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6월의 마지막 밤에
오늘이 2022년 한해의 절반이 지나는 마지막 날입니다. 도대체 무엇을 하며 지냈기에 한 달이 저리도 빨리 갔단 말인가? 글씨 연습과 텃밭 다닌 일 외에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긴 그래서 이런 月記라도 쓰는 거 아니겠습니까?
□1일 지방선거
제8회 동시 지방선거 일입니다.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인 <국민의 힘>이 승리하더니 여세를 몰아 지방선거 결과도 많은 변화가 있게 되었습니다. 주요 내용만 적어 봅니다.
1. 시․도
국민의 힘 12석, 민주당 5석으로 여당이 대승했습니다. 경기도에서 민주당 김동연 후보가 당선된 것은 매우 다행이라 생각되고, 전북은 민주당 김관영 후보가 당선되었습니다. 비록 친구인 송지사는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아쉽게 3선을 접게 되었지만, 새 도지사가 젊고 역량을 충분히 검증받은 분이니 새로운 도정 청사진을 설계하여 잘 해낼 것입니다.
2. 구․시․군
국민의 힘 143석, 민주당 63석으로 이전과 뒤바뀌었습니다. 익산은 정헌율 시장이 3선하게 되었습니다. 시민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인품이 넉넉한 분입니다. 오늘 저녁(30일) 익산문화원 국악연주회에 참석하여 1시간 동안 끝까지 관람하고 익산의 문화발전에 대한 적극적 관심과 지원을 표명했습니다. 앞으로 익산문화원에 대한 큰 지원을 기대합니다.
3. 교육감
진보9, 보수8입니다. 전북은 서거석 후보가 당선되어서 많은 변화가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언론에서는 서거석 후보를 진보로 분류하지만 나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사실상은 보수가 아닌가 여겨집니다. 제 판단이 옳다면 진보가 8이고 보수가 9가 됩니다. 교육에 보수가 웬 말입니까 마는, 김승환 교육감의 지나친 진보적 정책들을 과감히 수정한다는 공약을 보면 소위 전교조와 함께하는 진보인사는 결코 아닙니다. 전임 교육감의 청렴인사행정, 혁신학교 운영 등 긍정적인 정책은 계승하고 지나치고 급진적인 학생인권조례제정으로 인한 생활지도의 극한상황과 교사들의 사기저하, 고집스럽고 시대에 맞지 않는 소규모학교 통폐합 반대, 평등주의 이념에 사로잡힌 상산고 자율형고교 폐지, 좌파적 경제이념에 사로잡힌 삼성에 대한 배타행정, 무뇌아적 일제청산 작업 등 소위 운동권 세력이나 문재인 정권과 이념적 궤를 같이 하는 가소롭고 퇴행적인 정책들은 과감히 제거하리라 기대합니다. 3선의 김승환 교육감이 물러나게 됨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깨끗한 전북교육행정을 완성하고 학생들을 입시교육의 틀에서 벗어나게 하고,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맞는 미래를 개척하는 교육풍토를 조성한 김 교육감의 공적은 지대하기에 큰 박수를 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11일 서울행
여느 해처럼 가원의 생일을 서울에서 치릅니다. 마포 서부법원 뒷 편의 조용한 식당에서 가족 8명이 생일축하 시간을 가졌습니다. 딸 내외가 저녁식사를, 아들이 생일선물을, 조카 민경이가 케익을 준비했습니다.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다음 날 아침 6시 30분에 정박사에게서 빌린 작은 가방에 물 한 병과 빵 하나를 넣은 다음 북악산 등산에 나섰습니다. 지난 5월 10일 윤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청와대를 개방하고 아울러 김신조 사건 이후 폐쇄되었던 북악산 등산로를 54년 만에 완전 개방한 바 있습니다. 너무나 궁금하고 흥미로운 청와대 뒷길을 하루라도 빨리 오르고 싶은 마음이 내심 컸습니다.
등산로는 칠궁길과 춘추관 길이 있는데 춘추관 길을 택했습니다. 택시로 춘추관에 도착하니 개방 한지 한 달이나 지나서인지 등산객들은 예상과 달리 매우 한산합니다. 지나가는 주민여성에게 물어 오르려하다 길이 막혀있는 것이 보여서, 다시 내려와 등산을 시작하는 젊은이에게 물어 함께 춘추관으로 들어갔습니다.
※막힌 길은 처음에는 개방하였으나 헌법재판소장 관사주변길이어서 소음문제로 폐쇄시켰다가 여론이 일자 오늘 7월 1일부터 다시 개방한다고 보도되었습니다. 정말 그러했다면 어처구니 없이 가소로운 일입니다. 대통령도 권위주의시대를 끝내고자 청와대를 버리고 용산시대를 열었는데, 일개 헌법재판소장이 등산객들이 번거롭다고 시민들이 다니는 등산로를 폐쇄시킨다? 설령 폐쇄지시가 무슨 큰 의도는 아니었다 해도 시대에 맞지 않는 대단히 큰 실수라고 봅니다. 소장을 찾아보니 목포출신 유남석이란 사람입니다.
백악정과 만세동방을 거치며 오르는 길은 잘 관리되고 있고 나무숲이 울창합니다. 서울시내가 남산이나 인왕산보다 잘 보일 거라 여겼는데 그건 아닙니다. 청운대를 지나 북악산(382m)에 도착합니다. 북악산은 1968년 1.21사태이후 출입이 제한되었다가 2007년 4월에 북악산 전 구간을 개방하고 전체가 아닌 성곽길(와룡공원 -숙정문-백악마루-창의문)탐방로로 제한하였다가 이번에 완전 개방함으로써 내가 청와대 오른편 길 뒷산을 오르게 된 것입니다. 창의문으로 내려오는 길은 경사가 급하지만 성곽을 따라 계단이 잘 만들어져 있어 매우 편한데 올라오는 사람들은 상당히 힘들어 합니다. 춘추관에서 창의문까지 쉬어가면서 두 시간입니다. 택시 잡기도 힘들어 칠궁근처까지 걸어 내려와 보니 청와대 구경 온 사람들로 장사진입니다. 10시 쯤 집에 도착합니다.
오후에는 인사동 한국미술관을 찾았습니다. 대한민국서예대전 입상작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이쁜 딸과 사위가 함께 해 주었습니다.
□16일 문화원 현충시설 답사
익산원호지청에서 후원하는 현충시설 답사입니다. 팔봉동 충령탑, 금마면 홍순갑 의사 추모비, 순난기념비, 여산면 이병기 선생 생가 및 전시관 관람후 전시관에서 현충시설관련 연수, 독립만세운동 기념비, 군경묘지를 찾아 참배하였습니다.
오후에는 명재 윤증(1629-1714) 고택을 찾은 다음 김장생 선생을 모신 돈암서원을 찾았습니다. 돈암서원은 처음입니다. 대단한 규모이며 잘 정비되어 있어 관광객들이 많을 듯합니다. 계백장군 유적지에 있는 백제군사박물관을 관람하고 출렁다리를 건너보고 돌아왔습니다.
※김장생(1548-1631)
송익필로부터 四書와 〈근사록〉 등을 배웠고, 장성하여 20세 무렵에 이이에게 사사했다. 예학의 태두로 평가되고 있으며, 그 이론적 배경은 이기혼융설이다. 그의 예학론은 임진왜란 이후 혼란해진 국가기강을 바로잡고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통을 바르게 하는 것'에 중점이 두어졌다. 이러한 정통주의적 예학론은 이후 집권세력의 정치이념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김장생은 이이에게서 주자학을 전수받아 그 학통을 계승했다. 특히 그의 성사상을 이어받아 학문의 요체로 삼았으며, 이기심학관을 계승하여 일원적 이기심학관을 견지했다. 격물치지설에서도 율곡의 설에 따르고 있었다. 김장생은 1626년 연산에 내려와 죽림서원과 임리정(현 강경읍)을 지었고 제자인 송시열은 1663년에 팔괘정을 지었다.
인조 즉위 뒤에도 향리에서 보낸 날이 더 많았지만, 김장생의 영향력은 이이의 문인으로 줄곧 조정에서 활약한 이귀와 함께 인조 초반의 정국을 서인 중심으로 안착시키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하였다. 학문과 교육으로 보낸 향리 생활에서는 줄곧 곁을 떠나지 않은 아들 김집의 보필을 크게 받았다.
김장생의 문인은 많은데, 송시열·송준길·이유태·강석기·장유·정홍명·최명룡·김경여·이후원·조익·이시직·윤순거·이목·윤원거·최명길·이상형·송시영·송국택·이덕수·이경직·임의백 등 당대의 비중 높은 명사를 즐비하게 배출하였다. 아들 김집(1574-1656)도 문하이지만, 문인들 사이에는 김장생을 ‘노선생’, 아들을 ‘선생’으로 불렀다고 한다. 1603년 익산군수를 지낸 바 있고 1630년에 가의대부가 되었으나, 조정에 나가지 않고 향리에 줄곧 머물면서 학문과 후진양성에 힘썼다. 연산에서 83세의 나이로 죽어, 진잠에 장사지냈다.
송시열(1607-1689)은 김장생(1548-1631)의 제자요, 윤선거(1610-1660)는 김장생의 아들인 김집(1574-1656)의 제자이다. 윤선거의 아들인 윤증(1629-1714)은 김집과 송시열에게 배운다. 훗날 서인은 송시열의 노론과 윤증의 소론으로 갈려 당쟁을 계속하였다. 경신환국(1680)으로 정권을 장악한 서인이 남인에 대한 태도를 놓고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졌다. 노론의 대표인 송시열과 소론의 대표인 윤증은 본래 스승과 제자이고 친인척 간이었다. 경신환국 전에 남인인 윤휴가 성리학을 절대적인 진리로 볼 수 없다며 주자의 해석을 비판하자, 송시열은 윤휴를 사문난적(斯文亂賊) 으로 몰았다. 반면 윤증의 아버지 윤선거는 그런 견해도 있을 수 있다는 태도를 보였다.
윤휴는 경신환국 때 남인이 몰락하면서 사약을 받고 죽었다. 윤선거에 대해 화가 풀리지 않은 송시열은 윤선거가 죽었을 때 윤증이 아버지 묘비명을 부탁하자 비아냥거리는 글을 써 주었다. 그러자 윤증은 송시열이 의리쌍행(義利雙行) 한다며 비난하는 글을 썼다. 송시열이 충청도 회덕(懷德)에 살고 윤증이 이성(尼城)에 살았기 때문에 둘 사이의 대립을 '회니시비(懷尼是非)'라 한다.
이처럼 남인 윤휴에 대한 태도에서 비롯된 송시열과 윤증의 갈등은 결국 서인의 분당으로 이어졌다. 서인인 김석주가 남인에 대한 과격한 처벌을 주장하자 이를 지지한 송시열 편을 노론이라고 하고, 반대한 윤증 편을 소론이라 했다.
※돈암서원
사적 제383호. 1634년에 창건되었으며 기호학파의 거두인 김장생의 위패를 모셨다. 1660년(헌종 1년)에 사액을 받았으며, 충청지역을 대표하는 서원이다. 김장생의 아들인 김집을 비롯하여, 송시열과 송준길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가당인 응도당, 양성당,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가 있으며 이밖에 장판각, 정의당, 고직사, 사당인 유경사를 두고 있다. 1881년(고종 18년)에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에도 훼철되지 않고 남았던 47개 서원 가운데 하나이다.
□20일 육일회
거의 2년 만에 육일회 모임을 가졌습니다. 열 아홉분이 참석하셨고 다른 회원들 모두 건강하십니다. 참여하는 회원 36명 중에 현역은 세분만 남았는데 총무이신 윤홍진 교장(전주공고)은 내년 2월말 퇴직이시고 박진홍(전주고)교장과 이재송 원장(교육정보연구원)만 남습니다. 교감연수 시 조직되어 16년이 지났음에도 모임은 잘 운영되고 있습니다. 영구회장으로서 과분한 칭찬을 많이 받습니다.
□23일 남성고 21회 운영위 협의회
금년에 코로나가 풀려 지난 5월부터 각종 모임들이 개시되니 작년에 개최하지 못한 졸업50주년 기념식을 다시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작년 5월, 학교에서 대표들만 참석하여 간단한 기념식과 기부금 전달식을 가진 바 있으나 정작 우리들의 자축기념식은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1박2일 기념행사를 제대로 치르지 못한 20회 선배들은 9월 22일 고스락에서 당일행사를 치른다고 합니다. 우리도 이를 추진하기 위해 2차 협의회를 가진 것입니다. 행사일, 장소, 예산, 조직 등 제반 사항에 합의하여 카톡방에 공지하였습니다. 행사를 치르는 11월 12일까지 많은 고심과 인내와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동기동창들의 마지막 대행사인 졸업50주년 기념행사를 잘 치르도록 힘쓸 생각입니다.
□25일 군산 가족 회식
아버지께서 2박 3일의 제주도여행을 마치고 오셨습니다. 막내매제인 김현수 사장이 주관하고 두여동생이 보필하면서 잘 다녀오셨습니다. 무려 40여년 만에 가셨다고 하고 은희 동생도 27년 만에 갔다고 합니다. 하긴 지난 4월에 다녀온 가원도 무려 17년 만이었고 나도 10년 만에 다녀왔습니다. 제주도...가까운듯하지만 정작 꽤나 먼 곳인가 봅니다. 하긴 해외여행이 우선 급하고 국내에도 갈 곳이 너무 많은지라 앞으로 제주도는 언제쯤이나 다시 갈지 알 수 없습니다. 아버지를 모시고 흐뭇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세희 신랑 김현수 사장은 너무나 자랑스러운 휼륭한 매제입니다.
□29일 송지사 퇴임식
송하진 지사의 퇴임식에 다녀왔습니다. 일체의 초청장 없이 도청직원들만 참석하는 퇴임식이라는데 무려 42년의 공직생활, 그것도 8년의 전주시장과 8년의 전북지사의 영광스러운 직책을 맡아 최선을 다하여 놀라운 성과를 이루어내고 퇴임하는 친구를 축하하려고 류필영 친구와 함께 참석하였습니다. 초․중학교 어린 시절은 차치하고, 제대한 후 전주향교에서 함께 하룻밤을 잤던 일, 사무관시절에 일직을 한다며 도청으로 데려가 여러 방을 구경하던 일, 고교졸업 30주년 행사 준비 때 나는 고교교사로 남성고 동기 총무, 송지사는 도기획관리실장으로 전주고 동기회장을 맡아 하던 일, 전주시장 선거에 첫 출마하던 무렵 함께 국가대표 친선경기에 VIP룸에서 관람하던 일, 초등학교 동창회를 재조직하여 회장을 위촉하였던 일, 이후 해마다 초등학교 동창회 모임과 남성신년하례회에서 만나던 일 등 많은 장면들이 생각납니다. 그동안 친구는 나와 우리 친구들에게 큰 자랑이었고 또 큰 자부심이 되어 주었습니다. 이제 총리에 버금가는 위상인 전북지사라는 찬란한 자리에서 내려와 평범한 자연인이 됩니다마는 전주에서 살면서 전북에서 가장 존경받는 어른으로 더 오래토록 빛이 나기를 바랍니다.
□30일 문화원 국악연주회
6.1 지반선거 당선자 초청 국악축하공연에 참석하였습니다. 시장과 여러 시의원들이 참석하여 주었습니다. 역사문화의 도시인 익산시가 문화도시로 거듭 나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는 시장의 고무적인 말씀이 있었고 원장은 시장과 의원들에게 문화원에 대한 많은 지원을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축하공연으로 홍종선 교수가 이끄는 국악오케스트라 연주회가 있었습니다. 국악과가 폐과되어 어려운 처지에 놓인 졸업생들(이미 다른 직업을 가진 단원들)로 조직된 오케스트라단인데 우리 문화원에 적을 두고 밤에 모여 연습도 하고, 공연을 하면서 유지 발전시키려는 홍교수와 이원장의 노력이 좋은 결실을 맺도록 시의 지원이 절실합니다. 시장의 긍정적인 지원에 대한 언급이 있는 만큼 모든 일이 잘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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