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록

왜 우리는 군산에 가는가?

청담(靑潭) 2014. 11. 19. 13:46

 

 

왜 우리는 군산에

 

 

 

 

가는가?

 

 

 

강석훈 외 7

 

글누림

 

읽게 된 동기

 

오늘 아침에 교무실에 잠깐 들르니 교무부장 책상에 이 책이 놓여있다. 처음 보는 책으로, 최근 군산의 근대문화유산을 찾는 이들이 부쩍 많아짐에 따라 군산의 근대문화를 소개하는 책으로 생각되어 반갑게 집어 들었다. 지난 6월에 출간한 책인데 그저 단순한 관광안내책자가 아니라 여러 젊은 분들이 정성을 들여 만든 책임을 알 수 있다. 교무부장이 먼저 읽으시라고 기꺼이 내어준다. 군산은 내가 사는 익산에서 엎드리면 코 닿을 동네이기도 하지만, 중학교 시절 부모님이 군산에 3년여 사시던 때문에 자주 드나들었고, 두 번에 걸쳐 군산에 8년째 근무하는 곳이지만 군산의 근대문화에 대해 깊이 알지는 못한다. 좋은 공부가 될 것이다.

 

 

첫 번째 시선

 

당혹스러운 근대 문화유산 거리

 

1. 낯선 근대 문화유산 거리를 걷다

 

째보선창

일제 강점기 때 이곳 선창에 째보라고 불리던 객주가 있었는데 그가 이곳 포구의 상권을 주름잡고 있었기 때문에 째보선창이 되었다는 설과, 포구의 모양새가 안쪽으로 째진 모습이 마치 언청이, 즉 째보와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앞의 설은 웃기는 얘기 같고 아마 뒤의 설이 맞을 것이다.

 

뜬 다리

조수간만의 차가 큰 서해안의 항구이기에 물에 쉽게 뜨도록 상자 모양의 부체를 띄우고, 그 위에 철근, 콘크리트, 강판, 목재로 바닥을 덮어 다리로서의 유연성과 안정성을 모두 갖추었다.

중학교 시절, 아버지께서 항구를 구경시켜주시면서 설명을 잘 해주셨다. 일본의 식량수탈과 뜬 다리... ! 그 시절이 그립다. 어렵게 서민금고사업(대부업)을 하시다가 실패하시고는 너무 힘든 마음고생을 하셨다. 대학을 다니신 죄(?)로 고생하신 것이다. 다행이 초등학교 교사가 되셔서 우리를 가르치시고 정년을 하셨다. 영화동의 아버지 사무실에서 전축으로 음악을 듣던 일( 1967년 발표된 CBS 연속극 주제가인 문주란의 <능금이 익을 때>를 처음 들었고, 지금까지도 가끔씩 그 노래를 듣기도 하고 부르기도 한다. 이제 막 사랑에 눈뜬 여리고 청순한 소녀의 감성이 아주 잘 표현된 가사이다. 당시 여고생 가수이던 문주란의 이 노래를 들으면서 가슴이 뭉클했다. 그런 소녀를 만나 그런 아름다운 사랑을 하고 싶었다.)

 

 

파란 비닐우산 속에서 능금같은 얼굴이

사뭇 수줍어 손가락 입에 물고 속삭인 사랑

비가 개어서 우산을 접었을 때에

~~ 끝나버린 허무한 사랑

 

아무도 안보는 숲속에서 능금 같은 사랑이

사뭇 무서워 손수건 쥐어짜며 속삭인 사랑

환한 거리로 달려가 왔을 때에

~~ 끝나버린 허무한 사랑

 

 

 

항구를 다녀오는데 마침 항구 쪽에서 화물열차를 운전하고 오시던 판환 재당숙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인사를 하시던 일, 교복 윗 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니면 의젓하지 못하다고 지적하시며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당부하시던 일.(그러나 나는 중학교 시절, 공부를 결코 열심히 하지 않고 소중한 시간만 의미 없이 죽이고 말았습니다.) ! 아버지... 열심히 공부하지 않아 많이 걱정하시던 이 아들이 이제는 교장이 되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많이 자랑스럽게 여기시고, 지금도 건강하게 살아계시니 제가 행복합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내년 봄엔 내가 퇴직하는 고로, 아버지를 모시고 함께 일본여행을 가기로 약속드린 바 있다.

-행복하게 잘 사시는 아버지시지만, 그래도 지금 자꾸 눈물이 많이 나오네요. 어린 시절 매 한 번 잡아보신 일 없으시고, 내게 아름다운 추억은 많이 만들어주신 아버지시네요.

 

진포해양테마공원

고려시대 화포를 이용하여 왜선 500여척을 격침했던 최무선 장군과 진포싸움을 기념하면서, 동시에 대한민국 국군의 화력과시를 위해 만든 전시공간이다.

 

조선은행 군산지점

1922년 건축. 이왕가 미술관과 숙명여전을 지은 나카무라 요시헤이가 지음.

 

나가사키 18은행

1914년에 건축. ...1995년 김영삼 정부의 <역사바로세우기운동>이 일어나면서 조선총독부(구 중앙청) 폭파를 시작으로 전국 각지의 일제 건축물들이 일순간에 사라졌다. 이때 군산에서도 구 군산시청, 구 군산경찰서, 군 군산초등학교 등 일제 건축물들이 해체됐다.

 

미즈카페와 장미갤러리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건물로 지금 잘 활용되고 있다.

 

고우당

2012년 개관된 대규모 게스트하우스이다. 다다미식 숙소, 카페, 일본식선술집, 문학관, 매점, 프런트, 연못쉼터가 있다.

 

일제식 편의점

고우당 가는 길목에 있다.

 

군산세관

1908년 건축, 아름다운 건축물이며 안에 전시실이 있다.

 

 

두 번째 시선

 

다중인격 :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

 

1. 일제의 사과를 받고 싶다면 동국사로

 

첫째는 일본이 최초로 조선침략에 대해서 참회하고자 세운 참사문비(1912년 세움)을 볼 수 있다. 둘째는 국내에 남아있는 대표적인 일본식 사찰이다. 마지막으로는 고은시인이 출가했던 사찰이라는 점이다.

189951일 군산항 개항과 함께 개항장의 외국인 전용 주거지역인 조계지가 지금의 영화동과 장미동 일대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일본인 승려 우치다 붓칸이 1909<금강사>라는 이름의 일본불교 祖洞宗 사찰로 문을 열었고, 1913년 지금의 자리인 금광동으로 옮겨졌다. ...현재에도 조동종은 일본 최대의 종파이다.

 

 

2. 조금은 특이한 적산가옥

 

적산(敵産)은 말 그대로 <자기 나라의 영토 안에 있는 적국의 재산>을 뜻한다. ...대중에게 공개되어있는 곳은 두 군데이다. 이중 하나는 영화촬영지로 알려진 히로쓰 가옥이고 다른 하나는 개정의 이영춘가옥이다. ...이외 사가와 가옥, 구 미곡창고주식회사 사택이 있다.

이영춘 가옥

구마모토(웅본)는 일제 강점기 전북 최대의 농장주이며, 1920년경 지어진 이 집은 그의 별장이었다. 1935년 진료소를 짓고 고용된 의사가 이영춘 박사이다. 이 박사는 오랫동안 전북지역의 최대의 병원인 개정병원을 운영한 분으로 한국의 슈바이처라고 부른다. 개정동에 있다.

히로쓰 가옥

일제강점기 군산지역의 유명한 포목상이었던 일본인 히로쓰가 1925년에 건축한 2층의 전통 일본식 목조가옥이다. 히로쓰는 대지주가 많았던 군산 지역에서는 보기 드물게 상업으로 부를 쌓은 사람이다. 일제강점기 군산의 가옥 밀집지인 신흥동 지역의 대규모 일식 주택의 특성이 잘 보존되어 있는 건물이다. 영화 장군의 아들타짜의 촬영 장소가 되기도 하였다.

 

 

2. 빵보다 중요한 이성당 이야기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랜 빵집이다. 1945년에 개업했고 빵 종류도 400여개에 달한다. ...맛을 보려면 수십 분에서 길게는 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인기가 많은 빵은 진열대에서 급식을 나눠주듯 종업원이 직접 개수를 헤아려 나눠준다. ...인기메뉴는 <한국인의 국민빵>으로 불리는 단팥빵이다.

...이 자리에는 원래 일본인이 운영하는 제과점이 있었다. ...해방후 이석우가 이 자리에 이성당(이씨 성을 가진 사람이 운영하는 빵집)을 세운다.

1966년경 아버지와 함께 이성당에 가서 빵을 먹었다. 아버지께서 군산에서 가장 유명한 빵집이라고 소개해 주셨다. 당시 익산에서는 황금당이 가장 유명했는데 우리 시골 학생들은 감히 들어가 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이성당 단팥빵을 먹었다는데 금년에 서울 롯데 백호점 잠실점에 분점을 냈다고 한다.

 

 

세 번째 시선

 

시선결핍 : 다양한 눈으로 바라보기

 

1. 히로쓰 가옥엔 히로쓰가 없다.

 

히로쓰 가옥의 가장 불편한 진실은 히로쓰가 없다는 것이다. ...50년 동안 <호남제분주식회사>의 관사로 사용되었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 일본식 집인 교장관사에 가끔씩 드나들었고, 1980년대 말 친구인 김병근 선생이 군여고에 근무할 때 이 부근에 있던 일본식 집에 세 들어 살고 있어 방문한 일이 있다. 집은 오래되어 볼품은 없었지만 향나무가 많은 정원이 넓어 상당히 아름다운 집이었다. 후배인 오성수 사장은 최근까지 익산시 평화동에 있는 일본식 집에 살다가 아파트로 이사했다. 1909년 말 호남선을 부설하기 위한 측량이 시작되자 익산의 명칭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고 1911년에는 철도공사가 착수되고 이에 따라 익산군청, 우편소, 익산 헌병 분대, 익산 변전소등이 금마에서 옛 옥야현 지역의 남일면으로 옮겨왔다. 현재도 오사장 소유인 그 집은 100여 년 전 당시의 익산군청 바로 앞에 위치하며, 대지는 넓지만 정원은 잘 남아있지 않은데 당시 군수 등 지위 높은 사람의 관사였음이 거의 틀림없다.

 

2. 차와 사람이 만나는 곳, 사가와 가옥

 

일명 <사가와 홍차>로 유명한 홍차 카페가 있다. 영화동에 있는 사가와 가옥 바로 옆에 있는 카페다. 사가와가옥에는 5층 석탑과 석등, 치센(연못)등이 잘 남아있다. 1930년대에 지어진 이집은 현재 교사출신인 유희주씨가 살고 있다. 이집은 유희주 선생의 아버지가 구입하여 살아왔다고 하며, 일제 강점기에 쓰인 작은 철제 금고가 있어 상표마크에 <사가와 킨코>라고 쓰여 있는데 사가와라는 말은 <차를 받들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3. 할아버지의 집 사랑, 구 미곡창고주식회사 사택

 

마루보시라는 회사의 지점장이 살던 집이다. 1935년 지점장이 월명동 땅 94평을 사들여 40평 남짓한 일본식 고급주택을 지은 것이다. 최근 자료에 의하면 마루보시라는 명칭은 미곡창고주식회사와 함께 쌀을 유통시키기 위해 설립된 회사 이름이며 해방 후 이 두 회사가 합쳐져 한국미국창고주식회사가 되었다. 이집은 마루보시라는 회사의 사택이라는 것이다.

1967년 광주에서 한 부부가 군산으로 올라왔다. 아내는 이집을 보고 너무나 마음에 들어 했고, 결국 이 집을 평생의 살 집으로 결정했다. 이경산 할아버지 부부이다....당시 쌀 600가마 값을 주고 샀다고 하는데 엄청난 돈이다. 머슴세경이 쌀 10가마였고, 보통사람들은 쌀 두가마를 팔면 한 달을 살았다. 앞의 기록은 이경산 선생에게 찾아온 당시 마루보시 회사의 지점장 아들의 증언에 따른 것이다.

 

 

네 번째 시선

 

기억상실 : 잊지 않고 남기기

 

1. 기억 속에 머무는 유곽

 

遊廓은 외부와 격리된 지역에 매춘업자를 두고 성매매를 허용하는 업소를 뜻한다....우리나라에 유곽이 설치된 것은 1976년 강화도조약 이후의 일이다. 이때 일본에서 많은 유녀들이 들어왔다. 유곽은 일본인 거류민들이 많이 사는 서울, 인천, 부산, 군산, 평양, 목포, 원산, 마산 등을 중심으로 지어졌다.

...1905년 공창이 도입되면서 1906년 군산에도 명산동에 유곽이 설치되었다. ...신흥동 유곽에서 일했던 일본여인들은 기예와 매춘을 겸한 오이랑으로 일본의 전통 게이샤와는 다르다.

...신흥동 유곽의 여인들은 게이샤 못지않게 기본적인 악기와 노래와 춤을 배웠고, 손님의 마음을 읽고 적절하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법도 익혔다. 이곳의 영업은 해가 질 무렵부터 새벽 한시까지였고, 홍등에 불이 켜지면 영업이 시작되었다. ...손님은 걸려있는 여인들의 사진을 보고 선택했다. 방으로 안내되면 차와 전병을 먹으며 여인을 기다렸다. 선택된 여인은 기모노를 입고 화장과 머리단장을 곱게 하고 손님을 화대했다.

유곽을 찾는 손님들은 대부분 군산을 잠간 들르는 외지인이거나 일본인 혹은 고급 관료였다. ...같이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접대비용이 1, 하룻밤을 자면 3(쌀 두말)내지 5원이었다. ...1930년 신흥동 유곽주변으로는 크고 작은 카페와 찻집, 음식점이 생겨났고, 일본어 간판을 단 상가들이 들어섰다.

...개복동은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에 들어 사창가로 번성해 문란한 골목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결국 20021월 아방궁화재사건으로 여성 1명과 남성 1명이 숨지는 대참사가 났고 이는 2004년 성매매 특별법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2. 기억 속에 사라질 海望

 

군산에는 해망이라는 이름을 가진 동네, 시장, 건축물, 지형이 있다. < 단순히 바다를 바라본다> 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해망에는 각각의 의미가 숨어있다.

...수시탑 자리에 해망정이 있었다. 이곳에서 과거 풍류객들이 올라 바다를 보며 한잔 술에 시를 지었다.

...해망굴은 군산이 개항장으로 한창 호황을 누리던 시기인 1926년 군산내항과 시내를 연결하기 위해 지어진 터널이다. 건설 당시 주변에 군산신사와 광장, 월명공원 등이 있어 신사참배하려는 일본인들과 나들이 나온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던 터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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