지고 대학강의도 하고 있었는데 능력 면에서나, 책임감 등 인성 면에서나 열정이나 간에 아주 뛰어난 교사로서 모든 교사들의 모범이 되는 사람이다. 우리선배들이 볼 때도 너무나 훌륭하고 예쁜 선생님이다. 현재 도교육청 상업계담당 장학사로 근무하고 있는데 정말 미래가 촉망되고 있다. 이 해에는 다른 고등학교에서 교무부장을 5년이나 하고 우리학교에 전입해온 양창호 선생이 도와주어 무난히 교무부장 역할을 할 수 있었으니 이광종 선생과 양창호 선생에게 감사하는 마음은 항시 잊지 않고 있다. 그리고 교감연수지명을 받아 여름방학에 교원연수원에서 교감연수를 받게 되었다. 이 때 반장을 맡은 연유로 지금까지 교감연수동기 모임인 《육일회》의 회장을 맡고 있다. 이 해에도 2학년 국사를 담당하였다. 2007학년도에는 1·2학년이 일반계이고 3학년만 상업계이므로 거의 모든 전문계 교사들이 불가피 전출하게 되었다. 일반계 교사를 포함하여 전 교사의 50%에 해당하는 무려 스물일곱 분의 교사들이 전출희망원을 제출하는 일이 벌어지게 되었고 또 실제 전출되어 교사의 절반이 일거에 바뀌게 된다. 교무부장을 맡은 2년 동안 늘 업무를 마치고 나면 전 교직원들은 모두 퇴근한 뒤라 으레 내가 마지막으로 퇴근하게 되는데 숙직전담하시는 이한기 주사님은 이때 따라오셔서 정문을 닫고 현관문을 잠갔다. 이한기 주사님은 아침이면 현관에서 교문까지 날마다 빗자루로 쓰시고 숙직전담이므로 당신의 업무도 아닐 뿐더러 근무시간이 아닌 시간에도 학교의 이곳저곳을 살피시며 수선을 하시는 정말 근면하시고 훌륭한 분이시다. 학교장에게 말씀드려 감사패를 만들어 드린 바 있다.
2007학년도에는 양창호 선생이 교무부장을 맡도록 하고 나는 환경부소속으로 청소시간이면 쓰레기장 부근 청소감독을 하면서 교감발령대기 상태로 지냈다. 하루 4시간 정도의 수업이외에는 거의 업무가 없으므로 수업이 없는 시간에는 교내의 휴지를 줍거나 체육실, 음악실, 미술실을 찾기도 하고 학교의 앞 뒤 정원을 산책하기도 하는 정말 한가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특별활동은 축구부를 맡아 한 시간 동안 아이들이 열심히 뛰는 모습을 지켜보며 가끔 자장면도 사주었다.
나이가 50대 중반이므로 구태여 전문직을 신청 하지 않고 교감발령을 기다렸지만, 여성우대로 인하여 기대했던 2학기에 나지 못하고 말았다. 더구나 교무부장을 맡지 않고 근무하게 됨에 따라 근무평정 1순위를 받지 못함으로써 순위가 밀려 2008년 3월에조차 발령을 받지 못하게 되어 마음이 아파졌다. 3학년 사회문화를 담담하였는데 교과서를 가르치기는 쉬웠으나 수능문제풀이는 매우 힘들었다. 이 때 2학년의 방과후 보충학습 시간에 2학년 국사를 담당했는데 유난히 국사를 잘하는 이태호는 나를 무척이나 따랐고 이 해에 한국사 능력시험 2급을 획득하였다. 우석대 역사교육학과를 졸업하고 임용시험 준비를 하고 있는데 나와 여전히 만나기도하고 연락이 되고 있다. 최선을 다하는 이태호군의 밝은 미래를 기대한다.
2008학년도에는 드디어 평준화 배정을 받게 되어 남녀공학이 되었다. 남학생 5개 반 여학생 4개 반으로 편성되었다. 전 학년이 모두 일반계가 되었지만 2·3학년은 비평준화 남학생들인 만큼 학년간 위화감이 조성되지 않도록 교사들이 이심전심으로 학생들의 마음을 아프지 않도록 하는 일에 많은 관심을 쏟았다. 새로 입학한 1학년들은 준수한 아이들이 많은데다가 남녀공학이어서 예쁜 여학생들이 생기니 학교가 마냥 행복하게 변했다. 어찌나 즐겁게 인사들을 잘하는지 현관에나가면 아이들과 행복한 인사를 주고받는 즐거움이 컸다. 처음으로 평준화 학생들을 받아 우수한 학생들과 공부하는 즐거움이 보통 큰 게 아니었다. 1학년 국사를 담당하였는데 때마침 5월에 미국에서 소고기를 수입재개 하는데 반대하는 광우병 파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6월까지 계속된 반정부 시위에서는 온갖 유언비어가 난무하고 비과학적 주장들이 판을 쳤다. 전국의 초중고 학생들까지 이에 동참하는 소동이 벌여져 걷잡을 수 없는 모습을 보였으나 나는 광우병 소요사태에 대한 여러 주장들(찬·반의)을 객관적 입장에서 설명하여 주고 토론식 수업을 한 뒤 이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수행평가로 제출토록 하였다. 놀랍게도 대다수의 우리 아이들이 광우병 시위를 비과학적 주장으로, 비이성적으로 행동으로 결론을 내리면서 비판적으로 인식하는 것을 보며 교사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크게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모름지기 교사란 냉정한 눈과 자세로 사회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해 아이들 스스로 자료를 통하여 조사하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바르게 판단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지, 그저 자신의 주장은 무조건 옳다는 듯이 어린 아이들에게 자신의 생각과 가치관(편향되어 있음을 인정하지도 않으면서)을 일방적으로 주입시키는 교사의 교육자세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새삼 확실하게 느끼게 되었고 학생들이 오히려 어른들보다도 더 합리적 사고를 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9월 1일자로 교감발령이 나서 떠났기에, 비록 평준화 학생들과의 수업은 겨우 한 학기로 끝났지만 교사로서의 마지막 수업은 예의 바르고 예쁘고 영특한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마냥 행복하였음을 큰 기쁨으로 여긴다.
수학능력시험
작년에 이어 2014학년도 수능시험도 오류문제로 한참이나 시끄러웠다. 시내의 고등학교 교무부장 업무 중 가장 힘든 것이 학교에서 수능시험을 치르는 것이다. 교무부 소속 교사들이 중심이 되어 20여개 수험실의 정리, 방송시설 점검 및 카세트 라디오 준비, 책상배열 및 수험번호 등의 부착, 온갖 보고서 유인물 인쇄 등 수능시험을 대비하여 준비하는 것도 힘들지만, 전날 감독관 예비소집을 하고, 당일 새벽 6시까지 교감과 함께 도교육청에 도착해서 시험지를 인수해 와서는 다시 매수 등을 확인하고 보관시킨 뒤 일찍 출근한 몇 몇 교사들과 식당에서 아침밥을 먹고, 8시부터는 초 비상사태에 돌입한다. 긴장 속에서 부정행위나 방송사고나 외부인에 의한 방해행위 등의 사고 없기를 바라며, 매 시간 끝날 때마다 교무부 교사들의 매수 및 감독관 도장확인까지 잘 이루어지고 시험이 완전히 끝나면 감독관들에게 수당을 지급하는 일까지 마친 뒤 이제 완벽하게 문제지는 봉인하여 학교에 보관하고 답안지는 봉인하여 도교육청에 가져다 제출하고 나면 보통 7시가 넘었다. 하루 내내 교무부장은 전날부터 이틀간을 초긴장 속에서 보내고 나면 아주 허탈상태에 빠져 버린다. 다행이 교감이 소주라도 한잔 하시는 분이라면 저녁식사를 함께 하면서 풀었지만, 그렇지 못하면 교무부장인 내가 나서 부원들과 함께 풀었다. 이광종 선생님, 양창호 선생님처럼 유능한 분들이 적극적으로 함께 해주어 사고 없이 수능시험을 무사히 치러낼 수 있었던 것이다.
전주제일고에 근무하는 동안 이용만 선생님, 이인근 선생이 중심이 되어 등산팀을 조직하여 부근의 산을 다니기 시작하였던바 지금까지 모임이 잘 유지되고 있다. 이름은 《기린봉회》라 하였고. 현재까지 모임에 충실한 분들은 고문 이용만 선생님, 회장 은정표 교장 선생님, 이재천 선생님, 최덕호 선생님, 나, 유일원 선생님, 주정만 선생님, 우덕희 선생님, 총무 이인근 선생님, 이영희 선생님, 고병남 선생님 등 11명이다. 해외여행을 두 번 다녀왔고 2개월에 한 번씩 모여 함께 산에 오른다.
은정표 교장 후임으로 묘하게도 고교 1년 선배인 강호성 교장, 그 다음 후임으로 고교 2년 선배로 부안여상에서 함께 근무한 노권엄 교장, 그 후임으로 고교 동기인 황덕구 교장이 근무하고 있다. 황교장은 이제 나와 함께 교직생활이 한 달 남았다.
2023.10.28
거의 5년 전, 이쁜 딸 부부가 우리 내외와 사돈 두분과 함께 전주에서 1박 2일을 함께 하는 계힉을 세웠는데 당시 숙소가 학교근처 단독주택이었다. 아침 일찍 전주제일고를 떠난지 10년 너머만에 학교를 찾아 크게 변한 모습을 보며 감개가 무량하였었다. 오늘 전주에서 1시와 5시 두번의 결혼식이 있어 모처럼 기회가 왔는지라 제일고를 다시 찾았다. 한시간 동안 교정을 걸으면서 여기서보낸 4년 반의 세월을 회상하였다. 알므답게 까꾸어지고 발전하는 전주제일고가 지금도 마치 내 직장이듯 싶다. 그만큼 정이 든 곳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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