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 회룡포·영주 무섬마을
1. 첫 가을 여행
내 기억으로 내 생애 가장 무덥고 지루했던 3개월의 폭염을 우리 모두 잘 견디어내고 어김없이 계절은 바뀌어 드디어 가을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지난 5월 이후 오직 교원대 출장에 충실하면서 매주 2회 문화원 서예교실에 나가는 일 말고는 마냥 매일 시골집에 다니면서 가축과 잔디를 관리하고 채소를 뜯어오며 힘들게 무더위를 이겨냈다. 테니스는 거의 잊었다. 해외여행은커녕 국내 장거리여행조차 꿈도 꾸지 않았다. 6월에 경주 양동마을과 옥산서원을 찾은 문화원 답사에 참여한 것이 고작이었다. 계모임이나 동창회 모임에 나가는 것조차도 힘들었다. 그래 마음속으로 여러 번 결심했다.
?이 여름 지나 좋은 가을이 오면 여행좀 실컷 다녀보자!?
그래서 신청한 금년 가을 첫 여행이 바로 채수환 교수가 안내한 원광문화원 답사다. 원광문화원은 원불교 이리지부에서 운영하는 단체로 연 6회 답사여행을 한다고 한다. 물론 우리 부부는 처음인데 차에 오르니 반갑게도 친구인 조운용 교수부부가 앉아있다. 조교수도 처음이라고 한다. 물론 그도 채교수 안내로 왔다.
2. 예천 회룡포
오늘 안동 하회마을이나 무주의 내도리처럼 강이 마을을 휘감아 도는 경북의 아름다운 두 마을을 찾는다고 한다. 첫 목적지는 경북 예천군 용궁면 회룡포다. 용궁면이라니 면 이름도 신기하다. 고려 때 龍州, 조선 때 龍宮이라 하였고, 1914년 龍宮面으로 개칭되었다고 한다. 경북은 큰 도이고 우리가 찾는 예천과 영주는 강원도와 가까워 버스는 호남고속도로를 거쳐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청주 JC에서 우회전한다. 나는 지도를 찾아보지도 않고 처음엔 익산-장수 고속도로를 거쳐 대구를 지나 안동으로 가나 했더니 전혀 아니다. 대전으로 향하기에 회덕에서 우회전하여 김천에서 올라가나 했더니 그것도 아니다. 버스가 택한 노선이 고속도로를 가장 많이 이용하므로 시간이 단축된다고 한다. 버스는 보은과 상주를 거쳐 낙동 JC에서 좌회전하여 오르다 문경시내를 지나 예천군 용궁면에 도착했다. 문경시 신양면과 예천군 용궁면은 금천을 사이에 두고 불과 2km 거리라니 놀랍다. 조선시대 이래 낙동강 줄기인 금천이라는 큰 하천이 있어 두 고을이 지극히 가깝지만 행정적으로 나뉘어져 있었고 아직도 그대로임을 알겠다.
버스는 비룡산 기슭을 오르다 우리를 내려놓는다. 잠간 걸어 올라가니 장안사다. 장안사를 거쳐 회룡대에 도착했으나 비는 오는 둥 마는 둥 하지만 안개가 자욱하여 내성천과 회룡마을 전망이 아예 전혀 보이지 않는다. 제2뿅뿅다리를 지나 회룡포마을을 거치고 이어 제1뿅뿅다리를 건너 회룡마을 주차장에서 버스를 탄다. 뿅뿅다리는 겨우 혼자서 걸어갈 수 있는 좁은 시멘트다리 위에 구멍이 뿅뿅 뚫려 있는 건축용 철판을 깔아놓은 데서 붙여진 이름이니 싱겁기 그지없다. 시간을 재지 않아 정확하지는 않으나 산길과 모랫길을 족히 1시간 반 정도 걸었다.
예천 읍내 《전국을 달리는 청포집》에서 점심을 먹다. 1만 원 짜리 백반인데 깔끔하고 정성이 많이 깃든 식단이다. 깔끔한 음식상이 보기에도 좋고 맛도 좋다. MBC에 소개된 모양인데 자랑할 만하다. 대처 우리가 전라도에 산다하여 ?경상도 음식, 어쩌고 저쩌고...?하면 절대 안 되겠다. 보기에도 좋은데다 맛도 좋으니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랴!
3. 영주 무섬마을
영주시 가까운 문수면에 있는 중요민속문화재 제278호로 지정된 무섬마을을 찾았다. 물속에 떠 있는 섬이라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역시 내성천이 휘돌아 흐르는 곳에 양반고을이 편안하게 자리 잡았다. 1666년 반남박씨가 처음 터를 열고 1757년 그의 증손녀 남편인 선성김씨가 처가마을에 자리 잡은 이래 현재까지 두 성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현존하는 가옥 중 9채가 경북문화재 자료 및 경북민속자료로 지정되었고 100년이 넘는 집이 16채가 된다. 양동마을처럼 크지는 않으나 마을 앞에 내성천이 흐르고 강가에 넓고 하얀 모래밭이 펼쳐지며 푸른 강과 어우러져 경관이 아름다운 마을이다.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아 마을의 집들은 제방 길에서 대략 조망하고는 내 생전 처음으로 걸어보게 된 외나무다리를 찾는다. 무주반딧불 축제 때는 남대천에 섶다리를 놓아 걸어보았지만 이 다리는 예전부터 만들어 사용해오는 진짜 외나무다리인데 예전에 방송에서 본 기억이 나며, 우리의 오랜 옛 마을 정취가 듬뿍 담긴 외나무다리다. 최무룡 선생이 부른 《외나무 다리》가 생각이 나서 유튜브를 통해 들어본다. 젊은이들이 MBC 방송국에서 나왔다며 인터뷰를 하고 다니다 다리를 걸어오는 내게도 말을 건다. 소감을 묻기에
?생전 처음 보는 외나무다리를 걸어보니 아주 재밋고 즐겁습니다.?
복사꽃 능금꽃이 피는 내 고향
만나면 즐거웠던 외나무 다리
그리운 내 사랑아 지금은 어디
새파란 가슴 속에 간직한 꿈을
못 잊을 세월 속에 날려 보내리.
어여쁜 눈썹달이 뜨는 내 고향
둘이서 속삭이던 외나무다리
헤어진 그날 밤아 추억은 어디
싸늘한 별빛 속에 숨은 그님은
괴로운 세월 속에 어이 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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