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야승

정무록

청담(靑潭) 2021. 2. 16. 22:47

정무록 (丁戊綠)

황유첨(? ~ ?)

■황유첨

대사헌을 지낸 황섬(黃暹 : 1544-1616)의 아들이며 간행 연대는 미상이다. 이 책명은 1607년(선조 40) 정미(丁未)에서 1608년(광해군 즉위) 무신(戊申)까지의 기록이란 뜻에서 붙인 것이다. 1607년 10월∼1608년 8월까지의 사정을 기록하여 광해군의 즉위와 관련된 당론(黨論)의 시말(始末)을 밝히고 당시의 사정을 이해하는 데 참고가 될 여러 사람의 소문(疏文), 편찬자의 기술(記述), 야승(野乘)의 기록 등을 비교적 객관적인 입장에서 간추려 수록하였다. 이 글은 유성룡 은퇴 후 권력을 장악한 북인은 대북과 소북으로 나누어지고, 선조가 죽고 광해군이 즉위하면서 대북이 정권을 잡고 소북과 벌이는 권력쟁투를 소상하게 그리고 있다. 아아! 오늘날 자칭 민주정부, 촛불정부라는 <더불어 민주당>의 소위운동권 세력과 문재인 대통령이 벌이는 실망스런 정치행태는 420여 년 전 이 때의 모습 다름 아니다.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이며 인사청문회를 무시하고 자기파들끼리 자리를 나누어 가진다. 대통령 당선초기 우리가 생각했던 대통령의 진정한 모습은 없다.

 

※대북파와 소북파

1575년(선조 8) 양반사회는 분열이 생겨 동인(東人) · 서인(西人)으로 갈라졌고, 1589년 정여립 모반사건으로 동인은 다시 분열하여 남인(南人 : 유성룡) · 북인(北人 : 이산해)으로 갈라졌는데 남인인 유성룡이 물러나자 북인이 집권했다. 북인은 다시 분파하여 1599년(선조 32) 대북(大北) · 소북(小北)으로 되었다. 대북과 소북으로 갈라서게 된 동기는 세자 책봉문제였다. 당시 대북은 광해군을 세자로 지지하였고 소북은 영창대군을 세자로 지지하였다. 선조는 세자였던 광해군을 폐위하고 적자인 영창대군을 세자로 책봉하려고 했다.

1604년 소북의 영수 유영경(柳永慶 : 1550-1608 사사)이 영의정에 오르면서 소북이 정권을 독점, 서인· 남인은 물론 대북도 불리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소북은 유영경파를 탁소북(濁小北)이라 하고 남이공파를 청소북(淸小北)이라 하여 갈라지더니 유영경이 이미 세자로 책봉된 광해군을 배척하고 선조가 총애한 영창대군을 옹립하려다 실패했다. 선조가 죽고 1608년 광해군이 즉위하자 7년간 집권한 유영경의 소북 정권은 몰락하고 정인홍(鄭仁弘 : 1535-1623) 등의 대북파가 정권을 잡게 되었다.

선조말 광해초 대립상황

대북파 : 이산해 이경전 정인홍 이이첨 허균

소북파 : 유영경과 그 일파(이홍로 김대래 김신국 박승종 등)

 

■정미년(1607, 선조 40 : 1552~1608)

10월 9일 ○ 상께서 편찮으셔서, 종묘사직과 산천 등에 기도제(祈禱祭)를 지냈다. 기운이 위로 올라 위급하였다.

12일 ○ 중전(中殿)도 삼공에게 비망(備忘)을 내리니, 대개 상의 뜻을 좇아 깊이 권도(權道)를 생각하여서 상의 몸을 보존하기를 바란다는 것이었다. 삼공의 회계(回啓)는 13일의 기록에 자세히 있다.

○ 초저녁에 상의 기후에 또 열기가 있어서 청심원(淸心元)과 죽력(竹瀝)을 써서 즉시 평상으로 회복하였다고 밤에 발표하였다.

13일 ○ 비망기에,

“내가 본래 병이 많아 평소에도 온갖 기무를 결코 감당해내기 어렵거늘, 하물며 이제 병들어 한 해가 다 되어 가되 조금도 낫지 않아 정신이 혼미하고 걱정이 더욱 무거우니, 이러하고서도 그대로 임금 자리를 무릅쓰고 있을 수 있을 수 있으랴! 세자가 장성하였으니, 옛일에 따라 전위할 만하며, 전위하기 어려울 것 같으면 또한 섭정할 수도 있다. 군국(軍國)의 중한 일을 이와 같이 하지 않아서는 안 되니, 빨리 거행함이 마땅하다.”

하였다.

○ 삼공이 회계하기를,

“신 등이 삼가 비망기를 보옵고, 서고 돌아보며 놀랍고 항송하여 아뢸 바를 모르겠습니다. 상께서 여러 달 조섭하시매, 비록 곧 쾌히 회복하시지 못하였으되 수라를 점점 드시고 원기가 회복되어 가시니, 온 나라 신민(臣民)이 평상으로 회복하시는 날을 바라는데, 뜻하지 않게 이제 갑자기 이 명을 내리시니, 신 등이 지극히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군국 기무(軍國機務)는 비록 조섭하시는 중에서도 또한 지체되는 일이 없으니, 행여 이것을 염려하지 마시고 심기를 부드럽고 편안히 하시어 오로지 조섭에 힘쓰시면 종묘 사직이 말없이 도와 성상의 환후가 저절로 강녕하게 되실 것입니다. 이는 다만 신 등의 소원일 뿐 아니라, 여러 신하들의 뜻이 이와 같지 않음이 없습니다. 황공하옵게 감히 아룁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이러하면서 조섭하고자 함은 곧 먹지 않고 살기를 바람과 같소. 가련한 생이로다, 가련한 생이로다. 그 가운데에 심병(心病)이 도로 일어나서 견딜 수 없으니, 매우 민망하오. 한결같은 일념이요 이 밖에 다른 것은 없소.”

하였다.

○ 중전이 삼공에게 전교하기를,

“빈청에 모이시오.”

하였다. 중전의 내지(內旨)를 언서(諺書)로 삼공에게 전하였는데, 대개 ‘대신들이 상의 명을 받들어 순종하기를 바란다’는 것이었다. 회계하기를,

“신 등이 삼가 내지를 보옵고 지극히 황공함을 견디지 못합니다. 신 등의 답답한 심정은 이미 대전께서 내리신 비망기의 회계 가운데에 다하였으니, 이밖에 아릴 바를 모르겠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언서로

“대신을 이 권도를 깊이 생각하여 힘써 상의 명을 받들고 상의 몸을 보전할 것을 다시 바라오.”

하였다. 회계하기를,

“내교(內敎)를 다시 받드니, 말씀의 뜻이 더욱 간절하시매, 신 등이 또한 목석이 아닌데, 어찌 마음에 송구함을 느끼지 않으리까? 다만 오늘의 분부는 여러 신하들의 심장과는 다르오니, 신 등은 감히 명을 받들지 못하고, 땅에 엎드려 죽을 죄를 기다립니다.”

하니, 답하기를,

“나의 답답한 심정은 이미 다 말하였소. 회계는 알았소.”

하였다.

○ 삼공이 대전의 비망기에 회계하기를,

“엊저녁에 삼가 성상의 비답을 보옵고 신 등은 심정이 답답하고 말이 궁하여 아뢸 바를 몰라서 물러났습니다. 상께서 비록 조섭하시는 가운데 계시더라도 여러 가지 일들을 재결하심에 이치에 맞지 않음이 없고 또한 지체하시는 일이 없는데, 하물며 이제 밖으로 변방이 대단히 시끄럽고 안으로 인심이 날로 어지러워서 장차 수습할 수 없음에리까? 이 어떠한 때이기에 이 더없이 큰일을 가벼이 하시겠습니까? 성상의 한 몸은 종묘사직이 의탁하는 바이라, 신명이 말없이 보호하고 하늘이 반드시 도와, 평상으로 회복하실 때를 날을 정하고 기다릴 수 있으니, 온 나라 신민의 소망이 오직 여기에 있을 뿐입니다. 신 등이 비록 성상의 하교를 힘써 따르려 하여도 될 수 있겠습니까? 삼가 바라옵건대, 성상께서는 깊은 생각을 다시 더하시어 신들의 마음을 편안케 하여 주신다면 이루 말할 수 없이 다행하겠습니다.”

하니, 알았다고 비답하였다.

○ 약방이 아뢰기를,

“오늘 성상의 환후가 어떠한지를 잘 알지 못하여 매우 답답하고 염려되오니, 의관 한 사람과 박지지(朴知止)로 하여금 잠시 입시하여 맥후(脈候)를 진찰하게 함이 마땅한 줄 압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들어와 진찰하지 말라.”

하였다. 비망기에,

“간사한 사람이 있는 것은 그 간직되어 있는 화가 무궁하다. 이 위태로운 때를 맞아 깊이 생각하여 대처하지 않을 수 없으니, 훈련대장으로 하여금 군대를 이끌고 대궐문 근처에서 훈련시키게 하는 것이 어떠하냐? 이 뜻을 병조에 말하라.”

하였다. 회계하기를,

“전교에 운운하셨습니다. 상께서 생각하신 바가 매우 지당하십니다. 이대로 시행함이 어떠합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12일 ○ 약방에 전교하기를,

“매우 추운 때에 오래도록 입직하는 까닭에 제조(提調) 이하에게 털옷을 내리니, 그리 알아라.”

하였다. 약방이 아뢰기를,

“신 등은 모두 변변찮은 자격으로 내국(內局)에 대죄하고 있습니다. 상께서 고요히 조섭하신 지 여러 달인데 아직 쾌차하시지 못하여, 신 등이 늘 절실히 황송하고 민망하여 몸둘 바가 없는데, 이제 삼가 성상께서 털옷을 내리시고 겸하여 염려해 주는 하교를 받자오니, 신 등이 지극히 감격하오며 더욱 황공하와 감히 아룁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나 때문에 경등에게 염려를 끼치어 고생이 매우 심하겠다. 경등의 간호에 힘입어, 고질병이 비록 쾌차하지는 못하였다 하더라도 미약한 몸을 보존하게 되었으니, 이것이 누구의 힘이겠는가? 이와 같은 심한 추위에 달을 이어 숙직하니, 어찌 상하는 바가 없으며, 내 마음이 어찌 하루라도 편안하랴? 방물(方物)에 마침 털옷이 있으므로 애오라지 나누어 보내어 추위를 막는 소용으로 할 뿐이니, 마땅히 황공해하지 말라.”

하였다.

○ 사헌부가 아뢰기를,

“나라의 크고 작은 일들이 비록 비밀에 관계되는 것이라도 삼사(三司)가 진실로 알지 못할 이치가 없는데, 하물며 비밀에 해당하지 않는 일임에리까? 요사이 상께서 비망기를 내리시어 삼공에게 물으셨을 때에, 정원(政院)이 감추고 곧 전하여 내지 않고서 삼사로 하여금 전혀 알 수 없도록 하였음은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 청하옵건대, 그날의 당해 사관을 파직시키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모두 추고하라.”

하였다.

○ 동궁(東宮)이 대내(大內)로부터 환궁하였다.

○ 사간(종3품) 송석경(宋錫慶)이 아뢰기를,

“성상의 체후가 편찮으심이 봄으로부터 여름을 지났으니, 약을 쓰는 한 가지 일이 지극히 긴중한데, 양평군(陽平君) 허준(㠊浚 : 1539-1615)은 신분이 수의(首醫)로서 스스로 자기 의견을 고집하여 가벼이 독한 약제를 쓴 죄는 다스리지 않을 수 없으므로, 신이 어제 동료들 가운데서 논의를 꺼냈더니, 모두들 ‘허준의 죄를 다스리는 것은 나라 사람들이 모두 아는 바이니, 이는 지극히 공정한 논의이므로 누가 감히 이의가 있겠는가? 내일 일제히 모여서 하자.’ 하므로, 논계에 관한 일은 이미 귀일(歸一)된 것이라 여겼습니다. 오늘에 와서 삼가 헌납(정5품) 송부(宋溥)의 간통(簡通)을 보니, 이러한 때에 수의를 논의해 처단함은 마땅하지 못하다고 하여 동료들의 의논이 한결같지 아니하므로, 형편이 구차하게 무릅쓰고 있기 어려우니, 청하옵건대 신의 직위를 파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의관의 버릇이 원래 독한 약제를 쓰기 좋아하거니와, 대저 의약의 미묘함은 논의하기가 쉽지 아니하며, 이 편치 않은 때를 당하여 수의를 논하여 죄줄 수는 없다. 논의를 그치고 그 의술을 다할 수 있도록 하라. 하물며 번거롭고 시끄럽게 함은 더욱 온당치 못하니, 사직하지 말고 물러가 기다리라.”

하였다.

○ 대사간(정3품) 유간(柳澗)이 아뢰기를,

“성상께서 오래 조섭하고 계시어, 온 나라의 신민이 근심과 당황으로 나날을 지내는데, 양평군 허준은 신분이 어의의 우두머리가 되어, 무릇 약을 의논하는 바에 많이 그 마땅함을 잃고 함부로 독하고 차가운 약제를 써서 성상의 체후가 오래도록 평상으로 회복치 못하시게 하였으니, 여러 아랫사람의 답답한 심정을 이루 말할 수 있으리까? 사간 송석경(宋錫慶)이, 그 약을 씀에 마땅함을 잃은 죄를 논하고자 하나, 신의 생각으로는, ‘성후가 고요히 조섭하고 계시는 날을 당하여 어의를 죄주기 청함은 소란스러울까 두려우므로 성후가 쾌히 회복하신 뒤를 기다려 천천히 그 죄를 논하여도 또한 늦지 않다.’ 하여, 이러한 뜻으로 왕복하였으되, 송석경의 논의는 끝내 돌이키지 못하였으니, 신의 뜻도 또한, ‘허준의 죄는 나라 사람들이 함께 아는 바요 참으로 한 터럭만큼도 용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신의 뜻도 같지만 논계(論啓)에 조만(早晩)을 둠이 다를 뿐입니다. 어찌 조만 때문에 이미 꺼낸 논의에 있어서 다른 처지에 서겠습니까? 이에 다시 동료에게 통지하여 오늘 자리를 함께하여 상의하려 하는데, 헌납 송부가 갑자기 산증(疝症)을 얻어 함께 차석 할 수 없고, 사간 송석경도 동료의 의논이 한결같지 아니하다 하여 인피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허준의 죄를 논하고자 함은 신과 동료가 다름이 없으되, 형세는 구차하게 무릅쓰고 동료를 처치하기가 어려우니, 청하옵건대 신을 파직하여 물리치기를 명하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사직 말고 물러가 기다리라.”

하였다.

○ 정언(정6품) 구혜(具寭)가 아뢰기를,

“성상의 체후가 편찮으신 지 한 해가 다 되어가는데 약이 효험을 보지 못하고 아직 평상으로 회복하지 못하니, 온 나라 신민의 근심과 걱정이 이루 말할 수 있겠습니까? 허준은 신분이 수의가 되어 약을 씀에 마땅함을 잃었으니, 그 죄가 진실로 있다 하겠습니다. 사간 송석경이 죄를 논하고자 함은 공론에서 나온 것입니다. 오늘 논계하려 하는데, 헌납 송부가 병으로 집에 있으면서 동료에게 간통(簡通)하기를, ‘허준이 참으로 죄가 있으나, 다만 청(廳)을 베풀고 시약(侍藥)하여 밤낮으로 대령하고 있는데, 이러한 때에 갑자기 수의를 논핵한다면, 만일 불의에 약을 의논할 일이 있을 때에 누가 그것을 말아보겠는가? 또 성체를 조섭하는 데 에 크게 방해가 되는 것은 소요이므로, 장령(정4품) 유경종(柳慶宗)이 이 일을 논하고자 간통할 즈음에, 번거롭고 시끄러움을 염려하여 중지하였으며, 잠시 성상의 환후가 조금 편안함을 기다려서 시약청(侍藥廳)이 파한 뒤에 천천히 그 죄를 논하여도 또한 늦지 않다.’ 하였는데, 신의 소견은 송부와 다름이 없습니다. 그대로 무릅쓰고 동료를 처치할 수 없으니, 신의 직위를 파하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사직 말고 물러가 기다리라.”

하였다.

○ 헌납 송부가 아뢰기를,

“이달 11일에 사간 송석경이 신에게 간통하기를, ‘어제 약방에 내린 비답을 보니, 수의를 잡아 문초하지 않을 수 없다.’ 하기에, 신이 답하여 일컫기를, ‘이런 때에 수의를 잡아 문초하면 뜻하지 않게 약을 의논할 적에는 누가 담당하겠는가?’라 하였습니다. 대사간 유간은, 번거롭고 요란하다고 말하고, 정언 구혜는 사체로 말하고, 정언 임장(任章)은 여러 동료의 의논이 소견이 없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였습니다. 12일 아침에 유간ㆍ임장이 연명하여 신에게 간통하기를, ‘의관 허준의 죄는 나라 사람이 다 아는 것이니, 내일 이를 위하여 함께 모여서 논계하고자 한다.’ 하였습니다. 신이 정언 구혜의 간통에 답한 것을 보니, ‘사간이 스스로 처리하고자 하면 오늘 간통함이 어떠하겠는가?’ 하였으며, 사간 송석경은 사설(辭說)을 많이 하여 스스로 처리하고자 한다 합니다. 신이 잠시 그 동료들의 간통의 요점을 추려 답하기를, ‘내일 함께 모여서 상의함이 좋을 것 같다.’ 하고, 논의를 진정시키려 하였는데, 오늘 밤에 신이 마침 산증(疝症)을 앓아 관아에 나아가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감히 어리석은 소견을 가지고 동료들에게 간통하기를, ‘허준을 논계하는 것은 만가지로 생각하고 헤아려 보면 상께서 약을 드신 지 1년이 되어 가는데도 아직 평상으로 회복하시지 못하니, 허준은 참으로 죄가 있습니다. 다만 청을 베풀어 시약하고 밤낮으로 대령하고 있는데, 이러한 때에 갑자기 수의를 논계한다면, 불의에 약을 의논할 일이 있을 것 같으면 누가 이를 담당하겠는가? 또 약을 의논할 즈음에, 어느 증상에는 어느 약을 씀이 마땅하고, 어느 약을 씀이 마땅하지 않은지, 이런 곡절을 불가불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상의 몸을 조섭하는 데에 방해하는 것은 시끄러움이므로, 요전날에 죄인을 품처하는 아룀에 있어, 빈청의 재신(宰臣)들이 혹 번거롭고 요란케 함은 온당치 못하다 하였고, 사헌부에서는 엊그제 장령 유경종이 간통하였을 때에 또한 번거롭고 요란케 함은 온당치 못하다 하여, 논의를 꺼냈다가 중지하였다. 잠시 성상의 몸이 조금 편안하시기를 기다려 시약청을 파하고서 천천히 허준의 죄를 논하여도 또한 늦지 않다. 모든 일은 상세하고 충실함이 귀한 것이니, 어제 반드시 오늘 함께 자리함을 기다리고자 한 것은 이 뜻을 위함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연으로 동료에게 간통하였더니, 사간 송석경이 동료의 의논이 같지 아니하다 하여 인피하고, 신도 또한 구차히 함께 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오늘의 간통 속에, 엊그제 유경종이 간통하였을 때에 또한 번거롭고 요란함을 온당치 못하다 하였는데, 그때의 논의는 천천히 의논한다는 것으로 말하고 번거롭고 요란하다는 것으로 말하지 아니하였사오니, 더욱 뻔뻔스레 무릅쓰고 있을 수 없습니다. 청컨대 죄주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사직 말고 물러가 기다리라.”

하였다.

○ 장령 유경종이 아뢰기를,

“신이 지난달 25일에 집의 유희분(柳希奮)에게 가 보았는데, 말이 의관들이 약을 씀에 마땅함을 잃은 일에 미치자, ‘의관들이 망령되게 잡된 약을 써서 성후가 오래도록 평상으로 회복하지 못하셨으되, 아랫사람으로부터 잠잠히 죄주기를 청하는 일이 없으니, 사체가 지극히 놀랍거니와, 군부(君父)의 병에 관계되므로 바로잡지 않을 수 없다는 뜻으로 동료들에게 간통하였더니, 어떤 이는 「삼가 알았다」고 써 보내고, 어떤 이는 「뒤에 모여서 의논하여 처리하자」고 답하더라.’ 하므로, 신 등 또한 동료의 소견이 뜻이 없지 않다고 여겨, 잠시 정지하고 처분이 있을 날을 기다렸는데, 이제 헌납 송부와 정언 구혜의 계사를 보니, 신의 이름을 끄집어 내어, 신이 이 일을 논하고자 한다고 하였으며, 간통하였을 즘에 번거롭고 요란함을 염려하여 논의를 꺼냈다가 중지하였다고 했습니다. 사헌부의 논의는 처음에는 번거롭고 요란하다 하여 정지한 것이 아닌데, 감히 다른 날에 간통할 것을 헤아리고서 성상의 귀에 이르도록 하였으니, 이는 신의 처사가 잘못되지 않은 것이 없으므로, 뻔뻔스레 그대로 무릅쓰고 있을 수 없습니다. 청하옵건대 신의 직위를 파하여 물리치도록 명하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사양 말고 물러가 가다리라.”

하였다.

○ 정언 임장(任章)이 아뢰기를,

“성상의 몸이 편찮으신 지 거의 1년에 이르렀는데, 양평군 허준은 신분이 수의가 되어 약의 효험을 보이지 못하니, 사간 송석경이 그 죄를 다스리고자 하는 것은 마땅하다고 할 만하되, ‘성상의 환후가 아직 회복하지 못하였는데, 이러한 때에 갑자기 수의를 논죄하다면, 불의에 약을 쓸 적에는 누가 이를 담당하겠는가?’라고 한 말도 또한 소견이 없지 않습니다. 신이 대사간 유간을 보고 죄를 논하는 일을 말하니, ‘상께서 조용히 조섭하시는 중에 어의를 죄주기를 청하는 것은 번거롭고 요란함에 걸릴까 두려우나 송석경의 논의를 끝내 그치게 할 수 없으며, 허준의 죄는 또 온 나라 사람이 말하는 바이기에 내일 일찍이 함께 모여 논계해서 미진한 일이 없도록 하자.’ 하므로, 신 또한 연명하여 동료에게 간통하였습니다. 이튿날 신이 마침 천한 병이 거듭 일어나서 본원의 모임에 나아가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석상의 논의가 같지 아니하였음은 비록 무슨 일인지 모르나, 신이 이미 그 논의에 참여하였으니, 형세가 동료를 처치하기 어려우며, 어제는 날이 저물었으므로 이제야 나와 인피하오니, 태만한 죄 또한 많습니다. 파직하소서.”

하니,

“사양 말고 물러가 기다리라.”

하였다.

○ 대사헌(종2품) 홍식(洪湜)이 아뢰기를,

“상감께서 조섭하신 지 1년이 거의 다하여도 아직 시원히 회복하시지 못하니, 모든 대소 신민은 밤낮으로 걱정합니다. 혹시 의관이 약을 씀에 마땅함을 잃은 염려가 없지 않아 논죄하여 다스리는 일은 말 수 없습니다. 다만 신의 망령된 생각으로는, 성상의 환후에 약을 씀은 사체가 지극히 중하여, 반드시 먼저 어떤 증상에 어떤 약이 마땅하고 아니함을 궁리하고, 그런 다음에 약을 쓴 것의 시비를 논할 수 있으며, 또 청(廳)을 베풀고 시약(侍藥)하는 일이 아직 파하지 아니하였는데, 이런 때에 번거롭고 요란하게 하여 크게 조용히 조섭하심을 방해함은 신하의 심정에 매우 미안하므로, 며칠 전에 장령 유경종이 이 일을 논하자고 하였으나, 신의 의견이 이러하여 구차히 좇을 수 없었습니다. 이제 유경종이 인피하는 말을 보니, 다시 전에 듣지 못한 말을 내어서 은연히 진계하였으니, 그 뜻을 실로 알 수 없습니다. 신 또한 스스로 옳다 하여 그대로 무릅쓰고 처치할 수 없습니다. 청하옵건대 파직하소서. ”

하니,

“사양 말고 물러가 기다리라.”

하였다.

○ 집의(종3품) 유희분이 아뢰기를,

“지난달 22일에 장령 유경종이 신에게 와서, 말이 어의가 약을 씀에 마땅함을 잃은 죄에 미치자, 논핵하고자 하였습니다. 신이 일찍이 성상께서 오랫동안 조섭하시는 중에 있으되 평상으로 회복하심을 보지 못하여 민망해하고 있다가, 이 말을 듣게 되자 번쩍 마음이 움직여서, 감히 이론(異論)을 만들어 막지 못하고, 다만 동료들이 혹은 뒷날 모여 의론하자는 말로 대답하므로 논의를 꺼내지 못하였습니다. 이제 사간 송석경이 피혐하는 말을 보니, 신이 일을 의논함에 태만한 실수가 뚜렷합니다. 청하옵건대 파직하소서.”

하니,

“사양 말고 물러가 기다리라.”

하였다.

○ 장령 이구징(李久澄)과 지평(정5품) 남복규(南復圭)ㆍ성시헌(宬時憲)이 아뢰기를,

“성상의 환후가 쾌차하시지 않으니, 의관들이 약을 씀에 마땅함을 잃은 죄를 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전에 장령 유경종이 죄주기를 청한 논의가 있었는데, 신의 망령된 생각으로는, 상께서 바야흐로 조섭하시는 가운데 계시니, 잠시 성상의 환후가 조금 편안하시기를 기다린 뒤에 처리하시기를 의논하여도 늦지 않을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유경종이 피혐하는 말에, 전에 듣지 못하던 말을 다시 내었으니, 그 뜻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신 등이 그대로 무릅쓰고 처치할 수 없음은 대사헌과 다름이 없으니, 파직하소서.”

하니,

“사양하지 말고 물러가 기다리라.”

하였다.

○ 약방 제조가 아뢰기를,

“신 등이 모두 보잘것없어 본디 의방(醫方)을 알지 못하여 시약(侍藥)한 이래로 황송하고 민망스러운 마음이 조금도 풀린 적이 없었는데, 이제 대간의 인피하는 말에, 약을 씀에 마땅함을 잃었다 하여 죄를 의관에게 돌립니다. 성상의 환후에 약을 씀은 비록 의관이 주관하나, 신 등이 함께 참여하여 상의하지 않은 적이 없으므로, 죄가 없는 것처럼 무릅쓰고 있을 수 없습니다. 삼가 바라옵건대, 상께서는 빨리 신 등을 파직시켜, 여정(輿情)을 편안케 하시고, 내의원을 중하게 하시면, 더없는 다행이겠습니다. 고요히 조섭하시는 때를 당하여 이런 번거롭고 요란스러움이 있음은 신 등의 소치이니, 더욱 황공하옵기에 땅에 엎드려 죄주시기를 기다립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대간이 허준을 논죄코자 하는 뜻은 알 수 없거니와, 이는 약을 쓸 수 없게 하려 함이요, 또한 고요히 조섭할 수 없게 하려 함이다. 허준은 별로 맞지 않는 약을 망령되이 쓴 죄는 없다. 사양치 말라.”

하였다.

○ 우의정이 두 번 정사(呈辭)하였으나, 나라의 기제(忌祭) 이므로 승정원에 머물러 두었다.

○ 옥당(玉堂)이 차자를 올리기를,

“……옥후가 편찮으신데 오래도록 평상으로 회복하지 못하시니, 그 인군을 근심하고 사랑하는 성심에 있어, 어쩌면 의관이 적실히 알지 못하고, 약이 병환에 맞지 않아 오래도록 효험을 보지 못하는 것이나 아닌지, 구구한 아랫사람의 심정으로 누구나 다 그러하지 않겠습니까마는, 의관의 잘잘못과 약의 맞고 안 맞음을 모르고서 가벼이 쉽게 의논한다면, 약을 쓰는 의관으로 누가 두려워하지 않고서 그 의술을 다하겠습니까? 지금의 허준을 논죄하고자 하는 의논은 진실로 신하의 지극한 심정에서 나온 것이므로, 고요히 조섭하시는 때에 번거롭고 요란하게 하는 것이 온당치 못하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은 것은, 비록 진정하기를 힘쓰는 것과는 다름이 있을지라도, 그 고집하여 말하는 바는 또한 군부의 병환을 위한 것입니다. ‘날이 이미 저물었으니 이튿날 나와 의논하자.’는 것은 형세로 당연한 것입니다. ‘시약이 아직 파하기 전에 수의를 논죄하는 말은 옳지 않으며, 어느 약이 알맞고 안 맞음을 구명한 다음에라야 바야흐로 약을 씀에 있어서의 시비를 논할 수 있으니, 잠시 뒷날을 기다려 함께 모여서 처치하자.’고 하는 것이 가장 사체에 합당한 것입니다.

동료가 군부의 병환으로써 와서 말하면 감히 이론을 짓지 않음은 사리에 당연하며 모두 피할 만한 혐의가 없는데, 동료가 다 듣지 않은 일에 새 말을 함부로 지어내어 은연히 성상의 귀를 더럽히고서 거짓을 꾸미는 계교로 삼는 것은 지극히 말도 안 됩니다. 청하옵건데, 대사헌 홍식ㆍ집의 유희분ㆍ장령 이구징ㆍ지평 남복규와 성시헌ㆍ대사간 유간ㆍ사간 송석경ㆍ헌납 송부ㆍ정언 구혜와 임장을 아울러 출사케 명하시고, 장령 유경종은 체차하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그리하라.”

하였다.

20일 ○ 사간 김대래(金大來)가 아뢰기를,

“성상의 환후가 오래도록 평상으로 회복하지 못하시니, 신하의 근심과 민망함이 의당 어떠하겠습니까? 그런데 송석경과 유경종 등은 군부의 병환을 염려하지 않고, 오직 기회를 타서 일을 일으키는 것을 급하게 여겨, 청(廳)을 베풀어 시약하는 날을 당하여, ‘약을 씀에 마땅함을 잃었다.’는 논의를 빌어서, 수놈이 선창하면 암놈이 화답하듯 서로 다투어 사피하여 온건치 못한 꼬투리를 일으켰습니다. 경종은 망령되게 잡된 약을 썼다는 것으로 말을 삼아 뒷날의 재앙을 씌울 소지를 만드니, 이는 의관을 얽매어 감히 약을 의논하지 못하게 하고, 성상의 귀를 더럽히고 어지럽혀 고요히 조섭하실 수 없게 하는 것이어서, 그 마음의 소재를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뜻을 잃은 무리가 서로 때를 타서 몰래 선동하고 당사자를 얽어 모함하고 자기의 사사로운 원망을 풀려 하여, 이처럼 연달아 발론한 것에 지나지 않을 뿐입니다. 여정이 놀랍고 분하게 여기지 않는 이가 없으므로, 신이 이것을 가지고 논계하고자 하여 완석(完席)에서 발언하였더니, 동료의 의논이 같지 아니하였습니다. 신이 어찌 감히 스스로 제 의견을 옳다 하여 버젓이 그대로 무릅쓰고 있겠습니까? 청하옵건대, 신의 직을 파하소서.”

하고, 헌납 송부와 정언 구혜가 아뢰기를,

“금일 완석에서 사간 김대래가, ‘송석경과 유경종 등은 군부의 병환을 염려하지 않고, 오직 기회를 타서 일을 일으키는 것을 급하게 여겨, 청을 베풀어 시약하는 날을 당하여, 「약을 씀에 마땅함을 잃었다」는 논의를 빌어서, 수놈이 선창하면 암놈이 화답하듯 온건치 못한 꼬투리를 끌어 일으킨다,’ 하여 논계하려 합니다. 신 등의 소견도 김대래와 다르지 아니하매, 구차히 무릅쓰고 있을 수 없습니다. 청하옵건대, 파직하소서.”

하고, 대사간 유간은 아뢰기를,

“ 일전에 송석경이 허준의 약을 씀에 마땅함을 잃은 죄를 논할 적에, 신이 처음에는 생각하기를, 군부께서 바야흐로 고요히 조섭하시고 계시는데, 수의의 파직을 청하는 것은 번거롭고 요란스럽지 않을까 하여, 성상의 환후가 쾌차하신 뒤에 천천히 논의하여 처리하려 하였으나, 송석경의 논의를 끝내 그만두게 할 수 없기에, 함께 모여서 의논하려 하였으되, 동료의 의논이 같지 않아서 분분하게 인피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사간 김대래가 ‘송석경이 군부의 병환을 염려하지 않고 「약을 씀에 마땅함을 잃었다」는 논의를 빌어서, 온건치 못한 꼬투리를 일으킨다.’고 논하고자 했습니다. 신이 허준을 논하고자 함은 어찌 한 터럭만큼이라도 딴 뜻이 그 사이에 있었겠습니까? 오직 성후가 오래도록 차도가 없으시매, 중외의 공론이 모두 약이 병환에 맞지 않음을 염려하여서, 신하된 분수와 의리로 구부의 병환에 진실로 근심하지 않을 수 없어서, 송석경의 논계에 좇았던 것입니다. 신이 이미 그 논의에 참여하였을 뿐이니, 이제 뻔뻔스레 직위에 있을 수 없습니다. 청하옵건데, 파직하소서.”

하고, 정언 임장은 아뢰기를,

“전일에 송석경이 허준의 죄를 논하고자 한 것을 처음에는 공론으로 여겼으되, 또한 소요가 있을까 염려되어, 신이 대사헌과 연명하여 동료에게 답통(答通)하였었습니다. 사간 김대래 등이, ‘송석경은 「약을 씀에 마땅함을 잃었다」는 논의를 빌어 온건치 못한 꼬투리를 일으킨다’ 하여, 논계하려 하였으되, 동료의 의논이 같지 아니하여 인피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신이 처음에 송석경의 논의가 일을 일으키려 하는 줄 몰랐으나, 신이 이미 함께 참여하였으니, 형세가 그대로 무릅쓰고 있기 어렵습니다. 청하옵건대, 파직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고 물러가 기다리라.”

하였다.

○ 사헌부가 아뢰기를,

“송석경과 유경종 등은 군부의 시약하는 날을 당하여, ‘약을 씀에 마땅함을 잃었다’는 논의를 빌어서, 몰래 서로 선창하며 화답하여, 일신의 사사로운 감정을 풀려하다가, 서로 연달아 사피하여 크게 어지럽고 요란한 단서를 일으켰으니, 고요하게 조섭하심을 이에 크게 방해하였고, 또 망령되게 ‘잡된 약을 썼다’는 말을 만들어서, 은연히 뒷날 재앙을 씌울 소지를 만들어 의관으로 하여금 그 손발을 묶이게 하고, 당사한 이들도 또한 동요케 하였으니, 남의 사주를 받아서 때를 보아 기이하게 맞추는 꾀는 교묘하다 하겠습니다. 무릇 보고 들음에 놀랍고 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청하옵건대, 파직을 명하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윤허한다.”

하였다.

○ 사간원이 아뢰기를.

“상의 몸이 편찮으신 지 오래도록 평상으로 회복하지 못하매, 신하의 민망한 정성에 있어, 혹시 약을 씀에 마땅함을 잃지 않았을까 염려함은 진실로 지극한 심정은 같을 것이니, 만약 무슨 병에 무슨 약이 맞고 안 맞음을 불문하고 문득 먼저 수의를 논죄할 것 같으면, 약을 의논할 때에 감히 그 의술을 다하지 못할 것이요, 고요히 조섭하고 계시는데 크게 방해되는 것은 소요이니, 이는 염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유경종은 본래 하나의 재앙을 좋아하는 무리인지라, 군부의 병환을 급하게 여기지 않고 오직 때를 타서 일을 일으키기를 꾀하여, ‘약을 씀에 마땅함을 잃었다’는 핑계로 의관을 죄주기를 청하며, 동료에게 통하여 그 뜻을 몰래 시험해 보되, 그때에 가서 묻는 사람이 있으면 터놓고 시국이 바뀐다고 말하니, 그 마음 둔 바를 이미 알 만합니다. 동료가 자기의 뜻에 좇지 않음을 알게 되자, 미복(微服)으로 남몰래 송석경의 집에 가서 꾀기도 하고 위협하기도 하여 먼저 사간원에서 발론하게 하였습니다. 석경은 어느 약이 성후에 맞지 아니하였는지를 밝히지 않고 소요가 고요히 조섭하시는 데에 방해됨을 생각지 않고서, 한 번 경종의 말을 듣고 서둘러 오히려 미치지 못할까보아, 동료가 가부를 의논하는 것을 물리치고 먼저 시끄러운 단서를 일으켰으니, 이를 군부의 병환을 위한다고 일컫겠습니까? 경종은 겨우 전에 듣지 못한 말을 가지고 은연히 단서를 일으켜서 뒷날 재앙을 씌울 소지를 만들었으니, 그 남의 사주를 받아 기회를 보아 몰래 선동하고 당사한 이를 모함하여, 자기의 사사로운 원망을 풀려는 형상은 교묘하다 하겠습니다. 물정이 놀랍고 분하게 여기지 않는 이 없습니다. 청하옵건대, 송석경과 유경종을 아울러 파직하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윤허한다.”

하였다.

28일 ○ 약방에 전교하기를,

“일기가 지극히 차고 밤새 별로 약을 쓸 일이 없는데, 듣건대 제조가 모두 입직한다고 하니, 지극히 미안하다. 앞으로는 1원(員)만 입직하라.”

하였다. 약방이 회계하기를,

“신 등이 삼가 성상의 전교를 보건대, 이렇게까지 생각해주시니 못내 감격합니다마는, 밤사이에 비록 약을 쓸 일이 없더라도 성후가 쾌차하시기 전에 1원만 숙직함은 온당치 못하옵기에, 황공하여 감히 아룁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1원만 숙직하여도 넉넉한데, 어찌 꼭 3원이 함께 숙직하는가? 쾌차한 뒤에 1원만 입직한다면, 그럴 날이 없을 듯하다.”

하였다.

 

■정미년(1608, 선조 41, 광해군 1)

1월 19일 전 참판 정인홍(鄭仁弘 : 1535-1623)이 상소하기를,

“신이 삼가 멀리 남쪽 벽촌에서 엎드려 그윽이 듣자옵건대, 옥후가 편찮으신 지가 봄부터였으되 온갖 기무를 그전과 같이 재결하시어 유체되지 않는다 하니, 까닭 없는 환후에 마땅히 약을 쓰지 않고 낫는 기쁨이 있을 터이어서, 약은 써 볼 것이 못 된다고 여겼습니다. 날과 달이 자못 쌓여서 10월이 바뀜에 이르렀어도 더욱 편찮으신 중에 계시매, 중외가 황황하고 원근이 근심하고 민망해 하더니, 열흘이 차지 않아 선뜻 나으시는 경사가 있었습니다. 이는 참으로 천지가 도우신 바요 신명이 붙들어 주신 바이리니, 종묘사직의 다행함이 어떠하며, 신민의 복됨이 어떠하겠습니까?

그러나 그윽이 듣자옵건대, 평상시에도 원증(元症)이 조금 있으시다 하니, 먼 곳에서 전하여 듣고 민망하고 염려됨을 견디지 못하는 터입니다. 신의 몸이 영남에 있어 도성에서 천 리나 떨어져 있고, 나이가 70을 넘어 쇠약함이 안으로 호되고 질병이 밖으로 더하여, 시골집에 움츠려 있으매 아주 근력이 없어, 이제껏 약을 맛보는 뒷자리를 따르지 못하였습니다. 죄가 매우 무거워서 도피하여 숨을 바 없어, 북녘의 대궐을 바라보며 마음을 어찌 할 수 없습니다. 신이 나라의 두터운 은혜를 받고 갚을 길이 없으매 조석간에 죽어 땅 밑에서 무궁한 감회를 품으리니, 지금은 비록 대궐 아래에 나아가지 못한다 하더라도 어찌 몸이 밝으신 성상께서 다스리는 세상을 만나, 소장을 올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홀로 생각컨대, 성후가 아직 다 나으시지 않았는데, 문득 미친 소경의 말로 우러러 천일(天日)의 살피심을 흐리게 함은, 신이 비록 지극히 어리석기는 하나 어찌 마음에 불안함을 모르겠습니까? 다만 종묘사직이 위태롭고 염려되는 형상이 분명히 눈앞에 있고, 국가 존망의 기틀이 조석간에 닥쳐 있으니, 입을 다물고 잠잠히 있을 수는 없는 터이므로, 만 번 죽음을 무릅쓰고 한번 입을 열어서 죽어가는 날에 나라에 보답하는 것으로 삼을까 하여, 부녀자나 환관들이 그대로 덮어 두는 것으로 충성을 삼는 데 따르지 아니하고 그윽이 임금을 사랑하기를 덕으로 하는 의리에 스스로 합하게 하고자 하오니, 전하께서는 굽어 살피옵소서.

신이 적이 소문을 듣건대, 지난 10월 13일에 상께서 전위하거나 섭정케 하시겠다는 전교를 내리시매, 영의정 유영경(柳永慶 : 1550-1608)이 원임 대신(原任大臣)들을 마음에 꺼려 모두 물리치고 다 떠나게 하여 참견할 수 없게 하고, 여러 번 방계(防啓)를 올리되 시임대신(時任大臣)들과만 함께 하였다 합니다. 중전께서 언문으로 된 전지를 내리심에 이르러서는 곧 회계하기를, ‘오늘의 전교는 참으로 여러 사람의 뜻밖에 나온 것이므로 감히 명을 받지 못하겠습니다.’ 하고, 대간은 경계하여 듣지 못하게 하였으며, 승정원과 사관은 그대로 성지를 감추어 오래도록 전해 내리지 않았으니, 영경이 어떤 음모와 흉계가 있기에 이렇게까지 남에게 알리려 하지 않겠습니까?

아! 중전의 참되고 깊으신 뜻은 깊이 전하의 뜻을 깨달으시어 국가의 원대한 계책을 위하심이니, 비록 옛날의 고ㆍ조ㆍ마ㆍ등(高曹馬鄧)의 어짊이라도 또한 이보다 낫지 못할 것인데, 영경이 힘을 다해 막기를 거리낌 없이 하여, 감추지 않아야 할 성지를 감추고 쫓아내지 않아야 할 원임 대신을 쫓아내니, 중외가 전해 듣고 여정이 놀랍고 분해합니다. 아! 국가는 한 집의 사(私)가 아니기에 원임은 참여해 듣는다는 준례가 있는데, 신은 영경이 참여하여 알지 못하게 함이 무슨 뜻인지 감히 모르겠습니다. 나라의 임금이 연고가 있으시면 세자가 나라의 일을 감독하고 머물러 지키는 것은 고금의 공통된 규례인데, 신은 영경이 여러 사람의 뜻밖이라고 말한 것이 어떻게 하려 함인지 감히 모르겠습니다. 대간이 듣지 못한다면, 온 나라 사람의 뜻이 아니며, 승정원ㆍ사관이 함께 감춘다면, 사당이 있음은 알면서 임금의 일이 있음은 모르는 것입니다. 신이 상세히 여쭙겠습니다.

전하께서 깊이 종묘사직의 중함을 생각하시고 옥체의 환후를 헤아리시어, 세자에게 맡기시고 한가히 조섭하시려 하오니, 성명의 하교는 청천백일 같아서 신민이 마땅히 함께 들어야 할 바요 만물이 다 보아야 옳거늘, 하물며 원임 대신으로도 도리어 참여해 알지 못하게 하였음에리까? 그 음흉하고 속이는 형상과 마음먹은 것을 제 멋대로 행하는 정상은 불을 보듯이 명확합니다. 아! 영경은 본래 간계가 있거니와, 원임 대신인들 어찌 잘못이 없다 하겠습니까? 도목정사는 이미 참여하여 들어야 할 것인즉, 어찌 영경이 혼자 제 멋대로 하는 것을 받아들여 잠잠히 쫓기기를 양떼와 같이 하고 말겠습니까?

무릇 일이 있으면 반드시 빈청에서 널리 의논케 하는 것은 곧 권간(權奸)이 멋대로 횡행하는 환란을 막으려는 까닭인데, 필경에는 이와 같으니, 장차 저런 정승을 어디에 쓰겠습니까? 여러 사람의 뜻밖에서 나왔다고까지 말하니, 이른바 여러 사람의 뜻이란 무엇을 가리키는 것입니까? 그 사당이 하고자 하지 않은 바라고 한다면, 다만 몇 사람의 음모와 간계를 가지고 가리켜서 여러 사람의 뜻이라 하면서 임금의 귀와 눈을 속이는 것입니다. 나라 사람이 바라지 않는 바라고 할 것 같으면, 전위하거나 섭정케 하여 인심을 매어 두고 나라의 근본을 정하고서 고요히 옥후를 조섭하시어 빨리 완쾌하는 경사를 오게 하는 것이, 조정 고관들의 심정이요 서울 선비와 아낙들의 심정이요 온 나라 백성의 심정입니다. 모든 혈기 있는 자가 똑같이 그러할 터인데, 여러 사람의 마음이 아니라 말하니, 이는 뚜렷이 임금을 업신여기는 마음이 있으면서 감히 합조(盍朝)의 울음을 하는 것입니다.

신이 감히 모르오나, 먼저 성상의 뜻을 결단하시고 여러 왕자 중에서 골라 동궁 자리를 정하셨음은 전하께서 아들을 알아본 것이 아니오리까? 의인왕후(懿仁王后)께서 어루만져 당신의 소생으로 하시고, 옥책(玉冊)에 실으셨음은 전하의 본의가 아니셨습니까? 대가(大駕)가 서행(西幸)하셨을 때 조정을 나누어 대조(大朝)와 소조(小朝)라 일컫게 하시고 감무(監撫)를 맡겨 백관이 신이라 일컫게 하셨음은 전하의 밝으신 교지가 아니셨습니까? 들어와 병환을 모시게 하시니, 생각하시거나 버리고 다른 데에 구하시든, 이름하여 말하셔도 참 마음에서 나오신다 해도 세자뿐이었음은 전하의 성스러운 생각이 아니셨습니까? 세자가 입시한 뒤에 한밤에 울며 한데 서서 하늘에 빌어, 원성(元聖 주공(周公)을 일컬음)이 죽음을 대신 청한 정성을 다하였음은 전하께서 아시는 바가 아닙니까? 무릇 이 몇 가지는 상께서 마음으로 사랑하신 바요, 하늘의 해가 굽어 본 바요, 나라 사람이 아는 바 아닌 것이 없는데 영경이 이처럼 두 마음을 품으니, 이는 세자를 업신여기는 것입니다.

전하의 옥체의 환후가 비록 아주 나으시지 않았지만 조금 평안해 가심은 또한 세자의 정성스러운 효심이 하늘을 감동한 소치입니다. 나라 사람이 전해 듣고 느껴 울지 않는 이가 없으며, 모두 이르기를, ‘성상의 교훈이 이와 같이 도리에 맞고 세자의 정성스러운 효심이 이와 같이 상하에 미치고, 성스러운 아버님에 이와 같이 어진 아드님이 계시니, 나라의 복이 끝없다.’ 합니다. 물정의 다소로 말할 것 같으면, 전위하거나 섭정케 하고 조섭하시는 일이 나라 사람의 함께 바라는 바이온데, 나라 사람 밖에 다시 여러 사람의 뜻이란 것이 있겠습니까? 그 말을 가지고 그 마음을 살펴보면 뒤에 스스로 사미원(史彌遠)이 되어 우리 동궁을 제왕(濟王)이 되게 하려는것입니다. 영경이 스스로 동궁에게 위해를 꾀한 정상이 이미 드러났음을 알게 되었으므로 시기하고 틈 생기는 것이 날로 깊어가고 그 자신을 위하여 계획하는 데에는 이르지 못할 바가 없을 것이온데, 전하께서는 영경이 그래도 다시 우리 임금의 아들로 동궁을 보리라고 이르시겠습니까? 그 형세는 장차 이에 그치지 않고 반드시 그 간사한 계략을 부려서 그 흡족한 마음을 얻은 뒤에야 그만둘 것입니다.

적이 생각건대, 조정에서 영경을 베어야 한다고 하는 사람이 마땅히 있으리라 여겼는데, 10월부터 이제까지 들리기를 기다렸으되 잠잠하여 그런 사람이 없으니, 몸이 요로에 있는 자는 모두 영경의 가신이어서 영경이 있음만 알고 전하가 계심을 모르며, 차라리 전하를 저버릴지언정 차마 영경을 저버리지 못하여서입니다. 말하지 않는 대간은 영경의 조아(爪牙)이며, 오직 잠잠히 종용하는 대신은 영경의 우익이며 이어서 승정원과 사관의 숨기는 것은 영경의 심복이어서입니다. 전하의 고굉 노릇하는 대신이면서 대신이 이와 같고, 이목 노릇하는 대간이면서 대간이 이와 같으며, 후설 노릇하는 승정원과 춘추관의 사관이면서 승정원과 사관도 이와 같으니, 전하께서는 위에서 고립되시어 개미만한 것에도 기댈 데가 없으시어, 어진 세자가 있으되 서로 보존하지 못하실 것입니다. 신이 보건대, 전하 부자를 해하는 자가 영경이요, 전하의 종묘사직을 망하게 하는 자가 영경이요, 전하의 국가와 신민에게 재앙을 주는 자 또한 영경입니다.

아! 참으로 가령 세자가 애당초 선택되어 뒤를 잇지 못하셨다면 또한 한 왕자일 뿐이니, 어찌 이렇게까지 동요되고 의심하는 근심이 있었겠습니까? 이는 전하께서 처음에는 선택하여 세자로 삼으시고 마침내는 헤아리지 못할 곳에 끌어들이신 것이오니, 전하께서는 한 흉악한 신하에게 무슨 어려움이 있으시기에 장차 어진 세자에게 재앙을 끼치려 하신단 말입니까?

송 고종(宋高宗)은 말기의 중등가는 임금이며 질병도 없었으나, 종실의 아들인 진안왕(晉安王)을 택하여 황제의 후사(後嗣)로 삼고, 이어 손위(遜位)하며 이르기를, ‘부탁한 것이 훌륭한 사람을 얻었으니, 유감이 없다.’ 하였는데, 사관은 특필하여 ‘아름다운 일[미사]’이라 하고, 군자는 ‘요순의 선위[堯舜之禪]’라 일컬었습니다. 이제 세자가 임시 섭정을 한다면, 친족으로는 낳으신 아들이고 인품으로는 인효(仁孝)의 덕이 있고 시기로는 옥후가 편찮으신 때이니, 낳으신 아드님으로 편찮으신 날이기에 전위하거나 섭정케 하고 조섭한다는 명을 내리신다면, 대신으로서는 마땅히 순종하여 오직 미치지 못할까 두려워해야 할 것인데, 도리어 재앙을 일으킬 마음을 품고 사(私)를 공(公)이라고 외치고 여러 사람의 뜻이 아니라고 말하니, 이를 차마 할 수 있거든, 무엇을 차마 하지 못하리이까?

하물며 일찍이 왜구의 난을 당하였을 때 소조(小朝)가 남으로 내려가 군(軍)을 무마하고 나라를 감독하여 오래도록 온 나라의 촉망이 붙었으며, 대가가 환국하신 뒤에는 동궁의 자리로 돌아가니, 전례가 이미 이루어졌고 사리가 공명 정대 하였습니다. 이제 임시 섭정하는 것은 구례를 참조한 일이기에 티끌만한 의심도 없는데, 영경은 거짓과 허망을 일삼고 방해하고 억누르며 재갈 먹여 말 못하게 하고 몰래 사주하고 멋대로 협박하여 한번 눈 깜짝할 사이에 예전에 없던 일을 하니, 흉악하기가 김안로(金安老)보다 더하여 길가는 사람들이 눈치만 보아 흘끔거리어 차마 말 못할 일이 있을 것이오니, 이것이 바로 이른바 만연되면 방지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영경의 이런 거조는 전하께 아양을 떠는 것으로 총애를 굳혀 나라를 제멋대로 하려는 계교입니다. 이는 용렬하고 혼암한 군주의 때라면 혹시 부릴 수 있는 것이나, 전하의 건강(乾剛)은 사(私)를 물리치지 못하심이 없고, 전하의 밝으심은 어두움을 밝히지 못하심이 없는데도 감히 이와 같으니, 신이 그윽이 의혹컨대, 진실로 어리석고 망령됨이 아니라면 혹시 믿는 바가 있어서인가 합니다. 신이 듣건대, 《주역》에 이르기를, ‘너무 막지 아니하면 따라 혹 죽일 것이라, 흉하다.’ 하였습니다.

삼가 바라옵건데, 전하께서 깊이 종묘 사직의 계책을 생각하시고 다시 전철을 거울삼으시고 간사하고 흉악한 정상을 살피시어, 더욱 엄하게 방비하시되 지나칠까 염려하지 마시고, 빨리 영경이 동궁을 동요하고 종묘사직을 위태롭게 하기를 도모한 죄를 들어, 한 번 떳떳한 형벌을 내리시어 계은(繼恩)과 창령(昌齡) 같은 간사한 자로 하여금 뒷날에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하시고, 나라의 근본을 굳히시어 종묘사직을 행복케 하시어서 억만년 끝없이 평화롭게 하소서. 신이 지나친 염려를 하였다고 생각하시면 먼저 망령된 말을 한 주벌을 내리시어 간사한 무리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신다면, 신이 성명의 밑에서 죽게 되고 영경의 흉악한 재앙에 죽지 않으리니, 참으로 바라는 다행이지 한되는 바가 아닙니다.

신은 진실로, 옛부터 권간의 죄를 직언하기를 장강(張綱)이 양기(梁冀)를 탄핵하여 아뢰고, 호전(胡銓)이 진회(秦檜) 베기를 청하다가, 모두 음흉한 중상을 입어 혹심하게 재앙을 받았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윽이 생각건대, 옛 사람은 이웃 나라 임금을 죽인 신하에게는, 비록 이미 늙어 벼슬에서 물러났을지라도 오히려 토벌하기를 청했다는데, 하물며 우리 조정에 있으면서 임금을 배반하고 나라를 그르치는 흉악한 자를 어찌 마침 몸이 한산한 곳에 있다 하여 입을 닫고 혀를 물고서 상감을 저버리고 기꺼이 불충한 신하가 되어, 스스로 천지와 귀신의 죽임을 구하겠습니까? 삼가 전하께서 굽어 살피시기를 바랍니다.”

하니, 계(啓)자를 찍지 않고 내려 보냈다.

21일 ○ 영의정 유영경이 상소한 대개는, ‘몸이 악명을 입었으니, 청하옵건대, 빨리 사패에 내리어 신의 죄를 다스리어 사람들의 말에 보답하라.’는 것이었는데, 비답하기를,

“정인홍의 상소를 보건대, 지극히 흉참하나 다만 볼 수 없게 한 것뿐인데, 내가 마음의 병이 있어 바로 볼 수 없으므로 얼핏 보아 넘겼을 따름이오. 그 사이에 나에게 관계되는 말까지 있는데 또한 그 말하려는 뜻을 알 수 없으니, 더욱 음험하오. 인홍이 까닭 없이 임금의 마음을 흔들고 영상을 모함하니, 생각건대, 여러 소인 중에 영상을 모함하려는 자가 유언비어를 만들어서 영남에 퍼뜨리매, 인홍이 주워들어 이 소문(疏文)을 만들었는가 하오. 그 말이 비록 견주어 볼 것은 못 되나, 무사한 가운데에 일을 만들어 지친(至親) 사이에 이로 말미암아 의심하게 되어 사이가 벌어지지 않을 수 없어서, 조정에 혹시 화합되지 못함이 있다면 크게 불행하겠소. 스스로 돌이켜 보아서 곧다면, 비록 천만 인이 떠들더라도 무슨 혐의가 있겠소. 또한 그 전교한 일은 원래 삼공에게만 전하게 한 것이고 널리 대신들에게 전한 것이 아닌데, 저 떠들썩하는 자는 과연 누구인가? 경은 안심하고 직무에 나아가고 염려하지 마오.”

하였다.

○ 헌납 성시헌(成時憲)ㆍ정언 구혜(具寭)ㆍ장령 이경기(李慶祺)와 남복규(南復圭)ㆍ지평(持平) 송석조(宋碩祚)와 황근중(黃謹中)이 아뢰기를,

“삼가 정인홍이 올린 상소의 사연을 보건대, 힘써 영의정 유영경을 헐뜯고 극악한 이름을 덧붙이고 또 대간을 조아(爪牙)라고 합니다. 신 등이 모두 보잘것없으면서 대간의 반열에서 대죄하다가 이렇게 극도에 이르도록 헐뜯고 배척함을 두드러지게 입으매, 뻔뻔스레 무릅쓰고 있을 수 없으니, 청하옵건대 물리쳐 파직하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사양 말고 물러가 기다리라.”

하였다.

○ 옥당의 차자는 전한 김대래(金大來)의 독계(獨啓)였는데,

“왕세자가 동궁에 정위(正位)된 지 이제 17년이어서, 천의(天意)가 이미 정해졌고 인심이 이미 돌아갔으니, 진실로 대악무도한 사람이 아니면 누가 감히 그 사이에 딴 뜻을 갖겠습니까? 국가가 불행하여 사림이 둘로 갈리고 인심의 헤아릴 수 없음은 이미 극에 다다랐으며, 거짓을 꾸미고 없는 일을 만들어 내기를 온갖 방법으로 다하고, 유언을 지어내어 중외에 퍼뜨리는 것도 일조일석의 일이 아니온데, 인홍의 상소가 문득 이때에 나와서, 영경이 동궁을 동요하고 종묘사직을 위태롭게 하기를 도모하였다 하여 죄로 삼기에 이르렀습니다. 허다한 말들이 지극히 흉악하고 지극히 참혹하니, 신하로서는 차마 듣고 말할 수 없습니다.

아! 성상의 자애가 극진하시고 동궁의 효성이 지극하시며 양궁 사이에 화기가 가득하니, 온 나라의 신민이라면 누가 억만 년 끝없는 경사라고 경축하지 않겠습니까? 영경이 참으로 죄가 있다면 이는 종묘사직의 역적이어서 사람마다 다 죽일 수 있거니와, 시비가 없다면 반드시 간사한 사람이 이 근거 없는 말을 만들어서 초야의 사람에게 손을 빌려 몰래 귀역(鬼蜮)의 꾀를 내부리는 것이니, 그 꾀함이 또한 교묘하지 않습니까?

영경이 죄가 있고 없음은 족히 말할 것이 못 되나, 양궁의 말을 들추기까지 하여 우리 성상의 골육(骨肉)을 이간코자 하니, 아! 송나라 때의 사람이 이른바, 희풍(熙豐)의 옛 신하에는 간교한 소인이 많아 뒷날에 부자의 의를 가지고서 임금 집안을 이간하는 자가 있다고 한 것이 불행히 이에 가까웠으니, 어찌 통탄하지 않겠습니까?

대저 지금의 이 상소는 한낱 영경을 모함할 뿐 아니라, 반드시 일망타진하여 나라를 비게 한 다음에야 그만둘 것이니, 대간이 아울러 헐뜯고 물리침을 입은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어찌 무망한 말을 가지고 가벼이 언관을 바꾸겠습니까? 청하옵건대, 헌납 성시헌ㆍ정언 구혜ㆍ장령 이경기와 남복규ㆍ지평 황근중과 송석조를 아울러 출사케 명하시고, 사간 이필영(李必榮)은 월과(月課)를 짓지 아니하였으니, 체차(遞差)하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윤허한다.”

하였다.

○ 좌의정 허욱(許頊)과 우의정 한응인(韓應寅)이 아뢰기를,

“지난해 11월 11일에 신 등이 원임 대신과 함께 빈청에 있다가 삼가 삼공을 부르시는 전교를 듣고, 밀부(密符)를 받들어 맞춘 뒤에 곧 차비문(差備門) 밖에 나아갔더니, 영의정 유영경이 시약청으로부터 나왔습니다. 모여 앉은 지 오래지 않아 또 빈청에 가서 모이라는 전교를 내리시매, 신 등이 영경과 더불어 빈청에 나아갔더니, 원임 대신은 이미 나갔사오며, 전위하거나 섭정케 하신다는 전교를 받고 곧 이어 중전의 언서가 전해오므로, 신 등이 놀라고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잃고 정신이 날아갔습니다. 그래서 회계할 적에는 상의하여 어구를 짓기를 다만 신자의 지극한 심정을 아뢰었을 뿐이지, 어찌 거기에 한 터럭만큼이라도 다른 뜻이 있었겠습니까?

이제 정인홍의 상소를 보건대, 신 등의 계사 중의 한 토막의 글을 따내어 많은 말로 옮겨 만들어서, 영경이 동궁을 동요하였다 하고, 신 등이 부추겨서 함께 하였다고 말하고, 또 우익으로 지목하였습니다. 영경을 이미 이로써 죄명을 삼았으면 우익이 된 자도 그 죄가 똑같으리니, 어찌 오로지 영경에게만 죄를 돌리고서 뭇 사람이 우러러보는 자리에 구차히 무릅쓰고 있겠습니까? 삼가 원하옵건대, 상께서 빨리 신 등의 직위를 물리쳐 파하소서. 이러한 조섭하시는 날을 당하여 번잡스럽게 하는 것이 미안함을 잘 아오나 이미 남의 말썽을 입었으니, 스스로 성상께 밝히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매우 황공하여 땅에 엎드려 대죄합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인홍의 말은 실성한 사람 같아, 하는 짓이 지극히 마음을 아프게 하오. 영상을 무함할 뿐만 아니라, 일시의 대간과 시종(侍從)을 모두 패거리로 지목하여 다 죄망에 돌아가게 하니, 이는 일망타진할 계교라 하겠소. 그 마음의 참혹한 것이 그 같을 수 있겠는가? 경등은 마땅히 안심하고, 직무에 나아가고 대죄하지 마오.”

하였다.

○ 승정원이 아뢰기를,

“신 등이 모두 용렬하고 노둔하면서 후설(喉舌)의 직무를 맡아, 왕명 출납을 성실히 하여야 할 직책은 비록 그 만분의 일도 다하지 못하였으되, 승정원에 내려오는 옛 규례는 반드시 준수하여 훼손하고 폐기하게 하지 않고자 함은 신 등의 구구한 뜻입니다. 전부터 모든 밖으로부터 들어온 비밀한 일은 봉하여 받아들이고, 안으로부터 내리는 것을 조보(朝報)하기 전에 대간이 물어 알고자 하면 성상소(城上所)에서 서찰로 답을 보내는 것이 곧 옛 규례입니다.

지난해 겨울에 상께서 삼공을 부르시고 이어 봉서(封書)를 내리시매, 그때에 사간원에서는 서찰로 주서(注書)에게 물었으므로 곧 답장을 보내었으되 사헌부에서는 주서를 시켜 써서 보내게 하였습니다. 주서가 신 등에게 말하기를, ‘사헌부가 간통(簡通)하지 않고서 서찰로 답장을 보내라고 조르는데 이는 규례가 아니니, 어떻게 처리할까……’ 하므로, 신 등이 말하기를, ‘서찰로 서로 통하는 것은 본래 규례가 있으나, 간통(簡通)하지 않았는데 주서를 시켜 바로 서장을 보내는 것은 승정원 안의 옛 규례가 아니다.’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분부하였더니, 조금 있다가 사헌부가 간통하였으므로 곧 회답하였습니다.

이제 정인홍의 상소의 말을 보건대, 신 등이 ‘상의 전지를 비밀히 하여 오래 전하여 내지 않으니, 사당(私黨)이 있음은 알되 임금 일이 있음을 모른다.’ 하여 추잡하게 헐뜯고 떠들썩하기를 남김없이 합니다. 인홍의 무망(誣罔)하고 날조함은 진실로 깊이 견줄 것이 못 되나 신 등이 직무를 봉행함이 보잘것없어서 남의 말썽을 입음이 이러한 지경에 이르렀으니, 황공함을 이기지 못하여 석고 대죄합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한낱 터무니없는 망령된 상소로 말미암아 어지러이 소요함은 옳지 않다.

대죄하지 말라.”

하였다.

○ 비망기에,

정인홍이 세자로 하여금 빨리 전위를 받도록 하고자 함은 그 스스로를 꾀하는 것으로서, 자신은 세자를 위하여 충성을 다한다고 할 것이나 실상은 불충이 심하다. 제후의 세자는 반드시 천자의 명을 받은 다음에야 바야흐로 세자가 될 수 있는데, 지금 세자는 책봉하는 명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천자가 허락하지 않은 것이며 천하가 모르는 것이다. 하루아침에 문득 전위를 물려 받았다가, 만일 중국 조정에서 따지기를, ‘너희 나라의 이른바 세자는 중국 조정에서 책봉을 허락하지 않았는데, 너희 왕이 사사로이 전위하니, 너희 왕이 직위도 천자의 직위이며, 너희 왕이 마음대로 한 바가 아니라면 세자가 또한 어찌 사사로이 받겠는가? 중간에 그럴 만한 까닭이 있기 때문이냐?’ 하면서, 헤아리지 못할 죄명을 세자에게 씌우고 대신에게 따져 물으면 어떻게 끝을 맺으랴? 나는 특히 한 몸의 괴로움으로 말미암아 물러나려 하나, 대신이 나랏일을 하는 데 있어 어찌 주도면밀하게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것이 어찌 조급하고 망령된 사람의 생각이 아니랴? 대신이라면 어찌 다만 옛 임금이 물러남을 받아들이고 말 뿐이겠느냐? 이제 인홍의 상소로 말미암아, 위로는 내 마음이 불안하여 밤에 잘 수 없고 낮에 먹지 못하며, 아래로는 대신과 대신(臺臣)이 다 그 직무에 안정치 못하니, 전에 없는 변고라고 할 만하다. 승정원은 잘들 알라.”

하였다.

○ 충주에 사는 진사 이정원(李挺元) 등이 상소하기를,

“적신(賊臣) 유영경은 음험하고 교활한 자질을 가지고서, 더없이 흉악한 죄를 지고도 정승 자리를 훔쳐 차지하고 천지간에 숨을 붙이고 있으니, 귀신과 사람이 함께 분하게 여긴 지 오랩니다. 다행히 전 참판 정인홍이 몸을 잊고 나라를 위해 멀리서 정의를 폄에 힘입어, 온 나라가 다 경축하고 드러내서 죽이기를 바란 지 여러 날이 지났는데, 성지가 아직도 내리지 않으매, 여러 사람의 심정이 더욱 우울하며 하늘과 땅이 닫힐 것 같으니, 우리나라 2백 년의 종묘 사직이 마침내 이 적신의 손에 무너져야만 합니까?

신 등이 삼가 보건대, 흉적의 괴수가 오래도록 큰 권세를 훔쳐 뿌리가 이미 굳고 기세를 사납게 펴서 한 세상을 졸라 누르니, 조야가 그 음흉한 중상을 두려워하여 마음으로는 그 잘못을 알면서 입으로는 말하지 못하며, 원신(元臣)ㆍ고로(故老)가 그의 부름과 물리침에 일임하고, 대각(臺閣)ㆍ근시(近侍)가 그의 지휘에 승복하여, 나라의 형세가 아침이슬과 같이 위태롭습니다. 그러니 누가 기꺼이 덫을 밟고 칼날에 닿아가면서 전하를 위하여 한번 입을 열고자 하겠습니까. 인홍이 말한 뒤에는 흉악한 무리가 더욱 방자하여 거의 돌아보고 꺼림이 없으며, 직무가 언책을 띤 자도 또한 대죄하지 않으니, 임금을 업신여기고 방자하는 형상이 이렇게까지 매우 뚜렷합니다. 서리를 밟으면서 경계하지 않으면 굳은 얼음이 곧 닥쳐오리니, 앞으로 올 재앙은 차마 말하지 못할 것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신 등이 몸은 초야에 있으되 상감의 은택에 흠뻑 젖어 있으면서, 크게 교활한 자가 나라를 마음대로 하고 상감을 속이는 것을 보고도 아직 한 마디 간언을 아뢰지 못하였으니, 신 등이 전하를 저버렸음도 또한 이미 많습니다. 참마음이 있는 바에 충분이 저절로 솟구쳐서, 이 역적과 더불어 같이 살지 않겠음을 맹세하고 대궐문에 와서 외치며 상감의 위엄을 범하오니, 삼가 바라건대, 빨리 영경의 죄를 다스리시어 귀신과 사람의 분함을 씻어 주신다면, 종묘사직이 다시 편안하고 끼치는 복이 끝없을 것입니다. 전하께서 참으로 인홍이 기만하였다고 생각하신다면 신 등은 인홍과 더불어 망령된 말을 한 데에 대한 죽임을 받기를 청합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정인홍의 말끝을 주워서 대신을 무함하니, 이는 반드시 음험한 수단으로 남을 해치려는 사주를 받았음에 틀림없다. 조정의 대체(大體)는 유생이 함부로 말할 것이 못 된다.”

하였다.

○ 정언 구혜(具寭)ㆍ장령 이경기(李慶祺)와 남복규(南復圭)ㆍ지평 황근중(黃謹中)이 피혐하여,

“이정원(李挺元) 등이 상소한 글에, 신 등이 정인홍의 상소를 보고도 곧 피혐하지 않은 까닭으로, 임금을 업신여기고 방자하다고 지목하기까지 하며 드러내어 헐뜯으니, 결코 그대로 무릅쓰고 있을 수 없습니다. 청하옵건대, 파직하여 물리치기를 명하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사양 말고 물러가 기다리라.”

하였다.

○ 대사관 이효원(李效元)이 아뢰기를,

“신이 지극히 어리석고 못나서 한 가지도 잘하는 꼴이 없으나 밝으신 성상께서 다스리는 세상을 만나 조정의 벼슬자리에서 녹을 먹은 지 이제까지 24년인데, 성상의 은혜가 하늘같으시어 죄를 내리지 않으실 뿐 아니라,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던 대사간에 또 임명하시니, 황공하고 위축되어 스스로 용납할 곳이 없습니다. 신이 사가(私家)에 물러가 엎드려서 공론을 기다리자니 형적이 교묘하게 피하려는 데에 걸리고, 상감의 은총을 탐내고 그리워하여 버젓이 직무를 맡자니 사람들이 장차 무엇이라고 말하겠습니까? 신의 나가고 물러남은 참으로 낭패되었는데, 하물며 요사이의 일이겠습니까? 또 차마 말할 수 없고 난처한 바가 있사옵니다. 비록 굳세고 올바른 자로 하여금 맡게 하여도 오히려 잘해 내기 어려울 염려가 있겠거든, 신의 용렬함은 여러 신하의 가장 밑에 자리함을 알면서 어찌 감히 무릅쓰고 차지하여 관직을 게을리했다는 비방을 부르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상감께서는 특별히 면직을 명하시어 어리석은 분수를 편안케 해주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사양 말라.”

하였다.

○ 지평 송석조(宋碩祚)가 피혐하기를 대개,

“이정원의 상소에, 대간이 유영경의 지휘함을 받았다고 하고 또 직위가 언책(言責)을 띤 자로서 또한 대죄하지 않는다고 하니, 남의 헐뜯고 욕함을 받고서 뻔뻔스레 있을 수 없으므로 어제 동료와 더불어 동시에 사피해야 했는데 마침 감기가 들었습니다. 또 신의 아비가 바야흐로 옥당의 장관이 되어 부자가 함께 삼사(三司)에 있음은 온당치 못하므로 대간이 처치할 즈음에 또한 참여하지 못하여서 사체를 방해함이 더욱더 온당치 못하여, 이유를 갖추어서 사피하려고 정사 단자(呈辭單子)를 벌써 승정원에 올렸으니, 형세가 공무를 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감히 명을 받들어 직위에 나아가지 않았는데, 승정원의 박승종(朴承宗)의 정사가 또 올라 왔다고 신의 정사 단자를 돌려주어 진퇴가 낭패하온지라, 이제 비로소 조정에 나와 피혐합니다. 파직하옵소서.”

하였는데, 비답하기를,

“사양 말고 물러가 기다리라.”

하였다.

○ 사간원이 아뢰기를,

“정원 구혜ㆍ헌납 성시헌ㆍ장령 이경기와 남복규ㆍ지평 황근중과 송석조가 모두 인혐하여 물러갔습니다. 신이 삼가 이정원 등의 상소문을 보건대, 인홍의 논하는 바의 찌꺼기에 지나지 않되 흉참한 사설은 더 심합니다. 반드시 크게 간사한 자가 유언을 만들어 내어 인홍의 손을 빌렸으되 그 계교가 이루어지지 못할까 염려하여, 또 몰래 유생들 중에 가까운 자에게 부탁하여 충주(忠州)의 선비를 핑계대고 초야의 말인 듯이 수놈이 선창하면 암놈이 화답하듯 서로 안팎이 되어 꼭 헤아리지 못할 곳에까지 함정을 꾸미고 난 뒤에야 그만두려 하는 것입니다. 옛부터 소인이 일 맡은 사람을 함정으로 빠뜨리고 자기의 사심을 펴려고 꾀하는 자가 한둘이 아니었으되 이 무리와 같이 흉악하고 교묘한 자는 없었습니다. 간사한 사람의 무함하는 말을 가지고 가벼이 언관을 바꾸어서 그 꾀에 빠질 수 없거든, 하물며 질병은 사람이 면하기 어려우며, 알리지 못한 것은 형세가 그럴 만한 것이며, 부자가 함께 삼사에 있는 것은 더욱 피할 만한 혐의가 있으며, 상피(相避)하여야 할 관원이라면 아랫사람을 바꾸어야 법에 있어서는 당연합니다. 청하옵건대, 정언 구혜ㆍ장령 이경기와 남복규ㆍ지평 송석조와 황근중 등을 출사케 명하시고 헌납 성시헌은 체차하소서.”

하니,

“윤허한다.”

하였다.

○ 영의정 유영경이 상소하기를 대개,

“신의 몸이 나쁜 이름을 입었으니, 사패(司敗)에 내리시어 신의 죄를 다스려서 사람의 말에 답하소서.”

하였는데, 비답하기를,

“경이 무함을 입은 실정과 인홍의 상소가 흉악하고 참혹한 정상은 하늘의 해가 굽어보는 바요 온 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함께 아는 바이니, 어찌 간사한 사람의 술책을 셈하여 곧 변명하는 일을 하겠소? 모든 일은 그럴듯하여야만 따지는 것인데, 이미 사실이 없는 것이 되고 참으로 무함이니, 또 어떻게 따지겠소. 통탄할 것은 간사한 사람이 음험한 수단으로 남을 해치는 계략을 못할 짓 없이 하여, 말하는 것이 임금에게 걸리기까지 하는 것이니, 이는 임금을 업신여기는 반역의 무리이다. 조만간에 마침내 반드시 드러나리니, 하늘이 어찌 이 간사한 사람을 용서하겠소. 마땅히 전번 전지를 좇아 개의하지 말고 안심하고 직무에 나아가오.”

하였다.

○ 승정원이 아뢰기를,

“신 등이 삼가 어제 본원에 내리신 비망기를 보매, 두 번 세 번 받들어 읽고 깊이 상감의 밝으심을 느꼈거니와, 인홍의 상소에 있어서 무망하고 참혹한 말을 이미 통촉하시어서, 거짓을 꾸민 정상이 밝게 드러나 가리기 어려우니, 신 등이 어찌 감히 밝게 살피시는 밑에서 다시 군소리를 하겠습니까? 다만 지난해부터 성후가 비록 조섭하시는 중에 계셨을지라도 모든 사무를 재결하시는 데에 조금도 느즈러진 적이 없으시니, 10월 초에 우연히 감기 증세가 계셨으되 약을 쓰지 않아도 나으시는 기쁨으로 곧 나으실 경사가 있으리라 기다렸던 것은 온 나라 여러 아랫사람의 지극한 심정이었는데, 이어 전위한다는 전교를 받고 대신들이 어쩔 줄 몰라 근심하고 답답한 가운데 또한 거의 병환이 나으실 희망이 있어서 감히 상감의 뜻을 받들지 않은 것이니, 어찌 다른 뜻이 있었겠습니까? 이번에 인홍이, 계사 가운데 본뜻이 아닌 말을 뽑아내어 함정에 빠뜨리고 재앙을 씌우는 계책을 삼으니, 아! 또한 참혹합니다. 하물며 왕세자가 동궁에 자리를 정하여 나라의 근본이 이미 정하여졌고, 책봉하는 명이 내리는 것이 비록 늦고 빠름은 있더라도 책봉을 청하는 상주가 천자의 조정에 다다른 지 오래이며, 종묘 사직과 귀신과 사람이 부탁한 지 여러 해가 되었는데, 성후가 편찮으신 때를 만나 근심이 낯빛에 나타나고 잠과 음식을 폐하고 노천에 서서 밤을 새니, 정성이 하늘에 이르렀습니다.

이번에 중전의 교지가 내림을 듣고서는 근심하고 다급하여 어찌할 바를 몰라 강관(講官)을 시켜 사부(師傅)에게 기어코 지성으로 상감의 뜻을 돌리게까지 타이르시니, 대신이 상감의 뜻에 순종할 수 없는 것도 또한 왕세자의 뜻에서 나왔습니다. 어찌 바깥에 있는 신자가 그 사이에 끼어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일단 흉악한 상소가 들어오고부터는 대신과 대간이 다 그 직무에 안정하지 못하니, 이는 실로 예전에 없었던 변고입니다. 더욱 마음 아픈 일은 상감의 분부에 이르시기를, ‘내 마음이 불안하여 밤에는 자지 못하고 낮에는 먹지 못한다’ 하시니, 말이나 생각이 여기에 미쳐서는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마음과 가슴이 함께 찢어집니다. 삼가 바라옵건대, 상감께서는 이런 상소로 무함하는 것을 가지고 마음을 동요치 마시고 평온한 마음으로 조리하시어서 섭양의 길을 다하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아뢰는 뜻을 알겠다. 소견이 지극하다.”

하였다.

○ 좌ㆍ우의정이 아뢰기를,

“신 등이 삼가 승정원에 내리신 전교를 보건대, 말씀은 엄하고 뜻은 바르시어, 나라를 위한 근심과 염려가 심원하신 뜻이 지극하고 극진하시매, 신 등이 머리를 모아 감격하며, 위에서 사랑함에 그치시는 성덕을 흠앙하였습니다. 왕세자의 인효와 총명은 천성에서 나온 것이므로 춘궁(春宮)에 덕을 길러 이름과 자리가 이미 정하여졌으니, 신민이 추대하는 바요 종묘사직이 부탁한 바입니다. 그런데 근래 인심이 바르지 못하여 괴이한 말이 백 가지로 나오고, 난을 꾸미고 일을 만드는 무리가 뒤를 이어 일어나니, 밝게 가려내어 통렬히 물리치지 않을 것 같으면 천백 가지 기괴한 일이 어지러이 아울러 뻗어 나아가서 뒷날에 끝없는 재앙이 장차 차마 말 못할 지경에 이를 것입니다. 삼가 바라옵건대, 밝으신 성상께서는 더욱 종묘 사직의 중함을 생각하시어 나라의 근본을 굳히시고 인심을 안정케 하신다면 못내 다행이겠습니다. 신 등이 차지하지 못할 자리를 무릅쓰고 차지하여 실오라기나 털끝만큼도 성은에 보답하지 못하오나 이 위태로운 날을 만나 부득불 소회를 아룁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계사는 지극하오. 동궁의 이름과 자리가 이미 정해졌고 천명이 이미 정해졌으며 인심도 돌아갔는데, 간사한 사람이 스스로 비뚤어진 말을 지어내어 상하를 어지럽히니, 마음 아파 견딜 수 없소. 이러한 사람을 조정에서는 마땅히 적발하여 통렬히 다스려야 할 것이오.”

하였다.

○ 옥당의 차자는 부제학 송응순(宋應洵)ㆍ직제학 김대래(金大來)ㆍ교리 신광립(申光立)이 올린 것이었는데,

“삼가 아룁니다. 신 등이 삼가 정인홍의 상소문을 보건대, 영의정 유영경이 동궁을 동요하고 종묘사직을 위태롭게 하려 하였다 하여, 죄안(罪案)을 삼아 높은 벼슬아치들을 모함할 뿐만 아니라, 말이 임금에 관계되는 데에 이르러서는 허다한 말들이 지극히 흉악하고 참혹하여 신하로서는 차마 들을 수 없는 바가 있습니다. 신 등이 그 논의를 보고부터는 간담이 찢어질 듯합니다. 인홍이 과연 소문을 듣고서 이런 말을 한 것인지, 남의 시킴을 듣고 이렇게 꾀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아! 인홍의 마음 소재를 신 등이 비록 감히 알지 못하나, 대개 상소문 중의 말을 가지고 신 등이 친히 본 것을 참작하여 말하자면 이러합니다.

지난해 10월 초 9일에 상감께서 오래 조섭하시는 끝에 감기의 증세가 문득 일어나시매, 대소 신하들이 어쩔 줄 몰라 혼백이 다 빠져서 모두 나아가 조정에 있었으되 조장의 의식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같은 달 11일에 삼공을 부르시는 전교가 있고, 이어 밀부(密符)를 내리셨습니다. 그때에 영의정 유영경은 약방제조로서 차비문 안에 있었고, 좌의정 허욱(許頊)과 우의정 한응인(韓應寅)은 여러 대신과 더불어 빈청에 모였다가, 명을 받고 부신을 서로 맞추어 본 뒤에 삼공이 다 차비문 밖에 모였었습니다. 승정원이 또 빈청에 가서 모이라는 교지를 전하니 삼공이 자리에서 떠나지 아니하였습니다. 녹사(錄事) 한 사람이 와서 삼공은 내려오라 하신다고 고하니, 원임 대신 중에 어떤 이는 서편 벽 뒤로 피해 들어가려 하고, 어떤 이는 비변사로 피해 나가려 하였습니다. 곧 비변사로 나가서, 삼공이 빈청에 다다르니, 아무도 없었습니다. 전위하거나 섭정케 하신다는 명을 여기에서 비로소 내리시니 당시에 부르신 자는 시임 대신이며, 전섭의 명도 또한 시임 대신에게 내리셨으니, 회계할 적에 시임 대신끼리만 함께 하였다는 것은 또한 무슨 말입니까? 이는 신 등이 그때에 대궐 안에 있어 귀로 들은 바와 눈으로 본 바가 그러합니다.

상소문 중에 여러 번 방계(防啓)를 올렸다고 말하는 데에 이르러서는 신 등이 더욱 통분을 견디지 못합니다. 성후가 편찮으시어 오래도록 조섭하고 계시되, 온갖 기무가 혹시 허술하여질까 염려하시고 더욱 종묘사직의 큰 계책에 힘쓰시는데 이러한 전위하거나 섭정케 하시는 전교가 계시니, 이는 비록 성상께서 근본을 공고히 하고 위태로움을 진정하려는 훌륭하신 뜻에서 나온 것이오나, 신하의 지극한 심정으로 헤아리면 어찌 편안한 마음으로 곧 순종하겠습니까? 이 때문에 그 명이 내리신 날을 맞아 대소 신료가 다 근심하고 답답하게 여겼을 뿐 아니라, 왕세자께서 시강원에 영을 내리시기를, ‘망극하고 미안한 전교를 오늘 또 내리시니, 내 마음의 답답함이 어찌 끝이 있으랴? 오직 바라건대, 사부(師傅)와 빈료(賓僚)는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백관과 더불어 협동으로 호소하여 꼭 상감의 뜻을 돌이키기를 기하오.’ 라고까지 하였습니다. 이 뜻을 사부에게 가서 일렀는데, 이튿날 또 영을 내리시어 다시 사부로 하여금 기어코 상의 뜻을 돌이키고야 말도록까지 하시었습니다. 이는 오직 신 등만이 들은 바가 아니라, 신 광립(光立)이 궁관(宮官)으로 있으면서 사부에게 다니며 영 내린 것을 전한 일이 또한 강원일기(講院日記)에 있으니, 세자께서 굳이 전섭을 사양하심이 지극한 심정에서 나온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으로 보건대, 대신의 방계(防啓)도 여기에서 나온 것이어서, 회계 가운데의 이른바 여러 사람의 뜻 밖에서 나왔다는 것은, 세자의 심정도 또한 그 가운데의 하나입니다. 저 인홍이란 자가 이것을 가지고서 말을 만드니, 또한 통탄하지 않겠습니까?

그의 상소문 가운데에 또 승정원ㆍ사관이 성지를 감추고 발표하지 아니하였다고 말하나, 그 사이의 곡절은 이미 승정원의 계문과 사관의 소문에서 다 아뢰었으니, 어찌 영경이 알 바이겠습니까?

지금 밝으신 성상께서 위에 계시고 세자께서 아래에 계시어 자애가 극진하시고 효성이 지극하니, 양궁(兩宮) 사이에 화기가 자욱하거니와, 더구나 우리 세자께서 동궁에 정위(正位)하신 지 17년이어서 인심이 이미 돌아가고 천자의 뜻이 이미 정하여져서 책명이 내려오고 황제의 조칙이 여러 번 내려오매, 중국 조정이 다 아는 바이고 종묘사직이 부탁한 바인데, 누가 감히 그 사이에 다른 뜻을 가지리까? 이번 인홍의 상소는 영경에게 함정을 꾸미는 구실을 찾으려 한 것이나, 스스로 임금을 동요하고 양궁을 이간하는 죄에 빠짐을 모르는 것이니, 그 계략은 교묘하나 그 실상은 망령된 것입니다.

아! 성상의 자애가 이미 이러하고 세자의 효성이 또 이러하니, 비록 백 명의 인홍이 어지럽히더라도 어찌 이로 말미암아 의심하게 되어 사이가 벌어질 리가 있겠습니까? 대저 인홍이 멀리 천리 밖에 있으면서 어찌 소문만 듣고서 이런 터무니없는 헤아리지 못할 말을 하겠습니까? 그 사이에는 반드시 그럴 만한 까닭이 있을 것입니다. 유영경이 정승 노릇 7년에 남이 하고자 하는 바를 억제하였으므로 뜻을 잃고 분함을 품은 자가 깊이 혼자서 시기하고 원망하여, 시기와 틈을 타서 한번 함정에 떨어뜨리려 한 것이 일조일석에 연유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재령(載寧)의 옥사에서 비롯하여 중간에 성묘(聖廟)의 일을 헐뜯음을 거쳐, 마침내는 약방을 논박하기에 이르렀으나 끝내 그 간사한 꾀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계사 가운데의 한 귀절을 뽑아내어 근거 없는 말을 지어서 중외에 퍼뜨리고 먼저 인홍의 손을 빌려 몰래 귀역(鬼蜮)의 꾀를 써 보고 또 정원(挺元)의 무리를 사주하여 초야의 논의가 있는 듯이, 수놈이 선창하고 암놈이 화답하듯 서로 안팎이 되어 위로는 성상의 귀를 현혹하고 아래로는 인심을 의혹되게 하여 꼭 헤아리지 못할 지경의 재앙을 꾸미고야 말려고 합니다. 앞으로 이 무리가 그 계략을 성취할 수 있게 된다면 그 재앙이 어찌 나라를 비우게 하는 데에 그치겠습니까?

다행히 밝으신 성상께서 간사한 장상을 통촉하심을 힘입어 한편 이르시기를, ‘영의정을 함정에 빠뜨릴 뿐만 아니라, 일시의 대간과 시종까지 다 죄망에 돌아가게 한다.’고 하시고, 한편 이르시기를, ‘간사한 사람이 음험한 수단으로 남을 해치는 계략을 못할 짓 없이 하여, 말이 임금에게 걸리기까지 하니, 이는 참으로 임금을 업신여기는 반역의 무리다.’라고 하셨으며, 정원(挺元)의 상소에 비답하시기를, ‘음험한 수단으로 남을 해치는 사주를 받았을 뿐이다.’라고까지 하셨습니다. 상의 분부가 이와 같은 데 이르시니, 어찌 온 나라 신민의 복일 뿐이겠습니까? 또한 종묘사직의 만세의 끝없는 행복이라 하겠으며, 간사하고 흉악한 자의 간담이 벌써 지옥 속으로 떨어졌겠습니다마는, 성교에 이르시기를, ‘밤에는 잘 수 없고 낮에는 먹지 못한다.’라고 하시니, 이는 비록 깊이 싫어하고 아주 미워하시는 지극한 뜻에서 나오셨사오나, 상께서 바야흐로 고요히 조섭하시는 중에 계신데 문득 이러한 전교를 하시니, 신 등이 더욱 근심되고 답답하기가 지극함을 견딜 수 없습니다.

아! 동궁을 동요함은 천하의 지극한 악이며 종묘 사직을 위태롭게 함은 천하의 큰 죄이니, 인홍이 이러한 무고를 하였으므로 참으로 떳떳한 형벌에서 피하기 어려우나 이는 특히 남의 몰래 사주함을 받고 그것을 좇았을 뿐입니다.

관채(管蔡)의 유언(流言)을 두 공(公)이 가리지 못하다가 주공(周公)이 동쪽에 있을 적에야 죄인을 잡았으니, 오늘날의 죄인을 잡는 것 또한 멀지 않았습니다. 대저 신 등이 염려하는 바는 정인홍과 이정원의 계략이 천일(天日)의 아래에 성취하지 못하였으되 앞으로 다시 어떠한 간사한 모략과 흉악한 계교가 있어 다시 천만 뜻밖에 나오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지금 북쪽 오랑캐가 날뛰매 봄철 방어가 한창 급하여 상께서 밤낮으로 근심하시는 바이고 묘당에서 미리 준비하는 바이며, 과거를 베풂도 또한 이 때문이었습니다. 사방에서 과거보러 오는 선비가 서울에 구름같이 모여드는데 한번 흉악한 상소가 들어오고부터, 위로는 정승으로부터 아래로는 대간과 시종에 이르기까지 그 직위에 안정하지 못하여 다시 과거보는 기일을 물리기까지 되매, 많은 선비들이 노숙하여 원망하는 소리를 차마 들을 수 없어 기상이 슬프고 참혹하니, 신 등은 한꺼번에 무너지는 형세가 아침에 아니면 곧 저녁에 오지 않을까 적이 염려됩니다. 삼가 바라옵건대, 밝으신 성상께서는 종묘사직의 중함을 생각하시고 좋고 나쁨을 가리기를 더욱 밝히시어 간사한 사람을 엄히 끊어서 조정을 편안케 하시고 빨리 과거를 치르게 하여서 인심을 진정케 하신다면 국가도 매우 다행이며 종묘사직도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동궁의 명위(名位)가 이미 정해지고 천명과 인심이 이미 돌아갔으며 우리 부자의 지극한 정은 틈이 없는데, 하루아침에 간사한 사람이 이와 같이 동요하고 이간하니 내가 이 때문에 깊이 통탄한다. 하늘이 굽어 비추시어 귀역(鬼蜮)의 계략은 비록 성취하지 못하였으나, 이로써 조정을 어지럽힘이 지극하며 그 계략이 참혹하다. 차자는 다시 깊이 생각하리라.”

하였다.

○ 사간원의 계(啓)는 대사간 이효원과 정언 구혜가 아뢴 것이었는데,

“삼가 정인홍의 상소문을 보건대, 그 뜻은 영경을 모함하려 한 것이겠으나, 그 임금을 동요하고 지친을 이간하는 정상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옛부터 소인의, 일 맡은 사람을 모함하고 자기 일을 꾀하여 이루는 것이 어찌 끝이 있겠습니까마는, 이렇게 지극히 흉악하고도 교묘한 것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 인홍은 남의 사주를 받아서 한 것에 지나지 않을 뿐이거니와, 이는 실로 크게 간사한 사람이 음험한 수단으로 남을 해치려고 유언을 거짓으로 꾸며서 초야에 있는 사람의 손을 빌려 몰래 귀역의 꾀를 마음대로 하는 것이오니, 통분함을 견딜 수 있겠습니까?

신 등이 듣건대, 지난해 초겨울에 성후가 편찮으시어 전위하거나 섭정케 하겠다는 명을 내리신 날에, 약방에 약을 잘못 썼다는 말과 전위하거나 섭정하는 것에 방계(防啓)함이 옳지 않다는 말이 모두 이산해(李山海)의 집에서 나왔으며, 이경전(李慶全)과 이이첨(李爾瞻)의 무리가 낮에는 흩어지고 밤에는 모여들어 백가지로 모함하는 계교는 입이 있는 사람은 다 말하고 귀가 있는 사람은 다 들었는데, 약을 잘못 썼다는 유경종의 논의가 문득 이때에 일어나니 경종은 곧 그 패거리입니다. 온 나라의 공론이 다 경전과 이첨의 흉악한 계략에서 나왔음을 알고 있으므로 그때에 대간의 계사 가운데에 이른바 ‘뜻을 잃은 무리’라 함은 이를 가리켜서 말하는 것이며, 군자가 소인을 다스릴 적에 늘 너그러움에서 실수함은 우선 놓아두고 말할 것도 없거니와, 도깨비 같은 무리가 자기의 죄악을 징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계략이 성공하지 못하였음을 분하게 여겨서 또 근거 없는 헤아리지 못할 말을 가지고 몰래 인홍을 사주하였는데, 인홍은 곧 산해의 심복입니다. 한번 그 말을 듣자 팔을 걷고 이를 맡아서 거짓을 꾸미고 없는 것을 지어내기에 있는 힘을 다하고, 흉악한 글과 참혹한 말을 거의 꺼림 없이 하여 한낱 영경을 모함할 뿐만 아니라, 신하로서 차마 말 못하고 차마 듣지 못할 일을 가지고 동요하고 이간하기를 온갖 방법으로 하기까지 합니다. 이정원의 상소에 이르러서는 연명한 사람이 다 바로 그 당의 가까운 붙이들이니, 이 상소가 이 무리에서 나왔음을 또한 알 만합니다. 만약 이 계략이 성공하였다면 어찌 사림에게 재앙을 씌웠을 뿐이겠습니까? 또한 장차 종묘 사직에도 미쳤을 것입니다. 말과 생각이 여기에 미쳐서는 마음과 간담이 함께 찢어집니다.

아! 우리 세자는 인효(仁孝)가 출천하며 명위(名位)가 이미 정해졌고, 위로 천자에게 아뢰었으니 천자께서 아시며, 아래로 온 나라에 일렀으니 온 나라가 추대하였고, 동정(東征 임진왜란 때 중국에서 우리나라에 구원병을 보낸 일)의 장사들도 친히 보지 않은 이가 없으니 천하가 본 것이며, 명을 받고 군사를 지휘하여 나라의 부흥을 도왔으니 공이 종묘 사직에 있는 것입니다. 전하께서 정하셨으며 천자께서 아시고, 천하가 보았으며 종묘 사직이 맡겼으므로, 전교를 내려 위태로운 시기에 자리를 물리시어 더욱 근본을 굳게 하시려는 계책은 전하의 원대한 의도에서 나온 것이 아니겠습니까? 간곡히 사부에게 일러 전교를 내리신 때에 피맺힌 정성으로 상의 뜻을 돌이키는 것은 세자의 효성스러운 감정에서 나온 것이 아니겠습니까? 전하의 하교와 세자의 사양함은 비록 문왕(文王) 같은 지극한 자애와 지극한 효성일지라도 이보다 더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때를 만나 설사 인홍의 무리가 곁에 있었다면 말없이 승봉하고 방계하지 않았겠습니까? 아니면 순종하지 않기를 그 말한 바와 같이 하겠습니까? 그 심사를 추구해 보면, 다른 일을 가지고 영경을 모함해서는 빠뜨릴 수 없으므로 꼭 부자간의 일을 가지고 임금의 마음을 움직인 뒤에야 제거할 수 있기에, 감히 근거 없는 말을 가지고 헤아리지 못할 재앙을 얽어 만들어, 스스로 이르기를, ‘한 그물에 시배(時輩)를 죽이리라’ 한 것입니다. 만약 전하께서 아버지이시고 세자가 아드님이 아니었던들, 양궁의 사이가 벌어지고 사류가 죽임을 당하였을 것이 거의 틀림없지 않습니까?

임금이 신하를 거느림에 있어서 간악한 자를 모를까 걱정하는 것이거니와, 이미 이를 알고서도 처치하지 못한다면 간사하고 흉악한 자가 더욱 꺼릴 바 없이 하여 장차 뒤를 이어서 일어나리니, 틀림없이 나라를 뒤엎기까지 한 뒤에야 그만둘 것입니다. 그 양궁을 이간하고 사림에게 재앙을 씌운 죄를 다스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 참판 정인홍과 전 사인 이경전과 전 정랑 이이첨을 아울러 명하여 우선 멀리 귀양 보내시어서 국시(國是)를 정하시고 인심을 가라앉히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윤허한다.”

하였다.

26일 ○ 진주(晉州)의 생원 하성(河惺) 등의 상소는 ‘유영경의 죄를 빨리 다스리라’는 것이었는데, 비답하기를,

“너희들이 비록 백 번의 소를 아뢸지라도 어찌 내 마음을 조금이라도 흐리게 하랴? 부질없이 그 흉악하고 간사한 마음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을 보일 뿐이다. 너희들은 망령되이 말하지 말 것이며, 다만 누가 시켜서 이러한 상소를 하였는지, 밝은 하늘이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으니, 바른 대로 응대하라.”

하였다.

○ 그때에 상의 환후가 해를 넘겨 오래 편찮으셨는데, 조정의 의논이 둘로 갈렸다.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 : 1539-1609)ㆍ이경전(李慶全) 부자와 이이첨과 세자의 외친(外親) 박건(朴楗) 등이 그른 말을 지어내어 이르기를,

“상께서 중전이 영창대군(永昌大君)을 낳으신 뒤부터는 동궁과 애정이 점점 엷어지고 뜻이 영창에게 있으며, 영의정 유영경이 전창위(全昌尉)의 할아버지이므로 대궐 안과 서로 결탁하여 상의 뜻이 돌아가는 바를 알아내고 몰래 중전의 분부를 받아서 세자를 바꾸어 세우려 한다……”

하니, 인심이 의심하고 두려워하며 잘못 전해진 말이 매우 심하였다.

정미년(1607, 선조 40) 10월 초 10일에 상의 환후가 조금 뜸하고 나서 삼공을 불러 세자에게 선위(禪位)하는 밀교를 내렸다. 영경이 글월을 지어 방계(防啓)하고 밀교를 봉하여 반환하였더니, 상이 비답하기를,

“이와 같으면서 조섭하려 함은 먹지 않고 살기 바라는 것과 같소. 가련한 삶이구나, 가련한 삶이구나! 그 가운데에 심병까지 문득 일어나서 견딜 수 없으니, 지극히 민망하오. 잊혀지지 않는 한 생각은 이 밖에 달리 없소.”

하였다.

중전이 삼공에게 전하여 이르기를,

“빈청에 모이시오.”

하고, 중전의 뜻을 언서로 삼공에게 보내니, 대개 대신이 상의 명을 받아들여 따르기 바라는 것이었다. 영경이 회계하기를,

“신 등이 삼가 중전께서 내리신 분부를 보니, 지극히 황공하여 견딜 수 없습니다. 신 등의 답답한 심정은 이미 상의 비망기에 회계한 가운데에서 다하였으니, 이밖에 아뢸 바를 모르겠습니다.”

하니, 중전이 답하기를,

“대신이 권도(權道)를 깊이 생각하여 힘써 상의 명을 받들어서 상의 옥체를 조섭하고 보존하기를 바라오……”

하였다. 영경이 회계하기를,

“중전의 하교를 다시 받으니, 말씀의 뜻이 더욱 간절하시매, 신 등도 또한 목석이 아닌데 어찌 황공함을 느끼지 않겠습니까마는, 오늘의 하교는 여러 사람의 뜻과는 다르므로 신 등이 감히 명을 받들지 못하겠으며, 땅에 엎드려 사죄를 기다립니다.”

하니, 중전이 답하기를,

“내 답답한 심정은 다 말하였소. 회계는 알겠소.”

하였다.

이에 산해ㆍ경전과 이첨 등이 말하기를,

“상께서 세자에게 선위한다는 밀교는 실정이 아니고 여러 아랫사람의 생각을 시험해 본 것이며, 중전께서 다시 내리신 내교(內敎)도 또한 실정이 아니고 영경의 뜻을 알고자 한 것이다. 영경이 전후에 방계한 것은 모두가 동궁을 동요하려는 데에서 나온 것이다……”

하였다. 그리고 문객(門客)을 합천(陜川)에 보내어 몰래 인홍을 시켜 상소하게 하였는데, 영경이, 세자를 해치려 꾀한다는 인홍의 말을 보고 대죄하면서 상소하니, 상이 영경의 상소에 비답하여 대개 이르기를,

“인홍의 상소를 보니, 지극히 흉악하고 참혹하여서 알아볼 수 없을 뿐이며, 내가 심병이 있어 바로 볼 수 없어서 얼핏 보아 넘겼을 따름이오. 그 사이에 나에게 걸리는 말이 있기까지 하였으나 또한 그 말하는 연유의 뜻을 모르겠으니, 더욱더 음흉하고 참혹하오. 인홍이 까닭 없이 임금의 마음을 동요하고 영의정을 모함하려 하니, 생각하기에 여러 소인 가운데에 영의정을 모함하려 하는 자가 거짓말과 근거 없는 말을 지어내어서 영남 지방에 퍼뜨리고 인홍이 주워 들어 이러한 상소를 하였을 것이오……”

하였다. 정언 구혜가 인홍과 경전과 이 첨을 멀리 귀양 보내기를 청하니, 한 번 아뢰어서 윤허를 얻었다. 인홍은 영원(寧遠)으로, 경전은 강계(江界)로, 이첨은 갑산으로 장배(定配)되었다. 그 계사는 위에 보인다.

○ 대사헌 박승종(朴承宗)ㆍ장령 이경기와 남복규ㆍ지평 황근중(黃謹中)이 아뢰기를,

“신 등이 정인홍의 흉악하고 참혹한 죄를 논하려고 바야흐로 기초(起草)할 적에 사간원의 계사가 이미 윤허를 받았으니, 신 등이 일을 논함에 민첩하지 못한 죄를 면하기 어려운 처지입니다. 청하옵건대 파직하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무방하니 어지러이 사피하지 말고 물러가 기다리라.”

하였다.

○ 사간원이 아뢰기를,

“……이미 논의를 일으켜서 기초하였으니, 비록 본원에서 윤허를 입었음으로 말미암아서 멈추었더라도 죄주기를 청하는 뜻은 본래 다름이 없으니, 실상은 논의한 것입니다. 이로서 가벼이 언관을 바꿀 수는 없으니, 아울러 출사를 명하소서.”

하니, 윤허하였다.

○ 의금부가 정인홍을 영원으로, 이경전을 강계로, 이이첨을 갑산으로 정배할 것을 아뢰었다.

29일 ○ 영의정의 차자에 비답하기를,

“예전의 대현(大賢)도 또한 소인의 근거 없는 헐뜯음을 면하지 못하는 수 가 있었으니, 경은 안심하고 이것을 마음에 두고 사퇴할 생각을 하지 말고, 이러한 안팎으로 일이 많은 때를 만나 더욱 나랏 일에 마음을 다하오. 다만 소인이 조정의 높은 관원 속에 잠복하여 음험한 수단으로 남을 해치려고 계획하는 것은 뽑아버리고 숙청하여, 뒷날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오. 대개 작은 것을 견디지 못하면 큰일을 어지럽히는 것이며, 풀을 뽑되 그 뿌리를 뽑아버리지 아니하면 마침내는 다시 살아나오. 소인의 본성이 재앙을 즐겨서, 일 일으키기를 좋아하여 스스로 그 몸을 죽이지 않으면 그만두지 않으므로 악을 벌하는 법은 엄하게 아니할 수 없소. 이제 만약 구차히 잠시 피할 것 같으면 어찌 뒷날에 다시 이보다 큰일이 있을는지 알 수 있겠소. 마약 일망 타진하게 되어 한때에 이름 있는 선비가 다 잡혀 먹히게 된다면 비록 후회하여도 소용없을 것이오.

옛부터 신하가 임금을 이간하고도 천벌을 면한 일이 있었소? 나는 참으로 마음이 아프오. 이는 참으로 신하가 목욕 재계하고 벌주기를 청하여야 할 일이오.”

하였다.

○ 사간원이 아뢰기를,

“지난해 초겨울, 상께서 편찮으실 때에 중외의 신민이 근심하고 답답히 여기지 않은 이가 없었으되, 충청도사 배용길(裵龍吉)은 조금도 꺼림 없이 음악을 벌이고 술을 베풀고 음탕한 창녀를 싣고 다니며 여러 고을에 폐를 끼쳤으니, 듣는 사람마다 놀랍고 분하게 여기지 않은 이가 없습니다. 사판(仕版)에서 지워 버리소서.”

하였다.

○ 사헌부가 아뢰기를,

“전 도사 이성(李惺)과 전 좌랑 정조(鄭造)는 모두 음흉하고 비꼬이고 편벽된 사람이어서, 이이첨ㆍ이경진과 결탁하여 심복이 되어, 정인홍이 거짓으로 무함하고 날조된 상소를 하는 때를 타서 몰래 그 아우와 사위와 일가들을 시켜 안팎으로 서로 거들게 하고, 이정원의 무리로 하여금 잇따라 음흉하고 참혹한 말을 올리게 하여서 귀역의 꾀를 시험하려 하였습니다. 그 임금을 동요하고 사람에게 재앙을 전가한 죄는 징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청하옵건대, 모두 멀리 귀양 보내게 명하소서.

이정원 등은 다 귀역의 요사한 무리로서 감히 어지럽히고 함정에 빠뜨릴 꾀를 내어 정인홍의 거짓을 꾸미고 음흉하고 참혹한 말에 붙어 맞추어 음험한 수단으로 남을 해치려는 계략을 시험하려 하였으니, 그 남의 사주를 받아 사림에게 재앙을 전가한 죄는 통렬하게 징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청하옵건대, 멀리 귀양 보내서 좋고 나쁨을 분명히 하소서.”

하였는데, 비답이 아직 내리지 않았다.

2월 1일 ○ 유시초에 상께서 승하하였다.

2일 ○ 왕세자(광해군 : 1575-1641, 재위 1608-1623)가 면류관과 예복 차림으로 서청(西廳)에서 왕위에 올랐지만 하례를 받지 아니하고 돌아와 상복으로 갈아 입고, 대사령(大赦令)을 내렸다.

허준(許浚)ㆍ이명원(李命源)ㆍ조흥남(趙興男)ㆍ박지지(朴知止) 등을 잡아 가두었음을 아뢰었다.

7일 ○ 영의정 유영경(柳永慶)이 사직하는 소를 올리니, 바답하기를,

“상소를 보고 경의 뜻을 잘 알았소. 지금은 참으로 어떤 때인데 감히 이 같은 말을 하오. 안심하고 직에 나오고 사퇴하지 마오.”

하였다.

○ 이산해(李山海)가 원상(院相)으로 정원에서 숙직하였다.

8일 ○ 정사에서 대사간에 박이장(朴而章), 사간에 박이서(朴彝敍), 헌납에 윤효원(尹孝元), 정언에 임장(任章)을 임명하였다.

○ 바망기(備忘記)에,

“내가 박덕으로 일찍이 동궁 자리를 욕되게 하였는데, 선왕의 부탁하신 성스러운 뜻을 저버릴까 두려워서, 밤이나 낮이나 근심하고 조심하여 감히 잠시라도 게을리함이 없었다. 선왕께서 해가 지나도록 편찮으셨는데, 병시중을 잘못하여 마침내 돌아가시는 슬픔을 만나게 되니, 이는 실로 내가 불초하여 죄역이 심중한 소치로 말미암은 것이다. 오장이 찢어지는 듯 슬프기 그지없다. 외람하게도 선왕의 유교(遺敎)를 받들어 왕위에 올랐다. 오늘날의 나랏일을 살펴보니 나의 어리석음을 가지고 장차 어떻게 나랏일을 감당하여 가겠는가? 돌아보면 근심스럽고 놀라워서 연못에 떨어지는 것 같다. 여러 대신들은 마땅히 이 뜻을 알아, 나에게 대한하고 싶은 말을 숨김없이 다하여 정성껏 보좌하기에 힘써 널리 시국의 어려움을 구제하라.”

하였다.

○ 영상 유영경(柳永慶)이 첫 번째 정사하였는데, 입계하니, 전교하기를,

“윤허하지 않는다는 비답을 하라.”

하였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왕은 이렇게 말한다.

대신의 진퇴는 일반 관료와 달라, 혐의 때문에 물러남도 옳지 못하고 남의 말 때문에 물러남도 옳지 못하고 몸을 보호하여 편안하게 정양하기 위해 물러남도 옳지 못하오. 오직 대의를 가지고 판단하여 몸을 나라에 바친 뒤에야 그 당시에 부끄러움이 없고 뒷날에 할 말이 있을 것이오. 경은 어찌하여 이 의리를 자세하게 살피지 아니하고, 바로 인퇴하고자 하오.

아아! 경이 물러날 수 없는 그 뜻이 매우 명백하오. 내가 우선 대강 말할 터이니, 경은 이것을 자세하게 살피시오.

아아! 대행대왕(大行大王)께서는 경을 대우함이 지극하시어, 여러 신하들 가운데서 뽑아내어 영의정 자리에 앉혀 두시고 심복으로 의지하고 고굉으로 부탁하였으니, 임금과 신하가 알고 만난 것이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았소. 그러므로 선왕께서 편찮으신 날에 경이 물러나기를 청하는 말을 했을 때, 간곡한 분부가 지극히 간절하시어 그 말이 아직도 귀에 들리는 것 같은데, 경은 그것을 잊어버렸소. 지난번 옥궤(玉几)에 겨우 의지하셨고 선침(仙寢)이 식지 아니하였소. 나같이 박덕하고 어두운 사람으로 대위를 이어받으니, 나무에 올라간 듯, 깊은 못에 임한 듯 외롭게 상중에 있으매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겠소. 운명이 길어지도록 하늘에 비는 도리와 백성을 품어주고 보호하는 방법을 곧 경에게 물어서, 힘껏 실행하여 대행대왕께서 돌아보시고 의탁하신 명을 저버리지 않고자 하는데, 오늘날 갑자기 물러간다 하니, 그것은 바로 나 같은 소자는 보필할 만한 가치도 없다고 여김이 아니오? 경이 비록 물러가려 하나, 우리 대행대왕의 깊은 은혜와 두터운 뜻을 잊을 수 있겠소. 이리저리 생각해 보아도 경은 떠나가야 할 만한 이유가 없소. 이제 이 같은 일이 있음은 시세를 잃은 나쁜 무리들이 헛말을 날조하여 우리 경을 얽어 죄에 빠지게 하려는 것인데, 경이 이것을 혐의쩍게 여기어 사퇴하고자 함이오?

아아! 지난해의 일은 대행대왕께서 통촉하신 바이고 나도 깊이 알고 있는 것이며, 또 좌우의 신하들도 같이 본 것인데, 경이 어찌 일호라도 그 사이에 딴 뜻을 가지고 있었겠소? 거짓되고 망령된 어수선한 말을 혐의쩍게 여길 것이 무엇이기에 굳이 물러가고자 하오? 경은 안심하고 직무를 다하여 내 지극히 간절한 마음에 부응하도록 하오. 바야흐로 마음이 어지럽고 망극한 가운데 있으므로 말하는 것이 뜻을 다 나타낼 수 없소. 짐짓 교시를 내리니, 마땅히 자세하게 내 뜻을 알 것으로 생각하오.

지제교(知製敎) 신요(申橈)가 지어올린 것이다.

○ 사헌부가 아뢰기를

“도승지 유몽인(柳夢寅 : 1559-1623)은 사람됨이 혼미하고 용렬하여 일을 처리함에 망령됩니다. 이런 국상으로 일이 많은 날을 당하여 승정원의 장을 결코 감당할 인물이 아니니, 청하옵건대 체차하소서.

대행대왕께서 오랫동안 편찮으신 중에 계신데 해가 지나도록 모시고 약을 썼으나 약효험을 보지 못하였으니, 신하의 민망하고 궁박한 정은 마땅히 그 극진함을 쓰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송석경(宋錫慶) 등이 수의(首醫)에게 죄주기를 청하고자 함은 실로 임금을 사랑하는 정성에서 나온 것이지, 어찌 딴 마음이 있겠습니까?

김대래(金大來 : 직제학 1564-1608 사사)는 당론에 아첨해 붙어서 군부를 마음에 두지 아니하고 감히 언변을 구사하여 얽어대고 날조해서 그 흉악함을 마음대로 부리어, 끝내는 반드시 쳐서 쫓은 뒤에야 그만둘 것이니, 그의 용심이 형편없기가 이를 데 없습니다. 그가 아직도 높고 화려한 지위에 앉아 조정의 의논을 쥐고 있으니, 물정이 통분해 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청하옵건대, 명하여 삭직하고 문밖으로 출송하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윤허한다. 김대래는 파직하여 서용하지 말라.”

하였다.

12일 ○ 완산군(完山君) 이축(李軸)의 상소는 대개, ‘유영경(柳永慶)이 왕세자를 위태롭게 할 것을 꾀하고 조정을 흐리고 어지럽게 한 죄를 다스려 주기를 청한다’는 것이었는데, 비답하기를,

“영상이 어찌 이 같은 데까지 이르렀겠소? 논죄한 것이 지나치오. 선조(先朝)의 대신을 경솔하게 논란함은 옳지 못하오. 또 ‘아버지의 신하를 바꾸지 않는다’는 것은 옛적에도 그런 말이 있었다고 들었소. 선왕께서 유 정승을 정승으로 발탁하여 앉힌 지 이제 7년으로 의지함이 더욱 두터웠는데, 이제 돌아가신 지 아직 한 달도 차지 못하여 갑자기 죄준다면 ‘그 어버이를 죽은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는 의리에 어그러짐이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장로(長老)를 대접하는 도리에도 벗어나게 되는 것이니, 내 차마 하지 못하겠소.”

하였다.

○ 장령 윤양(尹讓)이 아뢰기를,

“대행대왕께서 편찮으신 지 해가 넘었는데 의약이 효과가 없었으니, 상하가 하늘 끝까지 갈 슬픔을 어찌 차마 말할 수 있겠습니까? 지난 겨울 언관 송석경(宋錫慶) 등은, 허준이 자기 의견을 고집하여, 독한 약제를 섞어 썼음을 논죄하고자 하였사오나, 이것은 실상 임금의 병을 구원함에 급급하여서이옵지, 그 가운데 조금이라도 딴 뜻은 없었습니다. 그때에 한두 언관이 아뢸 길을 막아 논계하지 못하게 하고, 또 따라서 얽어 놓아 죄를 성립시키고, 마침내는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아 감히 다시 말을 못하게 하였으니, 이것은 사사당파가 있음만 알고 군부가 있음을 알지 못함입니다. 신이 그때에 마침 본직에 있었으므로 분격함을 이기지 못하여 대강 저의 의견을 진술해서 처치할 때에 이론(異論)을 세웠으나, 망령되게 딴 의론을 내세워 시비를 현란시킨다고 배척받아 체임이 되었는데, 몇 달 되지 아니하여 다시 황송하게 본직으로 돌아왔습니다. 실로 천만 꿈 밖의 일로 신이 어찌 감히 스스로 앞서의 소견을 옳게 여겨 거만한 얼굴로 직위에 다시 나아가 거듭 여러 사람의 비방을 받겠습니까? 또 신이 지난달에 휴가를 받아 병든 어미를 강원도 춘천부에 가서 보살피던 중 돌아가신 변을 가장 늦게 들어 분주하게 올라왔으나, 성복(成服) 전에 당도하지 못하였으니, 신의 죄가 지극히 큽니다. 청하옵건대 신의 직을 파하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사직하지 말고 물러가 기다리라.”

하였다. 피사(避辭) 가운데 한두 언관이란, 대사헌 홍식(洪湜)ㆍ헌납 송부(宋)ㆍ정언 구혜(具寭)를 말한 것이다.

○ 사간원의 계는 사간 박이서ㆍ헌납 윤효선ㆍ정언 임장이 아뢴 것이었는데,

“전 직제학 김대래(金大來)는 마음을 쓰고 일을 행함에 있어서, 남에게 더럽다고 버림받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언관이 의원을 죄주고자 하는 의논에 이르러서는 실로 신자의 지극한 정에서 나온 것인데, 이에 감히 언변을 구사하여 허위사실을 날조하여 배격하고 남의 입을 틀어막았으니, 그 사당을 두호하고 군부를 저버린 죄는 파직만으로 그칠 수 없습니다. 빨리 삭직하여 문밖으로 출송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하였다.

○ 이보다 앞서, 대행대왕의 옥후가 편찮으셔서 해가 넘도록 침중하였는데, 약이 효력을 보지 못하였다.

이때에 영상 유영경이 내국제조(內局提調)가 되고, 양평군(陽平君) 허준(許浚)이 수의(首醫)가 되어 밤낮으로 근심하고 초조하며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였다. 사간 송석경(宋錫慶)ㆍ장령 유경종(柳慶宗) 등이 약 쓰는 데 적당함을 잃었다 하여 엄중하게 수의를 잡아다 국문하자는 논의를 내어, 차례로 도제조에게까지 미치려 하였으니, 이는 오로지 유영경을 얽어 죄에 빠지게 하려는 계략에서 나온 것이다. 그 마음을 쓰는 것이 바르지 못한 까닭으로 헌납 송부ㆍ정언 구혜(具寭)ㆍ사간 김대래ㆍ대사헌 홍식(洪湜)ㆍ장령 남복규(南復圭) 등이 각각 자기 나름의 다른 주장을 세워 송석경ㆍ유경종의 의논을 따르지 아니하였다. 피사는 위에 보인다.

○ 사간 송석경이 아뢰기를,

“자전께서 내리시는 성지는 반드시 먼저 대전(大殿)을 거친 후에야 아래로 계하(啓下)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근자에 자전께서 산릉(山陵)의 일 때문에 성지를 직접 빈청에 내렸으나, 승정원에 있는 자가 몽매하여 살피지 못하였으므로 마침내 아뢰지 못하였습니다. 이런데도 다스리지 않으면 뒤의 폐단이 있을까 염려됩니다. 청하옵건대, 담당 승지는 파직하고 같이 참여하였던 승지는 추고하소서.

내관(內官) 민희건(閔希謇)은 본래 환관 출신의 천한 노예로 천성이 흉악하고 교활한데, 오래도록 내수사의 제조가 되어, 세력을 믿고 폐단을 일으키기를 못할 짓 없이 하여, 생령을 괴롭히고 8도에 해를 끼쳤으므로 온 나라 사람들이 그 고기를 씹고자 함이 오래입니다. 한편 돌아가신 이후로부터는 악행이 날로 더 심하여, 뚜렷이 용서하기 어려운 죄가 있어 하루라도 용서해 둘 수 없습니다. 청하옵건대, 유배를 명하여 여러 환관과 내시의 방자함에 대한 계칙으로 삼으소서.

영의정 유영경은 본래 흉악한 사람으로 오래 권세를 잡아 성총(聖聰)을 막고 불길 같은 세력이 하늘에 치솟고, 조아(爪牙)와 심복이 많이 조정에 섞여 있으며, 친인척이 높고 중요한 자리에 퍼져 있어, 자기와 뜻을 달리하는 사람을 배척하고 언로를 막았습니다. 어떤 사람도 감히 손가락질할 수 없으므로, 길가는 사람들이 눈짓만 합니다. 지위를 잃을까 걱정하는 마음에 온갖 짓을 다하여 불측스러운 꾀를 간직하고 몸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졌습니다. 그래서 천지간에 용납하기 어렵고 귀신과 사람이 같이 분해 하는데, 아직도 모두가 우러러보는 지위에 있고 악을 토벌하는 법을 쓰지 아니하였으므로, 대중의 노여움이 날로 격심해지고 공의를 막기 어려우니, 선조(先朝)의 옛 신하라 하여 머뭇거리고 어려워해서는 안되고, 슬픈 거상 중에 있다 하여 혐의쩍게 여겨서도 아니되옵니다. 청하옵건대, 관직을 삭탈하시고 문밖으로 출송하여 여론을 통쾌하게 하고 공의를 신장시키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산릉에 관한 일은 내가 정원에 내려 보냈고, 단 대행대왕의 행장은 내가 본 뒤에 자전께서 정원에 내려 보냈다. 담당 승지가 반드시 내전의 곡절을 알지 못하여 미처 아뢰지 못하였을 것이니, 이는 우연히 살피지 못한 소치에 지나지 아니하므로 파면하고 추국할 필요가 없다.

민희건은 선왕께서 믿고 일을 시키던 내시로 호성공신(扈聖功臣)이니, 어찌 귀양 보내기까지야 하겠는가? 버려두는 것이 옳겠다. 영상이 어찌 이와 같기까지 하겠는가? 계사가 지나치다. 선조의 옛 신하를 경솔히 논할 수 없다. 모두 윤허하지 않는다.”

하였다.

○ 합계는 정언 이사경(李士慶)ㆍ헌납 이호신ㆍ사간 박이서ㆍ정언 임장ㆍ집의 목장흠(睦長欽)ㆍ장령 윤양이 아뢴 것이었는데,

영상 유영경은 본래 흉악한 사람으로 외람되게 정승자리를 차지하고 안으로는 궁중과 결탁하고 밖으로는 사당(私黨)을 세워 마음대로 권세를 희롱하여 성총을 막아 가리우고, 조아와 인척을 높고 중요한 지위에 벌여 놓고, 자기와 의견이 다른 사람을 배척하여 언로를 막았으므로, 불길 같은 세력이 하늘에 치솟아 길가는 사람이 눈짓만 합니다. 지위를 잃을까 근심하는 마음이 오랠수록 더욱 심하여져 음흉한 모략과 비밀한 계책을 갖은 방법으로 다 하여서, 그 화심을 품고 임금을 업신여기고 나라를 저버린 죄는 천지간에 용납되지 못할 바요, 귀신과 사람이 함께 분개하게 여기는 바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모두가 쳐다보는 자리에 앉아 있고, 악을 토벌하는 법을 거행치 아니하매, 대중의 노함이 날로 격심하여지고 공론을 막기가 어려우니, 선조의 옛 신하라 하여 하루라도 용서해 두는 것은 불가합니다. 청하옵건대, 관작을 삭탈하고 문밖으로 출송토록 명하소서. 원흉이 악한 짓을 하는 데 못할 짓 없이 하는 것은 간사하여 화란을 좋아하는 무리가 있어 그에게 우익이 되어 그 형세를 이루어 주지 아니한다면 또한 어찌 능히 더욱 뻗어서 도모하기 어려움이 이같이 극심함에 이르겠습니까? 김대래ㆍ이유홍(李惟弘)ㆍ이효원(李效元)ㆍ성준구(成俊耈) 등은 혹 그의 심복이 되고 혹 그의 조아가 되어 밤낮으로 모여 의논하여 귀역과 같았고, 홍식ㆍ송부는 또한 그의 사주를 받아 조정을 흐리고 어지럽혔습니다. 청하옵건대, 부호군 이효원ㆍ이유홍ㆍ김대래ㆍ사인 성준구는 모두 삭직하여 출송을 명하시고, 이조 참판 홍식ㆍ이조 정랑 송부는 관직을 삭탈하여, 사당을 만들어 악을 일삼는 자의 경계로 삼으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영상에 대해서는 이미 윤허하지 않겠다고 유시하였고, 이효원 등은 이런 때에 이들에게 죄를 줌이 불가하나, 공론이 이와 같으니 다만 파직한다.”

하였다.

○ 옥당의 차자는 대개, ‘유영경에 대해서는 쾌히 공론에 따르라’는 것이었는데, 비답하기를,

“차자를 ‘영상 유영경은 바로 선조의 옛 신하라 경솔하게 논죄함은 옳지 않다. 또 ‘아버지의 신하를 바꾸지 않는다’ 는 옛말이 있음을 들었다. 선왕께서 여러 신하 가운데에서 발탁하시어 영의정의 자리에 앉힌 지 지금 7년에 이르면서, 그 도움에 의지함이 더욱 두터웠다. 선왕께서 돌아가신 지 겨우 10일이 지났는데 갑작스레 그에게 죄를 줌은 ‘그 어버이를 죽었다고 여기지 아니한다’는 의리에 어긋날 뿐 아니라, 또한 장로를 대우하는 도리를 잃는 것이니, 내가 차마 할 수 없다.”

하였다.

○ 합사하여 아뢰니, 비답하기를,

“대신이 논핵을 받게 되면 형세가 공무를 행하기 어려운데, 하물며 이때에 정승자리를 오래 비워 둘 수 없음에랴? 영상을 체차하라. 이효원 등은 이미 파직하였으니, 어찌 굳이 삭직하여 출송할 필요가 있겠는가. 윤허하지 않는다.”

하였다.

○ 사간원의 계는 민희건(閔希謇)에 관한 일인데, 비답하기를,

“따라야 할 일 같으면 머뭇거리고 어려워하기를 이같이 하겠는가? 선왕께서 신임하던 환관을 어찌 차마 유배하겠는가? 번거롭게 논하지 말라.”

하였다.

○ 전교하기를,

“영상의 자리가 비었으니, 복상(卜相)하도록 좌우상에게 말하라.”

하였다.

○ 복상하여 완평부원군 이원익(李元翼 : 1547-1634)이 영의정이 되었는데, 사직하는 소를 올리니, 비답하기를,

“차자를 보고 잘 알았소. 경이 오늘날 입성하니 조야가 다 서로 경사로 여기고 군민(軍民)이 이마에 손얹고 바라보니, 어찌 꿈에 점쳐 얻은 이보다 좋지 않겠소? 더구나 경은 공정하고 충성스럽고 청렴하고 정직하여 진심으로 나라를 근심하니, 지금 수상의 직책은 경이 아니면 불가하오. 비록 질병이 있다 하더라도 스스로 마땅히 조리하여 공무를 행하면 될 것이니, 안심하여 사양하지 말고, 힘써 과인의 우매함을 보필하오.”

하였다.

○ 합계하기를 대개

“유영경의 죄는 본직을 체차하고 그치는 것만으로는 불가합니다. 아직도 관작과 봉작을 몸에 띠고 거만하게 도성 안에 있으니, 청하옵건대, 빨리 삭직하여 문밖으로 출송하도록 명하소서.”

하였는데, 비답하기를,

“이미 본직을 갈았으니, 어찌 굳이 관작을 삭탈하여 출송할 필요가 있겠는가.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 옥당의 차자는 ‘유영경에 대하여는 쾌히 공론에 따르라’는 것이었는데, 비답하기를,

“이미 본직을 갈았으니, 삭직하여 출송하는 것은 불가하다.”

하였다.

○ 사간원이 아뢰기를,

정인홍(鄭仁弘)은 조식(曹植)의 제자로 초야에 살면서 기재와 지절을 자임하였으므로, 대행대왕께서 특별한 예로 대접하여 여러 번 부르시는 명을 내렸으니, 그 가상하게 여겨 권장하고 총애하여 발탁한 뜻이 지극하고 극진하였습니다. 근자에 한 상소는 말은 비록 과격하기는 하나 실로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근심하는 지극한 정성에서 나온 것이온데, 먼저 권간(權奸)의 무함에 빠지게 되어 쫓겨나는 화를 받기에 이르렀으니, 이것은 온 나라 사람들의 똑같이 분격하는 바요, 길가는 사람들이 함께 슬퍼하는 바입니다. 이경전(李慶全)ㆍ이이첨(李爾瞻)에 있어서는 애초부터 증거할 만한 흔적이 없는데도, 지시하고 사주한 죄상을 얽어 만들어 정인홍으로서 하나의 커다란 함정을 삼아 동시에 그가 평상시에 원망하던 사람들까지 불측한 지경에 밀어 넣으니, 간악한 사람이 사람을 죄에 빠지게 하는 술법이 이와 같이 참혹합니다. 청하옵건대, 정인홍ㆍ이경전ㆍ이이첨 등을 빨리 석방하기를 명하고 그전대로 관작을 복구하시어 울분하는 여정을 쾌하게 하소서.

이 조야가 정성으로 새 교화에 눈 씻고 기다리는 때를 맞이하여 반드시 물 흐르는 것처럼 간언을 좇는 아름다움을 다하여, 이미 꺼져 없어진 공도(公道)를 회복해야 할 것이온데, 하찮은 한두 신하의 죄악을 논렬한 지 이미 오래이오나 아직도 윤허하신다는 명이 없으시니, 신 등은 그윽이 의혹됩니다.

옛날 한기(韓琦)는 공두칙(空頭勅)으로서 임수충(任守忠)을 쫓아버리고, 주희(朱熹)는 용대흔(龍大欣)을 제거함을 급선무로 삼았으니, 그 뜻의 소재가 어찌 우연하겠습니까? 청하옵건대, 민희건을 빨리 명하여 유배 보내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민희건은 이미 파직되었으니 굳이 유배 보낼 필요는 없고, 정인홍 등은 선왕께서 유배를 명하신 지 아직 오래지 아니한데, 내가 어찌 감히 갑자기 그 뜻을 어기고 가볍게 석방하겠느냐? 윤허하지 않는다.”

하였다.

○ 합계하기를,

“유영경의 죄를 신 등이 논렬한 지 여러 날이 되었음은 상께서 남김없이 통촉하셨사온데, 다만 선조의 옛 신하란 이유 때문에 머뭇거리고 어렵게 여겨 이제까지 이르시니, 신 등은 그윽이 의혹됩니다.

유영경은 이름은 비록 옛 신하라지만 선왕께 죄를 얻음은 큽니다. 총애하여 정승으로 탁발하심은 은혜와 보살피심이 지극히 융숭하온데, 은혜 갚기를 도모하는 정성은 생각지도 않고, 더욱 흉악하고 음험한 계책을 마음대로 하여, 안으로는 궁중과 결탁하고 밖으로는 사당을 세워서 성총을 가리우고 언로를 막아서 조아와 인척을 높은 자리에 배치하니, 불길 같은 세력이 하늘에 치솟아 중외가 곁눈질로 봅니다. 지위를 잃을까 근심하는 마음은 오랠수록 더욱 심하여, 흉한 모략과 비밀스러운 계교를 이르지 못할 데 없이 하였습니다. 그 임금을 업신여기고 나라를 배반한 죄상은 천지간에 용납되기 어렵고 신과 사람이 똑같이 격분하니, 어찌 옛 신하라 하여, 다만 그 직만 갈게 하여 악을 토벌하는 형벌이 지체되게 할 수 있겠습니까? 만일 그대로 벼슬을 띠고 거만하게 도성 안에서 편히 쉬게 한다면, 왕법(王法)은 행해지지 못하고 공론은 펴지지 못하게 됩니다. 청하옵건대, 관작을 삭탈하여 문밖으로 출송하도록 명하소서.

홍식과 송부는 원흉의 당에 붙어 위세를 조성하고 한결같이 지시와 사주를 따라 조정을 어지럽게 한 죄는 이효원 등과 다름이 없는데, 그 직만 파면하니, 여정이 더욱 울분히 여깁니다. 청하옵건대, 아울러 관작을 삭탈하도록 명하소서.”

하였다.

○ 사간원의 계는 ‘민희건을 유배하라’는 것이었고, 또,

“정인홍이 젊어서 조식(曹植)의 문하에 놀아 기개와 지절을 자임하고, 몸은 초야에 살면서 오래 권장과 총애를 입었는데, 몸을 생각지 아니하고 올린 한 소가 비록 과격한 듯하나,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근심하는 정은 실로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권간에게 무함을 당하여 마침내 중한 죄에 빠졌으므로 조야와 원근 사람들이 통탄하게 여기지 아니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경전ㆍ이이첨 등에 이르러서는 애당초부터 증거할 만한 흔적이 없었는데, 지휘하고 사주한 죄를 얽어 만들어 정인홍의 상소를 가지고 하나의 커다란 함정으로 삼아 떠밀어 빠지게 하여 원망을 갚는 기묘한 계책으로 삼았으니, 그 없는 것을 날조하여 사람을 해치는 방법이 여기에 이르러서는 교묘하고도 참혹합니다. 하물며 정인홍은 나이 70을 넘었고 또 질병이 있으니, 가령 피곤하여 도로에 쓰러져 죽음을 면치 못한다면 새 교화에 있어 유감됨이 있을 뿐 아니라, 또한 선조에도 누가 있을까 염려됩니다. 청하옵건대, 머뭇거리고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고 빨리 너그럽게 방면하시고, 곧이어 옛 관작에 복구시켜 울분한 여정을 쾌하게 하소서.”

하니, 비답하였다.

“정인홍 등의 일은 이미 일렀으니, 번거롭게 하지 말라. 민희건의 일은 윤허하지 아니한다.”

○ 합계에 비답하기를,

유영경은 파직하라. 홍식은 어찌 여기에 이르겠는가? 이미 파직하였으니, 축출은 윤허하지 않는다. 송부의 일은 계사대로 윤허한다.”

하였다.

○ 사헌부가 아뢰기를,

“신 등은 하찮은 하나의 환관의 죄를 논하여 여러 번 성상의 귀를 더럽혔으나 유음(兪音)이 아직도 없고, 선조의 근시(近侍)요 호성(扈聖)한 공신이라고 하교하시니, 신 등은 그윽이 의혹됩니다. 방자히 총애받는 환관임을 믿고 그 해가 생민에게까지 미쳤습니다. 그 간교함을 방자하게 하여 죄가 용서할 수 없는데, 어찌 감히 소제하는 인부와 고삐 잡은 노고를 가지고서 너그럽게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청하옵건대, 급히 유배를 명하소서.

정인홍은 초야에서 글을 읽어 기개와 지절을 자임하였으므로 대행대왕께 알아주심을 만나 총애하여 발탁하고 가상하게 여기어 장려하심이 보통 사람보다 훨씬 더하였으니, 그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근심하는 정이 어찌 다른 사람과 같겠습니까? 지난번 상소는 말이 비록 과격하기는 하나 실로 충성된 마음에서 나온 것인데, 성총을 속여 갑자기 귀양보내 쫓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림의 지극히 슬퍼하는 것이요, 온 나라 사람들의 똑같이 분해 하는 것입니다. 늙고 병든 외로운 충신이 만일 길에서 죽게 되면, 그 선왕의 지극한 덕에 누가 되고 후계하여 자리에 앉으신 새 정사에 흠됨이 어찌 작겠습니까?

이이첨ㆍ이경전에 이르러서도 또한 만한 근거할 흔적이 없는데, 모두 지시하고 사주하였다는 죄를 받았으니, 그 억울함이 지극합니다. 청하옵건대, 석방을 명하여 공론을 펴게 하소서.

이조 판서 성영(成泳)은 밖으로는 소박한 것처럼 보이나, 속에는 교활한 거짓을 간직하여 공의에 배척되어 버려진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권간에게 아부하여 두 번씩이나 전형(銓衡)하는 자리를 차지하고 전후에 조정을 어지럽힌 죄는 밝아 숨길 수 없는데도 아직까지 그 자리에 눌러 앉아 있어 물정이 놀라워합니다. 청하옵건대 파직을 명하소서.

이조 참의 성이문(成以文)은 그 아들이 이미 당파의 악인과 당이 되었다는 죄를 받았으니, 그대로 전형에 눌러 있는 은총을 받을 수 없습니다. 청하옵건대 체차를 명하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정인홍은 선왕께서 유배를 명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석방할 수 없다. 성영은 산릉을 다시 봉심할 일로 의당 나가게 될 것이니, 논하지 않는 것이 옳겠다. 성이문의 일은 윤허하고, 민희건의 일은 윤허하지 않는다.”

하였다.

○ 옥당의 차자는 ‘유영경(柳永慶)을 삭탈 관직하여 출송하라’는 것과, ‘정인홍ㆍ이경전 등을 신원하라’는 것이었는데, 비답하기를,

“이미 파직하였으니, 번거롭게 하지 말라. 정인홍은 선왕이 돌아가신 지 아직 수십 일을 지나지 못하였는데, 내가 어찌 감히 경솔하게 석방하겠는가? 그 것은 좇을 수 없다.”

하였다.

○ 합계(合啓)하기를,

“유영경의 매우 흉악한 죄를 신 등이 논렬한 지 여러 날 되었으나 아직 윤허를 받지 못하오니, 신 등은 그윽이 의혹됩니다. 유영경은 선왕께 죄를 얻음이 큽니다. 총애를 받아 정승에 발탁되어 은혜가 지극히 두터웠는데도, 은혜를 갚으려는 마음을 생각지 아니하고 음흉한 계교를 더욱 방자하게 하여, 안으로 궁중과 결탁하고 밖으로 사당을 세워 성총을 가리우고 언로를 막았으며, 조아와 인척을 높은 자리에 배치하여서 불길 같은 세력이 하늘에 치솟아 사람들이 곁눈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지위를 잃을까 걱정하는 마음에 이르러서는 오랠수록 더욱 심하여 흉한 모략과 비밀한 계교를 갖은 방법으로 다 하였으니, 그 임금을 업신여기고 나라를 저버린 죄는 천지간에 용납되기 어렵고 귀신과 사람이 한가지로 분해 하는 것인데, 어찌 옛 신하라 하여 단지 그 직만 파하고 보통으로 논죄하듯 하겠습니까? 만일 그로 하여금 뻔뻔스레 도성 안에서 편히 쉬게 하면 왕법은 행해질 수 없고, 공론은 파직 수 없을 것입니다. 청하옵건대, 빨리 관직을 삭탈하고 문밖으로 출송토록 명하소서.

홍식은 원흉에게 아부하여 위세를 조장하고 조정을 어지럽힌 죄가 이효원 등과 조금도 다름이 없는데, 홀로 관직을 삭탈당하는 벌을 면하였으니, 신 등은 성상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새로 등극하신 처음에 이같이 죄는 같은데 벌을 다르게 하는 처사가 있게 되면 무엇으로써 인심을 복종시키고 공의를 펴겠습니까? 청하옵건대, 빨리 관작을 삭탈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유영경에 관한 일은 역시 지나치다. 말은 중용을 얻음이 귀한 것이다. 이미 파직하였으니, 어찌 삭직하여 내쫓기까지야 하겠는가? 홍식의 일은 윤허하지 아니한다.”

하였다.

○ 사헌부가 아뢴 것은, ‘정인홍ㆍ이경전 등을 석방하라’는 것과, ‘민희건을 유배하고, 성영을 파직하라’는 것이었는데, 비답하기를,

“정인홍은 윤허하지 않는다고 이미 유시하였다. 민희건은 삭직하라. 성영이 죄가 있고 없는 것은 비록 알지 못하겠으나, 듣건대 풍수를 안다고 하니, 산릉이 정해지지 못한 날을 당하여 파직시킬 수 없다. 아직 논란하지 말라.”

하였다.

○ 간원이 아뢴 것은, ‘정인홍ㆍ이경전 등을 석방하라’는 것과 ‘민희건을 유배시키라’는 것이었는데, 비답은 사헌부에 내린 것과 같았다.

19일 ○ 합계한 것은, ‘유영경을 삭탈 관직하여 출송하라’는 일과, ‘홍식의 관직을 삭탈하라’는 것이었는데, 비답하기를,

“유영경은 이미 일렀으니 윤허하지 않는다. 죄에는 대소가 있고, 벌에는 경중이 있는 것이다. 이효원 등은 비록 이미 삭탈관직하고 출송하였으나, 홍식을 어찌 똑같이 치죄하겠는가? 이미 파직하였으니 서용하지 않음이 옳을 것이다.”

하였다.

○ 간원이 아뢴 것은, ‘민희건을 유배하라’는 것과, ‘장인홍ㆍ이경전ㆍ이이첨 등을 석방하라’는 것이었는데, 비답하기를,

“민희건은 이미 파직하였으니 그 죄에 족히 징계가 되는데 유배함은 과중하여 윤허하지 아니한다. 정인홍은 산림 속의 나이 많은 사람으로 이제 만일 길에서 쓰러져 죽으면 선왕의 융성한 뜻이 아닐까 하니 중도부처하고, 이이첨ㆍ이경전도 똑같이 시행하라.”

하였다.

○ 옥당 차자는, ‘유영경에 관한 일을 쾌하게 좇으라’는 것과 ‘홍식ㆍ성영ㆍ최천건(崔天健)ㆍ신광립(申光立)ㆍ구혜(具寭)ㆍ남복규(南復圭)ㆍ이경기(李慶祺) 등이 유영경에게 아부하여 혼란을 빚어내었다’는 것과, ‘정인홍ㆍ이경전 등을 석방하라’는 것이었는데, 비답하기를,

“유영경이 비록 죄가 있으나 바로 선왕의 옛 신하이다. 이미 파직하였으니, 공론이 행해지지 않았다고 할 수 없다. 홍식ㆍ최천건ㆍ신광립ㆍ구혜ㆍ남복규ㆍ이경기 등은 유영경이 권력 쓸 때를 당하여 누가 날개치며 그 집에 출입하지 아니하였겠는가? 만일 그때의 명사로 죄의 유무와 경중을 따지지 아니하고 일일이 중하게 다스리면 조정에 남아 있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대로 버려둠이 가하다. 정인홍 등은 완전히 석방할 수 없으니, 우선 중도부처하라.”

하였다.

20일 ○ 합계하기를,

“신 등이 유영경의 매우 흉악한 죄상을 가지고 논렬한 지 이미 오래되오나 허락하는 말씀이 아직도 없으시니, 신 등의 민망함과 여정의 억울함은 날마다 더 심합니다. 삼가 원하옵건대, 밝으신 성상께서는 다시 깊이 생각하소서.

유영경은 본래 하나의 흉악하고 교활한 사람으로 정승 지위를 도적질하여 차지한 지 7년에 이르렀는데, 안으로는 궁중과 연결하고 밖으로는 사당을 세워 조아와 심복을 요직에 배치하고, 자질과 인척을 아울러 높은 지위에 앉혔습니다. 자기와 뜻을 달리하는 자를 배척하기를 원수와 같이 하므로 염치 없고 욕심 많은 무리들이 그 문하에 앞을 다투어 모여 언로를 막으므로 조정 의논이 날로 문란해지고 불길 같은 세력이 하늘에 치솟아 사람들이 곁눈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결국 직위를 잃어버릴까 걱정하는 마음에 온갖 짓을 다하여, 음흉한 모략과 비밀한 계교가 화를 빚어내어 헤아리지 못할 바가 있습니다. 그 하늘에 통한 죄는 본래 형장(刑章)이 있는데, 단지 관직을 삭탈하고 문밖으로 출송함은 크게 공론이 아닙니다. 위에서는 오히려 이것도 중하게 여기시니, 무엇으로써 중외의 여러 사람의 노한 심정에 답하겠습니까? 빨리 관작을 삭탈하여 문밖으로 출송하도록 명하소서. 홍식은 본래 하나의 흙덩어리 같은 자로 간악한 괴수에게 의탁하여 우익이 되었으니, 그 조정을 어지럽힌 죄가 이효원 등과 조금도 차등이 없습니다. 이런데도 치죄하지 아니한다면 뒷날의 화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니, 청하옵건대 관직을 삭탈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유영경은 관작을 삭탈하고, 홍식의 일은 윤허한다.”

하였다.

○ 사간원이 아뢰기를,

“정인홍이 충성으로 죄를 얻은 것은 밝으신 성상께서 이미 통촉하시고 특별히 공론을 따르시어 참작하여 중도에 옮겼으니, 조야의 사람들이 모두 쾌하게 여기고 사류들도 똑같이 기뻐합니다. 그 마침내 선왕의 뜻을 따르고 사기를 북돋움에 있어서 보통 일보다 만만 배나 뛰어난 것입니다. 다만 초야의 늙고 병든 사람이 바람과 이슬을 쏘이고 맞아 배소에 닿기도 전에 어쩌다가 길 위에서 죽게 되면 후회하여도 소용이 없을 것이며, 성상의 밝으신 다스림에 크게 누가 될 것입니다. 이경전ㆍ이이첨 등에 이르러서도 권간에게 모함을 당하여 그들의 원통하고 억울함은 비할 데 없으나 아직도 죄수의 문적(文籍) 가운데 있어 완전히 석방하라는 명이 있지 아니합니다. 청하옵건대, 머뭇거리고 어렵게 여기지 마시고 빨리 명하여 너그럽게 방면하고 그전대로 관작을 복구한다면 국가에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권간이 국사를 맡게 되니, 선비의 의논은 사그라지고 여러 소인들이 폭주하는 것을 비유하면, 시랑(豺狼)이 길에 나서니 호리(狐狸) 같은 짐승이 그 위엄을 빌려 현혹시키고 소란을 피우는 일이 백 가지로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저 조그마한 아부하는 무리들은 본디 말할 것도 못 되나, 정사와 일을 해쳐 죄상이 두드러진 자는 불가불 그 경중에 따라서 죄를 논하여야 합니다.

구혜는 변장하고 몰래 엿들어 동료를 무함한 뒤에 간사하고 흉악한 자에게 아부하여 다시 착한 선비를 쫓아냈습니다. 남복규는 한번 권문에 붙음으로부터 도리어 그 스승을 해쳤습니다. 이경기는 정국하자는 의논을 힘껏 주장하여 화단을 남에게 전가시킬 계교로 삼았습니다. 유성(柳惺)은 원흉의 지친(至親)으로 세력에 의지하여 조정을 어지럽히는 데 하지 못할 짓 없이 하였습니다. 신광립은 앞서 옥당에 있을 때 원흉을 구원해 주고, 사헌부에 있을 적에는 선비를 죄주기를 청하였습니다. 최천건은 권간에게 아부하여 성세를 도와 성공시키고는 오래도록 전형의 권한을 쥐고 일체를 그의 말을 따라 하였습니다. 성영은 마음속에 간교한 거짓을 품고서 은밀히 권간과 결탁하여 두 번 전조(銓曹)에 들어가 일체의 지휘를 맡았습니다. 송응순(宋應恂)은 권간이 바야흐로 전성할 때를 당하여 맨 먼저 구원하는 차자를 올리는 데 참가하였다가, 공론이 중하게 나옴에 미쳐서는 또 토죄하는 의논을 따랐습니다. 이정(李瀞)은 사록(史錄)을 누설하여 동료를 얽어놓고, 그 아비를 힘껏 권하여 선한 사람들을 죄에 빠뜨려 해쳤습니다. 신요(申橈)는 왕의 말씀을 빌려 정론을 가리키어 마음대로 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유업(柳?)은 원흉의 아들로서 아직까지 높은 지위에 있습니다.

청컨대, 사과 구혜ㆍ호군 남복규는 삭탈 관작하여 문외출송하고, 호군 이경기ㆍ사직 신광립과 유성은 관작을 삭탈하고, 동지 최천건ㆍ전 판서 성영ㆍ부제학 송응순ㆍ예빈시 부정 신요ㆍ봉교 이정ㆍ이조 좌랑 유업은 아울러 파직을 명하소서.”

하였다.

○ 사헌부가 아뢰기를,

“정인홍을 중도 부처하라는 명을 내리심은 실로 선왕을 추모하는 성하신 마음에서 나온 것이니, 무릇 듣는 사람으로 누가 감격하지 아니하겠습니까만, 애당초 내쫓으심이 이미 선왕의 본의가 아니었으니, 마땅히 시원하게 완전 석방하시어 인심을 위로하여야 할 것인데, 어찌 다만 참작하여 옮기는 것뿐입니까? 늙고 병든 외로운 충신이 마침내 정배되어서 죽는 것을 면치 못하면, 성상께서 뒤에 뉘우치시더라도 소용이 없을까 염려됩니다.

이이첨 등도 또한 한가지로 원통하고 억울함을 품게 되어 나라 사람들이 애석하게 여기니, 그대로 죄인의 문부에 있게 함은 불가합니다. 청하옵건대, 빨리 명하여 쾌히 놓아 주소서. 전 판서 성영은 밖으로는 소박함을 보이지만 속에는 간교한 마음을 간직하여, 권간에게 아부하여 조정을 어지럽혔는데 그 죄가 어찌 관직을 체차하는 데 그칠 뿐이겠습니까? 청하옵건대, 빨리 명하여 파직하소서.

국가가 불행하여 원흉이 세력을 부리니, 불길 같은 세력이 미치는 곳에서 그 사이에 물들지 아니할 자가 몇이나 있겠습니까? 진실로 하나하나 죽 들어서 논할 수 없으매, 우선 일체를 그의 지시와 사주를 들어 행사에 나타나서 그 정상을 가리울 수 없는 자만을 말하겠습니다. 구혜는 앞서, 김대래와 같이 어의를 논핵한 송석경을 모함하였고, 뒤에는 이효원과 같이 충성스러운 말을 하는 정인홍을 죄에 얽어넣어 귀양 보내 쫓았습니다. 유성은 원흉(유영경을 지칭)의 친조카로 정인홍을 죽이기를 꾀하여 불측한 말을 많이 하여 화를 전가하는 계책으로 삼았습니다. 이정(李瀞)은 자신이 사필을 잡은 관원이 되어 남몰래 비사(秘史)의 기록을 전해 주어 권간에 아부하고, 동료를 죄에 떠밀어 넣었습니다. 최천건은 오래 전형의 실권을 잡고 대소 관원의 제배(除拜)를 일체 원흉의 지휘를 받았습니다. 송응순ㆍ신광립은 권신에게 아부하여, 주공(周公)에다 비교하기까지 하여 구원의 바탕으로 삼았습니다. 이와 같은 무리들은 비록 죄에 경중이 있기는 하나 끝까지 용서함은 불가합니다. 구혜ㆍ유성ㆍ이정은 모두 삭탈 관직하여 문밖으로 출송하시고, 최천건ㆍ송응순ㆍ신광립은 모두 파직하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정인홍은 중도 부처하였으면 이미 공론을 따른 것이니, 번거로이 않는 것이 옳겠다. 성영의 일은 그대로 윤허한다. 구혜 등은 어제 나의 뜻을 이미 옥당에 일렀다. 이제 만일 경중을 가리지 아니하고 모두 다 김매듯 한다면 다만 저들이 불복할 뿐 아니라, 또한 인심이 소요해질 것이니, 자세히 살펴서 논하라. 구혜ㆍ유성ㆍ이정은 파직하고, 최천건ㆍ송응순ㆍ신광립은 윤허하지 아니한다.”

하였다.

○ 간원에 비답하기를,

“정인홍 등은 참작하여 중도에 옮겼으니, 번거롭게 논하지 말라. 구혜 등에 대해서는 헌부에 비답한 것과 같은데, 구혜ㆍ남복규ㆍ성영ㆍ유성ㆍ이정은 파직하고, 유업은 체차하고, 이경기ㆍ신광립ㆍ최천건ㆍ송응순ㆍ신요의 일은 윤허하지 아니한다.”

하였다.

○ 옥당 차자는, ‘유영경을 빨리 공론에 따라 처리하라’는 것이었는데, 비답하기를,

“내 뜻을 이미 일렀다. 윤허하지 아니한다.”

하였다.

○ 합계하기를,

“신 등은 이같은 슬픈 거상 중에 계시는 때를 당하여 여러 날 궐문 앞에 엎드려 번거롭고 소요함을 피하지 아니하는 것은 단지, 유영경의 죄악은 하루라도 천지간에 용서해 둘 수 없다는 것 때문입니다. 밝으신 성상께서 이미 정상을 통촉하셨는데 아직까지도 쾌히 좇으신다는 유음이 없으시니, 신 등의 의혹이 더욱 심하여, 부득불 연달아 성상의 귀를 더럽히는 것입니다.

영경은 하나의 흉악하고 음험한 사람입니다. 몸은 정승 자리에 앉았고, 손은 권세 자루를 잡아, 궁중과 연결하여 성상의 총명을 가리우고, 심복을 벌여놓아 자기와 다른 사람을 배척하고 언로를 막고서 바른 선비를 모함하여, 불길 같은 세력이 하늘에 치솟으매 길거리의 사람들이 곁눈질하게 되었습니다. 정권을 잡은 지 7년에 나라를 뒤엎은 데까지 이르지 아니함이 또한 다행이라 하겠습니다. 게다가 총애를 굳히려는 계교가 날이 갈수록 더 심하여지고, 직위를 잃을까 근심하는 마음에서 못하는 일이 없이 하여 음흉한 모략과 비밀한 계책은 말하기에도 참혹합니다. 그 임금을 업신여기고 나라를 저버린 죄는 위로 하늘에 통하였으니, 다만 선왕의 죄인일 뿐 아니라, 또한 종묘 사직의 죄인입니다. 문밖으로 내쫓는 형벌도 또한 말감(末減)을 따른 것인데, 그 직만 삭탈하였으니, 어찌 용서할 수 없는 죄에 징치될 수 있겠습니까? 앞잡이들은 모두 다 이미 내쫓기고 삭직되었는데, 원흉은 홀로 거만하게 도성 안에서 편히 쉬게 된다면 무엇으로써 인심을 복종시키고 공론을 펴게 하겠습니까? 공론이 막혀 펴지지 못하게 되면 앞으로 나라는 나라 꼴이 안 될 것이니, 전하께서도 또한 이것을 사사로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청하옵건대, 빨리 명하여 문밖으로 출송토록 하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대신이 이미 중한 논죄를 받아 관직을 삭탈당하게 되면 형세로 보아 도성 안에 있기 어려울 것이니, 이에 억지로 좇는다.”

하였다.

○ 헌부가 아뢴 것은 ‘정인홍 등을 석방하라’ 는 것이었고, 또,

“원흉이 용사할 때에 세도의 불길이 하늘에 치솟으니, 이익을 좋아하는 무리들이 앞을 다투어 달려가 붙었음은 진실로 하나하나 낱낱이 들 수는 없으나, 우선 행사에 나타나 뚜렷하여 은폐할 수 없는 자를 논하겠습니다. 구혜는 먼저 송석경을 죄에 떠밀어 넣었고, 뒤에는 또 정인홍을 모함하였고, 유성ㆍ이정ㆍ최천건ㆍ송은순ㆍ신광립은 계사의 말을 꾸민 것이 앞에 아뢴 것과 같습니다. 청하옵건대, 구혜ㆍ유성ㆍ이정은 모두 관직을 삭탈하여 출송하시고, 최천건ㆍ송응순ㆍ신광립은 모두 파직하소서.”

하였는데, 비답하기를,

“정인홍 등은 참작하여 옮기는 것이 마땅하니, 번거롭게 논할 것 없다. 구혜ㆍ이정ㆍ송응순ㆍ유성ㆍ신광립 등은 아뢴 대로 윤허한다. 최천건은 비록 어쩌다가 그때에 이조의 장관으로 있기는 하였으나, 반드시 이와 같지는 않을 것이다. 이 사람은 재주와 지혜가 있어 선왕께서도 전에 그를 칭찬하셨으니, 오늘날에는 진실로 거둬 쓸 것이요, 파직할 수 없으므로 윤허하지 아니한다.”

하였다.

○ 간원이 아뢴 것은, ‘정인홍 등을 석방하라’는 것이었고, 또,

“원흉이 요직에 있었으므로 뭇 소인들이 다투어 가서 눈치 보아가며 날뛰고 기세를 조성하였습니다. 도깨비 같은 무리들이 성상의 밝은 시선에서 피하기 어려울 것이니 삭탈ㆍ출송ㆍ파면 등을 각각 그 죄대로 따라야 할 것입니다. 신 등이 논죄하는 것은 실로 공의에서 나온 것입니다. 어제 성상의 비답을 받으매, 일이 번져나갈까 염려하여, ‘이미 불복한다’ 하시고 또 ‘소요해질까 염려된다’ 하시니, 신 등의 의혹이 이에 이르러 더욱 심합니다. 사특을 제거하여 의심치 아니함은 왕정(王政)에 있어서 의당 급하게 해야 하고, 쓰고 버리며 나오게 하고 물러가게 함은 치란이 달려 있는 것입니다. 왕의 결단이 조금이라도 더디면 참소하는 도둑이 틈을 타게 되니, 이것이 바로 신 등이 연일 진정하여 성상의 귀를 더럽히면서 그만두지 못하는 것입니다.

구혜는 숨어서 남을 죄에 빠뜨림도 또한 너무 심한 것인데, 악인과 당파를 지어 충신을 원수로 삼아 착한 선비를 논핵하여 귀양 보냈습니다. 남복규는 권문의 노예가 되었어도 태연히 부끄러움을 알지 못하고 뜻을 받아 공을 세우려고 도리어 그 스승을 해쳤습니다. 이경기는 정국하자는 의론을 강력히 주장하여 화단을 전가하려는 계교로 삼았습니다. 유성은 원흉인 그 숙부의 세력을 빙자하여 조정을 어지럽히는 죄를 졌습니다. 신광립은 권간을 구원한 정상이 옥당의 차자에 나타났으며, 선비에까지 논급하여 거듭 사헌부의 의논을 더럽혔습니다. 최천건은 아부하여 세력을 조장하며 오래 전형의 권한을 잡아 대소 관원을 임명할 적에 권간의 입에서 나오는 대로 일임하였습니다. 송응순은 전에는 구하여 주고 뒤에는 공격하여 그 말을 어지럽혀 때에 따라 사태의 변함을 보아 행동한 정상이 나타났습니다. 신요는 왕언(王言)을 가탁하여 감히 흉계를 내부리어 공론을 배척하여 불령(不逞)이라고 무함하였습니다. 유업은 원흉의 아들로서 조신의 반열에 끼어 있음이 불가합니다. 청하옵건대, 구혜ㆍ남복규는 삭직하여 출송하고, 이경기ㆍ유성ㆍ신광립은 관직을 삭탈하고, 최천건ㆍ송응순ㆍ신요ㆍ유업은 모두 파직을 명하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정인홍은 참작해서 옮기는 것이 합당하니, 번거롭게 논하지 말라. 구혜ㆍ남복규ㆍ유성ㆍ이경기ㆍ신광립ㆍ송응순ㆍ신요ㆍ유업은 아뢴 대로 윤허한다. 최천건은 헌부에 비답한 것과 같다.”

하였다.

○ 옥당 차자에의 비답은 양사의 것과 같다.

○ 간원이 아뢰기를,

“최천건은 오래 권력의 자루를 잡고 대소 관원의 제배에 한결같이 권간의 말을 따랐으니, 그 성세를 조성한 죄가 큽니다. 비록 한두 가지 칭찬할 만한 재주가 있을지라도 어찌 이 때문에 그 죄를 전부 풀어 줄 수야 있겠습니까? 청하옵건대, 빨리 명하여 파직하소서. 정인홍 등은 너그럽게 석방하고, 관작을 복구하소서.”

하니, 비답하였다.

“이미 일렀으므로 윤허하지 아니한다.”

23일 ○ 정언 이사경(李士慶)이 아뢰기를,

“보잘것없는 미천한 신이 언관의 자리에 봉직하고 있는데, 이때를 당하여 사사로운 혐의를 가지고 천청을 시끄럽게 하였음은 죄가 만 번 죽어 마땅합니다. 다만, 정인홍의 상소가 한번 들어오매 간흉의 도당이 기백을 상실하고, 그를 죄에 얽어 넣으려는 계교를 생각하여 무엇이고 하지 못함이 없었습니다. 헌부의 관원은 국문하자는 의논을 발설하여 유생을 쫓아내기를 청하기까지 하였으니, 이것은 옛날의 권신들도 하지 않았던 일입니다. 오직 다행하게도 공론이 없어지지 아니하여 근자에 신료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때의 대간 남복규ㆍ이경기ㆍ신광립 등을 혹은 내쫓고 혹은 삭직하자고 의논하였습니다.

황근중(黃謹中)은 그때에 지평으로서 사세가 홀로 면할 수 없으므로 신이 동시에 논하자는 뜻을 약간 비쳤더니, 동료의 의논이 일치하지 못하여 마침내 중지하게 되니, 물정이 울분하여 모두 온당치 못하게 여겼습니다. 교리 황치중(黃致中)은 감히 사사로운 뜻으로 지레 짐작하고 신을 가리켜, ‘예전의 혐의를 가지고 시기를 타서 갚고자 한다’고 공공연히 사람들을 향하여 지껄였습니다. 신은 근중 형제에 대하여 티끌 만한 작은 혐의도 없고, 저들이 유영경의 앞잡이가 되었던 것은 온 나라 사람들이 더럽다고 침뱉는 바입니다. 대간의 말은 진실로 공공한 의논인데, 곧 사대부의 사이에서는 차마 들을 수 없는 추한 욕설로 드러내놓고 언관을 공격하여 일을 의논하는 사람의 입을 재갈 먹여 억제하고자 하니, 이것은 신이 외람되게 언관의 자리에 앉아 있어 경멸을 당한 소치에 불과합니다. 청하옵건대, 명하여 신의 직을 파척하여 대간의 체면을 중하게 하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사직하지 말고 물러가 기다리라.”

하였다.

○ 금부도사 장계는, ‘정인홍이 병이 중하여 중로에서 지체하니, 극히 민망하고 염려된다.’는 것이었다.

○ 대사헌 김신원(金信元)이 아뢰기를,

“신이 앞서 조보 가운데에서 사헌부의 계사를 얻어 보았더니, ‘정인홍의 죄를 논하고자 하여 바야흐로 기초하고 있었는데, 사간원이 이미 윤허를 받았기 때문에 인혐하였다.’ 하고 3~4일이 지난 뒤에 사헌부가 이성ㆍ정조(鄭造)를 귀양보내자고 청하였고, 유생 이정원(李挺元)도 언급하였습니다. 신은 항상 생각하기를, ‘미처 들어가 아뢰지는 못하였지만, 이미 기초를 했다면 그 뜻이 사간원과 같은 것인데, 또 어찌하여 상소한 유생까지 귀양 보내자고 하는 데까지 이르렀는가? 그 권간에 아부하여 사류를 모함한 죄는 도망할 길이 없다.’ 하였습니다.

신이 이 직책을 더럽히게 되어서는 접때 구혜 등의 죄를 논할 때 아울러 그때 사헌부의 관원도 논죄하고자 여러 번 말했으나, 동료의 의논이 일치하지 아니하여 스스로 제 의견을 지킬 수 없어, 남복규ㆍ이경기까지 모두 다 버려두고 논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이제 정언 이사경이 인피한 말을 보매, 황근중 한 사람을 논죄하지 않았다 하여 물정이 또한 울분했다 하니, 신이 나약하여 말하지 아니한 죄가 이에 이르러 더욱 큽니다. 결코 뻔뻔스레 그대로 무릅쓰고 있음은 불가하니, 청하옵건대 명하여 파직하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사직하지 말고 물러가 기다리라.”

하였다.

○ 헌납 이호신(李好信)ㆍ사간 박이서ㆍ정언 임장ㆍ집의 목장흠(睦長欽)ㆍ장령 윤양(尹讓)ㆍ지평 민덕남(閔德男)의 피혐한 사연은, 대사헌이 피혐한 것과 같았는데, ‘사직하지 말고 물러가 기다리라.’ 하였다.

○ 사헌부가 아뢴 것은, ‘정인홍 등을 놓아주고 복직시키라’는 것과, ‘최견을 파직시키라’는 것이었는데, 비답하기를,

“정인홍을 완전 석방은 못하겠으나, 듣건대 병이 중하다 하니, 만일 길바닥에서 쓰러져 죽는다면 아마 선왕의 뜻이 아닐 듯하므로 그대로 윤허하고, 이이첨ㆍ이경전ㆍ최천건은 윤허하지 아니한다.”

하였다.

○ 지평 정광성(鄭廣成)이 아뢰기를,

“정언 이사경은 황근중의 일로 해서 피혐하였고, 대사헌 김신원은 이것을 끌어다 구실을 삼아 허물을 삼고 인퇴하였습니다. 소위 황근중은 신의 장인으로, 법에 의당 상피하여야 함에도 신이 황송하게도 그 자리에 끼어 앉았으나, 일찍이 논핵하는 것이 옳다 그르다 하는 일에 참여함이 없었는데, 김신원의 계사 가운데 ‘동료의 의논이 일치하지 않았다’는 등의 말이 나오게 되니, 진실로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신은 감히 뻔뻔스레 그대로 있을 수 없습니다. 어저께 마침 병으로 눕게 되어 이제야 비로소 나와 피혐하니, 과실이 더욱 큽니다. 청하옵건대 명하여 파직하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사직하지 말고 물러가 기다리라.”

하였다.

○ 사헌부의 계는 장령 윤길이 아뢴 것이었는데,

“양사가 모두 인혐하여 사퇴하나, 일을 의논함에는 중도를 얻는 것이 귀하고, 사람을 다스리는 데에는 너무 심함을 버리는 것이니, 먼저 그 중대한 죄를 논하고, 가벼운 자는 우선 버려두어 천천히 의논하여 자세하게 살핀 뒤에 처리하는 것이 불가할 것 없습니다. 참으로 둘 다 같이 논죄하려는 뜻이 있으면 그 죄를 들어 탄핵함이 옳은데, 처음에 동료와의 자리에서 두드러지게 말하지 아니하고 이제 인피하고, 동료 중에서 듣지 못한 말을 만들어 소요의 꼬투리를 만들기에 이르렀으며, 질병이 든 것에 대하여는 사람이 면하기 어려운 것인데, 혐의 없이 어찌 피하겠습니까? 청하옵건대, 대사헌 김신원ㆍ집의 목장흠ㆍ장령 윤양ㆍ지평 민덕남과 정광성ㆍ사간 박이서ㆍ헌납 이호신ㆍ정언 임장은 출사하게 하고, 이사경은 체차하게 하고, 이이첨 등을 놓아 보내고, 최천건을 파직하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윤허한다. 정인홍 등은 바로 선왕께서 명하여 귀양보낸 사람이다. 감히 가볍게 놓아 줄 수 없으나, 다만 정인홍이 병이 중하다 하니 부득이하여 억지로 좇는다. 인홍은 이미 놓아 주었는데도 이이첨 등은 그대로 죄적(罪籍)에 남아 있게 되면 원통하고 민망스러울 듯하니, 모두 놓아 보내라.”

하였다.

○ 장령 윤길이 아뢰기를,

“이이첨 등을 복직하자는 한 조항은 원래 본 사헌부가 진계(陳啓)한 뜻이 아닌데, 어제 동료가 혹은 인피하고 혹은 연고가 있었기 때문에 날이 저물어서 대궐에 나아가 총망한 가운데 앞서의 계사에 의하여 기초하다가 잘못 사간원의 계사를 사헌부의 계사로 착각하여 그대로 관작을 복구하시라고 아뢰었사오니, 신의 처사에 전도한 과실이 큽니다. 청하옵건대 명하여 파직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고 물러가 기다리라’ 하였다.

○ 간원이 아뢰기를,

“황근중이 전에 지평으로 있을 때에 다른 사람의 지시와 사주를 받아 죄없는 사람을 얽어 소를 올린 유생에까지 파급되게 하였으니, 공론에 죄를 짐이 큽니다. 청하옵건대 명하여 파직하소서.”

하니, 비답하였다.

“파급됨이 너무 많아 너무 심한 폐단이 없지 아니하다. 너무 심한 것을 버리라 함은 지당한 의논이다. 중도에 지나치는 너무 심한 거조를 하지 말고 힘써 진정함이 옳겠다.”

○ 간원이 아뢰기를,

“황근중이 앞서 지평으로 있을 때에 권간의 논의에 부회하여 죄없는 사람을 얽어 죄지워 소를 올린 선비에게까지 파급되게 하였으니, 그 공론에 죄를 얻음이 이보다 더 심함이 없습니다. 이제 의논을 벌임은 실로 중도를 지남이 아닙니다. 청하옵건대 파직을 명하소서.

병조 판서 박승종(朴承宗)은 앞서 대사헌으로 있을 때에 또한 정인홍을 청죄하는 데 참여하였는데, 홀로 그 죄를 면하니, 물정이 놀라고 분개하지 아니함이 없습니다. 청하옵건대 파직을 명하소서.”

하니, 비답하였다.

“일을 의논함에는 중도를 얻음이 귀하고, 사람을 다스림에는 너무 심한 것을 버린다. 먼저 그 중한 죄를 의논하고 아직 가벼운 것을 버려두는 것이 불가함이 아니다. 윤허하지 아니한다.”

○ 사헌부가 아뢰기를,

“박승종ㆍ황근중이 앞서 대사헌과 지평으로 있을 때에, 정인홍의 죄를 논하고자 바야흐로 기초를 하다가, 사간원에서 이미 윤허를 받았다 하여 인피하였으니, 비록 미처 입계하지는 못하였으나 이미 기초를 하였으면 그 의논이 사간원과 한가지일 것입니다. 또 소를 올린 유생을 귀양보내기를 청하였으니, 그들이 권간에 아부하여 사류를 죄에 빠뜨린 형적은 빠져나갈 길이 없는데, 아직까지도 논죄하지 아니하여 물정이 울분합니다. 모두 명하여 파직하고 서용하지 마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일은 정도에 지나침을 꺼리고 말은 중도를 얻음을 귀하게 여긴다. 이 사람들이 그때에 비록 혹 대관으로 있기는 하나 어찌 이와 같이 심함에 이르렀으랴? 중한 자는 이미 치죄하였으니, 경한 자는 다스리지 아니함이 옳을 것이다.”

하였다.

○ 비망기에,

“의심할 만한 사람들을 병조와 포도청에서 잡아 가둔 자가 있다 하는데 그런가? 만일 있다면 모두 이송하여 국문하도록 의금부에 말하라.”

하였다.

○ 대사헌ㆍ집의ㆍ장령 윤길과 두 지평이 아뢰기를,

“먼젓번 유영경을 논죄할 때 법률을 적용시킴이 엄하지 못하여 다만 관직을 삭탈하고 문밖으로 출송하는 형전을 청하였는데, 여정이 분격하여 모두 그르다 합니다. 이것은 일을 봄에 민첩하지 못하여 죄를 논함에 적당하지 못한 과실이 있음을 면하기 어려우니, 청하옵건대 파직하소서.”

하니, ‘물러가 기다리라’ 하였다.

○ 사간ㆍ헌납ㆍ정언 임장이 아뢰기를,

“애당초 유영경을 논죄할 때에 법률을 적용시킴이 적당하지 못하여 여정을 더욱 울분케 하였으니, 신 등이 악을 정토함에 엄하지 못하게 한 죄가 큽니다. 청하옵건대 파직하소서.”

하니, ‘물러가 기다리라’ 하였다.

○ 사헌부의 계는 장령 이필영(李必榮)이 아뢴 것이었는데, ‘박승종과 황근중은 파직하여 서용하지 말라’는 것이었고, 또,

“대사헌 이하와 사간 이하가 모두 인혐하고 물러갔습니다. 유영경의 악이 꿰미에 차서 죄가 하늘에 통한 것은 사람들이 모두 아는 것인데, 다만 삭직의 형벌만을 청하여 악을 정토하는 조치를 다하지 못하니, 여정이 더욱 분개함은 이치에 당연한 것입니다. 마땅히 죄를 가하는 의논이 있어야 할 터인데, 미처 논계하지 못하였을 뿐이오니, 하루이틀의 차가 있다 하여 가벼이 언관을 가는 것은 불가합니다. 청하옵건대, 대사헌 김신원ㆍ집의 목장흠ㆍ장령 윤양ㆍ지평 민덕남과 정광성ㆍ사간 박이서ㆍ헌납 이호신ㆍ장언 등을 모두 출사토록 하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이미 유시하였으므로 윤허하지 아니한다. 출사하는 일은 윤허한다.”

하였다.

3월 1일 ○ 정사에게 수찬에 임장을, 판윤에 정인홍을 특별히 제수였다.

2일 ○ 합계하기를,

“급제(及第) 유영경은 본래 흉악하고 패덕한 사람으로 간활한 것까지 더하여 오랫동안 정승 자리에 앉아 있어 죄악이 꿰미에 찼습니다. 안으로는 궁중과 결탁하고 밖으로는 사당을 세워 마음대로 큰 권력을 농락하고, 성상의 총명을 막고, 조아(爪牙)와 심복을 모두 좋은 자리에 차지하게 하며, 인척과 자질을 중요한 자리에 벌여 놓고서 자기와 뜻이 다른 사람을 배척하고 언로를 막아 불길 같은 세력이 하늘에 치솟으니, 길거리 사람들이 곁눈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지위를 잃을까 걱정하는 마음이 오랠수록 더욱 심하여, 흉악 모략과 비밀한 계교를 갖은 방법으로 다 부렸습니다. 책봉을 주청함은 막중하고 막대한 일임에도 나랏일을 담당한 지 7년이 되도록 한 번도 사신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조사(詔使)에게 정문(呈文)함은 온 나라의 같은 뜻인데, 공의를 막아 누르고 상신을 몰래 중상하였습니다.

지난해 전위나 섭정하라는 절목에 이르러서는 실로 종묘 사직의 대계에서 나온 것이어서, 청천 백일과 같아 신민이 마땅히 같이 들어야 할 것인데, 그 비밀히 해서는 부당한 비망기를 비밀로 하고, 그 쫓아서는 부당한 원임 대신을 쫓았으며, 그 회계할 때에는 극력 막으면서 뭇 사람의 생각 밖의 일이라고 하기에 이르렀으니, 그 음흉하고 속이며 비밀스러운 형상은 차마 말하지 못할 바가 있습니다.

불측스러운 화단이 조석에 임박해 있어도 온 조정이 위세를 두려워하여 감히 입을 열지 못하였으되, 정인홍은 몸을 잊고 나라에 바쳐 직언하여 숨기지 아니하였습니다. 유영경이 이에 감히 거만하게 스스로 밝히고, 변명하여 핵실할 것을 청하기까지 하여 터무니없는 것을 날조하여 사류를 귀양 보내고 꼭 옥사를 일으켜 모해하여 죽이고야 말고자 하였으니, 이런 일을 차마 하거든 무슨 일을 차마 못할 수 있겠습니까? 죄가 종묘 사직에 관계되매 천지간에 용납되기 어려우니, 우선 먼 변방에 안치하여 조금이라도 신과 사란의 분노를 쾌하게 하소서.

좌의정 허욱(許頊)은 본래 하나의 천한 인물로 종처럼 유영경을 섬겨 지위가 정승에 이르렀으니, 나라의 명기(名器)를 욕되게 함이 진실로 너무 심합니다. 일찍이 전형을 잡고서 유영경의 지시와 사주를 받아 자기와 다른 사람을 배척해 쫓고 같은 악당을 인용하여 널리 사당을 세워 흉한 세력을 형성하였습니다. 정인홍이 소를 올린 뒤에는 말을 꾸며 죄주기를 청하여 성상을 기망하였고, 또 원흉과 더불어 모의하여 큰 옥사를 일으키어 사류를 해침으로써 뭇 사람의 입을 재갈 먹여 막으려 하였습니다. 그 계교함이 교묘하고도 참혹하였사온데, 아직까지도 벼슬을 보전하니, 여정이 모두 분개합니다. 명하여 관직을 삭탈하소서.”

하였다.

○ 간원이 아뢰기를,

“정언 윤형언은 혐의를 말하고 물러갔으나, 사사로이 비밀스럽게 한 죄는 절로 돌아갈 데가 있을 것입니다. 질병이 오는 것은 누구나 면하기 어려운 것인데 비록 지명은 하지 않았으나 이미 같이 정원에 있었으니, 이제 논사(論思)하는 반열에 참석함은 불가합니다. 체차하소서.

문학(文學) 조명욱(曹明勖)은 앞서 정언으로 피혐할 때에 유영경에게 아부하여 정인홍의 상소를 모함이라고까지 함에 이르렀으니, 음참한 말은 본래부터 교계할 것이 못 되지만, 원흉을 구원하여 공론에 죄를 얻음이 이보다 심할 수 없습니다. 청하옵건대 명하여 파직하소서.

역옥(逆獄)을 추국함은 한 시각이 급하니, 시임 대신으로서 출사할 동안은 원임 대신으로 하여금 밤낮을 가릴 것 없이 전적으로 맡아 추국하게 하소서.”

하였다.

○ 양사에 비답하기를,

“선조의 구신(舊臣)을 박대함은 불가하므로 윤허하지 않는다. 좌의정은 중후하고 근신하는 사람인데 어찌 이와 같을 리가 있겠는가? 윤허하지 않는다. 파급이 너무 지나치니, 조명욱은 우선 그대로 두라.”

하였다.

3일 ○ 합계는, ‘유영경을 안치하라’는 것인데, 계사는 어제와 같으나, 끝에,

“대행대왕께서 1년 동안 편찮으셨는데, 시약청을 끝까지 설치하자고 청하지 아니하여 의관이 망령되게 독하고 찬 약제를 써서, 선왕이 일패도지되었다는 분부를 내리시게 하고도, 한 번도 죄를 책임지고 인책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대간이 수의를 죄주자고 청하기에 이르러서는 가만히 당파를 사주하여서 재갈 먹여 억제하려는 계교를 하였으니, 그 선왕에게 득죄한 것이 또한 큽니다. 인신으로 이와 같은 죄를 졌는데, 어찌 구신이란 연고를 가지고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허욱은 본래 일개 비루한 사람으로 공의에 용납되지 못함이 오래 되었으나 유영경에게 아부하여 정승 자리에 이르고 그 콧김을 쳐다보는 것을 노예와 같이 하였습니다…… 어제 하교의 끝에 ‘중후 근신하다’고 하신 분부는 신 등의 의혹이 더욱 심합니다…… 청하옵건대, 관작을 삭탈하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윤허하지 아니한다. 허욱의 일은 정승이 이미 논핵을 받았으니, 사세가 출사하기 어려울 것이다. 체차하라.”

하였다.

○ 간원의 계는, ‘조명욱을 파직하라’는 것이었는데, 정계하였다.

○ 정원이 아뢰기를,

“좌의정 허욱을 체차하도록 이미 명이 내렸으나 관직을 삭탈하라고 지금 논계하고 있으니, 체차하라는 승전(承傳)을 봉행하지 못하겠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이때는 평상시와 같지 아니하니, 체차하라는 승전을 봉행하라.”

하였다.

6일 ○ 정사에, 기자헌(奇自獻)을 좌의정에 제수하였다.

○ 합계는, ‘허욱의 관직을 삭탈하라’는 것이었고, 또,

“적신 유영경에게 죄를 더하지 않을 수 없다는 뜻으로 신 등이 여러 날 호소하였으나 유음(兪音)이 아직도 없으니, 신 등은 그윽이 민망합니다. 유영경은 천성이 본래 흉참한데다가 간활하기까지 해서 정승 지위를 도적질하여 앉은 지 7년에 악이 쌓였으니, 그 나라를 좀먹고 백성을 병들게 하고, 임금을 잊고 사당을 세워서 권력을 마음대로 농락하고, 뇌물을 탐해 먹고, 궁중과 통하고 언로를 막은 죄는 특히 작은 것에 불과합니다.

우선 종묘 사직에 관계한 것을 들어 말하겠습니다. 그가 중국에서 조사(詔使)가 올 때에 대신이 정문(呈文)하는 거조는 실로 한 나라 신민이 다 같이 원하는 것인데, 유영경은 회피하기를 꾀하다가 마침내 막지 못하게 되자, 말한 상신(相臣)을 몰래 중상하여 그 지위에서 편안하게 있지 못하게 하였으니, 그 죄가 하나입니다.

책봉을 주청하는 것은 막중하고 막대한 일이므로 마땅히 잇따라 사신을 보내어 기어코 허락을 얻었어야 할 터인데, 이정우(李廷禹)가 사신갔다 돌아온 뒤로 몰래 흉계를 품고 한 번도 사신 보내기를 청하지 아니하였으니, 그 죄가 둘입니다.

원손(元孫)은 8세에 봉호(封號)함이 바로 선조(先朝) 때부터의 고사인데, 나이 10세가 넘도록 봉호를 청할 뜻이 없었으니, 그 죄가 셋입니다.

대행대왕께서 1년 동안 편찮으셨는데, 유영경은 내국 제조(內局提調)가 되어서 시약청의 설치를 끝까지 청하지 아니하고 방자스럽게 출입을 마음대로 하여 조금도 꺼림이 없고, 의관에게 일임하여 독한 약제를 많이 써서, 선왕이 ‘일패도지하여 다시 진작할 수 없다’는 하교를 내리게 하고, 마침내는 옥후가 가벼움으로부터 중태로 들어가게 하여 문득 돌아가시게 하였습니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매 마음과 간담이 모두 찢어집니다. 유영경은 이로 하여 허물을 인책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심지어는 언관의 입에 재갈 먹이고 감히 자기를 의논하지 못하게 하였으니, 그 죄가 넷입니다. 지난해 10월에 임시 섭정하라는 명은 참으로 종묘 사직의 대계에서 나온 것으로 신민이 마땅히 밝게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비망기를 비밀에 붙여 이목을 가리고 원임 대신을 쫓아내고 회계할 때에 극력 막아, 심지어는 여러 사람의 뜻밖에 나온 것이라고까지 하였습니다. 음흉하고 거짓스럽고 비밀로 하여 화가 조석에 박두하였건만, 온 나라가 위력을 두려워하여 감히 입을 열지 못하였습니다. 다행히 정인홍이 몸을 잊고 나라에 목숨 바쳐, 직언하고 숨기지 아니하였습니다. 유영경은 이에 감히 거만하게 스스로 밝혀, 변핵(卞覈)을 청하기까지 하였고, 또 매와 개 같은 도당을 사주, 무수하게 허구 날조하여 착한 선비를 귀양 보내고, 또 옥사를 일으켜 죽인 뒤에야 그만두고자 하였으니, 그 죄가 다섯입니다.

인신의 죄가 이 중에서 하나라도 있게 되면 정해진 형벌을 면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이 다섯 가지 대죄를 지었음에리까? 나라 사람이 모두 ‘치죄하여야 한다.’ 하는데, 관직을 삭탈하여 내쫓는 형벌로는 그 죄를 징계함에 족하지 못하여서 앞날의 화단이 차마 말하지 못할 것이 있을까 두려우니, 신 등의 논죄가 실로 지나치지 아니한 것입니다. 청하옵건대, 머뭇거리고 어렵게 여기지 마시고, 빨리 한 번 허락을 내리시어 다소나마 귀신과 사람의 분을 쾌하게 하소서.”

하였는데, 비답하였다.

“이미 삭직하여 출송하였으면 공론이 이미 행해진 것인데 다시 논할 필요가 있는가? 번거롭게 하지 않는 것이 옳겠다. 허욱은 이미 유시하였으므로 윤허하지 아니한다.”

7일 ○ 사헌부가 아뢰기를,

“홍문 교리 민경기(閔慶基)는 본래 간사한 사람으로, 허언을 만들어 내어 간당에게 전파하였고, 윤허하지 아니한다는 비답을 극진히 칭송하여 원흉에 아첨하였으므로, 크게 공의에 버림을 받았는데, 아직도 화려한 관질을 차지하고 있어 물정이 놀라워합니다. 청하옵건대 명하여 파직하소서.

부호군 유영근(柳永謹)은 원흉의 친족으로 사특한 의논에 붙어서, 정인홍의 상소가 있은 뒤 상께서 동궁에 계시면서 영을 내릴 때에 몸이 궁료(宮僚)가 되어서 감히, 정인홍이 무망하였다느니 죄인을 이에 잡았다느니 하는 등의 말로써 계사를 꾸며 회달하였습니다. 또 이유홍(李惟弘)의 집에서 착한 선비를 정국하자는 논의에 동참하였습니다. 그 공론에 죄를 얻음이 극도에 달하였으나, 아직도 관작을 보전하매 물정이 놀라워합니다. 청하옵건대 명하여 관작을 삭탈하소서.”

하니, 비답하였다.

“이 같은 사람을 한 가지로 논할 필요가 없으니, 윤허하지 아니한다.”

○ 간원이 아뢰기를,

“보덕 김신국(金藎國)은 원흉에게 아부하였습니다. 지난날 구혜의 한 짓이 다 그의 지시와 사주에서 나온 것인데, 구혜가 죄를 입은 뒤에는 이 사람에게로 허물을 돌려 원통함을 일컬어 마지아니하여, 죄를 면했을 뿐 아니라, 도리어 청반(淸班)에 제수되었으니, 여정이 놀라워하지 않음이 없습니다. 청하옵건대 파직을 명하소서.

이조 좌랑 박안현(朴顔賢)은 권간에게 쫓아 아부하여 이조 좌랑에 제수되었으므로, 유식한 자가 비루하다고 침을 뱉은 지 오랩니다. 그 공론이 발한 뒤에 와서는 그때 이조의 관리들이 모두 이미 논죄를 받았는데도, 아직 본직에 눌러 있어 물정이 모두 분개합니다. 명하여 파직하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근일 파급된 자가 너무 많으니, 파직함이 불가하다.”

하였다.

○ 합계에 비답하기를,

“이미 일렀으니 윤허하지 아니한다. 허욱은 파직하라.”

하였다.

○ 옥당 차자는 ‘유영경은 멀리 귀양 보내고 허욱은 관직을 삭탈하라’는 것이었는데, 비답하기를,

유영경은 관직을 삭탈하여 출송하였고, 허욱은 파직하였으니, 다시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 양사가 두 번째 아뢰기를,

“신등이 유영경에게 죄주자는 뜻으로 극진히 논렬하였는데, 상께서 한결같이 고집하시니, 신 등은 머리를 모아 서로 생각하여도 참으로 성상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유영경의 죄가 ‘뇌물을 탐내어 조정을 어지럽게 하였을 뿐이라’ 한다면 신 등이 어찌 감히 우러러 성상의 귀를 더럽힘이 이같이 극도에 이르겠습니까? 종묘 사직에 관계된 죄를 하나둘로써 계산하기 어렵고, 나라 사람이 모두 ‘징토해야 한다’ 하니, 오늘의 의논은 신 등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요, 참으로 한 나라의 공공한 의논입니다. 대중의 노함이 물과 같아 날로 더 깊어가니, 성상께서 비록 이 하나의 적신(賊臣)을 용납하고자 하시나 그 공의를 막기 어려움은 어찌합니까? 상하가 서로 고집하면 여정이 더욱 격절하니, 청하옵건대 머뭇거리고 어렵게 여기지 마시고 허락하여 주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윤허하지 아니한다.”

하였다.

○ 판윤 정인홍이 사은하였다.

○ 합계는 허욱과 유영경에 관한 것이었는데, 비답하기를,

“유영경은 서관(庶官)과 같지 않고, 바로 선왕조의 대신이다. 이미 삭직하여 출송하였으니, 죄를 가함은 불가하므로 윤허하지 아니한다.”

하였다.

○ 사헌부의 전계(前啓)는, ‘유영근을 삭탈하라’는 것과 ‘민경기를 파직하라’는 것이었고, 신계(新啓)는,

“충주목사 이홍로(李弘老)가 의주에서 상소한 뒤부터 그 속셈이 드러난 것을 알고 갖은 방법으로 음모를 축적하여, 근거 없고 불측한 말을 조작하여 서로 얽어 넣는 계교로 삼았으니, 지극히 흉악하고 참혹합니다. 청하옵건대 멀리 귀양 보내도록 명하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고사로 말하면 순 임금 때 유(流)ㆍ방(放)ㆍ찬(竄)ㆍ극(殛)이 사흉(四凶)에게만 미쳤고, 나머지 무리를 다스리고 협박에 못 이겨 따른 자까지 버리자는 의논이 있었다는 것을 아직 듣지 못하였다. 더구나 나라를 담당한 지 오래되어 권세가 이미 이루어졌으니, 한때 같은 조정 사람이 혹시 그 문을 출입하게 됨은 형세가 진실로 그러한 것이다. 어찌 이것을 지적하여 하나하나 논력하여 지척할 수 있겠는가? 모름지기 번거롭게 논하지 말라. 이홍로는 윤허한다.”

하였다.

○ 간원의 전계에,

“김신국은 본래 간사한 사람으로 적신에 아부하여, 근일 구혜의 소행이 모두 이 사람의 지시와 사주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 음흉하고 속이며 비밀스러운 형상은 환히 가릴 수 없으며, 사주를 받은 사람은 이미 죄를 입었으나, 그 주모자는 도리어 청반(淸班)을 받게 되매 여정이 모두 분개하고 공론이 더욱 격하되니, 어찌 파급된다고 하여 그대로 두고 논하지 아니하겠습니까? 청하옵건대 명하여 파직하소서.

박안현은 유영경에게 아부하여 이조 좌랑을 제수받고, 그가 턱으로 지시함을 따라 원흉의 아들을 끌어올렸고, 또 당류와 더불어 귀신과 물여우 같은 자의 모략에 동참하였다가 공의가 나온 뒤에는 그때의 본조 관리들은 모두 죄를 입었으나 그는 아직도 그 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파직하소서.

이홍로의 의주에서의 상소는 말이 무도함에 이르렀는데, 근년에 이르기까지도 화단 지으려는 마음이 그치지 아니하여, 근거 없고 불측한 말을 조작하여서 서로 얽어 넣는 계교로 삼으니, 그 흉악함은 차마 말하지 못할 것이 있습니다. 명하여 멀리 귀양보내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일을 논함에 중도를 얻지 못하고 파급함이 너무 많게 되면 그 가운데는 반드시 횡액에 걸려 억울함을 품은 자가 있게 됨은 이치상 필연적인 것이다. 악의 괴수요 중죄인 사람이 으레 이런 이유로서 말을 고집하여 스스로 변명하고 스스로 벗어나려는 계교로 삼는 자가 왕왕 있으니, 이는 염려하지 아니할 수 없다. 고사로서 말한다면, 이 아래는 헌부에 답함과 같고, 이홍로는 윤허한다.”

하였다.

○ 이홍로를 강계에 정배하였다.

○ 합계는, ‘유영경을 외딴 섬에 안치하라’는 것이었는데, 비답하기를,

“부모가 사랑하던 것을 또한 사랑하고 부모가 공경하던 것을 또한 공경하는 것이다. 개와 말에 이르러서도 오히려 그러한데, 하물며 사람에게 있어서랴? 유영경은 실로 선왕조에서 의지하던 대신이다. 그가 비록 죄가 있다 하나 어찌 차마 외딴 섬에 안치하겠는가? 이에 그것을 좇지 못하니, 마땅히 내 뜻을 알아 번거롭게 고집하지 말라.”

하였다.

○ 사헌부의 전계는, ‘유영근은 삭탈하고 민경기는 파직하라’는 것이었는데, 비답하기를,

“유영경은 파직하고, 민경기는 윤허하지 아니한다.”

하였다.

○ 간원이 아뢴 것은, ‘김신국ㆍ박안현을 파직하라’는 것이었는데, 비답하기를,

“이미 다 말하였으니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 합계에 비답하기를,

“윤허하지 아니한다.”

하였다.

○ 간원이 아뢴 것은, ‘김신국과 박안현을 파직하라’는 일과, ‘수의(首醫) 허준을 율에 의하라’는 일이었는데, 비답하기를,

“김신국과 박안현 등은 체차하고, 허준은 기술이 모자란 소치인데, 이 때문에 그를 사지에 둠은 옳은 법이 아닌가 하여 윤허하지 아니한다.”

하였다.

13일 ○ 합계는, ‘유영경을 멀리 귀양 보내라’는 것이었는데, 비답하기를,

“선왕조의 옛 신하가 비록 죄가 있다 하더라도 대우하기를 너무 박하게 함은 불가하다. 이리하여 어렵게 여겼는데, 공론이 날로 격화되고 여러 사람의 노함을 누르기 어려워 부득이 억지로 좇는다.”

하였다.

○ 사헌부에서는 민경기의 일, 정원에서는 김신국ㆍ박안현의 일을 모두 정계(停啓)하였다.

○ 사헌부가 아뢴 것은, ‘유영근을 삭탈하라’는 것과, ‘허준을 율에 의하여 처리하라’는 것이었는데, 비답하기를,

“영근은 이미 유시하였으니 윤허하지 아니한다. 허준은 기술이 모자란 소치이니, 이 때문에 사지에 두게 함은 옳지 않으므로 윤허하지 아니한다.”

하였다.

15일 ○비망기에,

“유영경은 선왕조의 훈구대신이니 비록 죄가 있다 하더라도 멀리 귀양 보냄도 또한 너무 중한 처분인데, 어찌 반드시 안치하여야 하겠는가? 이 뜻을 양사에 말하여 다만 멀리 귀양 보내는 것으로서 고쳐 승전(承傳)을 받들라.”

하였다.

○ 헌부가 아뢴 것은 ‘허준을 율에 의하라.’는 것이었고, 또,

“이홍로는 본래 흉패하고 악독한 사람으로 의주에서 상소한 뒤에는 스스로 속셈이 드러난 것을 알고 근거 없는 불측한 말을 조작하여 서로 얽어 넣는 계교로 삼으니, 그의 흉참함을 차마 말하지 못할 것이 있는데, 멀리 귀양 보냄에 그치는 것은 불가합니다. 청하옵건대 명하여 외딴 섬에 위리안치시켜 출입을 막으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이홍로의 일은 아뢴 대로 하라.”

하였다.

○ 이홍로를 외딴 지역에 위리안치하는 일로써 입계하니, 전교하기를,

“‘절도(絶島)’라고 고쳐 부표(付標)할 것을 양사에 말하라.”

하여, 이홍로를 대정(大靜)으로 위리안치하였다.

○ 합계하기를,

“유영경의 매우 흉악한 죄는 성상께서 통촉하지 못함은 아니나 공훈 있는 구신인 까닭으로 안치하자는 청을 윤허하지 않으시니, 신 등은 적이 통탄스럽습니다.

대저 유영경이 범한 것은 그것이 어떠한 죄악입니까? 종묘와 사직에 관계되어 천지간에 용납하기 어렵습니다. 왕법으로서 헤아릴 때 결단코 용서받지 못할 것입니다. 신 등의 오늘의 청도 또한 말감(末減)에서 나온 것이니, 어찌 멀리 귀양 보냄에 그쳐 거듭 형벌을 잘못했다는 기롱을 남기겠습니까? 머뭇거리고 어렵게 여기지 마시고, 빨리 명하여 위리안치하여 귀신과 사람의 분노를 조금이라도 쾌하게 하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이미 멀리 귀양 보냈으니, 어찌 안치에까지 이르게 하겠는가.”

하였다.

○ 합사하여 다시 아뢴 것은, ‘유영경을 위리안치하라’는 일이었는데, 비답하기를,

“멀리 귀양 보냄도 또한 너무 중한데, 하필 위리에까지 이르게 하겠는가? 그러면 그는 장차 어디로 가겠는가? 번거롭게 하지 않는 것이 옳겠다.”

하였다.

○ 간원이 아뢴 것은, ‘허준을 다시 국문하여 율에 의하라’는 것이었고, 새로 아뢰기를,

홍여순(洪汝諄 :1547-1609)은 천성이 본래 음흉한데다가 탐욕과 포학한 것까지 더하여 그가 가는 곳마다 제멋대로 악을 행한 형상은 이목에 뚜렷이 보이므로 낱낱이 들 필요가 없습니다. 근년의 일을 가지고 말하면, 선공제조(繕工提調)가 되어서는 공공연하게 개인집을 지었고, 내섬제조(內贍提調)가 되어서는 구사(丘史)를 세워 줄 것을 책임지우는 등, 조금이라도 여의치 못하게 되면 형장을 함부로 써서 목숨을 잃는 사람이 있게까지 하여, 온 나라 사람이 마음 아프게 여기지 아니함이 없었습니다.

지난 기해년(1599, 선조 32) 무렵에 있어서도 궁중과 통하여 불측한 말을 만들어 내어 서로 얽어 넣는 계교로 삼았고, 경자년에 이르러서는 몰래 이산해를 유인하여, 그로 하여금 소장을 올리게 하여 왕궁을 둘러싼 대부들이 있다는 말까지 있어서 그 흉참함이 지극하였습니다. 청하옵건대 관작을 삭탈하여 문밖으로 출송하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말은 중도를 얻음이 귀하고 벌은 반드시 죄에 합당하여야 한다. 이미 그 직을 삭탈하였으니, 다시 의논할 필요가 없다. 선왕조의 옛 신하가 어찌 이와 같은 일이 있겠는가?”

하였다.

○ 합계는, 유영경에 관한 일이었는데, 비답하기를,

“내가 아끼는 것은 대신의 체면을 대접함인데, 여러 날 서로 고집하여 도리어 온당치 못한 것이 있으므로 이에 그것을 좇는다.”

하였다.

유영경을 경흥에 위리안치하였다.

○ 양사가 아뢴 것은, 허준의 일과 홍여순에 관한 것이었는데, 비답하기를,

“허준은 이미 삭직하여 출송하였고, 이홍로가 의주에서 상소할 때에 홍여순이 같이 참여하였다면 파직하라.”

하였다.

○ 의금부 도사 권득기(權得己)가 위리안치의 죄인 유영경을 압송하여 가는 일로 나갔다.

○ 헌부가 아뢰기를,

“동료들이, 홍여순이 불측한 말로서 서로 얽어 넣으려는 꾀를 하였다 하니, 무슨 일을 말함입니까?”

하니, 양사 성상소(城上所)에서 회계하기를,

“기해ㆍ경자년(1599~1600, 선조 32~33) 무렵에 조정 의논이 시끄러울 때에, 홍여순이 동궁을 추대한다는 말을 만들어 내어 궁중에 참소하여 사류를 모함할 계교를 삼았다고 하는 말이 밖에 전파된 지 벌써 오래이므로, 이것을 가지고 불측한 말을 지어내어 서로 얽어 넣으려 한다고 지목하였습니다.”

하니, 사헌부와 간원에 비답하기를,

“이미 그 직을 삭탈하고 또 문밖으로 출송하였으니, 이같이 하는 것만으로 가하고, 다시 추국할 만한 죄상이 없으니, 번거로이 고집하지 말라. 홍여순의 일은 윤허한다.”

하였다.

○ 양사가 피혐하기를,

“홍여순이 불측한 말을 만들어내어 서로 얽어 넣는 계교로 삼았는데, 죄가 국가에 관계되나 당초에 율에 적용됨이 매우 가벼워 물의가 이것을 비난하므로 물러가 대죄합니다.”

하였는데, 옥당 차자로 모두 출사하였다.

21일 ○ 양사의 ‘허준을 율대로 하라’는 것과, ‘홍여순을 멀리 귀양보내라’는 것에 대해 비답하기를,

허준은 중도부처하고, 홍여순은 선왕조의 늙고 병든 신하이니, 비록 죄가 있다 하더라도 어찌 벼슬을 뺏고 귀양 보내기까지 하겠는가?"

하였다.

23일 ○ 양사의 ‘홍여순을 멀리 귀양 보내라’는 것에 대해 비답하기를,

“그대로 하라.”

하였다.

○ 홍여순을 진도에 정배(定配)하였다.

무신년 3월 21일 ○ 세자를 책봉하였다.

○ 생원 이사호(李士浩)가 상소한 대개는, ‘김신국ㆍ남이공ㆍ박이서ㆍ박이장에게 죄주기를 청한다.’는 것이었는데, 입계하였다.

24일 ○ 비망기를 내리기를,

“내 전에 들으니, 이사호가 병법과 잡술을 가지고 임해군에게 접근하여 그대로 친밀한 교우를 맺고 모든 모의하고 계획하는 것을 모두 주장하였다 하므로, 곧 잡아다 묻고자 하였으나 다만 선비란 이름을 가졌던 까닭으로 차마 가벼이 하지 못하고 우선 기다렸더니, 이제 그 상소를 보니 과연 흉악한 사람이다. 누가 이 모략을 하여서 내 뜻을 시험하려 하는가? 이런 조짐은 매우 미운 것이다. 정원은 모두 알라.”

하고, 상소에 ‘계(啓)’자를 찍지 아니하고 내려 보냈다.

○ 대사간 박이장이 아뢰기를,

“삼가 아뢰옵니다. 이사호의 상소는 밝으신 상상께서 이미 그 정상을 통촉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의 이름도 또한 상소 가운데 있는데, 명목을 ‘당간(黨奸)’이라 하였으니, 당간의 일은 죄가 얼마나 큽니까? 정신과 넋이 놀라고 떨려 오래도록 진정할 수 없습니다. 신하가 임금에 있어서는 아들이 아버지에게 있어서와 같습니다. 이미 이 같은 망극한 무고를 받았으니, 어찌 성상께서 이미 통촉하셨다 하여 그 가슴속을 군부에게 다 털어 놓지 아니하겠습니까?

신은 일개 우졸한 사람으로 교유를 좋아하지 아니하고 또 인연을 따라 달라붙는 것도 즐겨하지 아니하여 거의 스스로 몸을 지켜 편당으로 돌아감을 면하는 것이 신이 평소에 쌓은 것이요, 신의 천성도 또한 그러하옵니다. 또 더욱이 신은 근래에 서울을 떠난 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갑진년(1604, 선조 37) 겨울에 영해 부사(寧海府使)를 제수받아 을사년 봄에 부임하여 영해에 있은 것이 3년이 되고, 영해에서 고향에 돌아와 있던 것이 또 2년이어서, 모두 합하면 5년이 됩니다. 멀고 먼 거친 곳에 치우쳐 살면서 궁적한 곳을 달게 여기고 다만 나라를 근심하는 한 마음이 빛나기 단사(丹砂) 같습니다. 조정의 일은 비록 얻어 알지 못하나 때때로 유영경이 권세를 마음대로 하고 총애를 믿어 인심을 많이 잃고 있다는 정상을 듣고, 항상 말하기를, ‘유영경은 얼마 안 가서 결단날 것이다.’ 하였으나, 이것으로 말하면 특히 부분의 일입니다. 어찌 막대 막중한 의논이 뜻밖에 나와 그 죄가 이에 이를 줄 알았겠습니까?

지난 임인년간에 유영경이 이조 판서가 되었을 때에는 자못 인재를 수습함으로써 뜻을 삼아 오늘날의 유영경이가 아닌 듯했었는데, 한번 정승이 된 뒤부터는 판연히 달라져 두 유영경이 되었습니다. 신이 바야흐로 외방에 있어서도 또한 그의 마음씀과 행사를 알고 있음이 이미 오래되었는데, 당간이란 이름이 문득 신의 몸에 가해졌으니, 이것은 신이 주먹을 불끈 쥐며 천정을 우러러보고 마음 아프고 뼈저려 하면서 전하께 우러러 호소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혹시라도 신의 몸이 유영경이 위엄을 지을 때에 조정 반열에 있어 간여한 일이 있었다면 신이 비록 당간의 죄를 면하고자 하나 되겠습니까? 또 실지로 당간의 일을 저질렀다면 공론이 어찌 이사호의 상소를 기다렸겠습니까?

설사 신으로서 외람되게 있지 못할 자리를 5~6년 전에 있었다 하여 이미 지나간 일을 추론하여 죄를 가하고자 한다면, 그때의 사대부로 청반에 출입한 자를 모두 유영경의 도당이라 몰아서 다 버리겠습니까?

남곤(南袞)ㆍ정순붕(鄭順朋)은 당초에는 사류로 일컬어지다가 나중에는 보잘것없고 망측한 소인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기묘사류(己卯士類)를 모두 남곤ㆍ정순붕의 당이라고 지목하겠습니까? 그렇다면 이사호가 때를 타서 모함하는 계교는 또한 흉하지 아니합니까? 그렇다면 이것이 어찌 일개 이사호의 소행이겠습니까? 그것은 반드시 재앙을 다행으로 여기고 화단을 즐거워하는 자가 지시하고 부탁하여 남몰래 중상한 것입니다.

대체로 홍여순의 마음은 길가는 사람도 아는 것으로, 기해년의 일로 본다면, 손발이 모두 드러나 그가 대흉임을 알 만합니다. 공론이 울분하였으나 펴지지 못하다가 이제 비로소 격발되어 스스로 그만둘 수 없어 원정(原情)하여 정죄(定罪)하는 율을 면하지 못하였으니, 풀을 건드려 뱀을 놀라게 하는 격이옵니다. 그 외에 한 몸을 위하여 도모하는 것이 그 극에까지 가지 아니함이 없어서, 유생의 손을 빌어 은연히 공론이라고 만들어 일망타진하는 계책을 성공하고자 함에 이르러서는 그 마음이 막야(鏌鎁)보다 참혹하다 하겠습니다.

그가 상소한 말을 보면 하나는 당간(黨奸)이라 하고 하나는 도과(倒戈)라 하여 이것저것으로 모두 명목을 지어 벗어날 수 없게 하니, 이러므로 유영경을 하나의 고주(孤注)로 삼고, 하나의 함정으로 삼고, 하나의 기화(奇貨)로 삼아서 화단을 조정에 전가하는 것이니, 어찌 마음 아프지 아니하겠습니까?

이런 위태롭고 의구스러운 때를 당하여 사람들은 모두 발을 모아 옆으로 서서 벌벌 떨면서 구차하게 조석(朝夕)을 지내고 나랏 일로 뜻을 삼지 아니하는데, 방관자들은 흔연히 웃음을 머금고 장차 어부의 이익을 다 거두고자 할 것이니, 성상께서 비록 크게 정치를 해보시려는 뜻이 있으시다 하더라도 어찌 능히 수습하여 지탱하시고 무너지지 않게 할 수 있겠습니까?

방금 자리를 이어받아 새로 도모하는 날을 당하여 기상이 또 이와 같으니, 길이 탄식하고 통탄할 만하다 하겠습니다. 질투하는 여자의 입에서 나온 말도, 사람을 얽어 넣으려는 자가 이것을 음란한 말로 꾸며 상대방을 공격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하기에 알맞거든, 광망한 말을 스스로 억제하지 못하였으니, 이것 또한 그 역량을 알지 못함을 보일 뿐입니다. 지목하기를 당간으로 하니 신의 죄는 만 번 죽어도 마땅하나, 소위 스승을 배반하였다는 말은 그 이유를 알지 못하겠고, 또한 근사하지도 않습니다. 죄를 씌우려고 한다면 어찌 할말 없는 것을 걱정하리까? 밝으신 성상께서 위에 계시어 해괴한 귀신 같은 무리들이 비록 그 간악함을 부릴 수 없겠으나, 이름이 상소 가운데 있어 뻔뻔스리 그대로 무릅쓰고 있음은 불가합니다. 명하여 신의 직을 체차하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사직하지 말고 안심하고 직책을 다하고, 물러가서 물론을 기다리라.”

하였다.

4월 29일 ○ 합계하기를,

“신 등이 기자헌(奇自獻 :1562-1624)의 죄상을 가지고 궐문 밖에서 부르짖은 지 열흘이 넘고, 정성을 다하였으나 천청(天聽)이 더욱 멀어지매, 신 등이 민망하고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기자헌은 본래 천성이 음흉하고 몸가짐이 괴이하고 비밀스러워 몰래 남을 모해함이 승냥이나 호랑이보다도 사납고 뇌물을 탐내고 이익을 거둬들임이 농단(隴斷)보다 심합니다. ‘안방의 일이 깨끗하지 못하다[帷薄不修]’는 소문이 중외에 전파되고 불도(佛道)를 숭배하고 믿어서 보고 듣는 이를 현혹되게 하여 사람의 적이 된 지 오랩니다.

지난번 정승의 지위에 있으면서 위세를 크게 벌여 거리낌이 없어, 조진(趙振)의 옥사에 스스로 방자스럽게 억측하여, 밝으신 성상을 속이고 생살을 조종한 죄상은 전고의 원흉에 비하여 보더라도 드물게 있는 일입니다. 뇌물을 받고 관작을 팔고 터를 빼앗아 집을 짓고 하인을 시켜서 공물(貢物)을 대납하게 하는 일에 이르러서는 그것은 비록 그 악한 짓의 조그마한 것이라 하나, 중외의 작은 백성들이 이로 인하여 살림이 부서지고 직업을 잃게 되어 원망이 떼지어 일어나서 나라의 근본이 날로 흔들리게 하였으니, 그 해됨이 크지 아니하겠습니까?

자고로 소인이 불선을 하는 자가 많았습니다만, 아직 기자헌과 같이 음으로 해치기를 흉하고 사나우며, 뇌물을 탐하기 제멋대로 하고, 괴이하고 비밀스럽고 요망하고 거짓되어 이르지 못할 데 없이 한 자는 없었습니다. 대체로 음으로 해치기를 흉하고 사납게 하는 자는 반드시 사람을 해쳐서 화란을 구성하는 데에 이르고, 뇌물을 탐하고 방자스럽게 구는 자는 반드시 백성을 병들게 하고 나라를 좀먹어 재해가 한꺼번에 이르게 하고, 괴이하고 비밀스럽고 요망하고 거짓을 일삼는 자는 반드시 풍속을 해치고 세교(世敎)를 괴이하게 하는 법입니다. 이 가운데 하나라도 있으면 족히 국가에 화를 끼치게 되는 것인데, 하물며 모든 악이 다 갖추어진 데다가 음흉하고 교활한 것까지 더하였음이겠습니까?

그 두 번째 정승이 됨에 미쳐서는 국론이 자자하여, 유(柳)를 기(奇)로 바꾸었다는 말이 있기에 이르렀으니, 백성의 여정을 크게 볼 수 있으며, 공론도 또한 두려운 것인데, 상께서 한결같이 굳게 거절하십니다……”

하였다.

5월 10일 ○ 비망기에,

“내가 조정의 일을 살펴보건대, 의리가 밝지 못하여 사사로이 비호하는 태도가 날로 심하여져 임금과 신하의 분수와 의리를 따지지 아니하고, 오직 당을 보호하고 잘못을 숨기는 것을 상책으로 삼으니, 어찌 가슴 아프지 아니하겠는가? 정경세(鄭經世)의 상소 가운데, 선왕조에 있지도 않았던 실덕(失德)과 잘못된 정사를 긁어 모음에 여력을 남기지 아니하여, 어그러진 말과 방자한 내용이 차마 보지 못할 것이 있다. 내가 궁중에 머물러 두고자 하였으나 도리어 조정의 신하들이 그 죄악을 알지 못할까 하여 내려 보내고, 대략 내 뜻을 말한다. 대간이 그 임금을 업신여기고 무도한 말을 보고도 다만 다스리기를 청하지 않을 뿐 아니라, 도리어 구원하고 억지로 비호하려 하여, 스스로 임금을 잊어버리고 간사한 자에게 당이 되는 죄에 빠지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 경세의 권세는 중하다 하겠다. 내가 비록 대단히 노둔하고 용렬하나 선왕을 위하여 부끄러움을 씻는 거조에는 그만둘 수 없는 것이다. 정경세를 잡아들여 율대로 국문하고자 하니, 이 뜻을 대신에게 물으라.”

하였다.

8월 10일 ○ 이로부터 유상(柳相 유영경)에 대한 논계가 다시 일어났다.

23일 ○ 합계하기를,

“신 등이 유영경(1550-1608)의 임금을 무시하고 무도한 죄를 아뢰고자 합니다. 책봉(冊封)은 한 나라의 대사요, 정문(呈文)은 국가 근본의 장구한 계획인데, 혹은 5 년이나 오래도록 버려두었고 혹은 발언한 신하를 배척하니, 이는 임금을 업신여긴 것입니다. 책훈(策勳)의 뜻을 누르고 행하지 아니하고, 봉혼(封婚)의 예를 막고 청하지 아니하니, 이것도 임금을 업신여긴 것입니다. 기도하는 축사에 당연히 세자가 있어야 하는데 자기의 이름을 쓰고자 하였으니, 그 마음에 과연 임금이 있겠습니까? 약을 시탕하는데 시약청을 설치함은 전례가 있는데 저 용렬한 의원에게 맡겨 두었으니, 그 뜻에 과연 임금이 있겠습니까?

일패도지(一敗塗地)되었다는 하교에, ‘간담이 터지려 한다.’고 말하기까지 하였고, 전위하고 섭정하겠다는 명에 이르러서는 종묘 사직의 대계요, 한 나라 신민의 공공한 바램이었는데, 비밀히 해서는 안 되는 것을 비밀로 하고, 배척해서는 안 되는 것을 배척하여, 준봉(準封)을 않았다느니, 뭇 사람의 뜻 밖에서 나왔다느니 한 것은 장차 전하를 어느 곳에 두려 함이겠습니까? 이때를 당하여 신민이 위태해 하고 의구스러워 하는 심정과 전하의 망극하신 마음이 어떠하였겠습니까? 산림에 있는 충직하고 바른 말 하는 신하가 멀리 천 리 밖에서 상방검(尙方劍)을 청하는 소를 올려 그 흉한 위세를 꺾고 그 간담을 깨뜨렸던 까닭으로 전하께서 오늘을 보유하였습니다. 그러하나, 귀신가 물여우 같은 심정은 독을 뿜어 마지아니하여 거적을 깔고 대죄할 줄은 알지 못하고, 감히 소장을 올려 스스로 변명하고, 비록 궁료를 보내 출사할 것을 도타이 유시하였으나 말씨가 흉패한 것이 무엇을 믿음이 있는 것 같이 하였으니, 이것을 차마 하거든 무엇을 차마 하지 못하겠습니까?

흉도가 구름같이 모여 계획하고 모략을 도우니, 한때의 사림이 장차 그물 속의 고기가 될 뻔하였습니다. 말이 여기까지 이르매 한심함을 깨닫지 못하겠습니다.

선왕께서 승하하시던 날에 이르러서는, 사제(私第)에서 나와 천천히 이르러 호령과 지휘하는 데 아무것도 못 들은 것 같이하여 즉위하시는 예를 지연시키고, 감히 곤륭포 만들 시기를 물었으니, 그 흉모와 비계는 모두가 임금을 업신여김에서 나온 것으로, 사미원(史彌遠) 이후에 한 사람뿐입니다.

그 심복과 조아(爪牙)가 조정에 널리 퍼졌는데 김대래(金大來)가 가장 으뜸이어서, 뱀ㆍ구렁이ㆍ개ㆍ돼지가 합하여 심장이 되어서, 같은 악끼리 서로 도와 무도한 짓을 하기를 모의하고, 유영경을 위하여 용맹을 내어 먼저 소리치면서 뚜렷이 위를 범하는 말을 발설하고, 먼저 대간의 의논을 탄핵하고 정국할 것을 주장하므로, 사람들이 모두 혀를 물고 길가는 사람은 곁눈질하게 되었습니다. 두 원흉의 죄가 궁흉 극악하고, 임금을 업신여기고 무도한 것은 어찌 한갓 신민만이 같이 징토하려고 할 뿐이겠습니까? 실로 이것은 천지도 용납하지 않을 것인데, 신 등이 논의를 여러 날 벌였으나 차마 하지 못하겠다고까지 하교하시니, 신 등의 민망함이 과연 어떻겠습니까? 청하옵건대 머뭇거리고 어렵게 여기지 마시고 율에 의하여 처단하소서.

이홍로(1560-1608)는 흉참하고 패악한 사람으로, 용만에서 한 번 상소한 뒤에는 스스로 그 목을 보전하기 어려울 것을 알고서 음모와 흉계를 꾸며 전하를 동요시키는 것이면 극단적인 방법을 쓰지 아니함이 없어 감히 차마 들을 수 없는 일을 가지고 서로 얽어 넣는 망극한 계교로 삼으니, 이것은 전하께서 통촉하여 아시는 것이요, 신민이 한가지로 분개하는 것입니다. 반드시 엄하게 국문을 가하여 시조(市朝)에 시체를 늘어놓은 뒤에야 조금이라도 귀신과 사람의 분함이 풀릴 것입니다. 명하여 잡아다 국문하여 정죄하소서.

기자헌은 본래 음흉하고 괴이한 천성에다 탐욕과 음탕한 악까지 더하였으니, 장자(墻茨)의 풍자는 추하여 차마 말할 수 없습니다. 벼슬길에 올라서는 궁금(宮禁)을 의지하여 믿고, 기염이 하늘에 치솟고 형벌주고 복주는 것이 그 손에 있어 눈 흘긴 원한도 그의 잡아먹는 대로 맡겨 사람들이 감히 지적하지 못하고, 공물을 대납하는 길이 모두가 그의 집으로 돌아가, 원성이 나라에 찼습니다. 은을 받아들인다는 방문(榜文)이 대궐 아래 걸리자 조진(趙振)의 옥사를 모략하여 이루었고, 내실이 음란하다는 말이 관(館)의 벽에 쓰여지자 그릇 경오(敬吾)의 죽음을 이루게 하였습니다. 온 이웃의 집터를 빼앗아 점령하여 크게 세 곳의 집을 지었습니다. 배에 가득한 소금과 젓갈이 저 강가에 용솟음치고, 진농(秦隴)의 큰 나무가 실려와 큰 거리를 막았습니다. 일가 사람의 거짓 공훈을 등록하기를 꾀하고, 사패(賜牌)한 노비를 스스로 점령하였습니다. 재물을 탐내고 악한 짓을 방자하게 하여 사람에게 화를 입히고, 나라를 흉하게 함이 이같이 극도에 이르렀으나, 다시 복상(卜相)하라는 명이 왕위를 이어받은 처음에 나오니, 도하의 사람들이 유(柳)가 성만 바꾸었다는 비평을 서로 전하여, 이마에 손을 얹고 바라던 것이, 결국은 이마를 찡그리는 데로 돌아갔다 합니다. 한 나라의 인심은 이것을 들어서 알 만하옵니다.

인산(因山)의 역사에 이르러서는 자신이 총호(總護)가 되었으면서, 맨 먼저 요망스럽고 허탄한 말을 발하여 이미 정한 자리를 옮기려 꾀하였는데, 만일 전하께서 성충(聖衷)으로부터 판단을 내리지 아니하였을 것 같으면 선왕의 유명(遺命)이 또한 땅에 버려질 뻔하지 않았습니까? 죄가 국가에 관계됨이 이보다 더 큰 것이 없습니다. 청하옵건대, 빨리 명하여 멀리 귀양 보내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선왕조의 대신과 재신을 가벼이 중죄를 줌은 불가하다. 기자헌은 이미 그 직을 파하였으니, 논죄한 것이 너무 지나치다. 김대래는 아뢴 대로 하라.”

하였다.

○ 영상 유영경에게 율을 가하여 경흥(慶興)으로 위리안치한 뒤에, 양사의 대계(臺啓)로, 전 직제학 김대래는 종성(鍾城)에 위리안치하고, 전 대사간 이효원은 거제(巨濟)에 위리안치하고, 전 정언 구혜는 창성(昌城)으로 원찬(遠竄)하고, 전 장령 남복규(南復圭)는 갑산(甲山)으로 원찬하고, 전 헌납 유성(柳惺)은 삼수(三水)로 원찬하였다. 여러 사람을 정죄하여 귀양 보낸 뒤에 전 대사헌 홍식은 먼저 삭직ㆍ출송을 받았다가 뒤에 강진으로 원찬되고, 전 헌납 송부(宋)도 또한 처음에는 삭직ㆍ출송을 받았다가 뒤에 이산(理山)에 원찬되었다. 양사의 계사로서 잃어버려 기록하지 못한 것은 무신년(1608) 4월 《정원일기(政院日記)》에 상세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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