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록

대변동(大變動)

청담(靑潭) 2021. 1. 27. 11:52

대변동(大變動)

위기, 선택, 변화

재레드 다이아몬드/강주현 역

감영사

 

■서언

반드시 읽어야만 할 것 같은 신간 두 권을 인터넷으로 구입했다. 한 권은 바로 재래드 다이아몬드(1937~ )가 쓴 바로 이 책이고, 다른 한 권은 마이클 샌덜(1953~ )의 《공정하다는 착각》이다.

재레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는 퓰리처 상을 수상한 세계적 석학으로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생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현재 캘리포니아 주립대(UCLA) 지리학 교수로 재직중이다. 생리학으로 과학 인생을 시작한 그는 조류학, 진화생물학, 생물지리학으로 자신의 영역을 점점 확장해 나갔으며 라틴어, 그리스어, 독일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등 수개국어를 구사한다.

기존 저서로 《총,균,쇠》,《문명의 붕괴》,《어제까지의 세계》가 있는데, 나는 《총,균,쇠》를 읽은 바 있다. 읽으면서 미처 알지 못했던 역사적 사실이나 감명을 받은 부문들만을 간략하게 적어본다.

 

 

■한국 독자에게

한국이 필리핀과 가나에는 없는 두 가지 결정적 이점을 올바르게 활용한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첫째로 한국은 중앙정부와 법, 문자와 시장경제 같은 복잡하고 정교한 제도를 오래전부터 갖추고 있었습니다.

둘째로 한국이 온대권에 위치한 것도 커다란 이점입니다. ...또 한국인은 나의 개인적 삶까지 풍요롭게 해주고 있습니다.

 

 

■프롤로그

○한 사람의 개인부터 팀과 기업, 국가와 전 세계에까지 규모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위기가 닥칠 가능성이 있다.

○위기를 맞은 개인과 국가 모두에게 중요한 과제는 정체성 중 제대로 기능해서 바꿀 필요가 없는 부분이 무엇인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바꾸어야 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이다. 개인이든 국가든 압력을 받으면 자신의 능력과 가치를 정직하고 자세하게 조사해야 한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어떤 부분이 새로운 환경에서 제대로 기능하며 적정성을 유지하는지 알아낼 수 있다. 그런 부분은 당연히 보존하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면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지 찾아내는 용기도 필요하다. 동시에 개인과 국가는 자신의 능력과 가치관에 양립하는 새로운 해결책도 찾아내야 한다.

○국가의 위기를 해결하려면 국가적 차원에서 집단 상호작용과 집단 의사결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개인은 단독으로 의

사결정을 하는 경우가 많다.

 

 

제1부 개인

제1장 개인의 위기

○개인의 위기를 촉발하는 가장 흔한 원인중 하나는 인간관계이다. ...인간관계 외에 사랑하는 사람의 질병도 개인의 위기를 촉발하는 주원인이다. ...종교도 개인을 위기로 몰아넣는 많은 원인중 하나이다.

○처음 위기상태에 빠지면 누구나 삶의 모든 것이 잘못된 듯 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개인의 위기의 결과와 관련한 요인

1. 위기상태의 인정 2. 무언인가 해야 한다는 개인적 책임의 수용 3. 울타리 세우기, 해결해야할 개인적 문제를 규정하기 위한 조건 4. 다른 사람과 지원 단체의 물질적이고 정서적인 지원 5. 문제해결 방법의 본보기로 삼을 만한 다른 사람의 사례 6. 자아 강도 7. 과거에 경험한 위기

9. 안내 10. 유연한 성격 11. 개인의 핵심가치 12. 개인적 제약으로부터 해방

○국가적 위기의 결과와 관련한 요인

1. 국가가 위기에 빠졌다는 국민적 합의 2. 무언인가 해야 한다는 국가적 책임의 수용 3. 울타리 세우기, 해결해야할 국가적 문제를 규정하기 위한 조건 4. 다른 국가의 물질적이고 경제적인 지원 5. 문제해결 방법의 본보기로 삼을 만한 다른 국가의 사례 6. 국가 정체성 7. 국가의 위치에 대한 정직한 자기평가 8. 역사적으로 과거에 경험한 국가 위기 9. 국가의 실패에 대처하는 방법 10.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하는 국가의 능력 11. 개인의 핵심가치 12. 지정학적 제약으로부터의 해방

 

 

제2부 국가 : 위기의 전개

제2장 핀란드와 소련의 전쟁

□면적 : 33.84만㎢ □인구:554만 명 □1인당 GDP(PPP):4만 5379달러 ※한국:4만 4567달러

핀란드는 교장 연수 시 교육시찰차 방문한 바 있다.

○1939년 10월 소련은 발트해의 네 국가 핀란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에 영토를 양도할 것을 요구했다.(발트 3국은 1940년 6월 소련에 합병됨) ...소련과의 전쟁에서 핀란드의 사망자수는 거의 10만 명에 이르렀고 대부분 남자였다. ...소련은 전사자 50만 명, 부상자 25만 명으로 추정한다.

○핀란드는 1809년 러시아에 합병될 때까지 주로 스웨덴의지배하에 있었다. 합병 이후에도 러시아 황제들은 핀란드의 자치권을 대폭 허용했다. ...니콜라이 2세가 1894년 황제에 즉위하여 ...러시아의 통치는 억압적으로 변했다....러시아에서 볼세비키 혁명이 일어난 1917년 핀란드는 독립을 선언했다. ...독립선언의 결과는 쓰라린 핀란드 내전으로 이어졌다. ...1920년대와 30년대에도 핀란드는 소비에트연방으로 재편된 러시아를 계속 두려워했다.

○1939년 11월 30일 소련은 ...핀란드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된 전쟁이 <겨울전쟁>이다. ...1944년 7월 전선이 다시 안정화되자 핀란드 지도자들은 모스크바로 날아가 평화를 제안하고 새로운 조약에 서명했다. ...평화조약을 체결하면서 핀란드는 소련에 3억 달러라는 부담스러운 배상금을 6년 내내 지불해야 했다. 역설적이지만 오히려 그 부담스러운 배상금이 경제적 자극이 되었다.

○ 현실적인 외교정책은 국제정치를 결정하는 요인들, 즉 국가 간 권력관계와 국익에 대한 자각에 기초해야 한다.

○외교관계에서 핀란드는 서구와의 관계를 꾸준히 개선하면서도 소련의 신뢰를 얻는 외줄타기를 끊임없이 계속했다. ...핀란드 정부와 여론도 소련에 대한 비판을 자제하며 정상적인 민주국가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자발적인 자체검열까지 시도했다.

○전 국민을 생산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핀란드의 교육제도는 모두를 잘 가르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가장 똑똑한 졸업생이 교사가 되고 심지어 대학교수보다 사회적 지위는 물론 보수도 높다. 모든 교사가 석사나 박사를 보유하고 가르치는 방법도 많은 자율성을 보장받는다.

○경찰력도 최대한 활용한다. 놀랍겠지만 핀란드 경찰은 학사학위가 있어야 하고 96%의 국민에게 신뢰받는다.

○이들의 역사에서 생존과 독립은 스스로 쟁취하는 것이고, 소련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며 핀란드를 쇤뢰할 때 핀란드도 안전하다는 교훈을 얻었다. ..핀란드 역사에서는 어떤 경우에도 양보할 수 없는 핵심가치, 즉 어떤 강대국에도 예속되지 않겠다는 독립에 대한 굳은 신념을 엿볼 수 있다.

 

 

제3장 현대 일본의 기원

□면적 : 37.84만㎢ □인구 : 1억 2600만 명 □GDP 3위

□1인당 GDP(PPP) : 4만 4,292달러 ※한국 : 4만 4,567달러

○생활수준, 산업화, 과학기술에서 일본은 유럽사회와 신 유럽계 사회(미국, 캐나다, 호주와 뉴질랜드)수준으로 올라선 최초의 현대 비 유럽계 사회였다.

○유럽의 영향이 처음 일본에 미친 때는 1542년이었다. ...1639년부터 1853년까지 쇼군은 일본인과 외국인의 접촉을 제한했고, ...포르투갈 모험가들이 1542년 처음 일본에 도착해 원시적인 총을 쏘았을 때 일본인은 깊은 인상을 받았는지 자체의 화기를 열정적으로 개발해 1600년쯤에는 세계 어느 국가보다 일본에 총기가 더 많았고 성능도 뛰어났다.

○쇼군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유럽의 전반적 영향, 특히 기독교의 영향을 염려했다. ...쇼군은 수천 명의 일본인 카톨릭교도를 십자가에 매달아 죽인 후, 1636년과 1639년 사이에 일본과 유럽의 거의 모든 교역을 끊어버렸다.

○중국무역상에게 나가사키의 한 구역, 네덜란드 무역상에게 나가사키항에 인공적으로 건설한 데지마섬을 허용한 것을 제외하면 외국인의 일본 입국은 완전히 차단했다. ...네덜란드와 일본간의 소규모 교역은 경제적인 면에서 보잘 것 없었다. 그러나 네덜란드 무역상이 유럽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두 국가의 요역은 일본에 상당한 의미가 있었다.

○1853년의 일본은 여전히 중세 유럽처럼 여러 영지로 분할된 봉건적 계급사회였다. ...당시의 쇼군은 1603년부터 일본을 지배하며 쌀 생산지의 4분지 1을 장악한 도쿠가와 가문이었다. ...1853년 7월 8일 마침내 일본의 걱정은 현실화되었고, 일본의 문을 두드린 서구 강대국은 미국이었다. ...페리제독은 일본의 허락을 구하지 않은 채 함대를 이끌고 에도만으로 들어섰다. ...1854년 2월 3일 페리가 이번에는 아홉 척의 전함을 이끌고 다시 왔다.

○막부가 일본의 오랜 쇄국을 끝내는 조약에 서명한 1854년부터 14년의 시간은 일본 역사에서 그야말로 격동의 시기였다. ...실제로 막부와 명목상으로 막부에 종속되었지만 상당한 자율권을 누린 사쓰마번(현 가고시마현)과 조슈번(현 야마구치현)은 서구의 선박과 화기를 구입했고 군대를 현대화했으며 학생들을 유럽과 미국에 보내기도 했다.

○사시(젋은 사무라이들)들은 1861년 발쵸한 행동강령에서 그들의 분노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1863년 6월,...17척의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전함으로 이루어진 함대가 조슈번의 해안 포대를 포격해 파괴했고 남은 대포를 강탈했다.

○1867년...사쓰마 번주와 조슈번주는 심임 황제의 외할아버지와 공모하여 황제의 지지를 얻어냈다. 1868년 1월 3일 그들은 교토의 황궁을 점령하고 긴급위원회를 소집해 쇼군의 영지와 지위를 박탈했다. 그 위원회는 쇼군이 일본을 실질적으로 지매했지만 그 권력을 황제에게 되돌려 주겠다고 선언했다.

○1871년 8월에는 영지와 총독직을 폐지하고 중앙에서 관리하는 현으로 대체했다.

○현재 인구도 많고 부유한 민주국가 14개국 중 일본은 부의 분배가 가장 평등하고 인구 대비 억만장자의 비율도 가장 낮은 국가이다.

○메이지 시대 일본의 목표는 서구의 많은 장점을 채택하되 일본상황에 적합하도록 수정하고 전통을 대폭 유지하는 것이었다. ...일본을 군사적, 경제적으로 강하게 키워내고 국가를 하나로 통합하는 이념을 국민에게 심어주는 것이 유신의 일차적 목표였다. 유신의 또 다름 목표는 서구가 존중하며 평등하게 대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1869년 홋카이도섬의 공식적 합병이었다. ...1879년에는 일본 남단에서 수 백 킬로미터 떨어진 류큐제도를 합병했다. 1994~5년에는 처음으로 중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여 승리를 거우었고 타이완을 합병했다. 러일전쟁에서 일본은 처음으로 서구강대국을 상대로 자웅을 겨루었는데 해군과 육군 모두가 러시아에 승리를 거두었다. 러일전쟁의 승리는 세계사의 획기적 사건이었다. 전면전에서 아시아 국가가 유럽 강대국을 무찌른 최초의 사례였기 때문이다. ...1905년에는 한국을 보호국에 두었고 1910년에는 한국을 완전히 합병했다. ...1915년 1월, 유럽열강의 군사력이 제1차 세계대전에 묶여 1895년과는 달리 간섭할 수 없게 되자 일본은 중국에 21개조 요구를 제시했다.

○매 단계에서 일본과 상대국의 힘에 대한 정직하고 현실적이며 정확한 평가와 일본이 현실적으로 해낼 수 있는 수준에 대한 냉정한 자기평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1930년대 일본에서는 해외경험이 없는 젊은 고집불통들이 해외경험이 있는 연로한 지도자들을 억누르며 위협했고 심지어 몇몇 지도자들을 암살하기도 했다.

○급진적 변화와 보수적 유보의 공존은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하는 국가의 능력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양보할 수 없는 핵심가치는 일본인을 하나로 합하며 희생을 기꺼이 감수하게 만들었다. 가장 고결한 가치는 천황을 향한 충성심이었다. ...1943년 11월, 타라와 환초에 상륙한 미군과 맞서 싸우며 그곳을 지키던 2,571명의 일본군 중 2,563명이 전사했는데, 다수가 자살을 택했고 포로로 잡힌 병사는 여덟 명에 불과했다.

○핀란드인과 일본인은 강력한 국가 정체성과 핵심가치를 지닌 까닭에 절대적 열세를 무릅쓰고 목숨을 희생하며 국가를 지켰다.

 

 

제4장 모든 칠레인을 위한 칠레

□면적:75.67만㎢ □인구:2천만 명 □1인당 GDP(PPP):2만 5,425달러 ※한국 : 4만 4,567달러

○1973년, 군사독재 정권이 칠레를 장악한 이루 자행한 고문은 세계기록을 깨뜨릴 정도였다.

○칠레를 1540년대부터 정복하고 정착한 유럽인은 스페인계였다. ...1818년 독립을 선언했다.

○1970년 이후에는 정치성향과 성격에서 정반대인 두 지도자 살바도르 아옌데(1908~1973)와 아우구스토 피노체트(1915~2006)가연이어 통치했다. ..아옌데는 무력혁명이 아니라 민주적 방법으로 마르크스주의 정부를 칠레에 세우는 것이었다. ...신중한 타협과 온건주의를 포기하고 반대세력이 싫어할 만한 정책을 추진했다. ...그가 의회의 전폭적 지지를 얻어 추진한 첫 정책은 미국이 소유한 구리광산회사를 국유화한 것이었다. 여러 다국적 기업도 국유화했다. ...사히주의적 경제로 대체했다. 노동자 임금을 대폭 인상하고 정부지출도 크게 늘렸다. ...경제적 혼란과 폭력사태를 불러일으켰고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초래하기도 했다.

○이런 혼란의 결과가 1973년의 쿠데타였다. ...아옌데는 자살했다. 피노체트는 조용하고 온화하며 정직하고 악의가 없으며 상냥하고 근면하며 성실하고 종교적인 사람이었다. 또 검소하게 생활하며 헌신적인 남편이고 너그러운 아버지로 군대와 가톨릭교회와 가족이외에는 관심이 없는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었다. ...동료군사위원들과 CIA 누구도 피노체트의 무자비함과 강력한 리더십을 예측하지 못했다...군사정부는 정권을 잡자마자 문자 그대로 칠레 좌익의 씨를 말리겠다는 목표아래 아옌데의 인민연합당과 그 밖의 좌익 인물들을 샅샅이 수색해 체포했다. ...한 장군에게 암살단을 이끌고 칠레으 L도시들을 돌아다니며 정치범과 인민연합당 정치인을 학살하라는 은밀한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과거에 민주주의를 경험한 국가가 어떻게 그처럼 야만적인 국가로 전락할 수가 있을까? ...히틀러처럼 피노체트는 역사의 흐름을 바꿔놓은 사악한 지도자의전형인 듯하다.

○1975년부터 피노체트는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경제보좌관들에게 경제운영을 맡겼다.

○1989, ...군부는 피노체트가 대통령에서 하야하기 전 그를 종신 상원의원으로 임명하고 그에게 서너 명의 신임 대법원 판사를 지명하는 권리를 부여하며 1998년 83세로 은퇴할 때까지 총사령관직을 유지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따라서 칠레 민주 정부 지도자들의 마음에는 피노체트가 끊임없이 어른거렸고 그가 다시 쿠데타를 꾀할 가능성까지 걱정해야 했다.

○피노체트 이후 첫 대통령인 파트리시오 아일원(1912-2016)은 ...전부지도자가 정부의 잔혹한 행위를 그렇게 진심으로 사과한 사례는 현대사에서 찾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독일 총리 빌리 브란트(1913-1992)가 바르샤바의 게토에서 나치 정부의피해자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한 경우일 것이다.

 

 

제5장 인도네시아 : 신생국가의 탄생

□면적:191만㎢ □인구:2억 7636만 명 □GDP : 세계 5위

□1인당 GDP(PPP):1만 2,345달러 ※한국:4만 4,567달러

○1945년에 독립한 신생국가이다. 언어만도 700개가 넘는다.

○1510년부터 포르투갈, 1595년부터는 네덜란드, 그 후에는 영국이 현재 인도네시아에 속한 섬들에 식민지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국민의 절반정도가 자바섬에 산다.

○1800년대에 네덜란드인은 식민지를 개척하는 노력도 보상받고 이익도 얻기 위해 자바섬과 수마트라섬에 수출용 대농장을 조성했다.

○1900년대 초, 네덜란드 식민정부는 착취적이던 정책을 중단하고 윤리정책으로 전환하려는 노력을 시작했다.

○일본은 1941년 12월 미국에 전쟁을 선포한 후 태평양 섬들과 동남아시아로 영토를 확장했고, 곧바로 네덜란드령 동인도제도를 점령했다. ...처음에 일본 군부지도자들은 네덜란드령 동인도제도를 점령한 후 인도네시아와 일본은 반식민지주의라는 새로운 질서를 위해 함게 싸워야 하는 아시아 형제국이라 주장했다. ...1944년 11월 일본은 인도네시아 독립을 약속햇지만 명확한 시기를 정하지 않았다. 일본이 항복하자 이틀후 에 인도네시아는 독립을 선언했다. ...1945년 영국군과 오스트레일리아군이 일본군에게 점령권을 인계받기 위해 인도네시아에 들어왔고 그후에는 네덜란드군이 지배권을 회복할 목적으로 또 들어왔다. 곧이어 영국군과 네덜란드군이 인도네시아 군대와 맞붙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1901~1970)는 네덜란드 시대부터 식민지정부에 항거하는 민족주의 지도자로서 정치적 이력을 쌓아갔다....독립선언문을 발표한 주역도 스카르노였다. 1957년 그는 인도네시아 민족주의를 <교도 민주주의>로 교체했다. 자신만이 인도네시아 국민의 의식적 무의식적 소망을 예측하고 해석할 수 있으므로 그들을 위한 예언자로 봉사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반둥회의>후 자신의 목표를 세계로 확대하여. ...1963년에는 종신 대통령이 되었다. ...1961년에는 인도네사아군에 네덜란드령 뉴기니를 무력으로 장악하라고 명령했다.

○1965년 9월 30일 군대의 좌익 지도자들이 2천명의 병력으로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었다. ...육군전략사령관 수하르토(1921~2008)는 자신이 인도네시아 군부를 지휘해 쿠데타 세력을 분쇄하고 수카르노 대통령을 보호할 것이라고 방송으로 보도했다. ...쿠데타에 대한 군부의 대응은 무척 신속했고 효율적이었으며 대대적이었다. 쿠데타는 반공주이에 투철한 장교들에게 군부 내의 정적을 숙청할 기회를 주었다. 학살자는 널리 인용되는 숫자로는 50만 명으로...제2차대전 이후 세계최대의 대량 학살 중 하나로 평가된다. ...1966년 3월 수카르노는 압력을 견디다 못해 권력을 수하르토에게 양도하는 서한에 서명했다.

○인도네시아 의회는 수하르토를 5년 임기의 대통령으로 매번 재선출했다. ...1998년 5월 그의체제는 갑자기 붕괴되었다. ..오늘날에도 군부가 여전히 강력한 권력을 움켜쥐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국가 정체성을 뒷받침하는 근원중 하나는 1945~49년 일어난 독립투쟁으로 네덜란드의 지배를 떨쳐 냈다는 자부심이다.

 

 

제6장 독일의 재건

□면적:35.75만㎢ □인구:8400만 명 □GDP : 세계 4위

□1인당 GDP(PPP):5만 3,511달러 ※한국:4만 4,567달러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인은 약 700만 명이 죽었다. ...동유럽으로 진격하던 소련군에게 많은 민간인이 피란 중 죽음을 맞아야 했다. ...옛 영토의 4분의1도 폴란드와 소련에게 잃었다. 독일은 남은 영토마저 네 곳의 점령 지역으로 분할되었고 최종적으로 두 국가가 되었다.

○실질적으로 모든 관리와 판사가 나치의 공모자였고 협력자였다.

○1961년 8월 31일 밤, 동독정부는 갑자기 동베를린 U반 정거장을 폐쇄했고, 동베를린과서베를린 사이에 장벽을 세웠다. ...1955년 서독은 주권을 되찾았고 연합국의 군사 점령도 종식되었다. ...서독은 군대를 주직하고 재무장하기 시작했다. 아데나워 총리가 취임하자마자 취한 정책은 <사면과 통합>으로 요약된다.

○나치 악행은 소수의지도자가 저지른 짓이 아니었다. 서독정부에서 고위관리로 근무하는 다수를 비롯해 많은 평범한 병사와 관리가 나치의 명령을 수행했고, 그런 행위는 인류에 대한 범죄였다. ...독일만큼 과거의 책임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국가는 없었다.

○빌리 부란트(1913~92)는 1969년 독일 사회장의 당수로서 서독 최초의 좌파 총리가되면서 독일 기독교민주연합을 중심으로 20년간 지속되던 콘라드 아데나워의 보수정권을 끊어냈다. ..폴란드 군중 앞에 자진해서 무릎을 꿇었고 나치에게 수백 만 명이 희생된 사실을 인정하며 히틀러 독재와 제2차 세계대전의 용서를 구했다. ...미국 대통령이 베트남 국민에게, 일본 총리가 한국인과 중국인에게, 스탈린이 폴란드인과 우크라이나인에게. 드골이 알제리인에게 무릎을 꿇고 사과한 적이 있었던가? ...이런 점에서 한국과 중국에 보여준 일본의 태도와 사뭇 달랐다.

○1989년 11월 9일 수만 명의 동독인들이 국경 수비대의 공격을 받지 않고 즉시 서베를린으로 넘어갔다. ...1990년 10월 3일 동독은 새로운 州의 형식으로 서독, 즉 독일에게 통합되었다.

○역사적으로 독일의 이웃국가는 무려 20여 개국에 이른다. 스위스를 제외하고 19개국이 1866~1945에 육지나 바다로 독일을 침략했거나 독일의 침략을 받았고 독일군이 주둔하거나 도기일군이 통과하도록 영토를 내주어야 했다. ...이렇게 많은 이웃에 둘러싸인 지리적 위치가 독일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던 듯하다.

○제국시대의 영국이 그러했듯이 지금의 미국도 주도권을 잡고 앞장서면 자신의 주변국에게 강요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제2차 세계대전은 순전히 히틀러의 헛딘 야망으로 시작된 것이란 주장을 독일 안팎에서 누구도 부인하지 않았다. ...전쟁이 끝난 직후 폴란드와 체코 등 동유럽 정부들은 동유럽과 독일 영토에 거주하던 독일인을 가차 없이 추방했다. 소련의 진군과 추방으로 약 1,200만 명의 독일인이 피란길에 올랐고 그중 200만 명이 사망하고 약 100만 명의 여성이 강간당한 것으로 추정한다.

 

 

제7장 : 오스트레일리아 : 우리는 누구인가?

□면적 : 774만㎢ □인구 : 2578만 명 □GDP : 세계 13위

□1인당 GDP(PPP):5만 845달러 ※한국:4만 4,567달러

○1964년에는 호주의 길을 걸을 때 아시아와 인접한 곳이란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1788년 1월에 첫 유럽 정착자들이 그 땅을 밟았다. ...영국정부가 죄수들을 멀리 떨어진 어딘가에 내던져 놓으려 했기 때문이다. ...죄수와 간수는 금세 자유로운 정착자와 뒤섞였다. ...영국에서 호주로 죄수를 이송하는 일은 1868년까지 지속되었다. ...1840년대까지 꾸준히 식량을 보냈다. 유럽 정착자들은 협상이나 적절한 땅값을 지불하지 않고 원주민의 땅을 차지했다.

○원주민은 정부이 허락을 받지 않으면 비원주민과 결혼하는 것도 금지되었다. ...백호주의정책은 해외에서 그곳으로 이주하려는 비 백인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원주민에게도 적용되었다.

○비영국계로 구성된 상당한 규모의 첫 이민단이 1836년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에 들어왔다. ...1850년대에 수만 명의 중국인이 들어오면서 분란이 일어났다. ....1860년대 이후로 호주의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는 검은 피부의 일꾼들은 자발적이든 납치든 기한부 고용계약으로 왔고, 그 기한이 끝나면 호주에서 쫓겨났다.

○호주는 독립기념일이라는 것이 없으며 당연히 기념일을 축하하는 행사도 없다.

○호주에 파견된 소규모 분견대도 1870년에 최종적으로 철수했다. ...식민지로서 영국에 별다른 이익을 주지 못하는데다 중요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1842년에는 부분적으로나마 주민이 직접 선택한 대표로 구성된 정부가 수립되었고 1850년에는 헌법을 제정했지만 총독부는 헌법을 자유롭게 수정할 수 있었다.

○1901년 오스트레일리아는 여섯 식민지가 하나의 국가로 통합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상황이 변하기 시작할 때까지 호주의 정체성은 영국인이라는 의식에 기초한 것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은 호주의 이민정책에 즉각적 영향을 미쳤다. 1943년 이미 호주총리는 적은 인구로는 일본의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며 거대한 대륙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강력한 제1세계의 경제로 도약하려면 많은 인구가 필요하다는 논증의 허구성은 덴마크와 핀란드 이스라엘과 싱가포르의 경제적 성공으로 증명된다.

○1972년 영국은 오스트레일리아인을 외국인이라고 선언했다. ...휘틀럼(1916~2014)은 총리에 취임하고 19일동안 긴급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현대사를 통틀어 신속성과 초괄성에서 그에 비견되는 사례는 없었다. ...백호주의도 공식적으로 폐기했다. ...아시아계 학생이 시드니 상위 학교에서 정원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1986년 호주는 영국 추밀원에 상고하는 권리를 포기함으로써 영국 통치의 마지막 흔적을 지워버리며 영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했다. ...하지만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호주정부는 여전히 의회민주주의이고 영국 여왕을 명복상 국가수반으로 두며 영국과 상징적으로 중요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영국에서 태어난 오스트레일리아인의 비율이 이제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

 

 

제3부 국가와 세계 : 현재진행형인 위기들

제8장 장래에 일본이 해결해야 할 과제는?

○일본은 소득분배가 세계에서 덴마크와 스웨덴 다음으로 평등한 국가이다. ...일본의 문해력과 교육수준은 세계최고수준에 가깝다. ...도쿄는 아시아에서 가장 개긋한 도시를 두고 싱가포르와 경쟁할 정도이다.

○나랏빛을 갚기 위해서는 세율을 높이고 정부지출을 낮추며 노령층의 연금도 삭감해야 한다는 다양한 해법이 제시되었다.

○남녀의 임금차이도 심해 부유한 산업국가 35개국 가운데 세 번째로 격차가 크다. 한국과 에스토니아만이 일본을 앞섰을 뿐이다. ...출산율은 1.27명인데 그보다 낮은 나라는 한국과 폴란드이다. ...중매결혼의 비율이 5%로 떨어졌다. 젊은이가 일하기에 바쁘고 연애에 미숙해서 낭만적인 관계를 맺지 못한다.

○내가 보기에 일본은 인구가 줄어들더라도 가난해 지기는커녕 더 풍요로워질 것으로 본다. 그만큼 국내자원과 수입해야하는 자원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일본의 인구감소를 골칫거리가 아니라 커다란 이점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줄어드는 젊은층이 하루하루 증가하는 노령층 은퇴자를 부양해야 한다는 뜻이다.

○추락하는 출산율과 인구 고령화로 건강한 젊은 납세자는 점점 감소하는 반면, 일하지 않는 연금수령자는 전점 증가한다. 연금수령자는 아이가 많아 건강문제가 있을 수 밖에 없어 젊은 납세자가 늙은 은퇴자의 연금과 의료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여러 선진 국가들은 다수의 젊은 이주 노동자를 허용함으로써 인구구조의 변화에 따른 문제를 최소화 하고 있다.

○일본 내에서는 거의 무시하는 또 하나의 중대한 문제는 전쟁기간에 일본이 한국과 중국에 취한 태도가 두 국가와의 현재 관계에도 미치는 영향이다. ...지금도 중국과 한국에는 반일 감정이 팽배하다. ...하지만 일본은 조그만 섬들을 두고 중국과 한국을 상대로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다.

○일본 학교의 역사시간에는 제2차 세계대전을 거의 다루지 않는다. ...침략자로서 일본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거의 혹은 전혀 언급하지 않고 수백만의 다른 민족과 역시 수백만의 일본군인과 민간인의 죽음에 대한 책임도 외면한 채, 두발의 원자폭탄으로 약 12만 명의 일본인이 죽었다며 일본을 피해자로 묘사하는데 급급하며 오히려 미국이 일본을 자극해 전쟁에 끌어들였다고 비난한다. ...일본도 독일처럼 행동했더라면...한국인과 중국인도 일본의 진정성을 인정하며 받아들일 것이다. ...반성을 더한 진실한 행동이 일본에서도행해질 때까지 한국인과 중국인들은 일본의 형식적 사과를 계속 불신하며 일본을 미워할 것이다.

○불법적이고 지속가능하지 않은 방식으로 수확한 임산물의 수입량에서 일본은 미국과 유럽연합 국가들보다 월등히 많다. ...일본은 전쟁패배처럼 이번에도 패배할 것이 뻔하다. ...재생가능하거나 불가능한 해외 자연자원 모두가 결국 고갈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일본이 의존하는 해외 자연자원을 철저히 파괴해버릴 것이다.

○일본의 첫 번째 장애물은 변화된 환경에는 더 이상 맞지 않는 전통적 핵심 가치이다. 두 번째 장애물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잔혹행위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지 않고 자기 연민에 초점을 맞추어 일본을 피해국으로 해석하는 경향이다. ...끝으로 몇 몇 핵심영역에서 정직하고 현실적인 자기평가가 부족한 것도 일본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요인이다.

 

 

제9장 장래에 미국이 해결해야 할 과제는? 강점과 중대한 문제

□면적 : 983만㎢ □인구 : 3억 3300만 명 □GDP : 세계 1위

□1인당 GDP(PPP): 6만 3,050달러 ※한국:4만 4,567달러

○미국은 자원이 풍부해서 식량과 대부분의 원자재를 자급자족할 수 있고, 면적이 넓은 데다 인구밀도가 일본의 10분의 1도 안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은 자원이 부족해서 식량과 원자재를 수입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고, 면적은 미국의 2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인구밀도는 미국의 10배 이상이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경제대국이기 때문에 세계최대의 군사력을 보유할 수 있다.

○온대 지역 토양은 고위도 빙하기의 빙하가 진퇴를 거듭하면서 바위를 잘게 부수고 그 결과로 비옥한 흙을 생성하거나 드러나게 하며 남긴 부분적 유산이기 때문에 열대 지역 토양보다 일반적으로 더 비옥하다. ...항해 가능한 미국의 내륙수로는 세계 모든 지역을 합한 것보다 더 길다.

○가장 큰 정치적 이점이라면 독립한 이후 230년 동안 민주주의를 중단 없이 통치원리로 삼았다는 것이다. ...중국이 1인당 평균소득에서 미국을 따라잡지 못하는 이유를 하나만 들라면 내 생각에는 민주주의의 결여이다. ...적어도 최근까지 미국의 자랑거리는 높은 사회경제적 이동성이었다. ...거의 150년 동안 미국은 발명과 과학기술과 혁신적 제조업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과시했다.

○미국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근본 문제중 첫 번째이며 내가 생각하기에 불길하기 그지없는 문제는 정치적 타협의 악화가 가속화하는 현상이다. ...이러한 정치적 타협이 1990년대 중반이후 특히 2005년경부터 점점 악화되고 있다. ...2008년 민주당 후보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공화당 lw도자들은 오바마가 무엇을 제안하든 반대하겠다는 의사를 천명했다. 실제로 4년 동안에만 오바마가 지명한 후보 79명의 임명을 필리버스터로 막았다. 과거 220년 동안의 수보다 더 많은 수였다. ...미국의 양극화는 정치집단을 넘어 폭넓게 만연한 현상이다. ...심지어 친척이 상대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도 바라지 않고 정치적 견해를 공유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같은 지역에서 살기를 바란다. ..자신에게 물어보라. 당신의 편향성을 스스로 점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선호하는 정치적 틈새에 파묻히고 나만의 사실에 집착하며 내가 예부터 선호하던 정당에 계속 투표한다.

※우리나라의 정치적 현상을 그대로 말하는 듯하다. 현재 집권하고 있는 운동권세력과 문재인 대통령 지지집단인 소위 <문파>세력의 과도한 행위들은 심각하게 우려된다. 극렬지지자들은 SNS를 지배하면서 정부를 비판하는 언론과 특정인들을 집요하게 비난하며 민주당의 잘못된 행위는 무조건적으로 지지하고 옹호한다. 민주당은 이들의 절대적 지지와 170여석의 의원수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정책을 거의 타협과정 없이 추진하고 있다. 대통령과 민주당의 갈등과 분열야기로 문재인 정권이후로 평범한 일반 시민들은 정치적으로 서로 양분되어 친한 사람들끼리도 서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지 않는 것이 예의가 되어버렸다. 특히 전라도 사람들의 민주당과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비이성적 맹목적 추종과 지지는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되지 못할 정도이다.(각종 조사에서 전라도는 그 이외지역과 전혀 다른 결과를 계속 보이고 있다) 이는 미국의 위기가 전적으로 공화당과 트럼프에게서 비롯되었듯이 우리나라에서는 민주당과 노파에서 문파로 이어지는 무서운 정치집단의 파쇼적 정치행위(좋게 표현하면 민주화 운동권 세력정권에 대한 지나친 믿음과 지지)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은 이미 역사적 위기가 시작되었는데 우리도 크게 우려되는 심각한 상황이다. 나는 그 어떤 정당도 특별히 지지하지 않으며 그들의 정책과 행위에 따라 옳고 그름을 말한다. 적어도 고등교육을 받은 시민이라면 지지하는 정당을 처음부터 끝까지 무조건으로 지지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는 않아야 한다. 시민은 사안 사안마다 정부와 여당, 그리고 야당을 비판적 시각에서 바라보면서 선거 때 소중한 한 표를 던져 정부와 여당 그리고 야당을 심판해야 하는 것이다. 특정 정당에 비판 없이 매몰된 사람은 특정 종교에 매몰되어 자신의 이성을 포기하고 자신의 운명까지도 맡겨버리는 것과 다름 아니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종교든 정치든 그것이 사이비일 수도 있음을 알 수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지혜롭다. 대한민국을 위태롭게 하는 그 어떤 정권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미국인은 가족과 대화하는 시간보다 함께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시간이 3-4배 많고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총시간 중 3분의 1 이상을 혼자 보낸다. ...휴대폰 사용자는 평균 4분마다 휴대폰을 확인하고 휴대폰이나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며 하루 평균 여섯 시간 이상을 보낸다.

○비대면 커뮤니케이션은 미국에서만 폭발한 것이 아니라 범세계적 현상, 특히 부유한 국가에서 눈에 띄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타협의 결렬도 미국에서 처음 나타난 것일뿐 영원히 미국만의 현상은 아닐 것이다. ...정치의 양극화를 현대 미국이 당면한 가장 위험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 책이 발행된 지 겨우 1년 만인 2020년 11월 트럼프의 선거불복사태가 벌어지고, 2021년 1월 트럼프지지자들의 의사당 난입사건이 터졌다. 그리고 트럼프에 대한 하원에서의 두 번째 탄핵안이 가결되었다. 트럼프에 대한 사후 탄핵조치와 처벌, 그리고 공화당지지자들의 요구에 대한 적절한 배려정책이 추진되지 않으면 미국의 질서는 무너지고 국제적 위상은 급속히 추락하고말 것이며 중국이 세계 제1국의 지위를 차지할 것이 분명하다. 우리 한국은 장기적인 측면에서 외교정책의 대전환이 요구되고 있는 엄중한 시점이다. 나는 이런 관점에서 문재인 정권의 외교정책(대외전략)을 전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제10장 장래에 미국이 해결해야 할 과제는? 세 가지 다른 문제

○투표권이 있는 미국시민 중 거의 절반은 가장 중요한 선출직, 즉 대통령 선거에도 투표하지 않는다. ...최근에 실시한 로스엔젤레스 시장 선거에서는 투표자격이 있는 거주민의 80%가 투표하지 않았다.

○2000년도에는 플로리다주에서 약 10만 명의 유권자가 등록 유권자 명단에서 지워진 사례가 있었는데 그 대다수가 민주당원이었다. 그런 배제는 2000년 선거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며 결국 미국대통령을 엘 고어에서 조지 부시로 바꿔놓았다.

○이제는 실질적으로 선거가 끝난 직후부터 선거운동을 시작해야 할 지경이다.

○미국 상위 1%가 벌어들인 조정 전 국민소득은 1970년대에 10%이하였지만 오늘날에는 25% 이상으로 증가했다. ...요약하면 무일푼에서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미국인의 믿음은 신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연구개발에 투자하는 비용이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율로는 이스라엘과 한국, 일본이 미국보다 높다. ...미국은 과학과 테크놀로지및 고급 노동 인력에 기초한 과거의 경쟁 우위를 상실하고 있다. ...한국과 핀란드, 독일 등 여러 민주국가에서는 교사가 높은 보수를 받고 사회적 지위도 높아 이직률이 낮다. 따라서 그 국가들에서는 뛰어난 학생들이 교사직을 원한다. 특히 한국의 경우 초등학교 교사를 양성하는 대학교의 응시자는 대하수학능력 시험에서 상위 5% 이내에 들어야 한다. 또 중등학교에서 교사직을 얻으려면 12:1의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 ...한국과 싱가포르, 핀란드의 교사는 모두 학급에서 상위 3등 출신이지만, 미국에서교사의 거의 절반은 하위 3등 출신이다.

○대다수 미국 정치인과 유권자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시키고 있을 뿐이다. 또 압도적 다수가 미국문제를 미국인 자신보다 다른 쪽 탓으로 돌리며, 그 비판의 화살은 중국과 멕시코 및 불법 이민자에게도 향한다. ...미국이 위기와 직면한 것이 맞느냐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없고,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다른 쪽을 탓하는 습관, 자체의 문제를 바로잡으려 노력하지 않고 자기 보호에 급급한 태도, 다른 국가로부터 배우려 하지 않는 오만함이다.

 

 

제11장 장래에 세계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전 세계를 위협할 가능성이 있는 네 가지 유형의 문제는 1. 핵무기 폭발 2. 기후변화 3. 세계적 자원의 고가 4. 세계적 차원의 생활수준 불평등이다.

○오늘날에도 잘못된 판단과 계산은 핵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예컨대 북한은 한국과 일본을 타격할 수 있는 중거리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으며, 미국까지 도달 가능한 장거리 대륙간탄도미사일도 발사한 적이 있다. 북한이 ICBM의 개발을 완료하면 미국을 향해 발사해 군사적 능력을 과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더구나 그 ICBM이 실수로 목표지점보다 미국에 더 가까이 떨어진다면 미국대통령은 보복하라는 엄청난 압력에 직면할 것이고 미국이 북한에 보복하면 중국 지도자들은 동맹인 북한을 지키라는 큰 압력을 받은 것이다. ...잘못된 계산에 따라 의도하지 않은 보복을 주고 받은 가능성이 파키스탄과 인도사이에도 존재한다. ...잘못된 계산이 핵전쟁으로 이어지는 상황이 내 생각에는 10년 내에 일어나기 시작할 듯하다.

※미국의 세계지배구도는 조속히 해체되어야 한다. 21세기는 세계의 질서유지를 미국 혼자 책임지는 시대가 아니다. 10년 이내에 중국 경제력의 급부상으로 미국이 가진 초강대국 1위의 위상을 빼앗을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이제 중국을 견제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셰계평화를 함께 이끌어 나가는 미․중공영시대를 열어나가야 한다. 한반도에서 이미 70년이 다된 6․25 전쟁의 종전을 선언하고 평화협정체제를 맺어 미국과 한국이 북한의 개방을 도와야 한다. 특히 우리 대한민국은 북한을 경제적으로 원조하여 북한이 스스로 독재와 폐쇄체제를 끊고 자유시장 경제를 수용하게 만들어야 한다. 단, 우리는 통일은 열망하지도 말하지도 말아야 한다. 북한을 자극하는 것이 아닌 방법으로 협력함으로서 그저 다시는 전쟁 없는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들어야 한다. 통일은 언제가 때가오면 주어지는 것으로만 여겨야 한다.

○이산화탄소 배출의 1차효과로 가장 많이 논의되는 악영향은 대기에서 온실가스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산화탄소는 태양의 단파복사를 차단하지 못해 햇빛이 대기를 그대로 통과하며 지표 온도를 높인다는 뜻이다. ...지구표면과 하층 대기권의 온도를 높이는 현상으로 흔히 <지구온난화>라고 부른다. ...온난화의 영향으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현상은 가뭄이다. ...식량생산의 감소, 열대성 질병의 확대, 해수면의 상승 등이다. ...기후변화는 주로 인간의 활동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 활동을 줄이면 기후변화를 줄일 수 있다. 인간 활동을 줄이자는 것은 화석연료를 덜 태우고 풍력과 태양광과 원자력 같은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더 많이 사용하자는 것이다.

○화석연료는 지구의 맨틀에 오래전 생성된 탄화수소 연료, 즉 석유와 석탄, 세일(고체)석유와 천연가스를 뜻한다.

○핵발전소 사고는 두 건 있었다. 구소련의 체르노빌 핵 원자로 사고(1986)와 일본 후쿠시마 원자로 사고(2011)이다. ...한국과 타이완, 핀란드 등 여러 국가가 행 원자로에서 많은 전기를 생산하지만 지금까지 중대한 사고는 없었다. ...1인당 에너지소비를 줄이는 것이다. ...화석연료가 아닌 다른 에너지원에 더 큰 비중을 두는 것이다. 즉 바람, 태양광, 조력과 수력, 지열 에너지와 원자력까지 대체에너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제1세계의 인구가 약 10억명으로 대부분이 북아메리카와 유럽, 일본과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살며 1인당 평균 소비율은 32이다. 한편, 나머지 65억 명 중 대부분은 개발도상국가에서 살고 상대적으로 평균 소비율은 32에 훨씬 못 미치며 거의 1에 수렴한다.

○세계화한 세계에서 중국과 인도, 브라질 인도네시아, 아프리카 국가 등 개발도상국가도 소비량과 생활수준이 거의 똑 같은 수준으로 올라서기를 바랄 것이고 그런 결과를 지속적으로 추구할 것이다.

○오늘날 세계화가 뜻하는 불길한 현상 중 하나는 국제화한 경쟁, 오염 물질과 대기가스, 질병, 인구이동 등 많은 문제가 곳곳에서 생겨나고 확산하는 것이다.

※ 이 책이 발행된 지 불과 다섯 달 뒤인 2019년 11월 중국 우한에서 첫 코로나 환자가 발생한 이후 2021년 1월 27일 오늘 현재 99,718,956명(1억 명), 하루 발생환자 526,266명 사망자 2,139,933(2백만 명) 하루사망자 10,521명이다.

2020년 한 해는 전 세계가 코로나 확산 예방으로 보냈으며 현재도 진행중이다. 백신접종이 시작되었으나 언제 코로나 19시대가 끝나고 전 세계가 다시 원래상태로 다시 로 돌아갈 수 있을 지는 예측이 안 되고 있다. 인간활동은 축소되고 (해외여행은 완전 중단이고 국내여행이나 집단생활, 사교모임도 완전 중지되고 있다.) 경제는 위축되고 있으며 삶의 패턴이 새롭게 정착되어가는 <뉴 노멀>시대가 시작되었다. 2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죽고, 또 죽어가고 있는 이 인류의 대재앙이 언제나 종식될 것이며 또 다른 재앙이 찾아오지 않는다는 보장은 있는가?

 

 

에필로그 : 교훈과 의문 그리고 미래 전망

○위기의 인정은 국가의 경우보다 개인이 더 쉽다.

○미국과 일본은 주된 문제를 선택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국가 정체성은 한 국가를 남다르게 특징짓는 가치 있는 것에 대한 공유된 자부심을 뜻한다. ...어떤 국가에서나 국민과 정부는 국민적 자부심을 함양하는 방향으로 역사를 반복해서 이야기하며 국가 정체성을 강화하려고 애쓴다.

○개인이나 국가는 정확히 알아야 한다. ...그렇게 알아낸 것을 정직하게 평가해야 한다.

○독일과 일본, 프랑스 등 많은 국가들과 달리 미국은 참담한 패배와 점령에 단련된 적이 없었다. 미국은 1846~48의 멕시코-미국 전쟁부터 제2차 세계대전까지 네 번의 전쟁에서 모두 승리를 거둔 까닭에 실질적인 교착상태에 빠진 한국전쟁을 용납하지 못했고, 베트남전쟁의 패배를 감내하지 못했으며, 아프가니스탄에서 지루하게 계속되는 군사적 교착상태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20년 전부터 미국은 타협을 거부하는 완고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개인의 핵심가치는 개인적 도덕관의 기초가 되고 때로는 개인이 목숨을 버리더라도 지키려는 것이다. 개인에게 핵심가치는 위기해결에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방해가 되기도 한다. 핵심가치는 삶에서 다른 부분의 변화를 고려할 때 명확한 기준과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 역할을 한다. 그러나 변화된 환경에서는 더 이상 적절하지 않아 위기를 해결하는데 방해가 되는데도 계속 고집한다면 그 핵심가치는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개인으로서 현재의 문제 혹은 예상되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끊임없이 행동한다. 또 향후에 직면할지 모르는 새로운 문제를 예측하고 그 문제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려고 노력한다. 개인의 경우에 그렇듯이 국가의 경우에도 타성과 저항을 극복해야 한다.

○역사의 흐름은 위대한 지도자의 정책이나 결정보다 많은 세부항목에 따라 달라진다는 견해가 요즘의 역사학계에서는 대세를 이룬다. ...또 지도자는 역사의 여러 요인이 결정하는 제한된 선택안중에서 선택하는 것일 뿐이라는 게 요즘 역사학계의 이론이다.

○그렇다! 역사에서는 많은 것이 예측되지 않은 방향으로 진행된다. ...평범한 사람도 대인관계 능력을 갖추면 이미 알고 있는 사람과 나눈 경험을 일반화함으로써 새롭게 만나는 사람의 행동도 예측할 수 있다.

○인류의 역사에서 이끌어낼 수 있는 유형의 교훈은 무엇일까? 특정 국가의 역사를 이해함으로써 예측할 수 있는 그 국가의 향후 행동에 대한 구체적인 교훈이다. ...이웃한 대국의 위협을 받는 작은 국가는 항상 경계심을 늦추지 않아야 하고 다양한 선택안을 고려하여 냉철하게 평가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선택권이 있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 방향을 선택하는 편이 더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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