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야승 49

정무록

정무록 (丁戊綠) 황유첨(? ~ ?) ■황유첨 대사헌을 지낸 황섬(黃暹 : 1544-1616)의 아들이며 간행 연대는 미상이다. 이 책명은 1607년(선조 40) 정미(丁未)에서 1608년(광해군 즉위) 무신(戊申)까지의 기록이란 뜻에서 붙인 것이다. 1607년 10월∼1608년 8월까지의 사정을 기록하여 광해군의 즉위와 관련된 당론(黨論)의 시말(始末)을 밝히고 당시의 사정을 이해하는 데 참고가 될 여러 사람의 소문(疏文), 편찬자의 기술(記述), 야승(野乘)의 기록 등을 비교적 객관적인 입장에서 간추려 수록하였다. 이 글은 유성룡 은퇴 후 권력을 장악한 북인은 대북과 소북으로 나누어지고, 선조가 죽고 광해군이 즉위하면서 대북이 정권을 잡고 소북과 벌이는 권력쟁투를 소상하게 그리고 있다. 아아! 오늘날..

대동야승 2021.02.16

재조번방지〈再造藩邦志〉

재조번방지〈再造藩邦志〉 신경 :(申炅 1613-1653)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용회(用晦), 호는 화은(華隱). 할아버지는 영의정 신흠(申欽)이고, 아버지는 동양위(東陽尉)신익성(申翊聖)이며, 어머니는 선조의 딸인 정숙옹주(貞淑翁主)이다. 김집(金集)의 문인이다. 1635년(인조 13)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이듬해 병자호란 때 끝까지 싸울 것을 주장하던 아버지의 뜻이 꺾이자 벼슬길을 단념, 태안의 백화산(白華山)으로 내려가 학문에 몰두하였다. 1643년 척화오신(斥和五臣)으로 지목되어 청나라에 붙잡혀갔던 아버지가 풀려나 이듬해 죽자 서울로 돌아왔다가 1652년에 다시 강릉으로 내려가 그곳에서 죽었다. 설화문학에 조예가 깊고 복서(卜筮)· 성력(星曆)· 산수(算數) 등에 해박하였다. 사헌부집의(司憲..

대동야승 2020.04.14