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

용두산

청담(靑潭) 2022. 9. 4. 23:02

용두산 龍頭山

양곡(陽谷) 소세양(蘇世讓1486-1562)

 

七點峰巒枕碧流(칠점봉만침벽류)

百年形勝擅龍頭(백년형승천용두)

聞道寒泉甘似乳(문도한천감사유)

暮年吾欲卜菟裘(모년오욕복토구)

 

일곱 산봉우리 푸른 강을 베고 있어

내생에 명승지는 용두산이 최고라네.

젖처럼 달콤한 샘물마저 솟는다 들었으니

늘그막엔 은거지를 이곳에 마련하고 싶네.

 

■소세양(蘇世讓)[1486~1562]

본관은 진주(晉州)이고 자는 언겸(彦謙), 호는 양곡(陽谷)· 퇴재(退齋)· 퇴휴당(退休堂)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중군사정 소희(蘇禧)이고, 할아버지는 한성부판관 소효식(蘇效軾)이다. 아버지는 의빈도사를 지낸 소자파(蘇自坡)이며, 어머니는 왕석주(王碩珠)의 딸 개성왕씨(開城王氏)이다. 형은 남원부사 소세량(蘇世良)이다.

소세양은 1486년(성종 17)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당시 익산군 군내면 도천리)에서 태어났다. 1504년(연산군 10) 식년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509년(중종 4) 별시문과에 급제한 뒤 홍문관부수찬 등을 지내다 문과중시에 합격하였다. 1513년에 정언을 거쳐 수찬을 지냈으며, 1514년 이조정랑· 사헌부장령· 직제학, 성균관의 사예와 사성 등을 역임하였다.

1522년 좌부승지를 거쳐 1523년 황해도관찰사로 나갔다가 파직되었다. 이후 이조참의로 관직에 복귀한 뒤 1527년에는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하여 자청해서 전주부윤이 되었다. 1528년 한성부우윤이 되었고, 1529년 전라도관찰사로 부임하였으나 왜적에 대한 방비에 소홀했다는 이유로 1530년에 파직되었다.

1533년 다시 기용되어 충청도관찰사, 한성부판윤, 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1535년 형조판서, 1537년 병조판서와 이조판서를 거쳐 우찬성이 되어 홍문관과 예문관의 대제학을 겸하였다. 인종 초 윤임(尹任) 일파가 정권을 장악하였을 때 탄핵을 받아 사직하였으나, 명종이 즉위한 뒤 을사사화(1545)가 일어나 정권이 뒤바뀌자 다시 관직에 기용되어 좌찬성을 지내다가 1646년 경 벼슬에서 물러나 익산에 태허정(太虛亭)을 짓고 그 아래 대나무 숲속(귀대숲)에는 퇴휴당(退休堂)을 짓고 살았다. 고향집에 은거한 지 거의 20여년이며 1562년(명종 17) 사망하였다.

문명이 높고 율시(律詩)에 뛰어났으며, 글씨는 송설체(松雪體)를 잘 썼다. 익산의 화암서원(華巖書院)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저서로는 『양곡집(陽谷集)』이 있으며, 글씨는 양주에 「임참찬권비(任參贊權碑)」와 「소세량부인묘갈(蘇世良夫人墓碣)」이 있다. 양곡집에는 1482수의 시가 수록되어 있는데 아직 번역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이다.

용두산은 현 익산시 용안면(당시 용안현)에 있는 61m의 낮은 산인데 금강이 휘돌아 가는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양곡이 금마에 퇴휴당을 짓고 은거하던 시기에 용안의 용두산을 찾아 지은 시이다. 송도기생 황진이(1506-1567)와의 사랑과 한 달 계약 동거는 유명하다. 짐작컨대 1644년경이라고 보여지는데 그렇다면 소세양의 나이는 당시 59세이고 황진이는 37세 정도로 추정된다.

 

奉別蘇判書世讓(봉별소판서세양) 소세양 판서를 보내며 : 황진이

月下梧桐盡(월하오동진) 달빛 아래 오동잎 모두 지고

霜中野菊黃(상중야국황) 서리 맞은 들국화는 노랗게 피었구나.

樓高天一尺(누고천일척) 누각은 높아 하늘에 닿고

人醉酒千觴(인취주천상) 오가는 술잔은 취하여도 끝이 없네.

流水和琴冷(유수화금랭) 흐르는 물은 거문고와 같이 차고

梅花入笛香(매화입적향) 매화는 피리에 서려 향기로워라

明朝相別後(명조상별후) 내일 아침 님 보내고 나면

情與碧波長(정여벽파장) 사무치는 정 물결처럼 끝이 없으리.

황진이가 소세양을 그리며 지은 유명한 시이다.

 

동짓달 기나긴 밤 : 황진이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비어 내어

춘풍 니불 아래 서리 서리 너헛다가

어롯님 오시는 날 밤이어든 구비구비 펴리라.

 

蘇世讓의 답시 : 소세양

달빛 아래 소나무만이 푸르르고,

눈에 덮인 한포기 꽃들은 고개를 떨구었구나.

강물은 하늘과 맞닿아 슬픈 줄 모르고,

쌓여가는 술은 그저 강물에 흘러갈 뿐.

흐르는 강물은 나의 마음을 실어 보내주지 않고,

저 멀리 절벽에서 살아남은 한포기 꽃은

아름다운 낙화를 보여주는구나,

내일아침 그녀를 보내고 난다면,

슬픔은 비가 되어 내 몸을 짓누르리.

 

                                                    2022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익산전 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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