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전

번암집(채제공)

청담(靑潭) 2019. 2. 9. 23:56



번암집 [樊巖集]

채제공 (蔡濟恭 1720-1799)

생애

1735년(영조 11) 15세로 향시에 급제한 뒤 1743년 문과정시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권지부정자에 임명되면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1748년 한림회권(翰林會圈) 때 영조의 탕평을 표방한 특명으로 선발되어 청요직인 예문관사관직을 거쳤다. 1751년에는 중인(中人)의 무덤이 있는 산을 탈취했다 하여 1년 이상 삼척에 유배되었다.

1753년에 충청도암행어사로 균역법의 실시과정상의 폐단과 변방대비 문제를 진언하였다. 1755년 나주 괘서사건이 일어나자 문사랑(問事郎)으로 활약했고, 그 공로로 승정원동부승지(정3품)가 제수되었다. 이후 이천도호부사·대사간(정3품)을 거쳤고, 『열성지장(列聖誌狀)』 편찬에 참여한 공로로 1758년에 도승지(정3품)로 임명되었다.

이 해 사도세자와 영조의 사이가 악화되어 세자 폐위의 비망기가 내려지자 죽음을 무릅쓰고 막아 이를 철회시켰는데, 이 사건으로 하여 후일 영조는 채제공을 지적하여 “진실로 나의 사심 없는 신하이고 너의 충신이다.”라고 정조에게 말했다 한다.

이후 대사간·대사헌(종2품)·경기감사(종2품)를 역임하던 중 1762년 모친상으로 관직을 물러나자, 이 해 윤5월에 사도세자의 죽음이 있었다. 복상 후 1764년부터 개성유수(종2품)·예문관제학(종2품)·비변사당상을 거쳐 안악군수로 재임 중 부친상을 당하여 다시 관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1767년부터 홍문관제학(종2품)·함경도관찰사(종2품)·한성판윤(정2품)을, 1770년부터는 병조·예조·호조판서(정2품)를 역임하고, 1772년 이후 세손우빈객·공시당상(貢市堂上)이 되었다. 1775년 평안도관찰사 재임시에 서류통청(庶類通淸)은 국법의 문제가 아니므로 풍속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한 상소로 인하여 서얼출신자에게 구타당하는 사건이 생기기도 하였다.

이후 영조의 깊은 신임과 함께 약방제조로 병간호를 담당하기도 했고, 정조가 왕세손으로 대리청정한 뒤에는 호조판서·좌참찬(정2품)으로 활약하였다.

1776년 3월에 영조가 죽자 국장도감제조에 임명되어 행장·시장·어제·어필의 편찬 작업에 참여하였다. 이어 사도세자 죽음에 대한 책임자들을 처단할 때 형조판서 겸 판의금부사로서 옥사를 처결하였다.

또한 정조 특명으로 사노비(寺奴婢)의 폐를 교정하는 절목을 마련하여 정1품에 이르렀다. 이 사노비절목은 점차 사노비의 수효를 감소시켜 1801년(순조 1)의 사노비 혁파를 가능하게 하였다. 이후 규장각제학·예문관제학·한성판윤·강화유수를 역임하였다.

1780년(정조 4) 홍국영(洪國榮)의 세도가 무너지고 소론계 공신인 서명선(徐命善)을 영의정으로 하는 정권이 들어서자, 홍국영과의 친분, 사도세자의 신원에 대한 과격한 주장으로 정조 원년에 역적으로 처단된 인물들과의 연관, 그들과 동일한 흉언을 했다는 죄목으로 집중 공격을 받아 이후 8년 간 서울근교 명덕산에서 은거 생활을 하였다.

1788년 국왕의 친필로 우의정(정1품)에 특채되었고, 이 때 황극(皇極)을 세울 것, 당론을 없앨 것, 의리를 밝힐 것, 탐관오리를 징벌할 것, 백성의 어려움을 근심할 것, 권력기강을 바로잡을 것 등의 6조를 진언하였다. 이후 1790년 좌의정(정1품)으로서 행정 수반이 되었고, 3년 간에 걸치는 독상(獨相)으로서 정사를 오로지 하기도 하였다.

이 시기에 이조전랑의 자대제(自代制) 및 당하관 통청권의 혁파, 신해통공정책 등을 실시했으며, 반대파의 역공으로 진산사건(珍山事件)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1793년에 잠깐 영의정(정1품)에 임명되었을 때는, 전일의 영남만인소에서와 같이 사도세자를 위한 단호한 토역(討逆)을 주장하여 이후 노론계의 집요한 공격이 야기되기도 하였다. 그 뒤는 주로 수원성역을 담당하다가 1798년 사직하였다.


활동사항

문장은 소(疏)와 차(箚)에 능했고, 시풍은 위로는 이민구(李敏求)·허목(許穆), 아래로는 정약용(丁若鏞)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또한, 학문의 적통(嫡統)은 동방의 주자인 이황(李滉)에게 시작하여 정구(鄭逑)와 허목을 거쳐 이익(李瀷)으로 이어진다고 하면서 정통 성리학의 견해를 유지하였다.

때문에 양명학·불교·도교·민간신앙 등을 이단이라고 비판하였다. 그러나 이들 사상도 수기치인(修己治人)의 측면에서 선용할 수 있다면 포용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천주교[西學]에 대해서도 패륜과 신이적 요소를 지닌 불교의 별파로서, 이적(夷狄)인 청나라 문화의 말단적인 영향이라고 인식하였다. 그러나 서학을 믿는 자에 대하여 역적으로 다스리라는 요구를 당론이라 배척하고, 정조의 뜻을 받들어 척사(斥邪)를 내세우면서도 교화우선 원칙을 적용하려 하였다.

자신의 시대를 경장이 필요한 시기로 생각했으나, 제도 개혁보다는 운영의 개선을 강조, 중간수탈 제거, 부가세 폐단의 제거들을 추진하고 간리(奸吏)의 작폐를 없앰으로써 국가재정 부족을 타개하는 것을 급선무로 생각하였다.

상업 활동이 국가 재정에 필요함을 인식했으나 전통적인 농업우선 정책을 지켰다. 또한, 사회의 안정을 위해서는 사족(士族) 우위의 신분질서와 적서(嫡庶)의 구별을 엄격한 의리로서 지켜야 한다고 하였다.

저서로 『번암집』 59권이 전하는데, 권두에 정조의 친필어찰 및 교지를 수록하였다. 그는 『경종내수실록』과 『영조실록』·『국조보감』 편찬 작업에도 참여하였다. 번암집은 1791년에 편찬되었다.


상훈과 추모

1799년 1월 18일에 사망, 3월 26일에 사림장(士林葬)으로 장례가 거행되었고, 묘는 경기도 용인에 있다. 1801년 황사영백서사건(黃嗣永帛書事件)으로 추탈관작되었다가 1823년 영남만인소로 관작이 회복되었다. 시호는 문숙(文肅)이다.


▣어제시(御製詩)

■임금이 번암시문고에 쓰다.

호걸스러운 기상으로 써 내려간 필력 굳세니 / 傑氣驅來筆力勍

그대의 초상화를 대하고 있는 듯하네 / 七分如對畫中卿

치달리는 곳에는 거센 파도의 기세가 있고 / 奔騰處有浪濤勢

비분강개한 때에는 비장한 내용이 많도다 / 慷慨時多燕趙聲

북극의 풍운은 만년의 계합(契合)에 빛나고 / 北極風雲昭晩契

창강의 갈매기와는 예전 맹약으로 미루었네 / 滄江鷗鷺屬前盟

호주 이후로 모범이 남아 있어 / 湖洲以後模楷在

다시 동산이 낙생영을 읊는 것이 기쁘구나 / 更熹東山詠洛生

신해년(1791, 정조15) 봄


번암집 권수 상

■한성부 판윤에 제수할 때 내린 비망기

◯하교하기를,

“지중추부사 채제공에게 한성부 판윤을 제수한다. 지금 서울에 장차 빈호(貧戶)를 뽑는 정사가 있을 것이므로 적임자를 가려 뽑아서 맡기지 않아서는 안 된다. 중신(重臣)의 처지에서 보면 특명으로 임무를 부여받은 것과 다름이 없으니, 즉시 패초(牌招)하여 공무를 행하라고 신칙(申飭)하라.”

하였다.

■평안 병사로 부임할 때 정원에 내린 유지

하교하기를,

“조정에는 기강보다 엄한 것이 없고 병사의 직임은 사체가 중대하며 더욱이 군율(軍律)과 관계되니, 요즈음 조정의 상황으로 미루어 보면 반증(反證)할 수가 있을 것이다. 병영(兵營)에 도착했을 때 지방 고을에서 체모나 예절 등의 일을 회피하는 경우가 있으면, 시종신(侍從臣) 이외에 문관(文官) 수령이나 음관(蔭官) 수령을 막론하고 죄과를 범한 자는 해당 수신(帥臣)이 우선 영문에 잡아와서 곤장을 치게 하라. 이는 기강을 보존하고 군율을 중시하는 뜻이다. 우선 이러한 뜻으로 평안 병사에게 하유하고, 열읍(列邑)을 신칙하여 범하지 말게 하라. 이와 같이 하교한 뒤에 조금이라도 문란한 일이 있으면 수령에게는 기율로써 등급을 더하여 처벌할 것이니, 이로써 일체 엄히 신칙하라.”

하였다.


▣번암집 권수 하

■재상에 임명하는 비망기 무신년(1788, 정조12)

하교하기를,

“지금 어필로 경에게 정승 직책을 제수한 것이 어찌 내가 경을 사사로이 좋아하여 한 일이겠는가. 평소에 말이 충성스럽고 행실이 독실하였으니 정승에 제수한 것이 또한 늦었다고 하겠다. 경은 나의 간절히 기다리는 뜻을 헤아려 오늘 바로 숙배하여 덕이 없고 사리에 어두운 나를 보필하여 널리 시사(時事)를 구제하라.”

하였다. 이어 전교하기를,

“이 돈유(敦諭)를 승지를 보내서 새로 임명한 우의정에게 전유(傳諭)하게 하라.”

하였다.

■파직하는 비망기〔罷職備忘記〕 차자를 올려, 강화 유수(江華留守)를 상경하여 교귀(交龜)하지 말도록 하고, 강화 경력(江華經歷)을 내직으로 옮기지 말라고 청하였다.

하교하기를,

“대신은 내가 공경하고 예우해야 할 대상이지만 ‘임금을 섬기는 데 예를 다하는 것을 사람들은 아첨한다고 한다.’라고 성인이 말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지금의 대신은 ‘아첨하는 것’에서 지나치게 멀어져 도리어 예를 다하지 않아 억측하는 말이 차자에까지 올랐다. 자기보다 낮은 사람에게도 드러나지 않고 일어나지 않은 일을 억지로 가져다 붙이면 서로 공경하는 도리가 손상되는 법인데, 더구나 임금과 재상 사이이겠는가. 대신이 이처럼 본분을 다하지 않으니 내가 또 어찌 뜻을 굽혀 공경하고 예우할 필요가 있겠는가. 지금 기강이 해이해져 백관을 감독하고 통솔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을 가리지 않는 잘못이 있으니, 이러한데도 주저한다면 후일의 폐단을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좌의정 채제공을 파직하라.”

하였다.

■영의정에 특별히 제수하며 내린 돈유

영의정 채제공에게 돈유하기를,

재상으로 뽑힌 사람이 모두 303인이었으나 영의정에 오른 자는 경까지 합하여 대략 100여 명이다. 대저 보상(輔相)이 중임이나 영의정은 더욱더 중요한 자리이므로 적임자를 찾기 어려워 자리를 채우지 못한 때가 있었던 것은 예로부터 이미 그러하였다. 더구나 지금은 옛날보다 갑절은 더 인재를 얻기 어려우니, 내가 어찌 자세히 살피고 신중히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가 경을 유심히 살펴본 지 여러 해이고, 화성(華城)은 바로 선침(仙寢)을 모신 곳이다. 수원부로 승격한 초기에 원로를 얻어 그 중망을 빌리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경을 한번 나가게 하였다. 경이 임명된 이래로 큰 강령을 정리하고 자잘한 일들도 두루 살펴 밤낮으로 부지런히 하였으니, 도리어 그 때문에 경을 염려하는 마음이 간절하였다. 그때 마침 경이 올린 축성 방략(築城方略)을 보고 더욱더 노상(老相)이 정신을 쏟은 것에 감동하였다. ‘100리 길을 가는 사람은 90리를 절반이라고 말하지 말라.’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바로 시작이 반이라는 뜻이다. 이미 이렇게 일을 시작하였으니 그것을 이루는 공은 바로 오직 감독을 부지런히 하는 데에 달려 있다. 또 어찌 반드시 근력을 쓰는 일에까지 거듭 수고할 것이 있겠는가. 경에게 영의정의 직임을 제수하고 이제 사관을 보내어 속히 돌아오도록 권면하는 바이니, 경은 모쪼록 당일로 길에 올라 도성 밖에 와서 신임 유수와 임무를 교대한 뒤에 숙배하라.”

하였다

■죽음을 애도하여 내린 전교〔隱卒傳敎〕

하교하기를,

“백성을 근심하는 일념으로 밤중부터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때에 세상을 떠났다는 보고를 들었으니, 진실로 이 사람이 어찌 이 지경에 이르렀단 말인가. 이 대신에 대해서 나는 실로 남들은 알지 못하고 혼자만이 아는, 깊이 투합되는 점이 있다. 이 대신은 세상에 드문 인물이다. 타고난 품성이 걸출하게 기력(氣力)이 있어 일을 만나면 곧장 앞으로 나아가고 두려워하지도 굽히지도 않았으며, 포부를 시(詩)로 표현한 것이 비장하고 강개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연(燕)나라와 조(趙)나라의 유풍(遺風)이 있다고 하였다. 젊은 나이에 벼슬을 시작하여 선왕께 인정을 받아 전곡(錢穀)을 관할하고 군대를 관장하였으며, 임금의 글을 윤색하고 약원(藥院)의 직임에 정성을 다하였다. 그리하여 주대(奏對) 때마다 선왕의 웃음이 새로웠는데 그때는 아직 수염이 세지 않았었다.

내가 즉위한 이후로 그를 비난하는 말이 비등하였으나 뛰어난 재능을 꺾지는 못하였으니, 이에 위태로운 처지의 그를 발탁하여 재상의 지위에 올려놓았다. 내각을 거쳐서 기로사에 들어가 나이가 80에 이르렀기에 구장(鳩杖)을 하사하려고 하였다. 그 지위가 높고 임금을 가까이서 보필하는 직임에 있었으며, 내가 돌보아 주는 성의가 두텁고 내린 은총이 성대하여 한 시대의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입을 열지 못하고 기가 죽게 하였다. 그러니 임금의 신임을 독차지했다고 할 수 있고, 옛날에도 들어 보기 어려웠던 일이다. 50여 년 동안 조정에서 벼슬하면서 지켜 온 굳은 의리는 더욱이 탄복할 만하였는데, 이제는 모두 끝났도다.

세상을 떠난 판중추부사 채제공의 집에서 거행하는 모든 일은 규례를 살펴서 하겠지만, 승지가 치조(致弔)하는 일은 홍 영부사(洪領府事 홍낙성(洪樂性))의 예에 따르고, 내각의 속관(屬官)을 보내어 상주를 위로하는 일과 호상(護喪) 등의 절차는 각신과 대신의 전례에 따라서 하라. 성복일(成服日)의 치제는 승지가 맡아서 거행하겠지만, 내각의 치제는 또한 김 봉조하(金奉朝賀 김종수(金鍾秀))의 예에 따라 제문을 지어 내리기를 기다려서 각신을 보내도록 하라. 녹봉을 3년간 지급하고, 장례 전에 시호를 의논하라고 분부하라.”

하였다.

■번암 상공은 뜯어보라 무오년(1798, 정조22)

만천명월주인(萬川明月主人)은 쓴다.

옛날의 역사를 두루 보건대 귀하면서 장수한 사람은 드물었으니, 나이가 많더라도 지위는 구명(九命)에 이르지 못한 자가 많았다. 고관대작의 영화를 누리면서 장수를 누린 사람으로는 송(宋)나라의 장사손(張士遜), 진요좌(陳堯佐), 문언박(文彥博), 조변(趙抃), 장승(張昇), 두연(杜衍), 부필(富弼) 등 몇몇 사람뿐이다. 지금 경은 벼슬에 오른 지 60년이 되었고, 지위가 원보(元輔)에 이르렀다. 장차 조정에서도 지팡이를 짚을 수 있는 나이인데 백발에 홍안(紅顔)으로 궁궐을 출입하면서 부축을 받지 않고 다니고, 눈이 밝아서 말의 털색을 구분하며, 기운은 소를 삼키는 것보다 웅대하니, 어쩌면 그리도 건강하신가. 송나라의 여러 공(公)이 이와 같았는지 모르겠다. 이에 변변찮은 물품을 보내 측백나무가 기뻐하는 뜻을 담았으니, 시속에서 말하는 세찬(歲饌)이라는 것이 이것이다. 올해부터 시작하여 100세를 기약하고 해마다 영구히 나이를 기념하여 세시의 예를 표하고, 이어 경의 기거(起居)를 위문할 것이다.


▣번암집 제1권

■화성을 축조하는 공사가 마무리되고.

십 리 멀리 보이는 드높은 성곽 / 峩峩照十里

새하얀 성가퀴가 음기 밀쳐 내 / 粉堞掃霏陰

우뚝 선 높은 산들 그림 같은데 / 刻畫高山立

성곽 안에 일만 집 껴안고 있네 / 包含萬屋深

하늘이 힘을 도와 이루었거니 / 皇天力陶冶

동국에 금성탕지 처음이로세 / 東國始湯金

내일 있을 행궁의 연회석에는 / 明日行宮宴

옥녀의 거문고가 울려 퍼지리 / 招招玉女琴

■동장대에서 추석 달구경을 하며〔東將臺中秋玩月〕

조물주가 달 보내 그 재주 과시한 듯 / 天公送月似相誇

아홉 점 뿌연 연기 감히 세상 가릴쏘냐 / 九點微烟不敢遮

원수의 누대 앞이 유별나게 환하고 / 元帥樓前偏晃朗

군왕께서 거둥한 곳 광채 가장 빛나네 / 君王行處最光華

한 백 년 좋은 경관 추석 밤이 차지하고 / 百年始管中秋勝

천하에 좋은 고장 이만한 곳 없어라 / 四海無如此地佳

밤에 찧은 향도에 새 술이 마침 익어 / 香稻夜舂新酒熟

태평 시대 노랫가락 집집마다 울리네 / 太平歌曲滿千家

하교를 받들어 삼가 임금의 시를 첨부하다〔奉敎敬附宸章〕

붉은 망루 흰 성벽 의기를 과시하니 / 畫櫓粉城意氣誇

이곳에 오색구름 언제나 덮여 있네 / 此中常見五雲遮

우뚝 솟은 높은 누각 가을빛과 겨루고 / 高樓直聳爭秋色

모두 밝은 온갖 형상 달빛에 떠 있구나 / 萬象俱明泛月華

경물은 유다르게 오늘 밤이 더 좋고 / 景物偏從今夜好

산천은 본디부터 사계절이 아름답다 / 山川元有四時佳

뜨락 솔 더디더디 크는 것도 무방하니 / 庭松不妨遲遲長

상국 집에 둥근달 길이길이 매어 둘까 / 長繫淸輪相國家


▣번암집 제2권

■이튿날 아침 기로소의 여러 신하가 창경궁 연생문 안으로 나아가 사은하는 전문(箋文)을 올리자, 상께서 악차에 납시어 친히 받은 뒤에 궁중 술을 하사하였다. 원자는 오른편에 단정히 앉아 자세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는데, 나이가 이제 겨우 네 살이었다. 신이 상의 명을 받들어 원자 앞으로 나아가 문안하니 맑은 목소리로 “경은 평안하시오?”라고 하고, 이어 누런 가의(加衣)의 새 책력을 친히 건네주므로 신이 꿇어앉아 받았다. 너무도 기쁜 마음을 가누지 못해 또 감히 이 마음을 시로 드러내 원자의 복을 기원하는 충정을 부쳤다.

일월이라 임금 곁 장막 높이 열리자 / 寶幄高開日月傍

앞에 나간 노인들 기풍이 의젓하고 / 趨前霜髮解蹌蹌

유신이 꿇어앉아 전문을 낭독하니 / 箋文緩讀儒臣跪

기쁨 어린 용안으로 한참 동안 담소했네 / 帶喜天顔笑語長

두 번째〔其二〕

네 살배기 원자가 단정히 앉았는데 / 四齡元子坐能端

태양 같은 그 자태 두 번을 보았다네 / 如日英姿再度觀

이 몸 노신 반열의 앞자리에 있다 하여 / 爲是老臣班忝首

또렷한 목소리로 평안한가 물으셨네 / 玉音明白問平安

세 번째〔其三〕

누런 무늬 가의에 붉은 실로 묶은 책 / 黃染紋衣紅染絲

일월성신 운행이 이 속에 담긴 것을 / 星辰日月卷中垂

연석에서 옥수로 정성스레 주셨는데 / 當筵玉手慇懃授

못난 자질 무슨 수로 사계절 순응할꼬 / 朽質何由順四時

네 번째〔其四〕

생사보다 새하얀 열 장의 종이에다 / 雲孫十葉白於絲

귀한 음식 싸 가지고 궁궐을 내려오자 / 裹得珍羞下玉墀

가족이 웃으면서 얼굴 변했다 말하니 / 家人笑道衰顔改

내가 과연 궁중 술 몇 잔이나 들이켰나 / 倒盡黃封第幾巵

■노인전〔老人錢〕

퇴청하여 집에 돌아왔는데 내각의 하리(下吏)가 꾸러미 하나를 가져와 전해 주면서 이 속에 들어 있는 것은 돈이라고 하였다. 매끄러운 기름종이로 싸였고 그 모양은 베개와 같았다. 앞쪽에는 ‘노인전(老人錢)’이라 쓰였고 뒤쪽에는 ‘이십냥(二十兩)’이라 쓰였는데, 모두 원자의 자필이었다. 하리가 상의 전교를 받들어 유시하기를 “원자(순조)가 경에게 돈을 주고 싶어 하면서 하는 말이 ‘열 냥도 말고 또 백 냥도 말며 반드시 스무 냥으로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하기에, 그 말대로 보내오.”라고 하였다. 또 원자의 영(令)으로 유시하기를 “이것으로 의복을 만들어 입고 음식을 준비해 드시오.”라고 하였다. 이 노인이 절을 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마음속으로 말하기를 ‘원자가 지금 다섯 살인데 이 노인이 누구인지 어떻게 알고서 이처럼 특별하게 돌봐 준단 말인가. 더구나 열 냥도 아니고 백 냥도 아니며 반드시 스무 냥을 줘야 한다고 말한 이유가 그 절반으로 의복을 해 입고 나머지 절반으로는 음식을 마련해 먹게 하자는 것이었다. 이 노인이 천지의 은혜에 감격한 것은 우선 제쳐 두고, 원자의 생각과 헤아리는 지혜가 이미 이러하니 하늘이 내놓은 인물이 아니고서야 이럴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삼가 이 사실을 글로 써서 뒷사람으로 하여금 책에서도 보기 드문 일이라는 것과 이 노인이 받은 대우가 극진했다는 것을 알도록 하였다.

임금 섬기는 노인은 늙었다고 말 않는데 / 老夫事君不稱老

원자께서 노인 호칭 나에게 주셨으니 / 元子錫以老人號

거룩해라 우리 원자 이제 나이 오 세건만 / 猗我元子今五歲

타고나신 지능으로 호오 능히 분간했네 / 良知已能分惡好

궁궐 하인 왕명으로 나를 오라 이르고 / 禁隷將命謂我來

통화문 그 안으로 각신이 인도하니 / 通化門內閣臣導

촌사람 미나리 바친 정성에 뒤질쏘냐 / 至誠寧讓野人芹

앞에 나가 웃으며 안기생 화조 올렸고 / 前席笑獻安期棗

이 노인이 당조(唐棗) 몇 개를 소매에 넣고 가서 원자에게 올리며 “이것은 안기생이 먹던 화조입니다. 이것을 먹으면 수명이 천만년까지 늘어날 수 있답니다.”라고 하니, 원자가 웃음을 머금고 그것을 먹었다.

원자 주신 물건들 어쩜 그리 특이한지 / 所授維何物物異

하나 그게 보배이랴 친히 주어 보배로세 / 匪汝爲寶手賜寶

이윽고 붓 휘둘러 철사처럼 굳센 필획 / 有頃揮毫鐵作畫

광대한 은하수가 하늘 길게 뻗은 듯 / 銀漢倬彼垂穹昊

노인 일어나 절하고 원자도 절한 뒤에 / 老人起拜元子拜

두 손으로 받들어 품속에 껴안고서 / 手中雙擎懷中抱

돌아오니 별난 기운 집 안에 가득하여 / 歸來異氣充室屋

관원이며 하인들 너도나도 놀랐다네 / 驚動簪紳與隷皁

홀연 보니 문밖에 내각 하리 하나가 / 忽見門有內閣人

꾸러미 하나 들고서 가뿐가뿐 왔는데 / 手提一封翩翩到

노인 쓸 돈 스무 냥을 / 老人錢二十兩

앞쪽과 뒤쪽에서 분명히 알 수 있고 / 前面後面班班考

자획 모양 원자의 자필임을 알겠는데 / 字畫認從元子出

꺾인 획 생동하여 자연으로 이뤄졌네 / 生動屈折如天造

게다가 이것으로 의복을 지어 입고 / 若曰持玆作衣服

나머지론 음식을 즐겁게 먹으라니 / 餘者須爲飮食樂

이런 일은 옛날에 일찍이 없었기에 / 此事前代所未有

그 은혜 갚으려도 한량이 없고말고 / 欲報之恩無終極

노인전 노인전아 스무 냥 노인전아 / 老人錢老人錢

이 동전 늘어나서 이천 닢이 되어 주고 / 其葉爲二千

그런 뒤에 닢닢이 셈대가 되어 다오 / 願言葉葉各成籌

그러면 셈대 하나 일 년으로 헤아리고 / 每拈一籌計一年

이 셈대로 우리 원자 천만년 장수 빌어 / 以此籌我元子壽千萬

아침 해와 상현달 그 빛처럼 끝없으리 / 日升月恒光無邊

■단오에 혜경궁께서 절삽 세 자루를 하사했는데, 이는 신이 화성 정리사 직책을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은전에 감격한 마음을 기술하였다.

어향 스민 부채에 먹물 아직 축축한데 / 新題墨濕御香籠

순전 훈풍 안고서 오월에 내려왔네 / 五月分來舜殿風

신의 몸 외신이라 관계 서로 멀거늘 / 臣是外臣疎且逖

특별한 은전 어이해 자궁에서 내려왔나 / 異恩何得降慈宮


▣번암집 제3권

■모래언덕에 배를 정박하다〔宿帆沙岸〕

자는 백로 서로 몸을 부딪치는데 / 宿鷺暗相觸

저쪽 물가 나루에 배를 매노라 / 繫舟于彼津

강물 위엔 은하수가 길게 떠 있고 / 星河長在水

바람 이슬 두건에 가득하구나 / 風露浩盈巾

사방에 마을 하나 보이지 않아 / 四渚無村火

물가에서 뱃사공과 밤을 보내네 / 中洲親榜人

서늘한 봉창에서 바라보자니 / 淸泠篷底望

천지의 기운 온통 신비하여라 / 天地氣全神

파곡(용산구 청파동) 팔경〔坡谷八景〕

도성의 남쪽 들에 농부의 집 있는데 / 禁城南畔野人家

닭 횃대와 돼지우리 옆에는 벼가 팼네 / 豚柵鷄塒傍稻花

가을에 일꾼들이 별빛 아래 밥 먹으니 / 秋至命徒星照飯

번화가와 먼 이곳에 도리어 일이 많네 / 市朝聲外事還多

석우촌(石隅村 : 숭례문 밖 3리 지점 마을)의 가을 농사

붉은 기운 뿌연 연무 만 버들을 재촉하고 / 紫氣朧煙萬柳催

흐드러진 살구꽃이 발에 가득 비치도다 / 杏花相暎滿簾來

말안장이 황금 실을 스쳐서 흩뜨리니 / 銀鞍觸散黃金縷

백마가 장대 향해 돌아갈까 두렵구나 / 生怕章臺白馬廻

주교(舟橋)의 봄버들

맑은 냇물 사립문 옆에 졸졸 흐르는데 / 淸谿恣意到窓扉

처마에는 낙조 들고 비가 살짝 내리도다 / 返照生簷雨點稀

아름다운 단청이 나무 끝을 물들인 뒤 / 分外丹靑高樹杪

남은 노을 사라지고 봄 가랑비 그치누나 / 殘霞零落斂春霏

청계(淸谿)의 낙조

산허리엔 점점이 가옥들이 붙어 있고 / 半腹人家點點縈

엉킨 솔의 푸른빛이 긴 들판에 가득하네 / 亂松流翠滿脩坰

맑게 갠 밤하늘에 초승달이 떠오르면 / 每廻身著虛明裏

작은 집의 격자창이 성근 달빛 받곤 하네 / 小屋疎疎受月欞

임당(林堂)의 초승달

풍경 소리 은은하고 은하수는 기우는데 / 淸磬縈颸白漢傾

임금님이 한밤중에 정성 다해 재계하네 / 君王精意起嚴更

향로 연기 피어나는 재단은 고요하고 / 香煙一縷齋壇靜

밤사이 달빛 받아 채색 깃발 촉촉하네 / 帶宿金波浥彩旌

교단(郊壇)의 친사(親祀)

거위 황새 나는 소리 군진이 펼쳐지니 / 鵝鸛飛聲陣色橫

노량의 아침 해에 깃발 색이 선명하네 / 鷺梁朝日萬旗明

나에게도 손무와 오기의 전 있으니 / 書生亦有孫吳傳

비 오는 밤 등불 아래 읽는다고 웃지 말라 / 莫笑虛窓夜雨檠

노량진(鷺梁津)의 사조(私操)

주렴에는 서리 흔적 달은 솔에 가렸는데 / 簾著霜痕月隱松

운종가(雲從街)의 종소리는 명성을 재촉하네 / 明星催上九街鐘

누런 먼지 덮어쓰며 벼슬할 뜻 없으니 / 風衫不起金門念

꿈에 보는 요천은 몇 겹이나 되려는지 / 夢裏瑤天第幾重

금성(禁城)의 종소리

동해 물결 고요하고 햇빛이 찬란하니 / 東溟波靜日華森

허공에서 신마 우나 찾아볼 수는 없네 / 神馬嘶空不可尋

사당에서 단지 지금 꽃 피고 달 뜬 밤에 / 廟裏祇今花月夜

채색 피리 한가롭게 제사 음악 연습하네 / 彩簫閒捻太平音

관왕묘(關王廟)의 습악(習樂)

■노량을 지나면서〔鷺梁道中〕

단성 현감 부임 행차(父) 한양을 출발하니 / 丹丘五馬出長安

검은 수레 덮개 위로 달그림자 둥글도다 / 皁蓋前頭桂影團

배 밑에는 젓대 소리 듣고 놀란 물고기들 / 船底魚龍風笛動

성곽 남쪽 마을에선 새벽닭이 가끔 우네 / 郭南林巷曉鷄殘

어주(御酒)를 하사받아 눈도 찬 걸 못 깨닫고 / 身霑御醞全欺雪

햇빛이 언 강 비춰 추운 줄을 모르겠네 / 日射氷江不作寒

호서의 고향 마을 격이 달라졌으리니 / 湖外桑楡應改色

고향 집에 돌아가면 모든 사람 구경하리 / 故園歸去萬人看

■금정역〔金井驛〕

금정역에 들어가 밤을 보내며 / 夜宿金井驛

멀리서 어동의 연기 보았네 / 遙望漁洞煙

백부께서 새벽같이 찾아오시어 / 伯父曉臨止

나를 불러 긴 들길로 향하시도다 / 唱我出脩阡

금니가 넓은 물결 건너질러서 / 金泥軼廣濤

백부의 고질병을 낫게 했는지 / 使公沈痾痊

온화한 표정으로 내 손을 잡고 / 熙熙撫我手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시도다 / 失喜便茫然

말을 타고 드디어 집에 닿으니 / 騎馬到門去

아침 해가 들판에 싱그러운데 / 朝日野中鮮

따뜻한 해와 바람 얼음을 녹여 / 暄飈革殘氷

금계에는 시냇물이 졸졸 흐르네 / 錦溪鳴涓涓

피리 소리 북소리 떠들썩한 곳 / 笳鼓發新響

여기가 내가 나고 자란 땅인데 / 宛彼桑梓田

저자에 빽빽하게 모인 사람들 / 虛人幾萬叢

질서 있게 양쪽으로 줄을 지었네 / 秩秩開兩邊

가친께서 영남 고을 수령이 되고 / 家親綰嶺符

계수 가지 꽂은 아들 앞에 섰으니 / 簪桂兒在前

구경꾼은 발꿈치를 들고 보는데 / 觀者冒迥術

손님들은 하루 종일 잔치 즐기네 / 衆賓竟長筵

사당에선 슬픔과 기쁨 교차해 / 悲喜謁祠廟

경건하게 우리 조상 생각하누나 / 怵惕念吾先

조상님들 실로 인을 쌓으셨으니 / 吾先誠厚仁

급제한 게 어찌 나의 능력일쏜가 / 倖闡豈吾能

친지들이 너도나도 술을 권하고 / 親知皆送酌

왁자지껄 축하하는 말을 건네며 / 賀語紛相仍

내가 이름 떨친 것을 가상해하고 / 嘉我聲名大

내가 성은 입은 것을 부러워하네 / 豔我天恩承

성은이야 부럽지 않으랴마는 / 天恩豈不豔

내 마음은 진실로 다른 데 있네 / 我心亶在他

동쪽으로 보이는 동산 가운데 / 睠彼東園裏

교목이 울창하게 뻗어 있도다 / 喬木鬱交柯

경건히 가업을 잘 이어받아서 / 翼然好堂構

백여 년간 기틀을 다져 왔거니 / 鞏基餘百年

집안에 무엇이 있는가 하면 / 堂中何所有

천여 권에 달하는 경전이로세 / 聖經千百編

■팔량치〔八良峙〕

영호남의 경계에 우뚝 솟아 있는 고개 / 嶺銜雙界黑

당당한 승전비가 수백 년을 서 있구나 / 碑跨百年光

남쪽 땅 하늘에는 전쟁 기운 멈추었고 / 戰氣南天歇

북두성은 길이길이 도성을 비추도다 / 京華北斗長

외로운 역참 옆엔 나무들이 차갑고 / 樹寒孤驛外

멀리 연기 피는 곳엔 다듬이질 소리 나네 / 砧暝遠煙傍

시중드는 하인들 서로 얼굴 마주 보며 / 徒御相看色

고향 집이 가깝다고 기쁜 표정 짓는구나 / 敷腴近故鄕

전주로 가는 길에 비를 만나다〔全州道中遇雨〕

모래바람 쐬어 날로 얼굴이 야위는데 / 風沙日日減朱顔

푸른 나귀 비 맞으며 남쪽으로 돌아가네 / 南國靑驢帶雨還

삼례 근처 나루에 가을 물은 불어나고 / 秋水欲生參禮渡

건지산은 저녁 무렵 구름에 덮여 있네 / 暮雲遙失建支山

외기러기 날아가는 객지 길은 아득한데 / 關河客路孤鴻外

만 잎 사이 민가에선 다듬이질 소리 나네 / 砧杵人家萬葉間

옷에 먼지 남아 있게 해서는 안 되리니 / 衣上不敎留點滓

잠시 옷이 젖는 것을 누가 마다하겠는가 / 暫時沾濕好誰慳

오수역에서 자다〔宿獒樹驛〕

외로이 나귀 타고 가는 나그네 / 楚楚騎驢客

오래된 역정에서 묵게 되었네 / 因之古驛亭

밥 먹는데 빈 뜰에는 초승달 뜨고 / 庭空飯微月

누웠자니 처마 틈엔 듬성한 별빛 / 簷缺卧疎星

성스러운 시대에 급제했건만 / 聖代容攀桂

정처 없이 떠다니는 부평초 신세 / 吾行不繫萍

조용히 스스로를 돌아보는데 / 靜然聊發省

빈 물가로 목탁 치며 중이 가누나 / 僧磬度虛汀

■신혼의 이별〔新婚別〕

돌 옆에는 대나무가 푸른빛 띠고 / 靑靑石上竹

정원에는 곧게 자란 측백나무들 / 挺挺園中柏

저는 본래 명문가의 자식인 데다 / 妾本名家子

용모도 무척이나 깨끗했지요 / 容華何潔白

부모님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 偏得父母憐

어려서 부녀자의 법도 배우니 / 生少斅女則

그윽한 난초 향기 몸에 배었고 / 幽蘭緝成氣

목란을 장신구로 차곤 하였죠 / 木難佩爲飾

부끄러워 이웃집을 엿보지 않고 / 羞澁不窺隣

비단을 짜는 데만 공을 들이니 / 但事雲錦織

부모님이 다 컸다고 대견해하며 / 父母喜妾長

당신 집에 시집을 보내셨지요 / 敎妾君家入

신발 소리 나지 않게 조용히 걷고 / 從容紫絲履

앉고 서는 것도 모두 반듯했는데 / 規坐而矩立

시집와서 이삼 년이 흘러갔지만 / 托身二三載

은하수가 둘 사이를 막고 있으니 / 河漢一以隔

당신의 음성조차 모르는 판에 / 未曾識君聲

얼굴이야 말해서 무엇하리오 / 何論見顔色

때때로 당신 꿈을 꾸곤 하는데 / 時時入夢姿

뭔가 고민 있는 듯한 표정이었죠 / 彷彿苦難的

마음이야 어찌 내게 소원하랴만 / 君意豈誠疎

옥 같은 여인들이 너무도 많아 / 衆女紛如玉

북쪽 집엔 원앙 그린 병풍을 치고 / 北里䲶鴦屛

서쪽 집엔 비취색 휘장 쳤지요 / 西舍翡翠幕

아침마다 잉어회를 상에 올리고 / 朝朝鱠赤鯉

거문고를 마음대로 연주하면서 / 錦瑟如意作

어떻게든 낭군의 사랑 받으려 / 要得求顧眄

요염하고 아리따운 웃음 지으니 / 姣笑與郞劇

좋은 때에 뭇 여인과 어울리면서 / 佳期嘯群匹

첫날밤을 치르려는 생각 않네요 / 不念新婚夕

당신이 처음 나와 약혼하던 날 / 君初納采時

덕을 좋아한다고 말했었는데 / 自謂頗好德

아쉽게도 얘기를 해 보지 않아 / 所嗟未交言

깨끗한 내 마음을 알지 못하니 / 氷心君莫識

선물 주려 목을 빼고 기다리면서 / 引領欲有贈

두 손 가득 작약을 쥐고 있어요 / 留荑藹盈掬


▣번암집 제4권

■조령〔鳥嶺〕

남쪽에 극히 험한 고개 있으니 / 炎維有絶險

조령은 천하에서 으뜸가는 곳 / 鳥嶺天下獨

태곳적의 쇠가 닳아 절벽 이루고 / 壁磨太始鐵

두터운 지맥 끊겨 벼랑이 됐네 / 崖絶厚地脉

지난날 신라와 고려 시대에 / 新羅及高麗

하늘이 남과 북을 갈라놓으니 / 天以限南北

벌벌 떨며 공중에 잔도(棧道) 만들고 / 凌兢斲飛棧

기어올라 북극성을 뚫으려 해도 / 仰攀穿斗極

신령한 도끼날이 도리어 무뎌 / 神斧力反脆

단번에 돌 모서리 깎지 못하여 / 未遽剗石角

숲에서는 음산한 기운 풍기고 / 林木集送氛

자주 하늘 컴컴해져 비를 뿌렸네 / 往往天潑黑

지나간 임진년(1592, 선조25)에 조선에서는 / 昔者壬辰年

왜구가 온 나라에 들끓었는데 / 島夷大充斥

발호하여 조령 밑에 이르러서는 / 跳梁及嶺下

의구심과 두려움을 가득 품었지 / 疑懼遂滿腹

돌 비탈을 오르려니 날개가 없어 / 緣磴腋無翼

서로 신호 보내면서 잠복했는데 / 嘯儷以狙伏

원수가 관군들을 거느리고도 / 元帥統王師

겁을 먹고 험한 지형 차지 못 하니 / 懦不先據阨

흉적들이 질풍처럼 돌격하여서 / 凶鋒猋乃發

귀신처럼 신속하게 빈 곳을 쳤네 / 擣虛如鬼速

조령의 뒤쪽으로 날듯 진격해 / 鼓行飛鳥背

가무 소리 만 골짝을 흔들었는데 / 歌舞動萬壑

치달리는 형세를 감당 못 하여 / 長驅勢莫當

죽은 이들 피가 땅을 물들였기에 / 殺人中原赤

오늘날도 달천(獺川) 가에 비바람 치면 / 至今獺水上

귀신이 한밤중에 통곡을 하네 / 風雨鬼夜哭

나라에서 지난 일을 교훈 삼아서 / 國家丕懲前

진장을 둬 관문을 굳게 지키니 / 鎭將鎖閫閾

세 성은 공중에 우뚝이 솟고 / 三城鑿空翠

흰 성벽은 백 자나 뻗어 있도다 / 粉甓亘百尺

고을에서 식량을 실어 보내어 / 州郡轉粟米

창고에 차곡차곡 쌓아 두었고 / 壯哉倉廩積

촌락에는 개들이 짖는 일 없어 / 民居狗不警

백성들이 밥과 죽을 배불리 먹네 / 鼓腹飧與粥

내가 마침 가을에 이곳에 오니 / 我來屬時晩

나뭇잎들 새로 붉게 물이 들어서 / 赤葉融新液

하늘로 올라가는 사십 리 길이 / 天梯四十里

비단을 펴 놓은 듯 곱게 빛나며 / 綺纈粲相射

골짝마다 시냇물이 졸졸 흐르고 / 源流漏百谷

가을바람 숲에서 불어오누나 / 秋韻間松櫟

건장한 병졸들은 대낮에 졸고 / 健兒白日眠

딱따기는 한구석에 버려졌는데 / 戌柝卧成澁

말을 내려 형세를 살펴보고는 / 下馬覽體勢

옛일을 떠올리며 탄식하누나 / 懷古一於悒

어찌하여 관문을 잠그지 않아 / 奈何不扃鐍

왜구들이 들어올 수 있게 했던가 / 而使大盜入

많은 무기 갖추고 큰 성 쌓는 건 / 千倉與百雉

예로부터 급선무가 못 되었으니 / 古來非務急

장수가 적임자가 아닐 경우엔 / 推轂苟非人

천연적인 해자라도 소용이 없네 / 天塹爾何益

비가에 용추(龍湫)에선 용이 치솟고 / 悲歌拔湫龍

서생의 머리카락 갓을 뚫으니 / 髮指書生幘

훗날에 여기 오는 사람들에겐 / 無令後來者

지금 같은 울분 갖지 말게 할지니 / 視今猶視昔

전주〔全州〕

이른 새벽 안장 없는 말을 타고 멀리 오니 / 迢迢驏騎犯輕寒

들빛 처음 열리고야 산안개가 옅어지네 / 野色初開峽翠殘

꽃과 버들 가득하여 성이 날로 고와지니 / 花柳滿天城日媚

이 무렵의 봄 경치가 한양성과 비슷하네 / 到時春事似長安

강경에서 머물다〔次江鏡〕

길 위에서 달이 차고 이지러져도 / 圓缺途中月

아직까지 나는 집에 닿지 못했네 / 吾猶未及家

빈 하늘은 들판을 덮고 있는데 / 天空蓋田野

산은 멀리 전라도에 이르렀어라 / 山迥到全羅

기러기는 찬 강에서 방향을 잃고 / 客鴈迷寒渚

장삿배는 노을 아래 돛을 내렸네 / 商帆駐暮霞

다듬이질 소리가 숲을 흔드니 / 砧聲搖萬樹

서울 같아 억지로 웃어 보노라 / 剛喜似京華


▣번암집 제5권

■낙산사에서 자며 감회를 읊다〔宿洛山寺感吟〕

황혼 무렵 절에 오니 만감이 서리는데 / 黃昬百感倚禪樓

규성은 아득하고 바다에는 달이 떴네 / 奎宿茫茫海月留

당시의 미녀들 다 머리 허연 할멈 되어 / 當日靑蛾皆白首

〈대제곡〉을 노래했던 사람 알지 못하리라 / 不知誰唱大堤謳

■명사십리로 가는 길에서 감흥을 읊다〔鳴沙路中遣興〕

그림인지 진경인지 구분할 수 없는 절경 / 如畫如眞更絶奇

비가 오다 갰다 하니 한층 더 빼어나네 / 乍晴乍雨巧相宜

모래 가의 여린 풀엔 안개가 가없는데 / 縈沙弱草煙無際

땅에 가득 나는 꽃을 말은 의심 않는구나 / 滿地飛花馬不疑

봉도에 보낼 편지 푸른 새가 가져가고 / 蓬島書憑靑鳥去

경포에서 지은 시는 흰 갈매기 보게 하네 / 鏡湖詩許白鷗知

단약 굽는 아궁이에 채색 구름 여전하니 / 彩雲猶護燒丹竈

양자가 놀던 곳에 가고픈 맘 간절하네 / 楊子遺墟有所思

■옥류동〔玉流洞〕

천 겹의 골짜기를 건너지르며 / 凌躡千重壑

위태롭게 올라서 하늘 잡으니 / 危登一握天

지탱하고 선 돌을 새가 피하고 / 石撑孤鳥讓

흩어진 내 구룡으로 전해지도다 / 川散九龍傳

푸른 숲엔 빗방울 맺힐 듯하고 / 林翠如成滴

차 향기는 연무와 짝하여 피니 / 茶香偶惹煙

이 세상에 신선이 존재한다면 / 神仙果能有

이곳이 노닐기에 적합하리라 / 於此稱盤旋

■만폭동〔萬瀑洞〕

남여에서 절벽 밑을 거만하게 보지 못해 / 籃輿不敢傲層垠

곁눈으로 힐끗 보니 오싹하게 소름 돋네 / 細意窺臨凜若神

하늘이 판 큰 못들은 모두 둥근 모양인데 / 天鑿巨窪圓氣勢

산 흔드는 만 폭포는 성난 우레 내리치듯 / 山搖群瀑怒轟轔

바위는 목욕한 듯 하얀 골격 드러내고 / 巖淸晝浴雲霜骨

늙은 용은 봄날에 깊이 몸을 서렸어라 / 龍老春蟠雷雨身

양쪽 벼랑 진기한 꽃 누가 심어 놓았는가 / 兩岸琪花誰種得

네 신선이 수레를 매어 놓고 구경하리 / 四仙應爲繫飆輪

■비로봉 정상에 오르다〔登毘盧絶頂〕

발아래에 펼쳐진 삼천 리 바다 / 脚下三千海

찰랑이는 술잔처럼 자그마하니 / 盈盈小似杯

머릿속의 사념(思念)이 모두 사라져 / 精神一寥廓

원기와 더불어서 배회하도다 / 元氣與徘徊

하늘 끝에 만 가지 형상 보이고 / 萬象乾端出

일본에서 외로운 놀 번져 오누나 / 孤霞日本來

높은 곳에 눈길을 두지 않으면 / 不令高眼着

어떻게 큰마음이 열리겠는가 / 那有大心開

■헐성루에서 만이천봉을 바라보다〔歇惺樓 瞰萬二千峯〕

높은 누에 올라서 신선 세계 바라보니 / 高樓一嘯攬蓬壺

하늘이 금강산을 조망하게 마련한 곳 / 天備看山別作區

무수한 봉우리들 모두 노한 듯하지만 / 無數飛騰渾欲怒

때론 홀로 떨어져서 외롭게 솟았어라 / 有時尖碎不勝孤

석양은 산 정상에 닿아 빛이 일렁이고 / 夕陽到頂光難定

잔설이 남은 산은 자태가 각각이네 / 淺雪粘鬟態各殊

향로 연기 부들자리 읊조리기 편안하니 / 香縷蒲團吟弄穩

사공이 등산했던 어리석음 비웃노라 / 謝公登陟笑全愚

두 번째〔其二〕

앞을 보면 부처인데 뒤를 보면 신선 모습 / 前瞻如佛後如仙

기이한 몸 생겨난 지 몇만 년이 되었을지 / 怪怪身成幾億千

만고토록 은하수와 기가 서로 통하였고 / 萬古氣通星漢內

사시사철 높은 누대 눈서리 가에 섰네 / 四時樓倚雪霜邊

세상 먼지 나는 곳에 자리 잡지 않았으니 / 排張未有生塵地

솜씨 부려 천공(天公)에게 바치느라 애썼을 터 / 刻畫應勞獻技天

이틀 동안 남여가 세 번이나 이른지라 / 兩日籃輿三度至

떠나려니 가부좌한 중들 보기 부끄럽네 / 去時終愧結趺禪

■신미년(1751, 영조27) 정월에 아내(1723-1751)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병산 관아에서 서울 집으로 돌아가려 하였다. 눈물을 훔치며 심정을 기술하다

비록 간들 누구를 만나겠는가 / 縱去那相見

내가 가도 이미 다 늦은 일인데 / 吾行已後時

약봉의 서찰 받고 놀란 이 마음 / 驚心藥峯札

녹문의 기약 어긴 한을 남겼네 / 遺恨鹿門期

도성에서 아득히 먼 봄 기다리고 / 故國迷春望

빈집에서 긴긴밤을 원망했으리 / 虛堂怨夜遲

이별할 때 처량하게 내게 한 말을 / 凄涼臨別語

차마 다시 떠올리지 못하겠어라 / 不忍更提思

두 번째〔其二〕

사람 일은 여의찮은 것이 많지만 / 人事應多失

슬픔의 단서 실로 만 겹이로다 / 悲端實萬重

하늘은 아들 하나 주지 않았고 / 天何慳一子

남편은 또 겨울 내내 멀리 가 있어 / 郞又隔三冬

편모가 염습(殮襲)하는 수의(壽衣)를 짓고 / 斂服偏親製

계집종이 빈소에 전(奠)을 올리네 / 床需短婢供

가련하게 원통함이 가슴에 맺혀 / 可憐冤結意

매일 밤 꿈속으로 찾아오도다 / 連夜夢相從

■숭선리 점사에서 아내가 스스로 “살아 돌아왔다.”라고 말하는 꿈을 꾸었다. 깨어난 뒤에 눈물을 주체할 길이 없어 두서없이 쓰다.

쓸쓸한 촌 점사에 달이 지는 시간인데 / 野店蕭蕭落月空

새벽 날씨 하도 추워 등불조차 희미하네 / 曉寒燈焰不成紅

꿈속에선 죽은 자도 살아서 돌아오니 / 死人亦有生還日

어찌하면 인간 세상 꿈과 같이 될 수 있나 / 安得人間似夢中


▣번암집 제6권

■미수 허 선생(허목) 동해비가〔眉叟許先生東海碑歌〕

동으로 실직의 유허를 굽어보며 / 東臨悉直墟

큰 바다의 물을 바라보네 / 以觀瀛海水

바닷가에 한 조각 비석이 있어 / 瀛海之上一片石

정의로운 기운이 하늘로 우뚝 솟았네 / 正氣矗矗干霄起

나의 몸가짐을 엄숙히 하고 나의 관(冠)을 바로 쓰도다 / 肅我儀容整我巾

그러고서 공경히 마주하고 보노라 / 然後夔夔當面視

고결하도다 공자께서 산삭하신 뒤의 시요 / 雅潔孔子刪後詩

구불구불 창힐이 만들어 전래한 글자로다 / 離奇蒼頡造來字

긴 눈썹에는 백설이 덮이고 손은 살짝 떨리는데 / 長眉覆雪手微戰

기이한 필체는 마치 신령과 희롱하는 듯 / 異筆怳與神靈戲

아침마다 태양이 동쪽에서 떠오르면 / 朝朝太陽從東來

문장의 기염이 태양을 감싸고 함께 배회하도다 / 文燄籠之共徘徊

찬찬히 읽으니 〈청묘(淸廟)〉의 비파 소리 어렴풋이 들리고 / 緩讀疑聆廟瑟希

우러러 더듬으니 은하수를 붙잡고 도는 것 같아라 / 仰攀如挹天河回

혹은 머리가 아홉 개인 듯 혹은 다리가 하나인 듯 / 或如九首或一股

행간마다 글자마다 모두 날아 춤추도다 / 行行字字皆翔舞

꿈틀꿈틀 신비하고 기괴한 형체를 숨길 수 없어 / 蜿蜒秘怪形莫遁

약한 놈은 바짝 엎드리고 강한 놈은 성을 낸다 / 弱者帖伏强者怒

아명이 하늘에 하소연하니 천제께서 탄식하시고 / 阿明上訴帝曰咨

너는 삼가 피하여 수부에 잠겨 있으라 명하시니 / 汝謹避之潛水府

백 년 동안 파도가 물어뜯지 못하였고 / 百年波濤囓不得

큰 고래와 검은 고래가 와서 몸을 굽신거렸네 / 穹鯨黑鰍來傴僂

하늘이 선생을 보내 미혹함을 깨치게 하셨나니 / 天遣先生牖迷津

세상 어디서인들 지주가 아니셨으랴 / 世間何處非砥柱

홍수가 땅에 가득 흘러넘쳐 너무나 혼탁했으니 / 橫流滿地太獨漉

서로 빠뜨려 죽인 것은 사나운 바다뿐만이 아니었도다 / 胥溺不啻滄溟惡

선생께서 담소하시며 손으로 구원해 주시어 / 先生談笑以手援

우리 도가 그 덕택에 명맥을 이어 갔네 / 斯文賴之綿一脈

오호라 선생께선 바다에 능하고 사람에는 능하지 못하셨는지 / 嗚呼先生能海不能人

인간 세상에는 지금껏 편벽되고 간사한 말이 일어나누나 / 人世至今詖淫作

미수(眉叟) 허목(許穆, 1595~1682)이 1661년(현종2, 67세) 삼척 부사로 부임하여 세운 척주동해비(陟州東海碑)를 가리킨다. 당시 삼척의 바닷가 백성들이 거센 바람과 사나운 파도에 시달리는 것을 본 허목이 〈동해송(東海頌)〉을 짓고 전서(篆書)로 직접 써서 만리도에 세우자 바다가 잠잠해졌다고 한다.


▣번암집 제7권

■입지와 함께 남산을 유람하다〔同立之遊南山〕

뱃사공을 불러도 오지 않아 / 篙師招不至

스스로 일어나 조각배를 저었네 / 自起使孤舟

어느 곳인들 봄이 오지 않았으랴마는 / 何處無春事

남산의 깊어 가는 봄이 그윽하여라 / 南山向晩幽

꾀꼬리 지저귐이 교태로워 취하려 하고 / 鸎聲嬌欲醉

꽃 그림자 담담하니 시내를 이루었네 / 花影淡成流

점심밥을 바위에 기대어 지으려 하니 / 午飯依巖熟

밥 짓는 연기가 회나무 꼭대기에 머무네 / 煙高檜頂留

두 번째〔其二〕

여기 버들 피어난 언덕에 이르러 / 及玆楊柳岸

급류 타고 온 배를 처음 묶었네 / 始繫急灘舟

아름다워라 굽이치는 남쪽 언덕이여 / 窈窕南崖曲

높이 올라 그윽한 봄 나무를 굽어보노라 / 登臨春木幽

샘이 향기로우니 바위 주방으로 물 끌어오고 / 泉香巖竈引

대나무 맑은 기운은 술잔 따라 흘러가네 / 竹氣羽觴流

새로 생복 잡아 오기를 다시 기다리느라 / 更待新生鰒

석양에 그대와 함께 머무르노라 / 斜陽與子留


▣번암집 제8권

원산가〔元山歌〕

원산의 수려한 풍광이 용산과 비슷하여라 / 元山佳麗似龍山

길가 수많은 집에 버들이 한가히 늘어졌네 / 夾路千家垂柳閒

울 밖에서 노 젓는 소리가 저물녘 들리더니 / 籬外櫓聲乘薄暮

어선들이 큰 바다 한가득 항구로 돌아오네 / 捕魚船匝大洋還

두 번째〔其二〕

마을 앞 큰 바다는 영남으로 통하거니 / 村前瀛海嶺南通

쌀 실은 돛배에 부는 바람 모두 다 순풍일레 / 載米雲帆盡順風

흉년이면 임금님 은혜로 널리 서로 구제하니 / 荒歲君恩交濟廣

번화함이 오래도록 옛 시절과 다름없어라 / 繁華長與舊時同

세 번째〔其三〕

푸른 바닷빛은 우거진 평원으로 이어지고 / 蒼蒼海色際平蕪

십 리에 펼쳐진 인가는 도읍처럼 모였는데 / 十里人煙聚似都

하고많은 집 문 앞에 늘어선 버드나무에는 / 多少門前楊柳樹

대상인이 타고 온 제주마가 매여 있네 / 豪商來繫濟州駒

네 번째〔其四〕

물고기 잡는 이익은 관북이 으뜸이요 / 魚族利爲關北最

면화 실은 짐바리는 영남에서 많이 오네 / 綿花駄自嶠南多

때를 살펴 사 두었다 때에 따라 파노라니 / 乘時買取隨時賣

이익의 절반이 원산 부호가에 떨어지네 / 半是元山留富家

■마천령〔磨天嶺〕

둘러친 험준한 지세가 성과 해자를 대신하니 / 周遭關阨替城壕

태곳적에 상제께서 만들며 고생하셨으리라 / 設此當時上帝勞

두성과 우성을 하나하나 손으로 딸 만하도다 / 箇箇斗牛堪手摘

망망한 하늘과 땅 사이에 몸이 문득 높아 가네 / 濛濛天地却身高

산 중턱엔 눈이 잔뜩 쌓여 지나는 사람 적고 / 中峯雪壯通人少

구름 깔린 벌판 굽어보며 칼 기대어 호기롭다 / 絶漠雲長倚劍豪

끊임없이 부는 해풍에도 넘어지지 않았나니 / 無限海風吹不倒

작은 정자가 여기에 또한 굳건히 뿌리박았네 / 小亭斯亦着根牢

■삼일포〔三日浦〕

아름답고 순수한 미인의 자태 / 英英淡淡美人姿

얼굴에 단장을 한 적이 있었던가 / 顔色何曾脂粉施

풍악의 고운 남기는 그림자를 희롱하는 듯한데 / 楓嶽姸嵐如弄影

맑은 하늘 신선의 배가 더딘들 어떠하랴 / 鏡天仙舫不嫌遲

다시 날아온 물새는 모두 서로 익숙하고 / 重來水鳥渾相慣

웃음 짓는 숲 속 스님들 거의가 구면이네 / 一笑林僧多舊知

신선 피리 울리는 허공을 때로 슬피 바라보매 / 空裏鸞笙時悵望

작은 정자 꽃나무 너머로 석양이 옮겨 가네 / 小亭花木夕陽移


▣번암집 제9권

■누이 이실을 장사 지내는 날에 비가 밤새도록 내렸다. 관아에 홀로 앉아 눈물을 섞어 이 시를 썼다〔李妹葬日雨終夕 鈴齋獨坐 和淚書此〕

지상에 오늘 아침 비가 내리니 / 地上今朝雨

필시 네가 흘리는 눈물이리라 / 應從爾淚滋

어린아이는 나에게 맡긴다 해도 / 稚兒猶寄我

남편은 다시 누굴 의지해 사나 / 夫子更依誰

가난함은 한평생의 한이었고 / 貧窶生平恨

헤어짐은 죽은 뒤의 슬픔이로다 / 睽離死後悲

새 무덤 가까이로 한수가 흘러 / 新阡近漢水

천고토록 이처럼 흘러가리라 / 千古逝如斯

두 번째〔其二〕

후토가 참으로 안목이 없어 / 后土眞無眼

효우의 사람을 깊이 묻었네 / 深埋孝友資

노친은 들판에서 작별하는데 / 老親惟送野

어린아이는 어떻게 상여를 따라갈까 / 稚子豈隨輀

비 내리고 어둑한 그 성곽 밖에 / 雨暗伊城外

하늘 길게 이어진 한수의 물가 / 天長漢水湄

죽거나 살거나 천 가지로 한스러우니 / 幽明千種恨

눈물로 제문 지어 봉해 부칠 뿐 / 只有淚緘辭

■사창에서 진휼미를 나누어 주다〔司倉分賑〕

수령의 주방에는 고기가 쌓여 있고 / 肉堆使君廚

수령의 밥상에는 밥이 향기로운데 / 飯香使君盤

이것들이 차마 목으로 넘어가랴 / 此物豈下咽

굶주린 백성들을 한번 보자꾸나 / 試向饑民看

산골 물산 일정치 않아 괴로운데 / 峽産苦不恒

흉년을 당해서는 더욱 어렵다네 / 値凶尤艱難

아침거리 없는 데다 저녁거리도 없어 / 無朝又無夕

곳곳 마을마다 밥 짓는 연기 없네 / 在在村煙寒

얼굴은 모두들 누렇게 떴고 / 其面皆向浮

의복은 하나같이 온전치 못해 / 其服皆不完

널브러진 목숨이 실낱같아서 / 匍匐命如綫

굽어보자니 코끝이 시큰해 오네 / 俯視鼻欲酸

서둘러 한 바가지 죽을 담아서 / 催盛一瓢粥

마른 목구멍 우선 적시게 했네 / 先使潤喉乾

한 집에 가족이 서너 명인데 / 一室三四口

진안에 한 사람만 뽑아 올리니 / 賑案抄以單

한 사람만 뽑는 것이 내가 원해서이랴 / 單抄豈我欲

곡식은 부족하고 재정이 고갈되어서라네 / 穀少官力殫

애처로운 호소가 분분히 그치지 않고 / 哀訴紛未已

호소 마치고선 눈물을 뚝뚝 떨구네 / 訴罷淚汍瀾

한 되 한 되 날을 헤아려 지급하니 / 升升計日給

됫박은 좁은데 날이라고 넉넉할까 / 升窄日何寬

일전에 슬퍼하시는 윤음을 내리시니 / 日昨哀綸降

열 줄의 성상 말씀에 재삼 탄복했네 / 十行見三嘆

부모와 같은 성스러운 임금님이 계시니 / 聖后如父母

가난해도 그대들은 마음을 편히 가지라 / 環堵爾須安

■전둔전가〔前屯田歌〕

이천부 5개 면(面)의 화전을 훈련도감(訓鍊都監)에 소속시키고 ‘둔전(屯田)’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매년 도감에서 감관(監官)을 파견하여 세(稅)를 거두는데, 감관이 된 자가 가렴주구(苛斂誅求)를 일삼으니, 백성들 가운데 그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도망하는 자가 줄을 이었다. 5개 면에 걸쳐 있는 가옥의 허물어진 담장과 깨진 벽은 대개 모두 둔전이 빌미가 된 것이다. 공자께서 “가혹한 정사는 호랑이보다도 사나운 것이다.”라고 하셨는데, 밝으신 성상께서 위에 계시다고 하면서 정사가 혹시라도 이와 같을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슬퍼서 상심(傷心)하지 않을 수 없었다.

괭이 있어도 김매지 않아 둔전에 잡초 무성하고 / 有鎛莫薅屯田莽

씨가 있어도 파종하지 않아 둔전이 황무지 되었네 / 有種莫播屯田土

둔전이 어찌 경작하기 알맞지 않으랴마는 / 屯田豈不宜耕作

감관이 호랑이보다 사나워 두렵다네 / 所畏監官猛於虎

감관은 도감에서 왔다고 말하면서 / 監官云自都監來

백성 고혈 빨아먹길 엿 달게 먹듯 하네 / 吮民膏血甘如飴

산밭이 척박한데도 세금 너무 무거워라 / 山田甚薄稅甚重

붉은 방망이로 위세 부리며 사방으로 치달리면 / 赤棒耀威威四馳

어리석은 백성 머리 조아린 채 감히 못 어기고 / 愚氓頫首無敢違

밭에 거름 주기도 부족한데 가산을 다 쏟아 주네 / 糞田不足傾家貲

흰 닭이며 누런 개를 다시 논할 겨를 있나 / 白鷄黃犬更暇論

시장에다 솥을 내다 팔고 마을에다 수저 파네 / 場市賣鼎村賣匙

일만 사람 말라 가고 한 사람만 살찌는데 / 萬人身枯一人肥

이것이 공인지 사인지 나는 모르겠네 / 爲公爲私吾不知

태수는 상사에 대해 어찌할 수 없어 / 太守無如上司何

백성 죽음 두고 보며 부질없이 탄식할 뿐 / 立視民死空嗟咨

다섯 면에는 밥 짓는 연기 적막히 없고 / 五面人煙寂不起

황폐한 울타리 무너진 집만 청산 속에 있네 / 荒籬敗屋靑山裏

누가 사람 기르는 것으로써 도리어 사람을 해치는가 / 誰將養人反害人

사람 잡는 덫과 함정이 모두 여기 다 있도다 / 罟擭陷穽都在此

과부가 가을 들판에서 울면서 말하기를 / 寡婦秋原哭且語

괭이가 있어도 둔전을 가꾸지 말지어다 / 有鎛莫向屯田理

■후둔전가〔後屯田歌〕

정축년(1757, 영조33) 가을 나는 명릉 회장관(明陵會葬官)으로 도성에 달려갔다. 상께서 특별히 사대(賜對)하시고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으시니, 백성들이 둔전의 세금이 과중함을 견디지 못해 안주할 수 없는 상황을 아뢰었다. 이에 상께서 열 줄의 윤음(綸音)을 내리시어 호조(戶曹)의 장관(長官)을 엄하게 추고하도록 하고, 감관(監官)의 명칭을 혁파하게 하였으며, 본부(本府)에 명하여 그 세금을 거두어 향청(餉廳)에 들이도록 하였다. 그리고 그 세액(稅額)은 최초에 정한 것에 의거하여 감히 더하지 못하게 하였는데, 그것을 어기는 경우에는 처벌을 받게 하였다. 명이 내린 날에 백성들이 모두 기뻐 날뛰면서 서로 알리니, 달아났던 백성들이 사방에서 돌아와 개간하는 땅이 더욱 늘어났다. 공자께서 “덕의 유행이 역마(驛馬)로 명령을 전달하는 것보다 빠르다.〔德之流行 速於置郵而傳命〕”라고 하셨는데, 내가 이 일을 통해 성인께서 나를 속이지 않으셨다는 것을 더욱 믿게 되었다.

이천의 백성들 이전엔 둔전으로 괴롭더니 / 伊民昔以屯田苦

이천의 백성들 지금은 둔전으로 즐거워라 / 伊民今以屯田樂

둔전이 전후로 어찌 다름이 있으랴만 / 屯田豈伊前後殊

이전 세금 과중하고 지금 세금 가볍다네 / 昔稅苦重今稅薄

태수가 아뢰자 성명하신 임금님 놀라시어 / 太守陳之聖主驚

윤음의 글자마다 따스한 봄이 생동하였네 / 絲綸字字陽春生

탁지의 신하를 추궁하라 명하시고서 / 旣命何問度支臣

이어서 감관이란 명칭도 혁파하셨지 / 因之革去監官名

그 세금은 세월 흘러도 감히 더할 수 없고 / 其稅有經不敢加

더한 자는 일정한 형벌 결코 피할 수 없네 / 加者判不逃常刑

교서가 내리자 수많은 사람이 모여들어서 / 王言一下千人集

지팡이 짚고 들으며 모두 눈물 흘렸다네 / 扶杖聽之皆涕泣

마침내 형과 숙부에게 이 일을 알려 주니 / 遂告而兄與而叔

다시 옛 터전에 돌아와서 생업에 안주했네 / 重還故土安其業

상제는 높이 거처하니 무슨 힘을 썼겠는가 / 上帝高居力何有

서로 이끌고 관아 뜰에서 태수를 칭송하네 / 提挈官庭頌太守

태수는 명을 받들었을 뿐 간여가 없었으니 / 太守奉令無所與

은혜로운 정사는 밝은 덕을 밝히신 임금님 공덕이로다 / 惠政惟我明明后

백성들이여 힘을 다해 둔전을 경작하여 / 民乎盡力理屯田

가을 오면 추수하고 봄 술을 만들어서 / 秋來收穫爲春酒

남자들은 앞에서 여자들은 뒤에서 절하며 / 男拜于前女拜後

멀리서 우리 임금님 만수무강을 축원하세 / 遙獻吾王萬萬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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