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전

고산유고(윤선도)

청담(靑潭) 2017. 5. 24. 00:04

 

고산유고(孤山遺稿)

 

 

 

■윤선도(尹善道 1587 ~ 1671)

본관 해남(海南). 자 약이(約而). 호 고산(孤山) ·해옹(海翁). 시호 충헌(忠憲). 1612년(26세)광해군 4) 진사가 되고, 1616년(30세) 성균관 유생으로 권신(權臣) 이이첨(李爾瞻) 등의 횡포를 상소했다가 함경도 경원(慶源)과 경상도 기장(機張)에 유배되었다. 1623년(37세)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풀려나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가 되었으나 곧 사직하고 낙향, 여러 관직에 임명된 것을 모두 사퇴했다. 1628년(42세) 때 별시문과(別試文科) 초시(初試)에 장원, 왕자사부(王子師傅)가 되어 봉림대군(鳳林大君:孝宗)을 보도(輔導)했다. 1629년 형조정랑(刑曹正郞) 등을 거쳐 1632년(46세) 한성부서윤(漢城府庶尹)을 지내고 1633년(47세) 증광문과(增廣文科)에 급제, 문학(文學)에 올랐으나 모함을 받고 파직되었다. 1636년(50세)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의병을 이끌고 강화도로 갔으나 청나라와 화의를 맺었다는 소식을 듣고 제주도로 항해하다 풍랑을 만나 보길도에서 은거하였다. 하지만 병자호란 당시 왕을 호종하지 않았다 하여 1638년 영덕(盈德)에 유배되었다가 1년 뒤에 풀려나 해남으로 돌아갔다. 1638년 다시 경상북도 영덕으로 귀양갔다가 이듬해에 풀려났다. 이로부터 10년 동안 정치와는 관계없이 보길도의 부용동과 새로 발견한 금쇄동(金鎖洞)의 산수자연 속에서 한가한 생활을 즐겼다.

1652년(66세 효종 3) 왕명으로 복직하여 동부승지(同副承旨) 때 남인(南人) 정개청(鄭介淸)의 서원(書院) 철폐를 놓고 서인 송시열(宋時烈) 등과 논쟁, 탄핵을 받고 삭직당했다. 1657년(71세) 중추부첨지사(中樞府僉知事)에 복직되었다.

1659년(73세) 남인의 거두로서 효종의 장지문제와 자의대비(慈懿大妃)의 복상문제(服喪問題)를 가지고 송시열(1607-1689)이 영수로 있는 서인의 세력을 꺾으려다가 실패하여 1660년(74세) 삼수(三水)에 유배당하였다. 1667년(81세 현종 8)에 풀려나 부용동에서 살다가 그곳 낙서재에서 85세로 죽었다. 치열한 당쟁으로 일생을 거의 벽지의 유배지에서 보냈으나 경사(經史)에 해박하고 의약 ·복서(卜筮) ·음양 ·지리에도 통하였으며, 특히 시조(時調)에 더욱 뛰어났다. 그의 작품은 한국어에 새로운 뜻을 창조하였으며 시조는 정철(鄭澈)의 가사(歌辭)와 더불어 조선시가에서 쌍벽을 이루고 있다. 사후인 1675년(숙종 1) 남인의 집권으로 신원(伸寃)되어 이조판서가 추증되었다. 저서에 《고산유고(孤山遺稿)》가 있다.

 

 

1. 고산유고 제1권 : 시(詩)

■안변으로 가는 도중에 우연히 읊다. 경자년 14세(1600)

모래 먼지 자욱한 석양의 역로(驛路) / 夕陽官路暗沙塵

비 갠 뒤 한결 산뜻한 남천의 물빛 / 雨霽南川水色新

관북(關北)의 경계에 어느새 다 왔나 봐 / 始覺關山風土近

사람들 말소리가 남쪽과 판이하니 / 人人音語異南人

 

■여산 미륵당에 제하다 임자년(1612)

여산군에서 말을 멈추니 / 息馬礪山郡

아침 햇살이 바야흐로 쨍쨍 / 朝日正杲杲

길가에 자리한 하나의 석상 / 路傍坐石像

올연히 형색이 추레하기만 / 兀然形色老

초가집에는 지전이 늘어지고 / 茅屋垂紙錢

베옷에 두건을 머리에 씌웠는데 / 布衣巾覆腦

어떤 이의 보시(布施)인지 모르겠지만 / 不識何人施

복을 구한 것만은 알 수 있겠네 / 求福可知道

신이여 참으로 영험하다면 / 神乎苟其靈

나도 기도할 것이 있나니 / 余亦有所禱

원컨대 신묘한 의원을 만나 / 願得神妙醫

어버이 병환을 즉시 낫게 하고 / 親痾卽淨掃

건강하게 고당에 앉으시어 / 康寧坐高堂

오래 사시는 경사를 받게 해 주시고 / 受慶遐壽考

자손들이 뜰을 가득 채운 가운데 / 兒孫滿庭下

머리 끄덕이며 문안도 받게 해 주기를 / 點頭答寒燠

 

■한벽루 벽 위의 주 문절의 시에 차운하다

천 가지 경치에 사람 눈 번쩍 뜨이고 / 千般景象醒人眼

아침에 창을 열면 저녁까지 안개로세 / 晨啓軒窓至暝煙

누가 알았으랴 천지의 맑은 기운을 / 誰識二儀淸淑意

산천이 가져다 여기에 전해 줄 줄을 / 山川持向此間傳

 

 

2. 고산유고 제5권 상 : 서(書)

■태인의 수재 이민정에게 주는 글 병오년(1666, 현종7)

공이 정사년(1617, 광해군9)에 올린 상소문은 일월(日月)과 빛을 다툴 만합니다마는, 뒤에 공이나 공의 자손을 좋아하지 않는 자는 반드시 유희분의 일을 가지고 공을 괴롭힐 것입니다. 내가 어째서 그럴 줄을 알겠습니까.

나의 집은 불행히도 서제(庶弟)가 유희분의 사위가 되었고, 유희분은 또한 나의 외족(外族)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나의 발은 한 번도 유희분의 문을 밟아 본 적이 없으니, 이는 피차간에 가인(家人)이나 족류(族類)가 모두 분명히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왕년에 어떤 사람이 나를 무함할 적에, 나의 〈병진년에 올리는 소〔丙辰疏〕〉가 유희분으로부터 사주를 받은 것이라고 하였으니, 사람은 속일 수 있을지언정 하늘을 어떻게 속일 수 있겠습니까. 사람이 말을 하는 것이 어쩌면 이 지경에까지 이를 수 있단 말입니까. 사람을 무함하는 술법은 언제나 그 방식이 똑같으니, 내가 예전에 당한 것을 미루어서 공이 장차 면하지 못할 것을 걱정하는 것입니다. 아, 권세가(權勢家)와 결혼하는 것은 후세에 길이 경계로 삼아야 할 일입니다.

 

 

3. 고산유고 제5권 하

■말이 개를 짓밟은 것에 대한 설〔馬踐犬說〕설(說)

말이 날뛰면서 전속력으로 내달리다가 마침 개 한 마리를 만나 발굽으로 밟아 죽이자, 길옆에서 이 광경을 본 자들이 모두 말의 포악함을 미워하고 개가 피할 줄 모른 것을 슬퍼하였다. 이에 화전장인(華顚丈人 백발노인)이 웃으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가축을 꾸짖어서 무엇하겠는가. 어진 것은 오직 기린이 있을 뿐이요, 지혜로운 것은 오직 거북이가 있을 뿐이다. 말에게 물론 기린을 요구할 수도 없거니와, 개를 또 어떻게 거북이에게 견줄 수 있겠는가. 가장 영특하다고 하는 사람이 혹 이런 일을 저지르면 괴이하게 여길 수 있겠지만 나는 그런 일도 많이 보아 왔다. 그리고 잘못은 고삐를 잡고 조종하는 자가 신중하지 못한 데에 있다. 혹시라도 사람을 상하게 했다면 누가 그 책임을 져야 하겠는가. 아, 만약에 반우(反隅)를 제대로 한다면, 어찌 유독 이런 일만 그렇다고 하겠는가. 오당(吾黨)의 소자(小子)들이여.”

 

■성산 현감에서 체차된 뒤에 추고를 받고 함답하는 글 을해년(1635, 인조13) : 잡록(雜錄)

제가 정병(呈病 병장(病狀)을 올리는 것)을 하여 파출(罷黜)된 뒤에 고향에 돌아오고 나서 대평(臺評 사헌부와 사간원의 평론)의 내용을 들어 보건대, 그중에 “명성이 실상과 위배되니 덕을 해치는 자이다.”라는 말이 들어 있기에, 괴이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서 마음속으로 혼자 생각하기를 ‘나는 몸가짐이 형편없어서 세상에 살며 죄를 많이 지었다. 혼조(昏朝 광해조(光海朝)) 때에는 일찍이 삼사(三司)가 연달아 탄핵하는 소장을 올리고 관학(館學)이 교대로 상소를 하는 죄를 입었으며, 성세(聖世)의 초기에는 일찍이 내가 올린 상소의 문구를 끄집어내어 다시 찬출(竄黜)하려고 청하려는 의논을 만났다. 그러다가 외람되이 천은(天恩)을 입어 춘방(春坊)에 있게 되자 느닷없이 청망(淸望)이 잘못 전도(顚倒)되었다는 비난을 입었고, 물의(物議)를 꺼려 대각(臺閣)을 사양하자 이번에는 또 성안으로 몰래 들어왔다는 비방을 들었다. 궁학(宮學)의 소임을 오래 맡을 뜻이 있지 않았는데도 오래 웅크리고 앉아 있다 하여 훼방을 받았고, 옥당(玉堂)의 추천을 받은 것은 거기에 끼어들 뜻이 있지 않았는데도 분수 넘게 참여하였다고 하여 삭제되었다. 그러고 보면 그 명망과 실상이 모두 부족한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이것을 가지고 살펴본다면, 그야말로 하나의 선(善)도 드러난 것이 없고 만 가지 허물만 모두 드러났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잘못이 이와 같이 많다면 명성이 어떻게 따라올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말을 하는 것을 들어 보면, 일부러 세상이 놀랄 일을 하여 명성을 구하고, 세상을 속여 명예를 차지한 것이 있는 자처럼 취급하고 있다. 이는 심문(深文)과 비슷하니, 참으로 억울한 일이라고 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현(縣)을 다스릴 때의 일로 말하면, 조도(調度)를 해서 조금 살림을 늘려 준 것도 없습니다만, 그렇다고 급하게 추진하며 허명(虛名)을 구하는 일도 행할 수 없었습니다. 관청에는 지체된 업무가 없었고 일은 기일에 뒤지는 법이 없었습니다만, 그래도 혹 병세가 심해서 출근하지 못하는 날이 있기도 했습니다. 비록 사치하지 않고 참람하지 않게 하려고 힘쓰긴 했습니다만, 그렇다고 차마 체통을 손상하고 스스로 깎아내리는 행태는 취하지 못했습니다. 비록 백성에게 폐해를 끼치는 일은 없었다고 하더라도, 몸을 편하게 하는 사소한 물품을 마련하는 일은 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청렴하지 못하고 직무에 태만하였으며 자기 봉양을 위해 일을 많이 만들어 내었다고 비평한 것은 꽤나 사실에 가까운 것으로서 모두 인정하는 바입니다.

그런데 완악한 백성을 제어하고 간사한 관리를 다스리고 큰 죄(罪)를 논하고 큰 송사(訟事)를 처결하는 과정에서, 사적인 청탁을 통렬히 근절하고 상사(上司)에 위복(違覆)하는 등의 일이 비일비재하였고 보면, 폐정(弊政)이라고 생각하는 자가 어찌 없었겠으며, 질시하고 원망하는 백성이 어찌 없었겠으며, 비방하는 말을 듣기 좋아하며 그 사이에 부회(附會)하는 자가 또 어찌 없었겠습니까. 폐정이 갈수록 많아지고 백성의 원망이 날로 깊어졌다는 등의 말도 잘못된 것이 없으니, 이것도 제가 스스로 취한 일입니다.

제가 본래 오활하고 어리석고 큰소리나 치고 고지식하여 쓸모없는 물건인 처지에, 또 붕당비주(朋黨比周)하며 경진(競進)하는 풍조를 수치로 여겼으므로, 어디에도 손을 벋어 들러붙는 자취를 보이지 않았고, 나에게 호감을 보이며 끌어 주는 사람도 전혀 없었으니, 분수로 볼 때 세상일에 졸렬한 자신을 단속하면서 종신토록 오두막집에서 곤궁하게 지내는 것을 달갑게 여겨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외람되게 명주(明主)의 지우(知遇)를 받고 세상에 드문 은혜를 입고서, 조정에 들어와서는 청반(淸班)에 발을 딛고 외방에 나가서는 백리(百里)의 수령이 되었으므로, 항상 감격하며 일심(一心)으로 봉공(奉公)하여 국가에 충성하려는 마음뿐이었는데, 범한 것이 이와 같아서 걸핏하면 비방을 듬뿍 받곤 합니다. 이는 국가의 은혜를 저버린 일이 될 뿐만이 아니라, 또한 성상(聖上)의 밝은 덕을 해치는 결과가 되고 말았으니, 만번 죽어도 애석할 것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지만(遲晩)합니다.(너무 오래 속여서 미안하다는 뜻으로, 범죄 사실을 자복(自服)한다는 말)

 

 

4. 고산유고 제6권 하 별집 : 가사(歌辭)

■산중신곡〔山中新曲〕 임오년(1642, 인조20)

조무요(朝霧謠)

월출산(月出山)이 높더니마는 미운 것이 안개로다

천왕제일봉(天王第一峯)을 일시에 가렸구나

두어라 햇빛 퍼지면 안개 걷히지 않겠느냐

 

하우요(夏雨謠)

비 오는데 들에 가겠느냐 사립문 닫고 소 먹이거라

장마가 계속되겠느냐 쟁기며 연장 손질하거라

쉬다가 날 갤 때 봐서 사래 긴 밭 갈거라

심심하긴 하다만 일 없기로는 장마로다

답답하긴 하다만 한가하기로는 밤이로다

아이야 일찍 잤다가 동 트거든 일어나거라

 

일모요(日暮謠)

석양 진 후에 산기운 좋다마는

황혼이 가까우니 물색(物色)이 어두워진다

아이야 범 무서우니 나다니지 말거라

 

야심요(夜深謠)

바람 분다 지게문 닫아라 밤 되었다 불 끄거라

베개에 드러누워 실컷 쉬어 보자

아이야 날 새어 오거든 나의 잠을 깨워다오

 

오우가(五友歌)

내 벗이 몇인가 하니 수석(水石)과 송죽(松竹)이라

동산(東山)에 달 떠오르니 그 모습 더욱 반갑구나

두어라 이 다섯 외에 또 더하여 무엇하리

 

구름 빛이 좋다지만 자주 검어지고

바람 소리 맑다지만 그치는 때가 많노라

깨끗하고도 그치는 때가 없는 것은 물뿐인가 하노라 - 물〔水〕 -

 

꽃은 무슨 일로 피었다가 쉽게 지고

풀은 어이하여 푸른 듯했다가 누레지는지

아마도 변치 않을 것은 바위뿐인가 하노라 - 돌〔石〕 -

 

따뜻해지면 꽃 피고 추우면 잎 지거늘

솔아 너는 어찌하여 눈이며 서리를 모르느냐

깊은 땅속까지 뿌리 곧게 뻗어 있음을 이로 인해 알겠노라 - 솔〔松〕 -

 

나무도 아니고 풀도 아닌 것이

누가 곧게 자라게 한 것이며 속은 어이하여 비었는가

저러고도 사시사철 푸르니 그것을 좋아하노라 - 대〔竹〕 -

 

작은 것이 높이 떠서 만물을 다 비추니

밤중에 광명이 너보다 더한 것 또 있느냐

보고도 말을 하지 않으니 내 벗인가 하노라 - 달〔月〕 -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 신묘년(1651, 효종2)

앞 강에 안개 걷히고 뒷산에 해 비친다

배 떠라 배 떠라

밤물은 거의 지고 낮물이 밀려온다

지국총(至匊悤) 지국총 어사와(於思臥)

강촌(江村)의 온갖 꽃들 먼빛이 더욱 좋다

날이 덥도다 물 위에 고기 떴다

닻 들어라 닻 들어라

갈매기 둘씩 셋씩 오락가락하는구나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낚싯대는 쥐고 있다 탁주 병은 실었느냐

동풍이 건들 부니 물결이 곱게 인다

돛 달아라 돛 달아라

동호(東湖)를 돌아보며 서호(西湖)로 가자꾸나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앞산이 지나가고 뒷산이 나아온다

우는 것이 뻐꾸기인가 푸른 것이 버들 숲인가

이어라 이어라

어촌 두어 집이 안개 속에 들락날락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맑고 깊은 소(沼)에 온갖 고기 뛰노누나

고운 볕이 들었는데 물결이 기름 같다

이어라 이어라

그물을 넣어 두랴 낚싯줄을 놓을 건가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탁영가(濯纓歌)에 흥이 나니 고기도 잊겠도다

석양이 비꼈으니 그만하고 돌아가자

돛 내려라 돛 내려라

언덕 버들 물가 꽃은 굽이굽이 새롭구나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삼정승을 부러워하랴 만사를 생각하랴

방초(芳草)를 밟아 보며 난초며 지초 뜯어 보자

배 세워라 배 세워라

일엽편주에 실은 것이 무엇인고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갈 적에는 안개뿐이었고 올 적에는 달이로다

취하여 누웠다가 여울 아래 내리련다

배 매어라 배 매어라

붉은 낙화(落花) 흘러오니 무릉도원 가깝도다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속세의 티끌이 얼마나 가렸느냐

낚싯줄 걷어 놓고 봉창의 달을 보자

닻 내려라 닻 내려라

벌써 밤이 되었느냐 자규새 소리 맑게 난다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남은 흥이 무궁하니 갈 길을 잊었도다

내일이 또 없으랴 봄날 밤이 곧 새리라

배 붙여라 배 붙여라

낚싯대로 막대 삼고 삽짝문 찾아보자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어부의 생애는 이러구러 지내리로다

 

여름

궂은비 멎어 가고 시냇물이 맑아 온다

배 떠라 배 떠라

낚싯대를 둘러메니 깊은 흥을 금치 못하겠네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안개 낀 강 겹겹이 높은 산은 누가 그려 내었는고

연잎에 밥 싸 두고 반찬일랑 장만 마라

닻 들어라 닻 들어라

푸른 대삿갓은 쓰고 있노라 녹색 도롱이는 가져오느냐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무심한 흰 갈매기는 내가 좇는가 제가 좇는가

마름 잎에 바람 부니 봉창이 서늘쿠나

돛 달아라 돛 달아라

여름 바람 일정하게 불겠느냐 가는 대로 배 맡겨라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북쪽 포구 남쪽 강이 어디가 아니 좋을런가

물결이 흐리거든 발을 씻은들 어떠하리

이어라 이어라

오강(吳江)에 가자하니 천년노도(千年怒濤) 슬프도다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초강(楚江)에 가자하니 어복충혼(魚腹忠魂) 낚을세라

버들 숲 녹음(綠陰) 어린 곳에 이끼 낀 바위 낚시터도 기특하다

이어라 이어라

다리에 도착하거든 낚시꾼들 자리다툼 허물 마라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학발(鶴髮)의 노옹(老翁)을 만나거든 뇌택(雷澤)에서의 자리 양보 본받아 보자

긴 날이 저무는 줄 흥에 미쳐 모르도다

돛 내려라 돛 내려라

돛대를 두드리고 〈수조가(水調歌)〉를 불러 보자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애내(欸乃) 소리 가운데에 만고(萬古)의 마음을 그 누가 알까

석양이 좋다마는 황혼이 가깝구나

배 세워라 배 세워라

바위 위에 굽은 길이 솔 아래 비껴 있다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푸른 숲에 꾀꼬리 소리가 곳곳에서 들리는구나

모래 위에 그물 널고 그늘 밑에 누워 쉬자

배 매어라 배 매어라

모기를 밉다 하랴 쉬파리에 비하면 어떠한고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다만 한 근심은 상대부(桑大夫)가 들을까 하는 것이네

밤사이 풍랑을 어찌 미리 짐작하리

닻 내려라 닻 내려라

들판 나루터에 비껴 있는 배를 그 누가 일렀는고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시냇가 그윽한 풀도 진실로 어여쁘다

오두막을 바라보니 흰 구름이 둘러 있다

배 붙여라 배 붙여라

부들부채 비껴 쥐고 돌길로 올라가자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어옹(漁翁)이 한가하더냐 이것이 구실이라

 

가을

속세 밖의 좋은 일이 어부의 삶 아니더냐

배 떠라 배 떠라

어옹을 비웃지 마라 그림마다 그렸더니라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사계절의 흥이 한가지이나 가을 강이 으뜸이라

수국(水國)에 가을이 드니 고기마다 살져 있다

닻 들어라 닻 들어라

만경창파에 실컷 배 띄워 가자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인간 세상을 돌아보니 멀수록 더욱 좋다

흰 구름이 일어나고 나무 끝이 흐늘댄다

돛 달아라 돛 달아라

밀물 타고 서호(西湖) 가고 썰물 타고 동호(東湖) 가자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흰 마름 붉은 여뀌는 가는 곳마다 보기 좋다

기러기 떠가는 저 편으로 못 보던 산 보이네

이어라 이어라

낚시질도 하려니와 취한 것이 이 흥취라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석양이 비치니 뭇 산이 수놓은 비단이로다

반짝이는 물고기가 몇이나 걸렸는가

이어라 이어라

갈대꽃에 불 붙여 가려서 구워 놓고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질흙 병을 기울여서 박구기에 부어다오

옆바람이 고이 부니 다른 돋자리에 돌아왔다

돛 내려라 돛 내려라

어스름은 나아오대 맑은 흥취는 멀어진다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단풍나무 맑은 강이 싫지도 밉지도 않구나

흰 이슬 비꼈는데 밝은 달 돋아 온다

배 세워라 배 세워라

봉황루(鳳凰樓) 아득하니 맑은 빛을 누구에게 줄꼬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옥토끼가 찧는 약을 호객(豪客)에게 먹이고저

하늘과 땅이 제각기인가 이곳이 어드메뇨

배 매어라 배 매어라

서풍(西風) 먼지 못 미치니 부채질해 무엇하리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들은 말이 없었으니 귀 씻어 무엇하리

옷 위에 서리 내려도 추운 줄을 모르겠도다

닻 내려라 닻 내려라

낚싯배 좁다지만 뜬구름 같은 속세에 비겨 어떠한가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내일도 이리하고 모레도 이리하자

소나무 사이 석실(石室)에 가서 새벽달을 보려 하니

배 붙여라 배 붙여라

빈산에 낙엽 진 길을 어찌 알아볼꼬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흰 구름이 쫓아오니 여라의(女蘿衣)가 무겁구나

 

겨울

구름 걷힌 뒤에 햇볕이 두텁다

배 떠라 배 떠라

천지가 얼어붙었으되 바다는 의구하다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끝없는 물결이 깁 비단 편 듯하다

낚싯줄이며 낚싯대 손질하고 뱃밥을 박았느냐

닻 들어라 닻 들어라

소상강(瀟湘江)과 동정호(洞庭湖)는 그 물이 언다 한다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이때에 고기 잡기 이만한 데 없도다

얕은 개의 물고기들이 먼 소에 다 갔나니

돛 달아라 돛 달아라

잠깐 날 좋을 제 낚시터에 나가 보자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미끼가 좋으면 굵은 고기 문다 한다

간밤에 눈 갠 후에 경물이 다르구나

이어라 이어라

앞에는 유리 같은 만경창파요 뒤에는 옥 같은 천 겹 산이로다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선계(仙界)인가 불계(佛界)인가 인간 세상이 아니로다

그물이며 낚시 잊어 두고 뱃전을 두드린다

이어라 이어라

앞 개를 건너려고 몇 번이나 헤아려 보았나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공연한 된바람이 행여 아니 불어올까

자러 가는 까마귀 몇 마리나 지나갔는가

돛 내려라 돛 내려라

앞길이 어두우니 저녁 눈발이 잦아드네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아압지(鵝鴨池)를 누가 쳐서 초목의 치욕을 씻었던고

붉게 물든 벼랑 푸른 절벽이 병풍같이 둘렀는데

배 세워라 배 세워라

크고 작은 물고기를 낚으려나 못 낚으려나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쪽배에서 도롱이 걸치고 삿갓 쓴 채 흥에 겨워 앉았노라

물가의 외로운 솔 혼자 어이 씩씩한고

배 매어라 배 매어라

궂은 구름 한하지 마라 세상을 가리운다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물결 소리를 싫어하지 마라 속세의 시끄러움 막는도다

창주오도(滄洲吾道)를 예로부터 일렀더니라

닻 내려라 닻 내려라

칠리(七里) 여울에서 양피(羊皮) 옷은 그 어떠한 이던고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삼천 육백 날 낚시질은 손꼽을 제 어찌하던고

어와 해 저물어 간다 쉬는 것이 마땅하도다

배 붙여라 배 붙여라

가는 눈 뿌린 길 붉은 꽃 흩어진 데 흥청이며 걸어가서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설월(雪月)이 서봉(西峯)을 넘어가도록 송창(松窓)에 기대어 있자

 

동방에 예로부터 〈어부사(漁父詞)〉가 있는데, 누가 지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고시(古詩)를 모아 곡조로 만든 것이다. 이 〈어부사〉를 읊조리노라면 강바람과 바다 비가 얼굴에 부딪히는 듯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훌쩍 세속을 떠나 홀로 서려는 뜻을 가지게 한다. 이 때문에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 선생도 좋아하여 싫증 내지 않았고 퇴계(退溪 이황(李滉)) 선생도 칭탄하여 마지않았다. 그러나 음향이 상응하지 못하고 말뜻이 잘 갖추어지지 못하였으니, 이는 고시를 모으는 데 구애되었기에 국촉(局促)해지는 흠결을 면치 못한 것이다. 내가 그 뜻을 부연하고 언문을 사용하여 〈어부사〉를 지었는데, 계절별로 각 한 편씩이며 한 편은 10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가 곡조며 음률에 대해서는 진실로 감히 함부로 의논하지 못하며 창주오도(滄洲吾道)에 대해서는 더욱이 감히 내 뜻을 가져다 붙일 수 없으나, 맑은 강 넓은 호수에 조각배를 띄우고 물결을 따라 출렁일 때에 사람들에게 한목소리로 노래하며 노를 젓게 한다면 또한 하나의 쾌사(快事)일 것이다. 또 훗날 창주(滄洲)에서 거처할 일사(逸士)가 반드시 나의 이 마음과 뜻이 부합하여 백세의 세월을 넘어 느낌이 일지 않으리라고는 못할 것이다.

신묘년(1651, 효종2) 가을 9월 부용동(芙蓉洞)의 낚시질하는 노인이 세연정(洗然亭) 낙기란(樂飢欄) 옆 배 위에서 적어 아이들에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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