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록

빼빼

청담(靑潭) 2022. 4. 7. 21:01

빼빼

(어른을 위한 동화)

재연스님(1952-  ) 2001 문학동네

 

 우연히 책장을 바라보는데 이 책이 눈에 띕니다. 처음 보는 책이라서 작가를 보니 친구인 재연스님입니다. 언젠가 남원 실상사를 찾았을 때 친구는 출타하여 없고, 절 내의 판매점에서 구입하였던 것 같은데 아마도 읽지 않고 소장해왔던 듯싶습니다.

 재연스님은 초등학교 동창입니다. 내가 전주교육대학을 졸업하고 원광대 역사교육학과에 편입하여 다닐 때, 친구는 뒤늦게 불교문학을 공부하겠다며 원광대에 들어와 승복차림으로 다녔습니다. 인도에 불교철학을 공부하기 위해 유학을 다녀온 후 실상사에서 불교철학을 강론하다가 요즘은 선운사 동굴 암자에서 수행하고 있는 존경스런 진짜 참된 스님입니다. 방장이니 주지니 하는 명예나 직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스님입니다. 어제,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하는지 어느 부부가 큰 사거리에서 연신 지나가는 자동차에 손을 흔들면서 90각도로 알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연신 공손하게 절을 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앞으로 두 달 동안이나 저리 할 요량인지 생각하니 친구가 사는 모습과 퍽이나 대비됩니다.

어른을 위한 동화라고 합니다.

 첫 장을 열어보니 내용은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흥미롭고, 문장이 너무나 간결하며 자연을 아름다운 언어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아! 친구인 재연스님 대단한 작가이구나! 하고 감탄하면서 그가 오랜 수행을 통해 터득한 자신의 삶의 철학을 동화 속에서 여러 동물들의 입을 통하여 아름답게 담아냈다고 여겨집니다.

 

1.

○빼빼는 다른 친구들이 가는 길과 반대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어깨를 비비며 지나치는 오리들이 말했다.

?야, 빼빼! 어딜 가는 거야? 며칠 굶더니 이젠 집에 가는 길조차 잊었니??

빼빼는 대꾸하지 않았다. 다만 스스로에게 말했을 뿐이다.

?그건 내 집이 아야. 이제 내 길을 가는 거야!?

○당장 저 늦여름 제비처럼 가볍게 날지 못하는 것이 슬펐다.

?날고 말거야!?

○두더지 :

?넌 내 친구들과 똑같은 소리만 하는구나. 그 애들은 마치 먹기 위해서 사는 것 같았거든. 산다는 것은 꿈을 이루기 위해서야. 네 꿈은 뭐지??

 

2.

○산비둘기 :

? ...사랑이 가득한 세상을 꿈꾸거든 먼저 네 가슴을 사랑으로 채워야 돼. 세상은 네 스스로 가슴에 품고 간직한 만큼이란다.?

○왜가리 :

?평온하고 맑은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모두 다 버려야 하느니라.?

?내 어찌 온갖 죄악과 거짓으로 오염된 이 세상에 두 발을 다 딛고 서겠느냐? 성자는 모름지기 발을 뺄 줄 알아야 하느니라.?

○황소 :

?사람들은 우리를 먹이고 보호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인간들에게 소는 보호해야할 생명이 아니라 가두어 지켜야 할 재산이란다. ....당초에는 인간도 떠돌이였단다. 유랑에 지친 저들이 숲 언저리에 움막을 짓고 울타리를 만들었지. 발바닥에 돋아난 실뿌리는 점점 흙속으로 깊이 파고들었고 그들은 어느덧 구름처럼 흐르는 방랑의 아름다움을 잊게 된 거야. 그러면서 우리조상들의 운명 또한 바뀌었지.?

? ...하지만 꼬마야. 마음에 새겨둬라! 결국 우리를 얽어매는 가장 질긴 사슬은 우리 가슴에 꼬물거리는 외로움이라는 것을! 자유는 외로운 것이란다.?

 

3.

○늙은 두루미 :

? ...하지만, 어떤 소망을 품는 순간, 그걸 이룰 열쇠도 함께 가지는 거란다. 너는 반드시 날게 될 거다.?

?하지만, 자신을 학대하지 마라. 자기를 마워하는 자는 아무것도 사랑할 수 없다. ...?

?아무리 아름다운 꿈도 그것을 이루어낼 적절한 방법과 의지가 없는 한, 그건 부질없는 욕망일 뿐이지. ...수행이란 나 자신이 무엇인지를 알아내고, 그렇게 알아낸 것을 실천으로 완성시켜나가는 과정이란다. 나 자신을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나와 세계, 곧, 나와 나 아닌 것들과의 관계를 꿰뚫어보는 것이란다. 이러한 통찰은 집중력을 키우는 것으로 시작된다. ...?

?빼빼야. 마음을 열고 배우는 자에게는 세상 모든 것이 스승이 된다. ...수행이란 다른 것은 물론, 자기 자신에 대한 집착조차 벗어버리는 것이다! ?

 

4

○소쩍새 :

?그렇지? 하지만 우리는 흔히 자기가 정해놓은 틀을 통해서만 세상을 보고 듣는단다. 있는 그대로 볼 줄 모르는 거지.?

?똑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눈에 띄는 것 모두가 이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유일한 것이다. 사랑은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올빼미 :

?...몸과 마음이 함께 있을 때 비로소 마음은 마음이 되고, 또 몸은 온전한 몸이 되는 거다. ...이렇게 자기 몸과 마음을 들여다보고, 자기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를 알고 행동하는 자를 깨어있는 자라고 한다.?

 

5

○...꼬마 오리의 고함소리가 골짜기에 울려 퍼졌다.

?꽈악 꽈아악! 나는 솔개를 꿈꾸지 않아. 다만 날아가는 오리가 되려는 거야!?

 

6

○자유는 억압뿐 아니라, 모든 간섭과 보호에서조차 벗어나는 젓이다. 그러나 누군가의 간섭을 받는 것이 편안하고 아늑할 때도 있다.

 

7

○늙은 오리 :

?누구를 구한다고 생각지는 마라. 때로 자신의 허영을 그렇게 합리화시키기도 하지. 설령 울타리 속에 갇힌 몇몇 오리가 날 수 있게 됐다고 치자. 그래서 뭐가 어떻게 달라지겠지. 또 다른 꿈의 시작일 뿐이겠지. 그들을 오만하게 하고, 무리는 곧 불화에 싸일 거다.?

 

8

○오리 선생님 :

?사람들이 쳐놓은 좁은 울타리 안에 갇혀 사는 부족도 있단다. ...?

 

9

○?그래도 여기 오리들은 갇혀 있는 건 아니잖아. 그들은 지금쯤 나를 까마득히 잊었겠지. 하지만 아무 희망도 없이 갇혀 사는 그들을 잊을 수는 없어.?

○늙은 오리가 말했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들이 함께 어우러져 서로를 아끼고 위하는 세상을 꿈꾼 적이 있다. 나에게 정의란 이 꿈과 조화를 이루는 의지, 그리고 그런 의지를 담은 행위였다. 나는 그게 사랑이라고 믿었다.?

○봄바람 선생님 :

?강하다는 게 뭐겠니? 무언가를 죽일 수 있는 힘인가? 아냐! 한입에 오리를 죽여버릴 수 있는 늑대는 인간의 꾀 앞에 무력해.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은 아까 민들레가 보여준 것과 같은 사랑이야. 사랑은 내 기쁨을 나누어주고 다른 이의 아픔을 나누어 짊어지는 것이야. ...?

 

10

○까마득히 눈 아래 호수가 반짝이고 있었다. 빼빼는 날갯죽지에서 힘을 빼고 커다란 동그라미를 그리며 호수 위를 날았다.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완벽한 비상이었다.

○제비갈매기 :

?...요즘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이 동해바다를 바라보면서 마음의 하늘 나는 거란다.?

?우리의 마음이 때로는 가시 하나 꽂을 수 없게 좁다는 것은 너도 알지? 그러나 저 하늘을 다 집어넣고도 남을 만큼 넓은 것이 또한 마음이란다. 게다가 이 세상에 있는 거라고는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다 들어 있을 뿐만 아니라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조차 간직하지. ...?

? ...마음의 하늘 속에 우리가 만들어 감춰둔 탐욕과 미움, 어리석음은 우리의 자유를 가로막고 짓누르는 장애물이지. ...?

?...잘 산다는 것은 오늘, 이 순간순간을 놓치지 않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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