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록

아시아 시대는 케이팝처럼 온다

청담(靑潭) 2021. 1. 6. 13:31

아시아 시대는 케이팝처럼 온다

도서출판 눌민

정호재 지음(2020.11)

서언

佳苑이 怡堂선생님으로부터 기증받았다면서 책을 한 권 가져왔다. 지은이는 이당선생님의 아들인 정호재 군이다. 정군의 아버지이신 정봉화 교장선생님은 나의 고교시절 은사이시고, 어머니이신 이당 송현숙 선생님은 가원이 문인화 스승으로 모시고 배우고 있으므로 인연이 크다. 진즉부터 아시아학을 공부하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고 싱가포르에서 공부한다는 얘기는 들은 터이다. 내가 여행한 동남아시아에 속하는 나라는 싱가포르, 홍콩, 타이완, 태국, 베트남, 필리핀, 캄보디아 정도인데 그나마 단기여행이라 사실 동남아시아 여러 국가들에 대한 지식이 얇다. 읽어보니 자신의 칼럼집을 모은 것이라는데 아시아를 보다 폭넓고 심도 있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아주 다양한 자료들이 많아 크게 유익했다. 아시아학에 있어 정호재군의 장래 연구 성과가 크게 나타나기를 기대한다. 아시아에 대한 새롭고 유익한 정보라고 여겨지는 내용들을 모아본다.

 

제1부 아시아 그리고 케이팝

○비교아시아학은 쉽게 말해 <일국주의 관점>을 극복해보자는 지역악의 한 방법론이다.

○벌써 10년도 더 된 일이지만 케이팝은 이미 흥미로운 학문적 분석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아시아를 주제로 삼은 연구자들에게 케이팝은 반드시 통과해야 할 의례와 같다.

...아시아의 생산력이 서구를 따라잡기 시작하고 혁신의 정도도 그에 근접하면서 한구그이 생활양식이 아시아의 대표 모델로서 주목을 끌고 있는 것이다.

○2018년 이후...BTS팬이 모든 케이팝 팬들을 합친 수보다 더 많아진게 아니F까 싶을 정도로 BTS신드롬이 아시아 전체를 강타했다.

○블랙핑크의 리사를 일반적인 한국인이 동남아인을 대하듯 대접한다면 전쟁까지도 불사할 기세다....한국에서 활동하는 것 자체가 글로벌 무대로의 진출 가능성을 의미하게 된 것이다. 아시아 시대의 뚜렷한 징후다.

○JYP의 박진영 프로듀서는 10년 전 <인성도 평가대상으로 삼는다>는 획기적인 전략을 활용해 중견 기획사에서 톱 기획사로 수직상승했다.

○방송 3사가 매주 수준 높은 음악방송을 만들어 해외에도 송출하고 유튜브로 무료 배포한 것이 케이팝 중흥의 결정적 포인트다. ...케이팝이 위대한 또 하나의 이유는 국적을 뛰어넘는 범 아시아적 발상에 있다고 본다.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태국 등지에서는 한국이 만든 인기 뮤직비디오의 안무와 패션, 헤어 스타일, 심지어 카메라 워크까지 컷 단위로 분석해 최대한 빠르게 비슷한 영상물을 쏟아낼 정도가 됐다. ...전 세계 케이팝 컬쳐의 가장 큰 특징은 원곡의 안무를 따라하는 ,커버 댄스>문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우위를 가능케 하는 것은 SM엔터테인먼트가 구축한 엄청난 <창의력 공장> 즉, 생산라인일 것이다.

 

제2부 동남아의 사회․경제

○싱가포르에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워낙 많아서 현지인인지 외지인인지 잘 가늠이 안된다. ...기본적으로는 국민 대다수가 부자지만 잔돈 한 푼 허투루 쓰지 않는 짠돌이들이다.

○한중일 3국이 사용하는 석유의 99%가 바로 이 싱가포르에서 숙성된 석유다.

○싱가포르이 유명한 교육제도 가운데 하나는 초등학교 6학년 상반기에 치르는 초등학교 졸업시험이다. 공교육시스템이 완벽하게 갖춰진 건 부러운 일이지만, 향후 인생의진로가 명문중학교 입학여부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5만명의 같은 학년 아이들의 성적과 순위가 6학년 중반에 만천하에 고액된다. ...최상위 1%의 승자와 90% 이상의 패자로 나뉘는 시험이기도 하다. 중간이하의 성적을 받은 학생은 평생 트라우마를 갖고 산다. 자신은 엘리트가 아니라는 상처, 영원히 되지 못한다는 패배감.

○많은 싱가포르 사람들은 젊을 때 일해 돈을 모아 노년에는 어딘가 넓은 나라에서 조용히 익명성을 누리고 살아가고 싶어 한다.

○싱가포르의 물가는 인간적으로 사악하다. 에어컨 있는 레스토랑의 점심 한 끼에 1만 5천원 이하를 찾기 힘들며, 맥주 한 잔에 7천원, 아파트 월세는 300만원~500만원에 달한다.

○명나라 이후 바다로 진출해서 밖으로 나간 푸젠인들이 호끼엔이다. 동남아 화교의 40%가 바로 이 호끼엔이다. ...싱가포르 부자들의 70%가 호끼엔이다.

○1910년대 양곤의 화교사회에서 탄생한 제품이 바로 호랑이 약이다....한국에서도 1980년대까지 가정의 상비약으로 통했을 정도다.

○싱가포르가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이유는 태평양과 인도양을 잇는 거의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이다.

○2008년경, 한국에서 가사노동자의 최저임금이 월 170만원이던 시절 싱가포르에서는 60만원이면 가능했다. ...싱가포르의 유명 호텔 등에서 일하는 한국인 노동자들이 급증했다는 사실....그들이 받는 월급이 120만 원 정도에 불과했다.

○확실히 노동문제에서 싱가포르는 뚜렷하게 갑질을 하고 있는 셈이고 싱가포르를 동경하는 주변국들은 싱가포르에 노동력이라는 단물을 빼앗기고 있었다. 마땅한 대응방법이 없는 것도 문제다.

○미얀마에 2011년부터 중국 자본이 밀려오기 시작하더니 2012년 서구와 일본의 자본까지 몰려들기 시작하니 미양마 전역에서 유전이라도 터진 것처럼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기 시작한다. ...쓰러져가는 시내 100평짜리 저택 호가가 50억 원에 형성될 정도였다. 미얀마 북부 만달레이에 삥우린이라는 중국 무역거점 도시가 있는데 이도시의 영국식 고택도 40억 원을 웃돌았으니 개방만 하면 모두 부자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당시 미얀마 엘리트는 물론 지식인과 서민들까지 엄청난 신바람에 휩싸였다. ...이미 전 세계가 부동산 가격에서는 큰 차이가 없는 시대가 되었다. ...수찌의 집권이 확실시된 20915년 말 이후 거짓말처럼 사그라들었다는 것이다.

서울 강남의 40평대 아파트 가격이 30억 원을 넘는다면, 북한이 개방을 선택할 경우 대동강이 보이는 고층아파트 가격 또한 가장 먼저 30억 원이 될 것이다.

○최근 아시아 부동산 시장이 얼마나 미쳐있는 지는 각 나라를 대표하는 주요 경제도시들에 가보면 쉽게 알 수 있다. 2018년 방문한 호치민의 4층 신축 주택 가격이 15억을 넘나드는 모습을 보고는 확실히 아시아 부동산 시장은 크레이지하다고 느꼈다.

※나도 2018에 호치민에 갓을 때 너무나 아름다운, 마치 서양식 궁전 같은 모양의 2층 저택들을 짓는 단지가 보여 가이드에게 가격을 물었더니 대략 6~7억 원 정도 한다는 말을 들은 바 있다. 저자인 정군은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의 부동산을 언급할 때 주로 최상류층의 고급 주택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싱가포르에서 결혼하는 신혼부부라면 마치 대학교 기숙사를 신청하듯 자신이 원하는 크기, 위치, 디자인의 HDB(공공주택)를 골라 분양신청을 하고 35년에 걸쳐 갚는 것이다.

○싱가포르의 부동산 가격은 2006년에서 2015년 사이에 드라마틱한 상승장을 거쳤다. ...3억원대에서 13억 이상으로 올랐으니 싱가포르의 2000년대는 부동산의 시대라고 정의 내릴 정도로 공포스러웠다.

※우리나라도 2006년 이후 부동산 가격이 오르기 시작했는데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2017년이후 급등하였다. 2020년 말 서울의 아파트 평균가격이 10억 5천만 원이 되었고 상위 20% 고가 아파트 평균가격은 20억 원이다. 전국의 아파트 평균가격은 약 4억 원이란다. 익산 같은 지방 중소도시의 아파트 평균가는 고작 1억원 ~ 2억 원 정도일터이니 빈부의 격차는 바로 이 부동산으로 말미암는다.

○관료들이 가장 먼저 백만장자가 되는 기현상의 원인이 바로 토지와 부동산 시장이었다.

○방콕시민이라는 것 자체가 하나의 계급이자 정치성향을 상징한다. ...방콕은 이미 300년간 너무도 권력화 되어 개혁자체가 불가능한 공룡이 되어버렸다.

○동남아시아에 사는 한국 사람들이 가장 놀라고 치를 떨 정도로 당혹해하는 점은 동남아 국가들의 한없이 높은 자존심과 자국민 우대 정책이다. ...싱가포르 사람들은 어디서나 자연스레 담배를 피우고 꽁초도 아무렇게나 버린다. ...싱가포르 경찰은 시민권자에게 한없이 관대하다.

○외국인이 해외에서 생존하는 최고의 방법은 현지인 존중뿐이다.

 

제3부 아시아의 영웅 혹은 빌런(악당)?

○현재 미얀마 내의 부수세력, 불교민족주의, 극우파 세력은 수찌가 소수자 인권을 최우선으로 챙기지 못할 정도로 굉장히 강하다.

※한 국 : GDP 1조 6천억 달러 예산 558조 원 인구 5150만 명

미얀마 : 707억 달러 20조원 5500만 명

○미얀마는 영국과의 3차례의 전쟁을 끝으로 1885년에 북부 만달레이에 수도를 둔 꼰바웅 왕조가 막을 내리게 된다. ...1943년부터는 아예 일제가 미얀마를 직접 지배하면서 1945년 일본의 지배로부터 독립이 가능해지고...1948년 완전한 독립이 이루어진다....1950년대 후반이 되자 여러 소수민적 정부가 연방 탈퇴를 선언했고, 이후 미얀마족(68%)과 소수민족은 장장 70년에 걸친 사실상의 내전 상태에 돌입한다.

○<필리핀의 두테르테가 사형시킨 마약사범들은 대부분 조무래기 거래상들이에요.>

○동남아 야당지도자가 한국과 일본을 찾는 이유는 그곳에서 일하는 자국 노동자들로부터 정치자금을 모으기 위해서다.

○2018년 캄보디아 야당은 완전히 해체되고 삼랑시(71세)는 다시 프랑스로 쫒겨갔다.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이끈 사쓰번(가고시마 번)과 조슈번(야마구치 번)의동맹을 통해 집권한 야마구치 파벌이 지금까지 총리를 배출하는 것과 같은 식이다.

○중국과 싱가포르는 아시아적 가치가 있다고 믿는 입장이고 한국과 홍콩, 타이완 등은 아시아적 가치보다는 보편적인 민주주의에 무게를 놓고 있는 상황이다.

○리콴유 주장의 핵심이자 정치철학은 <엘리트에 의한 지배>로 볼 수 있다.

○싱가포르는 매우 독특한 선거제도를 운영중이다. 여당 5명과 야당 5명이 출마해 킴제로 승부를 겨루어 이기는 쪽이 5석 모두를 가져가는 방식이다.

○야당의 중심인물로 올해 34세인 니콜시아는 ...로컬 피플의 주거안정과 빈민 및 차상위 계층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주문하며 양극화 사회로 흐르는 싱가포르 사회에 대한 강력한 브레이크 역할을 해왔다.

※리콴유(1923-2015):93세 마하티르(1925-97세) 전두환(1931-91세) 노태우(1932-90세)

이명박(1941-81세) 박근혜(1952-70세) 문재인(1953-69세) 수찌(1945-77세)

훈센(1951-71세)

○1960년대에 말레이 연방이 경제권을 가진 화교세력과 정치적 영향력을 독점한 말레이 간의 대립으로 갈등에 빠지자 1965년 연방 지도층은 어쩔 수없이 지역 내 최대 무역항인 싱가포르의 연방 퇴출을 결정하게 된다.

○2018년 마하티르가 다시 집권하자마자 결정한 여러 개혁 가운데 최우선 사항은 대부분 싱가포르를 향한 것이었다. 당연히 고속철도 싱가포르 연결 계획도 잠정 중단되었다. ...지도자가 나라의 운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아주 평범한 사실 때문에 말이다.

○김대중의 개혁개방노선은 입에는 쓰지만 한국경제의 미래를 바꾼 <신의 한수>가 되었고, 마하티르의 <아시아적 가치와 국가 통제 자본주의>는 잠깐 반짝이다가 후배들에 의해 완벽하게 왜곡되어버린 비운의 선택이 되고 말았다.

○오늘날에도 수찌의 변심에 대해서는 정확한 설명이 없다. ...수찌는 2012년 보궐선거를 통해 의회에 입성했고 이후 3년간 군부와 치열하게 토론하고 협의하여 2015년 12월 선거에서 화려하게 압승하며 행정부를 인수하게 된다.

 

제4부 동남아와 한국․중국

○한국이 그리 크지 않은 면적과 인구, GDP만으로도 중국과 일본의 틈바구니에서 독자적인 정체성을 갖고 선진국으로의 도약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해 보인 것이다.

○싱가포르국립대는 근래 큰 고민이 하나 생겼다. 대학원으로 유입되는 중국인의 비중이 너무 높아진 것이다. ...싱가포르국립대는 글로벌 랭킹도 높아 석사만 잘 마쳐도 미국이나 영국으로 취업하기 좋아서, 중국 각지의 능력 있는 젊은이들이 쏟아져 들어와 학교를 당황시킨다.

○중국 젊은이들에게서 받은 또 하나의 강렬한 인상은 자신의 고향과 출신에 대한 깊은 자부심과 애정이었다. ...사람은 본인의 고향과 출신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야 타지 생활도 즐겁게 할 수 있는 법이다.

○일본이 내놓은 <아시아주의>가 제국주의방식이라 욕을 먹기는 해도 아시아를 하나로 묶었다는 점에서, 또 사상 처음으로 중화주의를 배제한 개념인 탓에 20세기 내내 상당히 중요한 영향을 미쳤고, 지금도 일본의 세계전략에 근간으로 깔려 있다.

○제국주의를 무조건 부정적으로만 바라볼 것도 아니다. 거대한 역사의 관점에서 문명 간 교류를 증진하고 닫힌 세계를 열리게 만든 순기능도 함께 보자는 것이다. 민족적 자존심을 구긴 패배와 수치만은 아니고 현실을 인정해야 극복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아시아적 개념은 너무 모호해서 지리적․기후적․인종적․언어적 구분을 모두 동원해도 쉽게 카테고리를 확정할 수 없는 땅이 된다.

○네덜란드는 300년 넘게 이도네시아를 지배했지만 그곳에 남긴 문명이 거의 없을 정도로 철저히 착취로 일관했다. 미얀마를 지배한 영국은 조금 나았다지만 큰 차이는 없었다.

○이때 혜성같이 등장한 깜짝 스타가 바로 메이지 유신이었다. 20세기 일본이 아시아에 건넨 충격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었고, 긍정적인 요소가 충분히 있었다. 특히 1905년의 러일전쟁이 당대 아시아인들에게 전한 것은 단순히 일본의 승리가 아니라. 인종주의와 진화주의에 대한 일대 반격이었던 측면이 있다. 서구에 대항하는 상상력에 구체성을 더해준 것이다. ...1905년 러일전쟁의 충격은 거의실시간으로 인도와 동남아시아에 전파되는데...수많은 인도 젊은이들이 영국을 보고 배우고 극복하고자 런던으로 유학을 갔다. 간디나 네루가 그 대표적 인물이다. 그런데 같은 아시아 지역인 일본의 선전에 놀라 당시 정말 많은 인도인이 일본으로의 유학을 결심한다. ...20세기 초반 일본은 이미 아시아 신문명의 중심지였다. 일례로 중국의 지도자 손문과 장개석이 도쿄에서 공부했고 조선의 스많은 젊은이들도 같은 행보를 보였다. 이런 대열에 인도와 필리핀, 베트남까지 합류한 것이다. ...이렇게 도쿄가 아시아 문명의 중심지 노릇을 하면서 20세기 초 일본이 아시아를 이끈다고 생각한 개념이 바로 <하나의 아시아>사상이다.

○20세기 초 중국과 조선은 물론 인도, 베트남, 미얀마. 인도네시아 등 거의 모든 아시아 지식인들이 어떻게든 일본의 근대화 모델을 받아들여 자국에 적용하고 싶어했고, 그 과정에서 일본은 아시아라는 참신한 지향의 논리를 만들어준 셈이다.

○아웅산(1915-1947)은 곧장 일본으로 건너가 문명이 발달된 도쿄를 살펴보게 되고, 이어 아웅산과 의기투합한 30명의결사대가 꾸려져 1940년 스즈끼 대령의지도아래 중국 하이난다오 섬에서 짧고 굵은 군사훈련을 받는다.

○버마는 일제의 최대 영토, 전성기를 상징하는 국가다. 1942년부터 1945년까지 미얀마 전체를 장악하고 군정을 실시하기도 했다. 식민지는 아니지만 사실상 식민지로 삼고 지배한 나라다.

○최근 인도네시아와 한국의 군사 분야 협력이 도드라진다. ...자연스레 무기의 가성비가 좋으며 비동맹주의의 정치적 명분에 해가 되지 않는 한국이 최선의 파트너가 된다.

○한국에는 현재 군부가 없지만, 태국, 미얀마, 인도네시아에는 군부가 존재한다. ...군부가 입법부․사법부․행정부와 동등한 수준에서 제4부로서 국가의 중요한 시스템을 구성하고 권력을 가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촛불정부가 사법개혁과 언론개혁을 추진하며 공수처 추진과 검찰에 대한 강도 높은 개력추진으로 사법부에 대한 의회와 행정부의 우위를 확인하려고 하자, 윤석열 검찰총장이 사법부의 독립성을 근거로 강력히 반발하는 상황이 진행중이다.

○1983년 10월 9일에 벌어진 아웅산 사건은 이유와 배경이 무엇이었든 간에 북한이라는 국가의 고립과 몰락을 초래한 사상 최악의 정치적 ․ 외교적 도박이 아니었나 싶다.

○미얀마와 방글라데시는 전 세계에서 공장 노동자의 임금이 가장 싼 지역이다. 200불을 넘지 않는다. 경험이 없으면 150불로 깎이기도 한다. ...중국은 임금이 600불 ~ 700불 정도이다.

○트럼프가 싱가포르나 하노이 회담을 전격적으로 받아들였다면 얻을 수 있는 것이 너무나 많았을 것이다. ...김정은은 그 삼엄한 감시망을 뚫고 싱가포르의 여러 관광지를 홍길동처럼 돌아다녔다.

○1960년대부터 1990년대 초까지 중국과 인도, 아세안 국가 전부를 합쳐야 겨우 일본의 GDP와 견줄 만했던 시대가 이어졌다.

○동남아시아에서 H가거 친일국가가 아니었던 나라를 찾는 건 불가능하다. ...아시아의 군부체제는 메이지 유신의 성공신화를 바탕에 깔고 있다....중국이 급성장하면서 2010년 무렵에 일본을 역전했고, 한국 역시 빠르게 경제성장을 이루어 30배에 이르던 경제력 차이가 3분의 1 이하로 좁혀졌기 때문이다. ...대중은 이런 시대변화를 이미 간파하고 일본에 대한 태도를 바꾸기 시작했지만, 의리와 실리로 뭉친 지식인 그룹에서는 변화의 속도가 너무 더디다. ...일본은 지난 150년 동안 메이지 유신의 정신을 다 팔아먹고 고갈되었는데, 본인들은 그 사실을 모른 채 여전히 낡아빠진 체제와 시스템으로 무장하고 아시아에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영향력은 조만간 바닥을 드러낼 것이고 한국이나 중국은 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일본 검찰이 정치권을 폭격했던 <도쿄지검 록히드 비리수사>였다. 무려 45년 전인 1976년의 일이다. 당연히 그 후로 일본 검찰은 자민당에 의해 완전히 굴복해벼렸고, 정치권 수사도 불가능해졌다. 일본 언론도 한심하기 그지없다.

○아세안이라는 지역안보, 지역협의 기구의 정치적 결속력이 날이 갈수록 흩어지는 이유는 명확해 보인다. ...2020년 중국과 미국이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시기가 찾아오자 각자의 이해관계를 따라 너무 손쉽게 사분오열된 거다.

○홍콩 문제를 다시 살펴보면 얼핏 중국 내정문제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아시아 전체의 문제라는 것이 필자가 최근 아시아를 여행하며 얻은 또 하나의 결론이다.

○아시아 국가들이 중국의 야욕에 제동을 걸지 못하면 홍콩과 위구르에 대한 탄압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한반도나 남중국해에도 동일한 일이 반복될 것이 명약관화하다.

 

제5부 아시아의 문명론과 한류의 진정한 의미

○미얀마는 135개 소수민족이 존재하는 나라다.

○태국에 사는 외국인들은 왕실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금기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동남아시아의 최대문제는 수많은 금기와 그것에 따른 정치적 발언과 행동의 제약이다.

○1997년 외환위기가 터졌을 때 일본이 지역 내 맹주로서 뚜렷하게 위상을 보여주지 못하고 줄곧 미국의 꽁무니만 쫒아가는 모습을 보이자, 자유민주주의 체제로서의 일본의 위상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만다.

○유럽에서는 이미 1980년대 이전에 기독교와 천주교 교세가 쇠락한 상태였고, 한국교회가 기독교의 본산인 유럽을 대신해 빈자리를 완벽하게 대체한 것이다. ...한국의 교회들은 도대체 어째서 자신의종교를 가지고 평화롭게 살고 있는 무슬림지역이나 불교도 지역에 들어가 충돌과 갈등을 일으키는가?라는 질문에 충분한 답변을 내놓지 못한 것이다.

○제국주의가 현대문명의 바탕이 되었다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여점은 전통과 현대가 끊임없이 충동하고 갈등하면서 새로운 미래를 창출해 가고, 외부 세력은 새로운 전통을 만드는 큰 자양분이 된다는 것이다.

○조선에서도 미두장이라는 것이 운영되었고 공식 시장가가 존재했다. 지금의 선물옵션 거래시장과 흡사한 제도까지 존재했다. ...식민체제에 대해서는 1941년 이후의전시경제만 널리 알려졌기 때문인데 사실 대부분의 식민통치기간은 자본주의 방식으로 굴러갔고 이 대목이 1945년 이후 거의 대부분의 신생독립국에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가 창궐한 이유가 된다.

○19세기 말 영국의 사회진화론적 관점에서 가장 진일보한 사회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였다.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를 정착시키고 문호적으로는 훗날 이 나라들이 민주주의를 할 수 있도록 교육한 것이다. 군력에 비판적인 신문도 허가하고 자율적 의회도 도입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식민당국이 국경을 무한대로 열어젖히고 자본주의 상품 무역을 극도로 강화한 사회가 바로 <복합사회>다. 영국인, 인도인, 미얀마인, 태국인 등이 한 사회 안에서 제각각 완전히 다른 경제체제를 이루고 살아가는 사회다.

○놀랍게도 미얀마는 2012년 상당히 안정적으로 개방을 시행하며 역사의 회복을 시도하고 나섰다. ...북한의 고립과 내셔널리즘은 예상외로 장기화되고 있다.

○싱가포르는 ...1980년대 이전에는 평범한 중계무역항에 불과했지만 중국과 일본, 한국 등 동북아시장을 폭발적 성장을 배경으로 아세안 중심항구로서의 이점을 발판삼아 아시아 4룡이자 아세안최대 부국으로 성장했다. 거기에는 특유의 <엘리트주의>가 바탕이 되었다. 상위1%의 인재들을 세계최고학부로 유학 보내고 그들을 다시 고액연봉의 공무원으로 채용하는 시스템을 안착시키며 청렴하면서도 유능학 공공부문 개혁을 지속적해온 것으로 유명하다.

○폴 포트는 프랑스에 유학을 다녀온 지식인이었다. ..수많은 지식인들과의 이론투쟁, 무식한 동지들, 문명화 되지못한 고국의 상황에 절망해 극단적인 노선으로 치닫게 된다. ...이른바 대숙청이다,.

○한국의 3050세대에게 홍콩은 단순히 중국의 도시가 아니었다. 전쟁과 냉전에 찌든 한국 젊은이들이 꿈꿀 수 있는 가장 구체적인 국제화의 상징이자 아시아적 특성의 핵심이었다.

○당나라 소정방이 서해를 건너 백제에 가서 백제왕을 잡아갔다는 팩트 정도는 중국인 역사 홀리건들이 무척이나 좋아하는 공격 포인트다.

○중국문명의 문제는 자신의 최대 강점인 공자사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북방 이민족인 청나라나 몽골 원나라 시대의 영토주의 역사관에 머물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의 입장은 생각보다 명쾌한 편이다. 1965년에 체결된 한일기본협정을 지키라는 얘기다. ...2015년 말 박근혜정부가 체결한 위안부 합의와도 맥을 같이 한다. ...여기서 대응의 차이가 생긴다. 스스로 완전하다고 생각하고 정통성에 대한 확신이 큰 정부일수록 과거의 패러다임에 사로잡혀 자신의 오류를 수정한 생각을 덜 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국가라는 것이 완벽하고 항구적이라는 가정을 무너뜨리고 틀릴 수도 있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아시아 지역이 한 단계 더 진화하는 것 아닐까?

○싱가포르계 타밀족과 인도계는 이들 남아시아 해외노동자들과 어떻게든 차이를 드러내기 위해 패션과 헤어스타일에 각별히 신경을 쓴다,.

○동남아를 취재하다보면 중국의 중화주의, 일본의 대동아공영권, 서구의 제국주의와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사실이 있는데 조선이 한 때는 대동아공영의 핵심참여자로 동남아 침공에 상당부문 기여했다는 점이다. ...동남아와 아프리카 등 제3세계 입장에서는 한국인, 한국 기업도 과거 서구나 제국주의의 후예들이 보여준 작동논리와 동일한 논리를 따른다는 것이다. 해외세력은 사실상 모두 제국주의와 자본주의 문법을 따르기 때문이다. ...한국의 문화가 문명수준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국경 내부에서만 통용되는 지역적 윤리에서 벗어나 세계적 수준의 윤리적 감수성과 PW도적 진보성을 갖추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축구인들도 지극히 아세안적인 방식으로 콤플랙스를 해소한다. 동남아의 축구대회인 스즈키컵을 보면 된다. 세계대회에서 겨루기는 벅차니 동남아 10개국 또는 12개국이 모여서 승부를 가린다. 참가국 모두 우승권 레벨에서 그리 멀지 않다. 베트남,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이렇게 6개국은 언제니 우승을 목표로 한다. ...이제 한국인들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월드컵 1승이나 올림픽 금메달에도 아세안 사람들의 부러움과 질시가 폭발하는 수준이다.

○결국 개인이 자신의 의견을 마음껏 표출할 수 있는 사회가 미래가 있는 사회라는 생각이 든다.

○모두가 식민지 근대화론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만 반론의 근거가 빈약한 것이다.

○문명의 가장 큰 특징은 특정국가에 얽매이지 않고 국경을 순식간에 횡단한다는 것이다

○조선의 근대화는 세계적 자본주의 전파의 한 현상이지 일본으로부터 일방적으로 받은 수혜의 결과는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은 중국의 특정 왕조에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 중국으로 대표되는 동아시아 문명의 영향을 받은 것이고, 그 문명은 중국이 독점한 것이 아니라, 아시아의 수많은 민족과 국가들이 치열하게 싸우며 집단지성의 방식으로 이루어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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