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가가 사랑한 우리말 노래
엮은이 송경모
강암학술재단에서 주관하여 2024년 가을, 서울과 전주에서 《2024 한글서예변주전 : 붓으로 쓴 우리말 노래》전을 개최하였는데 상임이사인 송경모 군이 95개 출작품들의 노랫말과 작품사진을 싣고 노랫말에 대한 해설과 작가들의 辯을 실었다. 매우 재미있게 엮은 책이다.
엮은이 송경모 박사는 강암 송성용 선생의 큰 아들인 고 송하철 전 전북부지사의 아들로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경제 및 금융관련 연구와 교수를 역임한 후 현재는 출판사(아석재)를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친구인 취석 송하진 전 전북지사의 큰 조카이기도 하지만, 나의 매제인 윤영환 교수와는 서울대 경제학부 동기생이기도 하다.
노래는 대부분 가요이지만 가곡도 있고 국악도 있다. 100여명의 서예가들이 자신들이 좋아하는 아름다운 노랫말로 된 노래들을 한글서예로 작품화한 것으로 나에게 많은 공부가 되었다. 서예의 대가들이신 분들이라 연세가 대부분 60세 이상이시므로 우리 모두가 익히 아는 노래들이 대부분이어서 매우 재미있다.
01. 가리워진 길
유재하(1962-1987)가 작사 작곡했고, 그는 앨범을 내고 3개월 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02. 가시나무
시인과 촌장 멤버인 하덕규(1958- )가 작사 작곡했다. 나도 매우 좋아하는 노래이다. 조성모(1977- )가 2000년에 부른 노래를 많이 따라 불렀다.
03 .가을비 우산 속
최헌(1948-2012)이 1978년에 부른 노래이다.
04. 가족사진
SG멤버인 김진호(1986- )가 작사 작곡하고 자신이 부른 노래라고 한다.
05. 감사
김동률(1974- )이 작사 작곡하고 자신이 부른 노래라고 한다.
06. 강촌에 살고 싶네
나훈아의 히트곡으로 강촌은 행정구역상 춘천에 속한다고 한다. 나는 막연히 <강촌>을 강가에 있는 마을로 만 이해하고 있었다.
07. 고향
정지용(1902-1950)의 시에 채동선(1901-1953)이 곡을 붙인 가곡이다.
08. 고향역
고향역은 우리 익산의 황등역이다. 현담 조수현 선생(전 원광대 서예과 교수)의 작품으로 남성고 선배인 임종수(1942- ) 선생이 작사, 작곡하였고 나훈아(1947- )가 불러 히트한 노래이다. 임선배님은 삼기면에 살면서 황등역으로 나가 열차를 타고 이리(1995년 도농통합 이전의 이리시)로 통학하였다고 한다.
09. 고향초
박시춘 선생(1913-1996)이 작곡한 노래로 1948년에 송민도(1923-2023)가 불렀다. 내가 송민도와 나애심(1930-2017)의 노래를 좋아한다.
10. 그 겨울의 찻집
양인자(1945- )작사, 김희갑(1936-2016) 작곡으로 조용필이 부른 노래이다. 양인자씨와 김희갑씨는 부부로, 이 책에는 두 분이 작사 작곡한 노래가 많이 나온다.
11. 그네
김말봉(1901-1961) 작사 금수현(1919-1992) 작곡의 가곡이다. 중학교 때 음악교과서에 실려 있어 배웠다.
12. 그대 향한 사랑
2003년 방영된 <장희빈>의 주제곡이라고 한다.
13. 그리움
이은상(1903-1982) 작사 홍난파(1898-1941) 작곡의 가곡이다.
14. 그리워
나와 전주교육대학 동기인 심석 이병기 교수의 글씨이다. 이은상(1903-1982)작사, 채동선(1901-1953) 작곡의 가곡이다.
15. 기타야곡
1957년 박춘석(1930-2010)이 작사, 작곡하고 남인수(1918-1962)가 부른 노래이다.
16. 꽃구경
장사익(1942- )이 독특한 창법으로 부른 슬픈 노래이다. 고려장을 통하여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뜨거운 사랑을 그렸다. 어머니에 이어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신지 오늘로 13일째, 두 분 모두 90여년을 잘 사시고 가셨지만 두 분의 자식에 대한 사랑은 뜨거우셨다. 두 분 육체는 재가 되어 중중 추모공원에 계시지만, 영혼은 천당에서 만나셔서 함께 계심을 믿는다.
17. 꽃밭에서
호암 윤점용 선생의 글씨이다. 멋지다. 이종택 작사 이봉조(1931-1987) 작곡으로 정훈희(1952- ) 가 불렀다. 이 가사는 원래 세종 때 유생 최한경이 고향의 한 여인을 그리워하면서 지은 한시 <花園)을 소재로 한다.
꽃밭에 앉아서 꽃잎을 보네
고운 빛은 어디에서 왔을까.
아름다운 꽃이여 그리도 농염한지
이렇게 좋은 날에 이렇게 좋은 날에
그님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동산에 누워 하늘을 보네.
청명한 빛은 어디에서 왔을까
푸른 하늘이여 풀어놓은 쪽빛이네.
이렇게 좋은 날에 이렇게 좋은 날에
그 님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18. 나그네 설움
강암의 둘째 아드님이신 우산 송하경(1942- ) 선생의 작품이다. 작사가인 조경환은 나화랑(1921-1983)의 형이라고 한다.
19. 나라 지키는 마음
김학송(1914-2016) 작사, 작곡의 1970년대 군가이다.
20. 내 나라 내 겨레
우리 익산출신 김민기(1951-2024)가 짓고 송창식(1947- )이 작곡했다.
21.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최백호(1950- )가 작사한 노래이다.
22. 내 사람이여
백창우(1958- )시인 자작곡으로 이동원과 김광석이 불렀다.
23. 내 삶의 이유 있음은
이당 송현숙(1948- ) 선생의 글씨이다. 강암의 따님이자 우리 가원의 스승이시다. 김소엽(1944- )시인이 작사하고 이미자(1941- )가 부른 노래이다.
24. 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
백창우 자작곡으로 임희숙(1950- )이 부른 노래이다.
25. 내일
김수철(1957- ) 자작곡으로 자신이 불렀다.
26. 네 박자
김동찬 작사 박현진 작곡으로 정읍출신 가수 송대관(1946- )이 불러 히트했다.
27. 동무 생각
이은상(1903-1982)선생이 작사하고 박태준(1900-1986)이 작곡했다. 청라(푸른 담쟁이 넝쿨)언덕은 대구동산의료원 선교사 사택 일대의 언덕이다. 재작년에 다녀온 바 있다.
28. 동심초
김억(1896-1948)의 시이며, 김성태(1910-2012)가 작곡했다. 우리 모교인 남성중고 교가도 김성태 선생이 작곡하셨다. 103세까지 사셨다니 놀랍다.
29. 둥지
김동찬 작사, 차태일 작곡으로 남진(1946- )이 부른 노래이다. 나는 트로트를 좋아하지 않아 거의 부른 기억이 없다.
30. 딜라일라
톰 존스(1940- )의 노래인데 조영남(1945- )이 우리말로 가사를 붙여 불러 대히트 했다. 딜라일라는 구약성서에서 삼손을 배신하는 여인의 이름이라고 한다.
31. 떠나가는 배
음유시인 정태춘(1954- )이 자작곡하고 자신이 부른 노래이다.
2. 만남
노사연(1957- )이 불러 대 히트한 노래이다. 수년전까지 익산문화원 기타동아리 <설레임>에서 활동할 때 엄청 불렀다.
33. 명태
오현명(1924-2009)선생의 노래로 중고교시절 음악선생님이 들려주셔서 알게 된 노래이다. 음악선생님 별명이 명태이셨으니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그 시절 그립다. 고등학교 때 나는 합창단으로 활동했다.
34. 모란동백
이제하(1934- )자작곡으로 2001년 조영남이 리메이크해서 불러 히트했다. 20여년 전 언젠가 김호길 선생이 당신의 차에서 들려주어 알게 된 이 노래는 내가 조영남의 노래 중에서 그가 가장 잘 부른 아름다운 노래로 선정하고 나의 18번이 되었다. 어느 때는 정태춘의 <시인의 마을>이 18번이었는데 이 노래로 바뀌었다.
35. 목련화
경희대 총장을 역임한 조영식(1921-2012)박사가 작사하고 당시 음대학장이던 김동진(1912-2009)선생이 작곡했다고 하며 강사였던 엄정행(1943- ) 교수가 불러 1970년대 중반이후 국민 애창곡이 되었다. 엄정행 교수는 당시에 인기가 대단했다.
36. 못 찾겠다 꾀꼬리
1982년 조용필의 히트곡이다.
37. 미사의 종
전오승(1923-2016)이 작곡하고 여동생인 나애심(1930-2017)이 부른 노래이다. 우리시대 아역배우로 유명했던 전영선(1950- )은 전오승의 딸이며, 가수 김혜림(1968- )은 나애심의 딸이다. 내 초등학교 동창인 강기태는 젊은 시절 전오승 선생의 작곡사무실에서 심부름하며 가수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친구는 가수로 성공하지는 못했다.
38. 바다 끝
현 서예협회 이사장이신 송현수(1963- ) 선생의 글씨이다. 이종명(1978- )자작곡으로 최백호(1950- )가 불렀다고 한다.
39. 바람 바람아
2023 미스트롯에서 불리어진 노래라는데, 나는 트롯을 좋아하지 않으므로 미처 모르는 노래이다.
40. 번지 없는 주막
박영호(1911-1953)작사, 이재호(1919-1960)작곡으로 1940년 백년설(1914-1980)이 부른 노래이다.
41. 봄날
오늘 날 온 세계의 젊은이들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방탄소년단(BTS)이 2017년에 부른 노래라고 한다. 당연 나는 들어본 일이 없는 노래인데 한국최대의 엔터테인먼트 회사인 <하이브> 이사장인 방시혁(1972- )이 작사 작곡했다고 한다. 그는 전주출신으로 서울대 미학과 출신인데 이수만(1952- )의 뒤를 K-POP을 이끌고 있는 대단한 인물이다.
42. 봄날은 간다
하석 박원규(1947- ) 선생의 글씨이다. 손로원(1911-1973) 작사 박시춘(1913-1996) 작곡으로 백설희(1927-2010)가 불렀다. 백설희는 배우 황해(1921-2005)의 아내이며 가수 전영록(1954- )의 모친이다. 박원규 선생은 고등학교 선배가 된다.
43. 부모
김소월(1902-1934) 작시, 서영은(1927-1989) 작곡이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 서영은(1973- )과는 同名異人이다. 코미디언 서영춘(1928-1986)의 형이라고 한다. 1968년 윤복희(1946- )의 첫 남편인 유주용(1939- )이 불렀다. 나도 가끔씩 부르는 노래이다.
44. 부용산가
부용산은 전남 벌교에 있는 산으로 이곳에서 자란 박기동(1917-200)이 요절한 여동생을 그리워하며 지은 시라고 한다. 목포 항도여중에서 같이 근무한 음악교사 안성현이 작곡하여 전남일대에서 구전가요로 불리다가 안치환, 한영애, 윤선애 등이 불렀다고 한다.
45. 붓
류선우 작사, 작곡으로 가수 강진(1955- )이 불렀다고 한다.
46. 비목
1964년 화천군 백암산 인근 비무장지대에서 근무하던 소초장 한명희(1939- )는 순찰 중에 무덤으로 보이는 돌무지를 발견했다. 근처에는 녹슨 철모와 목비였던 듯한 나무토막도 쓰러져 있었다. 장일남이 작곡했다. 작사가는 木碑를 멋지게 비목이라 했는데 훗날 국어사전에 실렸다고 한다.
47. 사랑
이은상 작시(1931) 홍난파 작곡(1933)으로 유명한 가곡이다.
48. 사랑한 후에
전인권(1954- )이 작사한 노래로 원곡은 팝송인 <베르사이유 궁전>이라고 한다. 전인권이 2006년 어머니의 죽음을 접한 뒤 일었던 허무의 심정을 그렸다고 한다.
49. 4월의 노래
박목월(1915-1978) 작사 김순애(1920-2007) 작곡이다. 1953년 잡지 <학생계>가 전쟁으로 피폐해진 청소년들의 마음에 꿈과 희망을 안겨주려는 의도로 두 사람에게 의뢰하여 만들어진 노래다. 1960년대 후반에 고등학교를 다닌 우리는 음악교과서에 이 노래가 실려 있어 즐겨 불렀다.
50. 사철가
현 서가협회 이사장이신 한윤숙 선생이 썼다. 이 곡은 단가라고 한다. 익산출신의 명창인 정정렬(1876-1938) 선생이 1935년에 녹음했다고 하며, 역시 익산에서 활동한 오정숙(1935-2008)과 이일주(1936-2023)등에 의해 전승되었다고 한다. 2005년 솜리문화회관 뜰에 정정렬 선생의추모비가 세워졌는데 채수환 교수의 의뢰를 받아 내가 <추모의 글>을 정리한 바 있다. 내 주변에서 이 노래를 흉내라도 내는 사람들이 있는데 친구인 송하진 전 전북지사, 후배인 임홍락 익산문화원 향토문화연구소장, 역시 후배인 심재호 전 교장 등이다. 나도 불러보고 싶은 마음이 있기는 한데 판소리는 배운바가 전혀 없어 흉내를 낼 수가 없다.
51. 산골 소년의 사랑 이야기
예민(1966- )이 1992년에 작사 작곡하고 본인이 부른 노래다. 가사 말이 아름답고 내용은 마치 황순원의 <소나기>를 연상시킨다.
52. 산 너머 남촌에는
파인 김동환(1901-1958) 작시, 김동현(1924- ) 작곡이다. 1965년에 박재란(1938- )의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발표되었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 이 노래를 들으면 으레 우리 마을에서 저 멀리 보이는 모악산을 비롯한 시커먼 노령산맥 줄기를 바라보면서 <저 산 너머에는 어떤 곳이며 어떤 마을들이 있고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하고 자주 상상의 나래를 폈다. 그곳은 오늘날 동북으로는 전주 너머 완주군과 진안군이며, 동남쪽 방향으로는 정읍시와 순창군이었다. 나는 지금도 이 노래를 아주 자주 흥얼거리곤 한다. 박재란의 이 노래를 들으면 기분이 흠뻑 상쾌해지니 정말 보약 같은 노래가 아닌가?
53. 산 노을
유경환(1936-2007) 작사, 박판길(1929-1993) 작곡의 가곡이다. 유경환은 군산의 고향집 뒷산에서 보았던 낙조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 깃든 쓸쓸함과 그리움을 자신이 근무한 경복고 제자인 박판길에게 시로 지어주기를 부탁하여 이 시를 받아 1972년에 작곡하였다고 한다.
54. 살다보면
작사가는 조광화(1965- )이고 작곡가는 윤일상(1974- )이다. 뮤지컬 <서편제>에서 불리어진 노래라고 한다.
55. 상록수
익산 출신으로 한국최초의 싱어송 라이터라 하는 김민기(1951-2024)가 작사, 작곡한 노래이다. 이 노래는 1977년 본래 노동자들의 합동결혼식에서 사용할 축가로 지은 것이었다. 양희은의 음반을 통해 <거치른 들판에 푸르른 솔잎처럼>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는데, 이후 민중가요의 대표격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그런데 요즈음 윤석열 탄핵심판 시위현장에서는 20-30 젊은이들이 소녀시대나 방탄소년단의 노래 등 K-팝으로 노래를 불러 새로운 시위문화를 보여주고 있다하니 세월의 변화는 누구도 막을 수 없다.
56. 선구자
윤해영(1909-1956) 작사, 조두남(1912-1984) 작곡의 가곡이다. 독립운동가들의 기상을 장중하게 표현한 선율과 그들의 정신을 압축해서 담은 가사로 1960년대에 널리 불리었다.
57. 세월 베고 길게 누운 구름 한 조각
나훈아(1947- )가 작사, 작곡하여 자신이 부른 노래이다. 2006년 데뷔 40주년 기념앨범의 타이틀 곡이었다고 한다. 요즈음 나훈아씨는 데뷔 59주년 기념 순회공연을 하고 있는데 이 공연을 마지막으로 <박수 받을 때>떠나기로 마음먹고 은퇴한다고 한다. 참 대단한 스타이다.
58. 세월이 가면
박인환(1926-1956) 작시, 이진섭(1922-1983)이 작곡한 노래이다. 노랫말이 너무나 아름다워 자꾸만 되 뇌이게 되는 노래이다. 1956년에 탄생한 이 노래는 나애심(1930-2017)을 거쳐 현인(1919-2002), 현미(1938-2023), 조용필(1950- )이 불렀으나 1976년 박인희(1945- )에 의해 세상에 널리 알려지고 불리어 졌다. 우리는 1970년대 포크세대이므로 이 노래도 억세게 많이도 불렀다. 박인희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들 중 하나이다. 나는 송창식(1947- ), 김민기(1951-2024), 조동진(1947-2017), 박인희(1945- ), 양희은(1952- ), 은희(1951- ), 이연실(1950- ), 트윈 폴리오, 뚜아에 무아의 노래들을 좋아하며 부른다. 저 가수들은 본인들 의지와 상관없이 고교 졸업 후 50년의 세월을 나와 함께 살아 온 분들이다. 내게 늘 아름다운 꿈과 희망과 낭만과 사랑을 준 사람들이다. 내 아름다운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막중한 힘을 주시는 분들이다.
59. 송학사
김태곤(1950- )이 작사 작곡한 노래이며 1976년에 발표되었다. 내가 19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까지 나이트 홀이나 대형 단란주점에서 노래를 부르게 되면 이 노래를 자주 부른 기억이 난다. 또 조영남의 <제비>도 불렀고 정태춘의 <시인의 마을>도 많이 불렀다. 송창식의 <맨 처음 고백>과 <우리는>도 자주 불렀다. 또 엘비스 프레슬리의 <Love me tender>와 < Can’t help falling in love> 도 불렀다. 김호길 선생과는 함께 <향수>를 많이도 불렀다. 은퇴 후 몇 년간은 조영남의 <모란동백>이나 서유석의 <아름다운 사람>을 자주 부르곤 했는데 코로나를 겪으면서 노래 부르는 장소가 없어지고 이후에도 나이에 걸맞게 그런 곳을 멀리함에 따라 대중들 앞에서 한 곡 뽐내며 부르는 일은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
60.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본디 노르웨이의 가수가 부른 노래라고 한다. 2000년에 한경혜가 가사를 붙이고 김동규(1965- )가 불러 널리 알려진 노래다. 가사가 너무 청초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노래한 것이라서 이 노래를 들으면 기분이 황홀하고 괜히 나의 연인 가원에게 사랑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진다. 본디는 작사가가 엄마가 된 기쁨을 담은 노래라고 한다.
61. 시인의 마을
정태춘(1954- )이 작사하고 작곡하여 1978년에 부른 노래이다. 한 때 나의 18번으로 많이도 부른 노래이다.
62. 심청가 중 추월만정 대목
구전되어 오던 내용이 1979년에 남원시 송동면 세전리에서 채록되었다고 한다.
63. 춘향가 중 쑥대머리 대목
신재효(1812-1884)의 <남창춘향가>에 처음 등장하며 <옥중가>를 구성하는 <옥방형상>, <동풍가>, <천지삼겨> 등의 대목에 비해 비교적 후대에 추가되었다고 한다.
64. 아이와 나의 바다
아이유(1993- )가 작사하고 부른 노래라고 한다.
65. 애국가
안창호(1878-1938)가 작사하고 안익태(1906-1965)가 작곡한 우리의 애국가이다. 안익태가 <올드 랭 사인>에 붙여 부르는 것을 개탄하여 1935년에 새로 곡을 지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1912-2002)과 남승룡(1912-2001)이 메달을 따자 동포들을 지휘하여 이 곡을 처음으로 불렀다.
66. 애모의 노래
황유철(1929- )이 작사하고 안길웅(1941- )이 작곡하여 1969년에 뮤지컬<카니발의 수첩>의 주제가로 불러진 노래라고 한다. 당시 한국에서는 최고의 신사 미남자인 한상일(1941- )이 불렀는데 한상일의 잘생긴 모습과 매혹적인 목소리에 나는 크게 반했다.
67. 여백
김종환(1966- )이 작사, 작곡하고 노래했다.
68. 울고 넘는 박달재
반야월(1917-2012) 작사, 김교성(1904-1961) 작곡으로 1948년 박재홍(1924-1989)이 불렀다. 박달재는 충북 제천시에 있는 고갯길이다.
69. 이화령
안동출신의 시인 안상학(1962- )이 작사하고 역시 안동출신의 위대권이 작곡한 노래인데 이화령은 문경읍과 괴산군 사이에 있는 고개라고 한다. 지도를 찾아보니 문경새재 부근인데 국도로 그 곳에 가 본 기억은 없다.
70. 있지
<자우림>의 리더 김윤아가 작사, 작곡하여 부른 노래이다.
71. 저 강은 알고 있다
유동일 작사 백영호(1920-2003) 작곡으로 이미자(1941- )가 1965년에 부른 노래이다. 저 강은 낙동강이다.
72. 적벽가 중 화용도 대목
전주에 계시는 산민 이용(1948- )선생의 작품이다. 판소리 다섯 마당은 <춘향가>, <흥보가>, <심청가>, 수긍가>, <적벽가>이며 이중 적벽가는 가장 남성적이고 웅장하다. 존경하는 산민선생의 서실에는 집안 형님인 백암 이석부 선생이 산민묵연회 회장으로 계시고, 후배인 조병호 교장이 1년 전부터 글씨를 배우러 다니고 있다.
73. 전주의 찬가
원광대 서예과 교수였던 여태명(1956- ) 선생의 작품이다. 전주출신으로 전주고와 전북대 영문과를 나온 하중희(1934-2004) 작사, 정읍 출신으로 유명한 작곡가인 김강섭(1932-2022)이 작곡한 노래인데 전주가 시댁인 김상희(1943- )가 불렀다고 한다. 김상희는 이미 60년대 후반 나의 중고교시절에 고려대 법대 출신의 학사가수로 <경상도 청년>, <대머리 총각>등으로 유명한 가수이자 사회자였는데 80세가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젊고 예쁘시고 태도와 말씨도 매력적이시고 노래도 잘하시니 不可思議한 일이다.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대단한 여성이시다.
74. 정선 아리랑
전래민요이다. 김영임(1953- )의 정선아리랑이 대중 사이에 인기를 얻어 널리 알려져 있다.
75. 킬리만자로의 표범
양인자, 김희갑 부부의 작사 작곡으로 조용필(1952- )이 부른 노래이다.
76. 타타타
역시 양인자, 김희갑 부부의 작사 작곡으로 김국환(1948- )이 불러 히트했다.
77. 한계령
시인 정덕수(1964- )가 고향인 오색마을을 찾아 1981년 18세의 어린 나이에 지은 시를 하덕규가 1985년에 한계령에 올라 주요부분을 발췌해서 지었다고 한다. 18세에 썼다는 정덕수의 <한계령에서>를 읽어보면 고2 정도의 어린 나이에 쓴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놀랍다. 더구나 초등학교밖에 다니지 못하고 공장 노동자로 살면서 틈틈이 공부하며 시를 썼다고 하니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양희은의 노래로 널리 알려졌다.
78. 향수
정지용이 1927년에 발표한 시에 김희갑이 곡을 붙였다. 가수 이동원(1951-2021)과 테너 박인수(1938-2023)가 같이 불렀다. 1989년에 발표된 이 노래는 김호길 선생과 내가 술 한 잔 한 후 단란주점이나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게 되면 으레 함께 부르는 노래 18번이 었다.
1920년대의 우리나라 시골정서를 어쩌면 저리도 아름다운 우리말로 잘 담아낼 수 있을까?
-엷은 조름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 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79. 황혼이 져도
여운(1948- )의 데뷔곡이라고 한다. 한때 여운이 부른 노래로 <과거는 흘러갔다>를 좋아하여 부른 기억이 난다.
80. 홍타령 중 꿈이로다 절
전래민요이다. 흥타령 가사는 24절인데 그중 11절에 속한 부분이다. 군산출신 명창 김수연(1949- )이 부른 흥타령이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고 한다. <꿈이로다 꿈이로다 모두가 꿈이로다>
81. 희망가(청년경계가)
원곡은 찬송가<우리가 집에 돌아왔을 때>이다. 1920년대는 창가가 유행하는 이른바 신파가요의 시대였다. 신파가요의 대표격으로 1921년 채규엽(1906-1949)의 노래로 알려졌다. 우리는 어린 시절 1960년대 초까지 마을에서 해마다 동네 청년들이 연극도 하고 노래도 부르는 무대공연을 구경하며 자랐는데 이를 신파라 했다.
82. 희망의 속삭임
번안곡이며 미국에서 1868년에 발표되었다고 한다. 일본에서 <희망의 속삭임>이라고 번안되어 불렸다. 원래 2부합창곡인데 전 세계의 수많은 중창단과 독창자들이 불렀다. 나는 합창단의 노래를 듣기 좋아한다. 소년소녀 합창단뿐 만 아니라 그 어떤 합창단의 노래도 들으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