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文集)
▣이규보(李奎報 1168~1241)
본관 여주. 자 춘경(春卿). 호 백운거사(白雲居士)·지헌(止軒)·삼혹호선생(三酷好先生). 초명 인저(仁氐). 시호 문순(文順). 1189년(명종 19) 사마시(司馬試), 이듬해 문과에 급제, 1199년(신종 2) 전주사록(全州司錄)이 되고 1202년(신종 5) 병마녹사 겸 수제(兵馬錄事兼修製)가 되었다.
1207년(희종 3) 최충헌(崔忠獻)에 의해 권보직한림(權補直翰林)으로 발탁, 참군사(參軍事)·사재승(司宰丞)·우정언(右正言)을 거쳐 1219년(고종 6) 좌사간(左司諫)으로서 지방관의 죄를 묵인하여 계양도호부부사(桂陽都護府副使)로 좌천되었다.
1220년(고종 7) 예부낭중(禮部郞中)·한림시강학사(翰林侍講學士)를 거쳐 30년 위위시판사(衛尉寺判事)가 되었으나, 팔관회(八關會) 행사에 잘못을 저질러 한때 위도(蝟島)에 유배되었으며 1232년(고종 19) 비서성판사(祕書省判事)에 승진하고, 이듬해 집현전대학사(集賢殿大學士)·정당문학(政堂文學)·참지정사(參知政事)·태자소부(太子少傅) 등을 거쳐 1237년(고종 24)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감수국사(監修國事)·태자대보(太子大保)로 벼슬에서 물러났다.
호탕 활달한 시풍(詩風)은 당대를 풍미했으며, 특히 벼슬에 임명될 때마다 그 감상을 읊은 즉흥시는 유명하다. 몽골군의 침입을 진정표(陳情表)로써 격퇴한 명문장가였다. 시·술·거문고를 즐겨 삼혹호선생이라 자칭했으며, 만년에 불교에 귀의했다.
저서에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백운소설(白雲小說)》 《국선생전(麴先生傳)》 등이 있으며, 작품으로 시(詩)에 〈천마산시(天摩山詩)〉 〈모중서회(慕中書懷)〉 〈고시십팔운(古詩十八韻)〉 〈초입한림시(初入翰林詩)〉 〈공작(孔雀)〉 〈재입옥당시(再入玉堂詩)〉 〈초배정언시(初拜正言詩)〉 〈동명왕편(東明王篇)〉, 문(文)에 〈모정기(茅亭記)〉 〈대장경각판군신기고문(大藏經刻板君臣祈告文)〉 등이 있다.
▣연보(年譜)
○신축년 대정 21년(1181, 명종 11) 공의 나이 14세.
이해에 비로소 문헌공도(文憲公徒)가 되어 성명재(誠明齋 최충(崔㓍)이 설치한 구재(九齋)의 하나)에 들어가 학업을 익혔다. 해마다 하과(夏課) 때면 선달(先達)들이 제생(諸生)을 모아 놓고 정한 시간 안에 운(韻)을 내어 시(詩)를 짓도록 했는데 이 명칭을 급작(急作)이라 하였다. 공이 계속 일등으로 뽑히므로 모든 선비가 비로소 공을 뛰어나게 여겼다.
○기유년 대정 29년(1189, 명종 19) 공의 나이 22세.
이해 봄에 사마시에 응시하여 첫째로 뽑혔다.
○경술년 대정 30년(1190, 명종 20) 공의 나이 23세.
6월에 예부시(禮部試)에 응시하여 동진사(同進士)에 뽑혔는데, 공은 과제(科第)가 낮은 것을 못마땅히 여겨서 사양하려 하였으나 아버지가 준절히 꾸짖었고 또 전례(前例)도 없으므로 사양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술에 만취하여 하객(賀客)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과제는 비록 하등(下等)에 뽑혔으나 어찌 3, 4차 도야된 문생(門生)이 아닌가?”
하자, 모든 하객들이 입을 가리면서 몰래 웃었다.
공은 과거(科擧)에 대한 글을 일삼지 않았으므로 글 짓는 것이 거칠고 서툴러서 격률(格律)에 잘 맞지 않았고, 또 과장(科場) 안에서 봉명승선(奉命承宣) 박순(朴純)이 좌주(座主)와 더불어 선온(宣醞)을 받고 공을 불렀는데, 큰 잔으로 한 잔 마시고 곧 취해서 휘갈겨 쓴 글을 찢어 버리려 하자 옆에 앉았던 손득지(孫得之)가 빼앗아 올렸다.
○기미년 승안 4년(1199, 신종2) 공의 나이 32세.
6월 반정(頒政) 때에 공을 전주목 사록(全州牧司錄)으로 보임하여 서기(書記)를 겸임하도록 하므로 가을 9월에 전주로 부임했는데, 이해에 지은 고시(古詩)와 율시(律詩)가 무려 15, 16편이나 되었다.
○경신년 승안 5년(1200, 신종3) 공의 나이 33세.
이해에 지은 시는 30편이 훨씬 넘었다.
겨울 12월에 파직을 당해 전주를 떠나게 되었다. 처음 공이 전주를 다스릴 때 통판 낭장(通判郎將)인 어떤 이가 탐하고 방자하였는데, 공이 굽히지 않아서 공사(公事)로 인해 여러 차례 노여움을 격발시켰다. 통판은 분을 이기지 못하고 또 제마음대로 하려고 드디어 터무니없는 말을 이리저리 꾸며서 공을 모함했기 때문이다.
광주(廣州)에 이르렀는데 마침 섣달 그믐날이었다. 이때 처형(妻兄) 진공도(晉公度)가 서기(書記)로 있었으므로 그의 집에 들어가 함께 과세(過歲)하면서 시 한 편을 써서 주었는데, 첫구에 이르기를
우연히 하찮은 녹을 바라 강남까지 갔었구나 / 偶霑微祿宦江南
하였으니, 바로 이것이었다.
○임술년 태화(泰和) 2년(1202, 신종5) 공의 나이 35세.
12월에는 동경(東京)의 반도(叛徒)가 운문산 적당(雲門山賊黨)과 군사를 일으키므로 조정에서 삼군(三軍)을 내어 정벌하게 되었다. 군막(軍幕)에서 산관(散官)ㆍ급제(及第) 등을 핍박하여 수제원(修製員)으로 충당시킬 때 세 사람을 거치도록 모두 꾀로 회피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공에게 이르자 공은 개연(慨然)한 모습으로 말하기를,
“내가 나약하고 겁이 많은 자이기는 하나 역시 한 국민인데 국난(國難)을 회피하면 대장부가 아니다.”
하고, 드디어 종군(從軍)하였다. 따라서 막부(幕府)에서는 매우 고맙게 생각하고 임금께 주달하여 공을 병부 녹사 겸수제원(兵部錄事兼修製員)으로 삼았으니 이는 대개 공의 마음을 펴 준 것이다. 이달에 청주(淸州)로 가서 막중서회고(幕中書懷古) 18운(韻)을 지어 동영(同營)의 제공(諸公)에게 주고, 또 상주(尙州)로 나가 ‘김 상인의 초서를 보고[觀金上人草書]’라는 고시 15운(韻)을 지었다.
○을축년 태화 5년(1205, 희종1) 공의 나이 38세.
이해에 상최상국서(上崔相國書)를 지어 벼슬을 구하였다.
○정묘년 태화 7년(1207, 희종3) 공의 나이 40세.
12월에 직한림원(直翰林院)에 권보(權補)되었다. 공은 이미 세상에 불우한 신세가 되어 문을 닫고 들어앉아 출입하지 않았다. 그러나 해마다 사관(史館)ㆍ한원(翰院)ㆍ국학(國學) 등에서 유관(儒官)들이 인물을 추천할 때면 늘 공을 우두머리로 삼았고, 또 좌우에서도 공을 칭찬하는 이도 많았다. 이래서 진강후(晉康侯 최충헌(崔忠獻))도 여러 사람의 뜻을 반대하기가 어려워 공을 등용할 생각이 있었으나 쓸만한 계제가 없는 것을 늘 서운해 하였다. 이때 바로 그가 모정(茅亭 지붕을 띠로 덮은 정자)을 짓고, 이인로(李仁老)ㆍ이원로(李元老)ㆍ이윤보(李允甫)와 공에게 명하여 기문(記文)을 지으라 하고, 이어 유관 재상(儒官宰相) 네 사람으로 하여금 시험 보이도록 했는데, 공이 첫째로 뽑히자 현판에 새겨 모정 벽에 걸어놓았다. 그리고 12월에 이르러 이 관직을 맡게 되었는데, 초입한림(初入翰林) 2수를 짓고 지지헌기(止止軒記)도 지었다.
○계유년 숭경(崇慶) 2년(1213, 강종2) 공의 나이 46세.
12월에 진강후(晉康候 최충헌 1149-1219)의 아들인 상국(相國 최우 ?-1249)이 야연(夜宴)을 크게 베풀고 모든 고관(高官)을 불러 모았는데, 공은 홀로 8품(品) 미관(微官)으로 부름을 받고 참석하였다. 밤중에 상국이 공에게 이르기를,
“그대가 문장을 잘한다는 소문은 들었으나 아직 보지는 못했다. 오늘 한번 시험해 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고, 이인로(李仁老)를 시켜 운(韻)을 부르도록 했는데, 40여 운(韻)에 이르렀다. 촛불을 시제(詩題)로 삼고 이름난 기생에게 먹을 갈도록 하였다. 시가 완성되자 상국은 탄복하여 마지않았다. 다음날 상국은 그 시를 가지고 부(府)로 나아가 진강후에게 아뢰고 공을 불러들여 재주를 시험해 보라고 하였다. 진강후가 처음에는 쾌히 승낙하지 않다가 두 번 세 번 여쭌 후에 공을 불러들이도록 하였다. 공이 부(府)에 이르자 상국이 진강후에게 여쭈기를,
“이 사람은 술을 마시지 않으면 시를 제대로 짓지 못한답니다.”
하고 바로 빠른 자를 시켜 집으로 가서 술을 갖고 오도록 했는데 술이 미처 이르기 전에 진강후는 벌써 술상을 차려 놓고 함께 마시고 있었다. 상국은 또 말하기를,
“이 사람은 취한 다음이라야 시를 짓습니다.”
하고 술잔을 번갈아가면서 취하도록 마시게 한 뒤에 이끌고 진강후 앞으로 나아갔다. 진강후의 앞에 바로 필갑(筆匣)이 있고 붓도 열 자루가 넘었는데, 상국이 친히 그중 좋은 붓을 골라서 공에게 주었다. 이때 마침 뜰에서 오락가락하는 공작(孔雀)이 있기에 진강후가 이 공작을 시제(詩題)로 삼고 금 상국(琴相國)을 시켜 운(韻)을 부르게 했는데 40여 운(韻)에 이르도록 잠시도 붓을 멈추지 않으니 진강후는 감탄하여 눈물까지 흘렸다. 공이 물러나오려 할 때 진강후가 이르기를,
“자네가 만약 벼슬을 희망한다면 뜻대로 이야기하라.”
하니, 공이 대답하기를,
“내가 지금 8품(品)에 있으니 7품만 제수하면 됩니다.”
하자, 상국이 여러 번 공에게 눈짓을 하면서 바로 참관(參官)을 희망하게 하려고 하였다. 그날 상국은 집으로 돌아와 공을 불러 꾸짖기를,
“자네가 벼슬을 희망하는 것이 왜 그렇게 낮으냐? 무슨 이유로 참관을 희망하지 않았느냐?”
하니, 공이 대답하기를
“나의 뜻이 그럴 뿐입니다.”
했었는데, 12월 반정(頒政) 때에 이르러 7품을 뛰어 사재승(司宰丞)에 제수되었다.
○을해년 정우 3년(1215, 고종 2) 공의 나이 48세.
7월에 공이 시를 지어 참직(參職)의 품계를 구하자 진강후(晉康侯)가 그 시를 가지고 그 부(府)의 전첨(典籤) 송순(宋恂)에게 내보이면서 이르기를,
“이 사람은 뜻이 고상한 자라서 품계 올려주기를 희망하지 않을 텐데 임시로 자신을 굽혀 말한 듯하다. 만약 임금께 주달하여 바로 참관(參官)을 제수한다면 그가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하니, 순이 대답하기를,
“그렇게 하면 그도 기쁨을 말로 다할 수 없을 것이고, 여러 사람도 그것을 바랄 것입니다.”
하였다. 하비(下批)에 우정언 지제고(右正言知制誥)로 삼았다.
○경인년(1230, 고종 17) 공의 나이 63세.
11월 21일에 멀리 위도(猬島)로 귀양 갔다. 이해 팔관회(八關會) 잔치를 열 때 옛날 규례에 어긋난 일이 있었는데 이는 추밀(樞密) 차공(車公)이 시킨 것이었다. 지어사대사(知御史臺事) 왕유(王猷)가 밑에서 일보는 자가 제대로 따르지 않은 것을 몹시 꾸짖자, 차공은 왕유가 재상(宰相)을 꾸짖었다고 오해하여 임금께 일렀다. 마침 공과 좌승상(左丞相) 송순(宋恂)도 그 좌석에 있었으므로 왕유를 도왔을 것이라고 의심하여 모두 먼 섬으로 귀양 보냈다.
공은 이날 바로 청교역(靑郊驛)으로 나가 자고, 12월에 보안현(保安縣)에 이르러 머물다가 순풍(順風)을 기다려 26일에 위도로 들어갔다.
○병신년(1236, 고종 23) 공의 나이 69세.
12월에 걸퇴표(乞退表)를 올렸으나 임금이 그 표문을 궐내(闕內)에 머물러 두고 내시(內侍) 김영초(金永貂)를 보내어 극진히 타이르고 다시 벼슬하도록 했는데, 공은 병이 위독하다고 핑계하였다.
진양후(晉陽侯 최우(崔瑀))가 호적(戶籍)에서 나이를 줄였다고 하면서 머물러 있도록 권면하므로 공은 하는 수 없어 12월에 다시 나아가 일을 보았다. 그러나 늘 불안한 생각을 갖고 여러 차례 시를 지어 편치 못하다는 뜻을 나타냈다. 공은 특히 호적에서 나이를 줄였다는 것을 다행스럽게 여기지 않고 사실대로 아뢰었으니 사퇴할 생각이 진실로 간절한 것이었다. 그래도 물러날 수 없자, 늘 읊은 시가 있었는데
얼굴이 있어도 감히 바로 들 수 없으니 / 有面不敢擡
부끄러운 일 벌써부터 적지 않구나 / 慚愧已不少
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동국이상국전집 제1권
◯도앵부(陶甖賦) ※술단지
※賦 : 한문체에서, 글귀 끝에 운을 달고 흔히 대(對)를 맞추어 짓는 글
또는 과문(科文)에서, 여섯 글자로 한 글귀를 만들어 짓는 글.
내가 질항아리 하나를 가졌는데 술맛이 변치 않으므로 매우 소중히 여기고 아낀다. 또 내 마음에 비유한 바가 있어 이 부(賦)를 지어 노래한다.
나에게 자그마한 항아리가 하나 있는데 쇠를 두들기거나 녹여서 만든 것이 아니라 흙을 반죽하여 불로 구워 만든 것이다. 목은 잘록하고 배는 불룩하며 주둥이는 나팔처럼 벌어졌다. 영(瓴) 귀가 있는 병은 영이라 한다. 에 비하면 귀가 없고 추(甀) 주둥이가 작은 질항아리를 추라 한다. 에 비하면 주둥이가 크다. 닦지 않아도 마치 칠한 것처럼 검은 광채가 난다.
어찌 금으로 만든 그릇만 보배로 여기랴. 비록 질그릇이라 할지라도 추하지 않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아서 한 손에 들기가 알맞으며 값도 매우 싸서 구하기가 쉬우니 깨진다 하더라도 뭐 아까울 것이 있겠는가. 술이 얼마쯤 담기느냐 하면 한 말도 들지 않는데 가득차면 다 마시고 다 마시면 다시 붓는다.
진흙을 잘 구워서 깨끗이 만든 까닭에 변하지도 않고 새지도 않으며 공기가 잘 통해서 목이 막히지 않으므로 따라 넣기도 좋고 부어 마시기도 편리하다. 잘 부어지는 까닭에 기울어지거나 엎어지지도 않고 잘 받아들이는 까닭에 계속 술이 저장되어 있다. 한평생 동안 담은 것을 따진다면 몇 섬이나 되는지 셀 수가 없다. 마치 겸허(謙虛)한 군자(君子)처럼 떳떳한 덕이 조금도 간사하지 않다.
아, 재물에 도취한 저 소인(小人)들은 두소(斗筲)와 같이 좁은 국량으로써 끝없는 욕심을 부리고 있다. 쌓기만 하고 남에게 줄줄 모르면서 오히려 부족하다 하니 자그마한 그릇은 쉽게 차서 금방 엎어진다. 나는 이 항아리를 늘 옆에 놓고 너무 가득 차면 넘치게 되는 것을 경계한다. 타고난 분수따라 한 평생을 보내면 몸도 온전하고 복도 제대로 받을 것이다.
○강가에서 우연히 읊다.
쉴새없이 흐르는 강 동으로 향하듯이 / 滾滾長江流向東
오가는 세월도 끝이 없을 테지 / 古今來往亦何窮
상선은 푸른 물결 가르며 지나가고 / 商船截破寒濤碧
어적이 울리는 곳엔 석양이 붉다 / 漁笛吹殘落照紅
줄풀 핀 언덕에 해오라기 높이 날고 / 鷺格斗高菰岸上
벼 익은 논두렁엔 기러기 모여드네 / 雁謀都寄稻畦中
엄자릉의 옛 자취 잇는 이 없어 / 嚴陵舊迹無人繼
결국 강호에서 어부가 되려 해 / 終抱煙波作釣翁
▣동국이상국전집 제2권
◯촌가(村家) 3수
띄엄띄엄 연기 낀 속에 마을 방아 소리 / 斷煙橫處響村舂
깊은 거리 담은 없고 가시나무만 둘러있네 / 深巷無垣刺樹重
온 산엔 말이고 온 들엔 흩어진 소 / 萬馬布山牛散野
모두가 태평 시대의 얼굴이네 / 望中渾是太平容
찬 새벽 짙은 서리에 베틀 소리 / 曉寒霜重織聲催
저문 해 검은 연기에 나무꾼 노래하며 돌아오네 / 日暮煙昏樵唱廻
들 늙은이가 어찌 구월 구일을 알랴만 / 野老那知重九日
만나고 보니 국화 띄운 흠뻑 익은 술일세 / 偶逢黃菊泛濃醅
산 배나무 잎 붉고 들 뽕잎 누른데 / 山梨葉赤野桑黃
바람 길에 벼 향기가 물씬 풍기네 / 一路風廻間稻香
샘물 긷는 소리 나막신 소리 들리더니 / 沒井聲中人響屐
열려 있는 가시 문에 달빛만 서늘해라 / 柴門不鎖月鋪霜
▣동국이상국전집 제3권
◯동명왕편(東明王篇)
세상에서 동명왕(東明王)의 신통하고 이상한 일을 많이 말한다. 비록 어리석은 남녀들까지도 흔히 그 일을 말한다. 내가 일찍이 그 얘기를 듣고 웃으며 말하기를,
“선사(先師) 중니(仲尼)께서는 괴력난신(怪力亂神)을 말씀하지 않았다. 동명왕의 일은 실로 황당하고 기괴하여 우리들이 얘기할 것이 못된다.”
하였다. 뒤에 《위서(魏書)》와 《통전(通典)》을 읽어 보니 역시 그 일을 실었으나 간략하고 자세하지 못하였으니, 국내의 것은 자세히 하고 외국의 것은 소략히 하려는 뜻인지도 모른다. 지난 계축년(1193, 명종 23) 4월에 《구삼국사(舊三國史)》를 얻어 동명왕본기(東明王本紀)를 보니 그 신이(神異)한 사적이 세상에서 얘기하는 것보다 더했다. 그러나 처음에는 믿지 못하고 귀(鬼)나 환(幻)으로만 생각하였는데, 세 번 반복하여 읽어서 점점 그 근원에 들어가니, 환(幻)이 아니고 성(聖)이며, 귀(鬼)가 아니고 신(神)이었다. 하물며 국사(國史)는 사실 그대로 쓴 글이니 어찌 허탄한 것을 전하였으랴. 김부식(金公富軾) 공이 국사를 중찬(重撰)할 때에 자못 그 일을 생략하였으니, 공은 국사는 세상을 바로잡는 글이니 크게 이상한 일은 후세에 보일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생략한 것이 아닌가?
당현종본기(唐玄宗本紀)와 양귀비전(楊貴妃傳)에는 방사(方士)가 하늘에 오르고 땅에 들어갔다는 일이 없는데, 오직 시인(詩人) 백낙천(白樂天)이 그 일이 인멸될 것을 두려워하여 노래를 지어 기록하였다. 저것은 실로 황당하고 음란하고 기괴하고 허탄한 일인데도 오히려 읊어서 후세에 보였거든, 더구나 동명왕의 일은 변화의 신이(神異)한 것으로 여러 사람의 눈을 현혹한 것이 아니고 실로 나라를 창시(創始)한 신기한 사적이니 이것을 기술하지 않으면 후인들이 장차 어떻게 볼 것인가? 그러므로 시를 지어 기록하여 우리나라가 본래 성인(聖人)의 나라라는 것을 천하에 알리고자 하는 것이다.
○벼슬이 없는 탄식
언제나 벼슬이 없어 / 常無官常無官
사방으로 걸식함을 즐기는 바 아니나 / 四方餬口非所歡
날 보내기 지루함을 면하고자 함이라 / 圖兔居閑日遣難
아 인생 일세 받은 운명 어찌 그리 괴로운가 / 噫噫人生一世賦命何酸寒
▣동국이상국전집 제4권
◯의죽(義竹)
《유사》에 “태액지(太液池) 언덕에 한 대나무가 있는데, 그 죽순이 끝내 멀리 떨어져서 나지 않고 마치 한군데에 심어 놓은 듯 그 자리에만 빽빽하게 났다. 임금이 제왕(諸王)들에게 ‘사람은 아무리 부모와 형제 사이라도 각기 이탈하려는 마음을 품고 있는데, 이 대나무는 그 근본을 끝내 이탈하지 않고 있으니, 이를 보는 이는 경계로 삼아야 한다.’고 이르자 제왕들은, ‘예 예’ 하였고, 임금은 이에 ‘의죽’이라 불렀다.” 하였다.
임금의 우애 돈독한 때문에 / 帝性怡怡篤友于
하늘의 감응도 전혀 틀림이 없어 / 天心感應合如符
짐짓 의죽을 빽빽히 우거지게 했으니 / 故敎義竹生蒙密
서로 떠받는 상체(常棣)의 꽃받침과 무어 다르랴 / 何異相承棣萼跗
상체(常棣)는 아가위나무. 이는 곧 형제간에 우애 있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형제간의 우애를 읊은 《시경(詩經)》소아 상체(小雅 常棣)에 “활짝 핀 아가위꽃, 얼마나 곱고 아름다우냐. 이 세상에 누구라 해도, 형제가 제일 좋느니.[常棣之華 鄂不韡韡 凡今之人 莫如兄弟]” 하였다.
○머리털을 베다
《개원전신기(開元傳信記)》에 “귀비가 항상 말로써 임금의 비위를 거스르자 임금이 노하여 고역사(高力士)를 시켜 짐차에 태워 사가(私家)로 내보냈다. 귀비가 머리털을 베어 역사에게 주며 ‘다른 진귀한 물건은 다 임금이 주신 바이니 드릴 만한 것이 못되고, 이것은 부모에게서 받은 바이니 첩(妾)의 연모하는 뜻을 드릴 수 있다.’ 하였다. 임금이 그 머리털을 받고는 눈물을 흘리며 바로 역사를 시켜 다시 돌아오게 했다.” 하였다.
너무도 깊은 애정 역정으로 바뀌어 / 愛極翻生拂意間
짐짓 싫은 말로 비위를 건드렸지 / 故將侵語屢掁干
칙명 받고 돌아온 귀비 뭐가 섭섭하랴 / 勅還外第妃何恨
칠흙 같은 머리털 환심 사고도 남았네 / 一朶烏雲足市歡
○귀비(貴妃)를 내보내다
《명황유록(明皇遺錄)》에 “어양(漁陽)의 반서(叛書)가 도착하자 육군(六軍)이 부진 상태에 빠졌다. 고역사(高力士)는 ‘온 군중(軍中)이 다 화(禍)의 뿌리가 아직 행궁(行宮) 안에 있다 합니다.’ 아뢰었고, 후원길(侯元吉)은 ‘귀비의 머리를 베어 태백기(太白旗)에 매달아 제군(諸軍)을 호령하기 바랍니다.’고 아뢰었다. 임금이 ‘귀비는 후궁의 귀인(貴人)이다. 쥐[鼠] 를 때려 잡고 싶어도 그릇[器] 깨질까가 염려이거늘 어찌 꼭 머리를 매달아야만 군중이 알겠느냐.’고 꾸짖자, 역사가 다시 ‘바라건대, 폐하(陛下)는 직접 귀비에게 죽음을 내려 군심 (軍心)을 위로하소서.’하고 아뢰었다. 귀비가 ‘폐하는 임금의 위력으로 어찌 하나의 여인(女人)도 살리지 못합니까? 온 집안이 몰살을 당했는데도 그 화(禍)가 첩(妾)에게까지 미친다는 것은 너무 심하지 않습니까.’하고 울부짖었다. 임금이 ‘수만의 입을 도저히 막을 수 없다. 국충(國忠) 등이 비록 죽었으나 군세(軍勢)가 아직도 부진하고 있으니 귀비는 한번 죽음으로 천하의 비방을 막아 달라’고 하자 귀비가 ‘폐하는 몇 걸음만이라도 첩을 걷게 해주 소서. 그러면 첩이 죽어도 여한이 없겠습니다.’고 애원했다. 좌우가 귀비를 끌고 나가자 임금은 일어서서 멍한 눈으로 보내었고 귀비는 열 걸음에서 아홉 번이나 뒤돌아보았는데, 임금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 턱에 고였다.” 하였다.
흉흉한 군정 제지하기 어려워 / 軍情洶洶固難違
억지로 미인 보내며 눈물 적시네 / 忍遣紅顔正掩暉
어찌 대당 천자의 존위(尊威)로도 / 豈以大唐天子貴
하나의 궁비를 비호하지 못했던고 / 勢窮莫庇一宮妃
▣동국이상국전집 제5권
◯딸아이를 슬퍼하다
딸아이의 얼굴 눈송이와 같고 / 小女面如雪
총명함도 말할 수 없었네 / 聰慧難具說
두 살에 말할 줄을 알아 / 二齡已能言
앵무새의 혀보다 원활하였고 / 圓於鸚鵡舌
세 살에 수줍음을 알아 / 三歲似恥人
문 밖에 나가 놀지 않았으며 / 遊不越門闑
올해에 막 네 살박이로 / 今年方四齡
여공(女工)도 제법 배워가더니 / 頗能學組綴
어쩌다가 이런 참변을 만났는지 / 胡爲遭奪歸
너무도 갑작스러워 꿈만 같구나 / 焂若駭電滅
마치 새새끼를 땅에 떨어뜨린 것 같으니 / 春雛墮未成
비둘기의 둥우리 옹졸했음을 알겠네 / 始覺鳩巢拙
도를 배운 나는 그런대로 참겠지만 / 學道我稍寬
아내의 울음이야 언제 그치려나 / 婦哭何時輟
내가 보니 저 밭에 / 吾觀野田中
작물도 막 자랄 때 / 有穀苗初茁
바람이나 우박이 불시에 덮치면 / 風雹或不時
여지없이 모두 결단나더군 / 撲地皆摧沒
조물주가 이미 내어놓고 / 造物旣生之
조물주가 다시 갑자기 빼앗아가니 / 造物又暴奪
영과 고가 어찌 그리 덧없는가 / 枯榮本何常
변과 화가 속임수만 같구나 / 變化還似譎
오고 가는 것 다 허깨비이니 / 去來皆幻爾
이제는 그만이야 영원한 이별이구나 / 已矣從此訣
▣동국이상국전집 제7권
◯양 귀비(楊貴妃)
양 귀비 얼굴이 꼭 뛰어난 게 아니라 / 未必楊妃色絶奇
나라를 망치려고 예쁜 모양 지은걸세 / 只緣誤國作嬌姿
그대여 정관의 태평시대를 보라 / 君看貞觀太平日
궁중에 어이하여 한 미희가 없었겠나 / 宮掖那無一美姬
▣동국이상국전집 제9권
◯구월 이십삼일에 전주로 들어가면서 마상(馬上)에서 회포를 쓰다
북당에서 눈물 뿌리며 어버이를 작별하니 / 北堂揮涕忍辭親
어머니 모시고 직소에 나간 옛사람에 부끄러워 / 輦母之官愧古人
갑자기 완산의 푸른 빛 한 점 보니 / 忽見完山靑一點
타향인이 된 몸 비로소 알겠구나 / 始知眞箇異鄕身
○십일월 이십일에 속군(屬郡)인 마령 객사(馬靈客舍)에서 유숙하였는데 중대당두(重臺堂頭)가 술을 가지고 왔으므로 시를 지어 주다
쓸쓸한 옛고을 산 밑에 있는데 / 蕭條古縣枕山根
대하는 사람이란 원숭이 모양의 아전일세 / 只對村胥貌似猿
그대를 한번 만나 시주회를 만드니 / 一見暫開詩酒會
청신한 이야기 공무에 시달림 씻노라 / 淸談聊洗簿書昏
찬 구름 뭉게뭉게 송함에 침노하고 / 寒雲苒苒侵松檻
눈 내리는 소소한 소리 죽헌에 들리네 / 乾雪騷騷響竹軒
술 마신 뒤 함께 몽정록을 맛보며 / 飮罷共嘗蒙頂綠
포단에 둥글게 앉아 말마저 잊노라 / 蒱團櫱坐旋忘言
○십이월 어느 날 작목(斫木)하러 가면서 처음으로 부령군(扶寧郡) 변산(邊山)에 갔다가 그때 마상(馬上)에서 짓다 2수
호위군 인솔하니 영광을 자랑할 만하지만 / 權在擁軍榮可詫
작목관이라 부르니 수치스럽기만 하네 / 官呼斫木辱堪知
작목사(斫木使)라고 부르므로 한 말이다.
변산은 예부터 천부라 일컫는데 / 邊山自古稱天府
좋은 재목 가리어 동량으로 쓰리라 / 好揀長村備棟欀
고각 소리 한번에 새들도 놀라고 / 一聲鼓角鳥驚飛
병객이라 옷속에 스며드는 찬 바람 무섭고나 / 病㥘寒威裂厚衣
안천에서 행차 머물러 쌓인 눈 구경하고 / 駐蓋雁川觀雪漲
견포에선 안장 풀고 조수 물러갈 때 기다리네 / 卸鞍犬浦待朝歸
○부령 객사(扶寧客舍)에서 판상(板上)에 있는 좨주 이순우(李純佑)의 시에 차운하다
청명한 강산 영주 봉래와 같으니 / 江山淸勝敵瀛蓬
옥을 묶어 세운 듯 은을 녹여 만든 듯 만고에 변함 없네 / 立玉鎔銀萬古同
풍속은 으레 연자 같은 것 많고 / 習俗例多如蜒子
잠총부터 시작된 고을 이름 누가 믿으랴 / 縣封誰信自蠶叢
바람 피하려는 파리한 종놈 바위 밑에 숨고 / 避風羸僕投巖下
눈을 싫어하는 굶은 새 난간에 날아든다 / 厭雪飢禽落檻中
근년에 와서 정미가 없어진 것이지 / 只是年來情味薄
원래에 예쁜 여색 싫어하는 것 아닐세 / 元非不愛眼前紅
○고을살이 즐겁다 마오 4수
고을살이 즐겁다 마오 / 莫噵爲州樂
고을살이 도리어 걱정뿐일세 / 爲州乃反憂
공정은 시끄럽기 저자 같고 / 公庭喧似市
산더미처럼 쌓인 송사의 문서 / 訟牒委如丘
가난한 마을에 세금 차마 부과하겠나 / 忍課殘村稅
감옥에 가득한 죄수들 안타깝구려 / 愁看滿獄囚
입엔 웃음 띨 날 없는데 / 也無開口笑
더구나 태평하게 놀러다닐까 / 况奈事遨遊
고을살이 즐겁다 마오 / 莫噵爲州樂
고을살이 걱정만 점차 새로워 / 爲州憂轉新
성낸 얼굴로 고을 아전 꾸중하고 / 怒顔訶郡吏
무릎 꿇고 왕사에게 인사드리네 / 曲膝拜王人
속군을 봄마다 순찰하고 / 屬郡春行慣
영사에 기우제도 자주 지냈네 / 靈祠乞雨頻
잠시도 한가할 때 없으니 / 片時閑未得
어떻게 몸 빼낼 생각하리요 / 何計暫抽身
고을살이 즐겁다 마오 / 莫噵爲州樂
고을살이 걱정만 밀려오누나 / 爲州憂轉稠
따스한 비단 옷 입지 못하고 / 身無尺帛暖
한 푼의 돈도 있을 날 없네 / 囊欠一錢留
성내는 마누라 주름살 펴기 어렵고 / 妻恚嚬難解
어린 자식 배고파 울음 끊일 사이 없네 / 兒飢哭不休
삼년 뒤에도 그만두지 못한다면 / 三年如未去
머리털 모두 백발일거야 / 白髮欲渾頭
깊은 걱정 무엇으로 잊을까 / 憂深何以遣
편히 잔치하며 노는 날 없어라 / 些少宴遊晨
푸른 녹은 술 그릇에 생기고 / 盞斝生靑暈
거문고 뚜껑에 먼지만 뿌옇구나 / 琴箏冪素塵
강산은 원심을 품을 것이고 / 江山應蓄怨
화류는 봄을 위해 핀 듯 / 花柳若爲春
풍정이 없어서가 아니라 / 不是風情薄
관청의 규칙이 너무도 엄함일세 / 官箴大逼人
○정월 십구일에 다시 부령군(扶寧郡)에 이르러 짓다
온 하늘에 눈은 어지럽게 내리는데 / 滿空飛雪落紛紛
비호 같은 무리 활과 칼을 차고 따르네 / 弓劍相磨貔虎群
팔천여 보의 거리를 내왕하고 / 來往八千餘步地
전주에서 부령까지 거리가 8천 보이다.
사십육주의 군사를 지휘했네 / 指麾四十六州軍
새벽기운 찬데 맑은 바람 빈 집에 일고 / 曉寒虛閣生淸籟
석양 하늘 눈 개니 얼룩 구름 걷히누나 / 夕霽長天卷駮雲
몇 사람이나 문밖에서 손가락이 얼었는가 / 門外幾人皆墮指
비단옷 입고 있는 나 자신 부끄럽구나 / 愧予猶擁綺羅薰
○변산(邊山) 노상에서 짓다
깃발은 앞에서 펄럭이고 / 旌旗先客路
고각 소리 사람의 마음 씩씩하게 하네 / 鼓角壯人心
들쥐는 대숲으로 달아나고 / 野鼠跳藏竹
산노루 숲을 찾아 숨는구나 / 山麕走覓林
○낭산(郞山) 고을에서 창고를 조사하고 짓다
백화 같은 낙마(駱馬) 나는 용보다 빠르니 / 白花飛駱乘龍驤
산 밑으로 기나긴 길을 달려왔네 / 行盡山邊一路長
나와서 맞는 고을 아전 늙은 원숭이 같고 / 郡史來迎如老狖
마을 백성 도망치니 놀란 노루 같구려 / 村民走避似驚麞
이미 많은 곳간에서 홍부가 쌓인 것을 보았으니 / 千囷已厭觀紅腐
한잔 술로 푸른 향기를 마신들 어떠리 / 一斝何妨酌碧香
부끄럽구나 옛날 한가히 놀던 사람이 / 可愧昔年閑放客
참군과 장기를 지내고 또 감창도 하는구나 / 參軍掌記又監倉
※홍부(紅腐) : 오래되어서 붉게 썩은 곡식을 말한다.
○왕명을 받들어 속군의 억울한 죄수들을 살피다
임금의 온화한 말씀 사람 살리길 서두르니 / 紫殿溫言急活人
황사 기운 흩어져 좋은 봄빛 되누나 / 黃沙喜氣散爲春
이 길로 나가 새장 속의 새를 모두 놓아주어 / 此行盡放籠中鳥
동서에 자유로운 몸 되게 하리라 / 遣作東西自在身
○전주 객사(全州客舍)에서 밤에 자다가 편협한 회포를 쓰다
남자라면 다같이 고생과 영광이 있건만 / 一般男子有枯榮
가슴속에 쌓인 덩이 모두 불평뿐이네 / 堆阜撑胸意未平
종일토록 영중에 무릎 꿇고 / 盡日營中猶曲膝
날이 새면 창 밖에 나가 스스로 호명하네 / 五更窓外自呼名
여러 차례의 광언 눈썹을 지지고 싶고 / 狂言屢發眉堪炙
편협한 분개 사라질 수 없어 병이 생기려 하네 / 褊憤難消癭欲生
백 가지로 잘못을 찾아보지만 굽힐 수 없나니 / 百計覓瘢難屈處
이 마음 길이 물과 같이 맑다오 / 寸心長共水爭淸
○경신년 오월에 하사표(賀赦表)를 받들고 서울로 갈 때 삼례역(參禮驛)에서 말을 갈아타고 짓다
옥함에 승두표를 넣어 봉해 놓고 / 玉函封了蠅頭表
비단 자리에서 봉미생 부는 소리 들었지 / 綺度聞吹鳳尾笙
전날에 봉표(封表)하는 잔치를 생각하여 기록한 말이다.
어제 취한 술 기운으로 마상에서 조니 / 宿醉昏昏馬頭睡
십리 강산을 꿈속에 지났구려 / 溪十里山夢中行
여기에서 서울이 스무 역이라 / 此去長安二十郵
이 역으로부터 서울까지 역이 모두 20개이므로 삼례역을 20역이라고도 한다.
평평한 벌판 모랫길 멀기도 한데 / 草平沙軟路悠悠
천문에 가서 금계로 놓아 줌 하례코자 하니 / 天門欲賀金鷄赦
기쁜 기운 얼굴에 감도누나 / 已覺眉頭喜氣浮
고을살이 매인 몸이라 말하지 마오 / 莫言作郡身如繫
임금 뵈올 길 멀지 않아 기쁘기만 하네 / 已喜賓天路不遙
무엇이 부러우랴 신선 왕 업령이 / 何羨神仙王鄴令
쌍 오리 타고 한 나라 궁궐 조회한 것이 / 雙鳧飛向漢宮朝
○남원(南原)으로 갈 때 오수역(獒樹驛)에서 누상(樓上)의 벽에 붙은 시를 차운하다
오원에서 점심때 떠나 / 烏園侵午出
오수에서 잠깐 쉬었네 / 獒樹片時留
사슴은 숲 속에서 한가히 졸고 / 閑鹿眠深草
새는 계곡 물에서 몸을 적시네 / 幽禽浴淺溝
산은 눈에 가득한 그림이고 / 山供滿目畫
바람은 내 가슴 상쾌하게 해주네 / 風送一襟秋
두 차례 대방국에 들어왔으니 / 再入帶方國
남원을 옛날에 대방국이라 했다.
승경(勝景) 속에서 맘껏 즐겼구나 / 天敎飽勝遊
○남원으로부터 원수사(源水寺)에 와서 하룻밤 자고 다시 남원으로 갈 때 인월역(引月驛)에 들어가 벽에 붙은 시를 차운하다
어젯밤 비 개자 풀빛도 새로워 / 宿雨初晴草色新
높고 낮은 언덕 용 비늘처럼 즐비하네 / 高低原隰錯龍鱗
어찌 일만 오천 보를 걱정하리요 / 豈愁一萬五千步
일찍부터 사방으로 돌아다녔네 / 早是東西南北人
양류는 영송을 많이 하여 낯익지만 / 楊柳不詞迎送慣
강산은 잦은 왕래 이상타 하리 / 江山應怪往來頻
눈앞의 풍경을 모두 기억하지만 / 眼前風景勸須記
다른 날 생각하면 묵은 자취 되리라 / 他日廻頭跡旋陳
○임실 군수(任實郡守)에게 주다
진중한 선생 정사가 신명 같아 / 珍重先生政似神
한 고을 찬사의 노래 백성 입술 부르트네 / 一方歌頌腐民脣
들판엔 풍년 들어 좋은 곡식 어울리고 / 年豐野壟嘉禾合
관청엔 송사 없어 풀빛만이 새롭구나 / 訟息公庭碧草新
동룡에서 세자 모시던 일 생각마오 / 莫憶銅龍曾接虎
동궁 시학(東宮侍學)으로 있다가 원이 되어 나왔다.
은토를 잠깐 몸에 둘러 본들 어떠리 / 不妨銀兎暫纏身
완산 막부에 있는 객이 참으로 못나서 / 完山幕客誠無狀
나쁜 냄새로 좋은 이웃 더렵혀 부끄럽다네 / 腥臭空慙衊善隣
○순창군(淳昌郡)으로부터 전주로 향할 때 갈담역(葛覃驛)에 들어가 판상(板上)에 있는 제공(諸公)의 시에 차운하다
석양에 돌아오는 깃발 나무 그늘 속으로 / 夕陽歸旆樹陰中
남도의 산천 어디나 한 모양이로구나 / 南道山川一樣同
늘어진 버들 곳곳에서 사람 홀리고 / 垂柳惱人隨處綠
주인 없는 그윽한 꽃 누굴 위해 붉게 피나 / 幽花無主爲誰紅
역정에는 모든 손님 거쳐 가는데 / 郵亭閱遍經由客
비야(鄙野)한 사람이 누가 방광한 늙은이만 하랴 / 野性誰如放曠翁
역마 타는 태도 서두름이 없어 / 不作悤忙乘傳態
옷을 풀고 마루에 한가히 누워있네 / 解衣閑臥一軒風
○스스로 자신에게 주는 잡언(雜言) 8수
자맥에서 취하고 놀던 일 모두 꿈속 같고 / 紫陌醉遊渾似夢
청산으로 숨으려던 계획도 뜻대로 안 되네 / 靑山歸計亦違心
머리 숙여 굴레에 들어가라 누가 권했나 / 誰敎俯首就御勤勒
공문서 쌓이고 쌓여 감내할 수 없네 / 簿領堆高力不任
태수가 병 때문에 오랫동안 휴가에 있으니 / 太守抱疴長在假
이거들도 게을러져 아문에 있는 이 드물구나 / 貳車多懶亦稀衙
어릿어릿하는 하나의 아전과 함께 / 惟同一箇棲棲椽
방을 두드리며 세월을 보내노라 / 鼓榜中間費歲華
흑석천 가엔 피서할 만하고 / 黑石川邊堪避暑
개원루 위엔 시 읊기 좋건만 / 開元樓上可吟詩
밀려드는 관청의 일 때문에 / 只緣官事來侵軼
열흘에 한 번도 술 마시기 어려워라 / 十日猶難倒一卮
잘 다스리는 일 없다하여 모두 물러가라네 / 理無善狀皆推去
전현의 정사에 뒤지니 누가 머물게 하리 / 政謝前賢孰借留
어제와 오늘 아침 관기를 벌주면서 / 昨日今朝連罰妓
서기들에게 풍류놀이 말라 할 뿐이네 / 但言書記勿風流
붉은 깃발 불꽃 같고 말은 용 같아 / 紅旗如火馬如虯
남산의 백액후를 사냥해 얻었구려 / 獵得南山白額侯
남산에 큰 호랑이가 자주 나와 사람을 해치므로 내가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사로잡았다.
서생은 담력 없다 말하지 마오 / 莫道書生無膽氣
톱과 칼날 같은 어금니가 내 꾀에 잡혔다네 / 鋸牙刀齒落吾謀
고을 교화함은 청정이 으뜸이다 / 化邑由來貴淸淨
때문에 우리 조상의 오천문을 읽노라 / 故看吾祖五千文
한 편을 다 읽자 마음이 고요하니 / 一篇讀了心虛寂
도리어 벼슬 내놓고 백운으로 가고싶네 / 反欲休官入白雲
이몸이 나찰도 염라대왕도 아닌데 / 身非羅刹與閻王
날마다 죄수를 다루니 창자가 끊어지는 듯 / 日閱累囚謾斷腸
젓대와 피리 소리도 자주 들으면 싫은데 / 笙笛慣聞猶或厭
곤장 소리 들으면 어찌 상심하지 않을까 / 況聽楚毒不無傷
도가 곧으면 사람마다 원수되니 / 道直無人不作讐
처음엔 수십 일도 벼슬에 있으려 않았네 / 初心不意數旬留
금년 가을도 반쯤이나 지났으니 / 今年又見秋强半
내가 요지유된 것이 우습기만 하구나 / 笑我飜成繞指柔
○고부(古阜)로부터 밤에 금구(金溝)에 들어가 벽 위에 쓰다
새벽에 고부를 떠나 / 凌晨離古阜
밤에야 금구에 들어갔네 / 侵夜入金溝
욕심 많은 아전 도망치는 쥐 같고 / 貪吏猶逃鼠
어리석은 백성 원숭이 같구려 / 愚民似沐猴
밝은 달빛 구경할 만하고 / 月華淸可掬
멀리 보이는 아지랑이 흐르는 듯하네 / 嵐色遠如流
부석은 어느 곳에 돌아갔는가 / 鳧舃歸何處
관기만이 홀로 머물러 있네 / 蟻眉獨笑留
이때에 현령(縣令)이 없었다.
▣동국이상국전집 제10권
◯이월(二月)에 다시 부령군(扶寧郡)으로 가면서 말 위에서 소축시(小畜詩)를 읽다가 다원(茶園)의 시운(詩韻)을 써서 소견을 기술하다
나랏일 분담하니 쉴 날이 없어 / 分憂無暇日
역마 타고 들판을 달린다 / 乘馹走平原
이곳엔 꽃이 길을 메웠는데 / 是處花迷路
뉘집인가 대가 동산을 둘렀구나 / 誰家竹鎖園
칡덩굴 엉겨 덩굴져 드리웠고 / 藤纏扶倒蔓
회화나무 뿌리 드러내고 누웠구나 / 槐仆霜孤根
달리는 말 학에게 채찍질한 듯 / 逸駕如鞭鶴
가뜬한 행장 원숭이를 좇을레라 / 輕裝可趁猿
호수엔 봄 안개 끼어 있고 / 湖天春霧暗
어촌엔 바다 기운 따스하다 / 蠻店瘴雲溫
싱싱한 이끼엔 햇빛이 새롭고 / 苔活添新暈
미친 밀물은 옛 자취 스쳐간다 / 潮狂過舊㾗
마을에 들어선 제비 떼 만나고 / 入村逢燕社
바다를 바라보며 섬을 센다 / 望海問鼇番
옛 방죽은 새벽인데도 수문 열렸고 / 古堰晨開閘
빈 성은 낮인데도 문 닫혔네 / 空城晝掩門
아전은 마중나와 길 인도하고 / 郡胥迎導路
수령은 술상 벌여 영접한다 / 邑宰出開樽
바쁘게 움직임은 모두 나랏일인데 / 役役皆王事
흐뭇한 즐거움은 역시 임금님 은혜로다 / 陶陶亦聖恩
물가엔 갈매기 날고 / 沙邊鷗獨舞
숲속엔 새들이 지저귄다 / 林表鳥能言
부로들 놀라 피하지 마오 / 父老休驚避
이 선비 제 잘난 체하지 않소 / 書生不自尊
○포구(浦口)의 작은 마을에서 쓰다
흐르는 물 소리에 해는 지고 뜨는데 / 流水聲中朝復暮
어촌의 인가가 듬성듬성 쓸쓸쿠나 / 海村籬落苦蕭條
맑은 호수엔 묘하게 달이 찍혀 있고 / 湖淸巧印當心月
넓은 포구는 한껏 밀물을 들이켠다 / 浦濶貪呑入口潮
옛돌 물결에 닳아 숫돌처럼 평평하고 / 古石浪舂平作礪
부서진 배 이끼에 덮여 다리처럼 누웠구나 / 壞船苔沒臥成橋
강산의 온갖 경치 읊어내기 어려우니 / 江山萬景吟難狀
화가 시켜 그려야만 묘사할 수 있겠네 / 須倩丹靑畫筆描
○만경현(萬頃縣) 노상(路上)에서
긴 냇물은 경계 넘어오는 들불을 가로막고 / 長川界斷橫來燒
깊은 골은 성낸 바람을 안고 으르렁댄다 / 深谷留號怒暢風
바다 장기 사람을 찌니 무슨 일을 하겠는가 / 嵐瘴熏人辦何事
까닭없이 들볶아 늙은이 만들었네 / 無端釀作老蒼翁
○두 번째 임피군(臨陂郡)에 들어가다
옛고을은 여전히 물가를 접했는데 / 古縣依然接水湄
앞서 가는 붉은 깃발 숲을 스쳐가네 / 前驅紅旆拂林歸
가는 길 오는 길에 꾀꼬리만이 알은 체 / 往來雌有鶯相識
늙고 병들었으니 어찌 빠른 말을 견디랴 / 衰病那堪馬似飛
객사엔 새로 버들 드리운 길 닦았고 / 客舍新除垂柳路
인가엔 꽃빛 어린 사립이 반쯤 닫혔네 / 人家半掩映花扉
의롭고 여윈 참군 보기 난감할 텐데 / 參軍孤瘦難堪見
사녀를 무엇하러 떼지어 둘러섰나 / 士女可須聚作圍
※참군(參軍) : 고려 때 개성부(開城府)의 정7품 벼슬이었는데, 이규보(李奎報)가 천우위(千牛衛)의 녹사참군(錄事參軍)으로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자칭한 것이다.
○삼월(三月)에 또 보안현(保安縣) 강가에 이르러 벌목(伐木)을 독려하다
봄 한철에 세 번이나 이 강머리 지나거니 / 一春三過此江頭
나랏일인데 어찌 쉴 틈 없다 원망하랴 / 王事何曾怨未休
만리 거센 파도 백마가 달리는 듯 / 萬里壯濤奔白馬
천년 묵은 늙은 나무 창룡이 누운 듯 / 千年古木臥蒼虬
바닷바람은 어촌의 젓대 소리 불어 보내고 / 海風吹落蠻村笛
물가 달빛은 포구의 나그네 배 맞아주네 / 沙月來迎浦客舟
뒤따르는 마부 아이 아마도 괴이타 여기리 / 擁去騶童應怪我
좋은 경치 만날 적마다 멈춰서서 머뭇거리니 / 每逢佳景立遲留
○옥야현(沃野縣) 객사(客舍)에서 현판 위의 학사(學士) 채보문(蔡寶文)의 이화시(梨花詩)에 차운하다
가지 위에 눈이 쌓여 빛나는가 했더니 / 初疑枝上雪黏華
맑은 향기 풍겨오매 꽃인 줄 알았네 / 爲有淸香認是花
겨울 매화 능멸하듯 구슬 뺨이 깨끗하고 / 鬪却寒梅瓊臉潔
화사한 행화의 붉은 꽃잎 비웃는구나 / 笑他穠杏錦跌奢
푸른 나무에 날아오르니 보기가 수월하고 / 飛來易見穿靑樹
흰 모래에 떨어지니 분간하기 어렵구나 / 落去難知混白沙
예쁜 여인 비단 소매 걷고 흰 팔 드러내고서 / 皓腕佳人披練袂
방긋방긋 웃는 듯 마음 몹시 녹여주네 / 微微含笑惱情多
※옥야현(沃野縣) : 현재 익산시 지역중에서 1995년 도농통합으로 이리시와 익산군이 합쳐져 익산시가 되기 전의 이리시 지역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고려 말에 전주에 소속되었다가 조선 초기까지 전주부의 속현이었는데 이때 전주부의 속현인 네 고을 沃野(구 이리시), 紆州(왕궁ㆍ봉동ㆍ삼례 각 일부), 伊城(이서), 利城(공덕·청하)중 태종 9년(1409)에는 옥야만 유일한 속현으로 남고 나머지는 폐현이 된다. 1906년에 옥야현으로 전주에 속했다가 익산군으로 편입된 지역은 남일면(중앙동, 인화동 등 시내 중심부와 마동, 동산동, 목천동), 남이면(오산면 남부), 동일면(신흥동, 금강동, 석탄동, 대장촌 일대), 서일면(오산면 북부지역), 북일면(남중동, 신동, 모현동, 영등동 일대)인데 1914년에 남일면과 동일면이 합하여 익산면이 되고, 남이면과 서일면이 합하여 오산면이 되며, 북일면은 그대로 북일면이 되었다. 옥야현은 오늘날 구 이리시를 중심으로 오산면과 춘포면 일부를 포함하는 지역이다.
※이 블로그를 운영하는 필자인 제가 현재 옥야현의 치소가 있던 익산시 모현동에 살고 있습니다.
○시월 팔일 경복사(景福寺)를 유람하고 이튿날 비래방장(飛來方丈)에 찾아가 보덕 성인(普德聖人)의 영정(影幀)을 처음 뵈었다. 현판 위에 종령 수좌(宗聆首座) 내한(內翰) 이인로(李仁老)의 시가 있었는데 그 절의 주지가 시를 청하기에 차운해서 그 끝에 쓰다
갑자기 산중의 대사(大師)가 생각나 / 忽憶山中胡眼碧
잠깐 동안 문서 결재 그만두니 / 暫輟薄書硏墨赤
몸은 나는 새보다 먼저 반공에 솟구치고 / 身先飛鳥躍半空
팔은 날랜 원숭이같이 절벽을 오른다 / 臂共騰猿攀絶壁
복건 쓰고 휘파람 불며 절 문에 이르러 / 幅巾長嘯到寺門
다시 박쥐와 함께 저문 해를 다툰다 / 又與蝙蝠爭黃昏
날이 새자 비래당의 문을 두드리니 / 天明扣鍵飛來堂
지인은 이미 가고 구름도 흔적 없네 / 至人已化雲無痕
나는 듣건대 보덕은 진실로 지인이라는데 / 吾聞普德信至人
반룡산에 누워 몇 봄이나 지냈는가 / 一臥盤龍幾許春
묵묵히 안석에 기대어 정신을 잃은 듯 / 嗒然隱凡如喪耦
다만 십일 문인과만 친했었네 / 唯與十一門人親
지인의 재주는 참으로 변화 무궁하여 / 至人變化眞有餘
집 한 칸을 가지고 허공을 날았네 / 擬將一室飛空虛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길 가는 나그네라 / 自言吾生信過客
세상 보기를 객관(客館)처럼 여기려 하는데 / 視世尙欲如蘧廬
이 땅에 어찌 꼭 내 방을 둘 것인가 하였으니 / 此地何須着我房
달통한 사람 미리 앞 일을 알았구나 / 達人知幾猶履霜
보덕(普德)이 명덕(明德)에게 “고구려(高句麗)는 도교(道敎)만 높이고 불법(佛法)을 믿지 않으니, 얼마 못 가서 멸망할 것이다. 몸 편하게 피난하려면 어떤 곳이 좋겠느냐?” 하니, 제자가 대답하기를 “신라(新羅) 완산(完山)에 고달산(高達山)이 있는데 걱정없이 안주(安住)할 수 있는 곳입니다.” 하였는데, 보덕이 이 말을 듣고 부지런히 수행(修行)하였다. 밤이 지나고 새벽녘에 문을 열고 나가보니, 당(堂)이 곧 고달산에 옮겨져 있었다.
갑자기 서까래마다 날개가 돋쳐 / 却遣椽椽生羽翮
번쩍이는 전광보다 더 빠르게 옮겨졌네 / 過眼難容掣電光
만약 온갖 신통력을 드러내 보인다면 / 若顯神通百千種
땅을 파서 샘 솟게 하길 종기 째듯 했으련만 / 刺地出泉如決腫
명덕은 어찌해서 못 옮김을 한했던가 / 明德胡爲恨未移
성인은 때로 미묘한 조화를 숨기고 / 聖人有時藏妙用
일부러 인간에게 장애 있음을 보이느니 / 聊向人間示有礙
자세히 이 이치 생각하면 정말 진리가 있는 것이네 / 細思此理眞自在
이 비래방장만 옮겼다고 말하지 말라 / 莫言只是十六楹
크게는 수미산도 겨자씨에 넣을 수 있다네 / 大曰須彌堪納芥
우리 대사 어느 해에 이 산에 살았는가 / 吾師何年棲此山
우습다 긴 세월이 손가락 튀기듯 잠깐인 것을 / 一笑萬古彈指間
옛일 더듬어 글귀 찾아 읊자니 / 我來記舊吟索句
양쪽 귀밑 센 털과 바꿔 시 얻었네 / 博得雙鬢添詩斑
▣동국이상국전집 제11권
◯사계화(四季花) 3수
설매(雪梅)와 국화는 공교히 찬 기운 범하지만 / 臘梅秋菊巧侵寒
경박한 봄 꽃은 이미 범하지 못하는데 / 輕薄春紅已莫干
이 꽃 네 계절 계속 피어 있는 것 보고서야 / 及見此花專四序
한 계절에만 아름다운 꽃은 볼 만하지 않다는 것 알았네 / 一時偏艶不堪看
온갖 꽃 그대 짝하여 피도록 허락하지만 / 好許千花伴爾榮
봄 가버린 뒤에는 아름다움 다툴 수 있겠는가 / 一春歸後可堪爭
오초의 미인처럼 아름다운 꽃 분분히 지니 / 吳姬楚艶紛紛散
세월이 오랜 뒤에야 바야흐로 정년 같은 정 알겠네 / 歲久方知靜女情
소나무는 진중하고 대나무는 모질어서 부드러운 자태 적으니 / 松眞竹悍小柔姿
더위와 추위 타고 넘는 것 스스로 마땅하지만 / 跨涉炎寒也自宜
그대는 봄 꽃과 같은 모습인데도 / 爾與春紅同一樣
어찌하여 오히려 눈서리 올 때까지 이르는가 / 如何猶到雪霜時
○기러기를 읊다
천리 밖의 친구 소식이 드무니 / 故人千里訊音疏
가을 하늘 기러기 오기만을 기다리네 / 只待霜天雁到初
새 또한 때에 따라 정의가 박한가 봐 / 鳥亦隨時情意薄
날기 무거울세라 편지 가져오지 않네 / 唯嫌翅重不將書
▣동국이상국전집 제12권
◯옷 전당잡히는 데 느낌이 있어 최종번(崔宗藩)에게 보이다
삼월 십일일에 / 季春十一日
아침거리 없어 / 廚竈無晨炊
아내가 갖옷 잡히려 하기에 / 妻將典衣裘
처음엔 내 나무라며 말렸네 / 我初訶止之
추위가 아주 갔다면 / 若言寒已退
누가 이것 잡겠으며 / 人亦奚此爲
추위가 다시 온다면 / 若言寒復至
난 오는 겨울 어찌 하라느냐고 / 來冬我何資
아내 대뜸 볼멘 소리로 / 妻却恚而言
당신은 왜 그리 미련하오 / 子何一至癡
그리 좋은 갖옷 아니지만 / 裘雖未鮮麗
제 손수 지은 것으로 / 是妾手中絲
당신보다 더 아낀다오 / 愛惜固倍子
허나 구복이 보다 더 급한 걸요 / 口腹急於斯
하루에 두 끼니 먹지 않으면 / 一日不再食
옛사람도 허기진다고 말했소 / 古人謂之飢
허기지면 곧 죽게 되거니 / 飢則旦暮死
오는 겨울이 다 뭐냐고 / 寧有來冬期
즉시 하인 불러 내어주며 / 呼僮卽遣售
잘하면 며칠은 지낼 수 있다더니 / 謂可數日支
결과는 너무 엉터리였어 / 所得不相直
하인이 혹 빼돌렸나 했는데 / 疑僮或容私
제가 되려 억울해하며 / 僮顔有憤色
상대방의 말로 / 告以買者辭
이제 여름 가까워지니 / 殘春已侵夏
갖옷이 무슨 소용이냐 / 此豈賣裘時
아예 두었다가 겨울이나 나려므나 / 早爲禦寒計
나에게 여유 있어 망정이지 / 緣我有餘貲
그렇지 않다면 / 如非有餘者
한 말의 좁쌀도 어림없다더라고 / 斗粟不汝貽
나는 듣고 너무 부끄러워 / 我聞慙且恧
눈물이 자꾸 턱에 흐르네 / 有淚空沾頤
겨울에 애써 지은 옷 / 三冬織紝功
하루아침에 거저 버리고도 / 一旦棄如遺
큰 군색 구호 못하고 / 尙未救大歉
허기진 아이 죽 늘어섰다니 / 立竹羅飢兒
젊었을 때 회고하니 / 反思少壯日
세상 물정 전혀 모르고 / 世事百不知
수천 권의 책만 읽으면 / 讀書數千卷
급제(及第)는 수염 떼기보다 쉽다고 / 科第若摘髭
그대로 거들먹거리며 / 居然常自負
좋은 벼슬 절로 붙을 줄 알았더니 / 好爵謂易縻
운명이 왜 이다지도 기구해 / 胡爲賦命薄
앞길이 꽉 막혔을까 / 抱此窮途悲
가만히 앉아 반성해 보니 / 端心反省已
어찌 나의 잘못 아닐쏜가 / 亦豈無瑕疵
술만을 거침없이 좋아해 / 嗜酒不自檢
시작하면 천 잔씩이나 퍼마셨고 / 飮輒傾千卮
평소 간직했던 말도 / 平日心所蓄
취하면 더 참지 못해 / 及醉不能持
죄 내뱉고 말았을 뿐 / 盡吐而後已
비방이 뒤따르는 줄 몰랐네 / 不知讒謗隨
처신이 이러하니 / 行身一如此
지금의 군색 너무도 당연하지 / 窮餓亮其宜
아래로는 사람의 빈축 사고 / 下不爲人喜
위로는 하늘의 도움 잃어 / 上不爲天毗
가는 곳마다 흉허물이요 / 觸地皆玷纇
하는 일마다 비뚤어지네 / 無事不參差
이는 다 나의 자작지얼 / 是我所自取
아 뉘를 원망하랴 / 嗟哉又怨誰
스스로 잘못 세어 가며 / 屈指自數罪
종아리 세 번 때렸어라 / 擧鞭而三笞
지난 일 후회한들 무슨 소용인가 / 旣往悔何及
앞으로나 힘껏 애써 보려네 / 來者儻可追
○원앙(鴛鴦)을 보고 장난삼아 짓다
봄철 파란 못에 비단 깃 펼치고 / 碧池春暖縠舒紋
진종일 나란히 떠 떨어질 줄 모르니 / 盡日雙浮不暫分
미인은 이를 함부로 보지 말지어다 / 莫使美人容易見
낭군을 잠시도 놓아 주지 않을까 두려워 / 片時勿欲放郞君
○개똥벌레
온갖 벌레 잠들고 밤은 괴괴한데 / 百蟲潛息夜幽幽
괴이할사 너만이 등불 들고 노니누나 / 怪爾擡燈獨自遊
더러는 미인의 부채에 얻어맞기도 하고 / 時見美人羅扇撲
또는 시객의 주머니에 잡혀들기도 하며 / 苦遭詩客絹囊收
낮게 날 적엔 옷깃에 붙을 듯하다가 / 低飛似欲黏衣領
높이 날 적엔 지붕도 훌쩍 넘어가네 / 飄去無端度屋頭
그러나 저 하늘 끝까지는 날지 마라 / 更莫迢迢天際逝
관상감(觀象監)이 잘못 유성(流星)으로 보고할라 / 觀臺容易報星流
너의 불 물건은 태우지 못하고 / 螢火元不焚
그저 인광(燐光)만 반짝이므로 / 徒爾光炳炳
아무리 띳집에서도 / 雖於茅屋間
멋대로 날도록 내버려 두네 / 任汝飛自逞
푸르스름한 인광 풀잎에 붙기도 하는데 / 靑熒點草上
이슬과 달빛에 반사되어 한결 더 반짝이며 / 淸露炤月炯
날아서 창문 안에 들면 / 飄來入窓戶
서책을 비출 수 있고 / 書冊宜可映
비 맞아도 꺼지지 않다가 / 雨濕未滅暉
해뜨면 금세 사라지니 / 日昇便沈影
썩은 풀과 나무의 화생(化生)으로 / 信知腐草餘
빛낼 수 있음을 알겠네 / 朽木夜能耿
▣동국이상국전집 제13권
◯예성강(禮成江)에서 우연히 시를 읊다 2수
내가 천우참군(千牛參軍)으로서 조선(漕船 : 관선(官船)으로서 주로 세곡(稅穀), 군량(軍糧) 등을 운반한다)을 고사(考査)하였다.
죽림이 둘린 맑은 강에서 조선을 조사하니 / 竹繞淸江課漕船
백사장 가에서 사공들 굽실거리네 / 篙工羅拜白沙邊
수군들 뒤를 옹위하여 화각(畫角) 소리 요란하니 / 海軍擁後猶吹角
놀란 갈매기떼 가까이 오지 못하는구나 / 鷗鷺驚飛不自前
해오라기 날 때 시 읊는 운치 상쾌하고 / 江鷺飛時吟正快
조수 들어오자 말 소리도 웅장하구나 / 海潮來後語還雄
우연히 강호의 풍경 그려내니 / 偶然傳寫江湖景
근래에 글짓는 공부 늘었는가봐 / 錯認年來狀物工
○꾀꼬리 소리를 듣고서
해마다 늦봄에야 나타나니 / 已分年年殿暮春
절반쯤 떨어진 꽃 한탄해 무엇하리 / 千紅半謝不須嗔
공교한 울음 소리 풍악을 연주한 듯하고 / 解調淸管聲音雅
날씬한 몸매 황금빛으로 도금했구나 / 偸鍍黃金羽翼新
경박한 소년들 먼저 들음을 자랑삼고 / 薄行少年誇聽早
노래 배우는 아가씨 질투의 눈물 흘리누나 / 學歌嬌女妬啼頻
머리들어 아름다운 모양 감상하고 싶은데 / 擡頭欲賞毛衣好
높은 나무로 옮겨 앉아 친압(親狎)할 도리 없구려 / 飛轉喬林未易親
▣동국이상국전집 제14권
◯옛날을 생각한다
술 마심도 덜할 수 있고 / 省飮猶可期
말조차 참을 수 있지만 / 忍言非不易
이 세상 사는 세월 / 細思此浮生
빠르게 달리는 말 같구나 / 倏若過隙駟
하루아침 눈 감는 날이면 / 一朝瞑雙目
갈 곳은 북망 산천이라 / 祖送北邙趾
아무리 온갖 짓 다하려 해도 / 雖欲作狂態
백골이라 어찌하며 / 白骨能復起
아무리 친구와 말하고 싶은들 / 雖欲與人語
유명이 다르거니 어이하리 / 其奈幽明異
백양나무 바람은 쓸쓸한데 / 白楊風蕭蕭
석자 무덤만 솟았구나 / 三尺墳空峙
무덤인들 보호하리 / 尺墳未可保
나무꾼들 놀이터라 / 樵牧踏皆圯
해골은 풀 속에 뒹굴고 / 髑髏沒蒿蓬
짐승들 여기저기 집 짓는다 / 麋鹿於焉庇
이때에는 선과 악이 / 此時善與惡
모두가 같은 거야 / 混混同一軌
후세 사람이 아무리 칭찬한들 / 萬世稱惺人
죽은 자에게 무어 이로우며 / 死者蒙何利
후세 사람이 아무리 나무란들 / 萬古道狂客
죽은 자가 부끄럼을 알쏜가 / 死者有何恥
가련타 위선자(僞善者)들 / 奈何矯飾者
원만한 체 얌전한 체 / 矜持蓄沈思
좋은 술 왜 안 마셔 / 美酒豈不嗜
죽도록 마셔도 취하지 않네 / 囁囁莫成醉
있는 말 다 못하고 / 有言不敢吐
묵묵히 혼자 간직하누나 / 囊括好自祕
아 모두가 한 꿈이라 / 此亦一般夢
옳고 그름 어디 있던가 / 何論孰是非
○이화(李花)를 보고 쓰다
너는 나와 같은 성 / 汝與我同姓
봄 맞자 좋은 꽃 피었는데 / 逢春發好花
내 낯은 옛과 달라 / 吾顔不似舊
귀밑에 서리만 가득해라 / 反得鬢霜多
○국화(菊花)를 읊다 2수
봄이 꽃 피우는 것 맡았거늘 / 靑帝司花剪刻多
어찌하여 가을이 또 꽃을 피우려 하나 / 如何白帝又司花
서늘한 바람 날마다 불어오는데 / 金風日日吹蕭瑟
어디서 따뜻한 기운 빌려다가 꽃을 피우는지 / 借底陽和放艶葩
봄 힘 빌리지 않고 가을 빛에 피었기에 / 不憑春力仗秋光
한 줄기 찬 꽃 서리에도 늠름하다네 / 故作寒芳勿怕霜
술 가진 사람 누군들 너를 버릴 수 있겠는가 / 有酒何人辜負汝
도연명만이 그 향기 사랑했다 말을 마라 / 莫言陶令獨憐香
○무주(無酒)
내 본래 술 즐기는 사람이라 / 我本嗜酒人
입에 잔 뗀 적 없었네 / 口不離杯卮
비록 함께 마실 손 없으나 / 雖無與飮客
독작도 사양치 않는다오 / 獨酌亦不辭
항아리에 익은 술 없으니 / 顧無樽中綠
마른 입을 무엇으로 적시리 / 燥吻何由滋
지난 서울 시절 생각하니 / 憶昨在京輦
월급은 쓰고도 남았네 / 月俸有餘貲
이만한 독에 술 빚어 놓고 / 釀得如許甕
잔 들기 그칠 때 없었지 / 挹酌無停時
집 술이 더러 이어대지 못하면 / 家醞或未繼
사온 술로 기쁨을 만족시켰네 / 沽飮良足怡
슬프다 계양을 지키는 사람 / 嗟嗟桂陽守
월급이 적어 술 빚기 어렵네 / 祿薄釀難支
몇 집 안 되는 쓸쓸한 시골에 / 蕭條數家村
어느 곳에 청기가 있을는지 / 何處有靑旗
또한 일 좋아하는 사람 없어 / 亦無好事者
술 싣고 좇아오지 않네 / 載酒相追隨
단정히 당 위에 앉아 / 端坐一堂上
온종일 홀로 턱만 괴고 있네 / 竟日獨支頤
이미 쫓겨난 신하 되었으니 / 業已爲逐臣
기갈됨이 진실로 마땅하구나 / 飢渴固其宜
어찌하여 부질없이 한하면서 / 胡爲浪自恨
이 짧은 눈썹을 찡그리는가 / 攢我數寸眉
입 벌려 억지로 큰 웃음치니 / 開口强大笑
웃음이 식어서 도리어 슬프네 / 笑冷反噢咿
이 말을 경솔히 누설치 말라 / 此語勿輕洩
들은 사람 마땅히 비웃으리라 / 聞者當哂之
▣동국이상국전집 제15권
◯최 상국(崔相國)에게 올리다.
저는 본래 관리로서의 능력이 모자라는 자질로 군수가 되었는데, 임기가 만료되기도 전에 급급하게 부임할 사람을 구하는 것은 너무 이른 듯합니다. 그러나 제가 성(省)에 있은 지 5년 만에 홀연히 비죄(非罪)로 인하여 유사(有司)의 탄핵(彈劾)을 받은 바 있었으나 합하(閤下)께서 힘을 다하여 구출하심에 힘입어 산지(散地)에 떨어지지 않고 이 고을의 책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제 합하는 나랏일을 맡아서 무릇 내외 관료(官寮)들 간에 이름이 청렴하지 못한 자를 이미 모조리 징계하였습니다. 대저 청(淸)한 것은 탁함의 반대이니 그 탁함을 배격하면 반드시 그 청함을 추어 올릴 의논이 있을 것이니, 나같이 절개를 지켜 봉공(奉公)하는 자는 비록 큰 상을 받지는 못할망정 또한 어찌 3년 후에 교대시킬 필요가 있겠습니까. 양지하시기 바랍니다.
일찍 깊은 은혜 입어 봉지에 들었다가 / 早沐深恩入鳳池
홀연 횡의로 강가에 떨어졌네 / 忽因橫議落江陲
죄 아닌 귀양을 공은 일찍 알아서 / 謫因非罪曾相識
힘써 구제함은 세상이 아는 바라 / 力欲扶顚世亦知
쑥이 더부룩하니 사슴과 같이 살고 / 蓬艾蒙籠同鹿處
원장이 소루하니 이리떼 함부로 엿보네 / 園墻疏漏任狼窺
송사하는 법정에선 주린 백성 근심스럽고 / 訟庭愁見飢民色
공석에선 교활한 아전 모습 역겹기도 / 公席慵看黠吏姿
고을의 봉급은 근래 깎이어 적고 / 邑俸近從刪省少
전답의 조세는 지고 싣고 운반하네 / 田租未免負駄移
두루 보조하여 해 넘길 양식도 어려운데 / 尙難周補經年難
하물며 겨울 추위 막을 의복을 마련함이랴 / 況可能營禦臘絲
옛날에 밟던 약계는 하늘같이 멀어졌고 / 舊踏藥階天忽遠
같이 놀던 친구들 기미(驥尾)를 따르기 어려워라 / 與遊蘭友驥難追
고달픈 문서 처리에 몸이 매이니 / 苦遭薄領長纏縛
시상이 크게 감퇴됨을 어찌하랴 / 無奈詩情大減衰
벼슬에 참여한 지 오년에 아직도 육품이라 / 參秩五年仍六品
쇠잔한 시골살이 하루가 삼년 같네 / 殘鄕一日適三期
합하께서 깨끗한 절개를 채택하신다면 / 鈞軒若採氷淸節
교대를 어찌 임기까지 기다리겠소 / 瓜代何須要及期
이듬해 기거주(起居注)로 부름을 받았다.
○고을을 떠나면서 시를 지어 전송객에게 보이다
태수가 처음 올 때엔 / 太守初來時
부로들이 도로를 메웠고 / 父老夾道邊
그 사이 부녀자들도 / 其間婦與女
머리 나란히하여 울타리에서 엿보았네 / 騈首窺蘺偏
내 모양을 보려는 것이 아니라 / 非欲苟觀貌
은혜를 얻고자 원함이었지 / 庶幾沐恩憐
이 고을 와서 만약 혹독히 하였다면 / 到郡若酷暴
그 눈을 씻고자 하였으리라 / 其眼願洗湔
내 생각건대 아무 일도 한 것 없어 / 我今理無狀
떠나려 하니 와전(瓦全)이 두렵네 / 欲去畏懷甎
어찌하여 길을 가로막는고 / 胡爲尙遮擁
가는 수레 앞에 누우려는 듯 / 似欲臥轍前
잘 가리니 멀리 따라오지 말라 / 好去莫遠來
내 행차 닫는 냇물처럼 빠르네 / 我行疾奔川
너의 고을이 나를 괴롭게 하여 / 爾邑誠困我
두 해가 백 년 같구려 / 二年如百年
▣동국이상국전집 제16권
◯친구 집 술자리에서 기생에게 줌
외로운 신하 마음 오랫동안 삭막하더니 / 久作孤臣心已灰
명기를 만나매 눈이 활짝 뜨이네 / 忽逢名妓眼方開
아리따운 복사꽃 일찍 서로 아는 사이요 / 桃花髣髴曾相識
유랑이 가버린 후 심은 것 아니로다 / 不是劉郞去後栽
○더위에 고생함 2수
찌는 더위 불보다 매서워 / 酷熱甚於火
일천 화로에 숯불 이글거리듯하네 / 千爐扇炭紅
풍이도 더위먹어 죽으리니 / 馮夷應暍死
불이 수정궁에 미치리라 / 燒及水精宮
누워서는 벌떡 일어나려 하고 / 臥欲起奮飛
일어나서는 다시 벗고 누우려 하네 / 起思還裸臥
시루 속에서 찜을 누가 가엾이 여겨 / 誰憐甑底蒸
물 속에 옮겨 주려나 / 移向水中坐
○쥐를 놓아 줌
사람은 천생의 물건을 훔치는데 / 人盜天生物
너는 사람의 훔친 것을 훔치는구나 / 爾盜人所盜
다같이 먹기 위해 하는 일이니 / 均爲口腹謀
어찌 너만 나무라랴 / 何獨於汝討
○동백꽃
복사꽃 오얏꽃이 비록 아름다워도 / 桃李雖夭夭
부화한 꽃 믿을 수 없도다 / 浮花難可恃
송백은 아리따운 맵시 없지만 / 松栢無嬌顔
추위를 견디기에 귀히 여기네 / 所貴耐寒耳
이 나무에 좋은 꽃 있어 / 此木有好花
눈 속에서도 잘 피도다 / 亦能開雪裏
가만히 생각하매 잣나무보다 나으니 / 細思勝於柏天工獨何妙
동백의 이름 옳지 않도다 / 冬柏名非是
○앵두
하늘의 솜씨 어찌 그리 기묘하뇨 / 天工獨何妙
시고 단맛 알맞게 만들었도다 / 調味適酸甘
한갓 탄환처럼 둥글게 생겨 / 徒爾圓如彈
뭇새의 쪼아댐을 막지 못하는도다 / 難防衆鳥含
▣동국이상국전집 제17권
◯취가행(醉歌行)
하늘이 내게 술 못 마시게 할 양이면 / 天若使我不飮酒
아예 꽃과 버들 피어나게 하질 말아야지 / 不如不放花與柳
꽃 버들이 아리따운 이때 어이 안 마시리 / 花柳芳時能不飮
봄은 나를 저버릴망정 나는 그리 못하리 / 春寧負我我不負
잔 잡고 봄 즐기니 봄 또한 좋아라 / 把酒賞春春更好
취하여 손을 휘두르며 동풍에 춤추네 / 起舞東風醉揮手
꽃 또한 웃는 얼굴로 아양 떨고 / 花亦爲之媚笑顔
버들 또한 찌푸린 눈썹 펴는구나 / 柳亦爲之展眉皺
꽃ㆍ버들 구경하여 큰 소리로 노래부르니 / 看花翫柳且高歌
백년 덧없는 인생 내 것이 아니로세 / 百歲浮生非我有
그대는 보지 못하는가 천금을 뿌리지 않고 어디에 쓰려고 / 君不見千金不散將何用
남을 위해 쥐고서 펼 줄 모르는 어리석은 자들을 / 癡人口爲他人守
○자신을 꾸짖음 ※분한 일이 있어 지었다.
세 번이나 간원에 들어갔어도 한 마디 말도 없었지만 / 三入諫坦無一語
말하려면 혀 있으니 누가 막으랴 / 得言舌在誰鉗錮
붓에 먹물 찍어 왕의 글 초하기 십육 년에 / 沘毫草制十六禩
생각이 말라 헛되이 스스로 괴롭구려 / 思涸心枯空自苦
청산에 길 있어 너를 막지 않는데 / 靑山有路不汝遮
어찌 돌아와서 일찍 자리잡지 않았는가 / 胡不歸休早爲所
사람들은 더러 망령되이 재상되리라 기대하지만 / 人或妄以台輔期
이는 다만 속이는 말이니 취하지 말라 / 此特誑言愼勿取
○고부 태수가 기녀(妓女)와 미주(美酒)ㆍ산 꿩[生雉]을 보내오고 겸하여 시 두 수를 보내왔으므로 차운하여 사례함
주량은 비록 그대처럼 크지 못하지만 / 飮膓雖愧與君饒
술 즐기며 속소의 가는 허리를 탐하네 / 嗜酒仍貪束素腰
유독 동년만이 나의 뜻을 알아 / 獨有同年知我意
한 병 술과 옥 같은 미인을 보냈도다 / 一壺兼送玉人嬌
○더위를 괴로워하며
무더위에 불 같은 수심이 겹쳐서 / 酷熱與愁火
서로 장부(臟腑) 속을 삶는구나 / 相煎心腑中
온몸엔 붉은 땀띠가 일어나고 / 渾身起赤纇
곤하여 난간에 바람 쐬며 누웠도다 / 困臥一軒風
바람이 불어도 무덥고 / 風來亦炎然
불에 부채질하듯 덥구나 / 如扇火爞爞
목말라 물 한 잔 마시니 / 渴飮一杯水
물 또한 끓는 물 같구나 / 水亦與湯同
구역질이 나서 감히 마시지 못하는데 / 嘔出不敢吸
가벼운 천식이 목구멍을 막는구나 / 喘氣塡喉嚨
잠들어 잠시 잊고자 하니 / 欲寐暫忘却
또 모기가 덤벼드네 / 又被蚊虻攻
어찌하여 귀양살이 땅에서 / 如何流謫地
이 백 가지 고통을 당하는고 / 遭此百端凶
죽는 것 또한 두렵지 않다마는 / 死亦非所懼
하늘은 어찌하여 나를 궁하게 하는가 / 天胡令我窮
▣동국이상국전집 제18권
◯최 상국(崔相國) ※지금의 진양후(晉陽侯)에게 올림
내가 어제 상국의 큰 은혜를 입어 양부(兩府)가 한데 모이는 자리에 참여하였고 이어 반서 정대(斑犀鞓帶) 한 벌을 받았는데, 상국은 나로 하여금 이를 허리에 띠게 하고는 친히 관람하시어 마르고 파리한 몸에 광채가 난만히 났으니 참으로 분외의 영광이었습니다. 또한 내가 식량이 떨어진 지 오래였는데 겸하여 별도로 월봉(月俸)을 나누어 주어 거의 죽게 된 생명을 구해 주었습니다. 물러나와 그 두터운 은혜를 생각하니 감사함을 견디지 못하겠기에 삼가 변변찮은 시 2수를 지어 만분의 일이라도 감사의 뜻을 표하는 바입니다.
삼공과 더불어 화려한 자리에 참여하고 / 三公聯席預華筵
문서까지 받자오니 값이 일만 냥일세 / 更別文犀直萬錢
막 떠오르는 해에 견주어도 광채 더욱 찬란하고 / 較日初生光更爛
금방 불린 금보다도 빛깔 한결 고와라 / 譬金方鍊色逾鮮
처음에는 어정거리는 게다리인가 했더니 / 初疑蟹脚徘徊去
도리어 머뭇거리는 거북이 발굽 같구나 / 還認龜跟躑躅旋
다만 미관이 함부로 이것을 띠었다고 / 但恐微官輕帶着
시끄럽게 남의 비방 받을까 두렵네 / 却招外謗忽喧傳
마을에선 경사 났다고 아침부터 다투어 하례하며 / 榮生里巷朝爭賀
처자에게 자랑하느라 밤잠도 못 잤다오 / 誇向妻兒夜未眠
한 잔 술로 천 년 장수를 비올진대 / 一斛千年如祝壽
열 잔이니 천 년을 열 번이나 누리시길 / 凡於十斛十千年
※이상은 띠를 준 데 대해 사례한 것이다.
삼품 벼슬아치 많기도 하지만 / 官爲三品許多人
가난하고 궁하기로는 이몸뿐이리 / 世上寒窮獨此身
굶주린 종은 배가 고파 집을 못 짓고 / 餓僕長嚬慵作屋
처음 도성을 옮길 적에 남들은 모두 집을 지었으나 나만 짓지 못하였다.
파리한 말이 쓰러지자 땔나무 떨어졌네 / 羸蹄忽斃絶供薪
집안에서 술을 못 빚어 병에는 술이 없고 / 一家罷釀甁無酒
수일 동안 불을 못 지펴 솥에는 먼지만 끼었었네 / 數日停炊甑有塵
정승이 이처럼 돌볼 줄 어찌 뜻이나 하였으랴 / 豈意鈞階垂睠顧
특별히 월봉(月俸) 내려 굶주림 위로하였네 / 別頒月俸慰飢貧
구슬 같은 쌀이 여기저기 쌓여지니 / 舂珠狼藉來相積
감격의 눈물 아무리 닦아도 다시 흐르네 / 感淚滂沱拭更新
한 섬 쌀로 천 년 장수를 비올진대 / 一斛千春如祝壽
열 섬이면 천 년을 열 번이나 누리시길 / 凡於十斛十千春
※이상은 녹을 준 데 대해 사례한 것이다.
○돌아가는 제비
추사(秋社) 뒤 제비가 집을 떠나려고 / 社後辭巢鷰
애처로이 슬픔을 하소연하네 / 依依訴別哀
들보를 더럽혀도 내 싫지 않으니 / 汙梁吾不厭
좋이 갔다 잊지 말고 돌아와다오 / 好去莫忘迴
○말을 뉘우침
나는 본시 말 더듬거려 / 我性本訥言
거의 말 실수 없었더니 / 庶幾無口過
어제 선뜻 한다는 말 / 昨日率爾言
나 죽으면 대신할 자 그 누구리 하였네 / 我死誰代者
손이 웃고 대답하되 / 有客笑而對
그대 말 옳지 못한 듯하이 / 子語似未可
뛰어난 재주 세상에 드물거니 / 才俊世所稀
의당 대신할 이 적어 근심하려니와 / 當憂代者寡
자네도 남과 다름 없어 / 子非異於人
보익한 것 하나도 없는데 / 所益無一箇
꼭 대신할 이 보려는가 / 何必見代爲
이가(俚歌)는 화답하지 말아야 / 俚唱宜無和
그 말 비록 꼬집은 것 같지만 / 其言雖似訐
뜻은 크게 어긋나지 않기로 / 其意未大左
내 지난번 실언을 뉘우치고 / 我悔前言失
일어나 절하고 두세 번 사과했네 / 起拜再三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